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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우체국(서신)/보낸 편지함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님께 "국민을 위한 희망버스라면 왜 주민들은 반기지 않을까요?"

진보신당 조승수 대표님께

“국민을 위한 ‘희망버스’라면
왜 주민들은 반기지 않을까요?”

 

김 형 오


조승수 대표님, 김형오입니다.

딱히 조 대표님을 수신인으로 쓴 건 아니었습니다만 제 글을 읽고 보내주신 편지, 고마웠습니다.


 
이를 두고 일부 언론에선 ‘이메일 설전’이란 표현을 썼더군요. 그러나 저는 조 대표님과 ‘서신 공방’을 펼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공감하는 부분 못지않게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도 많은 편지였지만 ‘공방’이라는 격한 표현을 써가며 ‘설전’을 벌일 사안은 아니라는 판단 때문입니다. 다만 사소하건 근본적이건 서로가 얼마만큼 다른지, 과연 타협이 불가능한 정도인지를 한번쯤 짚어보는 것도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를 이해하고 풀어 나가는 데 조금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 답신을 쓰기로 결심했습니다. 국회에서 본 조 대표님은 저 같은 보수주의자의 눈에도 예의를 갖춘 진정성 있는 진보주의자로 비쳐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말씀하셨다시피 고공 크레인에서 200일 가까이 농성을 하고 있는 김진숙씨를 지상으로 내려오게 하고 싶은 마음은 조 대표님이나 저나 또 모두가 한결같을 것입니다. 다만 조 대표님은 “노동자들의 마음 속 소금꽃나무가 돼 버린 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노동 운동가 그녀에게 저는 차마 ‘이제 충분히 의사 표시를 했으니 내려와 휴식을 취하라’고 말할 수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저는 이 말씀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저는 그녀의 순수한 뜻과 열정을 존중합니다. 그러나 올라가는 것도 용기지만 내려오는 것 또한 참된 용기라는 말을 그녀에게 해주고 싶습니다. 지금은 그녀가 크레인에 올라가면서 얘기한 “꼭 걸어서 내려가겠다”는 약속을 실천할 때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녀의 투쟁은 정리해고가 철회되지 않는 이상 멈출 수가 없다”고 하셨지요? 저는 나름대로의 신념과 시대정신으로 무장한 노동운동가들의 용기와 사명감을 높이 평가합니다. 하지만 이것이 지나쳐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영웅주의로, 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에 저항하는 혁명가로 비쳐지는 데는 찬동할 수 없습니다. 물론 김씨가 딱히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

한진중공업 노조 지도부가 사용자측과 어렵사리 교섭을 타결했습니다. 그런데 이를 두고 합법이니 아니니 자격과 조건을 따져가며 인정하려 들지 않는 것은 노조 내부의 권력 투쟁을 전체 사회문제로 비화시키려는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건 왜일까요? 100% 완승하는 타협은 없습니다. 상대방을 완전 굴복시키는 협상이란 있을 수 없는데도 내부 강경파가 원리주의적 입장에서 항복문서를 받아 오기를 요구함으로써 타협이 안 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보아 오지 않았습니까. 국회에서도 왕왕 보고 느끼는 일이지만 양보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합니다.

김진숙씨가 크레인을 내려오는 행위가 사태 해결의 새로운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저의 믿음은 순진하고 허황된 희망일까요?

김진숙씨는 ‘소금꽃나무’라는 책에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의 등짝에 피어난 ‘소금꽃’을 보면 참 서러웠다고 적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눈물과 한숨, 서러움에 사무친 ‘꽃’이었을까요? 그 치열한 노동의 현장에서 흘린 땀이 노동자들의 셔츠를 하얗게 물들인 모습을 이제는 좀처럼 보기 힘듭니다. 다만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서 최저 생활을 꾸려나가는 협력업체 노동자들에게서나 간혹 볼 수 있는 소금꽃이 되었지요. (물론 이들 대부분은 노조조차 만들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는 것을 너무도 잘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가족과 직장 그리고 국가를 위해 흘린 노동자들의 땀방울을 고맙고 고귀하게 생각하는 제 마음은 변함이 없습니다. 지금은 보기 힘들지만 산복도로의 ‘고운반’과 조선소의 ‘깡깡이’는 ‘영도 아지매’들의 고난의 행적이었습니다. 피 같은 땀을 흘린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증오의 눈이 아니라 사랑의 눈으로 보면 그 모두가 소중한 추억이요, 미래를 위한 자양분이 아닐까요?

김진숙씨는 트위터에 “제가 최루액을 맞고 제가 물대포를 맞고 제가 짓밟히고 제가 끌려간 거라면 좋겠습니다”란 글을 남겼습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이 사태의 평화적인 해결을 바랍니다. 조 대표님도 ‘경찰의 강경 진압으로 인한 불상사’를 걱정하셨지요? 공권력의 강경 진압은 저도 반대합니다. 어떤 경우에도 불상사가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공권력이 무력화되는 것 또한 저는 바라지 않습니다. 경찰은 공권력의 상징입니다. 공권력의 과잉 대응도 안 되지만, 불법 폭력 행위를 단속 못하는 공권력은 존재할 이유가 없습니다. 자유민주주의에 기반을 둔 선진국이 되려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항의하고 법을 위반하면 처벌받아야 합니다.

거듭 말씀드리지만 영도 주민과 부산 시민들은 물론 한진중공업의 대다수 노동자들조차 희망버스를 그리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희망버스 타고 오시는 분들을 고마워하지도, 반가워하지도 않습니다. 그 분들이 공중도덕을 지키지 않고 영도를 쓰레기 더미로 만든 데도 화가 났습니다. 조 대표님은 ‘국민을 위한 희망버스’라 하셨지만 막상 현장 분위기는 다른 것 같습니다. 과연 이것이 진정으로 국민을 위한,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을 위한 희망버스일까요? 수많은 시위대와 경찰이 맞붙고, 폭력과 무력이 충돌하는 현장에선 민주도 평화도 이룩될 수 없습니다. 다만 구호와 깃발, 최루탄과 물대포만 난무할 뿐입니다. 다시금 간곡히 당부 드립니다. 희망버스가 희망으로 남으려면 영원히 출발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7월 16일) 아침 신문에서 반가운 뉴스를 읽었습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7월말로 예정된 3차 희망버스에 타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입니다. “단지 현장에 가는 것만으로는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앞으로는 대화를 통한 사태 해결에 앞장설 계획”이라고 손 대표의 입장을 대신 밝힌 이용섭 대변인의 해명에 공감합니다. “단식 농성장을 지지 방문하고 한진중공업 크레인 현장에 자주 가 보시라”는 조 대표님의 권유를 제가 정중히 사양하는 이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음을 말씀드립니다.

‘중립을 가장한 강자 편들기’라는 의혹 제기도 있었습니다만, 저는 이미 진보 진영뿐 아니라 일부 보수 단체 및 언론으로부터도 비판받고 있습니다. 솔직히 이제는 ‘선 아니면 악’이고 ‘동지 아니면 적’이라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균형 잡힌 시각을 가져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논의의 다양성과 열린 사고를 위해 저는 설사 어떤 비난과 오해가 있더라도 그 텃밭을 일궈 나갈 작정입니다.

사회적 약자들과 상대적 빈곤층의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애쓰고 때로는 투쟁하는 조 대표님과 진보 정당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 역할을 의미 깊게 생각합니다. 보수 정당이 등한시하거나 놓치고 있는 부분을 여러분은 예리하게 지적하고 또 행동합니다. 한진중공업 사태 해결을 위한 노력 역시도 고맙게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제가 누차 요구했던 조남호 회장을 출석시킨 청문회를 열자는 주장에도 동의합니다. 아무쪼록 조 대표께서 말씀하셨듯이 ‘당리당략을 떠난 초당적 협력’으로 이 문제가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바랍니다. 쇳소리와 망치소리가 울려 퍼지는 한진중공업, 소금꽃이 피지 않은 작업복을 입고 일하는 노동자들을 다시 보기 위해 저 또한 노력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조 대표님의 건강과 건승을 기원하며, 김형오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