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라오 마을에 ‘희망꽃’ 피운 꼬레아의 우정
국정감사 여적(餘滴)=길 위에서의 이삭줍기②
꼬라오 마을에 ‘희망꽃’ 피운 꼬레아의 우정
잉카 제국의 수도였던 페루의 쿠스코(Cusco) 외곽에는 꼬라오(Ccorao)라는 이름의 작은 시골 마을이 있습니다. 해발 3700미터 높이에 있는 원주민 마을입니다. 꼬라오, 왠지 정겹게 느껴지지 않습니까. 어쩌면 꼬레아(Corea, 한국)와 발음이 비슷해서 그런 느낌이 드는 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발음을 떠나 이 마을은 실제로 우리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6년 전부터 봉사단원을 파견해 희망의 씨앗을 심고, 또 꽃을 피워가고 있는 마을이니까요.
지난 10월 17일, 우리 팀은 바쁜 일정을 쪼개어 꼬라오 마을을 공식 방문했습니다. 무상 원조를 받던 나라에서 이제는 주는 나라가 된 대한민국이 국제 사회에서 G20 국가에 걸맞은 기여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 보기 위해서입니다. 꼬라오 마을은 우리의 원조 사업으로 현지 주민들 삶의 질이 높아진 대표적인 성공 모델입니다.
페루는 우리에게 중남미 지역 제1의 지원 대상국이면서 또한 전 세계적으로 봉사단을 가장 많이 파견한 나라이기도 합니다. 최근 3년간 연평균 지원 규모는 약 861만 달러. 중점 지원 분야는 교육 및 보건 의료, 인적 자원 개발 등입니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대외 원조(지원)는 다른 선진국에 비해 한참 부족합니다. 이웃 나라 일본과 비교해도 너무 미미해 수치로 말하기조차 부끄러울 지경입니다. 일본과 우리의 GDP 차이가 6배라면, 대외 원조 규모는 다시 그 1/10에 불과한 수준입니다.)
KOICA(이사장 박대원)는 옛 잉카 문명의 중심지로서 약 3천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꼬라오에 2004년 처음 도자기 학교를 세웠습니다. 잉카 전통 자기에 한국식 유약 바르는 법을 가르쳤는가 하면, 판로를 개척하고 마케팅 기법도 전수해 주었습니다. 그 결과 꼬라오 마을은 관광객 수가 늘어나고 도자기 매출액이 껑충 뛰어올라 주민들의 소득 또한 증대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비바 꼬레아”를 연호해가며 그렇게나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고 친근하게 대해 주었나 봅니다.
KOICA는 현재 내년에 완공할 계획으로 100만 달러의 예산을 지원해 꼬라오 마을에 감자가루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도자기 전시장과 마을회관도 확충할 예정입니다.
나는 이 마을에서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천사 같은 두 여성을 만났습니다. 권은주씨와 김아람씨. KOICA 단원인 그녀들은 미혼으로서 1년 남짓 꼬라오에 머물며 헌신적인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그 일이 얼마나 힘겨울는지 경험해 본 나는 잘 압니다. 왜냐면 꼬라오는 해발 3500~3700미터를 넘나드는 고산 지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백두산이 해발 2744미터입니다. 백두산보다도 1000미터나 더 높은 곳, 웬만한 식물은 서식조차 할 수 없는 까마득한 고지대에서 언어도 잘 통하지 않는 가난한 산골 마을 주민들과 어울려 그들에게 꿈과 희망을 심어 주고 있는 아담한 체구의 앳된 두 여성….
게다가 환경은 얼마나 열악한지요. 목욕은 거의 하지 않고, 옷도 한번 입으면 해질 때까지 갈아입지 않는다는 원주민 마을입니다. 그래서 그녀들이 더욱 더 대견하고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바로 대한민국의 힘이고 가능성입니다. 나는 그 연약해 보이는, 그러나 누구보다도 강인한 그녀들에게서 내 조국의 눈부신 미래상을 보았습니다. 21세기를 선도해 나갈 젊은이들의 맑은 열정과 뜨거운 숨결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국정감사로 떠난 출장길에서 만난 그녀들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하며, 마을에 머무는 동안 열 번도 넘게 외쳤던 구호를 다시 한 번 외쳐봅니다. “비바, 페루! 비바, 꼬레아!, 비바, 꼬라오!”
사실 여기 오기 전날 밤부터 우리는 고산병 예방약도 먹고, 주의를 단단히 들었습니다. 절대로 뛰지 말 것, 무거운 것 들지 말 것, 어지럽거나 구토가 나면 곧바로 연락할 것…. 그러나 원주민들의 뜨거운 환영과 따뜻한 환대 덕분인지 우리는 전날의 주의 사항도, 여기가 백두산보다 1000미터나 높은 곳이란 사실도 까맣게 잊고 말았습니다. 마치 그들과 오래 전부터 알고 지낸 사람처럼, 혹은 지리산 계곡 같은 곳에서 반갑게 만난 지인처럼 금세 친해져 격의 없이 어울렸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짧은 만남이었지만 작별하는 데는 꽤 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아쉬운 마음에 발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면 원주민들은 어김없이 그 자리에 서서 계속 깃발을 흔들며 함박웃음으로 우리를 배웅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은 머물러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몇 차례의 재촉 끝에 우리는 손을 흔들며 마지막 인사를 한 뒤 타고 온 버스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그런 우리 뒤를 원주민들의 눈길과 마음이 아주 멀리까지 따라 나왔습니다. 이 모두가 KOICA의 두 천사들 덕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