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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하는 이스탄티노플 역사 기행 2
                              - 타임머신 타고 550여년 전으로

▲ 작열하는 여름 햇살을 받으며 지대가 낮은 격전지를 향해 걸어 내려갔다. 멀리 성곽 위로 오스만 투르크의 깃발에서 유래한 현대 터키 국기가 펄럭이고 있다.


▲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성 로마노스 군문(제 5군문) 앞에서. 영화 <인디아나 존스>의 한 장면 같지 않은가.

◀ 성로마노스 군문 입구 석벽에는 비잔틴 시대의 글씨가 새겨져 있다. 의미심장한 내용이 담겨 있음직한데 해독할 능력이 없는 것이 안타깝다.



▲ 저 허물어진 성벽은 아마도 세월의 탓이겠지만, 1453년 당시 치열했던 격전이 휩쓸고 간 뒤의 모습도 저와 다르지 않았으리라.


▲ 격전지 성벽의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으리라. 한 쌍의 청춘남녀가 이 더운 날 몸을 밀착시킨 채 다정하게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 성 로마노스 군문에서 성 로마노스 시민문(톱카프)을 향해 올라가는 길. 성 안쪽의 풍경이다. 그 옛날 먼지를 일으키며 말발굽 소리 요란하게 말들이 달렸을 길이 지금은 아스팔트로 바뀌어 자동차들이 질주하고 있다.


▲ 외성 위를 탐사하고 있다. 우뚝 솟은 건 내성의 주탑이다. 인도와 풀밭으로 바뀐 오른쪽엔 해자가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성곽의 안과 밖 그리고 위를 입체적으로 탐사했다. 사흘 내내 이런 식으로 다녔지만 성곽 탐사 관광객은 한 사람도 보지 못했다.



(그림을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술탄 메메드 2세의 콘스탄티노플 입성 모습. 기독교 국가인 비잔틴 제국 함락 사흘째 되던 날 오후, 스물한 살 술탄이 예니체리 군단의 삼엄한 호위 아래 대신들과 장군들, 이슬람교 고승들까지 거느리고 카리시우스 성문(에디르네카프)을 지나고 있다. 술탄의 행선지는 아야 소피아. 말발굽 아래로 피를 흘리며 어지럽게 쓰러진 비잔틴 병사들의 시신이 처참했던 전투 상황을 웅변해 준다.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 ‘이스탄불 정복자 협회’에서 톱카프 성문 벽에 부착해 놓은 안내문.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는 내 네이버 블로그에 이런 해석을 달아 놓았다. "1453년 5월 29일 화요일 아침, 정복자 파티의 군대는 대포를 쏘아 부서진 이 근처의 공백을 통해 이스탄불로 진입하였다."
톱카프는 ‘대포·포탄(톱)이 지나간 문(카프)’이란 뜻으로 가장 치열했던 전투가 펼쳐진 곳 중 하나이다. 무너뜨리려는 자들과 지켜내려는 자들의 결사항전, 그 현장에 서자 나도 자못 비장한 기분이 들었다.


▲ 톱카프 성문 앞 분위기. 복원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성벽의 엄청난 두께를 실감할 수 있다. 왼쪽 벽에 화살표와 함께 파란색 페인트 글씨로 쓴 "WC"는 낙서인가, 화장실 안내문인가.


▲ 톱카프에서 제 4군문을 지나 레기움 문(메블라나카프)을 향해 가는 길. 복원된 성벽 모습이 감동을 반감시킨다.


 

▲ 성곽 탐사 도중 날이 저물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십자가가 세워진 뾰족 지붕 아래서 은은한 종소리가 부드럽게 발목을 잡으며 이제 그만 쉼표의 시간을 가지라고 속삭였다. 그래도 나는 행군을 멈추기가 아쉬웠다.

 

▲ 마르마라해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구시가지 전경. 왼쪽 끝은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가운데는 아야 소피아(하기야 소피아)이다. 해변에 서 있던 비잔틴 시대의 등대는 현대식 등대로 바뀌어 있다. 내가 탄 배는 보스포루스 해협이 끝나고 마르마라해가 시작되는 지점을 지나고 있다. 등대 오른쪽으로 해안 성벽이 보인다. 해안 성벽 탐사와 아야 소피아 이야기는 다음에 또 사진과 함께 소개할 생각이다. (기대하시라!)


▲ 유람선 위에서 바라본 블루 모스크 전경. 이 도시에 있는 수백 개의 모스크 가운데서 블루 모스크는 첫눈에 알아보기가 가장 쉬운 이슬람 사원이다. 6개의 첨탑(미너렛)이 그 위용을 자랑하는 유일한 모스크니까. 마르마라 바다에서 정면으로 바라볼 때 블루 모스크의 전경이 가장 잘 보인다는 사실을 새삼 '발견'해냈다.  


▲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전쟁 당시의 갤리선 선장이 된 심정으로 유람선을 타고 해상 전투의 현장을 둘러보았다. 스티븐 런치만의 책(1453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에서 읽은 해상 전투 상황을 조류의 흐름과 바람의 방향을 가늠해가며 더듬어 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지도로 보는 탐사 경로.
카리시오스문 일대▶제 5군문▶성 로마노스 시민문▶제 4군문 일대(분홍색 사각형 부분) 아야소피아▶블루모스크▶등대(분홍색 삼각형 부분)
를 사진에 담았다. 블루 모스크·아야 소피아·등대가 담긴 사진은 마르마라 바다 위 유람선에서 찍은 전경이다.
* 하늘색 사각형 부분은 1편(☞지도에는 없는 도시, 이스탄티노플에 가다)에 소개한 탐방경로이다.


※1453년 당시 지도에 비해 현재 크게 달라진 4가지 포인트

1. 붉은색 표시
1453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가로질러 흐르던 리쿠스 강은 지금은 복개되어 새 도로(아드난 멘데레스 불와르)가 나 있다.


2. 초록색 표시
성 로마노스 시민문(톱카프) 부근에서 시내로 새 길이 나 있다.
길 이름은 밀렛 자떼시(Millet Caddesi). ‘시민의 도로’란 뜻이다.


3. 파란색 표시
마르마라 해변을 옆에 끼고 기찻길이 펼쳐져 있다. 이 레일 위로 파리에서 이스탄불 사이를 오가는 오리엔탈 특급 열차가 달린다. 그 종착역 겸 시발역이 바로 시르케지 역이다.


4. 노란색 표시
마르마라해 바다 성벽은 매립으로 해안 성벽이 돼 버렸고, 또 일부는 철도와 자동차 도로 등이 생기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노란색은 바다를 매립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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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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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킬리만자로의 표범 2010/08/30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눈이 시원해지는 사진과 재기발랄한 캡션.
    가슴이 탁 트이는 느낌입니다.

  2. 페이스북 2010/08/30 23: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시오노 나나미 책 표지에 써 있는 글귀가 새삼 떠오릅니다.
    "국가의 적은 안팎에 있다.
    적으로부터 국가를 보호해 주는 것은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는 방위력
    그리고 상대 국가와의 우호 관계이다."
    대한민국의 일부 철부지 젊은이들,
    가슴에 새겨야 할 금언입니다.

  3. 돌솥밥 2010/08/31 08: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터키가 참 많은 감동을 지닌 나라 혹은 관광지라는 걸 사진을 보고 느끼게 됩니다. 그만큼 굴곡이 많았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우리나라도 다 허물어버리지만말고 좀 보존하는 쪽으로 갔으면 좋겠다 싶습니다. 좋은 기억이든 안 좋은 기억이든 , 다 남겨서 교훈으로 삼는 아량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좋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땡스!!

  4. 인디아나고 2010/08/31 09: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드벤처 무비
    주인공이 되신 것 갈군요
    이스탄티노플
    3탄도 기대됩니다

  5. BlogIcon 전자돌이 2010/08/31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마지막 사진은 인디아나존스 같아요 ^^) 점점더 흥미진진해 지는군요!

  6. 유근준 2010/08/31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오의 인간에 대한 순수함과 역사와 문화에 대한 소양과 열정이 정말 부럽습니다.

  7. BlogIcon crys1964 2010/09/02 1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사진과 글 잘 보았습니다. 트위터로 의장님을 안 후 이제 그동안 몰랐던 부분도 알면서 좀 더 의장님을 알게 되네요. 기자생활을 하셔서 탐사활동에 더 관심이 있으신지도 모르겠습니다만, 타고난 학구열이 강하신게 아닌가 생각됩니다. 많은 감동 받았구요. 앞으로도 의장님의 좋은 글 기대하겠습니다.

  8. 두륜 2010/09/06 1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무더운 날씨에 유적을 땀 흘려가며 둘러 보시는 모습이 인상 깊네요...
    여행 하시는 동안 역사에 대한 새로운 지식을 많이 얻으신것 같습니다...
    무한부득(無汗不得) 땀 흘리지 아니하면 얻을 것이 없다....
    몸소 실천하시는 모습 좋습니다...

  9. 두바퀴 2010/10/17 09: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균형 잡힌 시각으로 저 먼 시간과 공간으로 날아가
    역사의 수레바퀴를 굴려가는 모습이 감탄스럽습니다.
    이 시리즈가 끝날 때쯤에는 저도 뭔가
    새로운 세계에 눈을 뜬 느낌일 것 같습니다.


김형오 前 국회의장이 8월 27일 오후 국회 방문자 센터를 찾았습니다.
무슨 일로 이곳을 찾은 걸까요?

김형오 의장 뒷편으로 초상화가 걸려있네요. ^_^


국회 방문자 센터에는 역대 국회의장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요,
지난 5월말 제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직에서 퇴임한 김형오 前 의장의 초상화가
설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그림을 보러 온 겁니다.


"아! 저깄군요!"


역대 국회의장들의 초상화를 찬찬히 둘러봅니다.


짠~! 어때요? 닮았나요?


이 초상화는 중견 서양화가인 박천웅 화백의 작품입니다.

"여기에 과연 몇 대(代) 국회의장의 초상화까지 걸 수 있을까?"

김형오 의장의 혼잣말에 권오을 국회 사무총장은 뒷편의 넓은 벽을 가리키며
"아직 자리가 많이 남았습니다, 의장님~" ^^;;

"내가 저렇게 생겼나?"

초상화를 볼 때면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이 좀 더 자연스러웠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른바 '얼짱 각도'로 '셀카'를 찍어,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지워 버리고 '잘 나온 사진'만 남겨둘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살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초상화에는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국회의장 재임 기간 2년의 모습을 한 폭의 초상화에 담는 것은 어찌 보면 무리인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 초상화 한 장에, 제18대 전반기 국회에서 2년간 국회의장으로서 느낀 고뇌와 충정 그리고 전심전력을 담으려 애쓴 박천웅 화백의 마음이 붓끝에 묻어나온 것만 같습니다.
정면에서 볼 때와 왼쪽, 오른쪽에서 바라볼 때 표정이나 인상이 미묘하게 바뀌는 것도 이 그림의 매력입니다.

"나이 마흔이 넘은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링컨은 말했습니다.
국회 방문자 센터에 들르거든 꼭 역대 국회의장들의 초상화를 세심하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얼굴들에서 그 시대의 초상과 역사의 편린을 읽는 재미도 덤으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소년 소녀라면, 젊은이라면 김형오 국회의장으로부터 몇몇 자리 지난 벽면에 훗날 자신의 얼굴이 걸리게 하겠다는 야심찬 희망을 품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여성 국회의장의 초상화를 보는 것도 그리 먼 미래의 일은 아니겠지요.

"제18대 전반기 국회의장 김형오"의 모습을 그림에 정성스레 담아주신 박천웅 화백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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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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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김화자 2010/08/28 2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상화 보다 실물이 더욱 더 멋지신것 같습니다.

  2. 페이스북 2010/08/29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는 각도에 따라 표정과 인상이 달라 보인다?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국회 가면 꼭 보러 가야겠습니다.

  3. 너서미 2010/08/30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국회방문자센터에 드디어 김형오 의장님 사진이 걸렸군요.
    축하합니다.

  4. 두륜 2010/08/30 1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회의장으로서 보낸 2년의 시간....
    국회의원으로 돌아온 지금, 남은 2년의 시간...
    앞으로의 행보에 따라 방문자 센터에 걸린 초상화가
    국민들의 마음속에 더욱 멋진 모습으로 기억되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의 수많은 학습의 결과물이 의장님의 미래에 소통과 화합의
    결정체로서 거듭 나기를 힘주어 기도 합니다.

  5. 셀리 2010/08/30 1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똑같아요..실물이랑..

  6. 유근준 2010/08/31 2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멋진 우리의 친구 김형오, 탄탄한 실력의 중견화가 박천웅화백의 붓 속에 살아난 약간은 어색한 듯한 미소가 더욱 살갑습니다.

사진과 함께 하는 이스탄티노플 역사 기행 1
                              - 지도에는 없는 도시를 가다

  그대 혹시 이런 이름의 도시를 아시나요? 이스탄티노플(Istantinople).

  아마 어디선가 들어본 듯한 이름일 것입니다. 그러나 세계 지도를 펼쳐 놓고 아무리 찾아 봐도, 지명 사전을 열심히 뒤져 봐도, 네이버 지식 검색에 입력을 해봐도 결코 나오지 않는 도시. 그러면서도 왠지 익숙한 그 이름, 이스탄티노플. 이 도시가 지금으로부터 550여 년 전으로 나의 시계와 발걸음을 돌아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탄티노플은 다름 아닌 이스탄불(Istanbul)과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합성어, 바로 내가 창안하고 개념 짓고 명명(命名)한 도시입니다. 절묘하지 않습니까. 신기하게도 이스탄불의 ‘불’과 콘스탄티노플의 ‘콘’, 그렇게 한 글자씩만 떼어낸 다음 조합하면 이스탄티노플이란 단어가 탄생하니 말입니다.

▲ 한여름 햇살이 화살처럼 쏟아져 내리는 날, 차양 넓은 모자를 방패삼아 쓰고 격전지 성곽 순례에 나섰다. 마치 종군 기자가 된 심정으로. (내 옆에 있는 ‘미녀 삼총사’는 왼쪽부터 해안 성곽을 전공하는 역사학도 니사, 터키어가 유창한 현지 통역사 이경숙씨, 이스탄불 총영사관 정은경 박사이다.)


  언어유희로 웃어넘기거나 폄하할 일이 아닙니다. 터키의 경제수도 격인 이스탄불은 실제로 그 도시의 옛 이름인 콘스탄티노플의 역사와 문화가 발길 닿는 곳마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고 있는 아주 특별한 공간입니다. 현재의 이스탄불과 과거의 콘스탄티노플이 공존하는 도시랄까요.


  잘 아시다시피 동서양의 교차로인 이스탄불은 민족·인종·지역·종교·문화가 얽히고설킨 곳입니다. 아시아 내륙 깊은 곳에서 시작되는 실크로드의 최종점입니다.


  나는 지난 8월 초순 나의 휴가를 온통 그 곳에서 보냈습니다. 3일은 그 유명한 아야 소피아(하기야 소피아, 성 소피아 성당)에 틀어박혀 있다시피 하였고, 또 3일은 배낭을 멘 채 1500년 된 성곽을 뙤약볕 아래서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걷고 또 걸었습니다.


▲ 어디선가 본 듯 눈에 익은 꽃들이 양옆으로 도열해 입성하는 우리를 맞아 주었다. 저 하얗고 빨갛게 피어난 꽃들에 그 당시 숨진 병사들의 넋이 깃들어 있는 건 아닐는지….


  아야 소피아는 온종일 사람들로 붐볐습니다. 해마다 이 도시를 찾는 2700만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나 다름없는 곳이니까요.

  그러나 우리 일행처럼 사흘 내내 아야 소피아의 1․2층은 물론 부속 건물들과 외벽, 지하실까지 보물찾기하듯이 뒤지고 살펴본 이는 드물 것입니다. 게다가 그 건물을 가장 잘 알고 사랑하는 전문가(하산 박사)를 만나 열정적 토론을 한 이틀 반은 이 위대한 건축물의 숨소리, 눈물 자국마저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 성곽 위에서 바라본 이스탄불 구시가지 모습.


  지금은 박물관이 된 아야 소피아에서 나는 1453년으로 돌아가 황제의 간절한 기도와 술탄의 장엄한 연설을 들으려고 애썼습니다. 그 소리들은 관광객들이 쏟아내는 소음 가운데서 들릴 듯 말 듯 나를 애태웠습니다.


  “도시를 세운 이(콘스탄티누스 1세)가 도시를 망하게 한다(콘스탄티누스 11세).”는 전설과 *
선지자 모하메드의 예언대로 메메드 2세(모하메드 또는 마호멧의 터키 식 이름)가 정복자(‘파티’, Fatih)가 되는 이런 역사는 우연인가요, 필연인가요.


  *“한 쪽은 육지이고 다른 두 면은 바다로 된 도시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삭의 7만 아들이 그 도시를 점령하기 전까지는 심판의 시간을 알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을 것이다.”


▲ 대포? 노! 성 아래에서 성 위로 물건을 들어올리기 위한 장치였다.


  역사의 한 페이지에도 제대로 머물러 있지 않지만 세계사의 방향을 바꾼 획기적인 대 사건…. 이슬람 세력(오스만 투르크)이 기독교 세력(비잔틴 제국)을 포위한 채 총공격을 감행한 **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전쟁은 세계 전사상 가장 처절했던 전투였습니다. 동원 가능한 인력은 물론 모든 역량과 지혜가 총집결되었습니다. 육전·해전·지하전이었고, 또한 외교전·첩보전·심리전이었습니다.


  **서양의 역사학자들은 공식적으로는 이 전쟁을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되는 전환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한 이는 르네상스를 꽃피우는 계기로도 작용했습니다. 아시아계이면서 이슬람 신앙을 지닌 오스만 세력이 유럽에 속한 기독교 국가인 비잔틴 제국을 멸망시킨 이 기념비적인 사건은 그러나 오히려 그 때문에 그 동안 세계사에서 소홀히 다루어져 왔습니다. 서양인들로서는 애써 외면하고 싶은 ‘패배와 굴욕의 역사’였기 때문입니다. 가장 잔인하고도 처절했던 사생결단의 전쟁이었지만, 정복 이후 오스만은 비교적 관대하게 기독교 문화를 포용했습니다. 어쩌면 그로 인해 오스만 제국이 500년 가까이 유럽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런 큰 의미와 중요한 가치를 지닌 사건이건만 너무나 소홀히 다루어지고 덜 알려져 있는데 대한 안타까움이 역사학자도 아닌 나를 ‘1453년’에 심취하게 만든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 9세기 성벽(왼쪽)과 12세기 성벽(오른쪽) 양식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이 모두가 블라케르나에 황궁(테플 사라이)을 지키던 성벽이다. 물론 보수 및 복원의 손길을 거친 모습이다.

  20여 킬로미터에 달하는 성곽은 3면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두 개 면은 바다와 만(마르마라해와 골든혼)에 접해 있고, 한 개 면은 육지 위에 세워졌습니다. 육지 부분은 3중 성벽으로서 150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위용을 잃지 않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동로마 제국을 1000년 넘게 지켜 준 난공불락의 철옹성인 ‘테오도시우스 성벽’입니다.

▲ 짧게는 40미터, 길게는 90미터 간격으로 방어용 타워들이 우뚝우뚝 서 있다. 멀리서 보면 톱니바퀴 모양이다.


  나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는 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을 살피고 또 살폈습니다. 병정놀이하는 아이처럼 성곽의 앞과 뒤를 가로지르고 성벽의 위아래를 오르내리며 포탄 자국과 혈흔을 더듬었습니다. 총공격을 독려하는 술탄(메메드 2세)의 우렁찬 목소리와 죽음으로 성을 지키려는 황제(콘스탄티누스 11세)의 발자국을 찾으려 했습니다.

  

▲ 통상 성곽 앞에는 군데군데 묘지가 조성돼 있다. 묘지는 성곽 터를 측정하는 주요 지표로 쓰이기도 한다.

  내가 그 도시에 머문 기간은 너무나 짧고 한편으로는 길었습니다. 순간과 영원 사이를 오고간 느낌이랄까요.

  그래서인지 그 도시를 생각하면 어떤 때는 열 권의 책이라도 써낼 수 있을 것 같다가 또 어느 때는 한 줄의 글조차 감히 적어내기가 막막할 것 같은 생각이 들곤 합니다.


  두 번은 짧게, 한 번은 조금 길게 그 도시에 다녀왔습니다. 짧은 두 번의 방문 이후 나는 그만 그 도시에 사로잡혀 버렸습니다. 이름만 떠올려도 가슴이 뛰고 설레는 도시가 돼 버렸습니다. 도서관을 뒤져 수많은 책을 읽었습니다. 영문 혹은 터키어로 된 책자도 구해 보았습니다.


▲ 성 안에서 만난 천진난만한 아이들. ‘꼬레’(한국)에서 온 ‘꼬레리(한국 사람)’인 걸 알고는 스스럼없이 다가왔다. 이런 아이들만 보면 외손자·외손녀가 생각나서 덥석 안아주고 싶어진다. 

  국회의장 직을 마치자마자 나는 이 도시 방문 계획을 세웠습니다. 당대표에 출마하라는 주변의 권유와 스스로의 유혹도 뿌리친 채 배낭을 꾸렸습니다. 녹음기와 카메라와 지도는 소중한 탐사 자원이었습니다. 현지의 명망 높은 학자들을 만나 궁금증을 풀었습니다. 귀중한 자료도 손에 넣을 수 있었습니다. 4명의 단출한 ‘역사 탐방대’가 50도를 넘나드는 불볕더위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밤낮으로 헤집고 누비고 다녔습니다. 문명과 문명, 그 충돌의 현장에서 많은 물음표들이 지워졌고 새로운 물음표들이 생성되었습니다.


▲ 최후의 날 당시의 황궁 터. 블라케르나에 황궁(테플 사라이) 중 비잔틴 양식이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곳으로서 아름다움과 웅장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이번에 나는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이스탄불보다는 콘스탄티노플을 더 많이 여행하고 돌아왔습니다. 터키와 그리스, 두 나라의 미묘한 국민감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것이 나에게 하등의 고려 요소나 지장을 주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내가 느낀 역사적 전율의 실체에 접근하기 위한 열망으로 길을 떠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550여 년 전의 치열했던 전투로 세계사는 바뀌었습니다. 한 제국은 사라지고 또 한 제국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20세기 들어 터키는 독립전쟁(1919~1923년)을 거쳐 공화국으로 거듭났습니다.


▲ 황궁이 끝나고 삼중 성벽이 시작되는 곳. 방어용 탑이 망루라 해도 좋을 만큼 높고 웅장한 위용을 자랑한다.

  진실은 역시 현장에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는 망원경으로 본 듯 느껴지던 것들이 직접 현장을 답사하니 현미경으로 보는 듯 생생하게 다가왔습니다. 나는 무너진 성곽 더미에서, 아야 소피아의 모자이크에서 두 제국의 실체를 느꼈습니다. 나에게는 두 제국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거대한 울림으로 동시에 다가왔습니다.


  심금을 두드리는 이 웅대무비의 교향곡을 나는 연주할 능력도 해석할 재주도 없습니다. 다만 보고 들었을 뿐입니다.

  어느 순간 내가 느낀 ‘이스탄티노플’을 독자들에게 전하는 것이 나의 소명처럼 여겨졌습니다. 나는 오직 사실(史實)과 사실(事實)에 입각할 것입니다. 때로는 즐거운 상상력도 동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내 능력과 상상력 부족으로 본의 아닌 왜곡이나 의미가 잘못 전달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내 탓이고 내 잘못입니다. 모든 것을 오로지 진실의 창을 통해 보려 했던 나의 신념이 부디 헛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다른 한편으로는 내게 과연 그럴 시간이 있을는지, 생생한 기억들이 희석되지 않을는지 걱정이 앞서기도 합니다. 독자 여러분 가운데서 혹시 오류를 발견하거나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분이 있다면 서슴없는 지적을 부탁드립니다.


▲ 카리시우스(에디르네카프) 성문 진입로. 여기를 통과하면 당시 성사도 교회(지금의 파티 자미. 자미(Camii)는 모스크, 곧 이슬람 사원을 의미한다)로 이어지던 메인 로드가 펼쳐졌다. 내 옆에 있는 아가씨는 박사 과정 역사학도 니사.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내 어드벤처에 앞장서 동행해 주었다.

  우선은 이 블로그에 짬짬이 간단한 캡션과 함께 사진으로 ‘이스탄티노플’을 소개할 생각입니다. 훗날 제대로 된 결과물을 내기 위한 워밍업 삼아서 말입니다. 최대한 편안하고 부담 없이 써나가려고 합니다. 영화로 치면 예고편일 수도 있고 시놉시스일 수도 있는 그런 작업입니다.

▲ 매실? 노! 한때는 두려울 게 없었던 투르크 전사의 후예인지도 모를 중년의 사내가 뱃가죽을 늘어뜨린 채 무딘 칼로 호두 껍데기를 벗겨내고 있다. 1500년 역사를 지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의 현주소라기엔 아이러니한 모습이다.

  서론이 길었습니다.

  오늘은 1453년 오스만 투르크에 의해 허물어졌던 비잔틴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의 격전지 성곽을 탐방한 사진 몇 컷으로 여러분과의 만남을 매듭짓겠습니다.

▲ 이중 성벽이 허물어진 모습 그대로 생생하게 살아 있다. 난공불락 철옹성도 세월의 무게는 견디지 못하는가.

▲ 제법 근사한 사진이 나왔다. 옛 성곽에선 누구나 프로추어(프로+아마추어) 사진작가가 된다. 구도를 어설프게 잡아도 피사체 스스로가 너무나 멋진 모습으로 작품을 완성시켜 주기 때문이다.

▲ 허물어진 성벽 너머로 모스크의 뾰족 탑이 보인다. 어느 사원인지는 이름을 잊었다. 이런 사원들이 수 백 개를 헤아리니까. 


※일러두기=여기에 실린 사진들은 전체 성곽 중 골든혼(할리치, 금각만)이 끝나는 지점에서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곳까지의 성곽 중 일부를 탐사한 기록입니다. (답사 지도의 하늘색 표시부분) 20여 킬로미터에 이르는 성곽 탐방로의 극히 일부분임을 밝힙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1453년 당시 지도에 비해 현재 크게 달라진 4가지 포인트

1. 붉은색 표시
1453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가로질러 흐르던 리쿠스 강은 지금은 복개되어 새 도로(아드난 멘데레스 불와르)가 나 있다.


2. 초록색 표시
성 로마노스 시민문(톱카프) 부근에서 시내로 새 길이 나 있다.
길 이름은 밀렛 자떼시(Millet Caddesi). ‘시민의 도로’란 뜻이다.


3. 파란색 표시
마르마라 해변을 옆에 끼고 기찻길이 펼쳐져 있다. 이 레일 위로 파리에서 이스탄불 사이를 오가는 오리엔탈 특급 열차가 달린다. 그 종착역 겸 시발역이 바로 시르케지 역이다.


4. 노란색 표시
마르마라해 바다 성벽은 매립으로 해안 성벽이 돼 버렸고, 또 일부는 철도와 자동차 도로 등이 생기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노란색은 바다를 매립한 부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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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케밥 2010/08/25 14: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생생해서 좋군요. 사진 좀 많이 올려주시면 더욱 좋을 듯....여행정보는 사진만으로도 충분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터키 소식 기대할게요...감사합니다!!

  2. 파묵 2010/08/25 16: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스탄티노플, 멋진 조어면서 그 의미도 적절한 합성어입니다.
    저도 한번 흉내내볼까요?
    터키(Turkey)는 턴키(Turn Key), 즉 변화의 열쇠를 쥐고 있는 나라입니다.
    동로마 제국과 비잔틴 제국, 그리고 오스만 제국이 그랬듯이
    지금의 터키 공화국 또한 향후 세계 정세의 물길을 좌우할 수 있는
    키를 쥐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3. 파샤파샤 2010/08/25 1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글과 멋진 사진!
    이스탄티노플, 가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아집니다.

  4. 배가본드 2010/08/26 08: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 생애 언젠가 기회가 닿는다면
    나도 이스탄불이 아닌
    이스탄티노플에 다녀오고 싶어진다.

  5. 국밥 2010/08/26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쓰고계신 모자가 인상적이네요..매우 활동적인 분이란 것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트레킹신발에 모자를 쓰고 배낭을 매고 계신 모습이 한층 젊어보이십니다. 좋은 정보 많이 기대하겠습니다. 감사~~

  6. 천년의 미소 2010/08/26 10: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 두번의 짧은 방문으로, 청년 술탄 메메드의 열정과 콘스탄티누스 11세의 간절한 기도를 재연해내는 상상력으로 위대한 우리 미래의 모습을 그려내고 구현해내기를 바랍니다.

  7. 이스마엘 2010/08/27 08: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스탄티노플, 네이버 검색해도 정말 안 나오는지
    검색창에 입력해 보았습니다.
    나오던데요.
    하지만 그건 이 블로그에 쓴 글 단 한 편에만 등장하더군요.
    고유명사로 특허 출원을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아니, 상표 등록인가.

  8. 두륜 2010/08/27 12: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이름인 콘스탄티누스와 도시라는 뜻의 라틴어 "폴리스" 가 합쳐저 콘스탄티노폴리스 라는 도시가 생겼죠..... 여기서 유래한 도시명 "콘스탄티토플" .... 의원님께서 명명하신 "이스탄티노플" 오스만투르크 제국의 침공으로 사라진 비잔티움의 옛 영화와 발자취가 느껴지는 듯 하네요....

  9. 페이스북 2010/08/29 13: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공미(?)가 팍팍 풍기는 성벽 모습이 안타깝습니다.
    세월의 나이테까지 되살리기가 쉽지야 않겠지만
    복원 작업이 너무 무성의하게 이루어진 느낌입니다.
    대한민국의 문화재 모조 전문가들을 동원했더라면
    좀 더 근사한 작품이 나왔을 텐데 말입니다.

  10. 유근준 2010/08/31 2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격조와 재미를 함께하는 김형오의 필체에 멋진 사진들이 곁들여져 흥미진진한 기행 앞으로 책으로 엮어지면 더욱 볼 만하리라 기대됩니다.

  11. 이우종 2010/09/09 11: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우종
    좀 늦게나마 사이트에 접하게됐군요. 앞으로 전개될 이스탄틴노플의 이야기가
    벌써 궁금해집니다. 마음이 앞서 달리네요. 맛깔난 필치로 새로이 탄생할 역사의 이야기를 빨리 접허고 싶은 마음에 글을 짧게 줄여야 겠습니다. 좋은 글 감사한 마음으로 읽겠습니다.

  12. 조르바 2010/09/09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스탄티노플(이스탄불+콘스탄티노플)?
    정말 네이버 쳐 봐도 이 블로그에서밖엔 사용을 안 했네요.
    이어령 교수가 명명한 디지로그(디지털+아날로그)보다
    더 환상적인 조어 솜씨입니다요.

  13. 도성 시민 2010/10/09 11: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 이스탄티노플 도성 시민으로 등록했습니다.
    번성기 한때 인구 1백만을 껑충 뛰어넘는
    1000만 시민의 이스탄티노플 도성을 만들어 봅시다!

  14. 칼칼칼칼 2010/10/12 11: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칼날 위에서 번뜩이는 술탄의 카리스마.
    칼에는 칼로 맞서는 황제의 신념.
    칼로 흥한 자 칼로 망한다 했으나
    칼집은 피냄새를 맡고 싶어한다.

  15. 크리에이터 2010/10/31 0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때로는 한 도시가 어느 집념어린 사람의 열정과 창의에 의해
    새롭게 해석되거나 재창조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경탄을 느낍니다.
    김형오의 이스틴티노플, 정말 기대만발입니다.

  16. 앙코르 2010/11/21 08: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스탄티노플, 그 매력적인 도시로 가는 타임머신에 탑승하다.

지난 8월 18일, 한양대 학생들에게는 MJ로 통한다는 '마장갈비'에 한무리의 학생들이 모였습니다. 바로 김형오 前의장과의 만남을 위해 모인 한양대 토론 동아리 "한토막" 학생들이었습니다.


"한토막"이란 "양, 론의 을 올리다"라는 서술형 동아리 이름의 약자인데요,
작년 제1회 국회의장배 대학생 토론대회를 계기로 결성되어 그 인연으로 이렇게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여름방학이다보니 일부의 인원들만이 참석했다고 하네요.^^)

부산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서둘러 약속장소로 향했지만, 교통체증에 비까지 오는 바람에 약속시간에 늦어진 김형오 의장은 직접 전화를 걸어 "학생들 먼저 맛있게 식사하며 기다려 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늦어서 미안해요~"


서둘러 달려온 김형오 의장을 맞이한 한토막 동아리 회장은 건배사를 제의했습니다.

"거품 만드는 기술이 뛰어나구나!"


"당신멋져!"

동아리 회장이 제의한 건배사 "당신멋져!"

당하게 살자
나게 살자
지게 살자
주면서 살자

..는 뜻이라고 합니다.

정말 "당신 멋져!"


멋진 이들의 저녁식사


'한토막'이라는 이름이 '한양, 토론의 막을 올리다'라는 뜻을 품고 있듯이, '당신멋져'에도 이런 깊은 뜻이..! (역시 요즘은 이런 축약형 단어가 대세..! 쉽게 말하자면 비빔냉면은 비냉, 물냉면은 물냉..?)

얼마전 다녀온 터키의 이야기로 시작하여 학생들의 여행경험담과 국회의장 재임시절 희망탐방 이야기로 이야기 꽃을 피웠습니다.

"上善若水" 인증샷!


인생에 도움이 되는 지혜의 문구나 명언을 정리하는 습관을 갖고 있는 이 친구는 김형오 의장으로부터 "上善若水(상선약수)"라는 문구를 받고서 무척이나 기뻐했습니다. ^^

上善若水(상선약수)
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뜻. 노자 사상에서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하면서도 다투지 아니하는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의 표본으로 여기어 이르던 말.

카메라로도 찍고~


휴대전화로도 찍고~



하지만 이들은 '토론 동아리'!
토론 동아리답게 서서히 심도있고 날카로운 질문들이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이쯤되자 의장님은 "어이, 그쪽 테이블도 이리 와서 함께 이야기를 나눠 봅시다." 하며 자리를 하나로 모았습니다. 의장님을 중심으로 모여 앉은 학생들은 정치에 대해 궁금했던 점, 요즘 대학생들의 실질적인 고민을 묻고 답하며 뜨거운!! 토론 동아리 '한토막'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 곳에서 나눈 이야기의 결론은...
정치는 말하는 것, 말은 그 사람의 인격 문화의 현주소 - '한토막'에게 보냄

김형오 의장이 한토막 동아리에게 남기는 메시지에 이 날 나눈 이야기의 핵심을 요약하여 적었습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김형오 의장이 먼저 제안했습니다.
"맥주 한잔 하면서 딱! 30분만 더 이야기 할까?"
학생들은 콜!!!

마장갈비를 떠나며...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지난번
중앙대학교 학생들과의 만남(트위터 친구, 오프라인까지 간다!)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한토막 친구들은 "중앙대학교 학생들과 한번 만남의 자리를 가져보면 어떨까요?"라며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기도 했습니다. 김형오 의장은 "만나는건 좋은데 내 허락을 받고 만나야 한다."며 웃음지었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소통의 중요성을 더욱 절실히 느낄 수 있는 귀중한 자리였습니다.

반가웠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요~!! (다음엔 한토막+중앙대 모임에서 만나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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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두륜 2010/08/30 1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상선약수(上善若水)

    수선리만물(水善利萬物) 물은 능히 만물을 이롭게 하되
    이부쟁(而不爭) 다투지 아니하고
    처중인지소오(處衆人之所惡) 모든 사람들이 싫어하는 낮은 곳에 처한다
    고기어도(故幾於道) 그러므로 도에 가까운 것이다

    지금 처럼 소통하고 앞으로 더 많은 대화를 한다면 능히 상선약수의 삶을 살수
    있을거라 생각이 드네요.... 물장수?(광천수,삼다수,,,상선약수?^^) 화이팅...



2010년 8월 19일,  KBS 라디오 "라디오정보센터 이규원입니다" 김형오 前국회의장 인터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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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퇴근 길, 태풍 뎬무가 떠난 여의도 하늘에는 풍!성!한 구름이 가득...!!!

와 예쁘다~!!

클릭해서 보세용~


하늘 가득한 구름만큼이나
퇴근 길 도로엔 차들이 한가득...!ㅠㅠ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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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일부터 9박 10일의 일정으로 터키를 방문하고 오늘 돌아왔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동안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피곤한 가운데 터키의 아름다운 풍광이 아직도 눈 앞에 아른거립니다.

이동 중에 만난 예쁜 어린이와의 기념사진으로 간단한 인사를 마칩니다.
터키 이야기는 여독이 풀리는대로 차차 정리해서 여러분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길에서 만난 어린이와 잠든 고양이 ^_^


터키 고양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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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케말파샤 2010/08/11 13: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터키에서 어떤 느낌을 하나 가득 담아오셨는지 궁금해집니다. 블로그에 시리즈물로 올려주실 것을 기대해봅니다. ^^

  2. 해피송송 2010/11/04 14: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가가 너무 귀여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