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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0-29 중앙일보] 나를 흔든 시 한 줄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별 하나에 동경과

별 하나에 시와

별 하나에 어머니, 어머니 …

- 윤동주(1917~45) ‘별 헤는 밤’ 중에서


정치인 된 뒤 차마 ‘서시’ 못 읊어
‘별 헤는 밤’으로 부끄럼 잊는다


국민 애송시인 이 시를 나는 그저 읊조린다. 수십 수백 번 읊다보니 머릿속에 고스란히 입력돼버렸다. 어느 날은 하루에도 서너 번씩 읊조린다. 남들은 외우기엔 긴 시라지만 좀 더 길었으면 하는 마음까지 드는 시다. 위에 적은 부분과 마지막 연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우에도 /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가 특히 내 마음을 사로잡는다. 나도 모르게 울컥할 때도 있다.

고등학생 때 윤동주의 ‘서시(序詩)’를 좋아했다. 이 짧은 시를 읊으면 그리도 심장이 뛰고 주먹이 쥐어졌다. 그러나 정치권에 발을 들인 뒤로 언제부터인가 감히 ‘서시’를 말하지 못하게 됐다. 시작 부분인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기를…’이 나를 너무 부끄럽게 만들었다. 정치하는 사람으로서 부끄럼을 모른다는 것, 때론 애써 부끄럼을 잊어야 한다는 사실이 못내 부끄러웠다. 그래서 ‘별 헤는 밤’으로 돌아왔다.

젊은 윤동주는 별을 보면서 추억에 잠긴다. 사랑과 연민, 고독과 동경 속에서 별과 시를 매개체로 멀리 있는 그리운 이름들을 호명하다가 결국은 어머니를 찾는다. 순수하고 순애(純愛)하고 진실한 자만이 끄집어낼 수 있는 모태 본능의 영탄이다.


마지막 연, 시인은 무덤 위 잔디와 언덕 위 풀이 무성한 봄날을 기다린다. 무슨 해석이 필요하랴. 거창한 나무도 화려한 꽃도 아니다. 풀과 잔디다. 정치인이나 운동권이 곧잘 이용해먹어도 말이 없는 민중, 민초다. 시인은 이 땅의 진정한 주인인 이들과 함께 해방된 조국을 꿈꾸고 있다. 별빛 같은 시심(詩心)이 이 가을 밤, 겸손하고 정직하게 내 영혼을 흔들며 다가온다.

김형오 부산대 석좌교수·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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