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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그건 이렇습니다

‘국회가 국민 성희롱했다’? 중앙일보 기사와 논평에 대한 반론 ④ “객관성과 균형감각은 어디로 갔는가” 김형오 ‘국회가 국민 성희롱했다’? ‣ 무슨 황당한 일이 그리도 많은지 중앙일보 9월 2일자 34면 사설 제목에도 ‘황당’이란 단어가 또 들어가 있습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황당한 비유” 대체 무엇이 황당한 비유라는 걸까 했더니, 역시나 성경 구절을 인용한 부분입니다. 사설은 그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고 논평합니다. “인간의 구원에 관한 종교적 메시지이지 ‘모두 흠이 있으니 모두가 그냥 넘어가자’는 뜻은 아니다. …의원들의 윤리 기준을 강화하는 데 앞장서야 할 전직 국회의장이 아무 거리낌 없이 황당한 비유나 하고, 이런 비유에 ‘잘했어’라고 동조하는 일부 의원들, 우리 국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정말 ‘아.. 더보기
내가 언제 밀실에 숨어 야합을 주도했는가? 중앙일보 기사와 논평에 대한 반론 ③ “객관성과 균형감각은 어디로 갔는가” 김형오 내가 언제 밀실에 숨어 야합을 주도했는가? 9월 2일자 중앙일보에는 3개 면, 4꼭지에 걸쳐 내 이름이 등장합니다. 취재 일기, 박용석 만평, 사설, ‘노재현의 시시각각’이란 칼럼을 통해서입니다. 한 사람이 하루에 이렇게 화려하게(?) 등장하기는 정말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도 고맙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끄러워 얼굴이 화끈 달아오릅니다. 아무리 괘씸죄에 걸렸기로서니 이렇게까지 심하게 매도당해야 하는 건가요? ‣ 2면의 취재 일기는 제목부터가 “‘국민 성희롱 주역’ 김형오․황우여․김진표”입니다. 셋이서 막후에 숨어 주도적으로 국민을 성희롱했다는 얘깁니다. 비공개 회의의 진짜 주역은 도외시한 채 신문사의 방침에 어긋난.. 더보기
강 의원을 YS로 둔갑시켜 버렸다? 중앙일보 기사와 논평에 대한 반론 ② “객관성과 균형감각은 어디로 갔는가” 김형오 강 의원을 YS로 둔갑시켜 버렸다? 민주주의는 다양성이 그 생명입니다. 우리 국회에도 다채로운 목소리들이 존재합니다. 나는 나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폄훼하거나 배척하는 일을 늘 경계해 왔습니다. 이번 국회 발언도 내 양심을 걸고 소신을 얘기했을 뿐입니다. 그러나 내 발언을 획일적인 시각으로 재단한 기사들을 보면서 당혹스러움을 느껴야 했습니다. ‣ 9월 1일자 중앙일보 2면 기사 중간에는 이런 발문이 돌출돼 있습니다. “‘79년 YS 제명’ 황당한 비유” 그래 놓고 기사에는 이렇게 적었습니다. “김 의원은 강 의원을 민주화 운동을 하던 시절의 YS로 둔갑시켜 버렸다.” 참으로 황당하기 짝이 없습니다. 달은 보지 않.. 더보기
‘성경 인용 궤변’과 ‘황당한 비유’? 읽기 전에 잠깐…내가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이유 중앙일보는 9월 1일자 및 2일자 지면의 상당 부분을 할애해 강용석 의원을 변호한 나에 대한 격렬한 비난으로 채웠습니다. 기사, 해설, 취재 일기, 만평, 칼럼은 물론 사설까지 동원해 신랄하게 나를 비판했습니다. 상당 부분이 사실을 왜곡‧과장했으며, 사리에 맞지 않는 지적들이 많아 독자들로 하여금 적잖은 오해를 하게 했고 나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습니다. 나도 국민 정서를 모르지 않고, 강 의원의 잘못을 두둔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습니다. 뒷수습도 안타까울 정도로 미숙했고 원성을 사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나는 국회 발언 이후 그의 '취중 실언'을 포함해 사후 처신까지도 옹호하는 사람처럼 비쳐졌습니다. 트위터와 일부 언론의 책임도 없지 .. 더보기
갈등과 반목을 넘어 모두 승자가 되는 길을 위하여 나는 왜 신공항 문제의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는가 갈등과 반목을 넘어 모두 승자가 되는 길을 위하여 김 형 오 존경하는 부산·울산·대구 시민 여러분, 경남·북 도민 여러분! 먼저 저의 발언으로 인해 마음 상하거나 실망감을 느끼신 분들에게 유감의 뜻을 전합니다. 지난주 두 차례 지역구를 방문해 저를 아끼시는 분들의 얼굴에 깊이 파인 수심을 보면서 저 또한 가슴이 아팠습니다. 저는 오랜 세월 부산 시민과 지역 주민들의 사랑을 받으며 현역 국회의원으로서 나름대로 소임을 다해왔습니다. 누구보다도 민심을 섬기고 헤아리고 두려워해온 만큼 이 문제를 두고 고민과 번뇌가 깊었습니다. 제 지역구에서 공항까지 숫자를 헤아릴 수조차 없이 내걸린 플래카드의 숲을 지나치며 과연 제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묻고 또 물었습니다... 더보기
아이들이 국회의장을 싫어한다고? 새로운 대화와 소통 창구로 을 선택했습니다. 새롭게 단장했는데 어떤가 싶어 짬을 내어 찬찬히 둘러봤습니다. 그런데 올라온 콘텐츠를 살펴보던 중 '아이들이 싫어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라는 다소 생뚱맞은 제목이 눈에 띄더군요. 이건 무슨 소린가 싶어 클릭했더니만 바로 내 얘기 아니겠습니까. 아니, 아이들이 나를 싫어한다구요? 그 옆에 현장에서 찍은 사진까지 ‘떠억’ 올려놓아 확인사살(?)까지 확실히 해두었더군요. 이거 꼼짝 못하게 당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현장 증거라며 올라온 사진. 그리고 기사 아랫부분에는 아이들이 싫어하는 패턴의 사람과 그 양태를 매우 분석적으로 설명해두었더군요. 그 글이 지적하는 사람 또한 바로 ‘나’였습니다. 이 글을 읽고 난 뒤, ‘네티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하고 잠시 생각해.. 더보기
"의회민주주의의 원칙이 무너지고 있다" * 이 내용은 가운데 한나라당 정미경 의원의 5분 자유발언입니다. ◯정미경 의원 : 존경하는 국회 부의장님, 그리고 선배․동료 의원님 여러분! 한나라당 수원 권선 정미경 의원입니다. 최근 신문 사설에서 보았던 내용입니다. “한국은 의회 난투극 분야에서 세계 최고다” 미국의 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가 한국 국회를 두고 쓴 기사라고 합니다. 또한 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8%가 현재의 국회의원 수를 줄여야 한다고 답을 했다고 합니다. 지난해 말 한미 FTA 비준안과 올해 미디어 관련법 처리 과정을 보면서 국민들도 실망과 충격에 아무 생각을 할 수 없었겠지만 현장에 있었던 당사자인 제게도 심한 떨림과 충격이었습니다. 해머, 전기톱, 소화기가 등장하고 신원을 알 수 없는 사람들이 국회 본회의장 방청석을 점령하여.. 더보기
민주당 강운태 국회의원이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보내는 두번째 서한 김형오 선배님, “언론악법 재협상만이 의회민주주의를 바로 세우는 길입니다” 김형오 선배님, 사상 처음으로 국회에서 치러진 국장을 뒷받침하시느라 노고가 많으셨지요? 그래도, 국민들의 스승과도 같았던 김대중 대통령님을 국회로 모신 것은 썩 잘된 결정이었고, 대한민국 국회의장으로써 잘 판단하신 것입니다. 이제 대통령님은 떠나셨지만, 마지막 가시면서까지 남·북간에 막힌 물꼬를 터주시고, 가해자들의 발걸음이 빈소에 이어져 “용서와 화해, 관용과 화합”의 가치가 얼마나 절실하고 아름다운 것인지를 새삼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 분의 삶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면서 오늘, 현충원 국립묘지에서 안장식을 마치고 나오다가, 문뜩 선배님이 떠올랐습니다. 갈등과 파탄으로 잔뜩 헝클어진 대한민국 국회의 ‘화해의 실타래’를 풀 사람이.. 더보기
김형오입니다 미디어관련법으로 온나라가 어수선합니다. 국회의장으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아니 오히려 밀려오는 중압감에서 몸을 가누기가 어렵습니다. 어서 빨리 해방되었으면 합니다. 가장 많이 싸운 국회, 그 국회의 한가운데 이 김형오가 있었습니다. 미디어법에 대한 국민 각계의 입장이 워낙 분명해서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시간이 가면 해결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결단을 내려야 할 그때 그자리에 제가 있었습니다. 결정을 내린 사람으로서,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지 않겠습니다. 왜 국회의장이 가만히 있느냐 하십니다. 워낙 할말이 많아서 저도 머리 좀 식혀야 할것같습니다. 이법은 지난 8개월간 우리 국회의 뜨거운 이슈였으며, 저는 양쪽으로부터 평생 얻어먹어도 족할만큼 욕 많이 먹었습니다. .. 더보기
흔들리며 피는 꽃 1. ....그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른다 물 한 방울 없고 씨앗 한 톨 살아남을 수 없는 저것은 절망의 벽이라고 말할 때 담쟁이는 서두르지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한 뼘이라도 꼭 여럿이 함께 손을 잡고 올라간다... 2.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 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오늘 문득 두 편의 시가 떠올랐습니다. 1은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 중 일부이고 2는 같은 시인의 ‘흔들리며 피는 꽃’입니다. 요즘 국회가 열리지 ..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