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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0마리의 황소가 끄는 수레에 초대형 대포를 싣고 콘스탄티노플로 향하는 오스만 군사들. 백마를 탄 술탄의 양 옆에서 장총을 든 예니체리가 호위를 하고 있다. 말발굽에 짓밟히고 있는 들꽃들이 곧 닥쳐올 비잔틴 시민들의 운명을 암시하는 듯하다.


  2009년 1월 이스탄불 군사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오스만 투르크 군이 배를 끌고 산(언덕)을 넘어갔다는 생뚱맞은 얘기를 들었습니다. 처음엔 통역 실수려니 생각했습니다.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는 우리 속담이 있지만, 그거야 뭔가 어수선하고 중구난방인 상황에선 엉뚱한 일도 일어날 수 있음을 경계하는 말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 말도 안 되는 일이 실제로 일어난 것입니다. 또 그로 인해 세계 전쟁사를 바꾼 일대 전기를 만들었다니, 경이롭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도시 ‘이스탄티노플’에서 1453년에  엄연히 있었던 명백한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주인공이 바로 술탄 메메드 2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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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콘스탄티노플 공방전 당시 양군의 배치도. 흰 두건을 쓰고 백마를 탄 술탄(왼쪽 위)은 우르반의 대포를 앞세우고 메소테이키온 성벽 맞은편 400미터 지점인 리쿠스 계곡에 황금빛 막사를 설치했으며, 황제는 그에 정면으로 맞서 성벽 바로 안쪽에 비잔틴 정규군과 함께 포진했다. 육지와 바다 모두 술탄의 병사들이 빈틈없이 에워싸고 있다. 이 그림에서 잘려나간 지역까지 감안하면 오스만 군은 우선 수적(數的)으로 비잔틴 군을 압도했음을 알 수 있다.


  골든혼을 가로질러 선박의 침입을 봉쇄했던 방어 철책(위 그림 오른쪽 상단 및 아래 사진 참고)을 직접 보고 난 뒤로는 술탄이 배를 끌고 언덕을 넘어갔다는 역사적 사실이 감동을 넘어 전율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엄청난 굵기의 쇠사슬을 보자 비로소 1453년 전쟁 당시의 분위기가 눈에 잡힐 듯 실감이 났습니다. 그때부터입니다. 나는 21세의 청년 술탄(메메드 2세)에게 깊은 관심을 갖게 되었고, 알면 알수록 매료되었습니다. 나중엔 술탄과 그가 점령한 콘스탄티노플이란 도시에 매몰되다시피 해서 틈만 나면 관련 서적을 읽고 자료를 뒤적였습니다. (국회의장 시절 여야 격돌의 소용돌이 속에서 나는 청년 술탄과 그의 야심찬 정복 전쟁, 콘스탄티노플의 결사항전을 떠올리면서 오히려 마음을 차분히 달랠 수 있었습니다. 처절했던 당시 상황에 지금 국회를 비교할 순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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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1453년 당시 골든혼 입구를 가로막고 있던 방어용 쇠사슬(컬러 사진). 하지만 전쟁이 끝나고 400년이 지난 19세기까지도 연결 고리 간격이 18인치에 이르는 이 거대한 쇠사슬이 도시 주변에 여전히 남아 있었음을 당시에 찍은 이 한 장의 흑백 사진이 증명해 준다.


▲ 마르마라 해안 성벽의 동쪽 끝 지점. 왼쪽 끝에 톱카프 궁전이 보이고, 오른쪽으로는 신시가지(페라 지역)가 펼쳐져 있다. 여기에서 왼쪽으로 뱃머리를 돌리면 골든혼으로 접어든다. 골든혼 입구 성채 아래 에우게니오스 성 탑과 페라 방파제 위의 탑 사이에 연결돼 있던 쇠사슬은 거기 어디쯤 위치해 있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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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궁전과 성벽 너머로 펼쳐진 바다를 놓아두고 이 대형 선박들은 왜 산(언덕)을 넘어가고 있는 걸까. 이 그림을 보다가 나는 문득 내 책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알카에다 지도자인 테러리스트 오사마 빈 라덴의 아버지 모하메드는 혹시 술탄의 이 기발한 역발상에서 힌트를 얻어 자신이 맞닥뜨렸던 난관을 돌파했던 건 아니었을까. “어리석은 사람은 체험을 통해 배우고, 지혜로운 사람은 역사를 통해 배운다.”란 말도 있듯이….

*“사우디의 숙원 사업이었던 메카에서 타이프를 잇는 고속도로 건설 현장. 하지만 험준한 바위산 위로 무거운 건설 장비를 옮길 도리가 없어 모두가 손을 놓고 있을 때 모하메드 빈 라덴은 불도저·포크레인 등의 중장비를 분해해 낙타 등에 싣고 현장까지 옮긴 뒤 재조립하는 기발한 방법으로 공사를 성공적으로 마쳐 사우디의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고 합니다. 그 또한 발상의 전환이 낳은 창조적 아이디어지요.”(『이 아름다운 나라』 162쪽)


  일부 문헌에는 메메드 2세의 참모로 일한 이탈리아 사람(성명 미상)이 아이디어를 제공했다고 나옵니다. 그러나 그런 사실 자체가 애매하고 불분명한데다가 만약 그랬다 해도 그것은 *평지 이동이었습니다. 술탄의 사례와는 차원이 다른 것이었지요. 술탄은 최소한 해발 60미터에 이르는 산등성이와 언덕을 수많은 배를 끌고 넘어갔습니다. 20층 빌딩 높이와 맞먹는 험한 비탈길을 바다(0미터)에서부터 끌고 간다니, 감히 상상인들 하겠습니까. 하지만 그것을 21세의 청년 술탄은 해냈습니다. 비상한 두뇌와 강력한 리더십이 없다면 꿈도 못 꿀 일이지요. 4월 22일 동틀 무렵부터 정오까지가 배를 끌고 간 본격적인 시간이었습니다. 그 대대적인 거사를 위해 술탄은 **4월 21일부터 보스포루스 해변 쪽과 골든혼 안에 있는 카슴파샤 지역에 걸쳐 대규모 인력과 장비를 동원한 육로 뱃길 공사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포병 부대에게 간간이 페라 지역을 향해 대포를 쏘라고 지시합니다. 주의를 분산시키고 눈길과 관심을 딴 데로 돌리면서 상상력을 차단시키기 위한 일종의 교란 작전이자 위장 전술입니다.

 

*베니스 인들이 롬바르디아 전투에서 소함대 전체를 바퀴 달린 받침대에 싣고 포 강(아디제 강)에서 가르다 호수까지 이동한 일.
**4월 21일은 육지 성벽에 대대적인 포격을 가해 콘스탄티노플 성 안에 있는 병사와 시민들이 이 계획 자체를 생각지도 못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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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상천외하고 전무후무한 작전! 백마를 탄 술탄의 독려를 받으며 드디어 배를 산으로 끌고 가는 작업이 시작되었다. 바다에서 해안가로 끌어올려진 배들은 그 순간부터 마치 거대한 수레로 변신한 듯 힘센 황소들에 의해 경사진 언덕을 끌려 올라갔다. 가파르고 험한 길에선 도열해 있던 수많은 병사들이 황소들을 도왔다.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 산으로 가는 건지, 산이 바다로 변한 건지 종잡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장관(壯觀)’이란 말로는 표현이 너무나 부족합니다. 술탄은 출항이라도 하는 것처럼 언덕을 오르는 배들에게 돛을 드높이 올리고 노잡이들을 승선시켜 노를 앞뒤로 움직이게 했습니다. 뱃머리에서는 악사들이 북을 치고 트럼펫을 연주했습니다. 놀이동산 바이킹도 그 광경을 보았더라면 순간 무색해졌을 것입니다. 독심술이 뛰어났던 걸까요. 술탄은 그렇게 병사들로 하여금 전쟁을 카니발처럼 치르게 했습니다.

  정상에 오른 배들이 골든혼을 향해 언덕을 내려갈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더욱더 세차고 무서운 기세로 배들을 바다에 밀어 넣었습니다. 무려 70척이나 되는 크고 작은 배들이 깃발을 펄럭이며 요란한 군악대 소리에 맞추어 골든혼으로 철석철석 내려왔습니다. 그걸 본 비잔틴 인들은 아연실색하면서 공포와 전율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심리전 효과까지 노린 것입니다.

  이 사건은 전쟁의 분수령이 되었습니다. 오스만 군의 사기는 하늘로 솟구친 반면 비잔틴 진영의 분위기는 바닥으로 곤두박질쳤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크고 수많은 배들을 술탄은 *무슨 재주로 이동시켰을까요.

*오스만군은 먼저 페라 지역 뒤 야산의 가시덤불과 야생 포도밭을 갈아엎고 길을 내었다. 그 다음 길 위에 목재를 깔고 마찰을 줄이기 위해 표면에 돼지기름을 발랐다. 바퀴 달린 받침대가 바다 위의 배를 동여매면 도르래가 배를 해안가로 끌어 올렸다. 이 배들은 한 척 한 척씩 끌고 갈 황소들과 연결시켰다. 황소 옆에선 수십 명의 병사들이 보조 역할을 했다. (런치만은 ‘바퀴 달린 받침대’란 표현을 썼지만 다른 책들엔 그냥 ‘받침대’로 나와 있다. 앞 그림은 바퀴가 없는 반면 아래 그림은 바퀴를 단 채 배를 끌고 가는 모습을 보여 준다.) 이 모든 것이 불과 이틀 사이에 일어난 일이다. 


▲ 베르트랑동 드 라 브로키에르의 『해외 여행』에 수록된 1455년 작품. 한 폭의 그림 안에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전쟁 당시의 여러 가지 중요한 사건들을 복합적이면서도 섬세하게 담고 있다. ‘1페이지짜리 그림책’이라고나 할까. 시오노 나나미의 『콘스탄티노플 함락』 표지도 이 그림 일부로 장식되어 있다.


  내가 읽은 책에는 배를 이동시킨 육로가 애매하게 서술돼 있습니다. 게다가 유감스럽게도 이스탄불 현지에서 만난 학자와 전문가들조차 배의 정확한 이동 경로를 자세히 아는 이가 없었습니다.

  이방인인 나는 그러나 그 경로를 내 나름대로 유추 혹은 규명해 보려고 단지 지도 몇 장만 들고서 며칠 동안 이 궁리 저 궁리하며 자동차와 도보로 4~5차례나 그 주변을 탐색했습니다. 메메드 2세('파티'; 정복자)와 텔레파시라도 통했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 페라팰리스 호텔 앞에서 마치 특파원이라도 된 듯 내 녹음기 안에 탐사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런치만의 책(168쪽)에는 술탄이 여기서 200미터 위쪽인 영국 영사관 앞에서 왼쪽으로 꺾인 경로를 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내 생각은 조금 달랐다. 술탄이 이 페라 호텔 옆길로 배를 끌고 왔을 것 같았다. (상세한 설명은 다음 페이지에서)
여기서 잠깐, 택시(Taxi)는 터키에서도 탁시(Taksi)로 표기한다. 탁시 뒤에 m자 하나를 붙이면 탁심(Taksim), 내가 서 있는 데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이스탄불의 명동’ 격인 번화가 이름이 된다. “탁심에 가려고 탁시를 잡았다.”, 이런 표현이 가능해진다.


▲ 혹시 남아 있을는지도 모를 황소 발자국이나 수레바퀴 자국을 찾는 심정으로 나는 며칠을 두고 몇 번이나 이 거리 저 거리, 이 골목 저 골목을 헤매고 다녔다. 도로를 사이에 두고 3층 건물을 가로질러 쳐놓은 빨랫줄 위에서 옷가지들이 허공에 매달려 있다. 빨래를 널고 걷는 일에도 기술이 필요할 것 같다.


▲ 이 도시에서는 축구장이 유난히도 많이 눈에 띄었다. 문득 2002년 월드컵, 대한민국과 터키의 3·4위전이 떠올랐다. 터키 사람들은 굉장히 축구를 좋아한다. 혹시 이 축구장을 닦고 스탠드를 올리는 과정에서 땅 속 깊숙이 묻혀 있던 그 옛날의 돼지기름 먹인 통나무가 나온 것은 아닐는지…. 나는 바로 이 옆길(테페바쉬)로 배가 지나갔다고 믿는다.


  ‘바로 이 길이다!’ 싶은 곳에서 ‘혹시나’ 하고 물어 봤지만 답은 매번 ‘역시나’였습니다. 그러던 중 술탄과 텔레파시가 통한 걸까요. 내가 애초 생각했던 이 길(테페바쉬)로 ‘배가 내려갔다’는 말을 할아버지로부터 들었노라고 몇몇 사람들이 증언해 주었습니다. 뛸 듯이 기쁘더군요. 더위와 피로가 눈 녹듯 사라졌습니다. 사학자(런치만), 작가(나나미), 현지 교수(페리둔) 모두 주장이 다른데 나도 내 견해를 주장해 보자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4의 길’로 갔습니다. 현지인들이 믿고 있는 그 길로! (약도 별첨)

▲ 지도를 파는 가게에도 몇 군데 들렀다. 페라 지역 일대가 상세하게 담긴 축척이 큰 지도를 몇 장 샀지만 그것도 선박의 이동 경로 탐사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았다. 우리의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합한 것 같은 이런 걸출한 인물의 기념비적인 행적을 정확히 아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못내 아쉬웠다.


▲ 선박의 이동 경로를 찾아 헤매는 길에 만난 이정표들. 저 화살표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역사적 사실과 마주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조금은 허황된 생각마저도 드는 거였다. 내가 집착이 깊었나 보다.


  이스탄불대학교 역사학과장인 페리둔(Feridun M Emecen) 교수는 3가지 경로를 그 가능성으로 제시했습니다. 첫째는 런치만의 경로(톱하네→카슴파샤 설), 두 번째(돌마바흐체→카슴파샤 설)와 세 번째는 그보다 이동 반경을 조금씩 더 넓혀 놓은 경로입니다. 페리둔 교수는 그 중 3안이 자기 의견이라고 말했습니다. 경사가 급한 언덕보다는 그보다 멀더라도 완만한 평지를 택했을 것이란 견해입니다.


▲ 이스탄불대학교 페리둔 교수는 1453년 전쟁을 전공하고 책도 낸 이 분야의 중견 학자. 연구실로 찾아간 나에게 자신의 지식을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지만 그래도 명확하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없지 않았다. 배의 이동 경로도 그 중 하나. 페리둔 교수는 스티븐 런치만의 추정(1안)보다 선박의 이동 거리를 확대한 2안과 3안을 제시했다. 1안<2안<3안 중 그의 견해는 3안이었다. 경사가 급한 언덕보다는 그보다 멀더라도 이동이 쉽고 사전에 적에게 노출도 덜 되는 완만한 평지를 택했을 거라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내 의견은 런치만 쪽에 더 가깝다. 거침없는 술탄의 성격과 이런저런 기록, 그리고 내가 직접 탐사해 본 결과를 종합해 내린 입장이다. 페리둔 교수와는 이메일을 통해 아직도 문답을 주고받고 있다.


  답답함을 풀기 위해 여러 차례에 걸쳐 그 주변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지만 그 사이에 이미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도시 계획으로 길들도 변경된 그 지역에서 550여 년 전의 흔적을 찾기란 실로 난망한 일이었습니다. 그래도 나는 사막에 떨어진 동전 하나를 찾으려는 사람처럼 축구장을 건설중인 테페바쉬란 마을과 *페라팰리스 호텔 주변 등을 샅샅이 훑고 다녔습니다. (이동 경로는 맨 끝에 부록으로 처리했습니다.)

  *세계적인 추리 작가 아가사 크리스티가 이 호텔 411호실에 묵으며 명작 『오리엔탈 특급 살인 사건』을 구상하고 집필했다.

 

  배를 골든혼 바다에 성공적으로 진입시킨 술탄은 다음 작전으로 *부교(浮橋)를 설치합니다. 부교 옆에는 튼튼하고 널찍한 받침대를 두어 거기서 블라케르나에 성벽을 향해 대포를 쏘았습니다. 식량과 무기 등의 물자와 병력도 부교를 통해 이동시켰습니다. 기동력이 훨씬 빨라졌습니다. 

  *술탄은 골든혼에 있는 배들의 엄호 아래 도시 성벽 바로 위쪽으로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리를 놓았다. 적국인 그리스 인들이 쓰던 1000여 개의 와인통을 세로로 나란히 쌍으로 묶은 다음 그 위에 두꺼운 널빤지를 고정시켜 사람과 물자 그리고 수레가 통행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다섯 사람 정도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나다닐 만한 넉넉한 너비였다. (로저 크롤리,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대공격』 166쪽 참고) 일부 주장에 따르면 부교 위에 단단한 받침대를 만들어 그곳에서 성을 향해 대포를 쏘았다고 한다.


 

◀ 육지 성벽 조금 못 미친 지점, 골든혼 연안 성벽에 걸려 있는 이스탄불정복자협회의 현판. 술탄 메메드 2세가 1453년 4월 23일 월요일, 카슴파샤 지역에서 이 부근까지 골든혼을 가로지르는 부교를 놓아 성을 공격한 사실을 기념하고 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정황과 기록으로 미루어 실제로는 부교가 여기보다 육지 성벽 쪽으로 좀 더 올라간 지점에 가설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학자들의 견해에 따라 위치가 조금씩 다르다. (5편 지도의 부교 위치 참고)




  부교의 위치에 대해서는 의견이 조금씩 엇갈립니다. 이스탄불정복자협회에선 육지 성벽이 끝나고 골든혼 쪽 성벽이 시작되는 곳에서 조금 아래 지점에 현판을 세워 두었지만 그건 술탄의 치적을 알리기 위한 것일 뿐, 부교의 위치가 있던 자리는 아닌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 이스탄불정복자협회 사무실에서 회장단과 함께. 이 단체는 말하자면 ‘정복자 술탄의 팬클럽’이다. 전쟁과 관련해 성벽을 비롯한 기념될 만한 곳에 10여 개의 현판과 원기둥을 설치해 놓은 것도 바로 이들이다. 하지만 학술적으로는 이들도 나의 물음표를 속 시원히 지워주지 못했다. 헤어질 때 나는 메메드 2세의 초상이 새겨진 금빛 배지 하나를 선물로 받았다. 나는 마치 정복자협회의 홍보대사라도 된 듯이 이스탄티노플에서 귀국하는 날까지 배지를 가슴에 달고 다녔다.


  아무튼 배가 언덕을 넘고 골든혼을 가로질러 다리가 놓이면서 다이내믹한 육상 전투와 스릴 넘치는 해상 전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 갈라타 타워에서 바라본 골든혼과 이스탄불 구시가지 전경. 두 개의 터키 국기가 나부끼고 있는 숲 사이로 우뚝 솟은 이스탄불대학교 중앙 탑이 보인다. 그 너머로는 마르마라 해가 마치 하늘인 양 광활하게 펼쳐져 있다. 중앙 탑 오른쪽 사원은 쉴레마니예 모스크. 지금은 평화롭게 유람선이 떠다니지만 1453년엔 이 좁은 만(灣)에서 격렬한 해상 전투가 벌어졌었다.


▲ 베니스의 조선소와 건조 중인 선박 그림. 당시 제노바와 쌍벽을 이루며 콘스탄티노플을 동방 무역의 주요 기지로 삼고 있던 베니스는 상선을 비롯한 호위 함대를 만드느라 조선 산업이 굉장히 발달해 있었다. 그에 못지않게 항해술과 해상 전투 경험 역시 풍부했지만, 비좁은 골든혼 안에서 치른 *오스만 군과의 해전은 사전에 기밀이 새어나감으로써 참패를 면하지 못했다. 그 동안 해상전에서만큼은 우위를 점했던 황제 군은 이 뼈아픈 패배로 골든혼에서의 해상 주도권마저 상실하고 만다.

*술탄의 배들이 육로를 통해 이동해 옴으로써 골든혼 봉쇄 사슬이 무용지물이 되자 황제는 즉각 대책 회의를 열어 밤에 몰래 오스만 함대에 접근해 배들을 불태워 버릴 작전을 짠다. 하지만 이 계획은 동참키로 한 제노아 인들의 선박이 준비되지 않아 거사가 미루어지는 바람에 기밀이 새어나가 오히려 오스만 군의 역공을 당하고 만다. 결과는 참패.


  「꿈을 찍는 사진관」(강소천 지음)이란 동화처럼 과거를, 역사를 사진 찍어 주는 카메라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골든혼 주변과 페라 지역을 탐사하면서 그런 상상을 몇 번이나 했는지 모릅니다. 너무나 불분명한 것들이 많고 책마다, 또 학자마다 견해가 제각각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인문학의 힘은 상상력에 있는 것. 내가 수집한 팩트와 정보에 상상력을 가미해 내 나름대로 역사를 재구성해 보는 재미도 적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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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세기 콘스탄티노플 지도. 술탄 메메드 2세에 의한 함락 이후 오스만 제국의 수도로서 급속히 번성해진 모습을 한눈에 느낄 수 있다. 특이한 것은 지도 맨 아래쪽에 오스만 가지부터 무라트 3세에 이르기까지 오스만 왕조 12대 술탄의 얼굴을 동그라미 안에 차례로 그려 넣은 것. 오른쪽 첫 번째가 정복자 메메드 2세의 초상이다.(파란색 사각형)


  한가위 전에 한 편을 더 올려야 한다는 강박관념 속에서 6편을 힘겹게 마무리 지었습니다.

  7편은 어떤 이야기로 이어질까요. 아래 그림에 그 힌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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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술탄은 왜 격전이 치러지고 있는 바다로 뛰어들었을까? 그것도 배가 아닌 백마를 타고…. 다음에 이어지는 ‘이스탄티노플’ 일곱 번째 이야기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게 된다.


 

## TIP=더 깊이 알고 싶은 분들을 위한 탐구 학습 코너 ##

  국내에서 그 동안 배의 육지 이동 경로를 파악할 수 있는 기존 자료는 런치만과 나나미의 책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나나미는 아예 이 부분에 대한 언급을 회피했고 런치만의 설명 역시 애매했습니다.

  현지에서 이스탄불대학교 페리둔 교수를 만나 이 부분만 놓고 30여 분간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웬걸요, 혼란만 보탰을 뿐입니다. 교수는 이때껏 통설처럼 여겨져 온 톱하네 설(1)을 부정하고 돌마바흐체 설(2)을 제기했습니다. 그러면서 조심스럽게 훨씬 더 먼 길로 돌아가는 제3 가설까지 거론했습니다.(페리둔 교수는 톱하네가 언덕이 너무 가팔라 현실적으로 이동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제3설의 구체적 내용은 지면 관계상 생략합니다.)

  나는 ‘이스탄티노플’을 떠나던 날도 풀리지 않는 화두를 짊어진 수도승처럼 다시 시간을 짜내어 이 지역을 왔다 갔다 했습니다. 골목길, 좁은 길, 일방통행 길. 참 복잡했습니다. 몸도 마음도 지쳤습니다. 시간마저 내 편이 아니었습니다.

  하도 답답해 지역 주민들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정복자 메메드가 배를 끌고 간 길이 이곳인가요?”

  드디어 한 동네(테페바쉬)에서 가뭄에 단비 같은 대답을 듣게 되었습니다. “어릴 적 우리 할아버지한테서 그렇게 들었어요.”

  나는 왔던 길을 되짚어 그 길을 다시 갔습니다. 런치만의 영국 대사관 설을 뒤집고 페라 관광호텔 설을 새로 제기하기도 하면서 그 거리를 헤맸습니다. 결국은 땀에 흠뻑 젖은 몸으로 샤워를 하는 둥 마는 둥 하며 귀국 비행기 길에 올라야 했습니다.

  그게 끝이 아니었습니다. 나는 서울에서도 이스탄불과 계속 연락을 취해가며 뭔가 새로운 자료가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이 글을 블로그에 올리기 직전 또 하나의 번역본이 입수되었습니다. 바로 페리둔 교수의 제자인 바자르(Mahmut Ak-Fahameddin Baʂar) 교수가 근간한 터키어 원본(『Istanbul’un Fetih Gnlĝ』-이스탄불 함락 일지)을 우리말로 옮긴 자료입니다.

  야호!(호야?) 바로 내가 주장하였던 배들의 이동 경로가 그 책에 그대로 제시돼 있었습니다. 특종(?)을 놓친 아쉬움과 내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안도감! 진작 손에 넣었더라면 그런 생고생은 하지 않았으련만….

  이왕 수고한 것. 그 책은 지도 없이 큰 방향만 나와 있으므로 나는 좀 더 친절하게 내가 생각하는 배의 이동 경로를 자세하게 지도로 표시해 서비스하려고 합니다. 그 결과물이 바로 아래에 있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도로 보는 탐사 경로

톱하네(대포알 공장)부터 쿰바라치 언덕길, 아스말르 메스지드, 테페바쉬, 카슴파샤 등과 골든혼 연안을 샅샅이 훑고 다녔다. 골든혼 봉쇄 사슬이라는 방어벽을 만난 술탄이 함대를 이끌고 언덕을 넘어 바다로 간 경로이다. 톱하네에서 카슴파샤로 이어지는 빨간색 화살표 부분은 내가 독창적(?)으로 제기하고 바자르 교수가 뒷받침한 노선이다. 실제로는 매우 복잡한 길인데 이해하기 쉽게 단순화시켰다. 2설(초록색)과 3설은 그보다 좀 더 위쪽(3설은 지도 밖)으로 선이 그어진다.

P.S.
  6편을 올리고 나서 아이디 ‘술탄’님(한양대 이희수 교수)이 네이버 블로그에 덧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이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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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마다 이어지는 술탄님의 뜨거운 관심과 날카로운 지적에 감사드립니다. 메일로 보내주신 제3안 스캔 사진도 잘 받았습니다. 터키 고등학교 역사 교과서에 실린 자료라면 사학계의 주류 의견이겠군요. 페리둔 교수의 3안은 베식타쉬(돌마바흐체보다 더 위쪽, 초기 해군 집결지)→옥메이다니(에윱 모스크 맞은편 지역, 골든혼 거의 끝 쪽)였습니다. 하지만 술탄님 말씀대로 ‘역사적 사실이란 정확한 진실이 확인될 때까지만 유효’하다는 측면에서 내 견해를 포함한 이 모든 주장에 의미두고 싶습니다.
  이스탄불대학 페리둔 교수와 동문수학한 사이라니 더욱 반갑습니다. 페리둔 교수에게도 술탄님 안부를 전하겠습니다.

  지적해 주신 ‘골든혼 내해에 배를 내린 시점’은 내가 잠깐 착오한 것 같습니다. 런치만 책(169쪽)에 ‘4월 23일 일요일’로 되어 있지만 요일 계산을 해보니 ‘4월 22일 일요일’이라야 맞습니다. 다른 문헌을 보아도 4월 22일이 정설인 것 같아 내 블로그 내용을 수정했습니다. 이동 함선의 수는 40척부터 80척까지 견해가 다양해 그 중 런치만의 추정(70척 가량)을 따랐음을 밝혀 드립니다. ‘동틀 무렵부터 정오까지’는 내가 읽어 본 책들이 대부분 이 설에 입각해 서술돼 있었습니다. 술탄님 지적대로 ‘밤을 이용했다’는 것도 설득력이 있지만, 그보다는 술탄(메메드 2세)의 성격상 ‘적들에게 시각적인 공포와 전율을 주는 효과’를 노렸을 것 같다는 게 내 생각입니다. 특히 내리막길에서는 말입니다.

  아래 지도는 술탄님이 보내 준 터키 역사 교과서에 실린 자료입니다. 교과서에 표시된 경로(분홍 선) 외에 내 블로그에 서술된 1안(빨간 선)·2안(초록 선)·3안(파란 선)도 참고삼아 표시해 놓았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스탄티노플"에 대해 포스팅한 모든 내용은 지속적으로 수정/업데이트하고 있습니다.
   혹시 내용 가운데 오류나 다르게 알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지적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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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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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전자돌이 2010/09/21 0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술탄의 상상력과 추진력, 무엇보다 자신이 반드시 해낼 것이라는 '근거있는' 자신감이 정말 부럽습니다. 그 근거는 어디에서 나오는걸까요? 술탄 위인전이 있다면 구해서 읽어보고 싶네요. 21살이라.. 요즘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롤모델이 되어 줄 존재라는 생각이 듭니다. 계속 관심갖고 지켜보겠습니다!!

    • 호야 2010/09/28 09:39  댓글주소  수정/삭제

      예 그렇습니다 술탄은 상상력 추진력 게다가 '근거있는 자신감'(이말 참 마음에 듭니다)의 사나이지요. 사실 이스탄불 떠나기 전엔 21세 청년 술탄에 대한 자료가 부족하여 주로 서방쪽 견해에 접하고 갔는데 역시 "백문이 불여일견"이더군요 현지에도 자료 귀한건 마찬가지지만 현장에 서면 상상이 현실로 다가오더군요.
      여러분들이 댓글 달아주시니 이 작업이 힘들어도 계속할 용기가 납니다 계속 관심 바랍니다 김형오

  2. 헛제삿밥 2010/09/21 0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중에 이 포스팅 모아서 터키 여행가면 든든할 것 같네요...문화유산답사기+ 지도 가 한 방에 해결될 듯...잘 봤습니다. 감사~~

  3. 트라이앵글 문 2010/09/21 16: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왠지 이번 한가위에는 삼각형 달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트라이앵글 문.
    이스탄티노플을 닮은 그런 달 말입니다.

  4. 우주아이 2010/09/24 09: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앗 추석 전에 또 한 편 올렸을 줄이야
    이스란티노플엔 명적도 없나요
    잘 보고 갑니다

  5. 중독 2010/09/27 05: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가능을 가능으로 이끈 능력자 술탄이 너무 멋있어서 술탄의 팬클럽에 가입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술탄이 왜 백마를 타고 바다에 뛰어들었는지 힌트를 봐도 유추할 수가 없습니다. 다음편을 기대하며...
    그리고 이렇게 빨리 이스탄티노플의 기행문이 올려질 수 있다니...
    의장님은 대한민국에서 제일 많은 시간을 가진 분이신 것 같습니다.
    (*제일 많이 바쁜 사람이 제일 많은 시간을 가진다. -비네-)

  6. BlogIcon 술에물탄 2010/09/30 18: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봉쇄사슬에 막혀 배를 육지로 끌다니...
    배를 끌던 소와 인부(?)들이 불쌍하네요..
    현대의 공중전을 봤다면 엄청 부러워했겠네요.ㅋㅋ

    • 꽃거지 2010/09/30 19:37  댓글주소  수정/삭제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술에물탄님 센스가 넘쳐나시네요.
      기대안한곳에서 빵 터지고 갑니다.

  7. 두륜 2010/09/30 19: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배를 산으로 끌고 올라가 전쟁의 결정적인 향방을 가른 술탄처럼...
    노르망디상륙작전으로 2차세계대전을 연합군의 승리로 만든 것처럼...
    모든 일에는 어떻게 진행 될것인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고비(분수령)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의장님께서 "이스탄티노플"을 연재하시고 난 다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지고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글도 재미 있지만 글 쓴이에 대한 관심 또한 적지 않다는
    생각이 듭니다. 의장님께서도 이 글의 연재를 분수령으로 삼아 지금의 관심과 사랑을
    더욱 승화시켜 보다 멋진 정치 지도자가 되길 기원 합니다...
    앞으로 큰 정치인의 행보를 "이스탄티노플"의 이야기와 함께 기대하겠습니다...

  8. 고슴도치 2010/09/30 2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유럽사람들은 예술과 문화재를 생명만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전통보존 의식이 투철해서 이 전쟁에 대한 역사적 사료들이 정확하고 풍부할 것 같았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은가봅니다.

  9. 온새미로 2010/09/30 20: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자께서 하신 말씀으로 논어(옹야편)에 나옵니다.
    아는 노릇은 좋아하는 노릇만 못하고, 좋아하는 노릇은 즐기는 노릇만 못하다.
    (知之者 不如好之者, 好之者 不如樂之者)

    공자의 예술론은 '시경(詩經) 삼백 편의 내용을 한 마디로 말하면, 마음에 간사한 생각이 없다(思無邪)는 구절 그것이다.’라는 말 속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곧 순수하고 오염되지 않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 스스로 드러나야 참된 예술이라는 뜻이기도 합니다.

    공자는 지적인 세계만을 추구하는 단순한 학자만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는 노릇을 좋아하는 노릇만 못하고, 좋아하는 노릇은 즐기는 노릇만 못하다고 말했던 것이지요.

    이스탄티노플 이야기 시리즈들을 읽으며 공자님 말씀이 떠오른것은,
    형오님도 단순히 콘스탄티노플 전쟁에 대한 사료만 챙기는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어서일까요.

  10. 兼太(けんた) 2010/10/01 01:1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1453년 콘스탄티노플 전투에 관한 자료를 찾는중이었다.
    여기는 구글에서 검색하다 오게 되었다.
    우선 사진과 그림 설명만 보며 해석하다 천천히 다시 한번 읽어보니
    운이 좋게도 내가 공부했던 부분이라 읽을 수 있었다.
    韓国語を日本語 に訳すのはとても難しい..
    何よりも前々から学びたかったから.
    一生懸命勉強して後で 형오と話をもっと上手にできたら嬉しいな.
    おめにかかって嬉しいです.

    • 호야 2010/10/04 14:58  댓글주소  수정/삭제

      日本人이시군요. 반갑습니다. 그러나 저는 貴下의 韓國語만큼 日本語 實力이 不足해 不得已 한글로 답글을 남깁니다. "韓國語 熱心히 배워 나와 對話하겠다"는 말씀에 깊은 感銘을 받았습니다. 1453年 Constantinople 戰爭에 대해 意見 나눌 수 있기를 바라며 내 Homepage에 글 남겨 주셔셔 感謝드립니다. 金炯旿

주류, 위선적 주류

한가위입니다.
지금쯤 온 가족이 둘러앉아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우겠지요. 명절에만 느낄 수 있는 정겨운 풍경입니다. 이야기 속에는 가족의 건강, 자녀의 미래와 성공에 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룰 테지요.


오늘은 성공한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자합니다. 요즘 소위 성공했다는 사람들, 주류층에 진입한 사람들의 인생스토리를 들여다보면 항상 가난이란 단어가 빠지지 않습니다. “굶기를 밥 먹듯 했다”라는 말...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말이지만 밥 먹듯이 굶었다는 말이니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헤진 신발, 막노동, 독학 등 찢어지는 가난과 불우한 환경은 언제나 성공한 사람들의 과거와 닿아 있습니다. 정치권에는 학생운동, 민주화 운동, 데모, 감방이라는 단어들이 닿아있는 사람도 많습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의 성공스토리를 들으면 감동합니다. 나보다 못한 환경이었거나 자신과 닮은 삶을 통해 나의 가능성을 보기 때문이지요. 또는  마치 자신이 성공한 것처럼 위안을 갖기도 합니다. 그들은 존경과 부러움의 대상이 되고 우상이 되기도 합니다. 이런 분들의 성공은 개인에게도 축복이려니와 누구나 가능성을 갖게 하는, 우리사회가 그만큼 건강하다는 증거입니다.

이들이 주류층으로 진입하는 경로 또한 다양합니다. 각종 고시를 거쳐 법조계나 공직으로, 피나는 노력을 통해 학자, 전문가나 CEO로, 선거를 통해 정치인으로 진입하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주류층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글을 쓰는 이유는 주류층에 진입한 이들에게 칭찬보다는 따끔한 한마디를 던지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계속 성장 발전하고 나아가 우리 사회가 더욱 건강해지기 위해서이기도 합니다. 나는 이들을 새로운 주류 ‘신주류’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新주류든 現주류든 舊주류든 주류는 주류입니다. 그러나 신주류들은 스스로가 이미 주류이면서 아직도 비주류인체 위장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현재와 과거의 주류층 전체를 도덕적으로 매도하기까지 합니다.

자, 신주류들에게 묻겠습니다.
그대들은 평소 어떤 봉사활동을 했습니까?
우리사회의 도덕적, 사회적 책무는 다했습니까?
위장전입은 안했습니까?
세금은 꼬박꼬박 냈습니까?
군대 안 갈려고 궁리한 적은 없습니까?
자식은 고액과외나 해외로 빼돌리지 않았습니까?
다른 이유로 부자나 명망가의 딸, 아들을 며느리 사위 또는 애인으로
삼지는 않았습니까?
고급 요정에서 질펀하게 보낸 적은 없는가요?
여자관계는 깨끗한가요?
이번 추석에 과도한 선물을 받거나 주지는 않았나요?
결코 들키고 싶지 않은 부당 부적절 행위는 없었나요?

설혹 이런 행위 했다고 무조건 비난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여러분은 이런 행위를 해도 괜찮고 남은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뭐래도 여러분은 주류입니다. 민주체제의 근간인 주류사회가 건강하고 튼실하게 발전하도록 체제의 신참인 여러분이 본을 보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제발 주류이면서 주류가 아닌 양 위선적 태도를 버리십시오. 입으로는 서민과 복지를 외치며 정작 자신은 가진 자의 도덕적 의무(노블리스 오블리주)에서 가장 먼 행동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노동 환경운동을 한다고 예외가 될 수 없고, 윗선이 따로 있고 상사가 많다고 책임과 의무가 면제될 수 없습니다.

주류층 전체를 부도덕의 본산으로 매도하면서 자신은 “나는 이 정도는 괜찮다. 과거에 니들은 더 많이 해먹었으니까” “기존 주류에 비하면 나는 새발의 피다”라는 식의 도덕 불감증을 가진 신 주류,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적용하고 자신에게는 한 없이 너그러운 새로운 주류는 오히려 이 사회를 혼란에 빠뜨릴 뿐입니다.

그늘지고 어려운 시대와 환경을 뚫고 어엿이 새로이 주류로 편입된 여러분의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여러분과 같이 어렵고 힘든 사람들이 더 많이 성공할 수 있도록 제도적, 환경적 개선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더 이상 언급할 필요가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얘기입니다. 다음으로는 스스로가 주류사회의 일원이라는 확고한 의식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해야 할 최우선적인 일은 우리 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태도입니다. 힘들겠지만 반드시 지켜야 합니다. 그래서 기존 주류세력보다 더 도덕적 본보기를 보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사회를 건강하게 살찌게도 하지만 여러분이 칭찬과 존경을 받게 되고 여러분을 기대하게 되는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고 있습니까?

 
가난과 어려웠던 과거만 무기삼아 기존 주류를 공격하는 이분법적 대결구도를 일삼는 것은 자기 자리를 지키고 ‘표’를 얻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우리 사회를 어둠에 물들게 하는 비겁한 행위입니다. 통합이 아니라 분열로, 화합이 아니라 갈등으로 치닫게 합니다.

가난이 흠이 될 수는 없지만 자랑이 될 수도 없습니다. 그저 현상일 뿐입니다. 성공 스토리에서 가난이란, 본질이 아니라 주류로 편입하는 과정에서의 극복 대상입니다. 스스로 주류층이면서 과거의 열등감, 사회에 대한 증오감만 자극하여 선동한다면 이 사회의 진정한 통합은 더욱 멀어집니다. 오히려 (자신도 속한)주류층에 대한 불신과 갈등만 불러일으킬 뿐입니다. 우리 사회를 더욱 힘들게 합니다.

사진출처☞ 클릭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존경받는 이유는 자신의 불우했던 성장환경이 아닙니다. 오바마는 생김새부터, 태어난 가정, 살아온 이력, 그의 모든  인생이 파란만장이며 미국사회 비주류의 표본이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을 슬럼가에서 또 하와이, 인도네시아 등지로 옮겨 다니며 자신의 정체성조차 찾기 힘든 유년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으로부터 그가 사랑받는 이유는 성공한 이후의 자세와 노력입니다. 더욱 엄격한 잣대로 스스로를 통제하면서도 자신을 궁지로 내몰았다고 오해했던 주류층을 관용과 포용으로 끌어안았기 때문입니다. 미국 주류사회를 더 건강하게 이끌고 미래의 주류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도 희망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사진출처☞클릭

칭기스칸은 더욱 그러합니다. 제가 아는 한 칭기스칸 만큼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인물은 없습니다. 아버지는 일찍이 독살당했고 부족에게도 버림받아 차디찬 들판에서 들쥐로 연명했고 노예의 삶을 살며 혹한을 맨살로 버텼습니다. 사랑하는 여인은 납치당해 남의 씨를 배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10만의 군대로 세계를 제패한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그가 정복한 동서양 777만 평방킬로미터는 알렉산더와 나폴레옹이 정복한 영토를 합한 것보다 넓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정복한 영토보다 더 넓은 것은 그의 마음이었습니다. 전쟁을 통해 얻은 영토보다 전쟁을 하지 않고 얻은 영토가 더 많았던 것은 바로 그의 마음, 관용과 포용의 리더십 때문이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주류에 대한 정체성부터 확립해야 합니다. 과거 이력만 포장해 이용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자신이 소속하고 있으면서도 아닌 척 하는 여러분으로부터 비난 받는 현재의 주류층(기득권층) 보다 더 나쁜 태도입니다. 기존의 주류는 적어도 자신의 소속만큼은 속이지 않았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과거를 파는 장사’가 아니라 주류로서의 의무, 즉 노블리스 오블리주에 충실해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뼈아프게 지적합니다.

이번 추석 연휴를 마친 후 스스로에게 엄격하되 남에게는 포용 관용의 자세를 보여주는 수많은 새로운 주류들을 만나기를 희망합니다.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 나아가도록 바로 여러분이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주류를 꿈꾸는 국민에게 과거가 아닌 미래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류가 된다는 것은 의무를 다하는 것이라고 분명하게 말해주어야 합니다. 공정한 사회는 그래서 더욱 더 주류의 몫입니다.

※ 이 글에서 ‘주류’라 함은 미국 등 선진국에서처럼 사회 각 분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역할을 하거나 성공한 사람들을 포괄적으로 통칭하는 말로써, 비주류와의 이분법적 구분은 아닙니다. 또한 신주류 내지 고생 끝에 성공한 모든 사람을 매도할 뜻은 전혀 없습니다. 이들 중 극히 일부의 행태에 경계할 점을 지적한 것입니다.

참고: 주류에게 도학자의 삶을 강요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에게도 성취한 만큼 즐길 권리가 있습니다. 도덕적 의무만큼 중요한 것은 정정당당하고 유쾌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일률적 잣대로 가진 자를 재단(裁斷)해서도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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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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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호근 2010/09/19 21: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내용을 보니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의 수준을 알겠네요.
    문제점이 보통이 아니고,그런 품행으로 나라일을 할려고 나서는 사람이나
    현재까지 하고있는 사람들이나 거기서 거기입니다.
    청문회가 있어서 그나마 알려지지-청문회라도 없으면 그저 깨끗한척 하면서 살 인간들아닙니까?.

    남을 핑게삼아 끌어들이는 것도 보기가 좋지않습니다.
    지적하더라도 공개적이 아닌-조용하게- 많은 사람이 몰라도 됩니다.
    똥물을 공개적으로 뿌리지 마세요.

  2. 삼국유사연구원 2010/09/20 05: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도덕적으로 완벽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도덕적인 삶을 살기를 거부하는 것은 더 나쁘지요. 위선을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사는 인간들이 회개하는 그 날까지 모두 기도합시다.

  3. shelly 2010/09/20 17: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참...좋은 말씀이시긴 하신데요..
    김의원님도 그렇고 간혹 다른 정치인에게서 이런 말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 이해안갈 때까 있습니다..
    어떻게 정치인의 입에서 요정이 어쩌니...술집 여자 건드려보지 않았다더니..전에는 어떤 의원이 말하기로 선거캠프하셨을 때 정치인끼리 다짐을 썼는데 술집을 가지 않겠다는 실천가능한 다짐을 썼다느니...
    그건 정치인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너무나도 당연해서 말씀을 안하셔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말씀하면 오히려 이상해지는 꼴이 되지요..
    정치인들 대부분 자신도 인간이라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로 술집, 여자 이런 얘기를 하시는 것 같아요..
    꼭 구지 말 안해도 될 자극적이고 대중이 듣기에 정치인의 이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되는 그런 말씀은 자제하시는게 좋을 듯 싶네요..자랑은 아니니까요.

  4. BlogIcon mark 2010/09/22 11: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래만입니다. 요즘은 발걸음을 끊으신 건가요? 최근 총리, 장관내정자 청문회에서 의원들의 문제삼는 것들을 보고 생각한게 있습니다. 그들은 과연 질문하는 국회의원들은 남의 흠집을 질타할 만큼 깨끗한가? 앞으로 청문회에 나가 질문하는 의원님들도 청문회를 통하여 질문자 자격을 주도록하는 게 어떨지?

9월 15일, 김형오 의장은 평택대학교에서 "리더의 향기"라는 주제로 특강을 가졌습니다.
많은 학생들이 모였는데요, 이 자리에는 지난 포스팅 ☞
"트위터 친구, 오프라인까지 간다!"에 등장한 김형오 의장의 트위터 친구 - tyuhuit님도 참석하여 트위터로 그 소식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생중계.avi


tyuhuit님이 트윗하셨듯이, 재미있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 처럼, 학생들은 특강에 빠져들었습니다.

무모해 보이지만 꿈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는 돈키호테의 이야기로 시작한 이 날의 강의는 스마트폰, SNS(Social Network Service), 개헌등 다양한 이야깃거리로 지루할 틈도 없이 진행되었습니다.

PPT를 활용해 특강을 하고 있습니다.


김형오 의장은 이 날 특강을 통해 학생들에게 발상의 전환을 통한 긍정적인 자세로 희망을 갖고 꿈과 비전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할 것을 주문했습니다.

또한 끊임없는 도전에 덧붙여 따뜻한 마음을 품고, [각주:1]만리(萬里)까지 향기(냄새 아닙니다)를  퍼뜨리는 훌륭한 리더가 되길 바라며 이 날의 특강을 끝맺었습니다.

큰 재목이 될 평택대학교 학생 여러분에게 이 특강이 든든한 밑거름이 되길 바랍니다.
평택대학교 화이팅!!



* 특강 뒷 모습~!!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특강을 마친 후, 김형오 의장은 학생들에게 둘러쌓였는데요.

함께 사진을 찍거나,
싸인을 받으러 오는 학생들도 있었구요~

"의장님~ 싸인 한장만 해 주세요~"

"진짜로?? 트위터?? 직접??"

"트위터리안" 김형오 의장의 실체를 확인하는 학생들!
김형오 의장은 학생들 앞에서 직접 트위터에 접속해 보이기도 했는데요, 학생들은 직접 트위터를 하는 김형오 의장의 모습에 무척이나 놀라운 반응이었습니다.
김형오 의장, 트위터리안 인증??!! ^_^
  1. 화향백리(花香百里) 주향천리(酒香千里) 인향만리(人香萬里) “꽃향기는 백리를 가고 술 향기는 천리를 가지만, 사람의 향기는 만리를 가고도 남는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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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과 함께 하는 이스탄티노플 역사 기행 5
                              - 모던과 클래식, 골든혼 성곽 탐사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사진 고르느라 조금 애를 먹었습니다. 찍은 사진이 부족해서라기보다는 보여드리고 싶은 장면들이 너무 많아서입니다. ‘이스탄티노플’은 그만큼 매력이 넘쳐나는 도시입니다.

  이번 편은 갈라타 타워로부터 시작됩니다. 탐사를 시작하기 전에 우선 이 도시의 전경을 높은 곳에 올라 사방팔방으로 관찰하기 위해 맨 먼저 찾아갔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갈라타 탑을 내려와서는 골든혼을 옆에 끼고 승합차로 천천히 달렸습니다. 골든혼(할리치)은 영문(Golden Horn) 의미 그대로 한자로 쓰면 ‘금각만(金角灣)’입니다. 왜 이런 이름이 붙은 걸까요?
  이곳 사람들은 두 가지 설을 들더군요. 첫째, 골든혼에서 침몰한 배들과 함께 가라앉은 금은보화가 많기 때문이라는 설. 둘째, 석양 무렵이면 짐승 뿔 모양을 한 골든혼이 황금빛으로 물들기 때문이라는 설. 둘 다 일리 있는 얘기로 들렸습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설을 떠나 골든혼은 그 자체가 ‘금싸라기 바다’입니다. 그만큼 지정학적·경제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곳이니까요.

▶ 이스탄불정복자협회에서 세운 *갈라타 타워 안내 표지판. 화재와 지진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도 재건축과 보수 공사를 거듭하며 콘스탄티노플과 이스탄불의 역사를 갈라타 지역 가장 높은 곳에서 묵묵히 지켜본 이 도시의 산증인이다.



*갈라타 타워 : 528년 비잔틴 황제 유스티니아누스가 맨 처음 건립했으나 제4차 십자군 전쟁 때 파괴되었으며 1348년 제노아 자치령에 의해 ‘크리스티 투리스’(그리스도의 탑)란 이름으로 재건축되었다. 오스만 시대에도 여러 차례 재건축을 하며 화재 및 기상 관측, 적의 침입 감시, 포로수용소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1960년에는 목재였던 내부를 콘크리트로 바꾸고 일반인들에게도 관람을 허용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 올라가면 터키 민속춤과 밸리댄스를 감상할 수 있는 레스토랑과 나이트클럽이 있다. 타워의 높이는 62.59미터, 꼭대기 장식물까지 포함하면 66.90미터이다. 벽두께는 3.75미터, 안쪽 지름은 8.95미터. 탑을 둘러싸고 외벽에 14개의 창문이 나 있다.

  골든혼의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를 승합차로 둘러본 우리는 차에서 내려 해안 쪽 성곽을 탐사했습니다. 육지 성곽(테오도시우스의 3중 성벽)과는 달리 이곳은 외(Single)성벽으로 축조되었습니다. 골든혼 자체가 든든한 방어선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매립으로 인해 사라졌지만 1453년 당시에는 개펄과 바위가 많아 해안 성벽으로의 접근이 더욱 어려웠습니다. 게다가 앞으로 보여 드릴 사진에서와 같이 두께와 높이, 그리고 강도(强度) 면에서도 만만치 않은 성벽이어서 오스만군도 이곳은 주요 공략 지점에서 제외시켰습니다. 세월이 흘러 개펄 해안이 점점 굳어 육지화되면 비잔틴은 그 지점까지 또 성을 쌓았습니다. 어떤 성벽은 다른 성벽보다 유난히 더 앞으로 튀어 나왔거나 2중 혹은 3중 성벽 구조를 하고 있는 것은 그래서입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며 외부 세력이 감히 쳐들어올 엄두를 못 내는 난공불락의 성으로 증축이 돼간 겁니다. 다만 성이 축조된 이래 꼭 한 번 4차 십자군 전쟁 때 골든혼 쪽 방어선이 뚫려 콘스탄티노플이 함락됐던 아픈 역사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전쟁 당시에도 온전했던 골든혼 쪽 성벽들은 육지 성곽과는 달리 지금은 옛 모습을 많이 잃었습니다. 세월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도로 개설 및 도시 개발 과정에서 인위적인 훼손이 심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은 열 마디 말보다 한 컷의 사진이 더 생생하게 증언해 줍니다.
  자, 그럼 이쯤에서 사진과 함께 하는 오늘의 탐사를 시작해 볼까요.

 

▲ 갈라타 타워를 등지고 이경숙씨가 손가락으로 허공을 가리키며 설명에 열중하고 있다. “의장님, 오스만 투르크 제국 시대에 ‘헤자르펜 아흐멧 찰레비’란 사람이 자신이 만든 날개를 달고 이 탑 꼭대기에서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아시아 지역인 위스크다르 언덕까지 날아가는 신기록을 세웠답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따 ‘헤자르펜 타워’로도 불리지요.” 그럴 줄 알았으면 나도 전망대에서 종이비행기나 몇 개 접어 바다 쪽으로 날리고 올 걸 그랬다.

▲ 갈라타 타워 전망대에서 카메라에 잡은 아야 소피아(사진① 왼쪽), 블루 모스크(술탄 아흐메드 모스크, 사진 ① 오른쪽), 이스탄불대학교 중앙 탑(사진 ②), 쉴레마니예 모스크(사진 ③).
전망대는 360도 조망이 가능한 구조여서 유럽과 아시아를 가로지르는 보스포루스 해협을 비롯해 마르마라 해와 골든혼(금각만, 하리치)은 물론 이스탄불 구시가지 및 신시가지 전체를 빙 둘러가며 볼 수 있다. 1453년 전쟁 당시 만약 비잔틴군이 이 전망대를 이용할 수 있었더라면 전황도 좀 더 달라졌으리라.

▲ 옛 모습이 남아 있는 골든혼 쪽 성벽들. 벽돌과 돌·흙 등을 이용해 기하학적이면서도 자연스런 미감을 뽐내고 있다. 돌과 돌, 벽돌과 벽돌, 돌과 벽돌 사이에는 강력한 식물성 접착제를 발라 놓았다. 오른쪽 성벽은 2중 성벽 모습을 하고 있다.

▲ 유네스코의 예산 지원을 받아 복원한 성벽 모습. 일률적이고 인위적이어서 예스런 멋이 사라졌다. 화장과 성형 수술로 치장하고 멋을 낸 미인을 보는 듯하다. 수비군이 창검이나 활로 맞서 싸우기 유리하도록 네모난 구멍 뒤는 넓고 앞은 좁은 형태이다. 일정 부분 방패 역할을 해낸 것. 부챗살 모양을 하고 있는 구멍 위의 아치는 비잔틴 양식의 성벽임을 말해 준다. 이스탄불은 1985년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복원 공사가 최근에 이루어졌더라면 이보다는 나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어쨌든 그 시대의 비잔틴 사람들이 다시 살아나서 복원된 성곽 모습을 본다면 현대 문명의 수준을 얕잡아 보지는 않을는지….

▲지각 변동으로 땅이 솟아올라 문과 자동차의 왼쪽 벽 부분이 반 지하 상태로 변했다. 1층 표시와 3층 표시 부분은 대칭을 이룬다. 1층도 지표면의 융기로 인해 거의 지하층이 된 상태. 창문들이 비잔틴 양식이다. 지붕 위를 보라. 잡초들이 무성하게 자란 가운데 잎이 무성한 나무가 앞머리를 건물 이마 아래로 내려뜨리고 있다.

▲ 1500여년 된 성벽 위로 화살처럼 쏟아지는 여름 햇살 아래 각양각색 빨래들이 바람에 몸을 뒤척이며 마르고 있다. 중세와 현대의 기가 막힌 앙상블! 마치 퓨전 설치미술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다.

▲ 1898년에 완공된 불가리아 교회. 불가리아 사람들이 모여 예배를 보던 이곳의 원래 이름은 ‘성 스테판 교회’이다. 외관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신고딕 양식과 신바로크 양식이 하모니를 이루면서 십자가 모양을 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에서 사전 제작한 주철 구조물을 다뉴브 강과 흑해를 거쳐 배에 싣고 와 조립은 이스탄불에서 하는 독특한 건축 방식을 사용했다. 이 교회는 정면이 골든혼 쪽을 바라보고 있다. 국민의 절대다수가 무슬림이지만 터키가 비교적 타 종교에 관대한 나라임을 짐작하게 해준다. 해마다 6월이면 이 교회에서 인터내셔널 이스탄불 뮤직 페스티벌이 펼쳐진다.

▲ 성벽 문을 뚫고 차도를 만들었는데 인도가 없다. 문화재 훼손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그런 걸까. 성문을 통과하면 왼쪽 옆으로 작은 보행자 도로가 나 있다. 가슴과 등을 밀착시킨 청춘 남녀들이 오토바이를 타고 성 안으로 진입하고 있다. 이 부분도 3중 성벽 못지않은 두께를 갖고 있다.

▲ 성벽 위에 연립 주택을 짓고 사는가 하면 성벽 사이에도 집이 있다. 빨래가 널려 있는 연립 주택 맨 꼭대기 층의 창문으로 어느 예쁜 소녀가 고개를 쏙 내밀었다가는 우리가 쳐다보자 부끄러운 듯 이내 안으로 숨어 버렸다. 창문 밑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면 다시 나타날까나.

▲ 1500년 된 성벽 위에 지어 올린 시멘트 건물 옆으로 지은 지 얼마 안 된 모던한 느낌의 화이트 하우스와 금방이라도 나무 벽이 떨어져 나갈 것 같은 낡은 판잣집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성벽 틈에는 풀이 돋아나 있고, 그 밑으로는 폐건축 자재 더미가 수북이 쌓여 있다. 무성하게 자란 무화과나무가 쓰러질 것 같은 집을 떠받쳐 주고 있다. 과거와 현재의 공존이다.

▲ 성벽 위로 연립한 현대식 주택들. 우리나라도 왕년에는 이런 적이 있었던가.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이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 ‘이스탄티노플’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짧은 기간에 급팽창해 1000만을 훌쩍 넘는 인구를 갖게 된 세계적인 거대 도시가 갖는 한계일까. 유럽 쪽이 아시아 쪽보다 땅값이 비싸다 보니 특히 골든혼 성곽 지역이 더 크게 훼손된 측면도 없지 않으리라.

▲ 비잔틴 시대의 모자이크 문양 같은데 훼손도가 심해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단순한 장식일까, 다른 용도가 있는 걸까. 이 도시에는 이런 애매한 문화유산들이 도처에 흩어져 있다.

▲ 골든혼 쪽 성곽을 누비고 있는 4인조 탐사대. 맨 앞의 모자 쓴 사람이 나, 김형오이다. 성곽 위의 아파트나 바람에 나부끼는 빨래는 하도 많이 보아서 무덤덤해졌다. 왼쪽 차도 건너로 골든혼을 끼고 흘러가는 바닷물이 웅덩이처럼 보인다.

▲ 골든혼 성곽 안쪽에 있는 그리스 정교회 본부(페네르 그리스 관구)를 향해 가고 있다. 기독교의 성물과 성녀들의 묘지, 주교가 앉는 의자, 귀중한 성상 등이 이곳에 보존되어 있다.

▲ 그리스 정교회 벽면에 새겨져 있는 비잔틴의 상징 쌍두 독수리. 두 개의 머리는 왕국의 주권과 동서양을 초월한 비잔틴 제국의 지배를 상징한다. 러시아를 비롯한 몇몇 나라들은 지금도 국가의 상징으로 문장(紋章) 등에 이 쌍두 독수리 문양을 쓰고 있다.

▲ 그리스 정교회에서 만난 벽화. 정교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성 게오르기우스(성 조지)의 용감한 모습이다. 초기 기독교의 순교자이자 14성인 가운데 한 사람인 게오르기우스는 회화에서는 일반적으로 칼이나 창을 들고 용(드래곤)을 무찌르는 백마 탄 기사의 모습으로 묘사된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성벽과 가로등 사이를 통과해 좁은 길로 가다가 문득 그런 성경 말씀이 떠올랐다. 찾는 이가 적은 좁은 문, 좁은 길이 생명 길이며 영혼의 구원을 얻는 길임을 강조한 말씀이다. 물론 ‘구원’을 얻기 위해 나선 길은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도시에서 ‘영원’한 제국의 모습을 보고 싶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말씀이다. 그 뒤로는 13절과 14절에 걸쳐 이런 말씀이 이어진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 그리스풍으로 지어진 레스토랑에서 맛있는 그리스 요리를 점심으로 먹었다. 우리가 타고 다닌 승합차와 운전기사 에르한의 모습이 보인다. 10년 가까이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 와 우리말 실력이 보통이 아닌 친구였다. 내 카메라폰에 담은 이 식당의 내부도 한 쪽 벽면은 성벽을 그대로 활용한 모습이었다.

▲ 그야말로 부서진 성벽이다. 잔해만 남았다. 그래도 그 부서진 면면을 보면 이 성벽이 얼마나 단단한 구조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실감이 난다.

▲ 골든혼 성벽 바로 뒤 안쪽에 있는 오스만 시대의 수도. 오스만은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난 뒤에 대대적으로 수도 시설을 확충 보급했다. 치수(治水)야말로 정치(政治)의 기본임을 알았던 까닭이리라.

▲ 성벽의 높이와 두께를 실감해 보자. 거구의 사나이가 ‘고목나무에 붙은 매미’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사진 위로도, 그리고 왼쪽 옆으로도 성벽은 더 높고 길게 이어져 있다.

▲ 아타튀르크 다리 부근에 있는 지발리 성문 앞. 성문 위로 모스크가 보이고 가파른 오르막길이 펼쳐져 있다. 골든혼 연안 성벽에 있던 도시로 들어가는 몇 개의 성문 중 현재는 아야 성문과 함께 유이(唯二)하게(?) 형태가 온전히 남아 있는 성문이다. 그러나 1453년 전쟁 당시에는 골든혼이 든든한 방패 역할을 해주어 이쪽 지역의 성곽들은 온전한 모습이었다. 지발리 성문 오른쪽 벽에는 이스탄불정복자협회에서 만든 현판▶이 붙어 있다. 1453년 5월 29일, 콘스탄티노플 최후의 날 오스만 사령관 ‘제베 알리 베이’가 무혈입성한 문이라고 한다. 그 뒤 세월이 흐르면서 사령관 이름(제베 알리)을 따 마을 이름이 ‘지발리’로 바뀌었다. 왼쪽 벽에는 흰색 표지판이 걸려 있다. 내용은 “여기에 쓰레기를 버리지 마세요.”

▲ 웬 깃발들이 이렇게 줄지어 세워져 있나. 알고 보니 대학교 깃발들이었다. 위 사진 성벽에 ‘쓰레기 투기 금지’ 팻말을 걸어놓은 바로 그 대학이다. 민가뿐만 아니라 이런 공공건물도 성벽을 담벼락으로 쓰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대학 간판도 성벽을 이용해 붙여 놓았다.

▲ 골든혼 건너편 카슴파샤 지역. 선박과 조선소·크레인 등이 보인다. 1453년 여기에서 무슨 일이?

▲ 원근감을 무시하고 그린 골든혼의 옛 모습. 입구에 굵은 방어 철책을 설치해 놓았다. 보기에도 견고한 이 쇠사슬 때문에 술탄의 배들은 골든혼으로 진입을 하지 못한다.

 

  맨 밑에 실어놓은 두 컷의 사진은 ‘이스탄티노플 여섯 번째 이야기’의 예고편 격입니다. 다음(6편)은 ‘배가 산으로 가다’ 편이 이어집니다.

 

*P.S. 이스탄티노플 4번째 이야기에도 많은 분들이 격려의 글을 남겨 주셨습니다. 몇 분의 글을 발췌해 옮겨보면….

  “불타는 탐구욕과 활활 끓고 있는 그 열정에 심심한 존경을 보냅니다. 건강도 살펴가며 하시기 바랍니다.”(이우종님)
  “옛 우물에서의 은어 낚시! 이스탄불이라는 우물에서 등비늘 반짝이는 은어들을 많이 낚으신 것 같군요.”(피플님)
  “다음에 꼭 그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야겠네요. ‘이스탄티노플’ 명예시민으로서….”(두륜님)
  “그림을 보고 있으니 그 정밀한 묘사에 감탄밖에 나오지 않네요. 그림 읽어 주는 남자?”(산리마을님)
  “역사는 투쟁 속에 진보한다는 말이 떠오릅니다. 황제와 술탄의 대결, 흥미진진합니다.”(Socio89님)
  “글맛과 묘사의 역동성과 생생함의 차원이 다르다. 진정성을 갖고 역사의 진실에 겸허하게 귀 기울이며 다가갈 때 그만큼 살아 있는 글이 된다는 것도 잘 보여준다. 함락의 막바지에 운명처럼 다가오는 오스만 군대의 대포 소리와 군악대의 우렁찬 소리 사이로 들리는 비감한 교회 종소리를 회상하는 필자의 묘사는 너무나 압권이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 못지않은 김형오 의장의 ‘이스탄티노플 이야기’를 이제는 지인들과 나눠야 할 것 같다.”(술탄님)

  그밖에도 여러 분들이 덧글로 격려를 해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 힘으로 이 벅찬 작업을 감당해 나갑니다. 앞으로도 의정 활동 틈틈이 시간을 내어 전심전력하겠습니다.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도로 보는 탐사 경로
5편갈라타 타워(지도 윗부분, 빨간색 사각형 글씨)골든혼 성곽 일대(지도 윗부분, 빨간색 표시부분)를 탐사한 내용이다. 육지 성벽에 비해 훨씬 훼손 정도가 심한 지역이다. 성벽을 건물의 한 부분으로 삼아 이렇게 많은 집을 지은 도시는 지구상 어디에도 없으리라.

*하늘색 사각형 부분1편, 분홍색 사각형삼각형 부분2편, 갈색 사각형 부분 3편의 탐사 경로이다.

※1453년 당시 지도에 비해 현재 크게 달라진 4가지 포인트

1. 붉은색 표시
1453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가로질러 흐르던 리쿠스 강은 지금은 복개되어 새 도로(아드난 멘데레스 불와르)가 나 있다.


2. 초록색 표시
성 로마노스 시민문(톱카프) 부근에서 시내로 새 길이 나 있다.
길 이름은 밀렛 자떼시(Millet Caddesi). ‘시민의 도로’란 뜻이다.


3. 파란색 표시
마르마라 해변을 옆에 끼고 기찻길이 펼쳐져 있다. 이 레일 위로 파리에서 이스탄불 사이를 오가는 오리엔탈 특급 열차가 달린다. 그 종착역 겸 시발역이 바로 시르케지 역이다.


4. 노란색 표시
마르마라해 바다 성벽은 매립으로 해안 성벽이 돼 버렸고, 또 일부는 철도와 자동차 도로 등이 생기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노란색은 바다를 매립한 부분.


※ "이스탄티노플"에 대해 포스팅한 모든 내용은 지속적으로 수정/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혹시 내용 가운데 오류나 다르게 알고 계신 부분이 있다면 지적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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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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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피플 2010/09/15 17: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원더풀!!

  2. 한가위 2010/09/16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름달처럼 풍성한
    이스탄티노플 이야기
    한가위 이후에도 기대할게요
    명절 잘 보내세요

  3. BlogIcon 김화자 2010/09/18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름달 처럼 넉넉하시고 풍요로 우신 추석 명절 되십시요.
    행복 하시고 따듯하신 한가위 되시길 기원 합니다.
    언제나 건강 하시길 기도 드립니다.

  4. 세레나데 김 2010/09/26 1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금 전 연립 주택 창문 너머로 아름다운 소녀가
    얼굴을 내밀고 방긋 웃었습니다.
    어라, 다시 들어가 보니 그새 사라졌네요.
    신비스런 그녀를
    <이스탄티 걸>이란 이름으로 불러 봅니다.

  5. 소나티네 2010/09/27 08: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방금 전 이스탄티걸이 또 고개를 쏘옥~~
    이스탄티노플 이야기는 그만큼 잔상을 많이 남깁니다

  6. BlogIcon 스압 2010/09/30 18: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성벽에 지은 집에 사는 이들은 기분이 어떨까 궁금합니다.
    '우리집 벽이 수백년전 격전이 벌어졌던 역사의 현장이라니!!'
    집에 값비싼 골동품 하나씩은 기본이겠네요. 부럽다. 돈 떨어지면 조금씩 팔아도...ㅋㅋㅋ

  7. 유한새 2010/09/30 2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기의 철옹성에 무혈입성이라...!!

  8. 만국기 2010/10/12 08:3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리하면서도 부드럽고, 냉철하면서도 따뜻하고, 깊이 있으면서도 쉽게 읽히는 탁월한 역사 기행문입니다.

  9. 형오투어 2010/10/12 21:3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컴퓨터가 바로 타임머신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이스탄티노플,
    그 가상의 도시를 여행하는 기분 정말 끝내 줍니다.
    착륙하고 싶지 않네요.

  10. BlogIcon silk flowers 2010/10/18 0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멋진 역사의 도시군여



9월 15일,
김형오 의장은 KBS부산 라디오 "굿모닝 부산"과의 전화 인터뷰를 가졌습니다.

함께 들어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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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구가 영도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영도 남북항 연결도로 고가화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와 항의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급기야 13일에는 이례적인 호소문까지 발표했다. 지난 11일 자신의 저서 사인회가 열린 부산 서면의 한 서점 앞에서까지 주민들이 확성기를 틀고 시위를 벌이자 대응에 나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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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 11일 토요일, 부산 서면의 영광도서에서는 김형오 의장의 저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의 팬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KTX를 타고 부산역에 내릴때만 해도 비가 "억수로" 많이 와서 카메라를 꺼낼 생각조차 못했는데, 행사시작 시간이 다가오자 이렇게 "쨍"하고 해가 떴습니다.

행사가 열리는 영광도서 주변 곳곳에는 이렇게 사인회를 알리는 포스터가 붙었습니다.
영광도서 직원분들도 행사 준비로 분주하셨어요.
이번 사인회의 메인 아이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와 1편이라고 할 수 있는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도 보이네요.


사인회는 영광도서 4층에 있는 "문화사랑방"에서 열렸습니다.

행사장에 도착한 김형오 의장이 팬사인회 시작에 앞서 머리숙여 인사하고 있습니다.

영광도서 4층의 행사장을 가득 메우고도 건물 밖으로까지 긴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김형오 의장이 행사장에 도착하기까지 겪은 "산전수전 공중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오전에 예약해 놓은 비행기가 궂은 날씨로 결항되었고, 서울역으로 방향을 바꿔 KTX에 탑승하여 출발하기만을 기다렸다고 합니다. 하지만 한참을 지나도 열차가 출발하지 않더니 '산사태로 인해 선로에 이상이 생겨 출발이 늦어진다'는 안내방송이 나왔다고 합니다. 열차에서 내리려고 해도 출발 준비를 마친 KTX는 안전상의 이유로 열차의 문도 마음대로 열 수 없어서, 발만 동동 굴렀다고 합니다.

우여곡절 끝에 열차에서 내려 김포공항으로-

운항이 재개된 비행기를 타고 "황급히" 부산에 도착하여 행사 시작 시간 직전에야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행사에 늦었다면 건물 밖에까지 길게 늘어서 기다려주신 많은 손님들께 정말 죄송할뻔 했습니다.

본격적으로 팬사인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날의 행사는 혼잡을 방지하기 위해 번호표를 배부하였는데요, 이 분은 7번이시네요.

계단과 통로에서 행사장 입장 순서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글자 한글자 정성들여 사인을 하는 김형오 의장.
어림잡아 한통의 싸인펜을 소진했습니다.

"의장님, 사진 한장만 찍어도 괜찮겠습니까?"

엄마 손을 잡고 온 어린아이와 하이파이브!

밝은 웃음으로 사인한 책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인을 받으러 온 어린이와 대화도 나누면서-

잠시 자리에서 일어나 단체사진도 촬영했습니다.

눈부신 하얀 제복을 입고 온 해양대학교 학생들과도 한컷~!

해양대학교에서 많은 학생들이 참석해주어 두번에 걸쳐 단체사진을 촬영했습니다.

화이팅!! 주먹도 불끈 쥐어보고,

어린이들은 빼놓지 않고 무조건 악수!!

사인..사인..사인..

해양대학교 동아리 "독도 아리랑" 학생들의 열렬한 환호!!

화이팅!!

악수도 하고요-

이 날의 팬 사인회는 예정된 종료시각을 훌쩍 넘겨서야 마칠 수 있었답니다.

김형오 의장의 오른 손은 혹사당했습니다만..

책이 쌓일수록 어려운 이웃을 도울 성금도 쌓여간다는 생각에 힘든줄 몰랐다고 하네요. (참 대단한 오른손입니다. 왼손은 이 사실을 모를겁니다. ^_^;;)

 

행사 당일 사회자께서 이곳 형오닷컴을 통해 사진을 볼 수 있다고 해서 사진촬영하던 직원이 무척 당황했다고 하는데요.
사진을 확인하러 블로그를 방문하실 분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모든 분들의 사진을 찍으려 노력하느라 진땀을 흘렸다고 합니다.

하지만..그래도 찍고보니 1100여장..;;;
사진 정리를 마치는데 약간의 시간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사진은 정리해서 빠른 시간내에 영광도서에 전달하여, 영광도서 홈페이지에 올리겠습니다. 정리를 하더라도 블로그에 올리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거든요.
업로드를 마치는대로 이 곳에 재공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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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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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세이스트 2010/09/14 09: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Pen이 Fan을 만나 훨훨 나는 형국이군요.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현장사진 잘 보고 갑니다. 감사~~

  2. 두륜 2010/09/14 11: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자 사인회에서 만나니 작가의 이미지가 그려 지더군요....
    정말 많은 분들이 오셨던데, 질서 있게 행동하는 모습들이
    인상 깊었습니다...
    사인회에 참석하신 독자 분들이 정말 멋지더군요...
    의원님을 사랑하는 그 분들을 위해 좀더 헤아리고 소통하신다면
    더욱 가까워 질수 있으리라 기대해 봅니다....
    책 재미있습니다...

토요일(9월 11일) 부산 서면 사인회 행사 잘 마쳤습니다.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성원해주시고 환대해주셔서

‘성황리’라는 말을 실감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그러나 행사를 진행하면서 아쉬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사인회 행사장 정문을 가로 막은 집회 - 옥의 티라고나 할까요?

휴일동안 고민도 많았습니다.

“그냥 넘어가야하나 짚고 넘어 가야하나” 라는 고민이었죠.

살다보면 모른 채 넘어가는 게 훨씬 편할 때가 많지만

진심어린 대응이 필요할 때는

“불편하더라도 짚을 건 짚어야겠다”가 저의 결론이었습니다.


연결도로를 끼고 있는 주민들의 주장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지하차도를 놓자는 주장은 저의 주장과도 같습니다.

그러나 지하차도가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지 못한다는

전문가들의 결론은 저에게도 안타까움과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부산시로부터 불평도 많이 들었습니다.

시는 빨리 공사를 시작해야하는데
결론이 나지 않으면
공사를 못하도록 제가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시의 입장에서 제가 얼마나 불편한 존재였겠습니까?

이런 불편한 관계를 감수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제가 주민의 편에 서야한다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안타깝지만 결론은 났습니다.

사실 많은 시간의 노력이 허사(虛事)가 되었습니다.

저도 안타깝습니다. 여러분의 안타까움도 잘 압니다.

그러나 그 안타까움을 비정상적 방법으로 풀어서는 곤란합니다.

저의 행사 때마다 매번 이럴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주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지금까지의 진정성이 훼손되지않을까 두렵기까지 합니다.

소음 ․ 고성이나 집단적 항의로는 순수한 대화가 이루어질 수 없지 않습니까?


여러분을 대변해야하는 국회의원의 자유로운 활동이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여러분과의 정상적 대화가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우려스럽습니다.


이번 저자 사인회는 영도 밖에서 진행된 순수한 문화행사였다는 것을 
여러분도 잘 알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정치적 주장까지 가세하여
주위 사람들이 저의 신변위협을 우려해야할 정도라면
이건 너무 과격하고 도가 지나친 것 아닐까요?


혹여 본질을 벗어나 전직 국회의장이자 부산 최다선의원에 대한

망신주기로 몰아가려는 세력이 있다는 말도 들리지만

그래도 우리는 함께 가야하지 않습니까?

마음의 상처를 다 치유할 순 없다는 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함께하겠습니다.

위로가 되도록 여러분과 함께 하겠습니다.

정상적 방법으로 소통합시다.

영도의 명예를 더 이상 실추시키지 않도록 함께 노력합시다.

2010. 9. 13

국회의원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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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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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영도사랑 2010/09/13 1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함께 하지 못할것 같군요.
    정치적이란 말을 하고 싶군요.
    구민의 노력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습니다.지하차도 하자는것이 정치적이라면 과연 무엇이 정치적이지 않다는 말인가요? 할수만 있다면 하자고 했던말 아직도 기억합니다.안된다는 것이 아니라 불합리하다는 것은 가능하다는 말입니다.결론은 아직도 멀었습니다.결론은 주민들 스스로가 내리는 것입니다.이말 명심하세요.

  2. 영도사랑님~~ 2010/09/13 18: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하차도하자는 사람들은 정치적이 아니라서 낙선운동하고 그랬던건가??
    불합리한건 가능하다고? 그러니까 불합리하게 하란 소린거야?? ㅋㅋ
    무슨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

    • 그러네요...ㅋㅋ 2010/09/13 18: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불합리한건 가능한거니까 불합리하게 하자...ㅋㅋ
      나...진심으로 어이없...ㅋㅋㅋㅋ

    • 영도구민 2010/09/16 14: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부산시가 고가도로에 비해 불합리하다고 발표했다.불합리하다는 것은 불가능이 아니란다.제대로 알고 말해라.불합리는 부산의 일방적인 통보다.공개토론도 없이 위원회를 일방적으로 한 부산시에 대해 김형오의원은 뭐라고 했지?주민들에게 무슨 행동을 보여줬지?이제와서 안되니 안되다고? 참 편한세상.6년전 선거나올때 삭발은 아니더라도 항의문 하나는 만들었나?주민들 반대집회에 한나라당 당직자들 한놈도 안보이더라.행동으로 보여야지.국회의장은 자기가 잘나서 된거이 아니다.

    • 영도구민님~ 2010/09/17 00: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불합리하다는 것은 불가능한게 아니다. 제대로 알고 말해라"
      그러니까 그게 불합리하더라도 하자라는거잖아요...ㅋㅋ
      좀 생각을 하고 말씀을 하셔야죠...
      남들이 불러주는거 그대로 따라하지 말고...ㅋㅋ

  3. 노래 2010/09/14 13: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오를 국회의원에서 퇴출시켜야 한다.
    다시는 영도에 발을 못붙이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번에는 야당을 찍어야 한다.

    야당이 잘할 거란 기대보다는 김형오에 대한 경고로 이번에는 낙선시켜야 한다.

    정치인들에게 경고란 말로 떠드는 것보다는 표로 심판함이 최고다.

    자기가 국회의원을 몇번 했다고 자기가 잘나서 하는 줄 알고 있는데 천만의 말씀이라는 것을 보여야 한다. 본때를 보여야 한다. 정치인에게는 정치적 해결과 정치적 보복이 최고다.

    김형오의원은 당신 꼴리는 대로 하시오.
    당신이 꼴리는 대로 한다면 나는 당신은 낙선시킬 것이오.

  4. 경사도의 문제.. 2010/09/14 14: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전에서 문제가 있다는데...그럼 그냥 지하차도 주장하시는 분들은 지하차도 만들고 안전에 이상이 있어도 좋다는 말씀들이신지 모르겠네요.
    다음 선거 결과를 떠나서 전 영도구민들의 안전을 위하는 쪽이 맞는것 아닐까 싶네요.

  5. 기본적인 예의 2010/09/14 23:4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는 지켜 가면서 주장을 해야 설득력이 있을 것 같습니다. 'x리는 대로' 같은 표현을 앞뒤 가리지 않고 해대는 분의 주장이 얼마나 큰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을까요.
    또한 여기에서 이루어진 갑론을박을 보면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시청이나 구청으로 가야할 우편물이 이곳으로 잘 못 온 게 아닌가 하는. 시청과 구청 홈페이지 주소 가르쳐 드릴까요?

  6. 대화가 필요해♪ 2010/09/15 09: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하차도가 낫다는 점에는 공감하지만, 방법이 좀 잘못된 것 같다.
    대화라는 것은 나도 말하지만, 상대의 말 역시 귀 기울여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당신 꼴리는대로" 라는 자세는 대화를 하겠다는건가, 아니면 배수진을 친건가?
    좀 더 열린 자세로 서로의 말에 귀 기울여보면 어떨까?
    지금 상태로 보면, 대화나 타협의 여지가 없다는 자세같다.

  7. qodnfk 2010/09/15 23: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의장님,
    저의 말이 삭제될지도 모르겠지만
    저는 지하차도 홍보부장입니다.
    여태까지 김의장이 대화하는 것을
    제대로 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대화한 것처럼 글을 올리
    다니? 눈가리고 아웅 하시깁니까?
    저의 전화는 ㅇ16, 579, 5712 니,
    진정으로 대화하실려는지 보렵니다!

  8. 상식적으로 2010/09/16 01: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설마 여태까지 대화를 안했을까요? ㅋㅋ
    혹시 엊그제 홍보부장님 된 건가요? ㅎㅎ
    안 본건지, 보고도 못 본 척 하는건지...
    아~~ 맞다. 홍보부장님이시구나~ㅋㅋ 님 좀 짱인듯~! ㅎㅎ

    • 대화가 필요해♪ 2010/09/16 14: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화를 안했을지도 모르죠.
      하지만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다면, 대화가 가능할지 의문이네요. 특히나 신변의 위협을 느낄정도라면 대화의 자리에 나가기도 망설여질것 같습니다.
      아무튼 모두를 100% 만족시키지 못하더라도, 서로가 수긍할 수 있는 결과가 나왔으면 좋겠네요.
      근데 정말 대화가 가능할까요..? 대화해봤자 '난 절대로 안돼!' '난 꼭 이걸 해야돼!' 이런 자세라면 불가능할것 같군요.

  9. 영도구민 2010/09/16 14: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치적으로 실컷 이용해먹고 이젠 나몰라라? 몇달전 의원 홈페이지에 고가도로 어떻게 되냐고 적어놓으니 당직자왈 의원님이 노력중입니다라고 대답을 하더니 이젠 오리발을 내미는군.고가도로로 결론을 내고 주민을 속인거군.

    • 영도구민님~ 2010/09/17 00:53  댓글주소  수정/삭제

      "불합리한건 불가능한게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는 영도구민님~!
      그게 불합리해도 하자고 하는, 말도 안되는 억지부리고 있있는 거라는건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는 우리 영도구민님~!
      자꾸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악용해먹으려고 하지 말고...
      혼잣말은 조용히 혼자서 하세요~ㅎㅎ

    • 영도사랑 2010/09/20 13: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당직자군요.이문제를 정치적으로 이용말라구요? 세상에 정치적이지 않으게 어디있나요? 주민이 뽑은 사람이 고가도로를 놓겠다는데 정치적으로 이용말라고? 선거는 정치가 아닌가?고가도로는 이미 정치적이 되었고 그것을 이용한 사람이 한나라당 아닌가요?지방선거때 가만히 있는것이 정치적이었죠.주민들이 그렇게 반대를 하는데 한마디도 없더만.

    • 아니요 2010/09/21 1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이용말라는게 아니고 "악용"말라네요
      고가도로 놓겠다고 한 적도 없는걸로 알고 있구, 정치적으로 이용한건 한나라당이 아니었죠...
      글구 가만히 있는게 정치적이면 낙선운동하는건 정치적 활동의 꼭대기쯤 되겠네요~~ㅋ
      교묘하게 뉘앙스를 왜곡하지 마시구요~
      상충되는 의견을 제시하면 알바취급하는 사람들이랑 비슷한거 같은데...알바에서 이제 당직자로 승진?
      그럼 나도 이제 당직자 되는건가요? ㅎㅎ

  10. 영도유권자 2010/09/19 19: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오 의원!

    이제 어떤 낯으로 영도에 들어와 돌아다니는지
    똑똑히 보겠오 아직도 그 멀끔한 얼굴로 웃으며
    다닐 수 있는지??

  11. 영도사랑 2010/09/19 22: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많은 노력이 허사가 되었고 많은 시간이 지체되었습니다.
    더이상 소모적인 논쟁을 하고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피해가 최소화될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조금이라도 더 좋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지 고민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없습니다. 하지만 더욱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꼭 힘써주시길 바랍니다.

  12. 지하차도 2010/10/14 02:1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지하차도의 안전도는 고가차도보다 위험하다고 하는데, 과연 지하차도로 했을때,
    그 안정성의 책임을 과연 누가 책임져야 할지... 과연 지하차도를 주장하던 구민들이
    그 책임을 지려고 할지 의문이네요.


[1편 걷고 싶은 길☞ 절영로 보도설치 공사 ]

지난 번 게시물에서는 김형오 전의장과 동행하면서 찍은 사진들로 포스팅을 하였는데 멋진 길을 소개하는데 있어 부족한 점이 있지 않나 싶은 마음에 두번째 글을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번에  보도설치가 완공된 절영로는 바로 여기입니다. ↓

절영로의 위성사진(다음지도)


위 사진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바로 절영로 보도설치공사를 한 구간입니다.
대략 영선동 동산아파트 앞에서 동삼동 부산남고에 이르는 2km 정도의 코스로
이번 포스트는 부산남고 방면에서 동산아파트 쪽으로 진행하면서 작성하였습니다.




절영로 보도설치공사 준공기념식수

85광장의 영도 절영로 보도 설치공사 준공기념 기념식수입니다.
김형오 의장과 어윤태 영도구청장, 윤호길 영도구의회의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85광장과 해안산책로의 갈림길

85광장에서 절영로와 해안산책로로 이어지는 갈림길입니다. 
이번에는 절영로를 주제로 한 포스팅이라 아랫길인 해안산책로는 담지 않았습니다만, 해안산책로도 꼭 한번은 걸어보셔야 할 명품길입니다~~^^

 


85광장을 지나 약간 올라가면 나오는 75광장입니다.

75광장 표지석

 

75광장 설명

 75광장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진으로 보기에 글씨가 좀 작아 아래에 내용을 옮겼습니다.

75광장
75년도에 조성되었다 하여 75광장으로 불리며, 영도구민의 대표적인 휴식공간으로 절영로 남쪽 해안에 위치한다. 광장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팔각정에 오르면 시원한 바다와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맑고 푸른 남해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낄할 수 있으며, 달빛에 어우러져 출렁이는 보름밤의 바다 야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의 신비로움에 빠지게 한다.

 

사자상과 사자정

75광장의 사자정과 사자상입니다.
사자상은 사자정의 양옆에 두 개가 있습니다만 사진에는 좌측상만 나왔네요~~^^;;

 

사자정의 풍광1

사자정의 풍광2

사자정의 풍광1은 오르자마자 보이는 정면의 풍경이고 2번 사진은 우측편의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는 날은 태풍 "말로"가 오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라 흐린 풍경이 담겨 있지만 날씨가 아주 좋았다고 하더라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여러분께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75광장에서 보는 바다

팔각정(사자정) 앞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앞바다 멀리 맑은 날에는 쓰시마(대마도)가 성큼 나타납니다.
어릴적 김형오 의장의 집은 이곳에서 1km쯤 떨어져 있는데, 집 안에서 대마도를 밥 먹듯이(?) 보았다고 합니다.
대마도를 보며 꿈을 키웠나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75광장의 봉수대

75광장의 전경

 75광장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75광장의 영도찬가비

75광장의 영도찬가입니다.
지나다니면서도 유심히 본 적이 없어 이번 기회에 소개해 드립니다.
찬가라면 노래일텐데 음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영도찬가

동트는 수평선 해오름 타고 / 새날의 새아참 밝아오도다
동삼패총 선사유적 점지 받은 터 / 슬기로운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바다로 세계로 큰 꿈을 안고 / 부산항 불 밝힌다 우리의 영도

봉래산 우뚝솟은 우람한 기상 / 태평양 넓은 바다 뱃길 밝히니
출항선의 뱃고동도 우렁차도다 / 태종대라 명승지는 관광의 고장

바다로 세계로 큰 꿈을 안고 / 부산항 불 밝힌다 우리의 영도



 

75광장 버스 정류소

75광장은 부산시티투어 버스의 정류장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부산 씨티투어 버스의 이용방법은 아래의 주소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www.citytourbusan.com/citytour_2010/01.busancity/04.jsp
 


절영로 하늘전망대

하늘전망대의 전체사진입니다. 맑은 날 찍어둔 사진이 있어 올려봅니다.



아래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하늘전망대는 바닥이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늘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

하늘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입니다.
사진의 왼쪽은 태종대, 오른쪽은 송도와 남항대교가 있습니다.
너무나 탁트이고 넓은 풍경을 한 장의 사진에 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 사진은 네장을 이어붙인 사진입니다만, 실제로 보셔야 이해가 될 듯 합니다.^^;;) 



하늘전망대 망원경

하늘전망대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은?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선박의 함수

하늘전망대의 망원경을 찍어봤습니다. 하늘전망대에는 두개의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두번째 사진의 중간쯤에 보이는 배가 세번째 사진에서처럼 확대되어 보입니다.
세번째 확대된 사진을 찍기 위해서 망원경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초점을 잡기 위해 무지하게 애를 썼답니다...ㅎㅎ



 

밑에서 올려다 본 하늘전망대

전망대 아래로 내려와서 전망대를 찍어보았습니다. 
역시 하늘전망대란 이름은 다 이유가 있었더군요...ㅎㅎ
 

하늘전망대의 모습

하늘전망대의 전체적인 느낌은 이렇습니다. 
영도에서는 날씨가 좋을때 육안으로도 대마도가 보이는데 이 망원경을 사용하면 더욱 잘 보이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찾아봤지만 비가 오다말다 하는 상황이어서 확인은 어려웠습니다. 좋은 날씨에 오시는 분들은 한번 찾아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그런데 방향이 이쪽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이 포스팅을 하면서 스쳐지나갑니다...^^;;)




절영로의 음수대

하늘전망대를 조금 지나면 이런 모양의 음수대가 있습니다.
더운 여름철에 이 음수대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웠습니다...ㅎㅎ
목이 마른 탓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물 맛이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절영로의 화장실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 나니 옆 쪽에는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새로 지은 화장실이라 시설도 깨끗하고 잘 되어 있었습니다. 화장실 내부까지는 사진으로 찍지는 않았지만 천정 에어컨까지 있는 최신식 화장실입니다. 확인은 못해봤지만 온풍도 나올 듯 합니다.

 

그 때 그나무

이제 물도 마셨고 화장실도 다녀왔으니 걸음을 옮겨야 겠습니다.
화장실을 조금 지나면 딱 봐도 꽤 오래되었을법한 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예전 공사하던 시기에 김형오 전의장이 이 나무를 자세히 보는 사진이 있어 이번에 새로 찍은 사진과 같이 올려봅니다.
여기는 함지골 청소년 수련원 쪽이네요~~^^




유료주차장 안내문

새로 찍은 나무 사진에 주차구획이 보여 얼른 주차요금이 얼마인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시간제 요금으로 10분마다 100원, 1일주차에 2400원이네요...ㅎㅎ
평일 8시 이후 무료, 일요일 무료입니다~!
제가 갔을때에는 아직 주차요금을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만, 지금 방문하시는 분들부터는 주차비를 내셔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절영로 주차 관련

절영로에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은 하늘전망대 부근과 부산남고 앞 도로입니다. 하늘전망대 부근의 주차장은 위의 사진처럼 주차비를 내셔야 하며
부산남고 앞은 현재 주차요금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절영로 체력단련시설 1

절영로 체력단련시설 2


조금 더 걷다보면 체력단련시설이 있는 곳이 나옵니다.
이곳이 하늘전망대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시설로 저녁이 되면 이 곳을 찾는 분들이 무척 많습니다. 



절영로 체력단련시설에서...

절영로는 김형오 의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는 것은 전편에 이미 말씀을 드린 부분이라 이번 포스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었는데 이 사진을 보니 꼭 추가해야 할 말이 생각나네요.
김형오 의장은 이 길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데이트코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기본 예산에서 추가비용까지 모두 전액 국비로써 이 길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다정한 연인의 사진을 보니 김형오 의장이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 최고의 데이트코스라는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사진 속의 두 연인은 혹시 키스를 하고 있었을까요?   *^^*
풍경사진을 찍다 우연히 찍게된 사진이라 저도 잘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절영로에서 둘만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싶네요...ㅎㅎ


 
 

연인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얼른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체력단련시설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버스정류장 느낌의 이곳은 표지가 없어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었지만 언제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날 날씨 중 갑자기 시작된 소나기를 피하는데 아주 유용한 장소였습니다.
거리상으로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75 광장과 약 한 정거장 정도의 거리입니다.


다음은 시간을 좀 건너뛰어 절영로의 야경을 준비했습니다.

절영로의 야경1

절영로의 야경2

절영로의 야경3

절영로의 야경4

나즈막한 가로등(?)이 절영로 전체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연인 또는 가족과 손잡고 걸을 수 있는 데이트코스로
야경 역시도 분위기가 있는 절영로입니다.

 

다시 낮시간으로 돌아와서 소나기를 피했던, 버스정류장(?)으로 보이는 장소를 지나면 이제 본격적인 산책코스로 돌입합니다. 


해안산책로로 내려가는 계단

역시 아랫길인 해안산책로와 이어지는 계단이 있습니다.
절영로와 해양산책로, 위와 아래의 명품길!!
골라서 걸을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위 사진으론 굉장히 작은 쉼터처럼 사진이 나왔는데 실제로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단체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정도의 공간입니다.
(아래 사진은 절영로 보도설치공사가 진행되는 기간에 찍은 사진으로 김형오 전의장, 어윤태 영도구청장을 비롯한 구청관계자와 공사관계자, 영도구의원들이 동행하였습니다.)

 

절영로의 전망(동삼동 방면)

절영로의 전망(남항동 방면)

절영로의 전망

절영로를 걸으면서 찍은 풍경입니다.  
맨 아래 사진은 절영로에서 보이는 멋진 풍경을 담아보고자 무리하게 파노라마 사진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새로 조성된 명품길을 더욱 알리고자 작성한 두번째 포스팅임에도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부족한 사진과 글로써 대략 이렇게 생겼다 하는 것은 보여드릴 수 있지만
이 길을 걸으면서 맡았던 솔내음과 바다의 냄새, 지저귀는 풀벌레 소리와 파도소리, 그리고 활짝 열려진 하늘과 바다의 멋진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제 무더웠던 여름도 끝나가고 조금씩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올 가을은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맞잡고
대한민국 최고의 데이트코스 절영로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POSTED BY 천상의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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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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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너서미 2010/09/13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도의 본래 이름이 절영도라고 들었습니다.
    절영도는 원래 명마를 키우던 곳인데
    좋은 말들이 달리면 그림자조차 끊어버릴 정도 빨리 달렸다해서
    끊을 절, 그림자 영으로 해서 절영이란 이름이 붙은 걸로 압니다.
    그런데 포스팅한 걸 보니 여기 저기 절경이 눈에 띄는데,
    이만하면 영도를 '절경도'라고 바꿔 불러도 되지 않겠나 싶은데요?

    • 호야 2010/09/13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절영도 산책로를 보고 영도를 '절경도'라! 미적 감각과 조어력이 대단하군요. 절영 산책로 좋은이름 붙여주시고 많이 이용해주세요

    • 영도 인생47년 2010/09/15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영도에 살면서도 구석구석 좋은 곳을 못 가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다행이 이렇게 자세한 설명과 함께 좋은 사진이 있어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절영도의 역사 한 자락도 배울 수 있어 고맙습니다. 욕심을 부린다면 새로이 조성되는 곳과 함께 기존에 있던 명소들도 이 홈피를 통해 원스톱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국회의원회관 627호, 김형오 의원실에 국제우편이 한통 도착했습니다.


어디서 온 편지일까?
보통 국제우편봉투는 붉은색푸른색의 선이 교차되어 있기 마련인데,
이 봉투는 초록색노란색의 선으로 표시되어 있어 참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앗!
초록색과 노란색이라면..!!



Brazilian flag by nature!

사진 출처:  http://www.flickr.com/photos/46173616@N00/169031086 By Marcus Zorbis

브라질??!!!

네, 이 편지는 브라질 대한 노인회오창근 회장님께서 보낸 편지였습니다.
김형오 의장은 제18대 전반기 국회의장 재임중, 중남미 지역을 순방하며,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현지교민과 만남의 자리에서 브라질 대한 노인회 오창근 회장님을 만났습니다.

오창근 회장은 치안상태가 좋지 않은 곳에 있는 '대한 노인회' 노인회관의 이전을 희망했었습니다.
권총강도를 당하기도 하고, 도둑이 들어 노인회관의 집기를 훔쳐가는 일도 빈번히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2010. 5. 9. 상파울루 총영사관저에서


순방을 마친 후, 김형오 의장은 순방기간 중 만난 해외교민분들께 저서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를 보내드렸습니다. 책을 받아 본 브라질 대한 노인회 오창근 회장님께서 답신을 보내주셨습니다.


브라질 대한 노인회 오창근 회장님!
부탁하신 사진은 인화를 마쳤고, 답장과 함께 보내드리겠습니다.
낯선 타국에서 삶의 터전을 일구시고, 대한민국의 위상을 높이시는 교민 여러분들의 노력과 희생에 깊은 존경과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항상 건강하시길 기도합니다. 감사합니다^_^

오창근 브라질 대한 노인회 회장과 김형오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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