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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도 진행형인 역사의 아이러니

경남 사천, 세종대왕과 단종의 태실지에서

김형오

설 연휴 마지막 날, 경남 사천시 곤명면 은사리에 있는 세종대왕 태실지(胎室祉)와 단종 태실지를 찾았다. 한파가 기승을 부렸지만 진작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서 고향 고성 성묫길에 일부러 짬을 냈다.

예로부터 태(胎)는 태아의 생명줄이라 하여 함부로 취급하지 않았다. 특히 조선 왕실은 태를 왕자나 공주의 몸처럼 귀하게 여겨 태실도감(胎室都監)을 설치, 태를 봉안할 명당을 물색한 다음 안태사(安胎使)를 보내 태실(胎室)을 조성한 뒤 소중하게 모셨다. 태실이란 태를 봉안하고 표석을 세운 곳. 깨끗이 씻은 태는 작고 홀쭉한 항아리(內壺)에 봉안하고 기름종이와 파란 명주로 봉한 뒤 붉은색 끈으로 밀봉한 다음 더 큰 항아리(外壺)에 넣고 길일(吉日)을 가려 태실지에 묻었다. 국왕의 태실은 8명의 수호군사를 두어 관리했으며 태실 주변에는 금표를 세워 접근을 제한하고 벌목‧채석‧개간‧방목 등 일체의 행위를 금지시켰다. 금표를 세운 범위는 왕은 300보, 대군은 200보, 왕자와 공주는 100보였고 한다.

조선 왕실이 명당을 찾아 태실을 조성한 이유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태를 풍수지리가 좋은 땅에 묻으면 좋은 기를 받아 그 태의 주인이 무병장수하고 국운이 흥할 거란 생각에서였다. 둘째, 일반 백성이나 사대부들의 명당을 국유지로 만들어 태실로 씀으로써 왕조에 위협적인 인물이 배출될 수 있는 싹을 자르자는 의도에서였다. 셋째, 왕릉을 도읍지 1백리 안팎에 모신 반면 태실은 팔도의 명당에 조성함으로써 왕조의 은덕을 백성들이 두루 누리게 한다는 통치 철학에서였다.

▲세종이 탄생한 지 22년 되던 해인 1418년(세종 즉위년)에 조성된 세종대왕 태실지는 1975년 경상남도기념물 제30호로 지정되었다. 태실비는 1734년(영조 10년)에 세워졌으며 규모는 높이 180cm, 너비 33cm, 두께 27cm이다. 나중에 언급하겠지만 산 위에 있던 것이 이 자리로 옮겨졌다.

내가 찾은 사천시 곤명면 지역은 풍수지리가 빼어나 지관(地官)들은 물론 역대 왕실에서 관심이 깊던 명당이다. 세종대왕과 단종의 태실지는 직선거리로 불과 1km도 안 되는 거리. 왕권 강화를 위해 다방면으로 힘을 쓴 세종은 아끼던 원손(元孫)인 단종(세종의 맏아들인 문종의 외아들)의 태실을 자신의 태실을 묻은 앞산에 안치하도록 어명을 내렸다고 한다.

▲논밭 한가운데 우거진 소나무 숲이 동그랗게 펼쳐져 있는 곳. 이곳이 바로 비운의 임금 단종의 태실지이다. 태실로 정해진 명당들은 대개 이처럼 마당 한가운데에 무쇠솥을 엎어놓은 형상, 또는 바다 위에 떠 있는 거북 형상인 ‘돌혈(突穴)’이라고 한다.

교장을 지내고 교직에서 은퇴한 최남기 선생이 나와 동행해 안내 겸 해설을 맡아 해주셨다. 해박한 역사 지식에 풍수지리에도 밝아 나로서는 조금 생소했던 태실 문화를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최 선생 견해에 따르면 풍수학 상으로는 오히려 세종보다도 단종의 태실지가 더 명당이란다. 명당의 조건을 모두 갖춘 이렇게 좋은 묏자리는 전국에 별로 없단다. 그렇다면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가. 둘 다 지근거리인 명당에 태를 묻었지만 세종은 조선 최고의 성군으로 추앙받고, 단종은 가장 슬프고 불행했던 인물로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했으니 말이다. (※단종에 관한 이야기는 내 책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장릉, 청령포 편>와 <이 아름다운 나라-사릉 편>에 소상하게 기록되어 있다.) 게다가 단종의 태실지는 풍수 대가들의 추천을 받아 세종이 직접 낙점했다고 하니 이거야말로 풍수의 역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단종 태실지로 가는 길을 안내하고 있는 표지판. 화살표 방향을 따라가면 역사의 과녁을 만나게 될까.

과연 명당이란 명성에 걸맞게 단종의 태실지는 사방이 나지막한 원형 숲으로 둘러싸인 한가운데에 배꼽 모양으로 도드라져 있었다. 거북 등처럼 도톰하게 언덕을 이룬 이런 땅을 풍수에서는 ‘돌혈(突穴)’이라 일컫는다. 여기에는 반드시 물이 있어야 한다. 물이 기의 흐름을 막아 기가 태실지에 몰려 있어야 명당의 조건에 부합한다. 물이 흐르는 개울을 건너 우리는 단종 태실지로 갔다.

 

▲1975년 경상남도기념물 제31호로 지정된 단종 태실지. 태실비는 1734년(영조 10년)에 높이 170cm, 너비 51cm, 두께 21cm 규모로 조성되었다.

단종의 태를 언제 어디에 묻었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한 기록이 남아 있지 않다. 그러다 보니 일각에서는 단종 태실지가 경북 성주에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최남기 선생은 그 점에 대해 이렇게 해명했다.

“사천시청에 보관되어 있는 <세종, 단종 태실 수개 및 표석 수립 의궤>에 따르면 곤양현(지금의 곤명면)의 태실지를 중수한 기록이 나옵니다. 1597년 정유재란을 겪으며 왜적들에 의해 도굴되고 파괴됐던 태실지를 1601년(선조 34년) 일부 수리하고 1734년(영조 10년) 대대적으로 중수(重修)했다고 합니다. 세종과 단종의 태실비도 이때 세워졌습니다. 다만 성주 사람들이 단종 태실의 존재를 주장하는 걸 보면 성주에 있던 태실이 사천으로 옮겨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태실을 처음 언제 어디에 묻었는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으니까요. 작년 가을에는 성주 쪽에서도 사람들이 와서 의궤도 확인하고 태실지도 둘러보고 갔습니다.”

올해 1월에는 문화재청 소속 전문위원 다섯 명이 사천에 내려와 현지 조사를 하고 갔다. 위원들은 사천시청 문서고에 보관된 의궤를 통해 역사적 사실을 확인하고 태실지가 있는 은사리에서 현장 조사를 벌였다. 조사를 마친 위원들은 이날 “우리나라 전체 25곳의 태실지 중 13곳은 이미 훼손되고 현재는 12곳만 전해지고 있는데 이 중 세종대왕과 단종의 태실지는 상태가 양호하다”고 말했다고 한다. 세종대왕과 단종의 태실지가 국가지정 문화재로 승격 지정될지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세종 태실지는 단종보다 높은 곳, 사람이 다니지 않아 꽤 미끄러운 산길을 10분 정도 걸어올라간 곳에 있었다. 꾸불꾸불 산을 내려오던 용이 한숨을 돌리면서 힘차게 비상하다가 딱 멈추어 봉우리를 이루어낸 돌혈, 이런 곳이야말로 명당이라고 한다. 풍수의 필수품인 기(氣) 계측기를 꺼내든 최 선생의 설명은 계속된다.

“계측기를 작동시켜 보면 바로 이곳으로 기가 이렇게 흐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뒷산의 기가 급격히 돌혈 쪽으로 뻗어나야 좋은 형세인데 세종 태실지가 바로 그렇습니다. 물이 흘러 기를 가두고 있어야 명당입니다.”

풍수는 장풍득수(藏風得水), 즉 감출 장(藏)에 얻을 득(得)자를 써 바람은 감추고 물은 얻는다는 뜻이다. 산으로 병풍을 친 경주 양동마을이 장풍(藏風)이라면, 물이 돌아나가는 안동 하회마을은 득수(得水)로 명당의 요건을 갖춘 곳이다. 최 선생은 풍수에서 더 중요한 건 바람보다 물이라고 했다. 나는 그런 설명을 듣다가 조금은 생뚱맞게 이런 생각을 했다. 최 선생은 세종보다 단종 태실지가 명당이라 했는데 그렇다면 단종 태실지는 장풍보다는 득수에, 세종 태실지는 득수보다는 장풍에 더 특장(特長)이 있는 것인가. 단종 태실지는 춥고 살을 에는 바람이 불어 오래 있을 수 없었던 반면 세종 태실지는 잔잔한 봄바람이 살랑거려 자리를 떠나기가 아쉬웠던 까닭이다.

역사의 아이러니는 계속된다.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기였던 1929년, 일제는 경향 각지에 있던 태실들을 모두 파헤쳐 서삼릉(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원당동)으로 이전한 뒤 원래 조선 왕실 창덕궁 소유였던 태실 자리는 아예 복원을 못하도록 모두 민간에 팔아 사유화시켜 버렸다. 한반도 명산과 요지 곳곳에 쇠말뚝을 박아 민족정기를 말살하려 한 일과 다름없는 치졸하고 저열한 행위이다. 아무튼 명당으로 소문난 자리다 보니 당대의 권세가와 재력가들이 앞을 다투어 태실지를 사 들였다.

그 뒤 이 태실지들은 모두 사설 묘로 둔갑해 버렸다. 단종 태실지에는 유물이랄 것도 없이 거북비와 버섯 모양의 석조물, 단 두 점이 최씨 무덤 밑에 외롭고 초라하게 서 있다. 세종 태실지 역시 김해 허씨와 하동 정씨의 가족 묘만이 덩그러니 산하를 내려다보고 있을 뿐이다. 왕조 당시의 조형 유물인 태실비와 태항아리를 안장하는 중동석, 상개연엽석, 지대석, 돌난간, 팔각대, 주춧돌 등의 석물은 원래 산봉우리에 있던 태실지에서 50m쯤 떨어진 산자락에 한데 모여 있다. 주객의 전도랄까. 그나마 산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던 유물들을 한 군데로 모아 놓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일제에 의해 훼손되기 전의 태실 모습과 그 조형물, 관련 유물들.

자, 그렇다면 명당을 유택(幽宅)으로 삼았으니 그 당사자와 후손들은 출세하고 번성했을까?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당대를 영예롭게 살았거나 후세에 크게 자부할 만한 인물이 난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세종의 태를 묻었던 자리에는 우리나라 한 대기업과 관련 있는 인사의 묘가 조성되었고, 단종 태실지에는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파로 규정지은 사람이 묻혀 있다. 임금의 태실지에 조상을 묻었다고 해서 자손들이 흥하고 망하는 건 아닌 듯 싶다. 하물며 단종의 태실지도 세종이 손수 낙점했다지만 단종은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불운한 생애를 살지 않았는가. 태실지를 사들여 사묘로 만든 이의 비석에도 그 후손이 이런저런 직위를 지냈다고 쓰여 있으나 그리 대단한 벼슬은 아니었던 것 같다. 풍수는 결국 마음이고, 자기 할 나름인 것이다.

▲세종대왕 태실비를 쓰다듬으며 역사의 아이러니를 이야기하고 있는 최남기 선생. 추운 날씨인데도 열정적인 해설을 들려준 최 선생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다.

원래 있던 태실은 멀리 서삼릉으로 옮겨 갔고 지금은 다른 성씨들이 묻혀 있는 이 태실지는 과연 문화재로서 어떤 가치가 있는 걸까. 갑자기 허무감이 밀려왔다. 그래도 그 시대 최고의 명당인지라 산세는 수려하고 경관이 빼어났다. 죽은 이들을 위한 명당(明堂)이 산 사람들 눈에는 명소(名所) 혹은 명승(名勝)으로 비치는 모양이다. 내려오는 발걸음이 다시 가벼워진다. “명당은 땅에 있는 게 아니라 마음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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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마인드 2012/02/01 09:3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당은 마음에 있다...
    명언이십니다.

  2. BlogIcon choijinsang 2012/02/01 10: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명당은 땅에 있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있다..."...

김형오의 유머 펀치 ⑩ =반전의 미학
뒤집어라, 그러면 겉과 속이 바뀐다

추리소설과 유머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묘미는 뭘까요? 아마도 ‘반전’이 아닐까 싶습니다.
“반전 유머는 인간의 가장 고등한 지적 활동 중 하나”라고 『과학 콘서트』의 저자 정재승 교수도 말했습니다만, 예측을 불허하는 기발한 반전이야말로 뇌에 짜릿한 쾌감을 선사합니다. ‘두뇌 체조’에도 더없이 좋습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억지스런 설정으로 반전 아닌 반전을 거듭하는 ‘막장 드라마’는 빼고 말입니다.

반전에도 고전(古典)이 있다면 나는 ‘새옹지마(塞翁之馬)’를 꼽고 싶습니다. 누구나 아는 얘기지만 간략하게 옮겨볼까요?


북쪽 국경 근방에 점 잘 치는 노인이 살았다. 하루는 그가 기르던 말이 까닭 없이 도망쳐 국경 너머 오랑캐 나라로 가 버렸다. 마을 사람들이 위로했지만 노인은 “이게 또 복이 될지 누가 알겠소.” 하며 조금도 낙심하지 않았다. 몇 달 뒤 뜻밖에도 도망쳤던 말이 오랑캐의 명마 한 필을 끌고 오자 모두가 축하했지만 노인은 “이게 또 화가 될지 누가 알겠소.” 하며 전혀 기뻐하지 않았다. 어느 날 노인의 아들이 명마를 타고 달리다 낙마해 다리가 부러지자 이웃들은 혀를 찼지만 이번에도 노인은 태연했다. 1년 뒤 오랑캐가 쳐들어왔다. 장정들은 모두 전장에 나가 죽거나 다쳤지만 다리병신인 노인의 아들만은 화를 면했다.


 

이 얼마나 절묘한 반전입니까. 전화위복(轉禍爲福)과 전복위화(轉福爲禍)의 엎치락뒤치락, 그것이 어쩌면 우리 인생인지도 모릅니다.

최근에 듣거나 인터넷에서 본 ‘반전 유머’로는 이런 것들이 재미있고 기억에 남는군요.

변호사 집 개가 동네 정육점에서 쇠고기 한 덩어리를 물고 달아났다. 정육점 주인은 변호사를 찾아갔다.

“변호사님, 만약 어떤 개가 정육점에서 고기를 훔쳐갔다면 그 개 주인에게 변상을 요구할 수 있는 거죠?”

“물론입니다.”

“그렇다면 10만 원 내시죠. 변호사님 댁 개가 우리 고기를 훔쳐갔거든요.”

변호사는 말없이 돈을 내주었다. 며칠 후 정육점 주인에게 변호사로부터 청구서 한 장이 날아왔다.

“변호사 상담료 100만 원.”

 

집을 보러 온 손님에게 부동산 중개사가 열심히 주거 환경을 자랑했다.

“이 동네는 물 좋고 공기가 맑아 병에 걸려 죽는 사람이 없답니다.”

그때 마침 장례 행렬이 그 앞을 지나갔다. 그러자 중개인이 혀를 끌끌 차며 하는 말.

“저런, 환자가 없어서 의사가 굶어 죽었구먼.”

 

입대한 아들에게 엄마가 편지를 보냈다.

“아들아, 아직도 네 방에선 너의 온기가 느껴진단다.”

한 달 뒤 아들로부터 답장이 왔다. 엄마는 반가워 눈물 흘리며 봉투를 뜯었다. 편지 첫 줄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죄송해요, 엄마. 군에 오는 날 그만 깜빡 잊고 전기담요 코드를 안 뽑은 것 같아요.”

 

레지던트 두 사람이 자기 능력을 자랑하고 있는데 한 환자가 배를 움켜쥐고 고통스런 표정으로 걸어오고 있었다.

“저 사람 틀림없는 디스크 환자군.”

“무슨 소리, 보나마나 관절염 환자야.”

두 레지던트는 서로 자기가 옳다고 다투다가 내기를 걸었는데, 환자가 다가와 배를 움켜잡고 하는 말.

“저기요, 선생님, 화장실이 어디 있죠?”



체홉 그리고 모파상과 함께 세계 3대 단편 작가로 불리는 오헨리의 소설은 「마지막 잎새」, 「크리스마스 선물」 등에서 보듯이 따뜻하고 유머러스한 반전이 그 특징입니다. 약제사․카우보이․은행원․가게 점원․공장 직공 등 다채로운 직업은 물론 공금 횡렴 혐의로 수감 생활까지 한 작가의 인생은 그 자체가 멋진 반전 드라마입니다. 「경찰과 찬송가」 역시 인간에 대한 연민이 가득 담긴 명작 단편입니다. 이런 줄거리지요.


노숙자 소피는 추운 겨울이 다가오자 가벼운 범죄를 저질러 따뜻한 교도소에서 겨울을 나려 하지만 그의 시도는 번번이 실패를 거듭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비싼 음식을 시켜 먹고 ‘배 째라’고 하려 했으나 남루한 옷차림 때문에 문전박대 당하고, 다른 식당에서 무전취식을 했는데도 주인은 경찰을 부르기는커녕 식당 밖으로 내팽개쳐 버린다. 건물 유리창을 깨뜨린 뒤 경찰에게 자기가 한 짓이라고 주장해도 경찰은 믿어 주질 않는다. 경찰서 앞에서 지나가는 여인을 희롱했으나 그녀는 오히려 그에게 반했다며 소피에게 달라붙는다. 길에서 고성방가하며 행패를 부려도 경찰은 승리감에 도취된 열성 축구 팬 정도로 보아 넘길 뿐이다. 어떤 신사의 우산을 빼앗아 자기 우산이라고 우겼지만 신사는 사실은 자기가 주운 우산이라고 미안해하며 도망쳐 버린다. 결국 단념한 소피는 어느 교회 앞에서 찬송가를 듣다가 문득 잘못을 뉘우치며 떳떳한 삶을 살겠노라고 다짐한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경찰이 나타나 수상한 놈이 밤중에 교회 앞을 서성거린다며 수갑을 채워 끌고 간다. 판사는 소피에게 징역 3개월을 선고한다.


소피는 소원을 성취한 걸까요? 참으로 아이러니한 반전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범죄소설 작가인 브라이언 이니스가 쓴 『모든 살인은 증거를 남긴다』란 법의학 서적에는 ‘자살’이 ‘살자’로 반전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대강 이런 내용입니다.

한 남자가 자살을 결심했다. 완벽한 성공을 위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수면제를 양껏 삼키고 몸엔 시너를 잔뜩 뿌린 다음 바다 위로 길게 가지 뻗은 벼랑 끝 굵은 소나무에 밧줄로 목을 매달았다. 라이터로 몸에 불을 붙이고는 권총으로 자기 머리를 쏘았다. 하지만 아뿔싸, 총알이 빗나가 밧줄을 끊었다. 풍덩! 그 바람에 불은 꺼지고 수면제는 토해내고 권총은 바다 깊숙이 가라앉고 말았다. 죽기는 살기보다 훨씬 더 힘들구나. 본능적으로 바다를 헤엄쳐 나온 그는 그 뒤로는 다시 태어난 듯 치열하게 살았다.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생각이 벽에 부딪쳤을 때는 역발상과 반전의 상상력을 발휘해 보면 어떨까요? 그러면 상황이 바뀝니다. ‘자살’을 거꾸로 하면 ‘살자’가 되듯이, 반전이 있어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뒤집어 보십시오. 겉이 속이 되고, 속이 겉이 되는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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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인생역전 2011/12/28 09: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새해엔 멋진 반전 드라마를 쓰고 싶습니다.

  2. 오목렌즈 2011/12/28 15: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런 반전 유머도 있습니다.

    한 올드미스가 알라딘의 램프를 손에 넣었습니다.
    당연히 거인이 나타났겠죠?
    세 가지 소원을 기대했는데, 웬걸, 한 가지 소원만 들어 준다는 겁니다.

    이 아가씨, 머리를 굴렸죠.
    ("돈을 많이 벌고 싶다,
    멋진 남자를 만나고 싶다,
    행복한 결혼을 하고 싶다,
    이 셋을 짧게 줄여 '돈, 남자, 결혼'이라고
    빠르게 말하면 세 가지 다 들어 주겠지?")

    그래서 잽싸게 말합니다.
    "돈 남자 결혼!"

    결국 올드미스는 소원 성취를 했답니다.
    미친 남자랑 결혼하게 된 거죠.

    • 알라딘 2011/12/30 07:06  댓글주소  수정/삭제

      "결혼 남자 돈"이라고 말했어야지.
      그러면 남편과 애인과 재물 셋 모두를 얻었으련만...

  3. 그러나 2011/12/28 1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리고의 삶에 안주하지 않고 그러나의 인생을 개척해 나가련다.
    품격 높은 유머, 가슴에 담아 갑니다.

  4. 헬레나 2012/01/01 13: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
    임진년 새해 福 많이 받으십시요.
    새해에는 건강하시고 언제나 만사형통 하시길 소망드립니다.
    유머펀치 보고 많이 웃고 있습니다.
    가끔씩 웃고 싶을때 컴에 들어와서 웃고 갑니다.
    언제나 전통시장[청학시장]에 관심과 발전에 도움을 주셔서
    감사하고 고맙습니다.건강하셔서 흑룡의해에 룡트림 하소서!!!

  5. 블루드래곤 2012/01/08 17: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흑룡과 백룡이 싸우다가 둘 다 죽었다. 이를 5자 성어로 하면?

    용용죽겠지.

  6. 드렁큰타이거 2012/01/14 13: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자살"을 거꾸로 읽으면 "살자"라굽쇼?

    그렇담
    "소주 만병만 주소"를 거꾸로 읽으면?

    "소주 만병만 주소"

그래도 새아침은 밝아온다

김형오

팍팍한 살림살이 속에서도 우리를 훈훈하게 만든 소식이 있다.

연간 무역규모 1조 달러 시대를 열었다. 세계에서 9번째다. 가진 것도 없고 세계에서 가장 가난했던 나라가 전쟁의 폐허 위에 경이로운 금자탑을 쌓았다. 세계경제의 불확실성 속에서 달성한 무역대국 대한민국의 저력이다.

부산은 아시아 최초로 세계개발원조 총회를 개최했다. 구호·원조물자를 받던 항구는 지구촌 나눔과 공생을 실어 나르는 국제적 중심지가 되었다. 우리는 이미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탈바꿈한 세계적 신화도 창조했다. 개인 기부문화도 진화하고 있다. 현역의원이 거액의 사재를 출연해 나눔재단을 설립했다. 상상을 뛰어넘는 기여공동체를 만들어 대기업 이미지를 일신하고 양극화해소와 사회통합에 솔선수범하고 있다. 남몰래 선행 릴레이도 계속된다. 구세군 냄비에선 1억원 수표도 발견됐다. 진정한 부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다.

역사적 의미도 남달랐다. 외규장각 도서가 귀환했다. 무려 145년만이다. 조선왕실의궤도 89년 만에 되찾아왔다. 문화재 환수의 이정표다. 실로 감개무량하다. 약탈당한 역사의 퍼즐조각이 꿰맞춰지고 있다.


‘바덴바덴의 영광’은 ‘더반’으로까지 이어졌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쾌거는 2전3기 끈기와 도전의 결실이다. 가슴 벅찬 국가적 경사이다. 세계 4대 스포츠축제를 모두 개최하는 명실상부한 스포츠외교 강국으로 우뚝 섰다.

‘안철수 바람’ 앞의 촛불 신세였던 정치권도 깊은 내홍에서 깨어나고 있다. 쓰러질 듯 비틀거렸던 야권통합의 깃대엔 깃발이 곧 펄럭일 듯하다. 지리멸렬할 듯 보였던 여당도 비대위 체제로 봉합됐다. 국회 정상화의 불씨도 살아나고 있다.

정치인의 자성도 잇따르고 있다. 4선이 유력했던 야당의원이 불출마선언을 했다. 이에 앞서 전도유망한 젊은 여당 초선의원은 불출마에 앞장섰다. 등 떠밀려서 발목 잡혀서가 아니다. 꼼수나 술책도 아니다. 책임감 때문이다. 구태정치를 쇄신하지 못한데 대한 반성과 성찰이다. 양질의 정치인이 설 곳을 잃고 있는 정치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텃밭을 포기하고 적진(?)에 과감히 뛰어든 현역의원도 있다. ‘동토의 땅’에서부터 왜곡된 지역주의를 녹여내는 불쏘시개가 되겠다는 자기희생이고 용기이다. 남 희생을 강요하지 않고 스스로 내던져서 감동도 울림도 크다.

대한민국은 하루아침에 세워진 모래성이 아니다. 산업화의 땀, 민주화의 피, 정보화의 역동성 위에 뿌리를 단단히 내린 자랑스러운 역사다. 막힌 길을 뚫어 도로를 내고 독재권력에 대항해 언로를 쟁취하고 초고속정보고속도로 소통의 길을 활짝 연 위대한 대한민국이다.

스마트폰 2000만 시대이다. 개인 미디어가 소통의 중심에 있다. 댓글에 댓글이 주렁주렁 달려 순식간에 퍼져나가는 소통의 나라가 돼야 한다. 악플 대신 선플이 휘날릴 때가 멀지 않다. 대화와 토론이 활성화되고 양보와 타협을 미덕으로 삼아야 한다.

밤이 깊어갈수록 새벽은 가까이 오는 법이다. 불통과 절망 속에서도 소통과 희망의 싹은 튼다. 임진년이 기다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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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상 2011/12/19 15:0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5년 주기 ‘판박이 드라마’는 또 되풀이되는가”

반복되는 정권 말기 현상에 던지는 경고장


김형오(18대 전반기 국회의장)


아침마다 신문을 펼쳐들기가 겁이 난다. 국민들인들 오죽하겠는가. 입법부에 이름 석 자를 올리고 있는 사람으로서 민망하기 짝이 없다. 낯을 들 수가 없다. 통렬하게 반성하고 뼈아프게 참회한다. 국민 앞에 석고대죄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출처: 노컷뉴스

우리 바다를 지키던 해경이 중국 선원의 칼에 찔려 숨졌다. 그런데도 정부는 강력한 항의조차 못한다. 내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도 총을 쏠 것이지 말 것인지를 놓고 고민한다. 최소한의 자기 방어조차 조심스러워한다. 도대체 무엇이 두려운가.

출처: 연합뉴스

어제(12월 14일)는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 집회가 1000번째를 맞은 날이었다. 피해 할머니들은 추위를 무릅쓰고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 정부의 사죄와 배상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쳤다. 그런데도 아직껏 아무런 반향이 없다. 우리 정부는 그 동안 무엇을 했는가. 국가의 대외적인 자존과 체통은 땅에 떨어졌다.

봇물은 터졌다. 레임덕은 급물살을 타고 있다. 목불인견, 점입가경이다. 예정된 수순처럼 정권 말기 청와대 최측근, 친인척들의 비리가 굴비 엮이듯 줄줄이 엮여 나온다. 대통령 임기가 1년 이상 남았는데 이렇게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서 어쩌겠다는 것인가. 앞으로 또 뭐가 터져 나올는지 모른다.

국회는 디도스 사건으로 어지럽다. 국회의장 비서가 연루돼 있다니 매우 어리둥절하다. 게다가 당대 최고 실세의 측근은 서민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돈을 제 주머니에 챙겼다. 수사는 또 얼마나 지지부진하고 뜨뜻미지근한가. 부산저축은행 사건 때처럼 또 한 번 국민을 저버리는 결과 발표가 나올 것인가. 그래서는 오히려 의혹만 증폭시킨다. 직을 걸고 철저히 수사해라. 엮을 건 분명히 엮고 끊을 건 단호하게 끊어야 한다. 5년 주기로 이 ‘판박이 저질 드라마’의 마지막 신을 지겹게 지켜봐야 하는 국민은 당연히 채널을 돌리고 싶지 않겠는가. 박원순 현상, 안철수 신드롬도 그래서 돌출되었다.

사태가 이 지경인데도 공권력은 무기력하고 한심하다. 검찰과 경찰은 직무를 유기한 채 밥그릇 싸움에만 몰두해 있다. 국정원은 또 뭐하는 기관인가. 존재 이유를 묻고 싶다. 나라의 체통과 체면, 자존과 존엄이 망가지고 있건만 각자의 영역에서 최선을 다하기는커녕 제 밥그릇 챙기기와 남 견제하기에만 바쁘다.

출처: News1 이광호 기자


국회 최루탄 테러 사건은 결국 어물쩍 넘어가 버렸다. 폭력 테러에 관용을 보이는 나라이니 불법 조업을 하던 중국 선원에게 우리 경찰이 살해당해도 분노할 줄을 모른다. 야당 전당 대회는 국회 폭력 사태의 연장선상에서 멱살잡이로까지 번졌다. 지도부가 유실된 여당은 구심력을 잃고 휘청거린다. 유력 대선 후보가 소방수로 긴급 차출되었다. 소 잡을 때 써야 할 칼을 닭 잡는 데 쓰려고 한다.

지금 우리는 백척간두, 벼랑 끝에 서 있다. ‘꼼수’는 집어치워라. ‘정면 승부’만이 살 길이다. ‘막장 드라마’도 여기서 끝내라. 국민은 감동에 목말라 있다. 상식과 보편에 기반을 둔 ‘해피 엔딩 드라마’를 보고 싶어 한다.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 심판은 준엄하고도 냉혹하다. 이렇게 정신 못 차리고 우왕좌왕, 갈팡질팡만을 거듭한다면 길은 하나다. 절벽이고, 추락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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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심발언 2011/12/15 17: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폐부를 찌르는 작심발언입니다.
    한나라당, 몰살당하지 않으려면 정신 단단히 차려야 합니다.

  2. 정신 차리세요 2011/12/15 17:3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민국이 이 지경이 되는데에 국회에 있던 정치인으로서 일조(?)를 하신 분이 무슨 남일 말하듯이 하십니까?
    정신 차리고 책임지세요.
    가카처럼 유체이탈 화법을 쓰시는 겁니까?

  3. ㅋㅋㅋ 2011/12/15 23: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FTA 처리에대한 문구는 최루탄이 다군요. 본인 홈피니 용인.
    하지만 신물이나네요. 당은 팔고, 본인은 면피하는....
    왜요~~ 차라리 본인이 다해봐서 안다고, 이해한다고 하지 그러시죠.
    참... 트윗에서는 벽돌 한장 드리겠습니다.

  4. 칼의눈물 2011/12/16 04:5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칼집 속에서 칼이 울고 있습니다.
    한나라당은 그 통곡을 들어야 합니다.
    아니면 곡소리 납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 실천할 자는 누구인가.

  5. 데자뷰 2012/01/28 14: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름을 바꾼다굽쇼?
    그때 그 당이 안 되려면
    그때 그 사람들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장인의 손길, 명장의 숨결을 만나다

2011 대한민국 명장 및 경남 최고장인전

 

김형오

경남 창원,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직선도로를 신나게 달리다가 도청 방향으로 틀어 전시관(성산아트홀)을 찾아 들어갔다. 12월 둘째 주, 토요일 오후3시. 제1회 ‘대한민국 명장 및 경남 최고장인전(展)’이 열리고 있다. 명장 네 분과 최고장인 여섯 분의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 주인공들이 반갑게 맞아주었다. 내 스마트폰에 담긴 순서대로 간단한 설명과 함께 작품 감상을 해보자.


▲ <자연의 소리>. 석공예 명장 김상규 선생의 작품이다. 화분, 수박, 호박 등을 돌로 깎아 만들었다. 참 힘든 작업을 했구나. 수박과 호박은 마치 실물을 보는 것 같다. 생동감 넘치는 자연미를 섬세한 조형 언어로 빚어냈다.


▲ 대한민국 명장회 회장을 지낸 한완수 선생의 세라믹 작품. 천연산 황토와 고령토를 고순도로 정제하고 광분채하여 고열로 처리하는 전통기법으로 빚어낸 신소재 고효능 도자기이다.

▲ 금속공예 명장인 변종복 선생은 이번 전시회의 추진위원장을 맡아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청동으로 만든 그의 작품 <얼굴>은 너무나 리얼하여 진짜 실로 꼰 머리채인 줄 알았다. 변 선생은 자기 작품뿐 아니라 다른 분 작품까지 해설을 해주었다.


▲ 변종복 선생 작품 <삼족오문연잎청동촛대> 또한 섬세하고 정교하다. 부분 부분 참 재미있는 구도를 지니고 있다.


▲ 내가 좋아하는 와심(瓦心) 이계안 선생은 <결정>과 <삼채> 달항아리를 출품했다. 국회의장 시절 나는 이 분의 달항아리 한 점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세계 최대의 아태문화원(이종문 기념관)에 기증한 바 있다. 또 그보다 좀 더 큰 달항아리를 퇴임 기념으로 국회에 기증했는데 이 작품은 헌정기념관에 비치되어 국회를 찾는 이들에게 기쁨을 주고 있다. 이번 전시회에 선보인 달항아리는 그보다도 좀 더 커 보인다. “힘이 있을 적에 한두 점 더 남기고 싶어서” 만들었단다. 예술가의 창작 의욕을 누가 꺾을 것인가. 그 달항아리를 앞에 두고 기념사진도 찍었다.

▲ 나전칠기공예 최고장인 박재성 선생의 작품 <빗접>. 영롱한 자개 빛깔과 은은한 옻칠이 어우러져 편안함을 자아낸다. '빗접'은 빗·빗솔·빗치개·가르마꼬챙이·뒤꽂이·동곳 등 머리를 손질하는 도구들을 넣어 두는 함을 일컫는다.

▲ <동화(진사)> 연작을 출품한 도자공예 최고장인 김용득 선생의 도예 작품들도 참 예쁘다. ‘동화(銅畵)’란 고려 시대에 세계에서 가장 먼저 구리 안료(銅顔料)를 이용해 선홍의 고운 발색을 내던 기법인데, 제작 과정이 까다로워 백자와 청자에 비해 발전하지 못했다고 한다.

▲ 정찬복 장인의 출품작 나전칠기 접시 소반. 작품 이름은 <과기>이다. ‘과기’란 중국 송나라 때에 산시성의 가마에서 구워내던 도자기를 뜻한다.


▲ 조복래 장인의 가구는 퍽 인상적이어서 좀 설명을 하려고 한다. <상감삼층장>은 오래 된 고사목(느티나무)을 위주로 나뭇결을 잘 살렸으되 오동나무, 가죽나무, 배나무, 먹감나무를 섞어 작업했다. 특히 장의 하중을 지탱하기 위해 기둥과 쇠목은 단단한 가죽나무로 짰다. 괴목이 빚어낸 오묘한 무늬가 붓으로 그린 것보다 아름답다.

▲ <상감삼층장> 앞에 선 조복래 장인.


▲ 이한길 장인의 진사(동화)와 분청. 도자공예 외길을 걸어온 작가의 인생이 이름(이한길)에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다.

▲ 감상을 마치고 찰칵! 여자 분들을 제외하고 사진 왼쪽부터 이계안 장인, 김상규 명장, 나, 변종복 명장, 조복래 장인.

아쉬운 점 한 가지. 이렇게 훌륭한 작가들의 명품이 한 곳에 오롯이 전시되었건만 내가 비행기 시간을 변경해가면서 1시간여 머무는 동안 관람객이 거의 없어 썰렁했던 것. 전시회 마지막 날인 일요일에는 좀 더 많은 관람객이 찾아 주었을까. 서울로 옮겨 전시해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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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명품명장 2011/12/15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장인의 손길이 빚어낸 명품들도 놀랍지만 그걸 글로 옮긴 심미안도 찬탄스럽습니다


가슴 안에서 빛나야 진짜 보석이다

스마트폰으로 스케치한 이영미술관의 진짜 보물들


김형오


한 개인이 사재를 털어 운영하는 곳. 이영미술관(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영덕동)은 자체 시설도 크고 훌륭할 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과 풍광 또한 이만한 곳이 드물 것 같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오르세미술관이 기차역을 개조해 지어졌듯이, 이영미술관은 2001년 돼지우리가 있던 자리에 세워졌다. 3000여 마리의 돼지를 키우던 돈사(豚舍)가 지금은 그보다 두 배가 넘는 작품을 소장한 미술관으로 거듭났으니, 다산성(多産性)인 돼지의 축복을 받은 걸까? 장미꽃밭으로 변신한 전남 구례의 쓰레기 매립장처럼 이영미술관은 역발상의 신선한 성공 모델이다.

다음은 내가 이영미술관에서 찾아낸, 다른 여느 미술관에서는 볼 수 없는 진짜 보물들이다. 아이폰으로 스케치한 사진들이라서 퀄리티는 조금 떨어지지만, 이영미술관이 얼마나 매력 넘치는 곳인가를 알게 해주기에는 모자람이 없으리라. 진짜 보석은 가슴 안에서 반짝인다. 내 후각과 미각과 시각과 촉각과 청각 모두를 행복하게 해준 그날의 기억들은 지금도 내 가슴 한 기슭에서 보석처럼 빛을 발하고 있다. 자, 그럼 이제부터 그 공감각적 보물찾기에 동행해 보자.

보물 1 : 금강산도 식후경, 밥상 위의 행복

▲빨갛게 달구어진 장작이 타고 있는 가마솥! 오늘 무슨 잔칫날인 줄 알았다. 이렇게 큰 무쇠 가마솥이 펄펄 끓고 있다니…. 우리를 기쁘게 해주려고 김이환 관장님이 준비를 단단히 하셨다. 모락모락 새어나오는 김에서 풍기는 구수한 냄새에 저절로 발목이 붙잡혔다. 저 안에서는 무엇이 익고 있는 걸까?

▲부뚜막과 나무 선반 등이 옛날 시골 부엌을 떠올리게 한다. 행주며 그릇들은 또 얼마나 정겹고 소박한지…. 뚜껑을 살짝 열어 놓은 이 가마솥 안에서도 밥 냄새가 구수하다. 오, 해피 데이! 장작불 가마솥에서 갓 지어낸 밥과 국을 맛보게 될 줄이야….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지푸라기로 엮은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온돌방에서 도란도란 맛있는 점심 식사를 했다. 갑자기 이 집 된장과 간장 맛이 궁금해졌다.

▲놋그릇과 도자 접시, 가마솥에서 나온 밥과 국, 통영에서 전영근 화백이 가져온 싱싱한 생굴과 맛깔스런 김치, 접시에 다소곳이 담긴 장떡(밥상 위쪽)…. 황제의 밥상이 부럽지 않은 소담스런 성찬이다.

보물 2 : 설치미술과 정물화, 휴식 같은 산책

▲뱃속을 든든하게 채웠으니 이제 본격적인 탐방에 나설 시간. 닭 우는 소리가 들리는듯하여 가 보니 이제 막 볏이 돋기 시작한 토종닭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닭장이 나온다. 그런데 이 녀석들, 낮잠이라도 즐기고 있는 듯 꼼짝을 안 한다. 주인이 가끔씩 자리를 옮겨 주기 전까지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이다. 작대기를 걸쳐 세워 놓은 저 지게는 또 얼마 만에 보는가. 검불이나 곡식 따위를 긁어모으던 나무 갈퀴 두 개가 소품처럼 지게 위에 얹혀 있다. 멋진 설치미술 작품이 따로 없다.

▲투박한 장독 위에 올려놓은 나무를 엮어 만든 소쿠리에서는 모과가 상큼한 향기를 풍기고 있다. 십리 밖에서도 모과향이 느껴질 것만 같다. 그대로가 한 폭의 아름다운 정물화이다.

▲벽오동 심은 뜻은 봉황을 보려 함이던가. 정원 한 편에 300년 세월을 살았다는 벽오동나무가 잎을 죄다 떨어뜨린 채 겨울날 채비를 하고 있다. 내년 봄 잎사귀들이 무성하게 신록을 자랑할 때 그 진수를 보러 다시 와야겠다.

▲내가 좋아하는 백일홍나무(‘배롱나무’로도 불린다)를 만났다. 혹한의 겨울에 대비해 두터운 외투로 몸을 감싸고 있다. 그 뒤로는 빈 독인지 속이 꽉 찬 독인지 궁금해지는 배가 볼록한 독들이 백일홍 나무를 응시하고 있다. 혹은 수호하고 있는 걸까? 백일홍의 꽃말은 ‘가 버린 친구를 그리워함’이다. 문득 지난여름 난분분난분분 낙화했을 꽃들이 그리워졌다. 백일홍은 나뭇가지 틈새를 살짝만 건드려도 겨드랑이를 공습당한 새색시처럼 몸을 파르르 떤다 해서 일명 ‘부끄럼나무’ 혹은 ‘간지럼나무’로도 불린다.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독들이 ‘너희 정치인들도 우리를 본받으라’는 듯이 사이좋게 어깨동무를 하고 도열해 있다. 저 안엔 무엇이 들어 있을까? 하나하나 열어 보고 싶게 만든다.

▲나무판자를 깔아 놓은 산책로. 우리는 정담을 나누며 이 길을 산책했다. 돌담 위에 나란히 얌전하게 포개져 앉아 있는 것들은 고풍스런 기왓장들이다. 7천 평의 넓은 면적을 훨씬 더 넓게 쓰는 것은 공간 활용을 그만큼 잘했다는 얘기다.

보물 3 : 깜짝 공개, 보물창고의 문을 열다

▲이제부터는 진짜 보물창고 탐방이다. 보통 사람들은 여기 이런 보물들이 숨어 있는 줄 짐작도 못할 텐데 우리 부부에게는 특별히 공개했다. 사진 속에서 빛나고 있는 공예 작품은 여덟 사람이 둘러 앉아 식사를 하면 딱 좋을 것 같은 전통 자개상이다. 통영 명인의 얼과 혼이 깃든 명작.

▲상다리는 사자 모양이다. 네 귀퉁이에서 갈기를 휘날리는 사자 네 마리가 튼튼하게 상을 받치고 있다. 천년을 써도 결코 부러지지 않을 것같이 위풍당당하다.

▲자개로 만든 용이 구름을 헤치고 밥상 위로 날아오를 기세다.

▲육중해 보이는 사자의 다리와 발목에는 아름다운 매화가 활짝 꽃잎을 열고 있다.

▲선반 위에 놓인 놋그릇과 찻잔. 50명 정도가 한꺼번에 식사할 수 있는 공간이다. 놋그릇엔 하나하나마다 인장을 찍어 외부 반출을 막았다. 요즘엔 닦기가 좀 쉬워졌겠지만 그래도 웬만한 정성 없이는 관리하기 힘든 그릇들이다.

▲보물 중의 보물을 발견했다. 이 보물들을 보고 온 뒤로 며칠 동안 얼마나 배가 부르던지…. 이게 뭔가? 맞다, 분명 전혁림 그림이다. 그런데 그 소재는? 김이환 관장 왈, ‘제주도 문짝’이란다. 허걱, 제주도 문짝 그대로를 캔버스로? 실제로 문이 열리고 닫힌다. 제주도 나무인 만큼 재질이 딱딱하다. 다른 나무보다 그림 그리기가 더 까다롭다. 그 대신 변치 않는다. 참 신기하고 매력적인 작품들이다.

▲제주도 문짝을 캔버스로 삼은 작품 앞에서 아내와 찰칵! 쪽문인 듯 허리를 굽혀야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이다.

▲나룻배 모양 목기에 담아낸 저 현란한 색채와 자유분방한 붓놀림! 그 옆에 붉은 글씨로 ‘全爀林’이라고 화가의 한자 이름을 써 놓았다.

▲통영의 목공예 명장이 만든 3층장에 전혁림 화백이 이미지와 색을 입힌 아주 특별한 작품. 이런 소장 가치가 높은 걸작은 대대손손 보관을 잘해야 될 텐데, 공개해도 괜찮은 건지 조금 걱정스럽다.

▲보물들을 향해 열심히 스마트폰 셔터를 누르는 내 모습이 유리창에 투영되었다. 사진 찍기란 어쩌면 자신의 내면과의 대화인지도 모른다.

보물 4 : 조각품들은 말한다,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미술관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눈길을 사로잡은 조각 작품들. 찬찬히 뜯어보니 정말 예사롭지 않다. 특이하게도 모두 하나같이 제목이 없다. <무제(無題)>라는 타이틀조차 달지 않았다. 작가가 아예 짓지 말라고 했다 한다. 그 까닭은 ‘달을 가리키면 달을 보아야 하는데 손가락만 보기 때문’이라고. 그래서 “내 작품에는 어떤 해석이나 설명도 사양한다. 그냥 보이는 대로 보고 느껴지는 대로 느껴 달라”고 했다는 말을 듣고는 갑자기 김춘수 시인의 <꽃> 중 이런 구절이 생각났다.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와 동시에 작가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다.
그의 이름은 한용진. 1934년생으로 서울대 미대를 졸업하고 이화여대 교수로 있다가 1964년 미국으로 건너가 뉴욕을 무대로 활동 중이다. 자연석에 최소한의 손질만 해서인지 그의 작품은 인위적이지 않고 투박하다. 자연과 일체를 이룬다. 맨 위 사진(두 번째, 세 번째 사진은 부분 촬영)에 담긴 조각 작품은 작가가 특별히 애착이 깊어 완성된 날 막걸리 한 사발을 붓고는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한다. 충남 보령 지역의 청석을 탑처럼 쌓아 세워 놓았다. 돌 하나의 무게만도 무려 5톤. 아침저녁으로 그 빛깔이며 질감, 이미지 등이 조금씩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그대, 부디 이영미술관에 가시거들랑 이 모든 제목 없는 작품들의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그대만의 이름을 불러 주기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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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길영소백합 2011/12/13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여사님과 오붓한 모습이 보기가 좋네요.

  2. 볼록렌즈 2011/12/20 18: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술관 전체가 거대한 미술작품인 것 같아요.
    관장님의 안목과 센스가 참 대단하십니다.

통영의 하늘과 바다를 사랑한 사람

이영미술관에서 전혁림을 만나다 3


김형오


도자기 옆에 있는 조형물도 눈길을 끈다. 목어(木魚) 모양 그네? 김이환 관장 부인 신영숙 여사가 사찰의 대들보와 기둥을 그대로 가져와 소재로 쓴 일종의 설치 미술이다. 오래 된 나무라야 변질․변색․변형을 막을 수 있다고 한다. 대들보 밑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목어는 그네 타기가 아니라 종을 치기 위한 것. 배치가 절묘하다. 뒤편의 도자기가 마치 범종처럼 보인다.


전혁림 화백 하면 누드화를 빼놓을 수 없다. 청년기는 물론 아흔 넘어서도 여체를 즐겨 캔버스에 옮겼다. 이번 회고전(2012년 2월 28일까지 연장 전시 중)에서도 15X19cm 크기의 목판 85조각에 저마다 다른 포즈를 하고 있는 누드화를 아교로 타일처럼 벽에 붙여 놓은 작품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앞서 <만다라>와는 달리 테두리가 튀어나오도록 하지 않고 사각 평면이라서 그림 그리기는 한결 수월했을 듯. 무식한 내가 "젊었을 때 누드화 많이도 그렸네요"라고 했더니 90 넘어 그린 최신 누드작이란다.(2007년부터 2008년까지 이태 동안 작업) 여기서 한 가지 팁. 이 개개의 유화 작품들엔 전 화백의 영문 사인 ‘JEON’이 들어가 있다. 2004년까지는 ‘CHUN’을 쓰다가 그 이후로 바꾸었다고 한다.

▲ 이 작품에 얽힌 재미난 에피소드 하나. 눈 밝은 사람이라면 금방 알아보았겠지만 이 누드의 맨 오른쪽은 세 개의 목판으로 구성돼 있는 반면 왼쪽은 두 개여서 비대칭을 이룬다. ‘Balance of Unbalance’를 추구한 걸까? 노! 사실은 목판이 하나 모자라서 그런 거란다. 메인 부분에서 하나를 빼면 이가 빠진 듯 균형이 깨질 테고, 그래서 맨 왼쪽을 두 조각으로 배치했다는 얘기. 가만, 그러고 보니 오른쪽은 세로 그림인 반면 왼쪽은 가로 그림이다. 구도가 전혀 어색해 보이지 않는 건 아마도 그래서인 듯.


전 화백은 고향 통영의 하늘과 바다를 누구보다도 사랑했다. 회고전에 걸린 2005년 작품 <통영항>에는 작가의 절절한 통영 사랑이 화폭 가득 묻어나 있다. 1000호짜리(600X300cm) 대작이다. 이만한 크기면 보통 여러 개의 캔버스를 이어 붙여 작업하기 마련인데 전 화백 작품에는 이음매가 없다. 독일에서 특별히 주문 제작한 캔버스이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수입한 유화 물감을 썼는데 작품 한 점 당 물감 값만도 2000만 원이나 들었단다.


청와대 인왕홀에도 전혁림 화백이 그린 1000호짜리 <통영항>이 걸려 있다. 이 작품은 가로 길이가 좀 더 길어 7m라고 한다. 노무현 대통령의 부탁을 받고 그렸다는데, 그래선지 미륵산이 크게 부각돼 있다. 노 대통령이 미륵산 용화사에서 사법고시 공부를 했기 때문이다.

<한려수도 300리>도 1000호 대형 작품이다. 이 그림의 탄생 배경 또한 의미심장하다. 전 화백은 1983년 <통영항>이란 100호 작품을 그려 통영시청에 걸었다. 그러나 그 정도 크기로는 뭔가 부족하다 싶었다. 살아 있을 적에 통영항과 한려수도를 좀더 넓은 캔버스에 제대로 담아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기존의 <통영항>을 참고 삼아 필생의 역작에 매달렸다. 자신의 얼과 혼을 모두 쏟아부었다. 이 얼마나 수려하면서도 섬세하고 또한 다이내믹한가. 이렇게 멋진 ‘한려수도 조감도’를 그려낼 사람은 전 화백 말고는 없으리라. 헬리콥터 위에서 내려다본 듯 생생한 풍경이다. 1967년에 개통된 운하교가 통영시와 미륵도(산양읍)를 가로지르고, 통영항에는 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어릴 적 내가 통영에만 가면 꼭 찾곤 했던 남망산에서 바라보이는 섬과 화가의 눈에만 역력히 각인된 섬들이 그 특색만을 살린 채 화려하게 경연을 펼친다. 남해, 삼천포, 연화도, 욕지도, 한산도, 거제도, 가덕도 등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여러 섬들이 코발트블루의 바다 위에 떠 있다. 통영수산금융조합 서기로 근무하며 그 일대 섬이란 섬은 모두 섭렵한 전혁림 선생이 섬의 특징을 뽑아냈기에 눈 밝은 사람이라면 금방 그 섬들을 찾아낼 수 있다.

▲ 한려수도 300리

한려수도 300리 부분(좌)

한려수도 300리 부분(중)

한려수도 300리 부분(우)


 

미술의 전혁림을 비롯해 통영은 예술 분야에서 불세출의 거장들을 많이 배출했다. 음악의 윤이상, 문학의 유치진․유치환․김춘수․이영도.박경리 등이 바로 그들이다.

내 어릴 때 통영에서 본 가장 크고 웅장한 건축물은 세병관(洗兵館)이다. 그 일곱 기둥 사이로 통영항이 전개된다. 자연 만물이 살아 숨쉬고 춤추고 노래하고 웃고 뛰어논다. 햇살과 바람, 섬과 산과 하늘, 그리고 배들이 노닌다. 

추상화의 절정인 말기 작 <세병관 일곱 기둥 사이로 본 통영항>에는 통영이 낳은 걸출한 예술인들의 창작혼이 상징적으로 담겨 있다. 김춘수의 꽃, 유치환의 바다, 윤이상의 오선지, 이영도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가 히노끼(편백)나무 화판에 스며들어 있다. 영화에 빗대자면 ‘오마주’ 같은 작품이다. 일곱 개의 기둥 사이로 펼쳐진 통영항이라. 참 발상 자체가 담대하고 파격적이다. 두 개의 기둥 사이라면 몰라도 누가 감히 일곱 개의 기둥 사이로 보는 통영항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는가. 현실적인 눈으로는 동시에 그런 풍경을 보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오로지 전 화백 같은 거장의 심미안만이 볼 수 있는 영역이다. 한참을 들여다보노라면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수많은 이야기들이 돌출한다. 몇 권의 책에 담길 내용들을 1000호짜리 캔버스에 압축하고 집약했다. 숨은 에피소드 하나. 맨 오른쪽 반달 모양 공간에도 무언가를 그려 넣으려 했는데 끝내 못 채우고 작가는 세상을 떠났다. 나는 그래서 오히려 이 작품이 더욱 인상 깊이 남는다. 저 빈 공간을 보고 있노라면 물감으로 얼룩진 작업복을 입고 치열하게 붓을 놀리고 있는 생전의 노화백 모습이 떠올라 가슴이 아련해지곤 한다.

▲ 세병관 기둥 사이로 본 통영항

세병관 기둥 사이로 본 통영항 부분(좌)

세병관 기둥 사이로 본 통영항 부분(중)

세병관 기둥 사이로 본 통영항 부분(우)



2010년 7월 12일, 전혁림 화백 49재를 맞아 창원 MBC는 특집 프로그램을 내보냈다. <바다에 지다>라는 제목의 이 다큐멘터리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주관한 ‘이달의 좋은 프로그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영미술관은 몇 달 전 방영된 KBS 주말 드라마 <사랑을 믿어요>의 세트장으로 사용되었다. 미술관에 전시된 전혁림 화백의 작품들이 텔레비전 화면에 자주 비친 건 당연한 사실. 예술은 역시 인생보다 훨씬 더 생명력이 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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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누디스트 2011/12/12 14: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 저 놀라운 여체미학.
    모든 모델들이 포즈도 다를뿐더러 얼굴과 체형 또한 각양각색이다.
    85개의 누드가 에로티즘의 미학을 발산한다.

춤추는 도자기, 노래하는 도자기

이영미술관에서 전혁림을 만나다 2

김형오


<만다라>에 빠져 있는 내 손을 잡고 김이환 관장은 “우리 집에서 제일 자랑하고 싶은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하신다. 뭘까?

내 키보다 더 큰 2m 높이는 됨직한 거대한 도자기가 주변을 압도한다. 첫눈에 전혁림 화백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색깔․선․면 처리가 투박한 듯 날렵하고, 무거운 듯 가볍다. 산과 바다, 하늘과 땅, 새와 온갖 것들이 춤추고 노래한다. 거대한 입체 캔버스 위에서 사고가 자유를 만끽한다. 도자기라는 정해진 틀에 닫혀 있으면서 또한 열려 있다. 참 오늘 미술 공부 많이 한다. 아니, 전혁림의 미술관, 작품 세계를 조금은 이해할 듯하다.


이 도자기는 전 화백이 강화의 도자기 요에 직접 가서 그린 작품이란다. 두 점을 그렸는데 한 점은 아깝게도 가마에서 꺼내다가 파손되어 이것밖에 없다고 한다. 이 큰 도자기에 연로하신 몸으로 어떻게 작업하였을지 자못 궁금하다. 전 화백이 의자에 앉아 있으면 거대한 도자기가 물레 틀에서 조금씩 돌아가고, 화백께선 붓을 들고 영감과 예술혼을 그 위에 펼쳐나가셨단다. 아드님 영근 화백은 그런 아버님 자세를 흩뜨리지 않으려고 뒤에서 허리춤을 꽉 붙잡고 도와드렸다고 한다.

놀라운 사실 두 가지! 첫째, 빙 둘러 그림을 그리고 선과 무늬를 넣었는데 마치 자로 잰 듯 시작과 끝이 딱 맞아 떨어졌다는 것이다. 직접 확인해 보았다. 맨 윗부분만 보더라도 삼각형 무늬가 같은 크기로 반복되고 있다. 가로줄도 색깔의 짙고 옅음은 있지만 비뚜로 되지는 않았다. 오늘 여기서 많이 듣는 말, ‘일필휘지’다. 그랬다, 도자기는 덧칠을 할 수 없다. 색을 빨아들이므로 한번 붓질한 자리에 또 칠하면 금방 표가 나고 보기도 안 좋기 때문이다. 일필휘지로 해와 달, 물고기와 새를 그려내며 선생님은 얼마나 신이 났을까.

두 번째 놀라움. 이 거대 도자기 그림을 완수하는 데 불과 2시간도 안 걸렸다는 것이다. 설마하니 흔들리지 않도록 붙잡고 있는 아드님이 지칠까 하여 빨리 끝냈을 리는 없을 테고, 평소 작가의 머릿속에 꽉 차 있던 창조의 욕구가 그대로 발산된 것 같다.

도대체 전 화백은 어찌 이리 창조적이며 상상력이 풍부하신가. 어디서 모티프를 구하시는가? 추상인 듯 구상이고, 구상인 듯 추상이다. 아드님 왈, “아마도 독학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디에도 구애받지 않고, 모든 것이 작품의 소재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신영숙 여사는 한술 더 뜬다.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초월하신 분”이란다. 아드님이나 제자나 극진한 존경과 사랑이 묻어나온다.

자세히 보면 도자기도 예사롭지 않다. 광주 도자 엑스포에서 대상을 수상
한 도예작가 손호익씨에게 특별 의뢰하여 강화도 초지진의 도요지에서 구워낸 것이다. 아, 아깝고 또 안타깝다. 같은 크기의 작품 한 점이 도요에서 나오다가 파손돼 버리다니!

지금은 사라졌지만 내 어릴 적 영도다리 건너에 '대한도기'라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도자기 공장이 있었다. 전 화백은 일찍이 거기에서 몇년 동안 직접 도자기를 빚었다. 통영 미륵산 자락에 자리잡은 전혁림미술관에는 전 화백이 직접 빚은 도예 작품 수십 점이 소장되어 있다.

전혁림은 통영의 물길이고 또한 상징이다. 통영 시내 주요 아파트 벽면과 절개지, 그리고 도로변에서는 그의 붓자국이 생생한 그림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전 화백의 작품들을 확대 모사해 놓은 것이다. 사람들은 통영을 '동양의 나폴리'라 부르지만, 사실은 나폴리를 '서양의 통영'이라 해야 맞다. 우리 국토에 이토록 아름다운 산하(山河)가 있다니! 그 통영을 전혁림은 붓으로 노래하고 춤추었다. 그의 캔버스는 유한과 무한의 경계가 없다. 모든 것을 담아내고 모든 것을 삼켜 버린다. 그런 그가 100세를 4년 앞두고 떠나갔다. 하지만 통영은 그를 보내지 않았다. 그의 숨결과 체취는 통영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통영시와 통영시민들의 문화의식, 그 수준에 경탄을 금할 수가 없다. 통영은 참으로 아름다운 도시, 자랑스러운 도시다. 그 핵심, 심장부에 전혁림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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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일필 2011/12/11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가의 한 획은 일필휘지가 되건만
    나의 졸필 한 줄은 왜 일필휴지가 되는가.

김형오 전 의장은 지난 11월 28일(월) 부산 남구 감만동에서 열린 북항대교 상량식에 참석하였습니다.
총연장 3.3km인 북항대교는 2014년 완공 예정으로 개통되면 부산의 해안도로망 구축이 완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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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 만다라>, 시작도 순서도 없는 무한 세계 이상향

이영미술관에서 전혁림을 만나다 1

김형오

좋아하는 작가의 혼이 깃든 작품을 보고 좋은 친구를 만나고 맛있는 음식과 멋진 풍경 속에서 사람 이야기, 인생살이 같은 담소를 나눈다면 이 얼마나 즐겁고 아름다운 일이겠는가. 이영미술관에서 이 모든 즐거움을 한꺼번에 채울 수 있었다. 행복한 날이었다.

이영미술관을 찾았다. 근 3년만이다. 다소 쌀쌀한 날씬데도 김이환 관장님 내외가 직접 맞으셨다. 마침 내가 오는 시각에 맞춰 통영에서 반가운 손님 한 분도 막 도착했다. 전혁림 선생의 아들이자 고인 이름의 미술관을 씩씩하게 운영하고 있는 서양화가 전영근 관장이다. 너무 반가웠다. 새벽시장 가서 내게 맛보이려고 통영 갯내음이 싱싱한 생굴도 한 박스 사 들고 왔단다. 그 살갑고 섬세한 마음에 고마움을 어떻게 표현해야 하나? 공원처럼 잘 가꾸어진 넓은 정원을 뒤로 하고 미술관 내부로 직행했다.

전혁림 1주기 기념전(‘나는 전혁림이다’)에서 나를 처음 맞이한 것은 거대한(?) 만다라였다.(<뉴 만다라>, 목기에 유화, 2007년) 가로 세로 각 20cm 정도의 나무판 1050개가 하나의 작품으로 진열되어 있다. 물론 목기 하나하나가 작품이니 1050개의 작품이 모여 하나를 이룬다.

<뉴 만다라>의 탄생 배경을 알고 나니 작품 앞에서 떠날 수가 없었다. 이영미술관의 또 다른 주인 신영숙 여사의 노고가 보통이 아니었다.(이영미술관은 김이환의 ‘이’, 부인 신영숙의 ‘영’을 합쳐 만든 이름이다.) 시골에선 아직도 손님에게 떡이나 과자 또는 찻잔을 올릴 때 쓰는 나무 그릇이랄까, 나무 받침 같은 것(목기)을 수십 개씩 들고 가 전혁림 화백에게 그려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이다. 그냥 가정집에서 쓰는 나무 그릇이 아니라 시골집 오랜 대들보(120년 이상 된 조선 소나무)를 구해 자르고 깎고 다듬어 깨끗이 마름질하고 못질 하나 없이 똑같은 규격의 물건을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만들어 내라 했으니 목수의 노고도 이만저만이 아니었을 것 같다. 신 여사 말이, 질 좋고 두꺼운 오래된 대들보라야 목기를 만들어도 뒤틀리지 않고 그림도 잘 그려지기에 구하느라 참 고생도 많았고 까다로운 주문에 목수들 또한 구슬땀을 쏟았다고 한다. 어렵게 만든 목기를 통영의 선생님께 들고 가 여기에다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한 이가 신 여사니 어찌 보면 두 사람의 공동작, 신영숙 기획․제작에 전혁림 주연․감독이랄까. “나무를 캔버스로 삼은 그림은 덧칠해선 안 되고 붓 잡으면 단 한 번에 그려야 제대로 되는데 선생님의 천재가 아니면 불가능했다”는 게 신 여사의 설명이다.

가까이에서 본 만다라 (화보집에서 재촬영)

처음에는 한 300점 정도 그릴까 했는데 목재 구하는 어려움이 즐거움으로 바뀐 건 전 화백께서 목기에 그림 그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사람처럼 좋아하셨기 때문이란다. 그래서 점차 숫자가 늘어나 5백 점, 8백 점, 드디어 1천 점을 넘게 되었다고 한다. 생전에 좀 더 많이 그려서 남겨두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전관장의 목소리에 묻어있다.통영에는 얼마나 있느냐고 물었더니 60점 있다 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이 <만다라>와 <충무항> 두 점을 청와대에 비치하고 싶어 했으나, 일반 그림은 다시 그릴 수 있어도 이 작품은 다시 만들 수 없어 거절했다 한다.

마침 미술관은 잠시 어린이들이 왁자지껄 지나갔고 드문드문 관람객이 다녀갔을 뿐 넓은 공간에 우리밖에 없는 것 같아 설명도, 감상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김 관장님은 관람 통제선 안으로 우리를 데려가 콧김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에서 작품을 한 점 한 점 볼 수 있었다. 당연히 촬영 금지인데도 특별히 나한테는 사진 찍어도 좋다고 했지만 기념사진 외에는 감히 찍을 수가 없었다. 고인에게 누가 될 것 같아서.

왼쪽부터 김이환 관장, 신영숙 여사, 나와 아내, 전영근 관장


비슷하긴 해도 똑같은 것이 단 한 점도 없다. 검정을 비롯해 파랑 빨강 노랑 등 원색에 선 원 면 점 세모 네모 타원 곡선 직선과 무늬를 적당히 배열해 놓은 것 같다. 김이환 관장 말씀을 듣고 나니 골무 비녀 반짇고리 베개보 같은 우리 어머니․할머니가 즐겨 사용했던 물품과 물고기 바다 새 나비 하늘 구름 같은 통영 이미지, 우리나라의 독특한 형상을 연상시키는 빛깔과 모양도 나타난다. 한국 전통에 기반하면서도 색다른 느낌, 언젠가 꿈꾸어 왔던 이상향, 인류가 지향하는 그 무엇과 연결되어 세계성을 띠고 있다. 소박하고 순순한 이 통영 향토 작가의 꿈과 연륜, 천재성이 나무판에 대담하게 펼쳐진다.

화보집에서 재촬영

단순한 나무 평면이라도 그리기가 만만찮을 텐데 45도(?) 각도로 비스듬한 네 모서리를 일필휘지로 그려낸 대담성과 입체 구조물에 평면 그림의 대조가 신비로우면서도 그 자체로 입체미를 이룬다. 한글 ㄷ자 모양으로 세 벽면을 가득 채워 관람객을 만다라의 그림 세계로 빨아들이고 있다. 왜 1050점인가 하는 의문에 대해선 1천 점 이상이면 무한대를 상징한다는 것이다. 지금은 이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ㄷ자 구조물을 특별히 만들었지만 언젠가 뉴욕 대형 미술관에 전시할 때는 한 벽면 전체를 가득 메우고 싶다고 했다.

기독교도인 전혁림 화백에 의해 불교의 사상이 한국의 전통과 통영의 빛깔로 버무려졌다. 수많은 대들보가 사용되었는데 대들보 질감에 따라 바탕색이 다르고 순서도, 시작도 따로 없단다. 리움미술관에 전시된 데미안 허스트의 작품 <죽음의 춤>이 떠올랐다. 캡슐에 든 2만 3000여 개의 모형 알약을 작가의 배열 순서대로 배치하느라 큐레이터들이 진땀을 뺐다고 하는데 여기서는 적어도 그런 수고는 필요 없다. 그러나 1050개의 작품이 빚어내는 무한 세계 이상향은 시작도 끝도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서 있는 바로 이곳, 내가 바라보는 1/1050의 만다라가 바로 시작이고 또 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4년 8개월 걸렸다는 이 작품을 떠나기가 못내 아쉬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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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김성동 2011/11/30 09:0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화보집에서 재촬영.
    사진 찍기를 허락했으나 고인에게 누가 될까봐 플래시를 터뜨리지 못하고
    화보집에 렌즈를 댄 님의 마음 씀씀이가 아름답습니다.

  2. 아티스트 2011/12/08 13: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미술평론가 수준의 평문, 놀랍습니다.
    마침 연장 전시가 되고 있다니 주말에 시간 내어 전혁림을 만나러 갈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