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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 이러면 더 좋지 않았을까?

선덕여왕은 과연 어디에서 어떻게 끝날까요?

미실이 죽은 뒤에 <선덕여왕>에 대해 갑론을박이 많은 것 같습니다. 과연 드라마 <선덕여왕>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에 대해 관심들이 높기 때문이겠죠. 저도 이 드라마가 어디서 어떻게 끝날 것인가에 다소의 불안감을 갖고 있습니다.

삼국통일이라는 말을 떠올릴수록 태종무열왕, 김유신 쪽으로 쏠릴 수 밖에 없겠죠. 그리 되면 선덕여왕이라는 제목과 주인공의 의미는 퇴색될 수도 있습니다. 삼국통일의 기반을 마련한 여성 군주의 모습을 마무리 짓는다는 게 역사적 한계 때문에 쉽지 않을 것입니다.

과도기에 놓인 드라마 <선덕여왕>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 것인가에 대해 제작진들도 고민이 많겠지만, 그 고민 역시 제작진이 자초한 부분입니다.



왕위에 오른 덕만공주 vs 왕좌를 유지하는 선덕여왕

이 드라마는 미실-덕만공주의 맞대결에 너무 많은 에너지를 소모했습니다. 여느 사극이었다면 '끝판대장'격인 미실을 무너트린 뒤에 왕위에 오르는 것 혹은 왕위에 오르고 뭔가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는 시작단계에서 해피엔드가 되었을 겁니다. 그럴 것이었으면 미실-덕만공주의 맞대결에 대부분의 힘을 쏟아부었어도 상관 없었겠죠.

그런데 지금은 그런 상황이 아닙니다. 역사에 근거해서 전개하든지, 아니면 각색을 하든지 불안감이 남아있죠. 역사대로 가자면 '비담의 난' 중에 죽음에 이르는 것으로 종료를 해야 되는데, 그러면 "이게 뭐냐?"라는 비난을 면할 수가 없습니다. 각색을 하더라도 자연스럽지 못할 경우에는 드라마이지만 '역사 왜곡'에 대한 비판과 찝찝한 마무리가 뒤따르겠죠.



여성 시청자들에 대한 기대감은 어떻게 할 건가?

게다가 주된 고객인 20~40대의 여성 시청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고려해야 할 겁니다. 드라마 제작진도 성공한 여자 리더로서의 기대감 혹은 대리만족에 대한 노림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지금의 선덕여왕은 권좌에 오르기 위해 심복도 잃고, 사랑도 포기해야 하고, 권력 다툼에 지쳐가는 여성 군주가 외로움, 처절함까지 안고 있는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자칫 '저럴 거면 왜 왕이 되겠다고 한 거야?'라는 회의감을 줄 수도 있습니다.

물론 성군이 된다는 것이 쉽지 않고, 세상이 그렇게 녹록치 않겠죠. 그러나 드라마 막바지인데도 아직 이러고 있어도 될까 싶습니다. 지금 왕이 된 덕만공주가 여성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모습은 아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덕만공주가 왕위에 오른 뒤, 개인적인 아쉬움

막바지로 가고 있는 이 드라마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미실-덕만공주의 구도가 끝나고 새로운 질서가 탄생했다면 그에 맞게 갔었어야 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현실적으로 군주 단독의 판단으로 국정을 수행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왕좌에 오른 뒤부터는 '똑똑하지만 외로운 보스'보다는 '용인술에 밝은 리더'로서의 모습이 부각되었으면 더 좋았을 것 같습니다. 그런 것을 높이기 위해서는 킹메이커들의 성장, 반대 세력 일부의 심복으로 전환, 새로운 인재의 등장 등 세를 불려가는 작업들이 필요했겠죠.

조조가 삼국지에서 최고의 영향력을 가졌던 이유 중 하나는 인재 등용의 과감함에 있습니다. 장합, 장료와 같은 명장들은 적군의 휘하에 있던 사람들이었죠. 장료 같은 경우에는 조조에게 붙잡혔을 때 저항이 만만찮았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조조를 위해 죽기를 다하고 싸우는 장수가 됩니다. 그게 군주의 덕이고 그릇인 거죠.

선덕여왕과 비담이 서로 경쟁적으로 세를 불려가면서 비담이 내부에서 난을 일으키는 구도가 되었다면, 그 싸움도 미실과의 라이벌전만큼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기대되는 한 판이 됐을 지도 모르죠. 신선함도 더해질 것이구요. 이미 미실과 한 판 치르면서 드라마의 커다란 부분이 뚝 떨어져나간 마당에 남아있는 작은 얼마 가지고 또 다투는 식이다 보니 판이 좁아보입니다. 거기에 김유신-비담의 단면적 대결구도까지 겹치니 답답하다고 할까요?

정치라는 건 다양한 역학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것이고, 그 안에서의 인물의 다양함, 첨예한 대립이 흥미를 돋구는 것이잖아요. 미실 측 사람이 제법 잔존해있는 것도 아쉬움이 잇습니다.




미실을 떠올리게 되는 까닭

'역치'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극에 대해 어떤 반응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자극의 세기를 뜻하는 말입니다. 일정 수준의 역치에 이르는 순간 그 이하의 자극에는 반응을 하지 않습니다. 시청자들은 비중이 상당했던 미실에게 길들여져 있는데, 그보다 비중이 떨어지는 인물들 간의 갈등으로 예전 같은 긴장감이 만들어지긴 어렵죠.

그러면 제 2의 미실급을 만드는 작업도 같이 있었어야 하는 겁니다. 마치 도전자가 챔피언에 오르면, 그 챔피언이 된 도전자는 또 다른 도전자의 대결을 맞이해야 하는 것이 숙명인 것처럼 말이죠. 지금 선덕여왕은 마치 세계챔피언 타이틀전 치른 뒤에 동양챔피언 타이틀전을 치를 태세입니다.

원래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면 과거에 대한 향수가 더 깊이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드라마 <선덕여왕>에서 미실에 대한 향수를 덜어내고 현재의 내용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미실에 못지 않은 상대를 선덕여왕에게 안겨주고, 또한 선덕여왕도 왕에 걸맞는 주변 인물과 배경을 심어줘야 겠죠.



미실과 유비

어린 시절 삼국지를 읽으며, 도원결의한 유비, 관우, 장비가 삼국통일을 이루겠구나 싶었는데, 촉이라는 작은 나라 하나 만들어놓고 얼마 후 모두 죽었을 때, 책을 덮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어린 마음에는 모든 중심이 유관장에 맞춰졌기 때문이죠.

그러나 다시 읽었던 삼국지가 재미있었던 것은 특정 인물만이 주인공이었던 것도 아니었을 뿐더러 유비-관우-장비 그리고 조조 등 굵직한 인물들의 사후에도 그에 못지 않은 인물들이 사건들이 계속 굵직한 사건들을 만들어나갔기 때문입니다.

예컨데 유비, 조조가 죽은 뒤에도 제갈량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출사표를 던지며 사마의와의 라이벌전을 펼쳤던 장면 말입니다. 그게 삼국지 후반부의 백미였죠. 대어급 영웅들 사후, 새로운 질서 속에서 또 다른 큰 인물들의 등장과 활약. 이것은 극의 긴장감을 지속시키기에 필요한 요소가 아닌가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