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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10 동아일보 ; [기고/김형오]개헌은 왜 어려운가

신년(1월 13일자) 동아일보는 국회의원 80.6%가 개헌을 원한다고 보도했다. 응답자 170명 중 민주당은 93.2%, 새누리당은 69.7%가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의원들의 대체적 여

론은 개헌 쪽으로 모아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1월 6일)에서 개헌 곤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이 설문 조사는 대통령과 국회의 생각에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보여준다.

2008년 7월 필자는 국회의장 취임 일성으로 개헌을 주장했다. ‘87년 체제’의 근간이 되는 현행 헌법을 바꿀 때가 되었다는 신념에서였다. 다음 해 제헌절 경축사 때는 작심하고 개헌 얘기로 일관했다. 국회의장 직속의 헌법연구 자문기구를 만들어 개헌안도 마련해 공개했다.

개헌의 취지와 당위성은 대강 이렇다. 단임제 헌법으로 평화적 정권 교체 토대는 정착되었다. 그러나 국정 후반부는 심각한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 생긴다. 집권 초반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다 임기 절반을 고비로 가장 취약한 대통령으로 전락한다. 국회는 초반부엔 대선 후유증으로 몸살을 앓고, 후반부엔 차기 대통령 선거에 매달려 일손을 놓는다. 국회 본연의 입법 기능보다 대권 유지 및 쟁탈을 위한 수단 또는 부속물로 전락하고 만다.

‘87년 체제’는 시대 변화에 맞게 고쳐야 할 부분이 많다. 국회와 정부의 관계, 예산 및 감사, 국회의 권한과 책임성 강화 문제 등.

무엇보다 가장 큰 맹점은 대통령 임기(5년)와 국회의원 임기(4년)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잦은 선거와 정쟁, 그로 인한 갈등과 사회 경제적 비용 등 부작용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필자는 2008년 개헌에 그렇게 목말라 했다. 타이밍이 좋았다. 4년 후인 2012년은 대통령 선거와 국회의원 선거를 같은 해에 치를 수 있는 적기였다. 대통령 중임제든 내각제든 현 대통령과 국회의원 임기를 줄이거나 늘리지 않고 새 헌법 체제에서 새로운 행정부와 국회의원 선출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때 개헌을 주장했던 이유는 또 있었다. 임기 초반에 하지 않으면 후반에는 차기 대권주자들의 영향력 때문에 제대로 된 국가 기본법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당시 권력 실세들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전체의 4분의 3에 가까운 국회의원이 지지·서명하는데도 딴전을 피웠다. 할 일이 태산인데 개헌 논의할 때냐, 개헌은 블랙홀 같아서 다른 현안을 모두 빨아들인다, 정략적이다…. 개헌 반대 이유가 지금과 별 차이가 없었다. 특히 청와대 반응이 싸늘했다. 결국 불발탄으로 끝났다.

필자가 의장직에서 물러나고 대통령 임기 후반기로 접어들자 개헌 논의가 다시 고개를 들었다. 이번에는 청와대도 조금 관심을 갖는 듯했다. 순수성을 의심받았고 성사되지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 후반기에도 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이 제기됐다. 하지만 후반기 개헌은 위험하다. 헌법 같은 국가 중대법을 정치적 타협이나 흥정 대상으로 삼을 소지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때 나는 반대했다.

지금은 어떤가. 한마디로 때를 놓쳤다. 개헌의 핵심은 권력 구조 변경이다. 그러나 대통령과 국회의원의 임기 만료가 맞아떨어지는 2012년, 절호의 기회를 우리는 놓쳤다. 아쉽지만 때는 지나갔다.

다시 하려면 대선과 총선을 같은 해에 치르는 2032년에 하든지, 권력 구조에는 손대지 않는 부분 개헌을 하든지, 몇 년에 걸쳐 연구한 뒤 그때 발효되는 개헌을 하든지, 그런 방법들밖에 없다. 차라리 현행 헌법 체제 안에서 정치 관련법 개정에 손대는 것이 더 쉬운 방법일지도 모른다. 때를 놓치면 이렇게 힘든 법이다.

개헌 문제가 현실과 이상의 부조화 사이에 놓이게 된 것은 당시 정치 지도자들의 단견(短見) 탓이 크다. 미래를 멀리 내다본 장기적 대응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다시금 교훈으로 되새긴다.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 전 국회의장(2014-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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