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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오전 법정 스님의 법구가 모셔진 길상사에 조문을 다녀왔습니다. 서울 성북동 길상사 빈소로 접어드는 길.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수많은 추모인파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었습니다. 족히 1천명은 더 될듯해 보였습니다.


어떤 분은 합장을 하고, 어떤 분은 법정스님의 책을 들고,
조용히 차례를 기다리며 줄을 서 있었습니다. 아직 길상사 주위에는 며칠 전 내린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날씨는 오늘따라 유난히 쌀쌀해 입고간 코트를 저절로 여미게했습니다.


작년 2월 참 추웠던 날,명동성당 앞에 모인 수많은 추모인파가 떠올랐습니다. 성당 안에서는 김수환 추기경님의 영결미사가 거행되고 있었지요. 두꺼운 오버코트를 입은 나는 성당 안에 있었는데도 한기가 파고들 정도로 혹한의 날씨였습니다.

그런데도 바깥에 서 있는 추모 행렬은 그깟 추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기세로 점점 불어났습니다.
그들은 영결미사가 진행되는 1시간여 동안 꼼짝 않고 서서 두 손을 모은 채 대형 스크린으로 중계되는 성당안의 영결미사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이 수많은 사람들의 발길을 이끄는 힘은 도대체 무엇일까? 사는 게 어렵기만한 세상.

사회는 점점 삭막해져 가고, 범죄는 또 나날이 흉포해지고, 나라를 이끌어야할 정치판은 대립과 분열을 반복하고... 그래서 살맛나지 않는 세상이라고 합니다.


그런 세상이라지만, 나는 작년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때, 그리고 오늘 길상사 법정스님의 빈소에서, 우리 국민들이 간절히 부여잡고 있는 희망의 끈을 보았습니다. 손발을 엘 듯한 추위에도 두 손을 모으고 추기경님을 위해 기도하던 그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있었을까요.


오늘 아침 신문을 보니, 30년 전 발간된 법정스님의 ‘무소유’ 책은 무려 180쇄, 300만권 이상을 찍었을 만큼 꾸준히 그리고 많이 팔렸다고 합니다.
180쇄!  작년 제가 쓴 책 “길위에서 띄운 희망편지”가 14쇄를 돌파했을 때 솔직히 스스로 뿌듯해 했는데, 법정스님의 무소유가 기록한 180쇄라는 숫자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저를 보게 됩니다.


도대체 어떤 염원과 갈망이 있길래 그 수많은 독자들이 법정 스님의 말씀을 그처럼 읽고 기억하려 했을까요. 저는 우리 국민들은 근본적으로 가슴속에 따뜻한 희망의 불씨를 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어렵고 각박한 시기에도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 마음 깊은 곳에는, 이처럼 소박하고 아름다운 소망들, 사랑과 평화에 대한 염원이 자리잡고 있기에 가능한 일이지요.


저는 오늘 다시 한번 정치인으로서 마음을 새롭게 합니다. 이런 국민들 가슴가슴 속에 살아있는 희망의 불씨를 활활 타오르게 해야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우리 정치가 조금만 더 잘한다면, 우리 정치지도자들이 조금만 더 마음을 비우고 노력한다면, 이처럼 아름답고 소박하고 사랑으로 가득한 우리 국민의 가슴속 불씨가 활활 타오르지 않을까요.
 

그 불빛이 우리 주변을 비추고, 우리가 함께 살아가는 이 사회를 더 밝게 만들고, 결국엔 대한민국, 나아가 이 세상을 따뜻한 사랑으로 채울 수 있게 하려면 결국 정치인들, 나라의 지도자가 잘 해야할 것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법정스님은 관도 짜지 말고 거창한 장례식도 하지 말라는 유지를 남기셨다고 합니다. 사리도 찾지 말라셨다 합니다. 자신의 영혼이나 마찬가지일 책도 더 이상 찍지 말라고 했습니다.

사바의 시간과 공간을 버리는 순간에도 ‘무소유’를 실천한 법정 스님.

그  삶과 정신이 그저 감탄스럽고 존경스러울 뿐입니다.  
 

                                                                                                             posted by 국회의장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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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독자 2010/03/13 06: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법정스님께서 우리땅에 남긴 것이 너무 많은데
    그 중에서도 제일은 역시 아름다운 말과 글인것 같습니다.
    법정스님의 말이 존경스러운 것은 그 분의 삶이 말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겠죠.

  2. 시인 2010/03/13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성이 풍부한 분이군요...글을 읽어보니...정치도 좀 그렇게 하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3. BlogIcon 악랄가츠 2010/03/15 17: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종파를 떠나, 저도 직접 가서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싶었는데 ㅜㅜ
    바쁘다는, 피곤하다는 핑계로 결국 찾아 뵙지 못하였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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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국회의장은 금일 오전 10시, 전날 입적한 법정스님의 빈소가 있는 서울 길상사를 찾아 조문했다. 김 의장은 길상사 신도회장의 안내로 빈소에 들어가 향을 피운 뒤 삼배(三拜)를 올리고 합장 묵념했다.



김 의장은 이어 조문을 위해 줄을 서 있는 많은 불자들과 인사한 뒤, 길상사 덕현 주지스님 및 현고 스님 (전 조계종 총무원장 직무대행)의 안내로 작은 선방에 들러 함께 차를 나누고 환담했다.

이 자리에서 김형오 의장은 “작년 김수환 추기경님의 선종 때도 수많은 국민들이 추위에 떨면서도 영결미사를 지켜보고 연도를 가득 메울 정도로 추모열기가 대단했는데 오늘도 그처럼 정말 많은 분들이 찾아오고 있다”며 “우리 국민들의 가슴속에 따뜻하고 평화를 갈망하는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고 참으로 감동스런 장면들”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김 의장은 이어 “법정스님의 책 ‘무소유’는 무려 180쇄를 찍었다는데, 상상을 초월하는 양”이라며, “앞으로 정말 법정스님 말씀대로 책을 더 이상 찍지 않을 계획인가. 그렇다면 앞으로 법정스님의 책을 보려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느냐”라고 물었다.

이에 덕현 주지스님은 금일 낮 법정스님을 송광사로 운구할 계획 등 장례절차를 설명하면서 “스님이 남기신 말씀에 따라 최대한 간소하고 소박하게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덕현 주지스님은 이어 “책도 스님의 말씀에 따라 더 이상 찍지 않고 절판(絶版)할 것”이라며 “사람에 따라서는 서운할지 모르나, 스님은 늘‘뭐든지 있는 것보다는 없는 것이 더 낫다’는 무소유의 철학을 말씀해오셨고 그 분의 뜻에 따라 더 이상 찍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동석한 현고 스님은 “법정스님은 살아계실 때 ‘판 벌리지 말라’는 말씀을 수십차례 했다”며, 간소하게 장례를 치를 계획을 거듭 강조했다.

김 의장은 법정 스님이 수행했던 송광사 영조 주지스님도 만나 “법정 스님은 우리 시대의 스승이자 지도자였다”면서 “그 분의 맑고 향기로운 가르침대로 우리가 앞으로 노력해가면 대한민국도 크게 융성해 갈 것”이라고 인사했다.

이에 영조 주지스님은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조문을 와 주어서 감사하다”며 “말씀을 명심하겠다”고 대답했다. 이날 조문에는 박계동 국회사무총장, 최거훈 의장비서실장, 허용범 국회대변인이 수행했다. 
                                                                                                            
                                                                                                             posted by 국회대변인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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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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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되겠지? 이번 행운의 주인공은 바로 나야."

매 주 토요일 로또 살 때 혹은 기업이나 정부, 라디오, TV 프로그램에서 진행하는 다양한 경품 이벤트에 응모할 때마다 우리는 '이번에는 되겠지'라는 희망을 꿈꾸는데요.
하지만 결과는 늘 '꽝'인 것이 냉혹한 현실입니다. ㅠㅠ

이렇게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를 빗겨가는 행운의 여신을 원망하고 있을 때, 늘 행운의 여신과 조우하는 행운남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아시나요?
지난주 방영된 'tvN 화성인바이러스'에서는
경품만으로 10억 원 상당의 상품과 현금에 당첨된 경품의 신, 최길환씨가 출연했습니다.

경품만으로 10억 원을 번 경품의 신 최길환씨의 경품이력.

 
최길환 씨는 공짜로 받은 현금만 2억, 공짜로 받은 최고급 자동차, 공짜로 받은 초호화 크루즈 여행 등 총 10억 원 상당의 경품에 당첨됐다고 하는데요.
다음은 경품의 신, 최길환씨가 밝힌 10억 원 경품 당첨의 비법입니다.

1. 준비한 자에게 경품이 온다.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녀라.

음식점이나 기업 이벤트의 경우 자신들의 음식을 맛있게 먹는 사진, 또는 제품을 유용하게 사용하는 사진들을 함께 올리면 경품에 당첨되는 경우 많다고 합니다.

그래서 최길환씨는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니면서 회식을 한다든지 특별한 일이 있을 때 사진을 찍어둔다고 하네요.

이와 함께 최길환씨는 "예를들어 5월 5일, 어린이 날 이벤트를 준비한다면 4월 말 쯤에 사연 등을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이벤트에도 주기가 있는데 이 주기를 파악해 미리 준비해야 당첨 확률을 높일 수 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준비된 자에게만 큰 경품이 온다는 것.
이것이 최길환 씨의 첫 번째 비법입니다.

2. 사연 응모는 재미있고 감동적인 맞춤 사연으로 공략해라.

경품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라디오 사연 응모.
최길환씨는 라디오 사연을 응모할 때 그 라디오 작가의 취향과 진행자의 이동경로. 그리고 시대의 트랜드까지 파악해 사연을 응모하는데요.
사연은 최대한 누가 읽어도 그 상황이 떠오를 정도로 재미있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쓴다고 하네요.


그리고 한 프로그램에서 사연이 당첨될 경우에는 6개월의 시간차를 둔 후 다시 도전하는데 이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경우 새로운 큰 경품들이 6개월 단위로 바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주의할 점은 자신의 사연을 절대 거짓으로 창작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사연을 뽑는 작가들이 거짓 사연은 귀신같이 안다고 하니 사연에 응모할 때 진실은 기본이라는 것이 최길환 씨의 주장입니다.

최길환씨는 경품 당첨만으로 58개 해외 도시를 무료로 관광했다고 합니다.

3. 경품 응모에도 정성이 필요하다.

최길환씨는 경품을 응모할 때 직접 손으로 쓴 손글씨, 그리고 그 상황에 맞는 데코레이션 장식을 최대한 정성스럽게 첨부해 보낸다고 합니다.

최씨는 꼭 자신이 이 경품에 당첨되야한다는 절실함과 함께 남과 다른 특이함을 응모편지 한 장, 한 장에 모두 표현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4. 좋은 글귀나 사회 현상 등 주변 상황을 꼼꼼히 메모하는 습관을 들여라.

이와함께 최길환씨는 자신의 경품 당첨 비법으로 꼼꼼한 메모 습관을 꼽았습니다.
매일 매일 일기장에 좋을 글귀나 인상 깊은 신문 기사 내용들을 스크랩하는 것입니다.

이외에도 신제품 네이밍 공모전에 응모할 경우에는 부르기 쉬운 말을 선정할 것, 기업의 단점 모니터링의 경우 장점을 부각시키면서 단점은 적당한 지적할 것, 응모는 최대한 기간의 마지막에 하는 것이 좋다라고 밝혔습니다.

결국 경품도 단순한 행운이 아닌 많은 노력의 결과라는 것이 최길환씨의 이야기입니다.

경품의 신이 밝힌 경품 응모 비법, 여러분들도 한번 응모해서 행운을 맞이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Posted by 포도봉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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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악랄가츠 2010/03/14 0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진정 경품의 신이시네요! ㄷㄷㄷ
    알려주신 비법을 활용하여 저도 경품의 신이 되겠습니다! 하하;;;;
    요즘 지름신이 강림하여 갖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큰일이예요! ㅜㅜ

  2. 도매급 2010/06/12 16:1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단하네요 경품의 신........??

    사마염님 보낸 링크주소 잘 받으셨는지?

    쪽지함이 안열려 쪽지 확을 못합니다.

  3. BlogIcon 다듬이 2010/07/20 11: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성 궁평항에서2010년8월13~15일 쌀 페스티발이 열리는대요

    쌀로 할수있는 요리 컨테스트 하네요

    우리쌀 촉진을 위한 쌀관련 식단제안 요리,간식

    쌀에관련된 레시피 제안 아이디어 등등....

    참가하시면 경품도있고 공모된 레시피는 선별하여

    공모하신분과 실용화방안을 모색하여 드린대요...

    한번 참가하시는것도 좋을듯 합니다

    www.ricefestival.kr

"과연 키스가 효험이 있나봐. 방망이에 불이 붙었네."

생애 첫 국가대표로 뽑혀서 맹활약하던 이만수를 두고 주변 사람들이 했던 말입니다.




프로 선수 이만수에 대해서는 여러 모로 알려진 바가 많지만,
아마시절 이만수에 관한 이야기는 생소한 것이 사실입니다. 

이만수는 아마추어시절, 즉, 중고교선수였을 당시에도 강타자로서 이름을 날렸는데요.
고교시절 그를 가장 빛나게 했던 순간은 바로 1977년 청룡기였습니다.

이 대회에서 승자 준결승에서 동산고에게 연장전에서 2-1로 지는 바람에
패자부활전에 내려간 이만수의 대구상고는 청주고와 광주일고를 연파하였고,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동산고를 상대로 3-1로 이겼습니다.

승자 준결승과 결승전에서 1승 1패를 주고 받은 대구상고와 동산고는
최종 결승전에서 마지막 일전을 치렀습니다.
결국 대구상고가 동산고를 7-2로 꺾고 7년만에 청룡기 정상을 탈환하였습니다.




이 대회에서 최우수선수상, 타격상, 최다안타상, 타점상을 휩쓴 이만수는
이미 고교 졸업을 앞두고 최연소 국가대표 포수로 선발되는 영광을 안았죠.

한양대 1학년으로 태극마크를 단 이만수는 호주에서 열린 첫 경기부터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그는 경기 중에 팀원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 "파이팅"과 같은 괴성을 지르기로 유명했는데,
막내의 신분으로 참가한 대회에서 군기(?)잡힌 그의 목소리가 오죽했겠습니까?


그의 괴성을 보다 못한 현지 아나운서가 6회말쯤 공수교대할 때에
이만수에게 다가가서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당신이 하는 행동은 도대체 뭐냐? 왜 그렇게 괴성을 지르는 거냐?"

이에 이만수는 "선수들에게 기를 불러넣기 위한 격려의 외침"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는 야구장에서도 현지 팬들로부터 화제의 인물로 꼽히며 인기상종가를 쳤을 뿐만 아니라
현지 언론들도 '두 팔 번쩍 들고 화이팅을 외치는 이만수'의 사진을 곳곳에 실었다다고 합니다.

각종 기사에 '리 맨스'라고 불리며 유명 인사(?)가 된 그를 향해
상대팀 선수들은 "한 달에 몇 번 그러냐?"며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네요.




3차전 마친 후 아델라이드시에서 교민들이 선수단을 격려하기 위해 환영파티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이 파티에 나온 2명의 아가씨가 이만수 옆 자리에 앉더랍니다.

그 중 한 아가씨가 "당신이 그 유명한 리 맨스?"냐고 물으면서
"당신이 가진 기념배지를 갖고 싶다."고 말을 건넸다고 합니다.

이에 이만수가 흔쾌히 배치를 떼어서 주었고
이 아가씨는 갑자기 그의 무릎 위에 앉아 키스 세례를 퍼부었다고 합니다.
26살의 '리완'이란 이름의 이 아가씨는 그를 차에 태워 드라이브까지 시켜줬습니다.

이날 이후 좀처럼 말을 듣지 않던 이만수의 방망이가 터지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3경기 동안 타격 부진으로 8번타자로 내려앉았던 그는
호주 아가씨의 사랑(?)을 받은 덕택인지 잇달아 맹타를 과시하며
10게임을 모두 마치고 나니 21타수 10안타, 타율 0.476의 성적을 기록했습니다.

야구에서는 타율 3할(0.300)만 쳐도 대단하다고 하는데, 이만수는 이 때 거의 5할을 친 셈이었죠.
이는 팀 내에서 김재박 다음으로 가장 우수한 성적이었습니다.
그것도 대표팀 막내가 말이죠.
더구나 초반 3경기 부진 속에 이런 기록이 나온 것이었기에 더욱 큰 화제가 되었죠.

이만수의 신들린 타격을 지켜본 대회 관계자들은
하나 같이 '한 여인의 키스가 이만수의 타격을 눈뜨게 했다'며 흐뭇해했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이만수는 학생시절이든 프로시절이든 가는 곳마다 이슈와 폭소를 양산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프로에서는 각종 최초의 기록을 석권하는 대표 선수가 되었고,
그의 등번호 22번은 친정팀 삼성 라이온즈로부터 영구결번으로 지정받았습니다.
그야말로 한국야구를 대표하는 선수가 되었죠.

현재 그는 2005년 메이저리그 우승팀 화이트 삭스 코치를 거쳐
SK와이번스 수석코치로서 2007~2008년 연속 우승에도 기여를 했습니다.
실로 선수로서, 지도자로서 큰 영광을 누린 셈이죠.

그리고 그는 얼마 전에 황금어장 <무릎팍도사>를 통해서 특유의 유쾌함을 과시하기도 했습니다.

문득 이만수의 국가대표 초년병시절 에피소드를 접하고 나니, 과거에 인기를 끌었던 광고 카피가 떠오르네요.

'남자는 여자 하기 나름'

(사진 출처 : 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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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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