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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7 조선일보] "不和하면 망한다, 백범 선생 말씀 되새길 때"

 

김구 선생 70주기 추모식
김형오 前 의장 등 400명 참석

"불화(不和)하면 망한다는 말씀, 죽비처럼 어깨 내리칩니다."

백범 김구(1876~1949) 선생 서거 70주기인 26일 서울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주최로 7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추모사에서 백범의 저서 '나의 소원' 중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는 구절을 언급했다.

 

26일 오전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백범 선생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 김지호 기자


김 전 의장은 "떠나신 지 70년을 맞는 오늘 이 시점에도 우리 내부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며 "세계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원망과 회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화합과 협력은커녕 서로 갈려서 싸운다면 김구 선생을 비롯한 선열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느냐"고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추모사에서 "백범 선생께서는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통해 소망하는 나라는 군사 대국도 경제 대국도 아닌 문화 대국이라고 하셨다"며 "지금 대한민국은 군사 강국은 물론이며 영화와 대중음악 등 한류 문화가 전 세계를 휩쓰는 문화 대국이 되었다"고 했다. 문 의장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국민 통합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민족 단결을 통한 조국의 통일이라는 과제가 남아있다"며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 민족이 하나가 되는 그날을 앞당겨야 하겠다"고 했다.

이날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는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출간한 책 '백범의 길, 임시정부 중국 노정을 밟다'를 김구 선생 영전에 헌정했다. 김 전 의장과 책의 필자인 심지연·김주용·이신철·은정태 교수가 직접 책을 영전에 올렸다. '백범의 길'은 한·중 역사학자와 전문가 11명이 임정의 항일 이동 경로를 답사하며 집필한 책이다.

추모식에선 인공지능을 이용해 '나의 소원'의 한 부분을 생전 김구 선생의 목소리로 재현한 메시지가 약 1분 동안 낭독됐다. 추모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이병구 국가보훈처 차장, 김원웅 광복회장, 민갑룡 경찰청장,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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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7 문화일보] "불화하면 망한다는 白凡 말씀, 죽비처럼 어깨 내려쳐"

 


김구선생 70주기… 김형오 백범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내부갈등·대립 여전히 안끝나 
김원봉은 임시정부 해체 한몫 
6·25전쟁에 책임 있는 인물” 

정치권 인사 등 참여 추모식

“백범 선생님이 떠나신 지 70년을 맞는 오늘에도 우리 내부의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애국·애족·애민의 투철한 자세를 놓지 않고 갈등을 통합과 화합으로 치유하고 극복하려고 애쓴 백범 선생님의 큰 뜻을 기리고 이어나가야 합니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72·사진) 전 국회의장은 김구 선생 70주기인 26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선생은 36년 넘는 일제 치하에서도 오직 독립 하나만 바라보면서 한 길만 걸었던 분”이라며 “임시정부 해체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도 반대 측과 통합·화합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협회는 이날 오전 유족과 협회 관계자들, 문희상 국회의장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를 포함한 정치권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김 전 의장은 “애국·애족의 길만 걸어온 김구 선생의 정신을 오늘날 여야 정치권이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백범일지 ‘나의 소원’에 나오는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라는 어록을 인용하면서 “후손들에게 특별히 당부한 말씀이 죽비처럼 어깨를 내려친다. 선생이 떠난 지 70년을 맞은 오늘 시점에도 우리 내부의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고 현 세태를 개탄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계기로 불거진 ‘약산 김원봉 서훈 논란’에 대해 김 전 의장은 “김원봉이 독립운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광복군을 창설하진 않았다”며 “대한민국을 사랑했던 인물로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원봉은 사실상 임시정부 해체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6·25전쟁이 발발한 것에 책임이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협회는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를 맞아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날 발간한 책 ‘백범의 길-중국 대륙을 걷다’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충칭(重慶), 시안(西安)까지 선생이 27년 동안 머무른 곳을 한·중 전문가와 학자 11명이 함께 현장 답사한 결과물이다. 김 전 의장은 “상하이에서 충칭으로 탈출한 구간 등 이전에 밝혀진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도 다수 포함됐다”며 “서거 70주기인 만큼 특별히 인공지능을 이용해 약 1분 동안 ‘나의 소원’의 한 부분을 실제 생전 김구 선생의 목소리로 재현하는 작업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김 전 의장은 지난 2015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김 전 의장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김구 선생에게 관심을 갖고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석했다”며 “이런 인연이 이어져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신 장군(전 공군참모총장)이 돌아가시기 전 내게 협회 사업을 맡아달라고 부탁해 지금까지 협회를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주예 기자 ju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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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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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 : 연합뉴스(2019-06-26)


“내 양심은 내 죽음을 초월하고 나라를 사랑했습니다.
내가 만일 어떤 자의 총에 맞아 죽는다면
그것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많은 열매를 맺듯
이 나라에 많은 애국자를 일으킬 것입니다.”

백범 김구 선생께서 돌아가시기 3년 전인 1946년 7월
기독교 잡지 「활천(活泉)」에 유언처럼 남기신 글입니다.
자신의 최후를 예견이라도 한 걸까요?
백범이 한 알의 밀알로 땅에 떨어진 지
어느덧 70 성상(星霜)을 헤아립니다.
그사이 강산이 일곱 번 바뀌었습니다.

1949년 7월 5일 영결식 때 백범과 평생 한길을 걸었던
엄항섭 선생이 바친 추도사는 지금도 심금을 울립니다.
“몸은 무상해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하늘의 낙원에 가셨을 것이로되
그 뜻과 정신은 이 민족과 역사 위에 길이길이 계실 것입니다.”

당신께선 독립선언서 공약 3장에 담긴 표현처럼
“최후의 일인까지, 최후의 일각까지”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마지막 사람이었습니다.
해방 후에는 민족의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막기 위해
그토록 노심초사하고 분투하셨습니다.

올해 우리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리고 백범 선생님 서거 70주기를 맞은 오늘
특별히 뜻과 정성을 모아 두 권의 책을 영전에 바칩니다.
한국과 중국 열한 명의 학자·전문가가 함께 이뤄낸
중국 대륙 답사기입니다.
선생과 임시정부 애국지사들이 걸어간
그 멀고 험난한 노정을 되밟으며
독립을 위한 처절한 투쟁의 흔적과 발길을 복원한 책입니다.
그러나 27년에 걸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기나긴 역정과
백범을 비롯한 수많은 의사 열사 지사들의 피땀 어린 족적을
이 두 권의 책에 어찌 다 담을 수 있겠습니까.
부족한 점도 많고 사실 확인이 어려운 부분도 많아
혹시나 백범 선생께 누를 끼치지는 않을까 두려운 마음입니다.
그래도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이만한 저작,
이만한 성과도 드물지 않을까 외람되이 자부해 봅니다.

오늘 우리는 이 뜻깊은 날에
광활한 중국 대륙에서 오로지 조국 광복과 독립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신 분들을 생각하며 옷깃을 여밉니다.
임시정부 27년은 백범의 표현대로
‘죽자꾸나’ 시대와 ‘죽어가는’ 시대였습니다.
피 끓는 청년 동지들이 죽기 위해 선생을 찾아와
기꺼이, 또한 장렬히 목숨을 초개같이 던졌습니다.
그런 분들을 선생께선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는 존재라고
우러러보며 눈물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일본군의 공습과 폭격으로 천신만고의 피란길을 헤쳐 간
임시정부 대가족들의 눈물겨운 사연도
1만 리 여정만큼이나 기다랗게 새겨져 있습니다.

그러나 광복된 조국은 선생의 염원과는 정반대로
남북으로 나눠지고 이념으로 대립하였습니다.
선생께선 그 대결의 희생이 되셨고,
그로부터 꼭 1년 후 선생께서 그렇게나 염려하셨던
동족상잔의 대참사 6·25 전쟁이 일어납니다.

떠나신 지 70년을 맞는 오늘 이 시점에도
우리 내부의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세계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 나가며
인류 문명의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원망과 회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선생께선 오늘 우리의 이런 못난 모습을 알고 계셨을까요.
후손들에게 특별히 당부하신 말씀이
죽비처럼 어깨를 내리칩니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나의 소원」 중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우리가 화합과 협력은커녕 서로 갈려서 싸운다면
김구 선생을 비롯한 선열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습니까.
남남갈등은 이대로 둔 채 어찌 남북 평화통일을 이룬다 하겠습니까.

그토록 숱한 피와 땀과 눈물로 되찾고 지켜낸 이 나라입니다.
조국 대한민국을 위하여
새로운 땀과 눈물을 흘려야 할 때가 아닌가요.
이 가열한 세계 경쟁과 한반도를 둘러싼 격랑의 파도를
헤쳐 나가기 위해선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며,
격려하고 협력해도 모자랄 지경이 아닌가요.

선생께서 간절히 바라고 구하셨던 나라는
‘높은 문화의 힘’을 발휘하는 문화국가입니다.
BTS와 같은 한류문화가 세계인의 큰 사랑을 받는 모습을
김구 선생께서 보신다면 얼마나 흐뭇해하실까요.
우리 기성세대들은 세계로 나아가려는 한류세대들의
본보기 역할을 하고 있는가요.
‘높은 문화의 힘’은 기성적 고정관념이나
경직된 사고에서는 결코 나올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끼리 싸우고 분열하고 서로 미워하라고
선열들이 고귀한 헌신과 희생을 하신 것은 아닐 것입니다.

“윤 동지, 훗날 지하에서 만납시다!”
거사 당일 윤봉길 의사를 사지(死地)로 보내며
당신께서 목이 메어 하신 말씀이 우리 가슴을 적십니다.
그 마지막 작별 인사처럼 선생과 동지들은
효창원 지하에서 다시 만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는 죽어서도 죽지 않은 당신을
여기 이 지상에서 이처럼 새롭게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애국 애족 애민의 투철한 자세를 놓지 않으셨던
백범 선생님의 큰 뜻을 면면히 기리고 이어나가겠습니다.

100주년, 그리고 70주년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
우리는 그 새로운 시작의 출발선에 섰습니다.

백범이시여, 영원히 꺼지지 않는 겨레의 혼불이시여!
언제까지나 빛나고 타오르며
조국의 앞길과 앞날을 환히 비추고 밝히소서.
과거로, 뒤로 가는 나라가 아니라
앞으로, 미래로 나아가는 대한민국이 되게 하소서.
당신께서 그토록 염원하셨던 완전한 독립,
통일 대한민국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고 헌신하는
용기와 지혜를 저희들에게 주소서. 

- 2019년 6월 26일,
사단법인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김형오 삼가 올립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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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랑했던 사람 아니야"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사진〉 전 국회의장은 20일 "김원봉은 애국자가 아니다"라며 "대한민국을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로 촉발된 김원봉에 대한 독립 유공자 서훈 움직임을 비판한 것이다.

 

김 전 의장은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6월 26일) 기념 강연에서 "요즘 김원봉이 갑자기 뜨는데, 세 가지에 대해 (OX로) 질문을 드리겠다"며 "독립 운동가로서 김원봉은 광복군을 창설했다, 김원봉에겐 김구 선생(60만원)보다 많은 100만원짜리 수배 현상금이 걸렸다, 김원봉은 애국자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다. 김 전 의장은 "김원봉은 애국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했던 사람인가' 묻는다면 예스라고 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일제가 김원봉에게 김구 선생보다 높은 현상금을 걸었다는 얘기가 도는데 도대체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사업회에서 사료를 전부 뒤져봤으나 근거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김원봉이 독립운동을 한 것은 맞지만 광복군을 창설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에 나온 김구 선생과 김원봉의 대화도 소개했다. 김원봉이 "제가 통일운동에 참가하는 주요 목적은 중국인들에게 공산당이라는 혐의를 벗고자 함입니다"라고 하자 김구 선생은 "나는 그런 목적이 다른 통일운동에는 참가하지 않겠소"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에서 김구 선생과 김원봉의 대화는 이렇게 딱 한 차례뿐이고, 김원봉이라는 이름은 딱 네 차례 언급된다"며 "김구 선생이 김원봉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했다.

 

김 전 의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낭만적으로 역사에 접근하고 역사를 편의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며 "학문적이고 책임 있는 입장에서 역사를 본다면 임정해체에 앞장섰고, 더구나 6.25전쟁 일으킨 데 큰 책임있는 사람을 애국자로 받들수 없는것"이라고 했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는 오는 26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백범 서거 70주년 추모식을 연다.

 

 

조선일보 이슬비 기자

 

 

[2019-06-21 조선일보] 기사원문 ☞ 바로가기 ☜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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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의 저서 『탈대일본주의』(중앙북스) 한국어판 출판기념회가 12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진 한미협회장,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 [김상선 기자]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의 저서 『탈대일본주의(脫大日本主義)』의 한국어판 출간(중앙북스)을 기념하는 행사가 12일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렸다. 2015년 서대문형무소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으로 유명한 하토야마 전 총리는 2차 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이 계속해서 군사력을 확장하는 등 대일본주의를 지향해 온 데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저서에 담았다. 또 일본이 주변국과 협력하는 탈대일본주의를 통해 미들파워 국가로 자립해야 한다는 제언을 포함시켰다. 책은 2년 전 일본에서 먼저 출간됐다.

『탈대일본주의』 한국어판 출판회
홍석현 회장 “지역통합 구상 지지”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날 인사말에서 “이 책을 저술한 계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이후 그 전에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걷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일본은 (주변국과) 대화와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에 존엄성 있는 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중·일이 한층 더 신뢰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일본은 과거 저지른 과오를 끝까지 사죄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기념 행사를 주관한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은 “이번 출간이 한·일 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미래 지향적 관계 설립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출간사에서 “하토야마 전 총리는 끊임없이 세계의 역사를 호흡하면서 선구적 통찰력을 펼치는 보기 드문 정치인”이라며 “우애의 정신을 바탕으로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이 지역통합을 통해 다국간 안전보장의 틀을 만들자는 그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기념 행사엔 김형오 전 국회의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성환 전 외교장관, 최상용 전 주일대사, 정병국·노웅래·김병욱·지상욱 의원, 박진 한미협회장,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장제국 동서대 총장,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중앙일보 2019-06-13]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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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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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 선생도 "물가폭등에 초과지출" 걱정…임정 마지막 예산서
연합뉴스 | 2019-05-25 


1944년 세입 98%는 中 지원금·세출 72%는 군비…의원은 무급 명예직

(세종=연합뉴스) 김경윤 기자 =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여느 정부와 다를 바 없이 재정을 챙기며 꼼꼼한 세입세출 예산서를 남긴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세출은 광복을 위해 대부분 군비에 집중됐지만, 임시정부 수립을 기리는 임헌기념일 비용이나 의회 예비비도 세세하게 책정됐다.

 

활짝 웃는 백범
(광주=연합뉴스) 박철홍 기자 = 광복 70주년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광주 동구 학2동 백화마을 내에 자리잡은 광주백범기념관이 9월 개관을 앞두고 모습을 드러냈다. 사진은 기념관 입구에 전시된 백범 김구 선생의 모습. 2015.8.14 pch80@yna.co.kr

 

25일 국회예산정책처 예산춘추에 실린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의 예산'에 따르면 1944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세입세출 총액은 5천332만2천620 위안이었다.


충칭에 안착하기 전까지 긴 피란길에 올라야 했던 6년 전(57만8천868 위안)보다 92배 늘어난 액수다. 하지만 당시 전쟁 탓에 물가가 뛰었던 것을 고려하면 여력이 늘어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백범 김구 선생도 전년도 예산설명서에 "물가폭등으로 인한 막대한 초과지출이 예상된다"고 언급했다.

1944년 임시정부의 세입 중 대부분은 중국 정부가 지원한 '특종수입'으로, 총세입의 98.3%(5천240만 위안)를 차지했다.

세출의 72.0%(3천839만 위안)는 군비였다. 오늘날 국회에 해당하는 임시의정원에는 63만8천900위안이 배정됐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기념사진
(서울=연합뉴스) 국립광주박물관이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년을 맞아 오는 28일부터 12월 15일까지 선보이는 기념전시 '대한민국 100년, 역사를 바꾼 10장면'에 전시되는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기념사진. 2019.2.27 [국립광주박물관 제공] photo@yna.co.kr

 

임시의정원 지출 가운데 3분의 1은 회의 진행비에 해당하는 의회비(22만7천500위안)였고 의원 거마비(21.3%), 예비비(17.0%), 비서국비(11.7%), 신수금(10.5%) 등으로 구성됐다.

또 임시정부 수립을 기리는 임헌기념일 기념비로 소액이지만 1천 위안을 책정한 것이 눈에 띈다.

당시 임시의정원은 의장 1명과 부의장 1명, 의원 55명, 비서국 직원 6명으로 구성됐다.

의원은 명예직이라 급여를 별도로 받지 않고 매달 200위안의 거마비만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장은 급여로 월 1천 위안, 부의장은 800 위안, 비서장과 비서, 경위는 각각 750 위안, 650 위안, 550 위안을 받았다.

당시 회계연도가 9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라는 점을 고려하면 임시정부의 1944년 예산서는 광복 이전 임시정부의 마지막 예산서다.

권순영 예정처 정책총괄담당관은 보고서에서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임시의정원과 임시정부가 오늘날과 같은 예·결산 체계와 기록을 남겼다"며 "각목체계와 산출내역 설명, 예비비 제도를 갖췄고 예산안 심의·확정·추인 체계도 지금과 똑같았다"고 설명했다.

 

 

heev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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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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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서울대 동창회보에 실린 칼럼을 올립니다.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100주년을 즈음하여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 정리해 본 내용입니다. 동창회보라 따로 URL은 없습니다. 아래 원고 전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죽어야 산다

 

 

김 형 오 전 국회의장

 

 

벼랑에선 손을 놓아라

스무 살 청년 김구는 국모(명성황후)가 무참히 살해당한 데 대한 울분으로 한 일본인을 처단한다. 이른바 치하포 국모보수(報讎)’ 사건이다. 그는 맨몸이었으나 상대는 칼을 품었고 안내인도 있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한 것은 벼랑에 떨어져서는 나뭇가지 붙잡는 게 대수가 아니다, 그 잡은 가지마저 놓아버려야 진정 장부이다라는, 스승이 가르쳐 준 경구였다. (得樹攀枝無奇 懸崖撒⼿丈夫兒 ; 득수반지무족기 현애살수장부아)

김구는 백성 된 도리를 다하고 죽는 길을 택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제국주의의 침략 만행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면 죽음인들 마다하겠는가.

우리 애국자들은 그랬다. 백범일지와 이를 풀어쓰기한 졸저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에는 죽음으로 향하는 애국자들의 면면을 소개하고 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방향과 갈피를 잡지 못할수록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하려 한 그분들 생각이 자꾸 난다.

 

애국자는 이렇게 죽는다

이 에미는 현세에서 너를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일본에 항소 따위 하지 말고,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어라.” 안중근 의사에게 수의(壽衣)를 지어 함께 보낸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다. 자식에게 죽어라고 말하는 그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쓰리고 통분이 가득했을까.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는 이렇게 자식을 길렀고 애국자는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제 나이 이제 서른한 살,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 한들 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 생활에 견준다면 무슨 낙이 더 있겠습니까. 이제는 독립 사업에 몸을 바쳐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해 이곳 상하이(上海)에 왔습니다.” 이봉창 의사는 김구가 미처 생각도 못했던 일본 천왕 살해 계획을 말하고 직접 폭탄을 던진다. 그리고 영원한 쾌락의 길로 나간다.

그 몇 달 후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윤봉길 의사는 김구를 찾아온다. 그리고 김구 선생 앞에 자식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긴다. “너희도 만약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조선을 위한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25세에 삶을 마감하면서 강보에 싸인두 아들(네 살,두 살)에게도 죽을 길을 가라 한 아버지다. 이런 위인들을 회상하며 졸저를 쓸 때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이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죽으려 했나? 도대체 나라가 무엇인데 독립을 쟁취하려 목숨을 걸어야만 했나? 어느덧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이 요란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가슴 속은 여전히 휑하다. 지금의 이 나라가 선열들이 목숨을 던지며 찾고자 했던 과연 그 나라인가?

이 나라를 위해, 아니 제대로 된 나라를 위해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권력의 눈치를 보고 떼법과 조직 논리에 매몰되어 부정에 눈 감고 불의를 정의라고 우기지는 않는가? 통일이라는 명분만 내세우며 압제와 가난,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북녘 동포들은 계속 외면해도 되는 건가? 선열들이 독립을 외치며 갈구했던 자유와 민주, 평화와 평등이 가득한 나라인가 아닌가?

그 시대 그들의 뇌리 한가운데 박힌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김구의 표현을 빌리면 죽자꾸나 시대죽어가는 시대”, 오직 두 시대의 삶만이 전부였다. 죽음이란 자기희생이다. “내가 죽어 네가 산다면이름 없이 값없이 죽음으로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조국과 동포에 대한 무한 사랑과 신뢰가 깊었기에 죽음 건너편의 밝은 세상을 향했던 것이다.

 

정의로 포장된 증오와 분열의 정치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비록 반쪽이지만 어엿한 나라도 있고 당당한 국민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지도자들이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힌 살벌 투쟁에 다름 아니다. 스스로가 독립투사라도 된 듯 착각하고, 상대는 제거돼야 할 일제 주구세력인 양 대한다. 자기희생은 어디로 가고 남의 희생과 복종만 강요한다. 애국·정의·평화가 거짓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 엄혹했던 시절에도 우리 국회의 전신인 임시의정원에서는 불꽃 튀는 논쟁을 했고, 임시정부는 정파를 초월해 구성·운영되었다. 해방된 조국의 제헌국회는 1년 중 320일 의사당의 불을 밝혔다. 휴일도 반납했다. 지방 출신들은 여관방에 묵으며 집단 출퇴근하면서 대의민주주의를 굳건히 키워나갔다. 요즘 국회와 정치는 어떤가. 제 나라 제 국민에 대해 의견이 다르고 원칙이 갈린다 하여 적대적으로 몰거나 제거 대상으로 삼는 태도는 참으로 불량하고 위험스럽다. 국민에게 사랑 대신 증오를, 포용 대신 분열을 획책하며 권력 장악과 유지에 골몰한다. 리더십은 실종되고 갈등은 증폭한다.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부들도 갈릴 대로 갈리고 자기주장만 내세운다. 권력자에서부터 노동 계급까지 모두가 약자이거나 약자 편에서 싸운다는 사람들뿐이다. 막강 권력에 부()까지 장악한 자들이 시대의 양심인 양, 정의의 수호자인 척 뻔뻔하게 설치면서 명예와 신뢰가 추락하는 줄도 모른다. 진정한 약자들은 계속 이용만 당하니 더 움츠러들고 더 약해질 뿐이다. 안팎 숯검정들이 흠집 있는 사람을 찾으러 설쳐대니 인심은 말라가고 세상은 무기력에 빠져든다. 백범과 선열들이 꿈꾸던 문화가 강한 나라가 되려면 (문화)시민의식부터 먼저 갖추어야 한다. 갈가리 찢긴 민심, 극도의 이기주의와 실종된 공동체 의식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 아니 나라는 그럴 때 무너졌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전 재산을 헌납하고, 온몸을 불사르며 처절한 삶을 살았던 독립투사 순국선열에 대해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럽다. 그분들이 하늘에서 오늘의 위정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네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그렇다, 남부터 죽이려 들지 말고 나부터 먼저 죽자. 권력과 돈과 명예, 이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죽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 해도 그분들의 반의 반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 그래야만 이 나라 이 공동체가 (겨우) 다시 살아날 것이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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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쯤 <술탄과 황제>를 꼼꼼하게 읽고 서평을 써 준 블로거 bookworm님은 작가와 독자로서 인연을 맺은 소중한 분입니다. 그 때에도 받은 편지를 블로그에 실었습니다. 제가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출간한 사실을 알고 책을 읽은 후 편지를 다시 보내왔습니다.

너무 반갑고, 정치인이 아닌 작가 김형오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제 책을 기다려 주었다는 사실이 감사했습니다. bookworm님의 양해를 얻어 받은 편지 전문을 아래에 싣습니다.

 

안녕하세요. ^^

 

기억하실지 모르겠지만 저는 2년전 <술탄과 황제>를 읽고 감동해 글을 올렸던 bookworm입니다. 의장님께서 그 글을 보시고 저에게 친필 사인하신 책을 보내주셨었지요.

 

그 책은 저의 책장에 항상 소중히 꽂혀 있습니다. ^^

 

얼마전 혹시 새책을 쓰셨을까 궁금해 검색해보니 작년에 책을 내셨네요! 제목을 보자마자 알 수 있었습니다. 인물의 내면 깊이깊이 들어가 철저히 탐구한 후 스스로 술탄이 되어, 그리고 황제가 되어 쓰신 <술탄과 황제>처럼 스스로 완전한 김구가 되어 글을 쓰셨으리라는 것을요. 또 어떤 진정성으로 저에게 크나큰 감동을 주실까, 기대가 됐지요.

 

부끄럽지만 저는 <백범일지>를 읽어본 적이 없습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여러 판본이 있고, 후대의 사람들이 수정을 많이 가했다는 것을 알기에 원전에 집착(?)하는 저로서는 내키지가 않았지요. 원저자의 뜻에서 혹시나 토씨 하나라도 어긋날까봐 신경이 쓰였으면 다른 평전을 읽었으면 될텐데 그마저도 하지 않았으니... 그래서 지금까지 백범에 대한 책은 어릴 때 읽은 위인전이 전부였었네요.

 

이번에 처음으로 읽은, 백범에 대한 제대로 된 책은 정말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책날개에 쓰신, 어렵고 힘든 일을 만날 때마다 '이럴 때 김구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가늠하며 답을 찾았다고 하신 내용을 처음에는 마음으로 이해하지 못했었습니다. 하지만 읽으면서 몇번이나 눈물을 쏟을 것 같았고, 의장님께서 하신 말씀을 감히 알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들이 다 가능했을까요? 아무리 난세가 영웅을 만든다고는 하지만, 백범은 어떻게 평생을 그렇게 살 수 있었을까요? 보통 사람들은 감히 따라할 엄두도 못 냈을 위대한 삶과 행적...

 

어렸을 때 읽었던 위인전에 묘사된 백범의 어린 시절은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성인이 되었을 때의 일은 일본인을 죽인 것 말고는 희미하고, 나머지는 우리나라 사람이면 백범에 대해 읽고 들어서 당연히 알고 있는 내용 정도입니다. 그러다보니 백범은 제 기억에 박제화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독립투사들을 뒤에서 조용히 지휘했던, 인자하게 웃는 검은 두루마기의 노인, 정도로요. 보지는 않았지만 작년인가 개봉했던 영화 <대장 김창수>가 누구에 관련된 내용인지 알고서야 개명전 백범의 이름을 떠올렸고, 위인전에서 읽었던 투쟁적인 면모가 얼핏 떠올랐었지요.

 

저는 1974년생입니다. 저에게는 뇌리에 남는 기억이 있는데, 중고등학교 때인 80년대 말 혹은 90년대 초쯤 읽은 명랑소설이 있어요. 제 세대의 책은 아니었는데 조흔파의 명랑소설 부류 비슷한 학원물이었지요. 아마 60년대나 70년대에 출판된 오래된 책을 읽었던 것 같아요. 중학생인 주인공들이 길거리에서 자기네들끼리 사요나라~하고 장난삼아 인사했는데 갑자기 어떤 아저씨가 나타나 아이들의 따귀를 때립니다. 그 아저씨는 자신이 독립운동가였다며, 한국어를 지키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하고 고초를 겪었는지 아냐고 호통을 치면서 옷을 벗어 고문흉터를 보여주지요.

 

그 장면이 약간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저에게 독립운동가란, 위인전에 나오는 머나먼 인물이었습니다. 내 옆에 살아 숨 쉬는 누군가가 아닌, 범접할 수 없는 어떤 이미지 같은 존재였죠. 그런데 6, 70년대에 출간된 그 책에서 독립운동가가 나이든 노인도 아닌, 길거리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장년의 아저씨로 묘사가 됐네요. 그때 처음으로 시간의 흐름에 필수적으로 따를 수 밖에 없는 관념의 차이... 같은 걸 인식했었던 것 같습니다.

 

그나마 나이가 들면서 수 십 년의 세월을 경험하며, 백범이 그리 먼 세대의 인물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게 됐지요. 하지만 요즘 젊은 세대들에게 과연 백범은 어떤 의미일지... 2, 30년 전의 시대가 아득하게 느껴졌던 저의 어린 시절을 돌아봤을 때, 지금 젊은이들은 제가 생각했던 간극보다도 훨씬 더 멀어졌겠지요. 그리고 그들이 앞으로 수 십 년의 세월을 살면 살수록 더 멀어지겠지요. 우리 조상들이 일제로부터 나라를 되찾기 위해 피흘렸던 기억들이 지금 젊은이들이나 후세 사람들에게는 한산대첩이나 행주대첩 정도의 막연한 느낌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제가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읽으면서 더 감격했던 것은 위인전에 박제된 인물이 아닌, 가까운 시대의 살아 숨쉬는 영웅을 직접 접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입니다. 영웅이 사라지고 없는 요즘 시대 최후의 영웅을 만나는 것 같았지요. 이런 위대한 인물이 사람들 마음속에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이렇게 생생한 저작을 또 내놓으시다니, 감사하고 또 감사해서 눈물이 날 것 같습니다. 상해 임시정부 건물에 갔을 때 그분들이 어떻게 지냈을지 눈에 보여 처연해지고 숙연해졌는데 굳이 상해까지 가지 않아도 이 책 한권으로 그 이상의 생생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인간 역사와 함께 해온 펜의 크나큰 힘인 것 같습니다.

 

의장님께서 하시듯 '이럴 때 김구 선생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저를 포함한 우리 국민의 백분의 일이라도 고민해본다면, 많은 문제들이 저절로 풀리고 사라질텐데, 하는 생각을 합니다. 국민들이 아닌 정치인들만이라도 그렇게 고민한다면 지금같이 편이 갈려 증오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텐데요. 우리 시대의 영웅이 너무나 간절합니다.

 

사람들의 뇌리에 불러들여 충격과 감동을 주신 술탄, 황제, 그리고 김구... 앞으로는 어떤 깨달음과 감동을 주실까요? 기대와 함께 기다립니다.

 

늘 사회의 추상같은 원로로 남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존경을 담아

 

bookworm 드림

 

 

 

"bookworm의 서재"

: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 서평 ☞ 바로가기 ☜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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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작은책방 2019.04.10 09:4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가와 독자의 아름다운 만남, 소중한 인연이 정말 보기 좋습니다.

    Bookworm님의 서재를 방문하렵니다.

  2. BlogIcon bookworm 2019.04.26 17:0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녕하세요. ^^
    친히 사인해서 보내주신 귀한 책 감사히 잘 받았다고 인사드리려 했으나 어찌어찌 시기를 놓쳤습니다. 이제야 늦게 감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얼마전 엄마들과의 독서모임에서 이 책으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제가 책을 추천했음에도 불구하고 바뀐 일정때문에 참석을 못해 다른 참석자가 정리한 내용을 일부 올려드립니다.

    "이 책은 이제까지의 백범일지와는 전혀 다른 형식의 책입니다.
    백범에게 애정을 가지고 그를 다년간 연구한 작가가 문답형식으로 백범의 일대기를 조명할 수 있게 써 내려간 책입니다.

    혈기가 넘치고 거칠것 없었던 젊은날의 백범, 그를 변화시켰던 사상들과 사건들, 그리고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 임시정부 기간동안의 외롭고 고단했던 여정과 나라를 위해 목숨도 아끼지 않았던 그를 거쳐간 젊은 영웅들, 독립 후 열강들에 의해 국치가 좌지우지 되던 현실을 슬퍼하며 진정한 독립을 외쳤던 그의 마지막까지...

    읽는 내내 마음이 좋지 않으면서도 꼭 읽어야 하는 책 임에 모두들 공감했습니다.

    독립투사들..그들은 어떻게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질 수 있었을까요?
    현재의 우리의 여러 현실과 교육 아래에서는 백범과 같은 위정자는 더이상 나오지 못하는 것인가요?
    여러 씁쓸한 질문들을 던지며 대화는 이어져 갔습니다.

    백범의 위대함은 그가 가진 능력보다는 항상 민초들을 위한 마음에서 왔던게 아닌가 합니다. 문화와 교육을 통해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행복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던 그 따뜻한 마음에서..."

    한 권의 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
    늘 감사드립니다.

특강 | 우리가 몰랐던 백범 김구

치하포 의거로 발현된 청년 김구의 피 끓는 애국심

 

 

227일 오전 8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청년 김구에 대해 특강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227일 오전 8시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시민 250명이 대회의실을 가득 메운 가운데 특강이 진행됐다. 주제는 우리가 몰랐던 백범 김구, 그 두 번째 이야기로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강사로 나섰다.

 

100년 전 나라를 되찾고자 온 국민이 떨쳐 일어섰던 3·1운동이 일어났다.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날 특강에서 김 전 의장은 평생을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살아온 백범의 우국지사로서 면모를 생생하게 되짚어 설명했다. 지난해 6월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를 문답식으로 정리한 책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펴냈다. 특강과 책에 담긴 내용을 통해 3·1운동 이전까지 청년 김구의 뜨겁고도 치열했던 애국적 삶을 되돌아본다.

 

 

백범 인생의 터닝 포인트

 


18962월 제2차 청국 기행에 나선 김구는 평안도 안주에서 다시 발길을 돌린다. 을미사변에 분개해 1월부터 전국 곳곳에서 을미의병이 봉기한 데다 아관파천, 단발령 정지(2) 같은 소식을 듣고 국내에서 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그를 일약 전국적인 유명 인사로 만든 치하포 의거는 이때 일어났다. 189639, 21세의 김구는 18958월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의 원수를 갚고자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 육군 중위 스치다 조스케를 처단한다. 이른바 치하포 의거다. 김구는 나루터 여관 주인 이화보에게 왜놈의 시체는 바다에 던져 물고기 밥으로 주라고 이른 뒤 다음의 포고문을 써 벽에 붙였다.

 

국모(민비)를 시해한 원수를 갚기 위해(國母報讐) 이 왜놈을 죽였노라.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 

 

그러고는 이화보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네가 이 동네 동장이라 하니 안악군수에게 사건 전말을 알려라. 나는 집으로 돌아가 연락을 기다리겠다. 왜놈의 칼은 내가 가져간다.”

 

김 전 의장은 치하포 의거는 을미사변에 따른 순간적 의분으로 벌어진 돌발 행동이었지만 김구의 일생에서 훈장과도 같은 상징적 사건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김구는 백범일지에도 어떤 장면보다 치하포 의거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사람의 일은 모름지기 밝고 떳떳해야 하오. 세상을 속이고 구차히 사는 것은 사나이 대장부가 할 일이 못 됩니다.’

 

스치다를 죽인 김구는 본가로 가지 말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라는 동학당 동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또한 그는 집으로 돌아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부모에게 낱낱이 전했고, 부모 역시 피신을 권하지만 듣지 않았다.

 

이 한 몸 희생해 만인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면 죽더라도 영광된 일입니다

 

치하포 의거는 피 끓는 애국 청년의 처절한 절규였다. 조선인이 살아 있음을 내외에 과시한 의거였다. 나라의 왕비(명성황후)를 무참히 시해한 일본인에게 복수하지 않으면 이는 국가적 수치이고 민족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일이었다. 유교의 윤리관, 동학혁명의 영향, 조선인으로 태어난 자의 의무와 사명감이 백범을 행동하게 했다.-‘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중에서치하포 의거 이후 김구는 해주 감옥에 갇혔다. 죄목은 세 가지. 첫째는 동학농민 봉기 때 동산평의 일본인 미곡 탈취 사건, 둘째는 장연에서의 산포수 거사 사건, 셋째는 치하포 사건이었다. 김구는 18967월 초 인천 감옥으로 이감됐다. 갑오개혁 이후 외국인 관련 사건을 다루는 특별 재판소가 인천에 생겼기 때문이다. 8월 마지막 날 인천 감옥에서 첫 신문이 있었다. 경무관 김윤정이 물었다.

 

치하포에서 39일 일본인을 살해했느냐.”

 

김구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날 내가 그곳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고자 왜구 한 명을 때려죽인 사실은 있소.”

 

법정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자 옆 의자에 앉아 신문 과정을 지켜보던 일본 순사 와타나베가 통역에게 까닭을 물었다. 김구는 죽을힘을 다해 이렇게 외쳤다.

 

지금 이른바 만국공법이나 국제공법 어디에 국가 간 통상 화친조약을 맺어놓고 그 나라 임금을 시해하라는 조문이 있더냐. 이 개 같은 왜놈아, 너희는 어찌하여 우리 국모를 시해했느냐. 내가 죽으면 귀신이 되어, 또 살면 온몸으로 네 임금을 죽이고 왜놈을 씨도 안 남기고 모조리 죽여버려 우리나라의 치욕을 씻으리라.”

 

와타나베는 치쿠쇼, 치쿠쇼”(본뜻은 짐승이지만 주로 욕으로 쓰는 일본어) 하며 대청 뒤쪽으로 도망쳤다.

 

김구는 재판소 관리들에게 따지듯 물었다.

 

나는 시골의 일개 천민이지만 백성의 의리로 국가가 치욕스러운 일을 당한 것이 부끄러워 왜구 한 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동포가 왜인들의 왕을 죽여 복수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당신들은 몽백(국상을 당해 소복을 입고 백립을 쓰는 것)을 하고 있는데, 춘추대의에서 나라님의 원수를 갚기 전까지는 몽백을 아니한다는 구절도 읽어보지 못했습니까. 한갓 헛된 부귀영화와 국록을 도적질하는 더러운 마음으로 어찌 임금을 섬긴단 말입니까.”

 

김구의 당찬 꾸짖음에 관리 수십 명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창수 말을 들으니 충의와 용기가 실로 놀라워 당혹스럽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날 이후 김구는 감옥에서 대장이 됐다. 수백 명의 관원이 만나는 사람마다 제물포가 개항하고 감리서가 문을 연 이래 처음 보는 희귀한 사건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벌렸기 때문이다. 김구를 보려고 면회를 청하는 이들도 날이 갈수록 늘었다. 952차 신문일에는 경무청 주변이 인파로 뒤덮였다. 담장과 지붕 위까지, 경무청 뜰이 보이는 곳 어디든 구경꾼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올라가 있었다.

 

육신은 가두어도 정신은, 영혼은 가둘 수 없었다. 일제의 국권 침탈로 이미 속국이나 마찬가지가 된 나라에서 감옥은 백범에게 감옥 안의 감옥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아니, 오히려 김구는 감옥 안에서 나름대로 독립을 쟁취했다. 목숨에 연연하지 않았다. 죄수뿐 아니라 간수, 뭇 백성들에게까지 공감대를 넓혀갔다. 어느 순간 백범은 감옥 안에서 대장이 돼 있었고, 그의 명성은 감옥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바깥세상 멀리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육신보다 정신이 먼저 탈옥해 있었다. (중략) 국난에 임해 영웅이 등장하고 위기에 지도자가 나온다. 이 한 몸 나라 위해 던지기로 한 청년 지사 김창수(백범)(치하포 의거를 계기로) 어엿한 지도자로 영글어간다. -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중에서

 

 

사형 직전 일어난 두 번의 기적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박해윤 기자]


1896117일자 독립신문에는 중죄인 5명과 함께 살인강도 김창수(김구)를 교수형에 처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신문이 배포된 뒤 김구가 갇혀 있는 감리서가 들썩였다. 죽기 전 그를 보려는 면회객 행렬이 옥문 밖까지 길게 이어졌던 것. 그러나 두 번의 행운이 겹치면서 김구에 대한 사형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첫 번째 행운은 고종이 사형을 중지하라는 어명을 내린 것이었다. 당시 사형은 임금의 재가를 받은 뒤 집행됐는데, 임금이 교수형 집행을 재가한 상태에서 뒤늦게 대궐 안에 있던 승지 가운데 하나가 명부에 적힌 김구의 죄명 국모보수를 우연히 보고 임금에게 안건을 다시 올렸고, “이 사안은 국제관계와도 맞닿아 있으니 일단 사형 집행을 중지시키라는 어명이 내려온 것이다. 두 번째 행운은 시간과 결부됐다. 사형 집행 중지 어명은 내려졌지만 인천 감리서까지 어명이 전달되기에 시간이 촉박했던 것.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사형 집행을 사흘 앞두고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장거리 전화가 개설돼 임금의 지시가 감리사 이재정에게 극적으로 하달됐다. 김구는 만약 서울-인천의 전화 개통이 사흘만 지체됐어도 나는 스물한 살 나이로 형장의 이슬이 돼 사라지고 말았을 운명이었다백범일지에서 회고했다.

 

이와 관련해 학계 일각에서는 이견을 내놓고 있다. ‘고종이 직접 걸어온 구명 전화이야기는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장거리 전화가 놓이기 전이므로 고종의 구명은 전화가 아닌 전보로 전달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죽음을 각오하고 결행한 치하포 의거를 계기로 청년 김구는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일평생을 나라를 되찾는 데 앞장서게 됐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백범 김구에 대한 이야기는 독립과 자유를 향한 그의 혁명가의 삶을 되짚어보는 두 번의 특강을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남북관계 잘되려면 주변국 지지 필수적


우리가 몰랐던 백범 김구, 그 두 번째 이야기특강 이후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따로 만났다. 김 전 의장은 “100년 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선조의 치열한 몸부림이었다면,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는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성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대한제국 망국의 교훈은 지도자와 국민이 국제정세에 어둡고 투철한 애국심으로 무장돼 있지 않으면 나라를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00년 역사를 교훈 삼아 앞으로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각성의 계기로 삼아야겠죠.”

 

대한민국 미래 100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세계 정세 흐름을 분석하고, 우리를 지켜낼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남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러자면 내부적으로 화합하고 단결해야죠. 김구 선생은 세계 평화의 중심이 되는 나라를 만들자고 말씀하셨어요. 최근 남북을 포함한 동북아가 세계 평화의 중심축으로 작동할 기회를 잡고 있습니다.”

남북평화와 남북공존공영을 위한 방법론을 두고 우리 내부에서 이견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가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남북이 손잡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우리 민족이 자존감을 갖고 국제정세에 대응하는 것은 옳지만, 세계적 흐름 속에서 작동하도록 하려면 폭넓은 외교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의 국제정세 기본 축은 한미관계입니다. 한미안보동맹이 흔들리면 나라의 중심축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도 지금처럼 어긋나 있게 방치해선 안 됩니다. 남북평화와 남북공존공영을 위해서는 한 나라라도 더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도록 당겨 와야 합니다.”

 

한일 간에는 위안부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한일 외교관계가 파탄 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국익을 위한 외교는 냉혹하면서도 고차원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한중관계도 기로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느냐가 중요합니다. 한국이 미국에게 중요한 존재인가, 중국에게 필요한 존재인가에 양국관계가 달려 있습니다. 국제관계는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지면 언제든 포기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국이 북한 눈치를 보면서 한국을 우습게 여기도록 방치해선 안 됩니다. 중국이 남북한을 균형 있게 대하도록 하는 게 1단계이고, 남북이 뜻을 모아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 중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득하는 게 2단계 목표입니다. 남북관계가 잘되려면 무엇보다 주변국의 지지가 필수입니다.”

 

 

  

주간동아 2019.03.01 1178(p24~27)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19-03-04 주간동아]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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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주의 맛있는 인터뷰] 백범 사상 선양에 앞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백범의 솔선수범·희생·헌신, 한국 정치인들이 가져야 할 덕목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백범 좌상 앞에서 백범은 솔선수범, 희생, 헌신을 체화한 분이라고 말했다. 김종호 기자 kimjh@


대한민국 정치 풍토에서 무계파·무계보이면서 큰돈도 없이 국회의장 자리에 오른 사람은 흔치 않다. 김형오(71) 전 의장은 그중 한 사람이다. 그는 합리적 보수주의자, ‘여의도의 신사등으로 불릴 만큼 정치인 중에서 비교적 괜찮은 이미지를 남겼다.

 

그는 정계 은퇴 후 왕성한 저작 활동으로 새로운 삶을 살고 있다. 3년 전부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회장을 맡아 백범 사상을 선양하는 데 앞장서 오고 있기도 하다.

 

3·1운동 100주년과 백범 서거 70주기를 맞아 그를 만났다. 인터뷰는 서울 용산구 임정로 26 백범기념관 안의 회장실에서 이뤄졌다. 그는 예의 논리정연함으로 기자의 질문에 막힘 없이 답했으며, 대한민국 정치의 문제점과 나아갈 방향, 국가 비전 등을 풍부한 경험과 식견으로 풀어냈다.


  •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맡아

  • 상하이~충칭 임시정부 역정 펴낼 예정

  • 백범일지풀어 쓴 백범 묻다인기

  • 정치 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덕목 강조

  • 일제 잔재 청산 대승적 견지에서 봐야

  • 현 정부 외교안보 중요성 등한시 염려

  • 국민 친화력 탁월, 정책 유연성 떨어져

  • 개헌의 참뜻, 핵심은 권력구조의 재편

  •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한 분산시켜야

  • 한국당, 돈 들여 연 전당대회 자승자박

  • 여당, 경남지사 판결 불복 전략적 실수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다.




-‘기념사업회회장은 어떻게 맡게 됐나?

“2015년 김구 선생 아들인 김신(작고) 장군께서 강권해 맡게 됐다. 마지막 봉사라는 소명의식으로 임하고 있다.” 


-올해가 백범 서거 70주기인데, 기념사업회 차원의 특별한 계획은?

올해는 백범 서거 70주기일 뿐만 아니라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의 해이다. 서거일인 626일에 뜻깊은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특히 상하이~충칭까지 임시정부 역정을 담은 답사기가 곧 나온다. 지난해 한·중 학자 11명으로 전문가 팀을 꾸려 답사하고 당시의 모습과 현재 변화된 모습, 임시정부와 김구 선생의 역할, 임정 요인들의 고난의 삶을 엮은 책이다. 역사에 남을 역저가 될 것으로 확신한다. ”


-지난해 출간한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가 화제인데, 어떤 책인가?

백범과 관련해서는 수많은 책들이 나와 있다. 백범일지는 우리 국민들의 교양서 아닌가. 하지만 백범일지를 제대로 읽고 백범을 올바르게 이해하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백범 묻다…〉백범일지를 쉽게 풀어 쓴 책이다. 60개 항목의 문답을 싣고 항목마다 나 자신의 해설을 달았다.”


- 백범 묻다…〉는 곧 6쇄가 나올 정도로 많이 읽히고 있다. 백범의 리더십에서 오늘날 정치 지도자들이 배워야 할 덕목은 뭔가?

백범은 말과 생각과 행동이 초지일관된 삶을 산 보기 드문 분이다. 그리고 솔선수범과 희생과 헌신이 몸에 배어 있는 위인이다. 솔선수범과 희생과 헌신, 21세기 한국 정치 지도자들이 가져야 할 덕목이 아닐까.” 


-3.1운동 100주년을 맞이하는데, 그 역사적 의미는?

국내적으로 근현대사를 이등분하라면 3·1운동 이전과 이후로 나눌 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국민·민중 같은 의식이 발현된 상징적 사건이다. 전 국민·전 계층이, 종파를 초월한 전 종교인들이, 전 지역 주민들이 장기간에 걸쳐 독립이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총궐기하고 단결하고 단합한 사건이다. 백범은 1946년 귀국 후 처음 맞은 3·1전날 경축사를 통해 ‘3·1절의 본질은 통일성에 있다고 규정했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를 바탕으로 3.1운동과 관련한 비화를 상세하게 설명했다. 풍부한 지식과 탁견이 예사롭지 않았다


-3·1절의 교훈은?

우리는 아직도 일제의 잔학하고 가혹한 통치를 들먹이면서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데 대해 애석해 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대승적 견지에서 바라봐야 할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친일 잔재를 청산하지 말라는 뜻은 절대 아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도록 우리 스스로 무장하고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할 때라는 것이다. 이게 3·1절이 주는 교훈일 것이다.”


-일본과의 관계가 악화일로인데?

그 부분이 안타깝다. 그런데 현실을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국가가 존립하고 번영하려면 가장 중요한 게 외교안보이다. 이거 무너지면 다 무너진다. 외교안보는 두 가지 요소가 필요하다. 가장 능력 있는 사람이 맡아야 하고 국민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현 정부가 외교안보의 중요성을 등한시하고 있지 않나 싶어 걱정스럽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2년이 다 돼 간다.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박근혜정부 시절 보여주지 못한 대국민 접근성과 접촉, 친화력은 아주 탁월하다고 생각한다. 남북 긴장완화에도 상당한 역할과 기여를 했다. 반면 경제 분야에 있어선 확고한 방침이 안 보이는 것 같다. 정치를 너무 청와대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대국민 친화력은 있지만 정책을 유연하게 집행하는 능력은 떨어지는 것 같다. 자기들 하고자 하는 것은 절대 양보하지 않는다. 성공 가능성이 없고 피해 보는 사람도 많고 나라 경제나 위상이 구겨지는 정책이라도 끝까지 밀고 가는, 상당히 경직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 가지 꼭 첨부하고 싶은 것은 지금은 증오의 정치가 돼선 안 되고 편협한 정의가 작동돼서도 안 된다. 적이냐 아군이냐, 선이냐 악이냐 식의 단칼로 자르는 정치는 더 이상 안 된다.”


-문재인 대통령이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문 대통령은 같은 부산 사람이고 고교 후배이다. 나는 10년을 정부에서 공무원을 하면서 역대 정권의 명멸을 너무 많이 봤다. 대통령이 웃으며 청와대를 나가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게 개헌이라고 생각한다. 5년 단임제를 하다 보니, 정치적 단절을 초래하고 초반엔 제왕적 대통령에서 후반엔 식물형 대통령으로 전락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정권의 충견이었던 검찰·경찰·국세청이 후반이 되면 싹 등을 돌려 대통령에 칼끝을 겨누는 행태가 계속되고 있다.” 


-권력기관의 독립을 위한 개헌을 말하나?

그렇다. 검찰·경찰·국세청뿐만 아니라 국정원과 방송통신 등 5대 권력기관을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는 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것이 대통령도 살고 나라도 사는 길이다.”


-이 정부 들어서도 개헌은 물 건너간 것 아닌가?

그럴 것 같다. 개헌의 참뜻을 최고 지도자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 같다. 개헌하자는 것은 대통령께 집중된 권력을 합리적으로 배분하자는 것이 원취지다. 개헌의 핵심은 권력구조의 재편이다. 그런데 결국 대통령에 집중된 과도한 권한을 가져올 기관이 국회밖에 더 있나. 그래서 국회 개혁을 강조하는 거다. 대통령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국회에 일부 가져오고, 일부는 독립된 기관을 둬 분산시켜야 한다. 그런데 이런 핵심 사항을 놓치고 다른 것을 자꾸 얘기하니까 개헌의 뜻이 없다고 봐야지.

개헌과 관련해 한 마디만 더 하자. 이 나라가 언제부터 미래 비전을 잃어버린 나라가 됐어. 5년 단임제 하다 보니 중장기 정책이 없는 거야. 5년 단임제의 약점을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인가, 하는 생각들을 안 하기 때문이야. 그런데 5년 단임제가 가지고 있는 권한을 그대로 두고 중임제를 택하면 8년 단임제가 되는 거야. 이건 더 나쁜 개헌이다. 그래서 나는 순수 대통령제로 하든지, 그렇잖으면 이원집정부제로 가든지 해야지 중임 여부는 중요하지 않아. 핵심은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돼야지.”


-국회 정치개혁특위 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월 국회가 문을 닫는 바람에 선거제도 개혁이 지지부진한데.

현 소선거구제에 문제가 많다. 당연히 개선돼야 하지만 국민들이 국회의원 정수 늘리는 데는 고개를 갸웃한다. 국회 정수 늘려도 되겠다고 국민들이 인정해줄 만큼 국회 개혁부터 먼저 하라는 게 내 입장이다. 국회부터 바뀌어야 한다. 그럴려면 2가지가 국회로부터 독립해야 한다. 하나는 선거제도개혁위원회이고 또 하나는 윤리위원회이다. 이 두 가지가 국회의원 입김과 영향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 두 가지가 국회의원들의 명줄을 딱 쥐면 국회는 확 달라지게 돼 있다.”

김 전 의장은 이런 게 진짜 개혁인데, 보수건 진보건 들으려 하지 않는다며 안타까워 했다.


-국회가 제대로 일하게 할 방법이 없을까?

철학을 가진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 상대방 설득보다 우리 편에게 양보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것이 이 시대 리더의 조건이다. 항상 진영 내에는 강경파와 원칙주의자가 있기 마련이다. 이들을 설득할 수 있는 게 진정한 용기고 능력이다. 지금 힘 있는 대통령이 참모들을 설득해 양보를 받아 내야지. 그걸 보여준 사람이 완전하지는 않지만 노무현과 김대중 전 대통령이다. 내부 양보 받아내는 게 정말 쉽지 않다. 아마 부산일보도 그렇지 않나. (웃음). 2019년 대한민국 정치의 첫 번째 과제는 내부 양보를 받아낼 수 있는 리더십 확보다.” 


2009년 제18대 국회의장 당시 모습


-1야당인 자유 한국당을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정부가 참 만만한 야당을 만났다고 생각한다. 현 정부는 취임 초기에는 여론이 안 좋으면 장관으로 지명했다가 취소도 시키고 했는데, 야당이 워낙 제 역할을 못하니까 이후에는 여론이 안 좋은 사람도 장관으로 밀어붙이고 있어. 국민들은 정부 여당은 독선적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야당에 대해선 희망이 없다고 말하고 있어. 그러니 국민들이 정치에 점점 더 거리를 두고 있지 않나.

야당이 건강하고 제대로 견제하면 여당도 함부로 못한다. 이런 점에서 야당은 참으로 반성해야 한다는 게 내 기본 전제이다. 돈 들여가며 전당대회를 하면서 왜 스스로 인기를 까먹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극기부대는 대한민국 국민의 극히 일부이고 이것이 자유한국당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비록 상처가 나긴 했지만, 한국당이 전당대회 이후에는 새로운 모습을 보이길 희망하지만, 그 희망의 강도가 점점 약해지고 있어. 그래서 걱정스러워.” 


-한국당이 수권정당의 모습을 보이려면 무엇을 보완해야 하나?

한국당의 상황이 굉장히 안 좋아. 구체적인 것보다 기본적인 자세를 고쳐야 한다. 당의 최고 책임을 맡은 사람은 당을 위해 불쏘시개가 돼야 한다. ‘내가 죽어야 당이 산다는 자세가 중요하다. 그런데 노력의 결실을 차지하겠다는 욕심을 속에 가지고 있는 한 한국당은 안 된다. 죽었다가 사는 게 정치거든. 죽겠다는 사람은 없고 살겠다는 사람밖에 없으니 결국 다 죽는 거지. 거듭 말하지만 (당 지도부는) 자기를 던져버려야 해.” 


-김경수 경남지사 판결에 대한 민주당의 판결 불복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한 마디로 여당답지 못하다. 김경수 개인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할 수는 있지만 당과 정권의 안위와 직결되는 문제로 스스로 몰고 가는 것 같다. 전략적으로도 잘못하고 있다. 만약 항소심 재판이 민주당이 원하는 대로 됐다고 치자. 집권당이 저렇게 떠드니 사법부가 겁먹고 눈치보고 저렇게 판결했다는 소리를 듣지 않겠나. 이건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서도 정말 잘못하는 거다.” 


-내년 총선을 어떻게 전망하나?

"정치는 살아 있는 생물이라 시시각각 변한다. 예측하기가 어렵다. 다만 현재 상태로 본다면 자유한국당은 원하는 의석을 얻기가 어려울 것이다. 민주당은 과반을 얻을지 모르겠어. 워낙 야당이 취약해서 지지율은 높지 않겠지만 (의석을) 휩쓸지 않을까. ”


2006년 한나라당 원내대표 당시 모습

 

-좀 언짢은 질문 하나 하겠다. 당신은 화려한 정치 이력에도 불구하고 소위 '김형오 계()'를 만들지 못했다. 너무 깨끗한 물이라서 그런가, 아니면 개인주의자여서 그런가?

다 해당이 될 거야. 그땐 부산에서 YS(고 김영삼 대통령)계가 아니면 힘을 쓸 수 없었으니까. 내가 아무리 YS계라 해도 민주계는 나를 YS계 취급을 안 해주고 민정계라 하고, 민정당에서는 내가 YS에게서 공천을 받았다는 이유로 민주계라 하고, 민주 민정 양 계파로부터 버림을 받은 거지. (웃음) 그렇다고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아니고, 노래나 춤을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시장 바닥에 가서 막 어울리는 체질도 아니고. 돈과 조직과 세력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안 되는 거야. 그래서 나는 내 혼자 갈 길을 간 거야. 나를 살린 건 언론이었어. 그때 국정감사 스타로 자주 신문 1면을 장식했으니까.

나는 딱 한 번 빼고 공천을 쉽게 받아 본 적이 없어. 당선도 마찬가지고. 줄서기 할 줄을 모르니 그럴 수밖에. 하지만 후회는 안 해. 계파·계보 이런 것과 거리가 있으니 부정·부패 스캔들에 한 번도 연루되지 않았잖아. 원내대표, 국회의장 다 원내 경선을 했는데, 압승했어. 그 비결이 무계보·무계파 덕분이었지. 이제 정치판에서 친박이니 비박이니 하는 계보·계파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해.”

김 전 의장은 인터뷰 말미에 정치인들의 자질과 품성과 시민의식을 함양하기 위한 정치 아카데미를 여는 게 남은 소망이라고 밝혔다. 재정적 뒷받침을 할 독지가나 자선가가 나타나기를 은근히 바라는 눈치였다.



윤현주 선임기자 hohoy@busan.com

  

 

 

<작가가 된 김형오 >


         2012년 역저 출판기념회를 여는 김 전 의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14대부터 18대까지 내리 5선의 국회의원을 지내고 정계를 은퇴한 후 작가로 화려하게 변신했다. 2012년 비잔티움 제국의 최후와 리더십을 다룬 황제와 술탄을 출간해 스테디셀러 작가로 등극했다. 2016년엔 황제와 술탄의 발행을 돌연 중단한 뒤 전면 개정판인 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를 펴내는 결단을 내렸다


김 전 의장은 지난해에 백범일지의 해설서격인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출간, 다시 한 번 출판업계의 이목을 받았다


길 위에서 띄운 희망 편지, 이 아름다운 나라, 돌담집 파도소리등 에세이와 칼럼집도 다수이다. 20년간의 정치 경험과 폭넓은 독서로 인한 박람강기, 그리고 뛰어난 집중력이 그의 글쓰기 자산이다. “책을 쓸 때는 15시간씩 책상 앞에 앉아 있은 적도 있다는 그는 현재 중앙아시아의 한 영웅에 대한 책을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



[2019-02-27 부산일보]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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