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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 관련

[2018-10-25 개헌토론회] 왜 개헌인가,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오늘(10/25) 오전 10시에 헌법개정국민주권회의 주최로 토론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토론자로 참석하면서 준비한 원고를 올립니다. 




왜 개헌인가,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

 

  


김 형 오(전 국회의장)


 

우리 헌법에서 가장 소중한 대목을 한 곳만 들라고 하면 저는 주저 없이 헌법 전문에 있는 다음 구절을 들고 싶습니다.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라는 구절입니다. 이는 제가 좋아하는 고대 그리스 민주주의의 아버지라 일컫는 페리클레스의 연설 한 대목인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서 나온다.”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투키디데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그렇습니다, 우리는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며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때로는 목숨을 걸고 지켰습니다. 이것을 위해 나라가 있고 헌법도 존재하는 것입니다. 앞으로 어떤 헌법 개정을 하더라도 우리가 지켜야 할 이 최고의 가치들은 결코 훼손됨이 없어야 할 것을 전제로 제 이야기를 시작하려 합니다.

 

국회의장 취임 일성이 개헌이었습니다. 국회에 오기 전 저는 10년 가까이 정무 담당 공무원으로서 권력의 부침과 영욕, 그 허무함을 보고 느껴왔습니다. 큰소리치던 권력자와 그 주변을 얼씬거리던 수많은 인사들의 말로(末路)를 직접 보았던 사람입니다.

 

김구 선생은 백범일지에서 안중근 의사의 부친 안태훈 진사가 지은 한시(漢詩)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새벽 굼벵이는 살려고 자취도 없이 달아나건만, 저녁 모기는 죽기를 무릅쓰고 왱왱거리며 덤벼든다”(曉蝎求生無跡去, 夕蚊寧死有聲來). 조선조말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목숨을 건지려고 굼벵이처럼 슬그머니 피신한 이들과, 곧 죽을 줄도 모르고 모기떼처럼 설쳐대는 자들을 풍자한 시구입니다. 세월이 수없이 흘렀건만 새벽 굼벵이와 저녁 모기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이 땅에 있습니다. 누가 자취를 감추는 굼벵이인지 왱왱대는 모기인지를 이 자리에서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이런 굼벵이와 모기 같은 자들이 정치권, 특히 권력 주변을 에워싸지 않기 위해서 개헌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입니다.

 

87년 헌법의 정당성은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들이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모두 뒤끝이 안 좋았습니다.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세 분(노태우이명박박근혜)은 감옥에 가고, 한 분(노무현)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두 분(김영삼김대중)은 재임 중 자식이 감옥에 가는 불운과 수모가 겹치고 연이었습니다. 정상적인 민주주의 국가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단 한 사람도 국민의 박수를 받으며 청와대를 떠난 분이 없습니다. 그 중에는 눈부신 민주 투사도 있고, 콘크리트 같은 열혈 지지자가 수백만인 분도 있었지만 모두가 불행했습니다. 퇴임 후엔 일정한 역할도 없이 조용하고 쓸쓸한 삶을 이어갔습니다. 그렇잖아도 국가 원로가 빈약한 나라에서 법과 세금으로 예우해주는 전임 대통령의 할 일이 없는 나라입니다.


우리는 지난 30년 동안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루어왔습니다. 여야를 번갈아가며, 같은 진영이 계속되기도, 다른 진영으로 바뀌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여섯 명의 대통령, 이번까지 포함하면 일곱 명의 대통령이 등장했습니다. 하지만 전임 대통령의 정책을 이어간 대통령과 정권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전임 대통령의 업적·정책·방침을 지우고 바꾸기에 급급했습니다. 정권에서 정권으로 이어가는 중장기 계획이란 꿈도 꾸지 못합니다. 오히려 전임 대통령 시절 주요 정책을 담당했던 공무원은 문책을 당하고 감옥에 가거나 옷을 벗거나 한직으로 밀려납니다.

 

멀리 보고 길게 가는 정책은 5년 단임 대통령제의 등장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중장기 계획이 없는 나라인데 어찌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겠습니까. 미래가 안 보이는 나라인데 어찌 느긋하게 참고 기다릴 수 있겠으며, 오직 현재만을 위해 아득바득 다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공무원들이 몸을 사리는 것은 자기 보호의 본능입니다. 현 정부의 역점 사업은 차기 정부에서 뒤집어지고 핵심 가담자들은 차기 정권의 눈 밖에 날 것이 뻔하므로 그저 대충대충 시키는 일만 하고 적당히 땜빵만 하며 넘어가려 합니다. 사명감도 비전도 의욕도 내용도 부실하기만 합니다. 성장 동력이 꺼져가는 나라입니다. 이대로라면 나라가 전체적으로 내려앉고 5년 단임제 정권의 단물이 다 빠져 소태 씹는 심정으로 빈 창고를 지켜야 할 날이 머지않은 것 같아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실패한 대통령은 그래도 용납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한 대통령들로 인해 나라마저 실패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대통령은 다시 뽑으면 되지만 실패한 나라는 지도상에서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문제의 핵심 요인과 맹점을 현행 헌법이 안고 있는 대통령제에서 찾는다면 지나친 억측이고 비약일까요? 나와는 소속 정당이 달랐지만 제가 존경하는 전직 국회의장께서도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우리 헌법을 고치지 않고서는 나라의 미래가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 대통령에게는 미국 대통령과는 비교도 안 될 막강한 권한을 헌법이 부여하고 있습니다.

우리 헌법은 대통령제의 기본이어야 할 삼권 분립 체제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그렇게나 싫어했던 유신 헌법의 잔재가 곳곳에 숨어 있습니다. 대통령은 국가 원수이고 행정권을 장악합니다.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도 대통령 뜻에 따라 구성되고, 국회의 대통령 견제 권한은 형식적이며 또 지극히 미약합니다. 비판·견제·감시를 해야 할 국회의 구체적이고 분명한 권한이 없다 보니 행정부 발목 잡는 짓이나 하고 있습니다. 국회가 국회답지 못하니 대통령의 대국회 영향력은 더욱 커지고 충성분자와 과격파들이 국회를 주도하게 됩니다.

 

행정부가 집행할 예산을 행정부 스스로 편성하고, 마찬가지로 자기 공무원에 대한 감사를 자기가 합니다. 쓰임새와 복무 자세가 느슨해질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검찰경찰국세청국정원 등 국민을 위한 파수꾼·보호자가 돼야 할 기관들이 대통령 심기와 눈치를 살피는 기관이 돼버려 국민의 두려움과 불신·불만이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5년 권력은 잠깐입니다. 집권 말기가 가까워지면 이들 기관은 차기 권력의 향방에 눈길을 주고, 지는 해인 현재 권력에는 등을 돌립니다. 조직이 살기 위한 5년마다의 눈부신 변신입니다. 정권 교체기마다 반복돼온 고질적 행태입니다.

 

미국 말고 대통령제가 제대로 성공한 나라가 있을까요. 그럼 미국은 왜, 어떻게 성공했을까요.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습니다. 한마디만 하란다면, 그것은 대통령의 권한이 적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의회를 비롯한 끊임없는 감시와 헌법적 제약이 엄존합니다. 미국 외 다른 나라의 대통령들은 무소불위의 권한을 휘두르기에 포장만 벗기면 비민주적 독재, 장기 집권, 부정부패, 부의 편중 또는 정국 불안에 시달립니다.

 

또 있습니다. 현행 헌법상 국무총리의 위상이 애매합니다. 국정 통할 기능이 무엇인지, 통할이란 말도 어렵지만 내용은 더욱 모호합니다. 청와대 중심의 국정 처리가 어제오늘이 아니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느낌입니다. 국무회의는 토론이 사라지고, 장관들은 총리 의중을 묻지 않습니다. 다만 청와대 눈치를 살피고 그 오더를 쫓느라 바쁩니다.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도 없는 단순한 대통령의 참모 보조 기구인 비서실이 정치와 정책을 주도하면 책임 정치는 실종되고 민주주의는 후퇴하고 헌법 정신은 퇴색하고 맙니다. 촛불 민심은 밀실 정치,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국민의 분노, 그 표출이었습니다. 촛불로 태어났다는 이 정부가 촛불 정신의 참된 의미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총리가 국정의 중심 역할을 못하는 것도 현행 헌법상 대통령제의 취약점입니다.

 

개헌을 논의하자면 다짜고짜 4년 중임제냐 이원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냐를 묻습니다. 틀을 먼저 짜놓고 거기에 내용물을 구겨 넣겠다는 식입니다. 이런 수준의 논의라면 제대로 된 개헌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런식이라면 4년 중임제는 5년 단임제 보다 더 지긋지긋한 8년 단임제가 될것이고, 분권형제는 권력 나눠먹기가 되고 말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대통령 권한을 어떻게 줄일 것인가, 그 줄인 권한을 어떻게 합리적·효율적으로 배분할 것인가를 먼저 논의해야 합니다. 즉 권력구조에 대한 합의가 최우선입니다. 그 후에 합리적으로 조정된 권력을 효율적으로 집행하는 데 4년 중임제로 하는 것이 맞는지, 총리 중심의 분권형제로 하는 게 합당한지를 따져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더는 불행한 대통령이 나와선 안 됩니다. 대통령의 불행은 나라와 국민의 불행이고 수치입니다. 역대 어느 대통령인들 스스로 불행해지고 국민으로부터 외면 받거나 비난 받으려 한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비극의 길로 들어섰다면, 이것을 운이 없다거나 운영을 잘못한 탓으로 돌리는 미욱한 자세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합니다. 이 잘못된 제도, 대통령에게 권한이 집중된 제도, 삼권 분립 원칙에도 어긋난 헌법을 이대로 두고서는 다른 내용이나 제도를 아무리 잘 고쳐도 대한민국은 결코 민주주의로 가지 않고 나라도 국민도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저는 국회의원 생활 중 10년 이상을 정보통신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했습니다. 나라의 미래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이런 미래지향성이 부족합니다. 또 저는 지역구 의원으로 있었기에 지방자치의 중요성과 절실성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남녀평등과 기회 균등, 자유의 확대, 소득 보장 등 모든 현재적·미래적 가치를 존중합니다. 개헌을 한다면 이런 요소들이 모두 포함되어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민주 헌법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30년 전과 지금은 엄청난 시대적 간극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요소들은 헌법의 내용을 보강하고 성숙시키고 보다 민주적으로 나아가는 것임에는 틀림없지만 이것만을 위한 개헌이 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 무소불위의 대통령 권한은 그대로 둔 채, 또는 지엽적 변경만 가한 채, 다른 구구절절한 내용들을 담아 개헌을 하려 든다면 저는 단연코 반대할 것입니다.

 

거듭 말하지만 개헌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처럼 돼버린 제왕적 대통령제를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이는 지상 명제이며 절체절명의 과제입니다. 개헌을 하겠다는 모든 세력단체조직정당들은 우선 이 명제부터 합의하고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본격적인 개헌 작업에 들어가야 할 것입니다. 합의가 쉬운 것부터 먼저 하자거나, 권력구조는 합의가 어려워 그대로 두겠다면 개헌 의도의 순수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개헌은 특정 정파나 어느 세력의 전유물이 되어서도 안 되고 될 수도 없습니다. 아직도 왜 개헌인가에 대한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는 국민이 적지 않습니다. 온 국민의 바람 속에 국민을 위한 개헌이 되려면 왜 지금 개헌인가, 무엇이 가장 중요한가에 대한 물음의 끈을 놓쳐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귀담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