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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제도개선

고시제도, 확 바꿔야합니다.

오늘은 '공정사회'의 한 가닥인 '고시제도'에 대한 저의 생각을 말하고자 합니다.
과연 지금의 고시제도로 무한경쟁 시대의 급변하는 환경을 선도할 인재를 선발하고 그들을 통해 전문성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을지 의문을 던져봅니다.

그동안 고시는 많은 사람들에게 환경의 차이, 출발점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신분 상승의 ‘사다리'역할을 해왔습니다. 돈 없고 빽 없어도 열심히만 하면 주류가 될 수 있다는 한줄기 희망이었습니다. 시험 하나에만 의존하긴 했지만 엄격하고 객관적인 방법으로 선발했기 때문에 공직사회를 신뢰하고 존경하는 기반이 되어왔습니다. 이 나라 산업화를 선도한 세력도 국가・사회적 혼란기에도 굳건히 기틀을 지켜온 세력도 이들임을 누구도 부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좋은 머리와 능력, 주말도 없는 열성적 근무 자세로 혹여 다른 일을 했더라면 훨씬 잘 먹고 잘 살았을 거라는 가족과 친척의 안쓰러운 시선도 아랑곳 하지 않고 그들은 묵묵히 공직을 수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한번 따져봅시다. 이 나라 최고의 벼슬자리에 앉으려면 적어도 고려시대,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시나 문학까지는 아니더라도 인간에 대한 바른 시각, 사회를 바라보는 도덕성 정도는 가려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지식 덩어리의 크기가 합격의 기준이 되는 것이 과연 올바른 일일까요? 물론 임용 전에 각종 적성검사, 면접 등 여러 방법을 동원해 옥석을 가린다지만 근본적인 개선방안은 아닙니다. 또 그것을 믿을 사람 많지 않을 겁니다. 복잡다기(複雜多岐)한 현실과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충족시키기에 현재의 고시제도가 한계가 있다는 당연한 지적을 한 것입니다. 머리 좋고 게다가 품성까지 갖춘 사람이 뽑히기를 운(?)에만 맡겨서야 되겠습니까?

고시는 한 번 합격하면 평생을 보장받는 수단으로 고착되었습니다. 신분보장뿐만 아니라 외부와 경쟁도 필요 없으니 한방으로 인생역전이 이루어지는 셈입니다. 그러다보니 공직에서 가장 기본이 돼야할 대민봉사정신, 공동체의식, 국가관 등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실현할  여러 가치는 뒷전이 돼버렸습니다. 출세에 도움이 안 되는 인간성교육(?)은 대학이든 중·고교든 어디에서도 별 볼일 없게 되었습니다. 심지어 고시 합격하면 몇 개의 열쇠와 사랑하는 애인마저 바꾸는 세상이라는 말도 있지 않았습니까?

고시는 공무원 사회를 밖으론 닫혀 있고 제 식구끼리만 감싸주는 배타적 문화를 만들게 된 것입니다. 이처럼 ‘고시귀족’들이 기득권 세력화하면서 나타난 ‘순혈주의’ 는 점차 도를 넘어섰고, 때문에 고시개편 논의는 비단 지금뿐 아니라 이전 정부 때부터 줄곧 제기돼 왔었습니다. 그때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하는 것만 깨달았을 뿐, 뒷걸음질만 쳤습니다.  

지금의 고시 제도가 그나마 가장 평등하고 공정한 경쟁제도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해는 하지만 동의할 수는 없습니다. 한번 생각해 봅시다. 고시에 합격하기 위해 어떤 길을 가야하는지... 지금의 제도 속에서 고시생들은 3~10년을 아무런 생계수단 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게다가 일부는 가정생활까지 꾸려야 합니다. 합쳐 몇 백씩 하는 수험서, 고시촌 월세, 학원비까지... 여건이 갖춰진 사람들에겐 아무런 문제가 안 되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에겐 이것이 과연 ‘공정한 룰’인지도 생각해 봐야 합니다. ‘유전(有錢)합격, 무전(無錢)불합격’이란 말이 고시생 입에서 나오는 형편이니 평등이나 공정과는 더 거리가 멀어져 갑니다.

고시촌의 풍경

지금의 고시는 더 이상 '기회의 평등'을 보전해주는 도구도 되지 못합니다. 사법고시, 입법고시, 행정고시, 외무고시 등에 도전하는 수험생을 연간 13만 여 명으로 추산합니다. 하지만 한 해 합격자는 모두 합쳐 1500명이 되지 않습니다. 1.2%도 안 되는 가능성을 보며 오늘도 이 제도만이 유일한 신분상승의 요술 상자로 믿고 불철주야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 3년간 행시 합격자 중 이른바 'SKY대' 출신이 차지하는 비중은 약 70%
  최근 3년간 한 번이라도 10명 이상 행시 합격자를 낸 대학은 'SKY' 포함 7개

13만의 고시낭인들이 1.2%에 속하기 위한 확률, 1.2% 안에서도 소위 SKY대를 제외하면 극소수에 불과한 이들의 신분 상승이 과연 '기회의 평등'을 보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극소수에 불과한 이들에게 고시제도가 아직도 평등하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공정한 것일까요? 1.2% 안에서는 그나마 공정할지 몰라도 98.8%의 나머지에겐 그저 ‘쇼윈도의 평등’일 뿐입니다. 가진 것은 사람밖에 없는 이 나라 인적자원의 왜곡이자 낭비입니다.

지금과 같은 암기력, 집중력 중심의 고시제도가 있는 한 대학을 비롯한 공교육은 허물어 질 수밖에 없습니다. 혼자서 열심히 외우고 쓰는 게 낫지 학교교육, 인성・교양교육은 도움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공교육이 무너지면 인격도 품성도 황폐해질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고시촌 골방이 아닌 밝은 대학캠퍼스에서 젊음과 정직, 봉사와 탐구로 보낸 이들에게 공직을 맡게 할 방법은 없을까요? 그렇다고 당장 고시제도를 없앨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언제까지 그대로 둘 수는 없지 않습니까? 각 분야 인재들이 골고루 등용되는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야 합니다.

부산 팬싸인회에서 만난 대학생들과 함께


그중 하나가 기존 고시제도를 축소하고 특별채용을 확대하는 것입니다. 물론 특채가 고시제도를 대체해서도 안 되고 대체할 수도 없습니다. 지금의 특채제도는 더욱더 엄격하고 공정하도록 전면 개편수준의 바람직한 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특채’라는 위화감을 주는 용어도 이 참에 고쳐야 합니다. 그러나 최근 유 전 장관 문제로 특채에 대한 국민적 거부감은 더 커져 버렸습니다. 오히려 유장관 문제로 특채는 ‘개천에서 용날 기회’를 박탈할 가능성이 크다고 믿게 됐습니다. 특채는 곧 특혜라 믿기까지 합니다. 이런 잘못된 인식을 만든 것은 도덕적 개념을 상실한 주류의 책임입니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의 주류를 가장 많이 만들어 낸 고시제도의 골 깊은 그늘이기도 합니다.

또 일부에서는 특별채용제도가 ‘현대판 음서제도의 부활’이라며 비판하고 있습니다. 당장 유 장관 파문으로 ‘음서제 부활’이라는 자극적 주장에 힘이 실리듯 보일지 몰라도 고시제도 개선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다른 문제입니다. 공정사회라는 구호를 기득권을 옹호하는 데나 사회발전을 가로막는데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공정사회는 출발부터 과정, 결과까지 모두 정당하고 이성적이어야 합니다.

정부도 본질과 다른 주장에 밀려 꼬리를 자를 것이 아니라 오히려 논의를 더욱 확대해야 합니다. 개방화·다양화·전문화라는 시대정신과 흐름을 따라잡을 수 있도록 새로운 공직 임용제도에 대해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이를 투명하게 운용할 방법에 대해 논의해야 합니다. 인격과 교양, 전문성, 올바른 국가관 등이 제대로 반영되어 올바른 공직 문화를 만들어 낼 수 있도록 시스템으로 바꿔야 합니다.

정상적 교육과정을 정상적으로 거친 사람이 공직사회에도 정상적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회·경제적 약자, 다문화가정 등에 대한 배려를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공직사회의 담을 허물고 공직사회가 바로설 수 있습니다.

오늘밤도 불을 밝히는 신림동, 노량진 고시생들이 한 방 인생역전을 위해 머리를 싸매는 대신 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아름다운 토론이 꽃피는 마을로 변해야 합니다. 당장 바뀌는 것도 문제겠지만 변화를 두려워하는 이들은 더 큰 문제입니다.

※지난번 ‘주류, 위선적 주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일부 신주류의 이중적 행태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이를 두고 글에서 주장했던 본질과 달리 여권내부의 싸움으로, 내각 개편관련 세대간 갈등으로 잘못 해석 ·보도된 부분도 있었습니다. 전체내용을 파악하지 않은 채 일부 행간의 자극적 내용만 보도되기도 했습니다. 이번 글의 의도 역시 고시제도가 안고 있는 여러 문제점을 극복하고 국가 미래 발전을 위한 다양한 인재가 공교육의 틀 안에서 배출되어야 한다는 취지입니다. 결코 고시관련 개인의 인격을 폄훼하기 위한 의도가 아님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