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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약속’과 ‘가야 할 먼 길’

김형오(국회의원,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버킷 리스트>(모건 프리먼, 잭 니콜슨 주연)라는 영화가 있다.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것들’이란 부제가 암시하듯,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은 노년의 두 남자가 병실을 뛰쳐나와 여행길에 오른 뒤 살아생전 꼭 하고 싶은 일들의 목록을 지우고 또 새로 만들면서 삶의 의미와 가치를 깨달아 나가는 로드 무비이다.

한국 영화 <해바라기>(김래원 주연) 역시 교도소에서 갓 출감한 청년이 낡은 수첩에 적어 놓은 꼭 해보고 싶은 일들을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는 이야기를 그 배경에 깔고 있다.

이들의 수첩은 어떤 소망들로 채워져 있을까. 눈물 날 때까지 웃어 보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와 키스하기(<버킷 리스트>), 김밥 싸 들고 소풍 가기, 문신 지우고 대중목욕탕 가기(<해바라기>) 등 일견 평범하고 소박해 보이지만 당사자들에게는 절실하고 소중한 내용들이 담겨 있다.

두 영화의 예에서 알 수 있듯이 ‘버킷 리스트’는 크고 작은 ‘꿈의 목록’ ‘희망의 리스트’이다. 또한 나는 앞으로 이런 삶을 살겠다는 약속과 다짐, 의지와 신념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 길은 ‘행복’을 향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버킷 리스트는 종착역이 ‘행복’이라고 적힌 여러 장의 티켓과도 같다.

 

영화 버킷리스트 포스터

우리는 누구나 인생에서 해피엔딩의 주인공을 꿈꾼다. 아름다운 마무리를 짓고 싶어 한다. 내가 다녀간 세상에 무언가 의미 있는 흔적, 가치 있는 이름으로 남겨지기를 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버킷 리스트를 가슴에 새겨야 한다. 성취를 하려면 도전해야 하고, 꿈을 이루려면 꿈을 품어야 하기 때문이다. 설령 도달하지 못하면 어떠리. 꿈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은 훗날 적어도 그 꿈에 몇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는 가장 아름답고 거룩한 버킷 리스트의 주인공은 김구 선생이다. 고등학교 때 『백범 일지』 부록으로 수록된 「나의 소원」이란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가슴이 뭉클했던가. 백범의 버킷 리스트는 오직 하나였다. 첫째도 ‘대한 독립’, 둘째도 ‘우리나라의 독립’, 셋째도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 독립’이었다.

“나 김구의 소원은 이것 하나밖에 없다. 내 과거의 칠십 평생을 이 소원을 위하여 살아왔고, 현재도 이 때문에 살고 있고, 미래에도 나는 이 소원을 달성하려고 살 것이다.”

 

나에게도 버킷 리스트가 있다. 크게는 손가락 다섯 개 안쪽으로 꼽을 수도 있겠지만, 소소한 것까지 나열한다면 웬만한 수첩 한 권으로도 부족할 것이다. 어떤 목록은 이미 이루어 지워진 것도 있고, 앞으로 새롭게 써나갈 항목도 있으리라.

나는 그 리스트를, 나의 소망인 동시에 약속이라고 생각한다. 나와의 약속도 있고 가족과의 약속, 국민과의 약속도 있다. 시대와의 약속, 역사와의 약속도 있다. 그러므로 나는 남은 생을 온전히 이 소망을 이루고 이 약속을 지키는 데 바칠 생각이다. 그 중 몇 가지를 여기에 적어 본다.

 

영어 스피치.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나는 영어를 잘 못한다. 뒤늦게 배워 보려고 애는 쓰고 있지만 걸음이 더디기만 하다. 귀도 잘 안 들리고 입도 쉽게 안 열린다. 외교학과 출신에 국회 외통위 소속으로서 영 체면이 안 서는 노릇이다.

2010년 3월, 제122차 IPU총회 대표연설을 하는 모습


그래도 기회만 닿으면 나는 영어로 스피치를 하고 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개막된 아시아정당국제회의, 그리고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기조연설을 할 때도 영어를 사용했음은 물론이다. 뿐만 아니라 주한 외국 대사관이 주최하는 국내 행사에서 축사를 할 때도 나는 웬만하면 영어로 스피치를 하고 있다. 어느 날 그럴싸한 자리에서 그럴싸한 내용으로 적어도 5분은 머리를 숙이지 않은 채 (원고를 보지 않고) 영어 스피치를 하는 꿈은 그래서 내 버킷 리스트의 한 줄을 차지하고 있다.

 

아내와 손잡고 여행 다니기.

바쁘다는 핑계로 좀처럼 가족 여행을 할 기회가 드물었다. 국회의장 재임 시절의 공식적인 해외 순방, 국정감사 기간을 틈탄 우리 땅 탐방에 몇 차례 아내를 동반한 것이 고작이다. 그때마다 소녀처럼 얼마나 즐거워하던지…. 탐방의 결과물인 두 권의 책(『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을 쓰는데도 아내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여행이란 투자 대비 효과가 아주 큰 ‘생산적 소비 활동’이다. 심신 건강 유지에도 여행만한 것을 찾기 힘들다. 정계에서 은퇴해 시간이 자유로워지면 아내와 손을 잡고 추억과 낭만, 충전과 활력을 얻기 위해 자주 길을 떠날 생각이다. 그 여행길에 가끔은 손자손녀들도 같이 데려가고 싶다.

 

『비잔틴 최후의 날』(가제).

이는 내가 심혈을 기울여 써 보고 싶은 대하(大河) 장편실록이다. 그 작업을 위해 나는 수많은 자료들을 섭렵했고, 지도에는 없는 도시 ‘이스탄티노플’에 세 번 다녀왔다. 이스탄티노플은 이스탄불과 콘스탄티노플의 합성어, 내가 개념 짓고 명명한 도시이다. 현재의 이스탄불과 과거의 콘스탄티노플이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화해’와 ‘공존’의 상징 언어이다.

세계사의 물길을 바꾼 기념비적인 사건…. 1453년 이슬람 세력(오스만 투르크)이 기독교 세력(비잔틴 제국)을 포위한 채 총공격을 감행한 콘스탄티노플 전쟁은 세계 전사상 가장 치열했던 전투 중 하나였다. 이 전쟁으로 중세가 끝나고 근대가 시작되었다. 그런데도 서양의 세계사에서는 대단히 소홀하게 취급되고 동양의 사학자들은 별 관심조차 두지 않는 이 ‘역사적 대사건’의 집필에 감히 도전하고 싶다. 서양의 굴욕도, 이슬람의 오만도 아닌 진실의 편에 서서 써 보고 싶은 것이다. 나의 체력·능력·상상력·정의감을 남김없이 소진할 그런 시간이 주어지기를 나는 간절히 기대한다. 좀 더 자세한 내용과 취지를 알고 싶다면 내 블로그(www.hyongo.com) 에 들어와 보기 바란다. 

고향의 작은 집에서 친구들과 막걸리 마시기.

수구초심(首丘初心)이라지만, 나이 들수록 고향과 옛 친구들이 그립다. 눈을 감으면 감을수록 더욱 더 또렷이 보이고 선연하게 떠오르는 것이 어머니와 고향이다.

내 고향 고성에 작은 집을 짓고 채마밭의 푸성귀가 시들지 않을 만큼 자주 들르고 머물며 노년을 보내리라. 이미 늙어버린 어린 벗들과 어울려 밭에서 갓 따온 상추를 된장에 푹 찍어 막걸리 한두 잔을 나누는 것도 내 버킷 리스트의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소신을 지키면서 정치 발전 이루어 내기.

정치를 시작한 이래로 나는 언행일치와 상선약수(上善若水)를 늘 가슴에 새기며 살아왔다. 그 바탕 위에서 내가 이루고 싶은 나라, 내가 만들고 싶은 지역구를 설계하고 실행에 옮겨왔다.

상대방을 인정하는 정치, 거짓말과 덮어씌우기를 안 하는 정치, 미래의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 국민과 함께 울고 웃는 정치, 이상만이 아닌 현실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신념을 최고 가치로 삼는 정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정치…. 나는 그런 정치인으로 내 정치 인생을 마무리 짓고 싶다. 그러나 이와 정반대의 흐름이 조성될 때마다 무력감과 좌절감이 찾아온다. 절망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기도하며 안간힘을 쓴다. 그러면서 ‘다시 웃으며 시작하자’ 다짐하곤 한다.

2010년 12월, 본오복지관에서

헬렌 켈러의 에세이 「사흘만 볼 수 있다면」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일이면 귀가 안 들릴 사람처럼 새들의 지저귐을 들어 보라. 내일이면 후각을 잃을 사람처럼 꽃향기를 맡아 보라. 내일이면 더 이상 보지 못할 사람처럼 세상을 보라.”

그렇다, 마지막이 언제 어떻게 다가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은 그래서 모두 소중하다. 『탈무드』에서도 “모든 날들을 생애의 첫날처럼 그리고 마지막 날처럼 살라”고 하지 않았던가. 최선을 다하는 삶이야말로 후회 없는 인생의 필요충분조건이다.

 

살다 보면 내 삶의 고삐가 느슨해지고, 신념의 나사못이 헐거워졌음을 느낄 때가 있다. 각성과 다짐이 필요한 순간이다. 그럴 때마다 나는 경구처럼 한 편의 시를 떠올리곤 한다. 미국 시인 로버트 프로스트의 「눈 내리는 저녁 숲가에 서서」이다. 그 시의 마지막 부분을 나지막이 읊조리면 새 힘이 솟으면서 나의 버킷 리스트가 다시금 살아난다.

“숲은 사랑스럽지만 여전히 깊고 어둡다. / 그러나 내게는 지켜야 할 약속이 있고 / 잠들기 전에 가야 할 먼 길이 있다.”

 

※<신동아> 2011년 4월호 별책 부록에 수록된 글입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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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프라미스 2011.03.22 1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글 읽고 나니 나도 수첩을 사고 싶어집니다.
    나와의 약속, 가족과의 약속, 세상과의 약속을 하고 싶어집니다.
    호야님, 버킷 리스트 꼭 이루세요~~~.

  2. 선플라워 2011.03.29 10: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나를 웃게 하는 건 희망입니다"
    영화 포스터 카피가 절절하게 와 닿습니다.
    그 희망을 무참히도 짓밟힌 한 젊은이,
    그 처절한 몸부림이 생각나 가슴이 울컥했습니다.
    <내 목에 밧줄이 놓이기 전에>란 책이 있습니다만,
    나는 인생의 <그린 마일>을 걸어가기 전에
    과연 무엇을 꼭 하고 싶고 해야 할 것인가,
    그런 것들을 이 글 읽으며
    다시금 되새겨 보았습니다.

  3. 갈림길 2011.03.30 07: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로버트 프로스트의 버킷 리스트는 무엇이었을까.
    <가지 않은 길>이었을까.
    어떤 이들에게는 가지 않은 길이
    버킷 리스트로 남기도 한다.

  4. 저리보고 2011.04.01 08: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언제부터 인가 "버킷 리스트"라는 단어를
    맘에 들었습니다. 저도 수첩에 나와 가족과의 약속
    우리 회원님들과의 약속을 "버킷 리스트"를 만들었습니다.
    버킷 리스트의 크고 작은 "꿈의목록"을
    희망의 리스트, 또한 나는 앞으로 이런삶을 살겠다는
    약속과의 다짐,의지와 신념의 표현,이런 단어가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께 배우고 좋아 하게 되었나봅니다.

  5. 비스킷 2011.04.07 08: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달콤쌉싸름한 초콜릿 같고 바삭바삭 고소한 비스킷 같은 내 버킷 리스트를 위하여!

  6. 스마일어게인 2011.04.24 10: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의장님과 수녀님의 함박웃음이
    봄날 순백의 목련꽃처럼 참으로 화사하십니다.

앨범 속에서 어머니를 만나다

김형오(국회의원,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소설가 최인호씨가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란 제목의 책을 썼지요? 그렇습니다, 세상 모든 어머니들은 아무도 죽지 않습니다. 사라지지도 않습니다. 자식들 가슴에 평생 잊을 수 없는 얼굴, 지워지지 않는 목소리로 언제나 생생하게 살아 계십니다. ‘신은 모든 곳에 있을 수 없어 어머니를 만드셨다’지 않습니까. 어머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희생과 거룩한 사랑의 표상입니다.


내 어머니, 당신이야말로 그런 분이셨지요. 저는 오늘 앨범 속에서 어머니, 당신을 만났습니다. 빛바랜 사진첩을 들추다가 코끝이 찡해지고 눈시울이 붉어졌습니다.

사진첩은 이야기첩의 다른 이름입니다. 일기장을 펼친 듯 추억을 새록새록 끄집어내 줍니다. 타임머신에 태워 과거로 데려가 줍니다. 어떤 사진은 오래 전에 해둔 메모처럼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또 어떤 사진은 어제 일처럼 너무나 생생합니다. 눈길을 뗄 수 없게 하고, 마음을 붙잡아 쉽사리 다음 장을 넘기지 못하게 하는 사진들도 여럿입니다. 일제 강점기 할아버지께서 우리 고향 고성의 남산에 올라 벗님들과 찍은 사진, 해방될 때까지 만주에서 활동하셨던 아버지가 젊은 시절 동료들과 백두산을 등정하며 천지를 배경으로 찍은 늠름한 사진, 이목구비가 또렷해 왠지 이국적인 느낌이 나는 색동 한복을 입고 찍은 제 돌 사진, 집사람과 데이트하며 찍은 사진, 양가 어른들과 함께 찍은 제 결혼식 사진과 폐백 사진…. 어머니와 찍은 사진이 이렇게 드문 줄 미처 몰랐습니다. 좀 더 멋진 사진, 좋은 사진이 없는 게 참 안타깝습니다. 그 중에서 제 대학 졸업식 때 어머니와 찍은, 그때로서는 흔치 않았던 컬러 사진과 함께 빛바랜 흑백 사진 한 장이 제 눈길을 고정시켰습니다.

이 사진 속의 어머니는 지금의 제 나이 또래로 보입니다. 아니, 그보다 좀 더 젊은 모습입니다. 늘 저보다 한참 위인 것처럼 기억되던 당신이 저와 동갑내기로 인식되다니, 세월은 참 경이롭습니다.

부산시 영도구 영선2동 돌담집에서 찍은 사진입니다. 대학 졸업반을 전후한 어느 여름날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진 속의 저는 그 당시 유행하던 헤어스타일에 검은 선글라스로 멋을 내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단정한 머리 모양과 옷차림새에 안경 너머로 단아한 웃음을 짓고 계십니다. 딸들이 ‘아빠 모습이 홍콩 영화 주연 배우 같다’면서 좋아했던 사진입니다. ‘홍콩 배우’ 옆에 서 계신 어머니는 전형적인 한국의 여인상입니다.

어머니는 보기 드문 미인이셨지요. 그 당시 흔치 않았던 여고를 졸업하자마자 바로 꽃가마 타고 재를 넘고 물을 건너 고성으로 시집오셨다지요. 어머니 여고 시절 그 예쁜 사진들은 모교에 기증해 이제 마산여고 100주년 기념관에나 가야 볼 수 있겠네요.

어머니는 꽃 가꾸기를 좋아하셔서 크지 않은 꽃밭에 꽃들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 장미를 좋아하셔서 돌담 밑에 심은 덩굴장미가 담장을 가득 덮으며 피어나곤 했습니다. 그 향기는 또 얼마나 그윽했는지요. 돌담을 따라 장미꽃이 만발하면 지나가던 사람들이 곧잘 한두 송이씩 꺾어 가곤 했지만 당신은 애써 모른 척하셨습니다. 꽃 좋아하는 사람 치고 절대 나쁜 사람 없다는 것이 당신 생각이셨지요.

아버지께서는 바닷가에 잘 자란다는 해송을 구해 심어 놓으셨습니다. 대학 신입생 때 제가 어머니 심부름으로 통영에 가서 사 온 야자나무도 정원을 장식하고 있었지요. 어린 야자들은 어머니의 섬세한 손길 아래 무럭무럭 자라나 저는 방학 때 집에 오면 마치 제가 자란 것처럼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돌담집은 제게 아련한 향수를 불러일으킵니다. 여행길에서 돌담집을 만나면 당신이 마당에서 꽃을 돌보고 있을 것 같고, 돌담 너머로 “어머니!” 하고 부르면 반갑게 달려 나오실 것만 같습니다.

별이 총총히 켜진 밤이면 그 별들이 마치 어머니께서 가꾸고 돌본 하늘나라 정원의 꽃들처럼 여겨집니다.

어머니는 노년에 부산 근교에서 농사를 지으셨습니다. 감․밤․배․살구․복숭아 같은 유실수도 가꾸셨습니다. 내색은 안 하셨지만 노년의 당신에게 농사는 낙(樂)보다는 노(勞)와 고(苦)에 더 가까웠을 것 같습니다. 갓 결혼한 저한테 손수 따서 포장한 과일 상자를 보내 주셨지요. 그때는 고마운 줄만 알았지 밭농사, 과일 농사가 얼마나 힘든지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올해는 기후가 안 좋아 작황이 시원찮다”라고 하시면 그저 그런 줄로만 알았지요. 적지 않은 연세에 이미 몸까지 편찮으셔서 그렇다는 걸 몰랐으니 얼마나 미련한 아들이었는지요.

어머니는 편지 쓰기를 즐기셨습니다. 저한테도 그리고 며느리한테도…. 당신은 필체가 참 단아하면서도 활달하셨습니다. 한자를 즐겨 쓰셨고, 이따금씩 ‘시즌(잡곡 시즌)’ 같은 외래어도 눈에 띄었습니다. 저는 어머니 글씨에 못 미치지만 필체만큼은 어딘가 당신을 닮은 것 같습니다.

어머니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글도 저한테 쓴 편지였습니다. 병환 중에 있으면서도 어머니는 그 당시 첫 아기를 가져 배가 부른 며느리한테 부담이 될까 봐 알리지 말라 하셨지요. 그러면서 그 쇠약해지신 몸으로 제 몸보신하라시며 직접 처방해 지으신 한약을 편지와 함께 부치셨습니다. 아둔한 아들은 당신의 그 편지가 힘에 부친 몸으로 쓴 글씨라는 것도 뒤늦게야 알아차렸습니다. 어머니는 편지를 보내시고 바로 병원으로 가셨습니다. 다시는 걸어서 돌아오지 못하실 줄을 서울에 있던 저는 까마득히 몰랐습니다. 어머니는 그로부터 반년도 채 지나지 않은 석가탄신일 전날 눈을 감으셨지요. 지금도 그 편지를 읽으면 눈시울이 뜨거워집니다.

왜 어머니께서 그토록 새아기(제 처)에게 극진한 사랑을 쏟으셨는지도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결혼한 치 채 1년도 안 돼 병석에 누우신 당신은 이 둘째 며느리 얼굴 볼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때 낳은 첫 딸, 어머니의 손녀는 그새 결혼을 해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어머니, 당신에게는 증손자, 증손녀입니다. 저도 덩달아 할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제가 품에 손자손녀를 안고 있는 사진을 보면 당신은 뭐라고 말씀하실까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증손자, 증손녀 사진을 어머니 사진 옆에 나란히 놓아 드리렵니다. 아이들에게도 증조할머니 사진을 보여 주렵니다. 그리운 어머니, 여전히 제 마음 속에 살아 계신 어머니, 앨범 속 증손자, 증손녀와 행복한 시간 보내시길 바랍니다.
 

※ 2011년 1월 발간된 "海原 수필 동인지 - 파도밭을 건너며 제11집" 에 실린 '사진 한 장에 얽힌 사연' 을 소재로 쓴 글입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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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에버 2011.03.08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가슴 가득 감동이 밀물져 옵니다.
    용모도, 마음도 애틋하게 아름다운 어머니십니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불멸의 연인> 같은 존재입니다.
    오늘, 나도 불현듯 어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지는군요.
    먼 옛날 흑백사진의 추억 속으로 달려가고 싶어집니다.
    퇴근하면 아내와 함께 빛바랜 앨범을 열어 보렵니다.

  2. 물망초 2011.03.08 19: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잊을 수 없는 이름 지울 수 없는 목소리. 내 어머니 가신 나라 달 돋는 나라. Forget you not.

  3. 김화자 2011.03.08 20: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의 수필을 보고 저도 오늘
    어머니가 보고 싶어집니다.
    어머니는 잊을수 없는 얼굴! 지워지지않는 목소리!
    생생하게 살아 계시죠?
    정말 어머니는 죽지 않는다,라는 말에
    눈물이 핑 !! 수필 잘보고 갑니다.

  4. 감동의물결 2011.03.09 05: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호야님이 미남인 건 어머니를 닮아서였군요.
    코끝이 찡하고 눈물이 핑돕니다.
    어머니는 눈물과도 동의어인가 봅니다.

  5. 순대국집아들 2011.03.09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먼저 보낸 어머님 생각에 가슴이 먹먹해집니다..
    돌담집의 해송은 그대로 잘 있습니까?
    변함없는 소나무의 기품을 닮은 어머님 이야기.. 잘 보았습니다.

  6. 이학희 2011.03.10 08: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동이 쫙 밀려옵니다
    평소에 존경스런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 이제기지게 펴시고
    용수철처럼 튀어올라 큰일 도모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화이팅하세요!!!!!!!!!!!!!!!

  7. BlogIcon 김영철 2011.03.10 11: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형오형,
    문리대 세느강옆 마로니에 나무아래에서 형과 함께 나누던 어머님의 자식을 위한 희생적인 사랑을 곰씹으며 눈물을 훔쳐봅니다. 사랑합니다.!!!

  8. 수화 2011.03.10 18:1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늘 가슴설레게하는사람이 어머님이시지요.변하지않는 마음 든든한 마음 언제나 내편이 되어주는사람 세상에 단 한사람 내어머님이지요.....

  9. 이병화 2011.03.11 05:1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니의 사랑을 가슴에 담고 있는 정치인 김형오의장님! 정말 따뜻한 글을 읽었습니다. 항상 어머니 가슴같은 크고 넓은 지도자의 길을 가소서.

  10. BlogIcon 한향림 2011.03.16 16:3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항상 가슴에 묻고 계시는 그마음이 전해져서 가슴이 저립니다. 아~ 저도 어머니께 전화라도 자주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따듯한 안부인사 한마디가 왜 그리 어려운지 모르겠어요. 바쁘다는 핑계로 작은 효도도 못하고 지내다가 문득 문득 어머니 생각에 가슴에서 뜨거운 무엇인가 올라와 코끝이 찡해지곤 하죠. 의원님의 글에서 잔잔한 그리움이 느껴집니다. 업무보다가 잠시 가슴을 쉬게 해주었더니 새 기운이 나요. 아름다운 글, 잘읽었읍니다.

  11. BlogIcon 이상석 2011.03.17 10:1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선배님 글을 다 읽어 가자 두 눈에서 흘러 흐르는 뜨거운 눈물을 억제 할 수가 없었읍니다. "내가 이 나이에 눈물을 흘리다니...나 답지않은 일이다."며 감정을 억제하려 애를 썼으나 허사였읍니다.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감지하지 못한 아둔함은 저도 마찬가지였으며 후회해본들 이미 고인이 되셨으니 그 아린 가슴은 말로서는 표현이 안됩니다.눈물이란 사람의 마음을 씻어주는 신비한 물질인가 봅니다.마음의 온갖 더러움을 깨끗이 씻었읍니다.좋은 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용마21회

  12. 마더 2011.05.08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늘은 어버이날, 빛바랜 앨범 속으로 나도 내 부모님을 만나러 가렵니다.

  13. 켄자스 2011.07.28 19: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머니는 언제나 마음의 고향입니다.


지난 출판기념회 이후 많은 분들께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를 구입해주신 덕분에 인터넷서점 YES24.com에서 주간베스트 국내도서종합 49위 / 문학 21위에 올랐습니다.


출판기념회를 통해 많은 분들께 입소문이 난것 같습니다.
책 표지에도 쓰여있고, 출판기념회에서도 재차 약속드렸던 것과 같이 이 책 판매로 이루어진 모든 수익금은 도움을 필요로하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사용할 것입니다.
많은 분들께서 "이 아름다운 나라" 구입을 통해 이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도움을 주시는 것 같아 감사한 마음뿐입니다.

 "이 아름다운 나라" 구입하러가기 ☞ YES24.com
(YES24.com을 통해 구입하시면 10%의 가격할인 혜택도 있습니다. 참고하세요~ ^^)

여러분들의 성원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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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힘찬희망 2010.06.19 20:5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오ㅡ 기쁜 소식입니다
    저는 한 권 샀지만
    또 한 권 사서 칙구에게 권하겠습니다,.

    • BlogIcon 맹태 2010.06.23 07:27  댓글주소  수정/삭제

      아하하하 감사합니다 힘찬희망님.
      '칙구'라면 '친구'와 '식구' 모두에게 권해주신다는 말씀이지요..?? ^^;;;

6월 16일에 있었던 김형오 의장의 저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의 출판기념회를 무사히 마쳤습니다.
참석해주신 여러분들과 축하해주신 많은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워낙 많은 분들이 참석하셔서 뒷정리를 하는데에도 적지 않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정신없이 출판기념회를 정리하다보니 블로그를 통해 감사의 인사를 드려야 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참석하지 못하셨지만 마음으로 응원하고 축하해주신 분들께도 출판기념회의 모습을 함께 나누고 싶어 행사 모습을 올려봅니다.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인사를 하는데도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오랜 시간동안 기다려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사회를 맡아주신 강용석 의원님, 감사합니다.^_^


축사를 해주신 박희태 국회의장님, 감사합니다.^_^


축사를 해주신 김무성 한나라당 원내대표님, 감사합니다.^_^

축사를 해주신 민주당 원혜영 의원님, 감사합니다.^_^


자리를 가득 메워주신 여러분께 인사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님께서 서평을 해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_^



희망탐방 중에 만난 해설사 세분을 모시고 함께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분위기를 한껏 띄워주신 이정옥 해설사님. 감사합니다. ^_^


지난 책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에서 편지 수신인이었던 담양의 이정옥 해설사님은 이번 출판기념회에도 초대받으셨습니다. '한번 입을 열면 초승달이 보름달 될 때까지도 이야기를 풀어낸다'는 김형오 의장의 소개처럼 녹슬지 않은 입담으로 분위기를 한껏 띄워주셨습니다.

좋은 말씀 나눠주신 박석홍 해설사님, 감사합니다. ^_^


"호남에 이정옥이 있다면, 영남에는 박석홍이 있다"는 소개로 자리에서 일어난 박석홍 해설사님 역시 개그맨 강성범이 보여주던 '수다맨'처럼, 재치있고 빠른 입담을 보여주셨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역사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신 말씀에는 모두들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두 번이나 방문할 만큼 김형오 의장이 각별히 생각하는 반구대 암각화!
반구대 암각화 박물관의 이문희 해설사님은 김형오 의장의 각별한 관심 덕분에 '반구대 암각화 전시관'이 '박물관'으로 승격될 수 있었다며 고마움을 표시했습니다.
김형오 의장은 '선인들의 위대한 유산이 물고문을 당하고 있다'고 표현하며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노력을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지난 '희망편지 수익금'에 대해 어린이재단 김원진 사무총장님께서 그 사용내역에 대해 보고하였습니다.
수익금의 용도에 대해서는 "이 아름다운 나라"를 집필하기 시작할때부터 결정된 사항이었습니다만, 김형오 의장은  "이 아름다운 나라"의 수익금 역시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이들을 위해 사용할 것임을 다시 한번 약속했습니다.

"젊은 벗들에게" 띄우는 편지를 읽고, 답신을 준비해 온 연세대 엄보운 학생


인상 깊게 읽은 부분을 낭송해 준 이화여대 김진이 학생


피아노를 전공하는 김진이 학생은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하는 노래를 피아노 연주와 함께 선보이기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 앞이라 조금 떨려하는 것 같기도 했는데, 아름다운 연주를 들려주었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김진이 학생



이렇게 초대손님들을 만난 후에, 피아노 연주에 맞추어 다함께 노사연의 '만남'을 부르며 행사를 마쳤습니다.

모두 함께 합창을 하는 모습

우리 만남은- 우연이 아니야-♪

자리를 빛내주신 여러분들, 감사합니다. ^_^


축하해주신 아름다운 여러분들 덕분에,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 출판기념회를 아름답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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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25일 토요일 오후 서울 강남 교보문고에서 저의 최근 출간작인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의 저자 사인회를 가졌습니다. 이번에 출판한 책은 제가 작년 가을 국정감사 기간동안 자연, 문화, 역사, 미래를 테마로 우리 국토를 순례하며 느낀 감상을 42편의 편지형식으로 적어 엮은 순수 에세이집입니다.

이 날의 행사는 지난달 발간한 제 책이 출판한지 한 달 만에 3쇄에 들어가는가 하면, 인터넷 서점 '예스24'집계에서 종합판매 13위, 주간 에세이부분 1위에 오르는 등 독자들의 호응이 좋은 것에 대해 사인회를 열자는 출판사(생각의 나무)측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사인회는 당초 오후 3시부터 1시간으로 예정되어 있었으나 비가 오는데도 불구하고 건물 내부에서 건물 바깥까지 50미터 이상 늘어선 줄이 이어지면서 사인을 받으려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아 오후 6시까지 당초보다 3시간을 연장해 진행되었습니다.

언론과 인터넷을 통해 책을 접한 학생들, 서점으로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 온 부부, 10여명의 국회의원을 포함한 국회가족 등 각계의 많은 독자들의 행렬이 계속 되었고 저는 3시간여 동안 잠시도 쉬지 않고 700여권의 책에 사인을 했습니다.

당초 서점측이 준비한 2000여권의 책이 행사 시작 2시간여 만에 모두 매진되었으며 주문판매까지 합쳐 5000여권이 행사기간 내에 판매되는 등 저자 사인회 사상 보기 드문 판매기록을 세웠다고 교보문고측이 전했습니다.

3쇄까지 찍은 1만3000권이 이날 사실상 모두 소진됨에 따라 출판사 측은 곧바고 4쇄에 들어갈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책의 판매와 관련된 수익금 전액은 결식아동을 돕는데 사용될 것입니다.

여러모로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적극 성원해주셔서 깊이 감사드립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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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고 푸르른 현장에세이 하나를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이 책이 전하려는 행복과 희망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저자 김형오(국회의장)님을 모시고 소박한 행사를 준비했습니다.

바쁜 일상에 작은 여유로, 봄 햇살처럼 따뜻한 행복과 희망을

찾아가시기 바랍니다.

 20094


때 : 2009년 4월 25일

      오후 3시 ~4시

곳 : 강남 교보문고

주관 : 생각의나무, 교보문고


주소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1303-22 교보타워

전화

1544-1900

대중교통

지하철 2호선 강남역 하차 6번출구,

논현역 방향 500m

지하철 7호선 논현역 하차 3번출구,

강남역 방향 500m



화환은 받지 않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해 주십시오.

저자의 수익금 전액은 결식아동을 돕는 데 사용됩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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