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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답을 찾던 ‘침대 머리맡의 책’

 

 

백범일지/ 김구/ 도진순 주해본/ 돌베개/ 2005

(그외 여러 판본 참고하여 글을 작성함)

 

 

‘Libre de Chevet’라는 프랑스어가 있다. ‘침대 머리맡의 책이란 뜻으로,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는 애독서를 일컫는다. 내게 있어 백범일지는 그런 책이다. ‘무인도에 가져갈 두 권의 책을 꼽으라면 성경과 함께 벗 삼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백범일지가 우리말 한글본으로 처음 나오기 얼마 전(1947), 나도 세상에 나왔다. 시대와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어렵고 힘겨운 일에 부닥치면 나는 이 책을 펼치곤 했다. “이럴 때 김구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삶의 자양분이 되고 지표가 된 백범일지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그 답 찾기는 오랜 세월을 두고 이어져 2018년 나는 그 연장선상에서 한 권의 책을 냈다. 문답식 백범일지해설서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가 바로 그 책이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라 했는데, 이 책 또한 백범일지의 각주면서 존경의 마음을 가득 담아 김구 선생에게 바친 헌사요 오마주 같은 책이다.

 

백범일지는 김구 개인이 걸어온 길을 정리한 자서전이요, 사랑하는 가족에게 유서를 대신해 남긴 회고록이자 조국을 위해 희생한 동료를 기리며 피로 쓴 역사서, 나라와 겨레에 바친 보고서이다. ‘위대한 보통 사람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온 한 사나이의 치열하고도 극적인 생애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솔직함 면에서 백범일지의 앞에 세울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이 회고록의 신뢰성은 치부를 공개할 때 확보된다고 말했지만 백범일지야말로 그 본보기가 아닐까. 이 책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드는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야기들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성을 획득하고 진정성을 인정받는 이유는 바로 그런 솔직함에서 비롯된다. 백범일지를 읽고 나면 니체의 잠언집 제목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김구의 혁명가적 면모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에도 반하게 만드는 멋진 책이다. 쓴 사람의 숨결과 체온과 체취가 갈피갈피마다 녹아 있다. 백범의 비장하고도 처연한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 생생하다.

 

백범일지는 상하권으로 나뉘어 집필되었다. 한글본은 당연히 상하 합본된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상권에는 주로 개인적인 성장과 신변 활동을 담았고, 하권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주변 인물들로 범위를 넓혀 기술했다. 김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백범일지상권을 쓴 상해 시대가 죽자꾸나 시대였다면, 하권을 집필한 중경 시대는 죽어가는 시대였다.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유언장과 혈서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것이 김구와 임시정부의 숙명이었다. 퇴고나 손질을 할 겨를조차 없었지만 그런데도 깊고 무겁고 또 유려하다. 문학적 향취가 돋보이는 표현들이 읽는 맛을 더해준다.

 

먹고 살기 힘들고 책이 귀하던 시절에도 백범일지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공공 도서관에서 가장 잘나간 책 중의 하나였다. 앞으로도 백범일지는 세대와 계층을 아울러 많은 이들이 꾸준히 찾는 스테디셀러, 국민 필독서로 영원히 생명력을 이어 나갈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국사원 출판사에서 처음 낸 이후 유족이 판권을 개방해 수많은 출판사에서 여러 종류의 책이 출간됐다. 위 작가(도진순)정본 백범일지(돌베개, 2016)와 나남출판사(백범학술원판, 2002) 판도 좋은 서적이며 영인본(집문당, 1994) 등도 가치 있는 책이다. 또한 관련 연구서로는 손세일 선생의 이승만과 김구(7, 조선뉴스프레스, 2015)가 단연 압권이다. 권당 800페이지 안팎의 대작으로, 당시 시대상이나 민족 지도자들의 사상과 행적 연구에 귀중한 서적이다. 이 책도 언젠가 소개할 계획이다. 내가 공들여 쓴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어 늘 감사한 마음이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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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북노트 2020.01.04 0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범일지는 청소년기에 교학사판으로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때 받았던 벅찬 감동이 희미해진 지금, 작가님이 쓰신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읽으며 다시 한 번 그 감동을 되살리고 싶습니다.

가슴에 밑줄을 긋고 지나간 책들…

 

 

어릴 적부터 책을 벗 삼고 활자에 매료돼 살았습니다. 형과 누나의 교과서, 겉장이 뜯겨진 만화책, 벽지로 바른 신문 등 활자로 표현된 모든 것에 눈길을 빼앗기곤 했습니다.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책이었습니다. 중학 시절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느라 뜬눈으로 아침을 맞은 적도 여러 날입니다. 신대륙과 미개지가 책 속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책 읽기는 내 인생에서 분리할 수 없는 일상입니다. Cook이 일용할 양식을 준다면, Book은 마음의 양식을 선사합니다. 내 이름으로 낸 몇 권의 책도 그 동안 읽은 책들이 없었더라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고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말했습니다. 책은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세계이고 또 인생입니다. 지난 가을 국회 도서관에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 마음으로 손때 묻은 책들을 기증했지만, 그 책들을 읽을 때의 느낌과 생각은 지금도 잔상처럼 남아 있습니다.

 

내 마음 속의 서재에 소장한 책들을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려고 합니다. 독서 편력을 책으로 낸 이도 있습니다만, 내게 영향을 미치고 파장을 일으킨 책 이야기를 틈틈이 내 목소리로 들려 드리겠습니다. 청소년기에 읽은 책부터 최근에 읽은 책까지 시기와 장르를 가리지 않겠습니다. 육중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책들, 가슴에 밑줄을 긋고 지나간 문장들을 길지 않은 글로 공유하려고 합니다.

 

‘김형오의 도서 산책’에 좋은 길동무가 돼 주시기 바랍니다. ♠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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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북노트 2019.12.31 0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밤의 도서 산책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잠시 인터넷 동네 한 바퀴를 하다가 여기 오게 됐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순수한 독자로서 정말 반갑고 의미 있는 코너가 될 것 같네요. 앞으로 간간이 들러 길동무가 돼 드리겠습니다. 꾸뻑.

기원전 5세기, 27년간 지속된 아주 특별한 비극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디데스/ 천병희 역/ 숲/ 2011

 

 

이 책을 나의 도서 산책에 제일 먼저 벗 삼는 까닭은 우선 고전 중에 고전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지금 한국을 둘러싼 복잡 미묘한 국제 정치 환경과 국가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이 때 이 책이 상당한 길라잡이가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미 읽은 분들이라면 회상 속에서 의미를 곱씹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아직 안 읽어본 분들에게는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이 책의 무대는 당시 그리스인들이 알고 있던 세계 전체다. 즉 그리스의 내전이 아니라 세계대전이란 관점에서 봐야겠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두 축으로 하는 그리스의 모든 국가(*필자 주: ‘도시국가’라고도 하나 ‘국가’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요즘보다 국가의 사이즈가 좀 작을 뿐 나라별로 체제-왕정·민주정·과두제 등-가 다르며 국방·외교·행정 등이 독자적으로 행해졌다)들이 이 전쟁에 개입하고 참여한다. 요컨대 그리스 본토는 물론 이집트·시칠리아(이탈리아)·페르시아 등 당시 그리스인들이 알고 있던 세계 전체에서 전쟁을 치렀다.

27년간(기원전 431~404년) 지속된 장기 전쟁에서 국가 간·지도자 간 치열하고도 치밀한, 그러면서도 처절한 삶과 죽음, 승리와 패배의 변주곡이 때로는 장엄하게 때로는 잔혹하고 비열하게 흐른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하찮은 일로 벌어진 싸움이 세계대전으로 번져 결국 모두의 파멸로 끝난다는 데서 시사점이 크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저지른 온갖 만행과 악행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받고, 심지어 추앙받기까지 하는 반문명적 상황의 고발서이기도 하다.

전쟁의 두 축은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중심인 스파르타와 델로스 동맹을 이끄는 아테네이다. 또한 전통적 육군국인 스파르타와 강력한 해군을 기반으로 하는 아테네 간의 패권전이다. 초기 전쟁은 다소 싱거웠다. 스파르타가 막강 육군을 끌고 공격해 오면 아테네는 성문을 굳게 닫고 방어전을 펴는 한편 함대를 띄워 스파르타의 배후를 역공한다. 쉽게 승부가 나지 않는 질긴 전쟁을 치르며 두 진영은 점점 철저해지고 잔인해지면서 인간성과 명분을 잃어간다. 승리 만능주의와 전쟁을 위한 전쟁이 이어진다. 스파르타와 아테네, 양 진영의 지도국도 서서히 쇠락해간다.

 

저자인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원인을 “점차 강성해지는 아테네 세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파르타가 일으킨 전쟁”*이라 규정한다. 아테네 출신답다.(*이른바 ‘투키디데스 함정’(Thukydides Trap)을 현대 전쟁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학자들이 있다. 즉 신흥국이 비약하여 기존 패권국에 도전할 만큼 강성해지는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견제가 직접 부닥치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예사롭지 않다.)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략 전쟁 당시 스파르타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은 전쟁이 끝난 후,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기반으로 점차 제국화해 가는 데 대한 우려를 사전 제압코자 전쟁을 부추기고 또 참전한다.

 

누구도 생각 못한 처절하고도 끔찍한 전쟁으로 그리스가 자랑했던 이성과 합리성도 짓밟히고, 국가 간 합의나 약속도 소용없고, 힘과 계략이 판을 친다. 아테네가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은 스파르타에 항복하지만, 스파르타는 그리스 세계의 패자(覇者)가 되지 못하고 패권은 테베(Thebes)로 넘어가는가 하다가 끝내 마케도니아에게 모두 정복당한다(이후 알렉산더 시대가 전개된다).

이 과정 모두가 전쟁을 통해 결정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 간에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내일은 또 서로 치열히 싸우는 모습을 수없이 목도한다. 국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군사력이 약한 나라는 센 나라에게 먹히거나 나라 전체가 전장이 되어 초토화된다. 동맹에서 이탈하려는 나라는 가혹하게 처벌받는다. 동맹을 이끄는 강대국도 철저한 국가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 세계 최강국 페르시아는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밀었다 당겼다 하며 주도권을 쥐고 두 세력을 긴장시킨다.

국내적으로는 끊임없는 정적 간의 대결장이 벌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심혈을 기울여 정적 제거에 성공하면 승자에 의한 장기 집권이나 정치적 안정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강력한 정적, 경쟁자가 새롭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결국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역사는 그렇게 흐른다. 정적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타협 대상”이라는 점이 이 책을 통해 내가 터득한 진리다.

 

이 전쟁에 지휘관으로 참여한 바도 있는 저자 투키디데스는 철저한 사실적 탐구를 통해 전쟁의 진실을 전하려 한다. 들은 이야기와 아는 바를 전부 다 쓰지 않고 최대한 엄밀히 검토한 다음 옳다고 믿는 것만 기술한다. 전쟁이라는 주제를 한 순간도 놓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다음 편에 소개할 박람강기(博覽强記)의 헤로도토스와 곧잘 비교된다. 헤로도토스가 넓다면 투키디데스는 깊다.

모두 8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제1권은 전쟁의 배경을 다루었고, 2권부터 전쟁에 대한 본격적인 서술이 진행된다. 전쟁이 끝난 후(BC 404년)에도 투키디데스는 살아남았으나 그의 글은 기원전 411년에서 끝난다. 그 뒤의 과정은 크세노폰·플라톤 등의 기록으로 파악된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동시대 사람들은 모두 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했다.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 있다.”(2권 43장 4절) 페리클레스의 추도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이 말은 미국 독립선언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케네디 취임사 등에도 인용 원용되었다. 우리 헌법 전문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며 (이 헌법을 만든다)”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독자들에겐 천병희 역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숲, 2011년)를 권한다. 808페이지(지도 별첨)에 이르는 대작이지만 유려한 번역과 명문장들로 읽는 맛이 있고, 특히 여러 연설문들은 현장감이 살아 있다. 무엇보다 수많은 영웅·간웅의 부침, 예측 불허의 전쟁과 전투로 잡았다 하면 손을 떼기 힘들다. 이 책의 보충 교재로는 고대 그리스 연구의 대가인 석학 도널드 케이건의 동명 책자(허승일·박재욱 역, 까치글방, 2006년, 578쪽)도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The Peloponnesian War, Donald Kagan, 2003, Viking Penguin Group Inc.) 나는 이 책을 줄 그어가며 수없이 읽었다. 케이건 교수 자신의 책 4권을 요약한 것으로 투키디데스 해설판이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이해하는 데 이보다 좋은 책은 없을 것이다. ♠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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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북노트 2020.01.02 0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읽었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아직이었네요. 이 칼럼 읽고 나니 독서 욕구가 부쩍 당깁니다. 주문해야겠네요.

‘비움’과 ‘내려놓음’이 몸에 밴 청아한 선비형 정치인

 

5선 의원, 국회의장 마친 뒤 아름다운 퇴장

약자에게도 따뜻한 시선…이제 작가의 길로

 

타고난 약골체질 철저한 자기관리로 극복

회심의 역작<술탄과 황제> 서점가 돌풍 일으켜

 

김형오 동문의 마포 연구실에 걸린 ‘실사구시(實事求是)’ 표어 액자.

김 동문이 중국 텐진(天津)대학 명예박사 학위 수여 때 받았던 기념 액자다.

이 액자엔 사연이 있다. 김 동문의 국회의장 시절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초청으로 방중 면담이 계획됐다가

후 주석의 급한 일정 때문에 약속이 펑크났다. 얼마 후 외교라인을 통해 죄송하다는 사과문와 함께

다시 초청을 하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 김 동문은 “안간다. 박사학위나 주면 몰라도”라며 짐짓 거절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이 중국에 큰소리 칠수 있던 시절. 그러자 후주석 측이 국무원 동의까지 필요한

명문대학 명박을 부랴부랴 주선했다는 것이다. 

텐진대 명예박사 학위는 중국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위민(于敏)외에 김 동문이 유일한 수여자다.

 

 

2011년 8월31일 부산시청 기자회견장. 전 국회의장 김형오(20회)동문이 기자들 앞에 서서 상의 안 포켓에서 준비해온 원고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이번 18대 의원을 끝으로 정치계를 떠납니다.”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이었다.

 

회견장이 웅성거렸다. 어떤 기자도 예상 못한 내용이었다.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차기 총선, 때 이른 물갈이 시작”, “5선 국회의원에 의장까지 했으니 물러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자리에 연연않고 떠나는 원로다운 면모” 등 긍정평가에서부터 “당이 어려울 때 자신만 독야청청 피신하느냐” 는 냉소적인 비판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심지어 “돈 먹다 걸렸나”, “건강에 문제가 있나”등 의심의 눈초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태평했다. 훗날 한 기자에게 “20여년 짊어져 온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했다”, “그동안 가슴 깊이 품어온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는 설레임으로 들뜬 기분이었다”는 등의 당시 심경을 회고한 바 있다. “나를 정치인으로 키워주고 국회의장까지 하게 해준 부산에서 마지막 정치 작별인사를 하는 게 도리”라서 부산을 택했다고 한다. 그는 근래 최연소 국회의장(만61세)이었고 국회를 떠날 때가 만 65세였으니 여러 말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지난 9월5일 국회도서관 1층 중앙홀. 개인소장 도서 2000여점, 자료·문건 5000여점과 국회의장 재직시 외국 VIP들로부터 받은 선물 178점을 국회 도서관에 기증하는 ‘기증자료 특별전’ 개막식에서 김형오는 다시 한번 만장한 기자들 앞에 섰다. “오늘 이 자리가 공인의 삶, 공적인 신분, 공직자가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 고민하는 분들에게 저의 작은 행동이 느낌표 하나를 찍어줄 수 만 있다면 좋겠다”고 인사했다.

 

한국 서정시의 한 획을 그은 시인 이형기(1933~2005)는 주옥같은 시를 많이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낙화(落花)’는 문학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사랑을 받는 대표작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중략)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날” 인생의 낙조, 또는 퇴장의 미학을 떨어지는 꽃잎에 은유해 표현했다. 그래서 정치인, 경제인, 사회인 등 지도층의 귀거래사 뒤에는 이형기의 이 낙화 시가 자주 인용된다.

 

한수이남 최고의 명문인 경남중고가 70여개 성상동안 배출한 국가의 동량, 각계 각층의 지도자급 스타들은 밤하늘의 별들처럼 셀 수없이 많다.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계에서 출발해 관계를 거쳐 5선 국회의원을 하고 국회의장을 끝으로 은퇴한 김형오 동문도 찬란한 빛을 발하는 그 별들 중 하나다.

 

김 동문은 정계에 몸담은 기간 좌우에 크게 치우침이 없이 정도를 밟아왔고 시대정신에 발맞춰 민주주의의 기틀을 공고하게 다졌다는 평판을 듣고 있다. 그의 정치적 삶이 격동의 한국 정치사에서는 드물게 클린했다는 점, 그리고 그의 퇴장이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는 낙화의 뒷모습처럼 아름다웠다는 점도 국민들로부터 높은 평가와 존경을 받는 배경중 하나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인들의 볼썽사나운 자리다툼이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현 시국에서 김 동문의 그런 ‘비움의 행적’은 찬연히 빛나는 귀감으로 더욱 돋보이는 상황이다.

 

김형오 동문은 요즘 칼럼니스트로 활약중이다. 주요 언론매체에 간헐적으로 정치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문재인(25회) 정권의 잘못을 정중하지만 날카롭게 지적하고 때로는 자신이 몸담았던 보수야당을 향해 따끔한 질책을 가하기도 한다. 얼마전 문화일보는 18~19면 양면을 통털어 김 동문과의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 여기서 김 동문은 지소미아 등 외교정책과 경제정책, 검찰개혁과 교육문제 등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현 정부가 (의욕이 앞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고 있다”며 불안감을 나타내면서 5년 후배인 문대통령에게 “서운하다 생각하지 말고 (권한을) 내려놓고 비워놓는 준비를 해야한다”고 충고했다. 이명박, 박근혜 때도 바른소리 한다고 밉보였는데 마음을 완전히 비운 지금 나라 위해 무엇을 망설이겠느냐는 것이다.

 

김형오 동문은 경남 고성 산(産)이다.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거주하시던 부모님이 해방과 함께 1남2녀(김 동문의 두 누나와 형)를 데리고 귀향한 직후 태어났다. 김 동문은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었다고 한다.

 

밖에 나갔다 하면 넘어지고 긁히고 터지고 째지기 일쑤였다. 걸핏하면 감기 몸살 등을 앓았다. 의료시설은 커녕 약국도 제대로 없던 시절인지라 부모님은 언제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자식으로 치부하며 불안해했다고 한다.

 

그래도 ‘기신기신 살아남아’ 나이가 찬 김 동문은 시골 읍내의 고성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지각과 결석을 밥먹듯 했다. 6년 동안 개근상과 전근상 한번 받아보지 못했고 소풍가는 날도 자주 아파 빠진 적이 많았다. 시골아이들의 일대 로망인 도시(부산)로의 수학여행은 언감생심이었다. 자연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모두 등교한 이후 김 동문은 방에 드러누워 형과 누나의 교과서를 비롯해 집에 있던 책이란 책은 죄다 읽으며 소일했다. 장화홍련뎐, 춘향뎐, 홍길동전 등 고전소설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엔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어려운 한자도 있었으나 아버지와 어머니께 물어보며 세상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인생 새옹지마라 했던가, 아니면 전화위복이라 해야 하는가. 김 동문의 이런 허약체질이 그에게 깊고 넓은 지식을 선물했다.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기자로 활약하고 외교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연구관으로 돋보이는 활동을 했으며 정계에 입문, 유권자를 향해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다 이 당시 쌓았던 교양 덕분이었다. 게다가 은퇴 후 작가로서의 삶을 새로 시작하면서 <술탄과 황제>라는 대작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어렸을 때부터 다져놓았던 방대한 독서량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렇게 결석이 잦았음에도 성적이 우수해 경남중학교에 지원, 합격했다. 시험치러 부산으로 가면서 처음으로 버스를 탔고, 기차·전차를 구경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누나와 함께 서대신동 산 중턱에서 자취를 하면서 살았다. 쌍백선 교복을 입고 등교한 첫날 에피소드 하나. 입학식을 마치고 귀가하는 도중 도회지 부산의 풍물이 신기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 길을 잃었다. 걸어서 30분이면 닿을 거리를 이러저리 헤메느라 너댓시간이나 걸렸다. 해거름에 집에 도착하자 누나가 큰 걱정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잃었다고 하자 “전찻길만 따라오면 되는데” 라며 촌뜨기 동생의 주변머리 없음을 나무랬다. 큰 길에서는 우리집이 있는 산이 보이고 올라가는 골목 입구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야 알았다.

 

당시 토성동에 소재한 경남중학 담벼락에는 만화가게와 책방이 있었다. 여기서 김형오의 독서 본능이 물만난 고기처럼 발휘됐다. 중1, 중2 때 당시 삼국지 수호지 열국지, 통일천하 등 이른바 지(志)자 류 고전을 밤을 새워 읽었고 중3 때는 세익스피어 전집 등 서양의 문학작품까지 섭렵했다. 성적은 그런대로 상위권에 속했다. 중3 때 김형오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같은 반이었다. 김 동문은 “당시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즉각 승태한테 물어봤는데 정말 빨리, 그리고 자상하게 풀이를 해줬다”며 회고한다.

 

덕분인지 경남고는 매우 좋은 성적으로 입학하여 구덕산 덕형관 캠퍼스에서 그런대로 보람찬 학창시절을 보냈다. 성적도 성격도 무난한 탓에 동기 친구들과도 깊은 우정을 나눴다. 고2 가을에야 그는 초·중 때 못가본 수학여행을 처음으로 맛본다. 그런데 운명의 고3때였다. 아버지의 권유로 당시 소문난 이비인후과에서 비염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무슨 혈관을 잘못 건드렸는지 피가 멈추지 않았다. 양 콧구멍에 아기 주먹 만큼한 지혈제 솜을 틀어막은 상태로 영도 집에 돌아왔으나 피는 계속 줄줄 흘러 세숫대야로 받아 내야 할 정도였다.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피가 쏟아졌다.

 

이때 김형오 군은 죽음을 생각했다. “한창 피를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해졌다”고 회고하는 김 동문. 이후 그의 인생을 관통한 비움과 내려놓음은 그때 깨달은 삶과 죽음의 철학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싶다. “1965년 5월16일 토요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바로 4년 전 5.16을 일으킨 날이었으니까”.

 

피는 멎었으나 몸은 엉망이 됐다. 60kg 이상 나가던 체중이 43kg으로 줄어들었다. 몇 달을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근 4달 책 한권 보지 못하고 들어누워 있다보니 성적이 뚝 떨어진 것은 당연했다. 휴학을 신청했다. 하지만 담임이던 ‘악한’ 박태현 선생님이 적극 만류했다. 영도 우리집으로 직접 오셔서 “형오 실력이면 서울법대도 들어 갈 수 있습니다.”라고 장담했다. 기분이 좋아진 부모님, 담임의 권유대로 서울법대에 지원했지만 보기좋게 낙방했다.

 

결국 김형오는 재수를 결심했다.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하에 영도 영선동 집에서 태종대 입구까지 2km정도의 거리를 매일 조깅했다. 처음엔 숨이 차서 몇 번을 쉬어가며 겨우 다녔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걷다 보니 나중엔 뛸 수도 있었다. 자형은 김형오의 건강회복을 축하하며 제주도 여행을 선물했다. 이때 난생 처음으로 페리를 타고갔다. 오는 날은 풍랑을 만나 지축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12시간 내내 배멀미를 했던 것 같다”고 김형오는 회고한다. 그래도 그의 첫 해외(?)여행은 회복한 건강 덕분에 무사히 끝났다.

 

김형오의 관리 능력은 건강에 이어 학업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6월경 서울에서 제일 좋다던 양영학원에서 재수를 하던 친구의 권유로 편입시험을 치렀는데 그 친구가 시험에 나올만한 수학문제 몇 개를 알려준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달 후 1학기 종합성적은 184명 중 182등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김형오의 도전의식이 강하게 발동한다. “이럴 순 없다”며 자기 나름의 학업 계획을 세웠다. 하루 일과와 각 과목 진도 스케줄을 촘촘하게 짰다. 8월 하순부터 12월 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스케줄대로 1분1초도 어긋남 없이 실천했다.

 

그 결과 학원의 최종 성적으로 10위권에 들었다. 서울 법대도 너끈히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시공부하다 몸 상한 사촌형의 사례를 목도하면서 서울 문리대에 원서를 냈다. 당초 정치과를 희망했으나 데모꾼이 될 것을 우려한 부모님의 강권에 따라 외교과로 지망을 바꿨다. 외무고시엔 흥미가 없었다. 외교학을 배우면서 국제정치에 관한 식견을 가다듬었고 모택동·레닌 관련 혁명) 서적도 열심히 탐독했다. 나중에 보수당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진보 이념에 적지 않은 심퍼시를 가지게 된 것은 학부시절 접했던 그런 서적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김형오 동문은 작년 7월23일 공교롭게도 같은 날 자신이 좋아하던 두 사람을 하늘나라로 보내 염천에도 불구하고 검은 상복을 입고 연이틀 상가를 찾았다. 한명은 생전에 인격적 교류를 나눴던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고 다른 한명은 젊었을 때부터 그의 작품에 매료됐던 소설가 최인훈이었다. 최인훈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는 젊은이를 그린 <광장>과 <회색인> 등으로 김승옥, 이청준 등과 함께 60~70년대 대학가를 풍미한 한국의 대표적 작가였다. “신동아 기자시절 원고 청탁을 위해 몇차례 최 작가를 만나는 기회를 가져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김형오 동문. “특히 <광장>은 1960년대 벽두에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새벽 4시의 사이렌 소리처럼 잠든 나의 의식을 뒤흔들었다”고 회고한다.

 

김 동문은 대학원 재학 중 입대해 정보사에서 정보분석요원 등으로 35개월을 꼬박 복무한 뒤 전역, 1976년 초 동아일보사에 입사한다. 동아투위와 백지광고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었지만 여전히 어수선하던 분위기였다. 여기서 2년정도 근무한 뒤 그의 글솜씨를 눈여겨 본 강영훈 당시 외교안보연구원장(전 총리)의 부름을 받아 외교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두 번째 직장이었다. 3년 후 강 원장은 주영대사로 부임 차 떠나면서도 김형오에게 각별한 애정과 염려를 표할 정도로 두 사람은 일반적인 상사-부하관계를 넘어섰다. (국립현충원에 있는 강영훈 총리의 묘비명은 가족의 요청으로 김형오가 직접 썼다.) 김형오의 인생 2모작이 여기서 끝나는가 했는데 의외의 손길이 그에게 뻗쳐왔다. 청와대(공보비서실)가 그를 발탁한 것이다. 82년 시작된 그의 청와대 생활(공보·정무 비서실)은 다시 총리실(정무비서관)을 거쳐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마감한다. 2년간의 원외지구당 위원장을 거쳐 1992년 대망의 국회의원 뱃지를 단다.

 

고등학교 때부터 보낸 영도에서 내리 5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4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2006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2007년 제17대 대통령인수위 부위원장 등 굵지굵직한 보직을 역임했다. 특히 2008년 7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제18대 전반기 국회의장직을 맡으면서 한국 의회주의를 반석위에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았다. 여의도 국회사에서 그 누구도 김형오 동문만큼 여야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원활한 의회를 운영하려 한 의장은 없다는 것이 언론계 안팎의 일반적인 평가다.

 

국회의원으로서 그의 업적중 하나는 개헌문제를 비롯 이 나라 민주헌정체제를 바로 잡으려는 시도였다. (그는 선거로 당선된 5년 단임제 대통령들이 모두 불행한 비극을 맞는 것은 대통령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하고 3권 분립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재임 초기에는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차기 대권 구도로 관심이 이동하여 식물형 대통령이 되고 퇴임 후에는 비극적 종말을 맞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것인데 이것은 그냥 두는 ‘무늬만 개헌’, ‘개헌만을 위한 개헌’은 단연코 반대한다. 그래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이나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도 반대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정당의 지나친 강대화로 인한 국회의 약화, 국회의원의 정당 눈치보기를 지적한다. “여당은 청와대 눈치보고 야당은 강경파에 끌려 다니고, 국회는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지도 미래를 제시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헌법과 정치관계법의 개정을 그는 필생의 역점으로 두어왔고, 이를 고치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2012년 정계를 은퇴하고 나서 김형오 동문은 오히려 필생의 역작을 만들어냈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의 공세에 무릎을 꿇고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지는 그 현장을 팩션(픽션+팩트)으로 구성한 <술탄과 황제>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해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재구성해냈다. 480쪽이 넘는 대작임에도 유려한 글 솜씨 탓에 술술 읽힌다. 지금까지 47판을 인쇄, 1000권 파는 것도 어려운 인문학의 실종 시대에 5만권이나 판매됐다. 또 작년에는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란 <백범일지> 해설서도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20여년 정계에서 몸담은 사람으로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베스트셀러의 저자가 된 것이다.

 

기증자료 특별전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으로부터 기념패를 받는 김형오 동문

 

“<술탄과 황제>는 수차례 현장을 여행하면서 나의 에스프리를 온통 쏟아부었지요. 엄청나게 고생했지요. 어릴 때부터 가슴에 품었던 작가의 꿈을 실현한 만큼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그는 이제 전 국회의장 김형오 보다 작가 김형오라는 호칭을 더 선호하고 있다. “세 라 비, 이것이 인생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그의 조용한 미소에서 그다지 단단하지 않은 몸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역동적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이 잘 정돈된 책장처럼 단아하게 느껴진다. 지난 9월 김형오 자료 기증식에서 그는 김구 선생이 즐겨 썼던 조선 후기 선비 이양연(李亮淵)의 시 ‘야설(野雪)’ 을 읊으며 답사를 마무리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눈길 걸을 땐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은 길은 뒷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 정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홀연히 살아가는 한 모범적 용마를 보고 있다.

 

/강성보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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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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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 좋은 때다. 예로부터 겨울, 밤, 비오는 날을 ‘삼여(三餘)’라 하여 독서하기 좋은 때라 하였다. 농사짓던 옛날이야기이긴 하지만 여전히 지금도 유효하다. 홀로 있는 시간이라야 책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일상에 바쁜 현대인에게 삼여는 귀한 시간이다. 한국인의 독서 시간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진다. 특히 우리는 스마트폰에 너무 매여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 같다. 수시로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SNS에 참여하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시청하고, 게임과 인터넷 서핑을 한다. 독서와 성찰의 시간은 짧고, 네트워크에 연결하여 관계 맺거나 입장을 표현하는 시간은 긴 셈이다. 왜 그런가. 트렌드, 곧 집단적 흐름이나 방향에 민감한 문화가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여론조사를 중요시하고 늘 어디가 대세인지 촉각을 세운다. 댓글과 SNS 의견을 열심히 살핀다. 이러다 보니 댓글 조작 사건이 계속 터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독서를 안 할까. 단지 시간이 없어서일까. 내 주위만 보더라도 책 한 권 읽지 않고 한 해를 보내는 이가 적지 않다. 문제는 그래도 사회생활 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데 있다. 대화를 하거나 채팅을 할 때, 가벼운 수다나 잡담만으로도 충분하다. 주체적인 견해나 논리를 내세우면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거나 피로하게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진영의 깃발 아래 서서 그 소속감에 위안을 받으려 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필사적으로 소셜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독서는 너무 무겁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책을 읽으면 생각을 해야 하고, 나름대로 쓰고 토론하는 등 정리해야 남는 게 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독서와 생각의 깊이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알려진 사회 지도층이나 지식인들의 행태를 보면 품격은커녕, 너무나 가볍고 얕아서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편향되고 왜곡된 지식으로 일반적인 상식과 판단을 뒤집어버린다. 아마도 방법과 방향이 한 쪽으로 치우친 독서를 한 탓이리라. 또 얄팍하고 알량한 책을 읽다보면 세상을 가볍게 생각하게 된다. ‘나쁜 책’이 아닌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는 지식을 바탕으로 지혜를 추구한다. 지식이 지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강을 건너야 한다. 그런 다음 쓰거나 토론을 통해 융통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혜화되지 않은 지식의 축적은 곡학아세, 아전인수로 흐르기 쉽다. 독서도 편식을 하면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오랜 시간 검증된 고전은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책들이다. 그래서 현인들은 책 한 권을 권하더라도 신중하게 한다.

 

대통령의 독서는 희망을 준다. 강희제와 링컨은 독서광이었다. 그들은 신중했지만 결단이 필요할 땐 신속하고 과감했다. 현재 세계 최강의 나라인 미국과 중국의 기초를 튼튼하게 만든 리더들이다. 대통령의 독서는 그래서 중요하다. 선택과 결단이 나라와 시민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민들은 대통령이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하지만 공개를 꺼린다. 그런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독서 뉴스는 상식을 깼다. 책을 읽기 위해 일부러 휴가를 냈다는 것도 그렇고, 가까운 지인의 신간을 소개한 것도 그렇다. 너무 공격적이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매었다는 여론이 있다. 그러나 옹졸하게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을 좀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계기로 삼을 필요는 있다.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긴 안목과 내공으로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스스로 도덕성과 절제력을 갖춘 리더가 보이질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고 현주소다. 지금부터라도 인물을 키워야 한다. 무엇보다 그 출발은 독서에 있다. 우리는 디지털·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영역과 경계가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학교 교육을 비롯한 기존 사회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다만 한 가지, 오직 독서는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남을 것 같다.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상상력을 창출하는 인간 고유의 역할로 남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고전 책 읽기’를 제안하려 한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토론하자. ‘읽생쓰토’는 독서의 기본이고 인류의 지혜다. 지식이 과거의 유산이라면 지혜는 미래의 횃불이다. 내가 먼저 시간을 내어 몇 권의 책을 소개하면 누구나 이를 참조하여 자유롭게 독서하면 된다. 내가 제시하는 책은 단지 가이드일 뿐, 각자가 알아서 결정하고 편하게 읽되, 토론의 장이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 오프라인도 좋고 온라인도 좋다.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남의 다양한 주장과 배려를 배운다면 그것은 독서와 함께 훌륭한 덤이 될 것이다. 책 읽는 인생, 독서하는 국민은 미래도 희망적이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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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책벌레 2019.12.12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서를 취미라 말하기 부끄럽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왜? 독서는 취미라기보다는 마땅히 해야 할 의무나 도리에 가까웠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지하철 안에서 책이나 신문을 보는 이가 너무나 드물 정도입니다.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눈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에 경종을 울려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