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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김형오의 말말말

[월간중앙 특별기고] ‘퍼스트 펭귄’ 리더십과 ‘호밀밭의 파수꾼’ 정신으로

[월간중앙 5월호-김형오의 작심 발언]

기획특집 / 보수 재집권을 위한 MB 정부와 한나라당의 역할

퍼스트 펭귄’ 리더십과 ‘호밀밭의 파수꾼’ 정신으로

주류가 주류임을 자임하지 않는 게 바로 한나라당과 보수의 위기.

한나라당은 자기 희생과 자기 혁신을 통해 보수의 가치를 실행에 옮겨야


김형오 /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 한나라당 의원

  보수 진영에서조차 한나라당의 정치 행태와 이명박 정부의 국정 운영 방식에 심한 회의와 좌절감을 느끼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도 대안은 또 한나라당이라고 말한다. 이런 모순을 한나라당은 어떻게 이해할까? 18대 국회 초반 2년간 한나라당 당적을 이탈해 국회의 수장으로 일해온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MB 정부와 한나라당에 직언을 쏟아냈다.


“나는 아득한 절벽을 뒤에 두고 서 있어. 아이들이 벼랑 아래로 떨어질 것 같으면 재빨리 붙잡아주려는 거지. 아이들은 앞뒤 생각 없이 마구 달리니까. …말하자면 호밀밭의 파수꾼이 되고 싶은 거야.”

미국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명작 <호밀밭의 파수꾼>의 한 대목이다. 위선과 허위로 가득 찬 세상에서 주인공 ‘홀든’이 지키고 싶어 하는 가치는 순수성이고, 타락으로부터의 구원이다.

젊은 시절 나는 자유민주주의를 위해서라면 내 모든 것을 희생하겠다는 신념으로 무장했고, 그 신념만큼은 지금도 변함없다. 나는 오늘 그런 입장에서 내 생각을 밝히려 한다. <호밀밭의 파수꾼>에서 ‘홀든’이 순수성이라는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토록 애를 썼듯이….

다만 한나라당이 지금 이 모습으로 과연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를 지켜내고 대변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답변이 군색해진다. 나는 야당 시절 1년 사이 30명 가까운 국회의원이 한나라당에서 짐을 싸 나갈 적에 당을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던 사람이다. 또 국회의원 임기 4년 중 3년을 선거법 재판에 시달리면서도 한나라당을 1cm도 떠날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천막 당사 시절에는 무너지는 천막을 부여안고 다시는 국민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고 이를 악물었던 사람이다. 그런 만큼 이제 한나라당이 죽어야 보수가 살고 나라가 잘된다면 기꺼이 그 길을 따르겠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당마저 없어진다면 그 역할을 대신할 데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결심했다. 당을 살리기 위해 내가 죽어야 한다면 나는 그 길을 택하리라. 왜? 나는 이미 이룰 것을 다 이루었으니까. 그러던 차에 원고 청탁이 왔다. 죽을 자리를 찾았다.

나는 이명박 정부 출범 초기 ‘강부자’ ‘고소영’이라는 별칭으로 이 정권이 매도될 때 가장 가슴 아팠다. 그로부터 3년 세월이 흐른 지금, 과연 한나라당은 그동안 어떤 노력을 했으며 얼마나 개선되었는가? 지도부만이라도 바뀌었는가? 비서민적인 행태를 일삼으면서 서민복지를 외친다면 진정성이 느껴지겠는가? 총 한 번 들어본 적 없는 사람이 안보와 애국을 부르짖는다면 가슴에 와 닿겠는가? 뛰어난 인재들의 집합체인 한나라당이 제 역할을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을 뜨겁게 지지했던 유권자들도 이제는 싸늘하게 돌아섰다. 중앙당이나 국회에서 의원들이 초심과 충정을 반영할 방법이 없다. 말 못 할 속병만 깊어가는 것이 한나라당 의원들의 현주소다.


유권자들이 한나라당에 등 돌린 이유

한나라당은 말을 못 한다. 대화 방식조차 모른다. 고시공부만 열심히 해서인지, 나보다 뛰어난 남을 본 적이 없어서인지 도통 남의 말을 듣지 않는다. 남을 믿지도 않는다. 나만 옳고 남은 그르다 한다. 이 점만큼은 완전히 딴 길을 걸어온 운동권들과 어쩌면 그리도 닮았는가.

얼마 전 스탠퍼드대학 북한 관련 학술대회에 다녀왔다. 아침부터 오후 늦게까지 계속된 세미나에서 참석자 중 단 한 사람도 자리를 뜨지 않았다. 플로어에 초청된 방청객 역시 마찬가지였다. 10분 말하기 위해 4시간을 듣고, 5분 질문을 위해 다시 2시간을 더 경청하기를 두 차례나 되풀이한다. 자기 말만 하고 떠나는 한국식 세미나와는 격이 완전히 달랐다. 잘 듣는 사람이 말도 잘한다는 평범한 진리가 언제쯤 한나라당과 우리 사회에 정착될까?

타협하는 습관에 길든 적이 없고, 양보에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는 사실도 모른다. ‘한 번 밀리면 계속 밀린다’는 고정관념에 갇혀 숫자의 힘만 내세울 뿐 다수당으로서의 아량이 없다. 양보란 유약하고 국정 주도 의지가 없는 행위로 낙인찍힌다. 권한에 앞서는 것이 국정운영의 책무건만, 유연한 리더십이 발휘되지 못하는 것은 당내 강경파와 청와대를 지나치게 의식하기 때문이다.

버락 오바마는 생김새부터 태어난 가정, 살아온 환경과 내력 등 모두가 미국 사회 비주류의 표본이었지만 온갖 역경을 딛고 일어나 미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당선 이후 오바마는 한결 더 엄격한 잣대로 스스로 통제하면서 인종과 정파를 떠나 모든 세력을 관용으로 끌어안았다. 이 점이 한국의 일부 정치지도자와 대조되는 면이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최근 중동 사태 대응을 두고 대통령 자질을 의심받고 있다. 미국이 왜 선진민주주의 국가인지가 이 점에서도 잘 드러난다. 우리는 능력 이전에 인간 됨됨이를 논하지만, 미국 사회에서 그것은 지도자의 기본이다. 미국은 주류사회에 편입되면 자부심을 갖고 그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이끌면서 미래세대의 본보기가 되려 한다. 반면에 우리는 주류면서도 주류가 아닌 척해야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니 주류사회가 튼튼해지겠는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인 동시에 보수의 위기이기도 하다.

보수의 기치를 내건 MB 정부와 한나라당은 적어도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당당해야 한다. 당신과 당신 아들은 병역 문제에서 부끄럽지 않은가? 부동산 투기나 자녀 학군 때문에 위장 전입을 한 적은 없는가? 세금은 꼬박꼬박 냈으며 재산 형성 과정은 투명한가? 주류로서의 도덕적 의무, 즉 노블레스 오블리주에 충실한가? 이런 물음에 떳떳하지 못한 사람은 리더로서 자격이 없다. 특히 부당한 방법으로 군대를 가지 않거나 편법으로 다녀온 사람에게 한나라당을 맡겨서는 안 된다. 강부자 정당, 병역 기피당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간판만이라도 그럴듯해야 하지 않겠는가?

나는 정치에 발을 들인 이래로 정책 문제에서 소신 행보를 해왔고 그때마다 뜨거운 이슈의 한가운데에 서 있었다고 자부한다. 여야와 지역 민원을 떠나 언제나 우선을 둔 잣대는 도덕적 정당성과 미래 비전이었다.

초선의원 시절 나는 경부고속철도 구간의 경주·울산 우회 노선에 반대해 밀양으로의 KTX 직선화를 주장했다. 내 발언은 해당 지역 주민과 언론으로부터 심한 반발을 샀고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결국 KTX 전용 선로 개통은 10년이나 지연되면서 1조원이 넘는 예산이 낭비됐다.


정부, 일도 못하면서 욕만 먹다

2003년은 위도(전북 부안) 방사성폐기물처리장 문제로 시끄러웠다. 지역주민과 시민단체는 물론 여당 의원들조차 정부와 대립각을 세울 때 야당 의원이었던 나는 동료 의원들의 눈총을 받아가며 방폐장 건설을 찬성하고 촉구했다. 역시나 홈페이지가 다운되고 전화와 팩스가 불통이 될 정도로 비난과 항의가 빗발쳤다. 그 몇 년 후, 수천 억원의 인센티브 때문이었나, 이번에는 거꾸로 방폐장을 서로 유치하겠다고 치열한 경쟁이 붙었다.

얼마 전에는 동남권 신공항을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하자고 주장했다가 세찬 비난의 쓰나미를 맞았다. 표를 생각하고 지역 민심을 헤아렸다면 결코 하지 못할 발언이었지만, 그것만이 갈등과 반목을 넘어 역사와 후손 앞에 당당한 길이라고 믿었다. 내 지역구와 직결되는 사안이라 역풍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지역 언론에서는 총선을 1년도 안 남긴 시점이라 내 정치인생에서 치명타라고 하지만 나는 담담할 뿐이다.

누군가 희생을 각오하지 않으면 점점 깊어만 가는 불신과 지역이기주의의 늪을 벗어날 수 없는 상황이다. 빙산의 벼랑 끝에 다다랐을 때 맨 먼저 바다로 몸을 던짐으로써 나머지 펭귄들도 꼬리를 물고 바다로 뛰어들게 만드는 그 ‘첫 번째 펭귄(퍼스트 펭귄)’이 돼야 한다.

세종시와 최근의 신공항 사태를 보면 참으로 안타깝기 짝이 없다. 정책결정 과정이 너무나 서투르고 미숙하다. 얻는 것은 없고 잃기만 한다. 세종시도 가관이었지만 신공항 문제는 특히 점입가경이었다. 5~6년 끌어오면서 정부에 대한 원성만 나날이 높아갔다. 10조원이 넘는 초대형 국책사업인데 대통령에게 통사정하기는커녕 공갈협박 수준이다. 지자체·정치권·언론·시민단체까지 ‘떼법’으로 밀어붙이고, 정부는 눈치나 보면서 허송세월했다. 문제의 본질은 지역이 수도권에 비해 현저하게 낙후되고 위축된 엄연한 현실에 있다. 그것이 갈등 구조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뿌리와 줄기는 외면한 채 곁가지만 보고 접근하니 지방에서 수긍하겠는가?

 서울과 부산은 KTX로 두 시간 남짓 거리다. 이 좁은 나라에서 수도권을 중심으로 팽창하고 발전하는 지역이 있는가 하면, 위축되고 퇴보하는 지역이 있다. 한 도시 안에서도 거리 하나, 다리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잘사는 동네와 못사는 동네가 존재한다. 서로 빤히 알고 마주보는 처지인지라 뒤처진 지자체나 서민들로서는 위화감을 더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갈등구조가 날이 갈수록 깊어지는 까닭은 늘 가진 자와 수도권 중심 시각으로 문제를 풀려 하기 때문이다. 진정성이 아닌 시혜 조치로 접근한다는 인상을 주니까 소외계층의 반발이 거세지는 것이다. 그것을 풀어나가는 게 보수 세력의 본질인데, 과연 MB 정부와 한나라당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는가?

주사위는 던져졌다. 그러나 너무 늦게 던져졌다. 국가 전체적인 입장에서 통괄 조정하는 기능이 없기 때문에 이런 식이라면 앞으로 남은 과제들도 예상되는 역풍이 만만찮다. 게다가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 없고 책임을 묻지도 않는다. 일도 못하면서 욕만 먹는 정부가 돼버렸다.

정치는 선이 아니다. 그러나 악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된다. 목사나 스님, 철학자나 정치학자가 정치를 한다고 잘하는 것도, 잘되는 것도 아니다. 종교와 학식이 상수도라면 정치는 하수도다. 맑은 물을 마셔야 우리는 살 수 있다. 먹고 난 뒤에는 배설해야 한다. 하수구가 막히면 물이 썩는다. 누군가 손발을 썩은 물에 담가야 막힌 통로를 뚫을 수 있다. 정치란 그 구정물에 손을 담가 물꼬를 트는 일이다. 아무 데나, 아무 때나 쑤셔댄다고 물이 잘 흐르는 것이 아니다. 경험과 경륜은 그래서 필요한 것이다. MB정부와 한나라당은, 지도부는 지금 그 역할을 하고 있는가?

조금 고상하게 표현해보자. 정치란 선택과 결정의 연속이다.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사회적 갈등을 앞에 두고 전체와 부분, 이상과 현실,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어디에 두어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하고 결단해야 한다. 복잡다기한 현대사회에서는 두부 모 자르듯 확연히 구별되는 일이 드물다. 한마디로 선과 악, 득과 실이 뒤얽혀 있다. 그래서 능력과 비전이 필요하다.

그런데 우리 정치풍토에서는 이것이 쉽지 않다. 도덕적인 삶과 출중한 능력, 이 두 요소를 고루 갖춘 인물이 한국 같은 사회에서 배출되기란 정말 어렵기 때문이다. 장관 청문회를 통해 우리 사회의 모순과 야만성, 이중성을 신물 나도록 보지 않았는가?

최근 세대 교체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의 방증이다. 그러나 인재는 하늘에서 떨어지지도, 땅에서 솟지도 않는다. 세대교체가 가능하도록 시스템 정비부터 먼저 해야 한다.

그래도 희망적인 사실은 열등감 없이 제대로 자란 20대가 부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이념보다는 실용을 추구하며, 소통과 포용의 자세로 사회적 이슈에 접근한다. 해병대에 자원입대한 청춘스타도 그 전형적인 모델이다. 한나라당은 이들을 끌어안아야 한다. 2002년 월드컵 때 혜성같이 등장한 ‘붉은 악마’ 신드롬을 제대로 이해하고 활용하지 못해 패배한 지난날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해서는 안 된다. 좌우와 보혁을 초월한 젊은 세대에게 한나라당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다가가고 있는가?


제헌의회 시절로 돌아가자

한나라당이 보수의 바람직한 가치를 지키고 높이려면 행동과 실천이 뒤따라야 한다. 자기혁신·자기수혈·자기희생 말이다. 거울을 닦지 않으면 먼지가 끼듯이, 보수의 가치를 빛내기 위해서는 줄기차게 스스로 단련하고 변화시켜야 한다. 새로운 수혈로 자신을 젊게 하고 확장시켜야 한다. 솔선수범은 물론 살신성인까지도 각오해야 한다.

전직 국회의장으로서 이런 제언도 하고 싶다. 제헌의회로 돌아가자! 그때는 국회가 1년 중 320일 넘게 문을 열었다. 밤 10시까지 불이 켜져 있었다. 물론 욕설과 폭력이 난무하는 극한대결의 정치도 없었다. 지금은 제헌의회 정신이 절실하게 필요한 때다.

다시금 나는 ‘퍼스트 펭귄’과 ‘호밀밭의 파수꾼’을 보수 진영을 대표하는 MB 정부, 그리고 한나라당의 역할모델로 강조하려고 한다. 그런 이들이 보수의 가치를 지키면서 역사와 미래를 이끌어간다. 자신을 희생해가며 인간의 가치를 지킨 천안함의 한주호 준위, 연평도의 서정우 병장, 삼호 주얼리호의 석해균 선장, 최악의 방사능 누출을 막기 위해 목숨 걸고 죽음의 현장으로 달려간 일본 후쿠시마 결사대, 그들이 바로 우리 시대의 퍼스트 펭귄이고 호밀밭의 파수꾼이다.

우리는 그들에게서 배워야 한다. 아니, 우리 스스로 그들이 되어야 한다. 그래야 정권도 지키고 나라도, 자유민주주의의 미래도 지키고 밝혀나갈 수 있다. 그래야만 부자 정당, 군대 기피 정당이라는 비난도 사라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