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한의 사막에서 꿈을 찾고 나눔을 실천하다
극한의 사막에서 꿈을 찾고 나눔을 실천하다
-사진으로 스케치한 사하라 사막 마라톤 참가기
1탄=왜 갔냐건 웃지요
드디어 그리고 그리던 사막에 도착했다. 카이로에서 버스로 3시간 정도 걸렸다. 우리가 첫 밤을 보낼 곳은 와디 엘 라얀이라는 UNESCO 자연보호구역에 있는 호수 가(southern lake)이다.
웃은 죄
지름길을 묻길래 대답했지요.
물 한 모금 달라기에 샘물 떠주고
그리고는 인사하기에 웃고 말았지요.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웃은 죄 밖에
- 김동환 -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고 걱정했다. 지금이라도 그만 둬. 절대로 무리하지 마라. 그동안 가정에 오순도순 산 것도 아닌데, 퇴직하고 나서는 또 이러면 어쩌지. 이젠 가정에 충실해라. 그게 순리야, 순리. 그래 난 분명 세월이 가져다주는 순리는 거스리고 있는지 모른다. 세월을 거스르고 싶은 마음은 없다. 누가 뭐래도 나이만큼 늙는다. 이제 60대 중반을 접어들었다. 평소 몸 관리는 잘 한 편이라 건강은 하지만, 나이만큼 늙었다는 걸 난 누구보다 잘 알고 부담 없이 받아들이고 있다. 이젠 손자 손녀 재롱을 보면서 한 없이 행복해하고, 이게 행복이구나 하고 살 나이인 것도 부인하지 않는다. 부부가 살짝 손 잡고 집 주변을 산책해야 하는 것이 평온이요 순리라는 것도 안다.
하지만 난 떠나기로 했다. 난 사하라 사막 마라톤에 참가하기 위해 카이로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유도 명분도 따지지 마라. 그냥 맘이 내키는 대로 떠나고 발길이 닿는 대로 걷는 것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흔히 상상하듯이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서도, 거창한 성취감을 만끽하기 위해서 떠나는 것은 아니다. 그양 가고 싶어서, 그리고 그냥 사막의 아름다움, 사막의 고독, 사막의 황량함, 사막의 처절함을 즐기고 싶어서 이 길을 나섰다.
< 남으로 창을 내겠소 >
왜 사냐건 웃지요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어랴오
강냉이가 익거들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건
웃지요
- 김상용 -
많은 사람들의 걱정과 염려를 뒤로 한 채 떠났다. 속으론 원인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을 간직한 채 드디어 사막에 들어왔다.
사막에서의 첫 밤, 이상하게 모두들 평화로웠다.
긴장감이 팽배해야 할 분위기이지만, 이상한 일이다. 내일부터 지고 가야할 배낭의 무게와는 상관이 없는 오늘 저녁과 내일 아침 먹을 것은 모두들 엄청나게 많이 가져왔다. 맘껏 양껏 먹어두자,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더 비축해두기 위해서. 먹고 또 먹었다. 과식했을 때의 '기분 나쁨' 현상이 나타났다. 그래도 먹어둬야 한다. 또 먹었다. 에너지 비축을 위해, 서울에 있을 때부터 체중을 늘리기 위해 힘썻지만, 실패했다. 카이로에 있는 4일 동안도 열심히 먹었지만, 체중은 늘지 않았다. 오늘 밤이 에너지를 조금이라도 더 비축해 둘 마지막 기회다. 그리고 맛 있는 것도 지천으로 많다. 모두들 많이도 가지고 왔다.
사막에서의 첫 밤, 난 너무 행복했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 지 모른 채 달콤한 꿈나라로 빠져들었다.
평양성에 해 안 뜬대도
난 모르오
왜 가냐 건
웃지요
2011 사하라 레이스 첫날 밤을 보낼 야영장, 호수 가에 설치된 첫 야영장이 사막에 왔다는 느낌마저 주지 않는다. 주최측의 세심한 배려에 감사한다. 선수(참가자)들은 사막 도착 당일 저녁과 다음 날(시합 출발일) 아침에 먹을 식량은 별도(비닐봉지)로 들고 간다.
참가 선수들을 맞아 주는 현수막, 이 곳이 내일 첫 경기의 출발선이다. 현수막 밑에 보이는 것이 대만 민속 공연단의 인형 탈이다. 그들은 이 탈을 교대로 쓰고 250km를 걸었다. (1탄 끝)
♠ 2탄 바로가기 ☞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 마라.
드디어 출발 신호가 울렸다. 나는 이제부터 낙타가 되어 저 광막한 사막을 달려야 한다.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어디서 어떤 길이 나타날지 전혀 모른다. 오직 걷고 또 달릴 뿐이다...
♠ 3탄 바로가기 ☞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창공에서도, 가슴에서도 저마다 깃발이 펄럭인다. 꿈과 희망이 나부낀다. 나그네는 길에서 쉬지 않는다. 마라토너는 러닝슈즈를 벗지 않는다. 메마른 사막에서도 생명을 이어가는 나무가 있다...
♠ 4탄 바로가기 ☞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모래가 사정없이 얼굴을 때린다. 천막이 날아가 버릴 것만 같다. 그래도 석양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홍시처럼 빨간 달이 떴다. 오랜 꿈 나래를 피우기 위해 간밤엔 바람이 그렇게 불고 내게는 잠도 오지 않았나 보다...
♠ 5탄 바로가기 ☞ 완주 소감을 미리 쓰다
“예순세 살, 최고령자로서 250km를 완주하셨는데 소감은?” “할 만 하네요, 뛰어 보니 별거 아니네요.” 자문자답. 내가 묻고 내가 대답했다. 나와의 인터뷰로 각오와 의지를 새롭게 다졌다...
♠ 6탄 바로가기 ☞ 순풍에 돛 달고서
시작한 게 방금 전 같은데 벌써 훌쩍 절반이 지나갔다. 저 바람은 이 길을 정신없이 달리고 있는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들려주고 싶은 걸까? 사막에서 나는 자연이 창조해낸 박물관과 미술관과 음악당을 보았다...
♠ 7탄 바로가기 ☞ 구름에 달 가듯이
상현달 아래서 밤을 새워 울트라 걷기를 했다. 내 발이 고단해지면 무릎으로 기어서라도 나는 끝까지 가야 한다. 외롭다. 조금은 두렵다. 그렇다, 고독과 자유는 서로 다른 이름이 아니었다...
♠ 8탄 바로가기 ☞ 태산이 높다 하되
대장정의 막이 내렸다. 피라미드를 한 바퀴 돌자 레이스는 끝나 있었다. 팡파르가 울리는 가운데 완주 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런데 뭐가 이리 아쉬운 걸까? 마음 같아선 10km 이상도 더 갈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