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지금
'아마존의 눈물'보다 독립다큐가 나은 까닭
김형오
2010. 1. 15. 10:59
한국독립영화의 저력을 유감없이 보여줬던 <워낭소리>를 연출한 이충열 감독은 TV로 중계된 한 시상식 무대에서 세상을 향해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절규에 가까웠다.
"방송국 사장님들, 제작비 현실화시켜주십시오..그리고 독립PD들에게 저작권을 인정해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
순간, 시상식장은 찬물을 끼얹은 듯 얼어붙었다. 자리에 앉아있던 수많은 영화,방송 관계자들의 표정을 카메라가 훑어내고 있었지만, 그들 중 아무도 밝은 표정을 짓는 사람은 없었다. 모두들 숙연해질 수 밖에 없는 분위기 속에 그렇게 5초 정도의 정적이 흘렀다.
왜?
모두들 공감할 수 밖에 없는 발언을 이충열 감독이 대신해주었으니까...
그의 말이 백번 옳은 말이었으니까....
그로부터 1년 뒤, 서울시 영등포구 여의도동 1번지 대한민국 국회 입법조사처의 한 세미나실에서는 작지만 큰, 조촐하지만 엄청나게 의미있는 자리가 마련되고 있었다.
이름하여, <국내 독립다큐 제작환경과 실태에 대한 전문가 간담회>. (2010,1,14)
열악한 환경 속에 '장인정신' 하나만 믿고 작품을 만들고 있는 이른바 '독립PD'들 세 명이 국회를 찾아온 것.
세 명의 독립다큐멘터리 PD들을 이 자리에 초청한 것은 국회 입법조사처의 방송,영화 전문가들.
다큐멘터리라는 장르가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을 충분히 알고 있는 입법조사처 전문가들이 독립PD들의 목소리를 듣고 , 이를 법 개정에 반영하기 위한 자리인 셈이다.
이 중에는 한달 전인 2009년 12월 세계에서 가장 권위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제인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다큐멘터리 영화제> 대상에 빛나는 박봉남 PD도 포함돼있었다.
그의 말은 분노의 세월을 거쳐 거의 달관의 경지에 다다른 도인(道人)의 경험담으로 다가왔다. 흔히 말하는 공중파 방송국은 왜 이들 독립PD들에게 군림하기만 했을까? 그 점이 궁금했다.
" 워낭소리 덕분에 독립영화, 다큐멘터리가 대중의 관심을 받게 된 것은 독립PD들에겐 정말로 고무적인 사건입니다. 이충열 감독은 다른 일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심정은 비슷할 겁니다. 이충열 감독과 마찬가지로 40대중반 동년배들인 우리들은 거의 모두 비슷한 경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건 바로 방송국의 불공정 관행과 차별입니다."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다큐영화제 대상을 수상한 박봉남 감독.
<아이언 크로우즈 (Iron Crows/ 철 까마귀)>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 방글라데시 치타공에서 2년의 세월을 보낸 박봉남 감독이야말로 발로 뛰는 감독, 몸으로 부딪치는 다큐멘터리스트다. 덕분에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최고상인 대상을 거머쥐는 결실을 거둘 수 있었다.
이 자리에 참석한 '열혈' 독립PD는 박봉남 감독 뿐만이 아니었다.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다큐멘터리 <캘커타 스토리>로 널리 알려진 이성규 감독. 이감독은 한국 다큐멘터리의 대형화,자본화에 대한 걱정이 담긴 속내를 풀어놓았다.
" 한국 다큐멘터리가 <아마존의 눈물>,<차마고도>,<북극의 눈물> 등으로 호화롭고 대형화되고 있지만, 아직 세계시장에서 벌어들이는 돈은 투자대비 효과로 봤을 때 너무도 미미한 수준입니다. 예를 들어 20억 가까이 투입된 <차마고도>는 세계시장 판매액이 2억원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독립다큐멘터리의 투자대비 효과는 공중파 다큐멘터리보다 열배 스무배 높습니다. "
좋은 다큐멘터리가 만들어진다고 독립PD들은 입을 모았다.
이성규 감독은 또 방송국에 소속되지 않고 일하는 독립PD들의 애환을 거침없이 풀어냈다.
"워낭소리의 이충열 감독이 2억원 넘게 돈을 들여 만든 다큐멘터리를 들고 방송국을 찾아갔더니, 최대 8천만원까지 줄 수 있다는 답변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 식이라면 투입된 3년이란 시간은 제외하더라도, 1억 2천만원이 손해아닙니까? 그래서 이충열 감독은 자신의 다큐멘터리를 방송국이 아닌 영화관에서 방영할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지만, 방송국의 불공정 관행이 <워낭소리> 탄생의 주역인 셈이지요..."
<누들로드/KBS>, <한반도의 공룡/EBS>, <아마존의 눈물/MBC>,<차마고도/KBS> 등이 잘 만들어진 작품이긴 하지만, 방송국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지다보니 그 한계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게 이들의 한결같은 목소리.
"캐릭터가 살아있는 다큐멘터리는 현행 공중파방송국 시스템에서는 절대로 만들어지기 힘듭니다. 그건 이상하게도 오직 독립PD들의 근성과 헝그리 정신에서만 탄생하나 봅니다. 또 하나, 서구적 시각에 물든 마음가짐으로는 좋은 작품이 나오기가 어렵습니다. "
한마디로는 다 표현하기가 힘들다고.....
호평을 받은 작품. <신의 아이들>같은 작품은 독립피디들의 전문성이 빚어낸 쾌거라는 것.
이날 간담회에서 쏟아져나온 독립PD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들의 검토를 거쳐, 해당 상임위,의원,국회의장 등에게 전달된 후 법제화 과정을 밟게 될 예정이다.
전문가집단의 세세한 조언 및 문제 해결을 경험할 수 있다. 물론 , 법제화를 통해서.....
국회가 이들 독립PD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보태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독립PD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아울러 '작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말을 다시 한번 확인시켜준 독립PD들의 땀방울에 감사와 격려의 박수를 보내고 싶다.
posted by 백가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