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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탄과 황제

40. 메흐메드 말년의 터번 쓴 초상화=『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436쪽 참고 (구간 320, 337쪽 참고) Portrait of Great Sultan Mehmet II(1480, by Gentile Bellini) 술탄 메흐메드 2세 말년의 초상화. 통풍과 비만으로 합병증에 시달리던 이 시기, 메흐메드는 대중 앞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다. 그러나 뚱뚱한 몸과 병색이 짙어야 할 얼굴은 이 인물화 속에는 묘사되어 있지 않다. 시와 음악, 풍류를 즐기기도 했던 그는 이슬람 학자들이 쓰는 모자(터번)를 즐겨 썼다. 그가 들고 있는 꽃은 야생 장미(카네이션?). (이스탄불 톱카프 박물관 소장. 종이에 불투명 도료로 채색. 39x27cm). 내 책의 표지에 활용한 초상화다. 15세기 후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작가 코스탄조 다 페라라(Costanzo Da Ferrara)의 청동 작품인 술탄 메흐메드 2세의 .. 더보기
39. 메흐메드 2세의 정복 사업 연표=『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435쪽 참고 (구간 337쪽 참고) 메흐메드의 정복 사업 A Chronological Table ; Conquests of Mehmed Ⅱ#Colin Imber ; 『The Ottoman Empire 1300~1481』에서 발췌(이스탄불) ※무라드 2세 1(1421~1437년) 1421~22년 ; 내전 1422~23년 ; 콘스탄티노플 포위 공격 및 내전 재발 1423년 ; 내전 후유증 1423~24년 ; 테살로니카 포위 및 비잔틴과 조약 1424~25년 ; 아이든(Aydin) 및 멘테세(Mentese) 정복 1425~27년 ; 테살로니카, 왈라키아, 세르비아와 전쟁 1426~28년 ; 베네치아 외교의 실패 1427~29년 ; 골루바트(Golubats) 함락, 차닉(Canik)과 제르미얀(Germiyan) 정복 1429~30년 ; 테살로니카.. 더보기
38. 겔리볼루 요새와 차낙칼레 요새 & 에디르네 유적=『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406쪽 참고 (구간 333쪽 참고) Gelibolu Fortress, Çanakkale Fortress & the Remains of Edirne 16시 53분을 지나가고 있는 차낙칼레의 시계탑. 큰바늘이 1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면 나는 반사적으로 1453년을 떠올렸을 것이다. 차낙칼레 항구. 맞은편에 겔리볼루(유럽) 쪽 다르다넬스 해협의 끝이 보인다. 나는 이 항구에서 배를 타고 다르다넬스 해협을 건너 겔리볼루로 갔다. 술탄 메흐메드 2세의 귀환 여정을 답사하기 위해서였다. 다르다넬스 해협을 지나면서 스마트폰에 담은 겔리볼루 요새. 겔리볼루(유럽)와 차낙칼레(아시아)는 이 해협을 사이에 두고 양쪽 해안에 요새를 구축해 놓았다. 다르다넬스 해협 한가운데에서 바라본 차낙칼레 요새. 보스포러스 해협보다는 폭이 넓지만 이런 전략적 요충지에 요새.. 더보기
5. 뱀 기둥, 뱀 머리, 관련 이슬람 그림=『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68쪽 참고 (구간 320쪽 참고) Snake Pillar, Head of Snake, and Other Islamic Paintings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몸통과 분리돼 나간 청동 뱀 머리 상. 1847년 아야 소피아 보수 공사를 하던 도중 발견되어 이곳으로 옮겨졌다. 나머지 두 마리의 뱀 머리는 행방불명이다. 히포드롬에 있던 뱀기둥의 본래 모습. 페르시아 군대를 무찌른 그리스 도시 국가들이 세운 승전 기념비 중 일부였다. 세 마리의 뱀이 뒤엉켜 밧줄을 꼬듯 한 몸을 이루며 기어올라가 머리로 커다란 청동 잔을 떠받들고 있다. 지금은 몸체만 남고 머리 부분은 사라졌다. 프랑스 작가 쥘 르나르가 쓴 (아마도)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 "뱀, 너무 길다"(全文)가 연상되는 작품이다. 아야 소피아 박물관에 소장된, 뱀 머리 기.. 더보기
6. 금이 간 술탄의 검=『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68쪽 참고 (구간 319쪽 참고) A Cracked Sword of Sultan 바다코끼리의 송곳니(상아)와 황금으로 장식된 술탄 메흐메드 2세의 장검(126.5cm, 이스탄불 톱카프 궁전 박물관 소장). 칼등에 금이 간 자국(동그라미 표시)이 선명해 히포드롬에 있는 델피의 뱀 기둥을 지나다가 술탄이 이 검을 빼들어 청동 뱀을 향해 휘둘렀다는 속설이 생각났다. 더보기
35. 술탄의 에디르네 내각회의 연설문 전문=『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332, 382쪽 참고 (구간 290, 407쪽 참고) 술탄의 에디르네 내각회의 연설문(1453년 1월)Sultan's Speech at Edirne Cabinet Meeting ※이 글은 술탄 메흐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 공격을 결심하고 에디르네 디반(내각회의)에서 그의 중신과 지휘관들에게 한 연설문이다. 도시 정복에 대한 그의 확고한 신념을 논리적‧예시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터키어판 『Istanbul’un Fetih Gűnlűǧű(이스탄불 정복 일지)』에 부록으로 실린 전문을 일부만 생략하고 옮긴다. 오, 나의 명장들과 충신들이여! 그대들이 주인인 이 나라 이 땅을 조상들이 수많은 전쟁과 위협으로부터 수호하여 물려주었음은 상기시킬 필요조차 없을 것이다. 그대들 중 노장들은 이 전투들에 직접 참전도 하였을 터이고, 젊은이들은 전하여 듣고 배웠을 것이다. 이.. 더보기
34. 부콜레온 황궁=『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312, 366쪽 참고 (구간 272쪽 참고) The Palace of Boukoleon 부콜레온 황궁 터. 어떤 조각가, 어떤 화가가 빚어낸 풍경이기에 이토록 아름답고 운치 있을까. 이 도시에서는 피사체 모두가 예술 작품이다. 오랜 세월 비와 눈과 바람과 햇살이 합작해 빚어낸 작품 앞에 서면 카메라 셔터가 바빠진다. 본래의 황궁은 첫 번째 언덕 위에 있었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확장되어 바닷가로까지 나오게 된다. 마르마라 바다 앞까지 지어진 황궁은 여름 별장, 황실 연회장, 예식장 등으로 사용되었다. 서기 1000년(바실리우스 2세 황제 시대)엔 바로 이 앞바다에서 그리스 화탄 발사 시연회도 가졌다. 내 책에 화탄 제작소를 부콜레온 황궁 뒤편 으슥한 곳으로 설정한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유감스럽게도 현재 남아 있는 부콜레온 궁터는 이것밖에 없.. 더보기
33. 오스만 가지, 오르한 가지, 무라드 2세 묘역 및 부르사 성벽 사진=『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306쪽 참고 (구간 265쪽 참고) Royal tombs of Osman Ghazi, Orhan Ghazi and Murad Ⅱ & Bursa walls 제국의 시조인 오스만 가지의 묘. 1299년, 창건 첫 해부터 정복 사업을 펼쳐 비잔틴 제국의 영토를 잠식해 나갔다. 오스만 튀르크의 첫 번째 수도인 부르사에 있다. 그러나 부르사는 그의 아들인 오르한 가지가 정복하게 된다. 오스만 가지를 비롯한 12개의 가족 무덤. 묘의 크기와 높이, 빛깔과 터번만 보아도 술탄의 무덤은 한눈에 구별된다. 제 2대 술탄 오르한 가지의 무덤. 초대 오스만 가지의 묘역과 나란히 있다. '술탄'이란 칭호를 처음으로 사용한 오르한 가지는 1326년 예니체리 부대를 창설했으며, 무력으로 정복한 부르사를 수도로 삼아 제국의 기틀과 체제를 확고하게 다져나갔다. 메흐메.. 더보기
32. 콘스탄티누스의 기둥=『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304쪽 참고 (구간 264쪽 참고) The Pillar of Constantine 두 번째 언덕의 포룸 한복판에 서 있었던 콘스탄티누스의 기둥. 여섯 개의 원통형 반암 구조물이 몸체를 이루고 있으며 그 구조물들 사이에는 철제 띠가 둘러져 있다. 맨 꼭대기에는 코린트 양식의 커다란 대리석 기둥머리가 있다. 1106년 폭풍으로 파괴되기 전까지는 그 위에 아폴론의 형상을 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조각상이 있었다고 한다. 기둥 전체 높이는 34.8미터. 지반이 2~3미터 더 올라왔다. 높이 10미터 정도인 콘스탄티누스 기둥의 토대. 오스만 시대에 수차례 수리·보수한 탓으로 조악한 모습이 돼 버린 기단 위에 까마귀 몇 마리가 내려앉아 한가롭게 햇살을 쪼거나 해바라기를 하고 있다. 더보기
31. 팜마카리스토스 교회(파티예 자미)=『다시 쓰는 술탄과 황제』 73, 295쪽 참고 (구간 255쪽 참고) Pammakaristos Church (Greek : "All-Blessed Mother of God") (Fethiye Camii : "mosque of the conquest") 테오토코스 팜마카리스토스 교회(기쁨 충만한 하느님의 어머니)로 12세기에 세워진 이 건축물은 콘스탄티노플 함락 이후 1456년부터 1586년까지 정교회 총대주교구 역할을 하다가 1591년 무라드 3세에 의해 모스크로 개조되었다. 현재는 반은 박물관, 반은 모스크로 사용하고 있는 특이한 곳이다. 휴관일(수요일)에 찾아가는 바람에 두세 차례 더 방문해야 했다. 돔의 내부 모습. 1960년대 초에 미국 비잔틴 연구소에 의해 복원되었다. 앰뷸러토리 스타일로 지어진 이 건축물은 북쪽, 서쪽, 남쪽의 아케이드가 돔으로 덮인 중앙부와 앰..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