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로그 | 미디어로그 | 방명록  


- 천안함 사건 등 양국관계 논의 -



김형오 국회의장은 금일 오후 5시 35분부터 40분간 국회의장 접견실에서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국무원 총리와 천안함 사건을 비롯한 한-중 양국간 현안 및 협력 증진 방안 등에 관해 환담을 나누었다.

이날 원자바오 총리는 청와대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한 후 곧바로 국회로 와 김 의장을 예방했다. 또한 원자바오 총리 면담은 이날 오전 퇴임식을 가진 김 의장이 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으로서 가진 마지막 행사였다.

김 의장은 작년 11월 방중 시 후진타오 주석, 우방궈 전인대 상무위원장, 시진핑 부주석 등을 만난데 이어 이번 원 총리를 만남으로서 중국 최고지도부와 직접 만나 한중관계 발전을 논의한 기록을 세웠다.

천안함 사건과 관련, 김 의장은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는 도덕적 양식을 회복해야 한다”고 강조하며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중국의 특수한 역할을 기대한다”고 당부했다.

김 의장은 이어 “다시는 천안함 사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아야 하고, 이를 위해 북한 정권이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의 국제적 공조가 어느 때보다 긴요하며,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 북한의 긴장조성 행위가 중지되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에 대해 원 총리는 “중국은 한국이 다른 나라들과 공동으로 진행한 조사를 매우 중시하며, 사태의 시비를 가려서 입장을 결정할 것이고 정의를 실현할 것”이라며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 총리는 또 “중국은 일관되게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지지하고 그 입장을 견지해 나갈 것”이라며 “그것을 파괴하는 어떠한 행동도 결연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대화 요지:

김형오 의장: 국회방문을 환영한다. 청와대 회담도 잘 되었다고 들었다.

원자바오 총리: 청와대 회담에서 솔직하고 심도있는 논의를 진행하고 좋은 의견을 교환했다.

김 의장: 오늘은 제가 국회의장으로서 마지막 날인데, 그 마지막 행사가 원 총리 접견이어서 대단히 뜻 깊은 일이다.

원 총리: 방금 전 소식 알았다. 대단히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의장님은 중국 국민의 친구이고 중한 양국협력을 위해 많은 일을 해왔다. 우리 양국은 지금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를 구축했고 장기적으로 건전하게 발전할 기틀을 구축했다. 양국관계가 순조롭게 발전해도 이렇게, 어려움을 만나도 이렇게 해야 한다.

김 의장: 오늘은 한국이 선거기간이나 바쁜 중에도 부의장 2분과 여야원내대표, 위원장들이 다 왔다. 원내대표만 빼고 오늘 같이 임기가 만료된다.

원 총리: 참석해준데 대해 감사한다. 임기가 만료되어도 오늘을 계기로 중한 우호관계가 새롭게 추진되고, 이것은 영원히 임기가 끝날 수 없는 일이다. 모두 중국에 자주 방문해 양국관계 발전을 위해 노력해 달라.

김 의장: 지난번 스촨성 대지진은 참으로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 원 총리가 당시 현장에서 진두지휘하는 것을 보고 큰 감동을 받았다. 중국의 상하이 엑스포 성공적 개최를 축하한다. 2년 뒤 여수엑스포도 성공적으로 되도록 협력 바란다.

원 총리: 스촨성, 칭하이성 지진후 한국정부와 국민들로부터 큰 도움을 받은 것 심심한 사의 표한다. 양국간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의 기초는 상호신뢰에 있다. 저는 이런 사건들을 거치며 지난 2년 동안 양국 지도자들 간에 상호신뢰가 더 깊어졌다는 것을 느꼈다.

중한 양국은 수교 18년 만에 교역액이 1800억 달러가 됐다. 중국은 이미 한국의 가장 큰 교류파트너이자 투자국, 관광지가 됐다. 양국사이 연간 인적교류는 500만 명에 달하고, 주중 한국인 유학생은 중국에 주재하는 각국 유학생중 최다이다.

이런 점들은 양국관계가 양국 국민들간의 우호에 기초해 발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양국 국민들간의 상호교류와 신뢰라는 기초를 갖고 있기 때문에 양국관계는 일시적 어려움 때문에 방해받지 않을 것이다.

양국 국회간 교류도 양국관계에 대단히 중요한데 최근들어 많이 진행되고 있다. 우리는 양국 국회사이의 교류를 중시하고 있으며, 우방궈 전인대 위원장의 따뜻한 인사를 김 의장께 전하는 바이다.



김 의장: 의장 재임중 후진타오 주석, 우방궈 전인대 위원장, 원자바오 총리, 시진핑 부주석 등 중국의 최고지도자를 다 만날 수 있었던 것은 큰 영광이다. 앞으로 의장에서 물러나도 양국간 우호협력 발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하겠다.

특별히 최근 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한 말씀 드리겠다.

북한이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북한은 국제사회의 일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를 다하는 도덕적 양식을 회복할 것을 기대한다.

동북아의 긴장조성, 안보교란 행위는 한중 등 동북아 국가 모두에게 위해가 될 뿐만 아니라 북한 자신에게도 좋지 못한 일이다.

다시는 천안함 사건 같은 일이 재발되지 않아야 하고, 이를 위해 북한 정권이 이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유엔을 비롯한 국제무대에서의 국제적 공조가 어느 때보다 긴요하다.

저는 중국을 공부하고 중국을 좀 아는 정치인으로서, 중국의 특별한 입장을 이해한다. 그러므로 중국이 특수한 역할을 하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원 총리: 천안함 사건 발생 후 우리는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발표했다. 불행한 사건이며 한국인의 감정과 상처를 충분히 이해한다는 것이다. 희생자와 그 유가족에 대해 다시한번 심심한 애도의 뜻을 표하고자 한다.

중국 정부는 책임있는 정부이고 중국은 책임있는 국가이다. 우리는 한국이 다른 나라들과 공동으로 진행한 조사를 매우 중시한다.

우리는 사태의 시비를 가려서 우리의 입장을 결정할 것이다. 중국은 정의를 실현할 것이다. 우리의 궁극적 목표는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지키는 것이다.

방금전 의장께서 중국의 특수한 입장과 역할을 언급했는데, 중국의 특수한 역할은 다음과 같은 부문에서 반영될 것이다.

그것은 중국이 일관되게 평화와 안정을 지지하고 그 입장을 견지해 나갈 것이며, 그것을 파괴하는 어떠한 행동도 결연히 반대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각국이 냉정과 자제를 유지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사태악화와 충돌발생을 예방하기 위해서이다. 한반도에서 충돌이 생기면 가장 큰 피해를 입을 쪽은 한국과 북한 그리고 중국이다.

천안함 사건 발생 후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냉정한 자세와 태도를 취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우리는 앞으로 한국 정부와 긴밀히 연락하고 소통을 유지해서 사건이 적절히 처리되고 한반도 안정과 평화가 유지되도록 노력할 것이다.

김 의장: 동북아 평화와 안정의 핵심지역은 남북한이다. 동북아가 평화와 안정속에 발전할 수 있도록 모두가 노력해야하고, 특히 중국의 역할을 기대한다.

세계경제가 어려운 속에서도 중국은 경제성장을 이룩해가고 있다. 한국 양국관계가 정치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발전 강화되길 기대한다. 이런 면에서도 북한의 긴장조성 행위가 중지되도록 모두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원 총리: 의장께서 중요한 말씀을 하셨다. 지금 세계경제는 회복되고 있다고 하나 여전히 불안성과 불확실성이 많다. 중한 양국은 손잡고 협력을 강화해야 한다.

중한 양국 우호협력의 기초는 양국 국민에게 있다. 모든 방면에 걸쳐 교류를 강화하고 특히 청소년 교류를 강화해야 한다.

2010년 상하이 엑스포에 한국정부의 지지에 대해 감사한다. 2012년 여수 엑스포 개최 때도 성공적 개최가 되도록 지지할 것이다.

김 의장: 작년 방중시 텐진대(天津大)에서 외국인 최초로 명예박사학위를 받았고, 텐진에서 추진되고 있는 빈하이신구(濱海新區) 경제특구를 시찰하면서 발전하는 중국의 미래를 보았다. 빈하이신구가 성공적으로 이뤄질 것으로 확신한다.

원 총리: 지난 3년간 한국정부가 국제적 위기 대응과정서 큰 성과를 거두는 것을 목격했다. 이것은 대단히 어려운 성과이다. 한국이 계속해서 국제적 금융위기에 잘 대응하고 큰 발전을 이루길 축원한다. 퇴임하더라도 중국 인민의 친구로서 중국을 자주 방문하길 바란다.

김 의장: 내일 제주에서 열리는 한중일 회담을 성공적으로 하고 우방궈 위원장 등 중국의 친구들에게 안부를 전해 달라.

원 총리: 그분들을 대표해 감사의 말씀 드린다. 나는 제주에는 처음 간다. 대단히 아름다운 곳이라고 들었다.

김 의장: 내가 제주도 명예시민이다. 앞으로는 텐진명예시민도 될 생각이다.

원 총리: 환영한다.

이어 양측인사들은 국회 정현관 밖 계단에서 다함께 기념촬영.

한국측 배석자: 이윤성․문희상 국회부의장,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 박기춘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 박진 외교통상통일위원장, 이병석 국토해양위원장, 구상찬 의원, 박계동 국회사무총장, 류우익 주중대사, 최거훈 의장비서실장 등

중국측 배석자: 양제츠(楊潔篪)외교부장, 장핑(張平)국가발전개혁위원회 주임, 천더밍(陳德銘)상무부장, 쎄푸잔(謝伏膽)국무원 연구실 주임, 장신썬(張鑫森)주한 중국대사, 추샤오슝(邱小雄)국무원 부비서장, 장즈쥔(張志軍)외교부 부부장, 우다웨이(武大偉)한반도 사무담당 특별대표, 자오샤오화(趙少華)문화부 부부장 등

(끝)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동료 의원과 국회 가족 여러분,

이제 내일이면 저는, 18대 국회 전반기 의장직에서 물러나
평의원으로 돌아갑니다.
지난 2년간 국회의장의 소임을 대과없이 마칠 수 있도록
성원해 주신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윤성 부의장님과 문희상 부의장님을 비롯하여
적극적인 협조와 지원을 보내 주신 의원 여러분께 감사드리고,
박계동 사무총장, 신해룡 예산정책처장, 심지연 입법조사처장,
안병옥 입법차장, 임인규 사무차장, 허영호 국회도서관장 직무대리,
그리고 성심껏 뒷받침해 주신
모든 국회 가족 여러분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바쁘신 가운데도 자리를 빛내 주신 내빈 여러분께도 감사드립니다.

돌이켜 보면, 10년 만에 정권이 바뀌고
의회세력이 교체되는 전환기에 출범한 18대 국회는
시작부터 순탄치 못했습니다.
다수의 힘의 정치와 소수의 버티기 정치가 충돌하면서
명예롭지 못한 기록들을 만들어내기도 했습니다.

정치 선진화의 당위성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실 정치의 멍에가 너무 무거웠던 것 아닌가 싶습니다.
그러나 충돌과 파열로 소란스러운 가운데서도
우리 정치는 한걸음씩 전진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에 하나가 되는 저력을 보여주었고,
안보 위기 상황에도 성숙하게 대처하고 있습니다.
역대 최대의 법률안 처리 건수에서 보듯이
의원들의 일하려는 의욕과 열의는 그 어느 때보다 대단했습니다.

정치 선진화의 초석도 놓았습니다.
개헌과 국회법 개정을 위해 꾸준히 준비해 왔습니다.
이제 18대국회 후반기에는 성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특별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지난 2년간 국회사무처, 국회도서관,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등
입법지원 기관들이 괄목상대할 만큼 발전했다는 사실입니다.
전문성과 위상이 이전과는 현격하게 달라졌고
대외적인 신인도도 크게 높아졌습니다.

각 기관과 더불어 국회방송, 국회보 등은
국회의 활동을 국민에게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 국회 고위직에 진출하면서
두드러진 활약을 펼치고 있는 점도 고무적입니다.

아울러 대변인실 설치, 방문센터 개설, 국회도서관 야간 개장,
입법정보 서비스 오픈, 국회 블로그 개설 등을 통해
국민과 소통하고 국민 곁으로 가까이 다가가는
열린 국회로 발전해 나가고 있습니다.

의장직에서 물러나는 이 순간,
국회 소속 공무원 여러분의 헌신적인 노력과 빛나는 성과에
흐뭇하고 대견한 마음을 금할 수 없습니다.
수고하신 각 기관장과 소속 공무원께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냅니다.
앞으로 더욱 절차탁마(切磋琢磨)한다면
수년 내 우리나라에서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명성 높은 기관으로
굳게 자리 잡을 것이라 확신합니다.

동료 의원 여러분,

저는 의회주의자로서
‘대화와 타협’으로 상생하는 국회를 만들고자 하였습니다.
다수결의 원리와 소수의견의 존중을
국회운영의 기본 원칙으로 삼고,
정파를 떠나 공정하고 중립적으로 국회를 이끌고자 애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힘겨운 순간도 많았고, 안타까운 마음도 컸습니다.
여야가 마주 달리는 기차처럼 충돌하는 대결구도 속에서
대화와 타협의목소리는 큰 울림으로 다가오지 못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소신과 원칙을 갖고 최선을 다함으로써
파국으로 가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던 것을
큰 보람으로 생각합니다.

서로 다른 가치와 주장이 부딪치는 정치의 현장이기에
격론이 벌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상대에 대한 배려와 존중, 그리고 정치적 신의만큼은
저버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다수의 관용과 소수의 아량이 어우러지고,
가끔은 여유와 유머로 힘든 국민께 작은 위로를 드리는
멋진 정치를 보여 줘야 합니다.
현상에 매몰된 답답한 정치가 아닌
미래를 열어가는 희망의 정치가 되어야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받을 수 있습니다.

지난 2년의 경험을 반면교사로 삼아 18대 국회 후반기는
선우후락(先憂後樂)의 정신으로 국리민복(國利民福)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국민의 국회’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

저는 지난 2년 동안 ‘역사’와 ‘책임’이라는
두 단어를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저와 동행하리라는 점을 깊이 깨우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동안의 모든 애환을 뒤로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물러나고자 합니다.
혹시라도 저에게 섭섭한 마음을 갖게 된 분들이 있다면,
모든 것이 저의 부덕의 탓인 만큼 너른 이해를 구합니다.
국회의장으로서 제가 취했던 선택과 결단은
국민과 역사의 평가에 맡기겠습니다.

위로와 격려를 보내 주신 국민 여러분과 동료 의원 여러분의
따뜻한 성원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정말 감사했습니다.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대한국인 2010/06/01 12:0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의장님. 2년동안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뜻하셨던 바 모두 이루시진 못하셨겠지만
    의장님의 피나는 노력과 헌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 좋은나라 될 수 있도록 많은 수고를 부탁드립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제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단 퇴임식 거행


  김형오 국회의장과 이윤성․문희상 부의장 등 제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단은 오늘 오전 국회 중앙홀에서 국회의원, 국회 소속 기관장 및 국회사무처 소속 직원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퇴임식을 갖고, 제18대 국회 전반기 2년의 임기를 마무리 했다.


  국회의장단 퇴임식은 국회 최초로 거행된 행사로서, 지난 2년 동안 대한민국 국회와 정치발전에 헌신 노력한 의장단의 노고에 감사를 표하고자 박계동 사무총장과 국회 소속 기관장 및 직원들이 뜻을 모아 행사를 마련하게 됐다.


  국회 의장단 퇴임식은 김형오 의장의 주요 업적을 담은 영상물을 상영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김형오 의장이 “가장 두려운 것은 여도 아니고 야도 아닌 국민”이라며, 야당의 물리적 저지와 여당의 직권상정 요구를 거부하고 많은 민생법안과 예산안의 합의처리를 성사시켰던 장면, 400여명의 세계 지도자들을 만나며 원전수주, 고속철 수주 등을 위해 쉴 틈 없이 펼쳤던 실질적 의회외교 노력 등 대화와 타협, 상생의  국회를 이루기 위해 매진했던 김형오 의장의 지난 2년간의 노력과 열정이 기록되었다.


  김의장은 퇴임사에서 “현상에 매몰된 정치가 아닌 미래를 열어가는 희망의 정치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고 회고하며, “국회의장으로서 취했던 선택과 결단은 국민과 역사의 평가에 맡기겠다”고 말했다. 이어 “충돌과 파열로 소란스러운 가운데서도 우리 정치는 한 걸음씩 전진하고 있다”며, “18대 전반기에 놓여진 정치 선진화를 위한 초석이 18대 국회 후반기로 이어져 많은 열매를 맺을 것으로 확신하며, 국민복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국민의 국회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이윤성 국회부의장은 “국민앞에 부끄럽지 않은 국회를 만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한 것 같아 아쉬운 마음 금할 길이 없으나, 아쉬움이 더 큰 발전을 위한 계기가 되리라 믿는다”며, “국민을 위해 많은 일을 할 의무가 국회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후반기에도 새로운 각오와 다짐으로 더 노력해 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문희상 부의장은 “18대 국회의원 모두가 국회에 대한 국민의 신뢰회복이 급선무임을 자각하고 국민에게 신뢰를 주는 성숙한 국회를 만들길 간절히 바란다”며 퇴임사를 마무리했다.



  이 행사에서 김형오 의장은 코스타리카 전․현직 국회의장으로부터 선물 받은 서적 188권을 국회 도서관에, 도자기 명인 이계안(李桂安) 작가의 당삼채 도자기 「사계」를 국회에 기증하는 행사도 함께 가졌다.


  김 의장이 기증한 서적은 지난 5월 7일 코스타리카를 공식 방문했을 당시 비야누에바 코스타리카 신임 국회의장이 감사의 선물로 준 60권과, 지난해 10월 김형오 국회의장의 초청으로 방한한 빠체코 전 국회의장이 방한 당시 우리 국회 도서관에 코스타리카 관련 서적이 거의 없는 것을 보고 이번 김 의장의 코스타리카 방문시 전해준 128권이다.


  이어 국회사무처는 김형오 국회의장과 이윤성․문희상 부의장에게 감사패를 전달했다. 또한 제주 명예도민인 김의장에게 김태환 제주특별자치도지사는 행정부지사를 보내 제주도 특산품 「제주 전통 옹기」를 선물했다.


  김 의장은 이날 국회의원식당 별실에서 국회의장단, 기관장, 주요 간부들과 퇴임 오찬을 함께 했으며, 저녁에는 공관에서 비서실 전 직원들과 함께 고별 만찬을 가졌다. 


(끝)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브라질 리우(Rio de Janeiro)의 플라멘구 공원(Parque do Flamengo).
5월의 어느 저녁.

강아지들이 주인들과 산책을 나왔습니다.
천방지축으로 뛰노는 모습이 산책이라기 보다는 야외학습을 나온 어린이들 같습니다.

"멍멍! 우리 주인님은 찍지 마세요!"

아, 이 견공의 주인분은 조금 민망한 옷차림이셔서 모자이크 처리했습니다.

"그러니 나를 좀 제발 놔두시오!"

귀를 쫑긋 세우고 이리저리 바쁘게 돌아다니던 견공.
어릴적 보았던 '좀머씨 이야기'의 주인공 '좀머씨'가 생각나네요.


엄마 품에 안겨서 코를 후비는 아기. 아~ 이뻐라~

킁킁.. 킁킁..

"뿡!" / "앗, 깜짝이야!"

검둥이가 방귀라도 뀐건가요?
하얀 털에 검은 점을 콕콕 찍어놓은 듯한 예쁜 눈을 가진 강아지네요.

누렁아! 안돼!

저 가방에는 강아지 장난감(공)이 가득 들어있었는데요,
누렁이가 미친듯(!)이 달려들자 주인도 무척이나 힘겨워합니다.

"검둥아, 일어나봐. 사진 찍잖니."

"전 이 빨간공만 있으면 돼요!" 쩜푸~

뭔가 깨달은 듯한 표정의 검둥이

"그래..내게 빨간공보다 소중한 것은.."

"멍멍! 엄마 안아주세요!"



브라질 강아지라고 쌈바춤을 춘다거나, 축구를 잘 하는건 아닌 것 같네요.
(혹시 브라질 어딘가에는 쌈바춤을 추는 강아지가 있을지도..?^_^)

"누...구신지?"

이 개판(?)을 보고 꺄르르~ 웃어대던 아기가 카메라를 보더니 급경직!

"아기가 몇살이예요?"
"seven 입니다."
"네에?? 이 아기가 7살이라구요? (잠시 당황했지만 칭찬으로 전환!) 완전 동안이네요!!"
"아니, 그럴리가요. 7개월이지요.."
;;;;;;;;;;;;;


"7살이라뇨! 내가 그렇게 들어보이나요?!"

미안해, 아가야~ 우는건 아니겠지??

정말 예쁘죠?

김형오 의장도 이 정신없는 개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찰칵~!

"헥헥헥 내 공 내놔~멍멍!"


세계 어디서나 강아지들이나 아기들은 예쁘네요.
뛰어노는 강아지들로 정신없던 리우의 5월 어느 저녁 풍경이었습니다..^_^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맹태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5월 25일, 한국 화단의 원로 전혁림 화백께서 별세하셨습니다.

통영 출신으로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 1949년 국전에 입선하며 두각을 나타낸 故전혁림 화백은 우리 전통적인 아름다움과 서양화 기법을 결합한 작품으로 '통영의 화가', '바다의 화가'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2002년 국립현대미술관 선정 '올해의 작가'로서 대규모 개인전을 가진데 이어, 2005년 '구십, 아직은 젊다'展을 여는등 국내 최고령 현역 작가로서 활동했습니다.

"붓을 쥐고 죽는 것이 소원"이라던 고인은 지난 4월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화가인 아들 영근씨와 함께 '아버지와 아들, 동행 53년'展을 열기도 했습니다.

2008년, 희망탐방에서 '전혁림 미술관'을 찾았던 김형오 국회의장은 '아버지와 아들, 동행 53년'展의 축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2008년, 전혁림 미술관 방문시


故전혁림 화백의 별세 소식을 들은 김형오 국회의장은 애통한 심정으로 다음과 같은 추모의 편지를 남겼습니다.

통영의 하늘, 바다와 함께 영원하리라


 

선생님이 먼 길 소풍 떠나셨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은 날은 유난히도 햇볕이 따사롭고 햇살이 눈부셨습니다. 바람은 또 얼마나 부드러웠는지요. 맑고, 밝고, 참으로 푸르른 날이었습니다. 생전에 그렇게나 사랑하셨던 통영의 바다와 하늘도 코발트블루로 채색돼 있었겠지요?



선생님 그림 앞에 서면 아름다운 통영의 하늘과 바다가 고스란히 가슴으로 밀려들어옵니다. 통영의 바다와 하늘은 늘 선생님의 예술혼에 불을 지폈습니다. 잠든 영감을 일깨우고 끊임없이 붓을 들게 했습니다.


한국 화단의 살아 있는 전설이고 신화이셨던 선생님. 구상인 듯 추상이고 추상인 듯 구상인 선생님의 작품들은 인생이란 원래가 그런 거라고 나직나직 얘기해주는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캔버스를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국내 최고령 현역 작가로서 눈썹과 머리에는 서리가 앉았지만, 붓을 쥔 손놀림은 흔들림이 없고 시력도 좋아 안경을 끼지 않고 작업하셨습니다.


캔버스를 마주한 순간만큼은 죽음에 대한 잡념을 쫓아낼 수 있어 결사적으로 그림에 매달린다고 하셨지요? 노대가의 고백이 참 인간적으로 다가와 가슴이 뭉클했던 기억이 납니다.


‘지금 모습 그대로 100세 특별전에서 다시 만나기를…’. 지난해 봄에 낸 책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에서 제가 선생님께 띄운 편지의 제목입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선생님은 100세를 불과 5년 앞두고 세상과 작별하셨습니다.



아마도 선생님의 마지막 나들이는 지난 4월 28일부터 5월 3일까지 서울 인사아트센터에서 열렸던 <전혁림․전영근, 아버지와 아들 동행 53년> 2인 초대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개막식 날 찾아간 저와 손을 맞잡았을 때 왠지 손아귀 힘이 예전 같지 않았지만 그래도 도록에 해주신 친필 사인에는 여전히 힘이 살아 있어 이렇게나 빨리 붓을 놓으시리라고는 미처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날 휠체어에 앉아 계신 선생님 무릎에는 담요가 덮여 있었습니다. 왠지 마음이 짠해진 제가 휠체어를 밀어 드리고, 담요를 가지런히 해드렸지요. 지금 이 순간, 선생님 옷에 늘 옅게 배어 있던 물감 냄새와 함께 그리움이 가슴 가득 밀물져옵니다. 동시에 통영의 바다를 요처럼 깔고 통영의 하늘을 이불처럼 덮고 편안하게 누우신 선생님 모습이 오버랩되어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선생님은 가셨지만 통영은, 통영의 바다와 하늘은, 남은 저희들은 선생님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5년 뒤, 선생님 100세 초대전은 틀림없이 열릴 것입니다. 그뿐인가요. 탄생 200주년, 서거 500주년, 그런 식으로 선생님을 기리는 작품 전시회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국내외 유수의 화랑에서 계속 이어질 거라고 믿습니다. 아울러 세계 화단의 주목을 받고 있는 아드님 전영근 화백도 선생님의 길을, 그 불멸의 예술혼을 면면히 이어가겠지요.


그리운 선생님, 하늘나라에서 편히 잠드소서.




2010년 5월 29일

국회의장 김형오 拜上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봄꽃향기 2010/05/28 09:4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2. 힘찬희망 2010/06/14 0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진정한 예술혼의 표상,
    전혁림 화백님의 안식을 빕니다.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언론인 여러분,


저는 이제 국회의장에서 물러나 평의원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국민여러분의 따뜻한 격려와 성원, 그리고 깊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열악한 취재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주신 언론인

여러분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언론인 여러분께서 직접 목도했듯이 지난 2년은 역대 국회 중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정권교체와 의회 세력의 교체가 동시에 이루어져 여야간 대치가 어느 때보다 험하고 첨예했습니다.


저는 입법부 수장으로서 그동안 18대 국회가 보여준 대치와 파행, 점거와 농성 등에 대해 이유가 어떻든 정치권의 자성을 촉구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2008년에 원구성, 추경안 상정문제, 연말 입법전쟁, 2009년 들어 미디어법, 노조법, 예산안 등 아홉 번의 위기와 고비를 넘기며 최악의 상황을 막고 정국의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숱한 공격과 압박, 일방적 모욕과 왜곡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국회의 자존과 위상을 세우려 외로운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언젠가 국민과 역사의 평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는 힘의 정치와 버티기 정치, 다수결 원칙과 소수자 보호, 효율과 형평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지 부단히 고민하면서 결단을 내려왔습니다.


강퍅한 대결과 대치 상황에서도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며 중재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3권 분립의 헌법 정신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역사부끄럼 없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하지만 훗날 어떠한 평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저는 2년전 취임하면서 밝힌 3대 목표, 정책국회, 상생국회, 소통국회를 만들기 위해 일로매진(一路邁進)했으나 많은 점에서 부족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너른 이해를 구합니다.


그동안 고난도 많고 아쉬움도 남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급하게 서두르면 일이 성사되기 어렵다(欲速不達)는 옛말은 지금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평의원이 된 만큼 어떻게 해야 우리 정치현실에서 ‘화해와 통합의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지 동양과 서양의 사례와 역사를 통해 두루 공부해볼까 합니다.


햇빛을 영원히 가리는 구름이 없듯이 한국정치도 조만간 흑백정치에서

컬러정치로 발전,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흐름을 거역하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이 물입니다. 이때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고 낮은 자세일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저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제가 해야 할 의무와 소명을 조금은 해냈다고 느끼며 이만 물러납니다.


감사합니다.



2010. 5. 27.


김 형 오



===================================================================================================


 [참고 자료]


김형오 국회의장이 지난 2년간 걸어온 길


1. 의장선출

김형오 의장은 2008년 7월 10일 본회의에서 선출되었다. 촛불 정국 등 여야 대치로 인해 제18대 국회 출범 42일만에 이뤄졌다. 5선의 김형오 의장은 재석 의원 283명 중 찬성 92.9%의 지지율을 얻었다. 헌정 사상 두 번째로 많은 득표수, 14대 국회이후 최고의 득표율이었다.


2. 중재의 리더십

18대 국회는 10년 만에 정권과 의회권력이 동시에 교체된 환경 속에서 출범하면서 처음부터 격렬히 대립했다. 돌이켜보면 김 의장 재임중 자칫하면 국회가 파탄날 수도 있는 6번의 커다란 위기가 있었다. 하나하나가 대치와 충돌 속에 국가를 뒤흔들던 사안들이었다. 그 때마다 김 의장은 국회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끈질긴 중재 노력으로 파국을 막아냈다.




첫 관문인 원구성부터 의장의 부단한 중재노력이 필요했다. 결국 18대 국회는 임기시작 89일만인 8월 26일에야 원구성을 마치고 정상궤도에 올랐다. 헌정 사상 가장 늦은 원구성이었다.

두 번째 과제는 세계금융위기를 맞아 긴급히 편성된 추경안 처리였다. 2008년 9월 12일 새벽에 예결특위를 통과한 안이 정족수 부족으로 밝혀졌으나 한나라당 지도부는 본회의 강행을 요구했다. 김형오 의장은 흠결있는 예산안을 여당 단독으로 그것도 심야에 처리할 수는 없다며 거부했다. 결국 추경안을 9월 18일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세 번째 과제는 2009년 예산안 처리였다. 2008년 12월 예산안 법정처리시한을 넘겨놓고도 여야간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김 의장이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의 두차례 만남을 통해 예산안 처리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로 인해 국회는 12월 12일에 예산 부수법안 14건을 본회의에서 처리하고 12월 13일에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네 번째 위기는 2008년도 연말 입법전쟁이었다. 2008년도 12월 18일 외통위의 한미FTA 비준안 상임위 상정과정에서 사상 최악의 폭력이 발생하였다. 민주당이 의장실과 본회의장을 점거한 가운데 여당은 85개 법안을 모두 직권상정 해달라고 요구‧압박했으나 김 의장은 직권상정을 자제하고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협상과 중재가 몇 번이나 결렬된 끝에 여야는 마침내 민생법안 처리를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김형오 의장은 온갖 압박과 위협, 음해와 비난을 받았지만 용기있게 소신을 지켰다. 국회와 의회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최악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였다.

다섯 번째 위기는 미디어법 처리였다. 미디어법은 2008년 중반이후 제대로된 논의도 이뤄지지 않은 채 여야대치의 중심에 서 있었다. 수많은 절충과 협상이 수포로 돌아가자 김 의장은 결국 2009년 2월국회 마지막 날에 미디어법 심사기일 지정(직권상정 예고)을 통해 여야를 압박했고, ‘6월 국회 표결처리’라는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7월이 되어도 대치수위만 올라갈뿐 진척이 이뤄지지 않자 김 의장은 국민과의 약속, 의회민주주의의 원리를 지키기 위해 7월 22일 직권상정을 통한 표결처리를 단행했다.

여섯 번째는 2010년 예산안 처리였다. 4대강 사업 문제 때문에 민주당이 예결위를 점거한 가운데, 준예산 편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다. 김 의장은 예산안을 연내 처리 못하면 의장직을 사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12월 29일부터 본회의 의장석 사수를 결행했다. 결국 김 의장의 결단으로 준예산 편성사태를 막아내고 새해부터 대혼란과 혼선이 예고된 노조법을 처리할 수 있었다.




3. 현안에 빠른 대처

김형오 의장은 국가적 위기 속에서는 여야가 힘을 합치도록 독려하고 이끌었다. 세계경제위기 속에 취임한 김 의장은 민생살리기와 경제위기 극복을 우선 과제로 삼고, ‘국회 경제위기 대응팀’을 출범시켰으며 2008년 추경안과 국가채무보증동의안 등을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 정부와 민간의 경제회복 노력에 강력한 힘을 실어 주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황강댐 무단 방류 등 북한의 무분별한 위기 조성에 대해서도 김 의장은 북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에게 직접사과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신속하게 대처했다. 최근 천안함 폭침 사고 때는 국민적 의지의 결집,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 재정비를 강조하며 국회차원의 대북규탄 결의안을 촉구했다.

일본의 독도관련 교과서 왜곡과 당국자 망언 등이 계속되자 김 의장은 현직 국회의장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 독도 수호의지를 국내외에 천명했다. 또한 국회 독도 관련 자료실 설치,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도자료 수집 등을 통해 국민의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하기도 하였다.


4. 개헌과 국회제도개선론

21세기 선진국가의 기틀을 새롭게 마련하자는 개헌론은 김 의장의 취임 일성이었다.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초당적으로 구성, 1년여의 활동 끝에 방대한 연구보고서를 완성했고, 끊임없이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김 의장은 또한 일하는 국회, 폭력 없는 국회, 선진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시대적인 국회 운영방식을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고 보았다. 의장 직속으로 국회운영제도개선자문위원회를 구성, 심층적인 연구조사를 통해 충실하고 방대한 제도개선 대안을 마련했고 이를 해당상임위에 제출했다.



5. 국회소속 기관의 위상 증대

김 의장은 취임 후 매주 월요일 아침 국회 기관장 회의를 주재해 왔다. 과거에 없던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졌고, 국회 사무처,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도서관 등 각 기관간의 소통, 효율적이고 유기적인 업무협조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김 의장은 특히 국회소속 각 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을 철저히 보장하면서 위상을 크게 신장시켰다. 예산정책처는 우리나라 유수의 전문연구기관과 어깨를 견줄만큼 경제관련 기관과 학계에서 평가를 받고 있고, 입법조사처는 각 공공기관, 단체 및 언론에서 공신력 있게 인용되고 있다. 국회방송은 시청률이 케이블 공공채널중 1위이며 전체 채널 중에서는 40위권 밖에서 30위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6. 열린 국회를 위한 노력

김 의장은 국회와 국민간의 소통의 문을 활짝 열고 그 자신 국민 속으로 들어갔다. 국회대변인실을 만들어 국회 공보기능을 강화하였으며, 국회방문자센타를 설치해 국민들이 원스톱으로 국회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게 했다. 또 국회 도서관을 처음으로 야간에도 개장하고, 국회블로그로 또다른 소통의 창을 마련했다.   

김 의장은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의장이 해외순방을 해온 관례를 깨고 우리땅 순례를 떠났다. 1, 2차 국토탐방을 합쳐 80여 곳을 방문하고 수천명을 만나 느끼고 들었던 것들을 두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


(끝)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김화자 2010/05/27 17: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오 국회의장님!!
    나라와 국민을 위해 의무와 소명을 가지시고
    일 하셨다니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상선 약수" ...처럼 사시겠다는 말씀 믿어 봅니다.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

  2. 김인수 2010/05/27 22: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난 2008년 12월 63빌딩에서 한양경영대학원 송년회(경영인의밤)때 의장님을 에스코트하고 귀빈대기실에서 인사를 드렸던 힐튼호텔에 김 인수입니다. 기억이 나시나요? 2년 동안 의장직을 수행하시느라고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그 당시 그 짧은 시간 의장님을 뵙고 넘 인상이 깊었고, 차후에 재차 의장직님을 뵙고 싶었으나 의장님이 넘 바쁘신 것 같아서 그 동안 연락을 못 드렸네요. 오늘 국회방송에서 의장님의 마지막 인터뷰을 보고, 지금 이렇게 메일을 보냅니다. 의장님에 대해서는 동문 선배님인 지 경준대표님에게 좀 들었습니다. 향후에 조금의 시간이 나실때 제가 잠깐 찾아가 인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그 동안 민주주의 발전과 국회의 개혁에 노력하신 의장님에게 감사한 마음입니다. 그 당시 만나뵜을때 명함을 드렸는데 혹시나하구 연락처을 남깁니다. 01190678705입니다. 그럼, 재차 만나뵜으면 좋겠습니다.

    • BlogIcon 맹태 2010/05/28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김인수님.
      감사합니다. 의장님께서는 오늘 퇴임식을 끝으로 제18대 전반기 국회의장직에서 물러나십니다.
      의장님께 내용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관리자

  3. 아이고 2011/11/23 03: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회의장 퇴임하시고 고삐가 풀리셨나...
    이러말도 하셨죠

    "제가 아는 강 의원, 우리가 아는 강 의원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들 편에 서서 소신을 지키며 의정 활동을 충실히 해온 정치인이었습니다. 지성과 교양과 예의를 갖춘 정의롭고 호감 가는 반듯한 후배였습니다."

    여기서 강의원은 요즘 잘 나오시는 개그맨 최효종씨를 고소한 강용석의원입니다

"리우(Rio de Janeiro)"는 1763년부터 1960년 브라질리아로 수도를 이전하기까지 브라질의 두번째 수도였던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세계 3대 미항(美港) 가운데 하나로 자연미와 인공미의 조화로운 모습으로 유명합니다.
(3대 미항은 호주 시드니, 이탈리아 나폴리, 브라질 리우입니다.)

빵데아수까르에서 바라본 리우


리우데자네이루(Rio de Janeiro)는 보통 '리우'로 불리는데, 사실 '리우'보다는 '히우'에 가깝게 발음됩니다.

'리우'는 강(江)을 뜻하며, 리우데자네이루는 '1월의 강'이라는 뜻입니다. 1502년 1월 1일, 이 곳을 발견한 포르투갈인들이 구아나바라만(灣)을 강 어귀로 착각하여 이렇게 이름 붙였다고 합니다.

리우는 2월 초중순에 열리는 역동적인 카니발 축제로도 유명하지만, 상파울루와 더불어 브라질의 2대 문화도시로써 카니발 이외의 다양한 볼거리도 많이 있습니다.

리우 카니발 축제

출처: http://www.propertyinvesting.net / 용도: 이해를 돕기 위함

그 가운데 영화에서도 종종 볼 수 있는 거대한 예수상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높이 30m, 폭 28m의 예수상은 1931년 브라질의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 졌습니다. 꼬르꼬바도 언덕 위에 세워진 이 동상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산악열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이 열차는 Dom Pedro 1세의 지시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리우의 예수상 모습

출처: http://www.propertyinvesting.net / 용도: 이해를 돕기 위함

예수상이 바라보는 방향에 대한 설들이 많다고 하는데, '가난한 동네(빈민촌)를 바라보고 있다', '부자 동네를 바라보고 있다'는 설이 있다고 해요. 사실 예수상은 정동쪽을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동쪽을 바라보고 있도록 만들었다고 해요.


보수중인 예수상의 모습


아쉽게도 거대 예수상은, 우리가 방문했을때 수리중이어서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아쉬운대로 예수상이 보이는 맞은 편, 빵데아수까르를 올랐는데요.

빵데아수까르의 모형



"빵데아수까르"(Pão de Acúcar)는 설탕빵이라는 뜻인데요, 우리가 말하는 "빵"은 포루투갈어로도 "빵(Pão
)"이라고 합니다. (현지 교민들은 "빵산"이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해발 396m의 높은 암석산입니다.

선인장이 자라고 있습니다.


이런 이름이 붙게된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사탕수수 즙을 끓여 만든 설탕 덩어리를 유럽으로 운반하기 위해 산 모양으로 쌓아 놓은 것을 포르투갈 사람들이 '빵데아수까르'(Sugar loaf)라 부르던 것을 이와 비슷한 모양을 가진 이 바위 산의 이름으로 붙였다는 설이 유력합니다.



예수상에 가지 못한 것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있었지만, 앗!!

학~ 이건 '아쉬운대로' 찾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리우의 주요 관광지이며, 007도 액션씬을 펼칠만큼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곳입니다.

영화 007, 문레이커의 격투장면

출처: 화면 캡쳐 / 용도: 이해를 돕기 위함

이 케이블카는 1912년부터 운행되었는데, 그 이전에는 스페인과 스위스에만 케이블카가 있었다고 하니 당시 브라질의 중공업이 얼마나 발달했었는지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케이블카 초기의 모터를 전시해 놓았습니다.



케이블카를 두차례 타고 빵데아수까르 정상에 올라 멋진 풍경을 감상하였습니다.
날씨가 조금 흐렸지만, 오히려 이런 날씨가 빵데아수까르를 관광하기에 좋은 날씨라고 합니다.
햇볕이 내리쬐면 살 타는 소리에 관광을 할 정신이 없다고...^^;;;;
(사실 햇볕이 강해서 조금 흐린 날씨가 반갑기도 했습니다.)

빵데아수까르 정상에도 작은 동상이 하나 서 있었는데요,

우왕.. 늘씬하시네요..


치마는 바다의 파도를 의미하고,
허리의 곡선은 활처럼 휘어진 리우의 해변을 의미하며,
가슴은 산(山)을 의미하고,
머릿결은 을 의미하여
우아한 리우 여인의 모습을 표현했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풍경만큼이나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지도를 보고 있는 김형오 국회의장

우리로 치면 '관광공사'와 같은 기관의 부사장(Vice-President)인 José Carlos Sã 님께서 친절히 안내해 주셨습니다.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는 모습^^


선물 내용 더보기



리우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김형오 의장

오른쪽 윗편에 수리중인 예수상의 모습이 살짝 보입니다. ^^

아쉽지만 이제 내려갈 시간~

내려가는 길에 만난 관광객들과 인사~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며 아쉬운 발걸음을 재촉하였습니다.



보너스..!!
케이블카에서 발견한 볼거리!!

숨은 그림 찾기!!


보이시나요?

잘 보시면 두명의 암벽등반가가 빵데아수까르를 오르고 있습니다. 아찔한 광경입니다.
전 그냥 케이블카 타고 다닐래요..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 지붕 수리를 하던 수감자들이 일을 마치고 맥주를 마시던 장면을 떠올리게 하네요..^_^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맹태

댓글을 달아 주세요

동영상 :  대한민국 정치는 몇 점인가? (국회의장과의 대화/오마이뉴스)

[* 동영상 및 기사 설명 - 오마이뉴스 홈페이지 인용 / 저작권자의 승인을 얻어 게재함]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질문자나, 답변자나.

5월 19일(수) 10만인클럽특강 25번째 '김형오 국회의장과의 대화' 후반부 질의응답 시간. 드디어 미디어법 직권상정에 대한 질문이 나왔다. 대한민국 공식 의전 서열 2위인 국회의장을 앞에 두고 한 젊은이가 물었다.

- 미디어법을 직권상정으로 처리했는데, 어떤 의견을 가지고 강행 처리를 했는가. 그 법으로 인해 대한민국이 어떤 식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해서 그랬는지 궁금하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왜 미디어법 이야기가 안나오나 했다"면서 자세를 바로 잡았다.

"왜 직권상정 했느냐. 8개월동안 여야 간 미디어법에 대해서 단 한번도 공식 토론이 없었다. 협상은 있었다. 하지만 공식적으로 문방위 토론이 없었고, 또 앞으로도 토론이 전개될 가능성이 없었다. 나는 대화주의자다. 토론을 하라고 수없이 강조했지만 안됐다. 시간을 끌면 끌수록 여야 격렬한 대치가 연출될 수밖에 없고, 이것 때문에 다른 것이 아무것도 나갈 수가 없는 상황이 됐다. 그래서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 다음, 미디어법을 어떻게 보는가. 나는 미디어법을 절대 이념적인 법으로 보지 않는다. 진보진영에서는 조중동 등 보수언론이 방송을 장악하게 하기 위한 법으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나는 그런 논리 자체가 맞지 않다고 본다. 미디어법은 케이블TV의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을 누가 갖도록 할 것이냐다. 이게 어떻게 이념의 문제인가. 또한 나는 특정 회사나 매체가 TV 세트를 장악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고 본다.

더 나아가 나는 케이블TV가 과연 미디어의 메인인가에 대해 본질적인 의문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논의는 전혀 진전이 안되고, 조중동은 된다 안된다 싸움만 하고 있었다. 나는 이 논쟁이 더이상 본질적 주제가 아니고 당리당략만 남았기 때문에, 단절을 내려야 했다."


즉각 질문자의 반론이 이어졌다.

- 답변을 들었지만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국민 여론도 우호적이지 않은 여론이 대다수였는데, 무엇이 그렇게 미룰 수 없는 상황이었는지 잘 공감이 가지 않는다. 또 이념적이지 않다고 했는데, 현실적으로 방송 지분을 차지할 수 있는 기업은 대기업이나 조중동 등 보수신문 밖에 없다. 방송 장악이 불가능하다고 했는데, 이를테면 MBC 신경민 앵커 교체 같은 경우도 있지 않은가. 또한 대통령 특보 출신을 방송사 사장으로 임명하기도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말이 길어졌는데, 제일 궁금한 것은 이것이다. 무엇이 그렇게 급했을까.

"우선 신경민 앵커 문제는 미디어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뭐가 급했느냐.... 급해서 한 것이 아니라, 미디어법을 가지고 8개월간 국회가 토론 한번 하지 않고 싸움만 했다. 국회는 미디어법 외에도 처리해야 할 안건이 많은데 올스톱이 됐다. 이 상태는 8개월이 아니라 10개월이 가도 해소가 안될 상황이었다. 내가 국회의장으로서 직권상정을 그냥 쉽게쉽게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야당쪽에 그랬다. '이것을 언제까지 타협을 하겠다는 날짜만 제시하라. 그러면 직권상정을 하지 않겠다. 한나라당이 어떤 욕을 하더라도 감내하겠다. 당신들이 날짜를 제시하라.' 하지만 민주당에서 시한을 제시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무조건 협상을 하자고 했다. 시한을 정하지 말고 협상만 하자? 그게 되겠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이미 6월 30일까지 미디어 관련 법을 표결 처리하겠다고 3월에 합의를 한 상황이었다."


- 미디어법에 막혀서 다른 것이 모두 스톱이었다면, 다른 법 먼저 처리하면 되는 것 아닌가.

"그렇게 했으면 좋지. 그것은 여야가 합의만 하면 되지. (하지만 그렇게 합의가 안되니) 날짜만 박으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다."

시간만 허락한다면 몇시간 동안 더 이어질 기세였다. 공세적 질의-응답은 동영상을 통해 모두 볼 수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
Homepage : www.hyongo.com
Blog : blog.naver.com/kimhyongo
Tweet : @hyongo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장석빈 2010/07/12 09: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그 때 가긴 했었습니다만, 정말로 몇 시간 더 있었으면 어마어마한 논쟁이 이어지지 않았을까 합니다. ㅋㅋㅋ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했다는 꼬리표가 피곤하실 듯 합니다만, 성실히 답해주시고 끝나고 그 청년에게 악수를 청하는 모습을 보면서 역시 대화를 강조하는 분이라는 것을 실감했습니다.
    의장직도 끝나고 외통위로 옮기셨는데, 이렇게 대화가 되는 국회를 만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육탄전(?)이 난무하지 않는 국회를 바라며... ^^;


대학에 들어갈 때, 친척분 명의로 휴대전화를 신청하여 사용하다가, 군대를 전역하고 신규가입을 했습니다. 원하는 번호는 제 생년월일을 조합한 숫자로 신청했습니다.

010-XXXX-8XXX

하지만, 그 번호는 이미 누군가 사용중이여서 앞자리에 1을 더한 숫자로 신규휴대전화번호를 발급받았습니다.

010-XXXX-9XXX



그 때는 몰랐습니다...

이 결정이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번호가 예전에 누가 쓰던 번호였는지, 모르는 사람들로부터 전화나 문자메시지가 많이 왔는데, "번호가 바뀌었습니다"라고 일일이 답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나 동철(가명)인데. 보고 싶다."라는 문자를 받았습니다.
동철(가명)이는 군대에서 악마같던 동갑내기 선임이었습니다.
전역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 선임의 이름만 들어도 깜짝깜짝 놀라던 때였거든요.

물론 이 정도는 아니었습니다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며 '이 자식이 내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지????' 라고 생각하다가,
'아, 나는 이제 민간인이야. 이 자식한테 꿀릴것 없어!' 라고 마음을 다잡고 매정한 답문을 보냈습니다.

"난 너 별로 안보고 싶은데.."

"난 너 보고싶은데, 사진 한장만 보내주면 안돼?"

"내 사진? 내 사진을 왜?"

"보고 싶어서ㅋㅋㅋ"

"싫어. 너가 날 왜 보고싶어?"

"사실 나 너 좋아해..."

"헉... 난 남자에 관심없어."

"미안해. 내가 이랬다고 어색해지는건 아니지?"

"흐..괜찮아. 민우(가명, 후임) 이번달 전역하면 한번 다같이 보자."

"혜영(가명)이 번호 아니예요?"


엥???? 이건 또 무슨 소리?????


"XX년 XX월에 전역한 동철병장님 아니세요?"

"죄송합니다."

"저도 죄송합니다."


이를 통해 알게 된 사실.

이전에 내 번호를 사용하던 사람은...

1. 번호의 조합으로 보아 생일이 비슷한 10살 어린 여학생

2. 이름은 혜영(가명).
3. 남학생들로부터 인기가 많음.


그 이후에 비슷한 문자를 다시 한번 받게 되었습니다.

"안녕? O고등학교 2학년 현준(가명)이라고 해. 축제때 동아리 방명록에 남긴 번호보고 연락하는거야. 괜찮다면 연락하고 지내고 싶은데."

이럴수가!!!
O고등학교는 제 모교였습니다.
저는 후배에게 친절한 답문을 보냈습니다.

"현준학생, 안녕? 나는 O고 XX회 졸업생 맹태라고 해. 번호가 바뀌었는데 혜영학생 찾는 연락이 많이오네."

"그리고 주변에 이 번호 연락하는 친구들 있으면 번호 바뀌었다고 좀 전해줘."

"앗, 선배님. 죄송합니다.;;;;"

"아냐, 죄송하긴. 좋은 결과 있길 바란다. 공부 열심히 하고~"

"감사합니다. 선배님.;;;;"

그 후로 연락은 많이 줄어들었습니다만, 그래도 잊을만하면 가끔씩 연락이 오더라구요.
"번호가 바뀌었으니, 주변에 널리 좀 알려주세요"라고 답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습니다.

"여보세요?"

"저..예전에 이 번호 쓰던 사람인데요."

전 저도 모르게 "혜영아!"라고 외칠뻔 했습니다.

"아, 네. 안녕하세요!!"

"제가 번호 바꿨는데, 친구들이 이 번호로 연락했다가 혼났다고 해서요.."

"아...!" (혼낸적은 없는데..-_-;;;)

"죄송하다고 연락드렸어요. 귀찮으셨을텐데 전화 받아주셔서 감사하다구요."

"아...아니예요. ^_^;;;"

그 후로도 그 여학생을 찾는 전화가 가끔 오긴 했지만, 몇년이 지난 지금은 스팸문자나 광고성 전화만 많이 오고 있습니다. ^^;;;

동철학생이나 현준학생, 혜영학생(모두 가명) 모두 지금쯤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텐데.
현준학생은 혜영학생과 연락을 하며 지내고 싶어하던 꿈(?)을 이루었는지, 궁금하네요.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맹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조재진 2010/05/25 08: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재밌네요. ㅋㅋㅋ
    만약 정말로 군대 선임이 그러셨던 거라면... ㅎ_ㅎ

    • BlogIcon 맹태 2010/05/25 08: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아득해지는 기분이었습니다.. '날 좋아해서 그렇게 괴롭혔던건가??' 라는 생각부터...ㅋㅋㅋㅋ머리속이 복잡했지요.ㅋㅋ
      다행히 그 선임도 전형적인 남자여서 지금은 연락하며 잘 지내고 있답니다..^^;;

  2. ㅋㅋㅋ 2010/05/25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 너무 재밌어요.ㅋㅋㅋㅋㅋㅋ
    우연히 이름이 같으니깐 더 재밌는 상황이 되었네요.ㅋㅋㅋ

    • BlogIcon 맹태 2010/05/25 13:43  댓글주소  수정/삭제

      ^_^
      선임이 정말 격투기선수 추성훈 선수와 비슷한 이미지였는데..문자를 받고선 섬뜩한 기분도 들었어요..ㅋㅋ

  3. 서성 2010/06/16 16: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ㅋㅋ
    우연히 들어왔다가 재밌는글 잘 읽고갑니다!
    그나저나 굉장한 우연이네요ㅎㅎ

  4. 박선혁 2010/07/31 1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는 에피소드 잘 보고 갑니다 ㅎㅎ

이과수 폭포, "악마의 목구멍"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무슨 일인가 지켜보니, 관광객들이 벤치에 앉아 잠시 쉬어가며 빵을 먹고 있는데 수풀 속에서 새들이 나타난 것이었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이 새의 이름은 Plush-crested Jay 라고 합니다.
학명은 Cyanocorax chrysops 라고 하는데, 우리말 이름은 무엇인지 잘 모르겠네요.
관련 자료를 찾던 중, 발견한 ☞블로그(Juan의 라틴 아메리카 이야기)☜에서는 포루투갈어 이름을 번역하면 "쪼는 어치" 정도로 번역할 수 있다고 합니다만, 영문명(Plush-crested Jay)를 번역하면 "부드러운 재질의 볏이 달린 어치"쯤 될 것 같습니다.



혹은 위에 언급한 블로그에서처럼 "눈썹 달린 새"라는 이름으로 불러도 좋겠네요. ^^
파란 눈썹이 달린 것 같죠?
(우리말 이름을 아시는 분은 댓글로 좀 알려주세요..^_^)


"저걸 먹어도 될까?" 고민하는 눈썹새(?)

가까이 다가와 잽싸게 빵을 집어먹는 모습



김형오 국회의장도 빵을 얻어 건네보았는데요, 잽싸게 빵을 집어 사라지는군요.



뒤 따르던 일행도 먹이주기를 한번 시도해 보았는데요, 좀 더 성공적인듯 합니다. ^_^

인터넷을 검색하다보니 이과수 폭포에는 "Bird Park" 라는 곳도 있다고 하는데.
그곳이 아니어도 이렇게 가깝게 새들이 다가오는 것을 보니 참 신기하고 매력적이네요.

다음에 또 기회가 될지 모르겠지만, Bird Park도 꼭 한번 방문해보고 싶네요.
혹시 누구 다녀오신 분 안계신가요? ^_^
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
Creative Commons License
Posted by 맹태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BlogIcon 악랄가츠 2010/05/24 19: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와우! 판타지소설에서나 볼 법한 진귀한 새이네요!

    • BlogIcon 맹태 2010/05/24 22:13  댓글주소  수정/삭제

      정말 신기하게 생겼죠.
      이름 찾느라 고생 좀 했는데..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새라 그런지, 우리말 이름은 찾기 힘드네요.^^
      가츠님이 하나 지어주세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