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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김형오의 말말말

"아름다운 테러리스트가 되라"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동창회보 1면 화면 캡쳐



아름다운 테러리스트가 되라


  21세기는 통섭(Consilience)의 시대입니다. 국가간 장벽이 허물어지고 산업에서도 칸막이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학문도 그 변화의 중심에 있습니다. 생물학적 비유로는 이종교배(異種交配)랄까요. 인문학과 사회과학, 자연과학이 서로 자유롭게 오가고 섞이고 넘나들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해내고 있습니다.


  모교의 외교학과와 정치학과가 통합되었습니다. 2011학년도부터 통합학부로 새로이 태어납니다. 무려 51년 만입니다. 학과 통합은 1+1=2라는 산술 개념을 뛰어넘는 도전이며 기회입니다. 혹은 모험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각 학과가 가지고 있던 장점과 역량을 한껏 살리면서 열린 소통과 융합을 통해 3배․4배, 아니 그 이상의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야 합니다. 외교학과 정치학의 담장을 허물고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야 합니다. 고유 학문이 갖고 있던 특수성과 전문성을 더 깊이 살리면서 외연(外延)을 넓혀 나가야 합니다.


  이제 한 우물만 파던 시대는 지났습니다. 한 우물을 파되 옆 우물도 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소수정예도 옛말입니다. 규모가 뒷받침돼야 합니다. 인적 규모는 지적 지평을 넓혀줍니다. 스펙트럼이 다양한 학우들과 경쟁하면서 대화와 토론을 통해 인식의 틀과 사고의 폭을 넓혀나갈 수 있습니다. 학문적 소양을 두루 갖춘 인재를 양성하고 지성의 전당인 상아탑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통합의 취지이자 당위성입니다.


  모교의 정치학과와 외교학과는 모든 젊은이들이 선망하는 인재의 산실입니다. 명성과 자부심은 하루아침에 저절로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선후배 동문들이 학구열을 불태우며 자신의 이상과 꿈을 향해 절차탁마(切磋琢磨)한 결과입니다.


  그러나 요즘 대학가는 어떻습니까. 그 순수했던 열정과 진지한 학구열이 식어가고 있습니다. 무엇을 위해 대학에 왔으며 무엇을 위해 공부하는가에 대한 본말(本末)이 뒤바뀐 느낌입니다. 대학이 마치 취직사관학교, 직업양성소처럼 변질돼 가고 있습니다.


  대학 시절은 청춘의 정점입니다. 배움의 길고 머나먼 여정에서 자신을 마름질하고 주변을 두루 살피는 시기여야 합니다. 미래를 내다보고 내일을 설계하는 통찰력과 안목을 키우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아웃사이더란 소리를 들으면 또 어떻습니까. 나만의 창의력과 역발상으로 세상의 통념을 깨고 관례를 뒤집어엎는 아름다운 테러리스트가 되십시오. 젊음은 그렇게 탄생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동문 후배 여러분, 젊음은 특권입니다. 중국 시인 도연명은 ‘성년불중래 일일난재신(成年不重來 一日難再晨)’이라고 했습니다. 민태원도 ‘청춘 예찬’에서 힘주어 말하지 않았습니까. “청춘! 이는 듣기만 해도 설레는 말이다. …청춘의 피는 끓는다. 끓는 피에 뛰노는 심장은 거선의 기관과 같이 힘 있다. 이것이다. 인류의 역사를 꾸며 내려온 동력은 바로 이것이다.”


  꿈을 가지십시오. 도전하십시오. 꿈을 가진 자만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도전하는 자만이 성공의 문을 활짝 열 수 있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해선 안 됩니다. 발명왕 에디슨도 그런 말을 했잖습니까. “나는 실패하지 않았다. 다만 안 되는 방법 1만 가지를 발견해냈을 뿐이다.” 누군가 걸어가야 길이 생깁니다. 새롭게 도전하는 사람에게 새로운 길이 열리는 법입니다.


  마지막으로 학과 선배이자 정치인으로서 한 가지 당부를 하려고 합니다. 정치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 바랍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고 했습니다. 정치는 인류의 태동과 함께 태어났습니다. 인간 사회가 존속되는 한 지속될 것입니다.


  정치는 불신이나 혐오의 대상이 아닙니다. 만약 그런 대상이라면 그건 정치인들의 잘못이지 정치의 잘못이 아닙니다. 특히 정치외교학과를 지망한 여러분은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말입니다. 여러분이야말로 정치와 외교의 한복판에서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주역들이니까요.


  새롭게 출범하는 정치외교학부에 거는 기대가 큽니다. 기존 질서와 가치에 대해 끊임없이 새로운 문제를 던지는 비판의식, 인간과 사회를 보다 깊고 넓게 이해하는 통찰, 이들을 한 데 모아 녹여낼 수 있는 뜨거운 청춘의 열정으로 희망의 정치를 만들어 나가길 기대합니다. 그 희망찬 원년(元年)을 위하여!

 

2010년 12월 16일자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부 동창회보 기고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