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역로그 | 미디어로그 | 방명록  

탁월한 이야기꾼이 흥미진진하게 그려낸 페르시아 전쟁사

 

 

역사/ 헤로도토스/ 천병희 역/ 숲/ 2009년

 

인간들의 행적은 시간이 지나면서 망각되고, 위대하고 놀라운 업적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고, 또 서로 전쟁을 하게 된 원인을 밝히는 데 있다.” 헤로도토스가 역사서문에서 밝힌 이 책의 집필 목적이다.

 

내가 이 책을 처음 읽기 시작한 것은 2013년 초였다. 술탄과 황제를 출간(201211)하고, 시간 여유가 생기면서 제일 먼저 꺼내든 책 중의 하나다.

 

키케로가 이 책을 쓴 저자를 역사의 아버지라고 일컬었음을 안 지 60년이 더 지나서 헤로도토스를 완독했으니 그 동안 그에 대해 아는 체해왔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아마존을 통해 e북으로 구입해둔 지 꽤 되었지만 아무래도 눈길은 천병희 선생이 여러 판본을 대조해가며 옮긴 번역본으로 갔다. 천 선생은 휴드(Carolus Hude)의 두 권으로 된 그리스어본을 기본으로 하고, 그 외 몇 권의 영어본을 참고하고 있지만, 읽을수록 단순한 번역본이 아니라 새로운 창작물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싶다(이 점은 앞서 소개한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도 마찬가지이며, 앞으로 소개할 선생이 번역한 다른 책들도 모두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번역자는 헤로도토스를 최초의 역사가이자 최초의 이야기꾼이라 했다. 그만큼 그의 작품은 문체가 유려하고 소재가 다양해서 흥미진진하다. 그러나 역사는 독파하기가 쉽지 않다. 우선 994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 탓이다. 저자와 번역자의 각주(푸트노트)도 만만찮다. 게다가 전문 이야기꾼답게 이야기의 곁가지가 많아 현대의 성급한 독자라면 중도 포기자가 많을 성싶다. 그러나 시간적 여유가 있고 성격이 느긋한 편이라면 점차 인류 최초 역사가가 심혈을 기울인 고전에 빨려들 것이다. 여행이 어려웠던 시기인데도 그는 수많은 지역을 방문해 직접 보고 듣고 느낀 것을 토대로 책을 썼다. 그래서 현장감과 진실성이 살아 있다. 그의 집필 태도인 들은 대로 전할 의무때문인 듯하다. 그러면서도 들은 것을 다 믿을 의무는 없다며 독자의 마음을 편케 해준다. 박물학자다운 전지적 지식을 뽐내고 있다. 그 지역과 국가의 지리학·민속학·인종학·역사학·군사학 등 그가 아는 박물학적 지식이 찬연하고 광활하게 펼쳐진다.

나로서는 믿어지지 않지만”, “이것이 더 믿음이 가지만, 믿음이 덜 가는 얘기도 소개하겠다.”, “서로 상반된 얘기도 전해지고 있다.” 등등 탁월한 이야기꾼의 천부적 재담이 유감없이 발휘된다.

 

그러나 이 책을 찾는 많은 이들의 진정한 이유는 페르시아 전쟁 때문일 것이다. 번역자는 페르시아 전쟁사를 하나의 통일체로 빚어낸 것을 그의 전무후무한 업적으로 높이 평가한다. 그렇다, 그가 아니었다면 후세 인류는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략 전쟁을 체계적입체적종합적으로 전달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스의 유명 비극·희극 작가와 학자들의 구체적단편적 저작물과 내용들도 역사와 교감할 때 이해도가 증대될 것이다. 페르시아 측 사정도 페르시아의 문헌이 남아 있지 않으므로 헤로도토스의 기록에 의거할 수밖에 없는 부분이 많다. 다리우스 대왕의 성격, 크세르크세스의 꿈 이야기 등도 모두 역사에 기록된 것들이다.

 

헤로도토스의 역사는 모두 9권으로 되어 있고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다. 페르시아 전쟁의 3대전이라 할 수 있는 마라톤 전투(6103~117), 영화 <300>으로 유명한 테르모필라이 전투(7202~239), 그리고 마지막 결전이라 할 살라미스 해전(840~125)도 이 책을 통해 세상에 전해진다. 그러나 영국의 전략가이며 사학자였던 풀러(J. F. C. Fuller)유럽이라는 아기가 탄생하면서 낸 소리였다고 한 마라톤 전투는 4페이지에 불과해 큰 그림만 잡을 수 있다. 마라톤 전투는 페르시아인이라는 말만 들어도 주눅이 들었던 그리스인이 페르시아군을 향해 싸우려 돌격한 최초의전투였다(6113). 이 전투에서 페르시아 측은 6400, 아테네 측은 오직 192명만 전사하는 대승을 거두었지만 전투 상황의 구체적 설명이 없어 아쉽다(117). 그리고 우리가 아는 마라톤 전투의 승전보를 전하고 마지막 숨을 거둔 용사의 이야기는 없다(스파르타에 전령으로 달려간 필립피데스 이야기가 후대에 각색됐을 듯). 다만 함선으로 퇴각한 페르시아 군대가 아테네에 먼저 입성하는 것을 막기 위해 전속으로 아테네로 달려옴으로써 뒤늦게 온 페르시아군이 상륙하지 못하고 철수하고 만다(116).

 

헤로도토스는 테르모필라이 전투를 매우 자세하고 생동감 있게 다루고 있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의 영웅적 행동과 양군의 처절한 전투, 지형과 지세, 최후의 300인의 용전분투 등은 역사를 통틀어 압권이다.

지나가는 나그네여, 가서 스파르타인에게 전해주오. 우리는 나라의 명령을 이행하고 이곳에 누웠다고.”(7228)

300 용사는 이렇게 전사했다(헤로도토스는 그 300명 용사의 이름을 다 알고 있다고 단언했지만 쓰지는 않았다).

 

뒷이야기 하나.

스파르타군 300명 중 마침 두 사람이 눈병이 났다. 열외가 될 수 있는데도 한 사람은 기어코 전투에 참가하여 목숨을 버렸고, 한 사람은 스파르타에 살아 돌아갔으나 아무도 그에게 말을 건네지 않고 불씨도 빌려주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얻은 스파르타에서 가장 치욕적인 별명인 겁쟁이를 그 다음 전투(플라타이아 전)에서 공을 세우기까지 달고 살아야 했다. 또 하나, 300인의 사절로 파견돼 전투 현장에 없었던 사람은 고향에 돌아와 똑같은 불명예를 당하자 목매어 자살했다(229~232).

 

레오니다스 왕은 죽음의 전사” 300명을 슬하에 아들이 있는 자들 중에서 선발했다(205). 레오니다스도 아들이 있었다. 전쟁에 임하는 그리스인의 자세를 볼 수 있다.

 

그리스 세계의 삶은 전쟁의 연속이었다. 그리스인들은 자유를 위해 싸웠다는 것이 이 책에서 시종 일관된 헤로도토스의 태도다. 자유냐 예속이냐, 민주주의 대 전제주의, 탁월성을 발휘하는 개인 대 이름 없는 군중 집합체를 그는 수시로 수없이 대비시킨다.

 

민중이 지배하면 국가에 부패가 만연할 수밖에 없는데, 부패한 자들은 서로 반목하기보다는 형제가 되기 십상이오. 그들은 국가를 약탈하기로 결탁하기 때문이오. 그런 행위는 누군가 민중의 지도자로 부상하여 그들의 부패 행각에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계속되오.”(382)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대왕의 말이다. 군주제 옹호를 위한 것이긴 하지만 오늘 우리 실정을 반영하는 듯하다.

 

이 책을 좀 늦게 읽어 아쉬운 점 한두 가지.

 

내 책 술탄과 황제에서 술탄군의 해군사령부가 있던 곳은 치프테 슈툰(그리스어로 디플로키온, 영어 Double Columns ; 이중열주)’이라 불렀는데, 이곳이 바로 다리우스 페르시아군의 1차 침략 때 다리를 놓고 사령부가 진주했던 곳이다. 두개의 흰 대리석 기둥을 세우고 거기에 아시리아 문자와 그리스 문자로 참전한 모든 민족의 이름을 새겨 놓았다(487). 다리우스 이후 2천 년의 세월이 흘렀어도(1453), 전략요충지로 여전히 쓰였으니 역사는 돌고 도는 법인가.

 

또 하나, 내 책에도 소개되었지만 칼케돈 맞은편의 비잔티온을 뒤늦게 발견하고 정착한 메가라인들을 보고 사람들이 칼케돈인들은 눈이 멀었다고 한 것이 역사가 출전이었음을 책을 쓸 때는 몰랐다(4144장 참고).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북노트 2020.01.18 1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벽돌책에 가까운 볼륨 때문에 선뜻 손에 잡지 못하고 서가에 모셔둔 책인데 이 칼럼 읽으니 독파하고 싶어지네요. 설 연휴에 시도해 보렵니다.

 

제 책 <술탄과 황제>의 서평을 개인 블로그에 올린 bookworm님과의 인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새로 책을 낼 때마다 꼼꼼하게 읽고 서평을 남겨주시는데 새해를 맞아 좋은 소식을 전해주어 인사를 주고 받았습니다.

 

책이 이어준 소중한 인연이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안녕하세요, bookworm입니다.

 

오늘 메일은 특별한 이야기가 될 것 같습니다. 제가 준비하고 있는 일이 잘 풀리면 그 기쁜 소식을 전해줄 누군가는 가족 다음에 바로 의장님이라고,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기를 계속 기도하고 있었답니다.

 

벌써 3년이 되었네요. 제가 쓴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후기에 달아주신 댓글에서 출판 편집자라면 저에게 작가로의 변신을 권유하지 않을까 싶다고 하셨었습니다. 그 말씀에 기분 좋기는 했지만 그때는 그저 듣기 좋은 덕담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들은 후 점점 싹이 자라고 자라... 책을 내는 작가가 되어야겠다고 생각을 했지요.

 

우선은 쉬운 길을 생각했었습니다. 제가 그동안 쓴 다양한 서평을 나름대로 분류해보니 50가지 정도의 분야가 나오더군요. 밀리언셀러인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의 책 버전으로 목표를 삼고, 사람들이 궁금해할 만한 내용들을 알려줄 수 있는 북큐레이션으로 컨셉을 잡았습니다. 1년 전 출판사들에 기획안을 보냈으나 다 거절당했지요. 그때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읽고 보내드린 메일의 답장에서 의장님께서 바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책에 대한, 영화에 대한 님의 애정과 안목이 새삼 경이롭습니다.

​읽는 이에서 쓰는 이로 포지션을 바꿔도 좋을 만큼

글을 다루는 솜씨 또한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언젠가는 저도 독자로서 님의 책을 만나게 될 날을 기대해 봅니다."

 

아니, 이런! 의기소침하고 바닥에 떨어진 제 상태를 어찌 아셨을까? 이런 위로와 희망이라니...

아이들에게 엄마 이런 사람이야~하고 잘난 척 그 대목을 읽어주었는데 울컥해서 눈물이 나고 목소리가 떨렸었지요.

 

지금의 출판 시장에서 제가 쓰고자 하는 내용은 호응이 없고 팔리지 않는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러면 독자들이 원하는 것 중 내가 쓸 수 있는 것이 무얼까, 고민했지요. 그래서 엄마들을 위한 초등독서법 원고를 썼고 인물과사상사의 실용서 임프린트와 계약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활자중독 수준이고 아주 어릴 때부터 닥치는 대로 책을 읽었기에 독서란 숨쉬는 것처럼 당연했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책을 읽으라고 하지도 않았고 독서교육에 신경을 쓰지도 않았지요. 숨쉬기 교육을 따로 하지 않는 것처럼요. 하지만 독서라는 것 자체의 오묘하고 깊이 있는 의미에 뒤늦게 눈을 떴고 아이들에게 책 읽는 습관을 들여주지 않은 것에 대한 뒤늦은 회한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지금은 아이들과 다양한 방법으로 책 읽기를 하고 있구요.

 

사실 원고를 다 완성한 상태도 아니고 책이 나오려면 몇 달이나 더 있어야 하기에 말씀드릴 단계는 아닙니다. 하지만 책을 내겠다는 마음을 먹은 후로부터, 처음으로 저를 알아봐주시고 격려해주신 의장님을 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감사의 인사와 함께 이 기쁜 소식을 가장 먼저 알려드리고 싶었답니다. 그리고 새해 첫 소식으로 이런 이야기를 들으시면 의장님 역시 기뻐하실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써야 할 가장 어려운 챕터들이 남아 있어 부담은 여전합니다. 그리고 책을 쓰기 전보다 쓴 후가 더 중요하다는 걸 출판사 미팅 후 집으로 돌아오면서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정말 더 노력해야 하고, 더 공부해야 하지요. 제 목표는 어려운 출판 여건에서도 책이 잘 팔리게 하는 것이 되었답니다. 그리고 그 다음 목표는 인문사회과학 전문 출판사인 인물과사상사의 실용서 임프린트가 아닌, 인물과사상사의 이름으로 출판할 수 있을 만한 깊이 있는 작가가 되는 것이지요.

 

그래도 당장은 의장님께 이런 소식 전해드리고 싶다는 제 소망을 이루어 무척 행복합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책이 나오면 직접 뵙고 감사인사 드리고 싶습니다.

 

 

2020. 1. 3.

bookworm 드림

 


 

bookworm, 작가 탄생을 축하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제가 호흡기가 좀 안 좋아 따뜻한 동남아에 와 있다 보니 답장이 늦었습니다.

반갑고 기쁜 새해 소식이네요. 내 예감이 들어맞은 것 같아 흐뭇합니다.

3년 전 내가 건넨 말이 bookworm님에게 격려와 희망의 작은 씨앗이 되어 마침내 싹을 틔운다니 보람을 느낍니다.

 

적극적인 도전 끝에 출판 계약을 맺고 예비 작가로 새해를 맞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지금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J. K. 롤링도 생활고에 시달리며 힘겹게 쓴 해리포터 원고가 열두 번인가 퇴짜를 맞지 않았던가요. 열세 번째로 노크한 작은 출판사의 눈 밝은 편집자를 만나지 못했더라면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의 마법 같은 기적은 끝내 탄생하지 않았을는지도 모릅니다. 몇 달 뒤 태어날 bookworm님의 신간이 작가에게도 그리고 출판사에게도 좋은 기회와 행운을 선사하기를 기대합니다.

 

선험자로서 한마디 조언하자면 글을 쓴다는 것, 책을 낸다는 것은 피를 말리고 혼을 사르는 작업입니다.脫稿 脫苦의 다른 이름임을 나도 작가로 제3의 길을 가면서야 깨달았답니다.

고통과 시련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헤쳐 나가기 바랍니다.

 

물론 쉽게 쓰고 쉽게 팔리는 책들을 더러 봅니다. 세태가 그런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그런 부류에 휩쓸리고 싶지 않고 bookwarm님도 저와 같은 생각이리라 믿습니다.

 

첫 책의 주제가 엄마들을 위한 초등 독서법이라니 기대가 큽니다.저자의 숨결과 체온이 고스란히 묻어 있어 저자와 독자가 한마음이 되어 책장을 넘기리라 생각됩니다.

 

나 역시 지난해 말 내 블로그에 김형오의 도서 산책이란 이름으로 연재성 책 칼럼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bookworm님도 이 산책에 좋은 길동무가 돼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책벌레에서 작가로 거듭날 bookworm님의 건필과 건승에 다시금 격려와 응원을 보내며,

성취와 보람으로 가득한 새해이기를 바랍니다.

 

 

- 2020 1 6, 베트남에서 김형오 드림.

Posted by 김형오
TAG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북노트 2020.01.18 18: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정말 아름답고 멋진 인연입니다. bookworm님의 데뷔작, 기대가 큽니다.^^

[김진국이 만난 사람] 김형오 전 국회의장


연말 국회가 엉망이 됐다. 국회선진화법까지 만들었지만, 동물국회 아니면 식물국회다. 정치의 중심은 국회다. 아무리 실망스러워도 국회는 국민의 대표기관이다. 국회가 무력화되면 집정관은 황제가 된다. 착한 독재자를 만날 행운을 기대하기보다 제도적으로 위험을 분산하자는 게 민주주의다.

여당, 청와대 눈치 보고 지시 따라
존재감·투쟁력 등 약한 야당 덕 봐

선거법, 패스트트랙의 허점 중 하나
‘게임 룰’ 만들며 한 선수 젖혀버려

대통령 권한 축소 않는 개헌 반대
검·경 등 5대 권력기관 독립 확보를

 

 

지난달 27일 오후 선거법 개정안 표결 직전 김형오(73) 전 국회의장을 만났다. 그는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오후 5시 서울 효창동 백범김구기념관에는 벌써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국회 얘기만 나오면 TV를 끄든지 채널을 돌린다“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다 정치 때문“이라고 했다.

      김현동 기자



“요새는 국회 얘기만 나오면 TV를 끄든지, 채널을 돌리든지…. 죄인이 된 심정입니다. 20대 국회에는 정치가 사라졌어요. 이렇게 자기 목소리가 없는 여당은 처음일 거야. 청와대 지시만 따르는 여당이야. 정국을 청와대가 주도해요. 민주당이 주도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 야당도 잘한 게 없죠.
“그게 ‘야당 덕’입니다. 야당이 존재감, 투쟁력, 대안 제시 능력, 또는 시민 접촉성이 약해. 여당이 굳이 열심히 할 필요를 안 느끼는 거지. 이러다 보니까 청와대에 의한 정치가 돼버리고, 여야가 동시에 추락하는 겁니다.”

- 어떻게 하면 해결될까요.
“어떤 결과를 국민이 받아들이거나, 정치 당사자들이 합의하는 게 많아지면 좀 괜찮은 정치야. 궁극적인 책임은 여당에 있지만, 야당이 야당답지 못했어. 싸움도 제대로 못 했고, 협상도 과감하게 못 했어요.”

-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지금 잘 싸우는 겁니까?
“좀 늦었지만 오랜만에 야당다운 모습을 보이고 있어요. 아직은 황 대표밖에 없지 않나요.”

정부, 과거·현재만 있지 미래 제시 못 해

- 동물국회를 없앤다고 선진화법을 만들었는데, 제도만으로는 잘 안되는 것 같습니다.
“직권 상정 제도가 있으니까 여야 협상이 안 돼요. 여당은 그냥 밀어붙이고, 야당은 협상으로 조금 얻는 것보다 끝까지 투쟁하는 게 국민에게 선명해 보이니까. 내 국회의장 임기가 끝나고 선진화법을 만들었는데, 악마는 디테일에 숨어 있어요. 신속처리법안(패스트트랙)에 올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정교하게 짜야 하는데, 허점투성이야. 그중 하나가 선거법이야. 아니, 게임의 룰을 정하면서 한 선수는 젖혀버리고, 다른 선수들끼리 정해버리나. 있을 수가 없는 거야.”

- 그래도 연동형은 필요하지 않나요.
“아니, 장난도 이런 장난이 없어요. 계산법에 따라서 내가 찍은 사람과 정당이 당선되기도 하고, 낙선되기도 하는 이게 뭐냐 이거야. 연동형을 하자는 가장 큰 이유는 사표(死票) 방지잖아요. 사표를 방지하려면 헌법을 고쳐 대통령 선거부터 바꿔야 할 거 아닙니까. 시간상으로 안 된다면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것부터 시작해야지.”

그가 먼저 ‘적폐 청산’ 문제를 꺼냈다.

“적폐청산이 필요하죠. 정권이 바뀌고, 탄핵이라는 큰 파도를 뛰어넘었으니까. 그런데 제도 개혁이 아닌 인적청산에만 치중하다 보니 정치 보복으로 흘러버린 거야. 중장기 정책이 5년마다 단절되고, 비전을 잃어버린 나라가 됐어요.”

- 벌써 임기 절반을 넘었는데….
“국민에게 희망과 위상을 제시하는 게 진보 정권의 특징인데 이 정부는 그게 없어. 과거와 현재만 있지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는 거지. 지금이라도 2년을 어떻게 잘 마무리할 것인가, 뚜렷한 지표를 설정해야 하는데, 국민이 사회주의 아니야, 전체주의 아니냐, 무슨 인민 민주주의 아니냐, 의심하는데도 여기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밝힌 적이 없어요.”

그러면서 그는 미세먼지, 한·미동맹, 경제, 교육에 이르기까지 불만을 한꺼번에 쏟아냈다.

“미세먼지 때문에 생명권이 위협받고 있어요. 그런데 며칠 전 한·중·일 정상이 만났지만, 이 초미의 관심사에 대해 말 한마디 못 해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진 원자력은 스스로 때려 부수고, 경쟁력 우위를 차지할 수 없는 태양광·풍력에는 투자해요. 세계 역사상 가장 엉터리 정책으로 꼽힐 겁니다.”

그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려고 세금을 내는 것”이라며 “70년 동안 한·미동맹 그늘 속에서 국가안보를 유지해왔는데 이걸 뒤집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한·미동맹이 아니고 다른 어떤 대체수단이 있을 수가 없어요. 중국이 북한과 한국, 어느 쪽으로 먼저 가겠어요. 너무나 뻔한 겁니다. 중국과 원수 지면 안 되겠지만, 그것도 굳건한 한·미동맹의 신뢰를 바탕으로 형성되는 겁니다. 외교의 기본원리도 모르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이 들어요.”

- 지금 갑자기 뭘 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뭘 하려고 하지 말고, 지금은 그나마 유지되고 있는 것을 후임자한테 물려주고 국민을 안심시켜야 해요. 경제의 주체는 민간인, 기업이거든요. 그런데 이 정부는 경제의 주체는 정부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교통순경이 운전자를 밀쳐내고 자기가 운전하겠다고 하면 이게 제대로 되겠어요? 교통정리만 잘하면 돼요. 자사고 폐지를 법률 아닌 시행령으로 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웃긴 거고, 2025년이면 다른 대통령 임기 아닙니까. 아니 정시가 좋은지 수시가 좋은지를 대통령이 어떻게 결정해요.”

- 선거법이 개정됐는데, 헌법도 거기 맞춰 고쳐야 하지 않나요.
“헌법을 고쳐야 하는데… 헌법을 고치자 하니까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하는 건 손도 안 대고 엉뚱한 것만 하니까, 그런 개헌은 난 반대야. 지금 섣불리 개헌하면 통제경제, 사회주의적 계획 경제 시스템으로 가는 개헌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함부로 말을 못 꺼내겠습니다.”

- 국회의장 시절 개헌안까지 만들었지 않습니까.
“대통령 권력을 축소하는 개헌을 하자고 동의만 하면 오케이야. 대통령 권한이 강대한 게 처음에는 좋지만 갈수록 짐이 된다는 사실을 대통령들이 너무 늦게 깨달아요. 문 대통령 퇴임 후가 전임 대통령들과 다르기를 바라지만…. 대통령의 불행도 불행이지만 나라가 이게 뭐야. 그래서 개헌을 절대로 해야 하는데….”

- 개헌한다면 방향을 어떻게 잡아야 합니까?
“완벽한 삼권분립에다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거죠. 총체적인 책임은 대통령에게 가더라도 경찰·검찰·국세청·국정원·방송통신위원회, 5대 권력기관이 독립적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대통령도 행복해지는 겁니다. 마지막에. 그동안 초반 2년간은 권력의 하수인이 되고, 후반 2년은 새로운 권력의 눈치를 보느라 자기 대통령에게 칼을 거꾸로 돌리는 일이 반복됐어요.”

21대 국회선 4차 산업혁명 발목 잡지 말길

- 21대 국회의 가장 큰 과제는….
“4차 산업혁명에 발목 좀 안 잡는 국회의원들이 됐으면 좋겠어요. 또 국회가 국정의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연말이 되면 국회의장이 팔이 아프게 방망이를 때려요. 2, 3분에 법안 하나씩. 내용도 몰라요. 의장도 모르고 의원들도 모르고…. 얼렁뚱땅 그냥 법을 만들어요. 제헌 국회 때는 독회(讀會)가 있었어요. 1 독회, 2 독회…. 내가 보니까 4 독회까지 있더라고. 우린 독회 한 번도 안 해요.”

- 국회가 제 머리를 못 깎으면 외부에서 해줘야 하지 않나요.
“맞아요. 국회가 잘 되려면 윤리위원회와 선거구획정위원회는 100% 국회 외부 사람으로 구성해서 결정하고, 수정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거구를 1년 전에 획정하게 돼 있는데 한 번도 시한을 지킨 적이 없어요.”

그는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이 다 정치 때문”이라고 말했다.

“정치인들이 지금 분열·갈등·분노·증오를 폭발시켜 싸움을 시키는 거야. 적은 수로 적을 만들어서 타도하는 레닌식 투쟁 수법을 써서 엄청 재미를 보고 있어요. 정치에 의해 경제도, 문화도 다 망가지고, 기술도 엄청난 퇴보를 하고…. 그래서 분열 지향적인 정치를 퇴출하고, 정말 헌신과 희생, 지도자로서 갖춰야 할 품성과 자질, 리더십을 가진 정치인들이 나오도록 교육 프로그램 같은 걸 하고 싶어요. 진보로 가서 하든, 보수로 가서 하든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그는 92년 14대 총선 때 부산 영도구에서 민자당 후보로 처음 당선돼 18대까지 내리 5선 했다. 정치를 그만둔 뒤 2년 동안 현장답사와 100권이 넘는 관련 도서를 수집해 비잔틴 제국의 최후를 다룬 『술탄과 황제』를 집필하는 등 저술 활동을 하고 있다.

 


김진국 칼럼니스트·대기자 kim.jinkook@joongang.co.kr

 

[2020-01-04 중앙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TAG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맑은보수 2020.01.18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의장님 맑은보수를 이끌어주심에 감사드리며 반드시 성공 시켜주시길 바랍니다

  2. 맑은힘 2020.01.18 18:2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맑은 힘, 따뜻한 카리스마로 꼭 성공하시길... 손에 피를 많이 묻힐수록 의석 수는 늘어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살면서 답을 찾던 ‘침대 머리맡의 책’

 

 

백범일지/ 김구/ 도진순 주해본/ 돌베개/ 2005

(그외 여러 판본 참고하여 글을 작성함)

 

 

‘Libre de Chevet’라는 프랑스어가 있다. ‘침대 머리맡의 책이란 뜻으로, 곁에 두고 생각날 때마다 읽는 애독서를 일컫는다. 내게 있어 백범일지는 그런 책이다. ‘무인도에 가져갈 두 권의 책을 꼽으라면 성경과 함께 벗 삼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백범일지가 우리말 한글본으로 처음 나오기 얼마 전(1947), 나도 세상에 나왔다. 시대와 삶의 궤적은 달랐지만 어렵고 힘겨운 일에 부닥치면 나는 이 책을 펼치곤 했다. “이럴 때 김구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내 삶의 자양분이 되고 지표가 된 백범일지에서 답을 찾으려 했다. 그 답 찾기는 오랜 세월을 두고 이어져 2018년 나는 그 연장선상에서 한 권의 책을 냈다. 문답식 백범일지해설서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가 바로 그 책이다. 영국의 철학자 화이트헤드가 서양 철학은 플라톤의 각주라 했는데, 이 책 또한 백범일지의 각주면서 존경의 마음을 가득 담아 김구 선생에게 바친 헌사요 오마주 같은 책이다.

 

백범일지는 김구 개인이 걸어온 길을 정리한 자서전이요, 사랑하는 가족에게 유서를 대신해 남긴 회고록이자 조국을 위해 희생한 동료를 기리며 피로 쓴 역사서, 나라와 겨레에 바친 보고서이다. ‘위대한 보통 사람의 파란만장한 일대기이다. 생각과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살아온 한 사나이의 치열하고도 극적인 생애를 만날 수 있다.

 

나는 솔직함 면에서 백범일지의 앞에 세울 자서전이나 회고록을 읽어본 기억이 없다. 동물농장의 작가 조지 오웰이 회고록의 신뢰성은 치부를 공개할 때 확보된다고 말했지만 백범일지야말로 그 본보기가 아닐까. 이 책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수없이 넘나드는 영화보다도 더 영화 같은 이야기들의 연속임에도 불구하고 객관성을 획득하고 진정성을 인정받는 이유는 바로 그런 솔직함에서 비롯된다. 백범일지를 읽고 나면 니체의 잠언집 제목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이 반사적으로 떠오른다. 김구의 혁명가적 면모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에도 반하게 만드는 멋진 책이다. 쓴 사람의 숨결과 체온과 체취가 갈피갈피마다 녹아 있다. 백범의 비장하고도 처연한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보는 듯 생생하다.

 

백범일지는 상하권으로 나뉘어 집필되었다. 한글본은 당연히 상하 합본된 한 권의 책으로 나왔다. 상권에는 주로 개인적인 성장과 신변 활동을 담았고, 하권은 대한민국임시정부를 둘러싼 국제 정세와 주변 인물들로 범위를 넓혀 기술했다. 김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백범일지상권을 쓴 상해 시대가 죽자꾸나 시대였다면, 하권을 집필한 중경 시대는 죽어가는 시대였다. 시작할 때부터 마칠 때까지 유언장과 혈서를 가슴에 품고 살아야 했던 것이 김구와 임시정부의 숙명이었다. 퇴고나 손질을 할 겨를조차 없었지만 그런데도 깊고 무겁고 또 유려하다. 문학적 향취가 돋보이는 표현들이 읽는 맛을 더해준다.

 

먹고 살기 힘들고 책이 귀하던 시절에도 백범일지는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고 공공 도서관에서 가장 잘나간 책 중의 하나였다. 앞으로도 백범일지는 세대와 계층을 아울러 많은 이들이 꾸준히 찾는 스테디셀러, 국민 필독서로 영원히 생명력을 이어 나갈 우리 시대의 고전이다.

 

국사원 출판사에서 처음 낸 이후 유족이 판권을 개방해 수많은 출판사에서 여러 종류의 책이 출간됐다. 위 작가(도진순)정본 백범일지(돌베개, 2016)와 나남출판사(백범학술원판, 2002) 판도 좋은 서적이며 영인본(집문당, 1994) 등도 가치 있는 책이다. 또한 관련 연구서로는 손세일 선생의 이승만과 김구(7, 조선뉴스프레스, 2015)가 단연 압권이다. 권당 800페이지 안팎의 대작으로, 당시 시대상이나 민족 지도자들의 사상과 행적 연구에 귀중한 서적이다. 이 책도 언젠가 소개할 계획이다. 내가 공들여 쓴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도 독자들에게 사랑받고 있어 늘 감사한 마음이다.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북노트 2020.01.04 08: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백범일지는 청소년기에 교학사판으로 읽은 기억이 납니다. 그때 받았던 벅찬 감동이 희미해진 지금, 작가님이 쓰신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읽으며 다시 한 번 그 감동을 되살리고 싶습니다.

가슴에 밑줄을 긋고 지나간 책들…

 

 

어릴 적부터 책을 벗 삼고 활자에 매료돼 살았습니다. 형과 누나의 교과서, 겉장이 뜯겨진 만화책, 벽지로 바른 신문 등 활자로 표현된 모든 것에 눈길을 빼앗기곤 했습니다. 가장 받고 싶은 선물이 책이었습니다. 중학 시절 셰익스피어 전집을 읽느라 뜬눈으로 아침을 맞은 적도 여러 날입니다. 신대륙과 미개지가 책 속에 있었습니다. 지금도 책 읽기는 내 인생에서 분리할 수 없는 일상입니다. Cook이 일용할 양식을 준다면, Book은 마음의 양식을 선사합니다. 내 이름으로 낸 몇 권의 책도 그 동안 읽은 책들이 없었더라면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두 번 읽을 가치가 없는 책은 한 번 읽을 가치도 없다”고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말했습니다. 책은 한 권 한 권이 하나의 세계이고 또 인생입니다. 지난 가을 국회 도서관에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 마음으로 손때 묻은 책들을 기증했지만, 그 책들을 읽을 때의 느낌과 생각은 지금도 잔상처럼 남아 있습니다.

 

내 마음 속의 서재에 소장한 책들을 블로그를 통해 공개하려고 합니다. 독서 편력을 책으로 낸 이도 있습니다만, 내게 영향을 미치고 파장을 일으킨 책 이야기를 틈틈이 내 목소리로 들려 드리겠습니다. 청소년기에 읽은 책부터 최근에 읽은 책까지 시기와 장르를 가리지 않겠습니다. 육중한 감동으로 다가왔던 책들, 가슴에 밑줄을 긋고 지나간 문장들을 길지 않은 글로 공유하려고 합니다.

 

‘김형오의 도서 산책’에 좋은 길동무가 돼 주시기 바랍니다. ♠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북노트 2019.12.31 02: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밤의 도서 산책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 잠시 인터넷 동네 한 바퀴를 하다가 여기 오게 됐습니다. 책을 좋아하는 순수한 독자로서 정말 반갑고 의미 있는 코너가 될 것 같네요. 앞으로 간간이 들러 길동무가 돼 드리겠습니다. 꾸뻑.

기원전 5세기, 27년간 지속된 아주 특별한 비극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투퀴디데스/ 천병희 역/ 숲/ 2011

 

 

이 책을 나의 도서 산책에 제일 먼저 벗 삼는 까닭은 우선 고전 중에 고전이기 때문이고, 둘째는 지금 한국을 둘러싼 복잡 미묘한 국제 정치 환경과 국가 안보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이 때 이 책이 상당한 길라잡이가 되리라는 생각 때문이다. 이미 읽은 분들이라면 회상 속에서 의미를 곱씹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아직 안 읽어본 분들에게는 일독을 꼭 권하고 싶다.

 

이 책의 무대는 당시 그리스인들이 알고 있던 세계 전체다. 즉 그리스의 내전이 아니라 세계대전이란 관점에서 봐야겠다.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두 축으로 하는 그리스의 모든 국가(*필자 주: ‘도시국가’라고도 하나 ‘국가’라는 표현이 더 맞을 것 같다. 요즘보다 국가의 사이즈가 좀 작을 뿐 나라별로 체제-왕정·민주정·과두제 등-가 다르며 국방·외교·행정 등이 독자적으로 행해졌다)들이 이 전쟁에 개입하고 참여한다. 요컨대 그리스 본토는 물론 이집트·시칠리아(이탈리아)·페르시아 등 당시 그리스인들이 알고 있던 세계 전체에서 전쟁을 치렀다.

27년간(기원전 431~404년) 지속된 장기 전쟁에서 국가 간·지도자 간 치열하고도 치밀한, 그러면서도 처절한 삶과 죽음, 승리와 패배의 변주곡이 때로는 장엄하게 때로는 잔혹하고 비열하게 흐른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 하찮은 일로 벌어진 싸움이 세계대전으로 번져 결국 모두의 파멸로 끝난다는 데서 시사점이 크다. 인간이 인간에 대해 저지른 온갖 만행과 악행이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받고, 심지어 추앙받기까지 하는 반문명적 상황의 고발서이기도 하다.

전쟁의 두 축은 펠로폰네소스 동맹의 중심인 스파르타와 델로스 동맹을 이끄는 아테네이다. 또한 전통적 육군국인 스파르타와 강력한 해군을 기반으로 하는 아테네 간의 패권전이다. 초기 전쟁은 다소 싱거웠다. 스파르타가 막강 육군을 끌고 공격해 오면 아테네는 성문을 굳게 닫고 방어전을 펴는 한편 함대를 띄워 스파르타의 배후를 역공한다. 쉽게 승부가 나지 않는 질긴 전쟁을 치르며 두 진영은 점점 철저해지고 잔인해지면서 인간성과 명분을 잃어간다. 승리 만능주의와 전쟁을 위한 전쟁이 이어진다. 스파르타와 아테네, 양 진영의 지도국도 서서히 쇠락해간다.

 

저자인 투키디데스는 전쟁의 원인을 “점차 강성해지는 아테네 세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파르타가 일으킨 전쟁”*이라 규정한다. 아테네 출신답다.(*이른바 ‘투키디데스 함정’(Thukydides Trap)을 현대 전쟁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학자들이 있다. 즉 신흥국이 비약하여 기존 패권국에 도전할 만큼 강성해지는 것을 미리 차단하기 위해 전쟁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견제가 직접 부닥치는 한반도를 둘러싼 동북아 정세가 예사롭지 않다.) 페르시아의 그리스 침략 전쟁 당시 스파르타가 중심이 되어 결성한 펠로폰네소스 동맹국들은 전쟁이 끝난 후, 아테네가 델로스 동맹을 기반으로 점차 제국화해 가는 데 대한 우려를 사전 제압코자 전쟁을 부추기고 또 참전한다.

 

누구도 생각 못한 처절하고도 끔찍한 전쟁으로 그리스가 자랑했던 이성과 합리성도 짓밟히고, 국가 간 합의나 약속도 소용없고, 힘과 계략이 판을 친다. 아테네가 페르시아의 지원을 받은 스파르타에 항복하지만, 스파르타는 그리스 세계의 패자(覇者)가 되지 못하고 패권은 테베(Thebes)로 넘어가는가 하다가 끝내 마케도니아에게 모두 정복당한다(이후 알렉산더 시대가 전개된다).

이 과정 모두가 전쟁을 통해 결정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국가 간에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내일은 또 서로 치열히 싸우는 모습을 수없이 목도한다. 국가 생존권을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군사력이 약한 나라는 센 나라에게 먹히거나 나라 전체가 전장이 되어 초토화된다. 동맹에서 이탈하려는 나라는 가혹하게 처벌받는다. 동맹을 이끄는 강대국도 철저한 국가 이익에 따라 행동한다. 세계 최강국 페르시아는 스파르타와 아테네를 밀었다 당겼다 하며 주도권을 쥐고 두 세력을 긴장시킨다.

국내적으로는 끊임없는 정적 간의 대결장이 벌어진다. 흥미로운 점은 심혈을 기울여 정적 제거에 성공하면 승자에 의한 장기 집권이나 정치적 안정이 달성되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강력한 정적, 경쟁자가 새롭게 나타난다는 사실이다. 결국 “장강의 뒷물이 앞물을 밀어내듯” 역사는 그렇게 흐른다. 정적은 “제거 대상이 아니라 타협 대상”이라는 점이 이 책을 통해 내가 터득한 진리다.

 

이 전쟁에 지휘관으로 참여한 바도 있는 저자 투키디데스는 철저한 사실적 탐구를 통해 전쟁의 진실을 전하려 한다. 들은 이야기와 아는 바를 전부 다 쓰지 않고 최대한 엄밀히 검토한 다음 옳다고 믿는 것만 기술한다. 전쟁이라는 주제를 한 순간도 놓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다음 편에 소개할 박람강기(博覽强記)의 헤로도토스와 곧잘 비교된다. 헤로도토스가 넓다면 투키디데스는 깊다.

모두 8권으로 구성된 이 책의 제1권은 전쟁의 배경을 다루었고, 2권부터 전쟁에 대한 본격적인 서술이 진행된다. 전쟁이 끝난 후(BC 404년)에도 투키디데스는 살아남았으나 그의 글은 기원전 411년에서 끝난다. 그 뒤의 과정은 크세노폰·플라톤 등의 기록으로 파악된다. 소크라테스를 비롯하여 동시대 사람들은 모두 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참전했다.

 

“행복은 자유에 있고, 자유는 용기에 있다.”(2권 43장 4절) 페리클레스의 추도사 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구절이다. 이 말은 미국 독립선언서, 링컨의 게티즈버그 연설, 케네디 취임사 등에도 인용 원용되었다. 우리 헌법 전문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며 (이 헌법을 만든다)”의 정신과도 일맥상통한다.

 

독자들에겐 천병희 역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숲, 2011년)를 권한다. 808페이지(지도 별첨)에 이르는 대작이지만 유려한 번역과 명문장들로 읽는 맛이 있고, 특히 여러 연설문들은 현장감이 살아 있다. 무엇보다 수많은 영웅·간웅의 부침, 예측 불허의 전쟁과 전투로 잡았다 하면 손을 떼기 힘들다. 이 책의 보충 교재로는 고대 그리스 연구의 대가인 석학 도널드 케이건의 동명 책자(허승일·박재욱 역, 까치글방, 2006년, 578쪽)도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The Peloponnesian War, Donald Kagan, 2003, Viking Penguin Group Inc.) 나는 이 책을 줄 그어가며 수없이 읽었다. 케이건 교수 자신의 책 4권을 요약한 것으로 투키디데스 해설판이나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이해하는 데 이보다 좋은 책은 없을 것이다. ♠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북노트 2020.01.02 05: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읽었는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는 아직이었네요. 이 칼럼 읽고 나니 독서 욕구가 부쩍 당깁니다. 주문해야겠네요.

‘비움’과 ‘내려놓음’이 몸에 밴 청아한 선비형 정치인

 

5선 의원, 국회의장 마친 뒤 아름다운 퇴장

약자에게도 따뜻한 시선…이제 작가의 길로

 

타고난 약골체질 철저한 자기관리로 극복

회심의 역작<술탄과 황제> 서점가 돌풍 일으켜

 

김형오 동문의 마포 연구실에 걸린 ‘실사구시(實事求是)’ 표어 액자.

김 동문이 중국 텐진(天津)대학 명예박사 학위 수여 때 받았던 기념 액자다.

이 액자엔 사연이 있다. 김 동문의 국회의장 시절 중국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초청으로 방중 면담이 계획됐다가

후 주석의 급한 일정 때문에 약속이 펑크났다. 얼마 후 외교라인을 통해 죄송하다는 사과문와 함께

다시 초청을 하고 싶다는 전갈이 왔다. 김 동문은 “안간다. 박사학위나 주면 몰라도”라며 짐짓 거절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이 중국에 큰소리 칠수 있던 시절. 그러자 후주석 측이 국무원 동의까지 필요한

명문대학 명박을 부랴부랴 주선했다는 것이다. 

텐진대 명예박사 학위는 중국 원자폭탄의 아버지라 불리는 위민(于敏)외에 김 동문이 유일한 수여자다.

 

 

2011년 8월31일 부산시청 기자회견장. 전 국회의장 김형오(20회)동문이 기자들 앞에 서서 상의 안 포켓에서 준비해온 원고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이번 18대 의원을 끝으로 정치계를 떠납니다.” 차기 총선 불출마 선언이었다.

 

회견장이 웅성거렸다. 어떤 기자도 예상 못한 내용이었다.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차기 총선, 때 이른 물갈이 시작”, “5선 국회의원에 의장까지 했으니 물러나는 것은 자연스럽다”, “자리에 연연않고 떠나는 원로다운 면모” 등 긍정평가에서부터 “당이 어려울 때 자신만 독야청청 피신하느냐” 는 냉소적인 비판까지 다양한 반응이 나왔다. 심지어 “돈 먹다 걸렸나”, “건강에 문제가 있나”등 의심의 눈초리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태평했다. 훗날 한 기자에게 “20여년 짊어져 온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듯 홀가분했다”, “그동안 가슴 깊이 품어온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한다는 설레임으로 들뜬 기분이었다”는 등의 당시 심경을 회고한 바 있다. “나를 정치인으로 키워주고 국회의장까지 하게 해준 부산에서 마지막 정치 작별인사를 하는 게 도리”라서 부산을 택했다고 한다. 그는 근래 최연소 국회의장(만61세)이었고 국회를 떠날 때가 만 65세였으니 여러 말들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지난 9월5일 국회도서관 1층 중앙홀. 개인소장 도서 2000여점, 자료·문건 5000여점과 국회의장 재직시 외국 VIP들로부터 받은 선물 178점을 국회 도서관에 기증하는 ‘기증자료 특별전’ 개막식에서 김형오는 다시 한번 만장한 기자들 앞에 섰다. “오늘 이 자리가 공인의 삶, 공적인 신분, 공직자가 어떤 길을 가야하는가 고민하는 분들에게 저의 작은 행동이 느낌표 하나를 찍어줄 수 만 있다면 좋겠다”고 인사했다.

 

한국 서정시의 한 획을 그은 시인 이형기(1933~2005)는 주옥같은 시를 많이 남겼지만 그중에서도 ‘낙화(落花)’는 문학인들로부터 가장 많이 사랑을 받는 대표작이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중략) /분분한 낙화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날” 인생의 낙조, 또는 퇴장의 미학을 떨어지는 꽃잎에 은유해 표현했다. 그래서 정치인, 경제인, 사회인 등 지도층의 귀거래사 뒤에는 이형기의 이 낙화 시가 자주 인용된다.

 

한수이남 최고의 명문인 경남중고가 70여개 성상동안 배출한 국가의 동량, 각계 각층의 지도자급 스타들은 밤하늘의 별들처럼 셀 수없이 많다. 동아일보 기자로 언론계에서 출발해 관계를 거쳐 5선 국회의원을 하고 국회의장을 끝으로 은퇴한 김형오 동문도 찬란한 빛을 발하는 그 별들 중 하나다.

 

김 동문은 정계에 몸담은 기간 좌우에 크게 치우침이 없이 정도를 밟아왔고 시대정신에 발맞춰 민주주의의 기틀을 공고하게 다졌다는 평판을 듣고 있다. 그의 정치적 삶이 격동의 한국 정치사에서는 드물게 클린했다는 점, 그리고 그의 퇴장이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는 낙화의 뒷모습처럼 아름다웠다는 점도 국민들로부터 높은 평가와 존경을 받는 배경중 하나다. 특히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야 정치인들의 볼썽사나운 자리다툼이 국민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고 있는 현 시국에서 김 동문의 그런 ‘비움의 행적’은 찬연히 빛나는 귀감으로 더욱 돋보이는 상황이다.

 

김형오 동문은 요즘 칼럼니스트로 활약중이다. 주요 언론매체에 간헐적으로 정치칼럼을 기고하고 있다. 문재인(25회) 정권의 잘못을 정중하지만 날카롭게 지적하고 때로는 자신이 몸담았던 보수야당을 향해 따끔한 질책을 가하기도 한다. 얼마전 문화일보는 18~19면 양면을 통털어 김 동문과의 인터뷰 내용을 실었다. 여기서 김 동문은 지소미아 등 외교정책과 경제정책, 검찰개혁과 교육문제 등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그는 “현 정부가 (의욕이 앞서)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라를 만들고 있다”며 불안감을 나타내면서 5년 후배인 문대통령에게 “서운하다 생각하지 말고 (권한을) 내려놓고 비워놓는 준비를 해야한다”고 충고했다. 이명박, 박근혜 때도 바른소리 한다고 밉보였는데 마음을 완전히 비운 지금 나라 위해 무엇을 망설이겠느냐는 것이다.

 

김형오 동문은 경남 고성 산(産)이다.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거주하시던 부모님이 해방과 함께 1남2녀(김 동문의 두 누나와 형)를 데리고 귀향한 직후 태어났다. 김 동문은 태어날 때부터 약골이었다고 한다.

 

밖에 나갔다 하면 넘어지고 긁히고 터지고 째지기 일쑤였다. 걸핏하면 감기 몸살 등을 앓았다. 의료시설은 커녕 약국도 제대로 없던 시절인지라 부모님은 언제 잃어버릴지도 모르는 자식으로 치부하며 불안해했다고 한다.

 

그래도 ‘기신기신 살아남아’ 나이가 찬 김 동문은 시골 읍내의 고성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하지만 지각과 결석을 밥먹듯 했다. 6년 동안 개근상과 전근상 한번 받아보지 못했고 소풍가는 날도 자주 아파 빠진 적이 많았다. 시골아이들의 일대 로망인 도시(부산)로의 수학여행은 언감생심이었다. 자연히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 모두 등교한 이후 김 동문은 방에 드러누워 형과 누나의 교과서를 비롯해 집에 있던 책이란 책은 죄다 읽으며 소일했다. 장화홍련뎐, 춘향뎐, 홍길동전 등 고전소설은 그의 가장 친한 친구였다. 초등학교 3학년 즈음엔 신문을 보기 시작했다. 어려운 한자도 있었으나 아버지와 어머니께 물어보며 세상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인생 새옹지마라 했던가, 아니면 전화위복이라 해야 하는가. 김 동문의 이런 허약체질이 그에게 깊고 넓은 지식을 선물했다. 동아일보사에 입사해 기자로 활약하고 외교부 산하 외교안보연구원에서 연구관으로 돋보이는 활동을 했으며 정계에 입문, 유권자를 향해 호소력 있는 메시지를 던질 수 있었던 것은 다 이 당시 쌓았던 교양 덕분이었다. 게다가 은퇴 후 작가로서의 삶을 새로 시작하면서 <술탄과 황제>라는 대작을 생산할 수 있었던 것 역시 어렸을 때부터 다져놓았던 방대한 독서량이 없었다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그렇게 결석이 잦았음에도 성적이 우수해 경남중학교에 지원, 합격했다. 시험치러 부산으로 가면서 처음으로 버스를 탔고, 기차·전차를 구경한 것도 이때가 처음이었다. 누나와 함께 서대신동 산 중턱에서 자취를 하면서 살았다. 쌍백선 교복을 입고 등교한 첫날 에피소드 하나. 입학식을 마치고 귀가하는 도중 도회지 부산의 풍물이 신기해 주위를 두리번거리느라 길을 잃었다. 걸어서 30분이면 닿을 거리를 이러저리 헤메느라 너댓시간이나 걸렸다. 해거름에 집에 도착하자 누나가 큰 걱정을 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길을 잃었다고 하자 “전찻길만 따라오면 되는데” 라며 촌뜨기 동생의 주변머리 없음을 나무랬다. 큰 길에서는 우리집이 있는 산이 보이고 올라가는 골목 입구도 쉽게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때야 알았다.

 

당시 토성동에 소재한 경남중학 담벼락에는 만화가게와 책방이 있었다. 여기서 김형오의 독서 본능이 물만난 고기처럼 발휘됐다. 중1, 중2 때 당시 삼국지 수호지 열국지, 통일천하 등 이른바 지(志)자 류 고전을 밤을 새워 읽었고 중3 때는 세익스피어 전집 등 서양의 문학작품까지 섭렵했다. 성적은 그런대로 상위권에 속했다. 중3 때 김형오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과 같은 반이었다. 김 동문은 “당시 모르는 문제가 나오면 즉각 승태한테 물어봤는데 정말 빨리, 그리고 자상하게 풀이를 해줬다”며 회고한다.

 

덕분인지 경남고는 매우 좋은 성적으로 입학하여 구덕산 덕형관 캠퍼스에서 그런대로 보람찬 학창시절을 보냈다. 성적도 성격도 무난한 탓에 동기 친구들과도 깊은 우정을 나눴다. 고2 가을에야 그는 초·중 때 못가본 수학여행을 처음으로 맛본다. 그런데 운명의 고3때였다. 아버지의 권유로 당시 소문난 이비인후과에서 비염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무슨 혈관을 잘못 건드렸는지 피가 멈추지 않았다. 양 콧구멍에 아기 주먹 만큼한 지혈제 솜을 틀어막은 상태로 영도 집에 돌아왔으나 피는 계속 줄줄 흘러 세숫대야로 받아 내야 할 정도였다. 얼굴의 일곱 구멍에서 피가 쏟아졌다.

 

이때 김형오 군은 죽음을 생각했다. “한창 피를 쏟아내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고 편안해졌다”고 회고하는 김 동문. 이후 그의 인생을 관통한 비움과 내려놓음은 그때 깨달은 삶과 죽음의 철학에서 비롯된게 아닐까 싶다. “1965년 5월16일 토요일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바로 4년 전 5.16을 일으킨 날이었으니까”.

 

피는 멎었으나 몸은 엉망이 됐다. 60kg 이상 나가던 체중이 43kg으로 줄어들었다. 몇 달을 학교에 가지 못했다. 근 4달 책 한권 보지 못하고 들어누워 있다보니 성적이 뚝 떨어진 것은 당연했다. 휴학을 신청했다. 하지만 담임이던 ‘악한’ 박태현 선생님이 적극 만류했다. 영도 우리집으로 직접 오셔서 “형오 실력이면 서울법대도 들어 갈 수 있습니다.”라고 장담했다. 기분이 좋아진 부모님, 담임의 권유대로 서울법대에 지원했지만 보기좋게 낙방했다.

 

결국 김형오는 재수를 결심했다. 건강을 회복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판단하에 영도 영선동 집에서 태종대 입구까지 2km정도의 거리를 매일 조깅했다. 처음엔 숨이 차서 몇 번을 쉬어가며 겨우 다녔다. 하지만 한 달 두 달 걷다 보니 나중엔 뛸 수도 있었다. 자형은 김형오의 건강회복을 축하하며 제주도 여행을 선물했다. 이때 난생 처음으로 페리를 타고갔다. 오는 날은 풍랑을 만나 지축이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12시간 내내 배멀미를 했던 것 같다”고 김형오는 회고한다. 그래도 그의 첫 해외(?)여행은 회복한 건강 덕분에 무사히 끝났다.

 

김형오의 관리 능력은 건강에 이어 학업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6월경 서울에서 제일 좋다던 양영학원에서 재수를 하던 친구의 권유로 편입시험을 치렀는데 그 친구가 시험에 나올만한 수학문제 몇 개를 알려준 덕분에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달 후 1학기 종합성적은 184명 중 182등이었다. 하지만 여기서 김형오의 도전의식이 강하게 발동한다. “이럴 순 없다”며 자기 나름의 학업 계획을 세웠다. 하루 일과와 각 과목 진도 스케줄을 촘촘하게 짰다. 8월 하순부터 12월 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스케줄대로 1분1초도 어긋남 없이 실천했다.

 

그 결과 학원의 최종 성적으로 10위권에 들었다. 서울 법대도 너끈히 지원할 수 있었다. 하지만 고시공부하다 몸 상한 사촌형의 사례를 목도하면서 서울 문리대에 원서를 냈다. 당초 정치과를 희망했으나 데모꾼이 될 것을 우려한 부모님의 강권에 따라 외교과로 지망을 바꿨다. 외무고시엔 흥미가 없었다. 외교학을 배우면서 국제정치에 관한 식견을 가다듬었고 모택동·레닌 관련 혁명) 서적도 열심히 탐독했다. 나중에 보수당에 몸을 담고 있으면서도 진보 이념에 적지 않은 심퍼시를 가지게 된 것은 학부시절 접했던 그런 서적들 덕분이었을 것이다.

 

김형오 동문은 작년 7월23일 공교롭게도 같은 날 자신이 좋아하던 두 사람을 하늘나라로 보내 염천에도 불구하고 검은 상복을 입고 연이틀 상가를 찾았다. 한명은 생전에 인격적 교류를 나눴던 고 노회찬 정의당 의원이고 다른 한명은 젊었을 때부터 그의 작품에 매료됐던 소설가 최인훈이었다. 최인훈은 좌우 이데올로기의 틈바구니에서 고뇌하는 젊은이를 그린 <광장>과 <회색인> 등으로 김승옥, 이청준 등과 함께 60~70년대 대학가를 풍미한 한국의 대표적 작가였다. “신동아 기자시절 원고 청탁을 위해 몇차례 최 작가를 만나는 기회를 가져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고 말하는 김형오 동문. “특히 <광장>은 1960년대 벽두에 통행금지 해제를 알리는 새벽 4시의 사이렌 소리처럼 잠든 나의 의식을 뒤흔들었다”고 회고한다.

 

김 동문은 대학원 재학 중 입대해 정보사에서 정보분석요원 등으로 35개월을 꼬박 복무한 뒤 전역, 1976년 초 동아일보사에 입사한다. 동아투위와 백지광고 사태가 어느 정도 수습되었지만 여전히 어수선하던 분위기였다. 여기서 2년정도 근무한 뒤 그의 글솜씨를 눈여겨 본 강영훈 당시 외교안보연구원장(전 총리)의 부름을 받아 외교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다. 두 번째 직장이었다. 3년 후 강 원장은 주영대사로 부임 차 떠나면서도 김형오에게 각별한 애정과 염려를 표할 정도로 두 사람은 일반적인 상사-부하관계를 넘어섰다. (국립현충원에 있는 강영훈 총리의 묘비명은 가족의 요청으로 김형오가 직접 썼다.) 김형오의 인생 2모작이 여기서 끝나는가 했는데 의외의 손길이 그에게 뻗쳐왔다. 청와대(공보비서실)가 그를 발탁한 것이다. 82년 시작된 그의 청와대 생활(공보·정무 비서실)은 다시 총리실(정무비서관)을 거쳐 청와대 정무비서관으로 마감한다. 2년간의 원외지구당 위원장을 거쳐 1992년 대망의 국회의원 뱃지를 단다.

 

고등학교 때부터 보낸 영도에서 내리 5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04년 한나라당 사무총장, 2006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2007년 제17대 대통령인수위 부위원장 등 굵지굵직한 보직을 역임했다. 특히 2008년 7월부터 2010년 6월까지 제18대 전반기 국회의장직을 맡으면서 한국 의회주의를 반석위에 올려놓았다는 평을 받았다. 여의도 국회사에서 그 누구도 김형오 동문만큼 여야간 대화와 타협을 통해 원활한 의회를 운영하려 한 의장은 없다는 것이 언론계 안팎의 일반적인 평가다.

 

국회의원으로서 그의 업적중 하나는 개헌문제를 비롯 이 나라 민주헌정체제를 바로 잡으려는 시도였다. (그는 선거로 당선된 5년 단임제 대통령들이 모두 불행한 비극을 맞는 것은 대통령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하고 3권 분립 원칙이 지켜지지 않기 때문이라고 본다. 재임 초기에는 제왕적 대통령으로 군림하지만 후기로 갈수록 차기 대권 구도로 관심이 이동하여 식물형 대통령이 되고 퇴임 후에는 비극적 종말을 맞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 권한을 축소하는 것인데 이것은 그냥 두는 ‘무늬만 개헌’, ‘개헌만을 위한 개헌’은 단연코 반대한다. 그래서 그는 노무현 대통령의 원포인트 개헌이나 문 대통령의 개헌안에도 반대했던 것이다. 이와 더불어 정당의 지나친 강대화로 인한 국회의 약화, 국회의원의 정당 눈치보기를 지적한다. “여당은 청와대 눈치보고 야당은 강경파에 끌려 다니고, 국회는 국민의 아픔을 치유하지도 미래를 제시하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헌법과 정치관계법의 개정을 그는 필생의 역점으로 두어왔고, 이를 고치지 못하는 점을 아쉬워하고 있다.)

 

2012년 정계를 은퇴하고 나서 김형오 동문은 오히려 필생의 역작을 만들어냈다. 1453년 동로마 제국이 오스만 제국의 공세에 무릎을 꿇고 역사적 뒤안길로 사라지는 그 현장을 팩션(픽션+팩트)으로 구성한 <술탄과 황제>다. 방대한 자료를 바탕으로 작가의 상상력을 가미해 드라마틱한 장면들을 재구성해냈다. 480쪽이 넘는 대작임에도 유려한 글 솜씨 탓에 술술 읽힌다. 지금까지 47판을 인쇄, 1000권 파는 것도 어려운 인문학의 실종 시대에 5만권이나 판매됐다. 또 작년에는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란 <백범일지> 해설서도 펴내 화제가 되고 있다. 20여년 정계에서 몸담은 사람으로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베스트셀러의 저자가 된 것이다.

 

기증자료 특별전에서 문희상 국회의장으로부터 기념패를 받는 김형오 동문

 

“<술탄과 황제>는 수차례 현장을 여행하면서 나의 에스프리를 온통 쏟아부었지요. 엄청나게 고생했지요. 어릴 때부터 가슴에 품었던 작가의 꿈을 실현한 만큼 이제 여한이 없습니다” 그는 이제 전 국회의장 김형오 보다 작가 김형오라는 호칭을 더 선호하고 있다. “세 라 비, 이것이 인생 아니겠느냐”고 말하는 그의 조용한 미소에서 그다지 단단하지 않은 몸에도 불구하고 누구보다도 역동적으로 살아온 그의 인생이 잘 정돈된 책장처럼 단아하게 느껴진다. 지난 9월 김형오 자료 기증식에서 그는 김구 선생이 즐겨 썼던 조선 후기 선비 이양연(李亮淵)의 시 ‘야설(野雪)’ 을 읊으며 답사를 마무리했다.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 불수호난행(不須胡亂行)/ 금일아행적(今日我行跡)/ (수작후인정)(遂作後人程)”. ‘눈길 걸을 땐 어지럽게 걷지 마라. 오늘 내가 걸은 길은 뒷사람에게 이정표가 되리니’라는 뜻이다.

 

우리는 지금 한국 정계에 뚜렷한 족적을 남기고 홀연히 살아가는 한 모범적 용마를 보고 있다.

 

/강성보 편집인

 

 

 

[용마 198호]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책 읽기 좋은 때다. 예로부터 겨울, 밤, 비오는 날을 ‘삼여(三餘)’라 하여 독서하기 좋은 때라 하였다. 농사짓던 옛날이야기이긴 하지만 여전히 지금도 유효하다. 홀로 있는 시간이라야 책을 볼 수 있기 때문에 일상에 바쁜 현대인에게 삼여는 귀한 시간이다. 한국인의 독서 시간은 선진국에 비해 많이 뒤진다. 특히 우리는 스마트폰에 너무 매여 책 읽을 시간이 없는 것 같다. 수시로 이메일과 문자 메시지를 확인하고, SNS에 참여하고, 유튜브와 넷플릭스를 시청하고, 게임과 인터넷 서핑을 한다. 독서와 성찰의 시간은 짧고, 네트워크에 연결하여 관계 맺거나 입장을 표현하는 시간은 긴 셈이다. 왜 그런가. 트렌드, 곧 집단적 흐름이나 방향에 민감한 문화가 한몫을 하는 것 같다. 우리는 여론조사를 중요시하고 늘 어디가 대세인지 촉각을 세운다. 댓글과 SNS 의견을 열심히 살핀다. 이러다 보니 댓글 조작 사건이 계속 터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왜 독서를 안 할까. 단지 시간이 없어서일까. 내 주위만 보더라도 책 한 권 읽지 않고 한 해를 보내는 이가 적지 않다. 문제는 그래도 사회생활 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는 데 있다. 대화를 하거나 채팅을 할 때, 가벼운 수다나 잡담만으로도 충분하다. 주체적인 견해나 논리를 내세우면 오히려 분위기를 어색하게 만들거나 피로하게 한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진영의 깃발 아래 서서 그 소속감에 위안을 받으려 하는 이들이 많다 보니 필사적으로 소셜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유튜브를 시청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런 면에서 독서는 너무 무겁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책을 읽으면 생각을 해야 하고, 나름대로 쓰고 토론하는 등 정리해야 남는 게 있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독서와 생각의 깊이가 반드시 비례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책을 많이 읽었다고 알려진 사회 지도층이나 지식인들의 행태를 보면 품격은커녕, 너무나 가볍고 얕아서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편향되고 왜곡된 지식으로 일반적인 상식과 판단을 뒤집어버린다. 아마도 방법과 방향이 한 쪽으로 치우친 독서를 한 탓이리라. 또 얄팍하고 알량한 책을 읽다보면 세상을 가볍게 생각하게 된다. ‘나쁜 책’이 아닌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 독서는 지식을 바탕으로 지혜를 추구한다. 지식이 지혜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생각의 강을 건너야 한다. 그런 다음 쓰거나 토론을 통해 융통성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혜화되지 않은 지식의 축적은 곡학아세, 아전인수로 흐르기 쉽다. 독서도 편식을 하면 정신건강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오랜 시간 검증된 고전은 영혼을 살찌우게 하는 책들이다. 그래서 현인들은 책 한 권을 권하더라도 신중하게 한다.

 

대통령의 독서는 희망을 준다. 강희제와 링컨은 독서광이었다. 그들은 신중했지만 결단이 필요할 땐 신속하고 과감했다. 현재 세계 최강의 나라인 미국과 중국의 기초를 튼튼하게 만든 리더들이다. 대통령의 독서는 그래서 중요하다. 선택과 결단이 나라와 시민의 운명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시민들은 대통령이 어떤 책을 읽는지 궁금해 하지만 공개를 꺼린다. 그런데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독서 뉴스는 상식을 깼다. 책을 읽기 위해 일부러 휴가를 냈다는 것도 그렇고, 가까운 지인의 신간을 소개한 것도 그렇다. 너무 공격적이고, 오얏나무 아래에서 갓끈을 매었다는 여론이 있다. 그러나 옹졸하게 탓할 생각은 없다. 다만 이번 사건을 좀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계기로 삼을 필요는 있다.

 

우리 사회를 둘러보면 긴 안목과 내공으로 안정감이 있으면서도 스스로 도덕성과 절제력을 갖춘 리더가 보이질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자화상이고 현주소다. 지금부터라도 인물을 키워야 한다. 무엇보다 그 출발은 독서에 있다. 우리는 디지털·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다. 모든 영역과 경계가 곳곳에서 무너지고 있다. 학교 교육을 비롯한 기존 사회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다만 한 가지, 오직 독서는 어떤 상황에서든 살아남을 것 같다.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상상력을 창출하는 인간 고유의 역할로 남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고전 책 읽기’를 제안하려 한다. 읽고, 생각하고, 쓰고, 토론하자. ‘읽생쓰토’는 독서의 기본이고 인류의 지혜다. 지식이 과거의 유산이라면 지혜는 미래의 횃불이다. 내가 먼저 시간을 내어 몇 권의 책을 소개하면 누구나 이를 참조하여 자유롭게 독서하면 된다. 내가 제시하는 책은 단지 가이드일 뿐, 각자가 알아서 결정하고 편하게 읽되, 토론의 장이 마련되면 좋을 것 같다. 오프라인도 좋고 온라인도 좋다. 의견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남의 다양한 주장과 배려를 배운다면 그것은 독서와 함께 훌륭한 덤이 될 것이다. 책 읽는 인생, 독서하는 국민은 미래도 희망적이다.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책벌레 2019.12.12 17: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독서를 취미라 말하기 부끄럽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왜? 독서는 취미라기보다는 마땅히 해야 할 의무나 도리에 가까웠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지하철 안에서 책이나 신문을 보는 이가 너무나 드물 정도입니다. 하나같이 스마트폰에 눈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런 세태에 경종을 울려주시기 바랍니다.

문재인 정부 ‘반환점’ 정치분야

 

김형오 “전쟁터로 변한 정치판, 통합의 리더십 필요”

 

문재인 대통령은 전반기 내내 야당과 불화했다. 문 대통령이 제안한 여야정 국정 상설협의체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5195당 신임 원내대표들과 만나 여야정 국정상설 협의체 구성을 제안해 동의를 받았다. 하지만 협의체는 지난해 11월 회의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문 대통령이 개헌 등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야당과 멀어졌고, 적폐청산 수사는 그 정당성과 별개로 대야 관계 악화를 불렀다. 패스트트랙은 불가피한 선택이었지만, 1야당인 자유한국당은 장외로 뛰쳐나갔다. 전문가들은 청와대가 국회를 협치의 대상으로 공들여 대하기보다 촛불 민심이 반영되지 않은 마지막 남은 적폐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지적한다.

 

협치에 관한 한 문 대통령은 야당 복이 없는 편이다. 협치 부재와 관련해 이준한 인천대 교수(정치외교학과)야당의 당대표 등 지도부가 의회정치를 이끌어본 경력이 적은 것,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 것에 원인이 있다문 대통령의 전반기 정치는 평화롭지도 생산적이지도 않았다. 야당 대 청와대의 대결만 극명한 시기였다고 평가했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김형오 전 국회의장

 

지난 2년 반 동안 진정한 의미의 정치는 없었다. 정치판을 전쟁처럼 죽고 살기로, 적군과 아군 간의 대결장으로 만들었다. 포용이나 화합, 대화는 사라지고 승리냐 항복이냐의 이분법적 행태가 지배했다. 역대 어느 때보다도 심한 국민 갈등과 국론 분열을 겪고 있다. 정치가 이를 부추겼다. 국민의 신뢰가 추락한 정치판을 복원하는 데 정치인의 자세 변화와 국민적 자각이 더 엄청나게 요구될 것이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문재인 정부에 가장 아쉬운 점은 책임감과 헌신성의 결여다. 외교 안보와 경제 문제가 아쉬움을 넘어 위험한 지경이다. 국정을 책임진 사람답지 않은 태도로 일관하는 데서 나라 장래에 두려움마저 느낀다. 더구나 이런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게 더 큰 문제다.

 

내각이나 청와대 인사를 보면 우리나라에 이렇게도 사람이 없나 하는 느낌을 준다. 일부를 제외하면 그 분야에 정통하거나 도덕적 권위가 있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러니 내각은 청와대 눈치나 보고, 청와대는 폐쇄적이고 경직적인 행태에서 못 벗어난다. 시대가 엄청난 속도로 변하는데 우리만 뒷걸음치는 듯하다.

 

앞으로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은 마음을 비워야 한다. 정치는 국회에, 행정은 내각에 맡겨야 한다. 그래야 정치가 회복되고 행정부가 돌아간다. 비판과 반대를 증오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대화를 기피하지 말라. 그때야 비로소 극심하게 갈라진 국론 분열상도 완화될 것이다. 대통령은 업무의 총괄감독관으로서 최종 책임을 진다는 자세를 지녀야 한다. 지금부터 대통령은 뜨는 해가 아니라 지는 해다.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무리하다가 역대 단임 대통령들이 모두 실패했다.

 

 

[2019-11-08 한겨레신문] 기사 ☞전문보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

“文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라’ 만들어…지향점 몰라 불안”

 

■ 김형오 전 국회의장

 

▲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개인 연구실에서 인터뷰를 마친 뒤  단풍이 든 가로수 길을 걸으며 가을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신창섭 기자

 

 

文, 진영의 시각으로 사태보니
집권 반환점 눈앞인데도
아직도 국정철학·방향 불분명

경제는 외환위기 이후 최악
안보, 6·25이후 가장 불안한데
국론분열은 정부수립후 가장 심각

제대로 땀흘린적 없는 86세대
경륜·지혜 부족한데 기득권세력화
시대고민 풀지못해 외면당해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오는 11월 9일 집권 반환점을 도는 문재인 정부를 평가하며 “미지수 정부”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경제는 외환위기(국제통화기금(IMF) 사태) 이후 가장 안 좋고, 외교·안보는 6·25전쟁 이후 가장 불안하며 국론 분열은 1948년 정부 수립 이후 가장 심각하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집권 기간 절반이 지났지만, 문재인 정부의 국정 철학이 무엇인지, 나라를 어디로 어떻게 이끌어갈지 지향점이 불분명하다”며 “그래서 국민은 불안하고, 자각 있는 사람들은 불편하다”고 말했다. 그는 “소득주도성장, 임금인상 정책으로 경제 체질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졌다”며 “기업을 도둑놈 취급하며 적대시하는 바람에 기업의 활력과 의욕이 다 사라졌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신설 법안 등 검찰개혁에 대해서는 “지난 2년 반 동안 ‘적폐청산’의 앞잡이로 삼다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가 터지자 검찰을 개혁하자고 나오는 의도가 순수하지 않다”며 “공수처는 옥상옥이자, 대통령 직할 부대가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전 의장은 “보수 정당이 대통합을 하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면서 “그러나 보수 대통합이 성공하려면 유권자의 강한 압력이 작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내년 총선 이슈는 누가 더 공정하고 정의롭고 공평하며 도덕적이냐는 싸움이 될 것”이라며 “이는 조 전 장관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라고 설명했다.

김 전 의장은 문재인 대통령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5년 단임제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권력을 국회와 당, 정부에 넘겨야 한다”며 “청와대가 강할수록 더 불행해진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지난 25일 김 전 의장의 마포 개인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11월 9일이면 문 대통령이 임기 반환점을 돕니다. 문 대통령의 지난 2년 반을 평가한다면.

“이 나라가 어떤 나라이고 이 나라를 맡아서 어떤 책무를 하고 가겠다든지, 맡은 동안 이 나라를 어떤 식으로 향상시키겠다든지, 이런 걸 찾아보기 힘든 정부입니다. 역대 어느 정부와 정말 다릅니다. 딱히 내세우는 것도 없고, ‘국민이 주인인 나라’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 결과는 정의’ 등 이런 레토릭(수사적) 차원의 얘기만 하고 있습니다. 정말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나라’ ‘미지수 정부’라는 생각이 듭니다.”

―경제를 비롯해 외교·안보, 사회, 정치 등 국정 전반에 걸쳐 총체적 위기가 확산하고 있다는 우려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외교·안보 분야는 6·25전쟁 이후 가장 심각한 상황이라고 봅니다. 경제도 외환위기 이후 가장 좋지 않습니다. 그럼 사회는 어떠냐. 4·19혁명이나 6·10항쟁 때처럼 국민적 분노와 불안, 불평이 들끓고 있습니다. 정치는 해방 이후 좌우가 극렬하게 대립했던 것처럼 국론 분열이 극에 달한 상황입니다. 현 정권은 적을 만들어 공격해 지지층을 결집하고, 적을 눌러 희열감을 느끼는 식의 정치를 해 왔습니다. 순간순간 단기전에는 성공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나라가 파편 조각처럼 부서지고 있습니다. 국민이 나라 걱정을 어느 때보다 많이 합니다.”

―공정 요구와 함께 사회 주류층을 형성한 ‘86세대’(80년대 학번, 60년대 출생)를 교체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거셉니다.

“86세대는 완전 기득권 세력이 됐습니다. 86세대가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 성공하면서 4·19세대나 6·3세대 등 다른 어떤 세대보다 투쟁에 비해 많은 수확을 얻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고민하고 고뇌하며, 연구하고 고통스러워한 기간이 짧다보니 시대 정신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했습니다. 경험, 경륜, 지혜가 부족하다 보니 시대의 고민과 문제를 풀어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권력핵심 86세대의 특징은 제대로 땀을 흘려본 적이 없다, 제대로 된 전문가가 없다, 확고한 국가관이 없다는 겁니다. 나라의 중심에 이런 사람들이 앉아 있으니 교체론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올 경제 성장률이 2%를 넘기 힘들다는 전망이 많을 정도로 경제 상황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문 대통령이 지난 22일 국회 시정 연설에서 ‘우리가 지금 제대로 대응하지 않으면 머지않은 미래에 더 큰 비용을 치르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맞는 말입니다. 지금 대비하지 않으면 엄청난 국가적 재난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재정 확대가 현금 살포식 정책과 근로시간 단축, 임금인상, 고용 경직성으로 흘러 근로의욕이 상실되고 국가 경쟁력은 떨어지며 결국 미래를 잃게 됩니다. 일자리가 창출되는 게 아니라, 양질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없어지게 되는 겁니다. 외환위기보다 더 큰,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경제 위기가 도래할 수 있습니다.”


文대통령, 공정 앞세워 대입제도 개편 요구
정시확대?… 백년대계 교육정책 호떡처럼 만들어
임기동안 뭔가 하려 하지 말고 전문가들에게 맡겨야

기업을 도둑놈 취급…기업활력·투자의욕 사라져
의장시절 3분마다 의사봉… 지금 국회, 너무 일 안해
보수 대통합? 유권자 압력 작용해야 가능

 

 

▲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지난 25일 서울 마포구 개인 연구실 창가에 서서 차를 마시며  “핵무기를 가진 북한에 더 이상 조롱을 당해선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신창섭 기자

 

 

―정부는 경제 위기를 정책 실패보다는 미·중 무역 분쟁 등 외부의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경제적 입장에서 보면 이 정부의 경제 정책은 ‘4무(無) 정책’입니다. 첫째, 모든 면에서 그렇지만 특히 중장기적인 방향이 없습니다. 4차 산업혁명, 인공지능(AI) 시대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경제가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이냐에 대한 중장기 경제 방향이 없습니다. 둘째는 기업의 활력이 없습니다. 셋째는 시장이 활성화할 수 있는 여건이 전혀 없습니다. 넷째는 노사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의지가 없습니다.”

―기업들이 국내를 버리고 해외 투자를 크게 늘리고 있습니다.

“경제 체질이 허약해질 대로 허약해졌습니다. 경기는 정부가 일으키는 게 아니라 기업이 일으켜야 합니다. 정부가 기업의 활력을 잃게 만들고 기업을 적대시했습니다. 한마디로 도둑놈 취급을 했다고 봅니다. 정부가 규제를 통해 기업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훼손하면서 기업 의욕이 떨어졌고, 관(官) 주도 경제가 강화됐습니다. 관 주도, 관치 경제도 경제 관료가 하는 게 아니라 청와대 오더로 하는 것 같습니다. 그럼, 청와대 경제사령탑들이 민간 경제를 이끌 만한 능력이나 경험, 경륜이 있느냐. 그것도 아니라고 봅니다. 그 사람들이 반(反)시장주의 성향을 띠는 것 같은 위기감을 느낍니다.”

―문 대통령이 시정연설에서 ‘공정’을 언급하며 대입 제도 개편을 주문했지만,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습니다.

“문 대통령이 교육전문가란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교육부 장관이 국회에서 ‘정시 확대는 답이 아니다’라고 말한 지 24시간도 안 돼 대통령이 정반대 주문을 하는 것은 교육부가 교육정책에서 ‘왕따’라는 얘기입니다. 교육은 백년대계입니다. 백년대계를 하루아침에 호떡 장수가 호떡 만들듯 이런 식으로 해선 안 됩니다. 교육 정책이야말로 정권에 관계없이 만들어야 합니다. 문 대통령은 남은 임기 2년 반 동안 무엇을 하려 하지 말고, 대통령 직속으로 교육위원회를 만들고 여야 정치권과 교수, 초·중등 교사, 전문가들을 모아 국가 교육 대계를 바로 세우는 논의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렇게 만든 교육 정책을 적어도 5년간 그대로 유지한 뒤 보완 작업을 하고 10년 단위로 큰 방향을 바꾸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정책의 일관성, 신뢰성, 공정성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조 전 장관 사태가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낳고 있습니다.

“조 전 장관 임명 전에 문 대통령에게 임명은 절대 안 된다는 간곡한 요청을 했습니다. 조 전 장관을 임명하면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에 들어간다고 했는데, 그걸 듣지 않았습니다. 문 대통령은 ‘합법적 불공정’을 없애도록 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조국 사태는 합법적 불공정 문제가 아니라 권력을 이용한 불법, 부정, 치부요 사취입니다. 공직자는 깨끗해야 한다, 공정해야 한다고 알고 있는 대한민국의 상식을 뒤집고 엄청난 실망을 안겨주었습니다. 실망을 넘어 절망을 준 거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문 대통령의 인식에 상당한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이 저런 분이었나 하는, 신뢰에 의문을 들게 하는 실언을 한 것입니다. 왜 그러냐 하면, 진영의 시각으로 사태나 사물을 보기 때문입니다. 나와 뜻이 다르면 가혹하고 엄정하게 대하고, 내 편이면 무조건 감싸는 것입니다.”

김 전 의장은 문 대통령이 갑작스럽게 대입제도 개편을 꺼낸 것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고 지적했다. 조 전 장관의 자녀들이 ‘부모 찬스’를 이용, 탄탄한 스펙을 쌓아 명문대에 입학한 것에 대한 젊은층의 분노가 폭발하자 조국 사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입 ‘정시확대=공정’이란 카드를 밀어붙이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교육을 백년대계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했으면 이런 졸속, 아니 졸속이라는 표현조차 어울리지 않는 정책을 내놓을 수 없다”며 “교육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면 어떻게 하느냐”고 질타했다.

―그럼, 문 대통령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측근들은 5년 단임제 정권임을 빨리 인정해야 합니다. 1987년 단임제 개헌 이후 웃으며 청와대를 나온 대통령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문 대통령도 자신 임기는 이제부터 지는 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역대 대통령들이 왜 실패했느냐 하면 자기 임기가 5년 단임제임을 잊고, 마지막까지 권력을 놓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에서 20년 정권론, 100년 집권론 이런 얘기가 나오는데 나라와 대통령을 망치는 허황된 얘기입니다. 간신배들이나 하는 망상에 불과합니다. 내년 4월 총선이 끝나면 당이 대통령 말을 안 듣기 시작할 겁니다. 그 전에 대통령이 서운하다 생각하지 말고 당과 정부, 국회에 권한을 넘겨야 합니다. 청와대 힘이 세질수록 더 불행해집니다.”

―국회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그런 국회에 권한을 넘겨도 될까요.

“국회에서 왜 제대로 일을 하지 않느냐 하면, 일을 안 해도 공천이 보장되기 때문입니다. 여당 의원은 일로 평가받지 않고 청와대에 얼마나 잘 보이느냐로 평가받습니다. 야당은 당 대표 등 실세와 연결된 동아줄을 잡고 있느냐, 없느냐로 공천이 좌지우지되는 것이 현실입니다. 국회에서 일 잘하는 것과 공천하곤 상관없으니까, 일을 안 하는 겁니다. 여야 간 대화가 사라지고 협상 정치가 실종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일하는 국회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법률안 통과 건수로 따지면 우리 국회가 선진국 국회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국회의장 때 100개가 넘는 법안을 3분마다 하나씩 처리하느라 의사봉을 쉴 새 없이 두드려 팔이 아픈 적도 있었습니다. 법안 처리 건수가 아니라 법안을 처리하는 과정인 심의와 토론, 토의 등 이런 과정이 생략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런 과정과 절차가 철저하게 진행돼야 일하는 국회가 됩니다. 제헌의회에선 법률안을 놓고 읽으면서 토론과 심의를 하는 ‘독해(讀解)’ 절차가 1독해, 2독해, 3독해, 4독해까지 할 정도로 철저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독해 절차가 없어진 것 같습니다. 법률안을 소위원회에서 적당히 합의한 뒤 전체 회의에 올려 통과시키고 있으니 법률안 처리 이후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 대통합이 가능할 것으로 보십니까.

“유권자인 국민이 원하고, 국민적 압박이 있어야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만약 보수 대통합이 된다면 내년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 장애물을 넘어야 합니다. 보수 대통합이 이뤄지면 총선에서 질 것으로 생각하는 여당에서 가만있지 않을 겁니다. 온갖 방해 책동을 할 겁니다. 둘째는 보수 정당 간 주도권 싸움입니다.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어 합의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라를 살리겠다는 대의명분에 입각하면 보수 대통합이 될 것이고, 소리(小利)에 따르면 통합은 물 건너갈 것입니다. 늦어도 내년 1월 중 대통합 원칙에 합의해야 합니다. 대통합이 안 되면 보수 정당에선 선거 연대론이나 연합론이 차선책으로 나오겠지요.”

―내년 총선 이슈는 무엇이 될 것이라고 예상하십니까.

“저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누가 더 공정하고 정의로우며, 공평하고 도덕적이냐는 싸움이 될 것입니다. 조국 사태가 우리 사회에 던진 화두이기도 합니다. 가식과 진실의 대결이 되어야 합니다. 둘째는 안보가 될 것으로 봅니다. 대통령의 첫 번째 임무이자 마지막 임무는 국민의 생명과 재산, 국토를 보전하는 것입니다. 북한이 미사일을 쏘아대며 대통령을 조롱해도 말 한마디 못하고 있습니다. 국민 자존심이 엄청 상해 있습니다. 우리땅인 서해의 함박도에 북한이 레이더를 설치하는데 왜 가만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치 땅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습니까. 안보가 무너지면 끝장나는 겁니다. 하지만 그런 심각성을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김 전 의장은 “지역구 활동만 열심히 하는 의원은 내년 총선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장담했다. 그는 “지역구 활동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의 시민의식이 성숙해서 지역을 대표해 중앙 정치에서 제대로 역할을 하는 자기들 대표를 뽑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총선을 앞두고 기승을 부리는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고 신신당부했다.

―공수처법 등 검찰개혁 법안을 놓고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이 격돌하고 있습니다.

“검찰 개혁은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내건 공약 사항입니다. 지난 2년 반 동안 왜 안 했느냐 하면 검찰이 권력의 충견 역할을 해왔기 때문입니다. 조국 사태가 터지고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려니까, 검찰 개혁을 들고나온 것 자체가 불순한 정치적 의도가 있다는 방증입니다. 공수처는 옥상옥 기관이고, 대통령 직할 부대가 될 것이라는 우려가 많습니다. 대통령 측근 및 친·인척 비리를 조사하는 특별감찰관을 2년 반 동안 임명하지 않으면서 공수처 신설을 주장하는 것은 말 안 듣는 판·검사와 국회의원을 손아귀에 넣겠다는 것과 같습니다.”

―현 정부 들어 한·미 동맹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졌습니다.

“미국을 제외하고 세계에서 자주국방을 하는 나라가 있나요. 우리보다 국방력과 경제력이 훨씬 높은 독일, 영국도 전부 동맹을 맺고 있습니다. 선진국이라 해도 미국의 군사력에 의존하지 않는 나라는 없습니다. 한·미 동맹 강화는 민족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존하는 길입니다. 국방비를 지금보다 두세 배 올리고 10년간 투자를 해도 자주국방은 힘듭니다. 강한 한·미 동맹이 있기에 북한이 함부로 못 하는 것입니다. 한·미 동맹을 자랑스레 생각해야 할 뿐만 아니라, 이것이 한국을 지키는 가장 중요한 기본 축이라고 생각합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기술적인 문제라고 봅니다. 그런 지엽적인 문제로 한·미 동맹이 흔들려선 안 됩니다.”

―한·일 관계는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최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일본에 ‘배상을 받지 않겠다’ ‘우리 정부 돈으로 다 배상해 주겠다’고 하면서 ‘지난 과거 행동을 우리는 잊지 않는다’고 했으면 합니다. 당당하게 나가야 합니다. 우리가 침략을 당해서 피해를 봤다는 얘기만 하는데, 그게 100년 됐습니다. 다시는 외세에 침략당하지 않겠다는 결기를 다져야 합니다. ‘계속 나쁜 놈이다’, 이 말만 하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현 정부가 이런 걸 못해서 답답합니다.”

―북한을 대하는 자세가 답답하다는 지적이 많이 나옵니다.

“북한에 대해서도 당당해야 합니다. 세계에서 가장 가난하고 독재적인 국가인 북한이 핵무기를 만들고 나니, 하루아침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정도로 대우가 달라졌습니다. 그런 북한이 핵무기를 포기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계속 저자세를 취할 경우, 북한은 갈수록 우리를 우습게 볼 것입니다. 문 대통령은 ‘그럼 전쟁을 하자는 거냐’며 ‘평화냐 전쟁이냐’ 택일하라고 합니다. 이런 억지가 어디 있습니까. 굴종은 평화가 아닙니다. 평화를 지켜낼 힘과 각오가 평화를 지킵니다. 우리가 가진 많은 장점도 활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 유병권 정치부장 ybk@munhwa.com

 

 

 

“백범의 정치이념은 자유… 옳고 그름만 따졌던 이상주의자”

 

 

■ 백범 김구와 김형오

 

‘백범의 정치 이념은 자유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지난 2015년부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백범(白凡) 김구 선생은 김 전 의장에게 어떤 사람일까. 김 전 의장은 지난해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는 “백범 선생은 ‘옳은 것이냐 옳지 않은 것이냐’부터 생각했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를 생각하지 않은 이상주의자”라고 평했다. 그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평생 일관된 삶을 살아온 김구 선생의 삶을 통해, 젊은이들에게 이 나라가 어떻게 해서 탄생한 나라인지를 보여주고 싶었다”고 덧붙였다.


―백범 사상의 정수는 무엇입니까.

“희생, 헌신, 책임입니다. 백범은 살기 위해 산 것이 아닙니다. 그의 곁에는 항상 죽음이 있었어요. 백범이 1945년 귀국한 뒤 기독교 잡지 ‘활천(活泉)’이란 데에 글을 썼는데, ‘내가 만일 어떤 자의 총에 맞아 죽는다면 그것은 밀 한 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 것 같이 내가 죽은 후 나 이상의 애국자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위대한 애국자와 정치가 중에서 생각과 말, 행동이 일치된 삶을 살았던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분이 백범입니다.”


―우남(雩南) 이승만 전 대통령과의 관계는 어땠나요.

“이승만 박사와 개인적 관계는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형, 아우 하는 사이로, 1살 차인데 항상 백범이 우남을 형으로 대했어요. 두 사람은 같은 황해도 출신으로, 사이가 안 좋은 건 딱 1년간이었습니다. 백범은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했고, 우남은 굉장히 현실주의자이고 현실정치나 국제정치에 밝았습니다. 공산주의는 안 된다는 생각으로 남북 분단이 오래갈 것으로 읽었습니다. 반면 백범은 이상주의자로, 온몸 던져 독립된 조국인 대한민국만 생각한 사람입니다. 백범은 남과 북의 단독정부를 모두 반대했습니다. 백범을 자기 편의대로 이해하는 사람은 이승만 단독정부만 반대했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에요.”

 

―백범은 어떤 사람인가요.

“백범은 옳은 것이냐 옳지 않은 것이냐를 생각했지, 현실적이냐 비현실적이냐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이게 백범이에요. 백범은 ‘나의 소원’에서 자신의 정치 이념은 한마디로 자유라고 선언했습니다. 백범은 17살에 동학에 가담했는데, 그는 상민 출신이었습니다. 양반 귀족과 토호들의 멸시를 많이 봐 와서 백범의 의식 속에는 평등 의식이 깔려 있었어요. 다른 말로 하면 계급주의에 반대한 것이죠. 양반·귀족 계급, 나중에 프롤레타리아 계급도 반대했어요. 백범은 공산주의자가 될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손고운 기자 songon11@munhwa.com

 

 

 

‘술탄과 황제’ 쓰려 정계은퇴… 이젠 베스트셀러 작가

 

 

 

김형오 前 국회의장은

18대 국회 전반기를 이끈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청와대, 총리실, 국회를 모두 경험한 보수 정치권의 대표적 원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한나라당 대표이던 시절 사무총장을 지냈지만, 이명박 정권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지낼 정도로 계파색이 옅고 중립적인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아왔다. 국회의장직을 지내고, 현역 정치를 마감할 때 나이가 정치인으로 한창 일할 때인 63세였다. 당 대표 출마와 국회의원 총선거 출마 얘기가 나왔지만, 선을 딱 긋고 국회를 떠날 정도로 강단이 있는 정치인이다.

국회의장을 지낸 뒤 김 전 의장은 작가로 나섰다. 오스만 제국과 동로마 간 역사적인 전쟁인 ‘콘스탄티노플 함락’ 사건을 다룬 ‘술탄과 황제’란 책 저술에 매진했다. 김 전 의장은 “2009년 1월 의장직 수행 과정에서 터키의 한 박물관을 방문하게 됐는데, 그곳에서 배를 끌고 산으로 올라간 사나이 ‘술탄’의 얘기를 듣고 전율을 느꼈다”며 “국회의원 선거에 한 번 더 출마하는 것보다 책을 쓰는 것이 더 의미 있고 보람된 일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터키를 수차례 방문하고 장기간 체류하며 현장을 방문했고, 100여 권의 관련 저서를 탐독하며 책을 집필했다. 2012년 처음 출간된 그의 책은 초판 38쇄, 개정판 9쇄를 찍을 만큼 사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김 전 의장은 국회의장직을 수행하면서 여러 나라의 지도자로부터 받았던 178점의 선물 일체를 지난 9월 국회에 기증했다. 소장해온 2000여 권의 책과 5000여 점의 기록물도 국회도서관에 맡겼다. 김 전 의장은 “이번 기부를 계기로 우리나라에도 국회의장이 관련 기록물을 남기는 관행이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부산에서 5선을 기록했다. 지역보다 국가 전체의 이익을 우선하는 큰 정치인으로서 의정 활동을 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경남고,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동아일보 기자 △14∼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원내대표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부산대 석좌교수

손고운 기자 songon11@munhwa.com

 

 

[2019-10-30 문화일보] 인터넷판 기사가 세 개로 나뉘어져 있어 URL 대신 문화일보 지면 원본을 그대로 실었습니다.

 

 

Posted by 김형오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