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헤드라인

어떤 투표를 할 것입니까

김형오 2025. 5. 23. 12:40

어제 도쿄에서 부재자투표를 했습니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생각보다 사람이 꽤 있었습니다. 10명쯤은 됐으니까요. 투표하면서 속으로 기원도 했습니다. "위기의 대한민국, 딛고 일어서기를!" 내가 본 투표 하러 온 사람들은 대체로 중년 또는 청장년이었습니다. 외국이니 선거운동방법이 달리 있겠습니까만 다들 나름대로의 소명의식과 애국심으로 투표했다고 믿고 싶습니다.

이제 열흘 남았습니다. 나라의 운명이 결정되는 날입니다. 힘들게 쌓아오고 지탱해 왔던 대한민국이 무너지는 끔찍한 상상을 여러 번 해왔던 차라 시간이 갈수록 심정이 착잡해집니다.

이번 선거를 두 가지 측면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명한 국민이라면 깊은 고려가 있을 줄 압니다.

첫째는 사람, 곧 인성입니다. 가열찬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으려면 세계무대에서 걸맞은 활동을 하고 그런 대접을 받을 지도자가 나라를 대표해야 합니다. 신뢰받지 못하는 사람이라면 외교무대에서 설자리가 없습니다. 영어를 잘하느냐 못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믿을 수 있는 지도자인지 수시로 말 바꾸기를 하는 사람인지에 따라 국가관계와 국제적 위상이 달라집니다. 과거와 달리 G7, G20, APEC 등 일 년에 몇 번씩이나 정상들이 참여해야 하는 국제회의가 열리고, 또 양국 간 정상회담도 빈번히 열리는 판인데, 믿을 수 없는 지도자는 설자리가 없습니다. 한국처럼 무역으로 먹고살아야 하고 국가안보가 중대한 나라의 지도자는 사실 내치보다 외교가 더 중요하다 하겠습니다. 먹고 사는 문제와 죽고 사는 문제가 동시에 걸려 있는데도 어떻게 되겠지 하는 안이한 생각을 하는 국민들과 오늘은 이 말하고 내일은 저 말하는 국가지도자를 가진 나라라면 파국은 면할 길이 없습니다.
국내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가진 게 없는 나라가 오늘 이만큼 된 것도 교육 덕분이었습니다. 인재를 양성했기에 우리는 세계무대에서 뒤처지지 않았고 활약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 교육의 밑바탕은 인성입니다. "한국사람은 뛰어나다, 그리고 믿을 수 있다."라는 신념이 세계에 통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정치가 살벌해지면서 인성이 험악해지게 되었습니다. 정치인들의 상대를 증오하고 적대시하는 못된 버릇이 점점 도를 지나쳐 온 사회 곳곳에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죄를 지으면 벌을 받아야 나라 기강이 유지되는데, 이젠 이마저도 무너지고 있습니다. 교육 특히 인성교육의 황폐화로는 나라의 미래가 없습니다. 지도자가 인성을 갖추지 못했는데, "자식들에게 어떻게 바른 사람이 되라"고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가족에게 욕설하고 폭력적 행동을 했던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아 놓고 아이들에게 올바른 인성교육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선택은 여러분의 자유입니다만 교육으로 일어선 나라가 잘못된 교육으로 인성이 파괴되고 나라가 망한다면 누굴 탓하고 원망하겠습니까. 그런다고 망가진 나라와 가정이 돌아올까요.

둘째는 개헌입니다. 지도자 한 사람에 의해 나라 운명이 어떻게 바뀌느냐는 것은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더욱 심각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그래서 개헌 논의가 쟁점이 되는 거지요. 대통령제의 장점으로 과거 우리나라가 지탱하고 발전했다면 지금은 대통령제의 단점으로 계속적인 나라의 위기를 맞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들 개헌하겠다고 합니다. 그런데 권력을 잡고 나면 마음이 변해서 개헌을 않거나 오히려 이상한 개헌을 하려 합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개헌의 핵심은 두 가지입니다.

'제왕적'대통령의 권한을 축소 조정하는 것과 무책임한 국회와 국회의원에게 책임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얼마나 어떻게 구현하려는지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봐야 하는 것이 국민의 의무이자 주권행사를 제대로 하는 것입니다. 말장난에, 개헌시늉에 또 속아서는 안 됩니다.

오랫동안 개헌을 주장해 왔던 저 같은 사람은 두 후보의 개헌 주장의 진실됨과 아님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위험한 것은 섣부른 개헌으로 이 나라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도 사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총통제"라는 말이 나옵니다. 히틀러는 총과 탱크로 집권하지 않았는데도 선거와 의회의 형식적 절차를 거쳐 종신 대통령 즉 총통이 됩니다. 유태인은 물론이고 자기 뜻에 반하는 사람은 닥치는 대로 구속 처형합니다. 자유민주주의는 사라지고 감시와 억압, 독재가 판을 칩니다. 그리고 2차 세계대전이란 인류사 최악의 전쟁을 치릅니다.

어느 당의 개헌안을 보면 불현듯 그런 공포를 느낍니다. 1971년 야당 대통령 후보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이번 선거 잘못되면 다시는 이런 선거(대통령 직선제) 없을 것이라 했는데, 불행히도 그 말은 그대로 적중(대통령 간선제인 '유신'개헌)했습니다. 50년이 더 지난 지금 그때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절규가 새삼 떠오르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이번 선거가 마지막이 될 수도 있습니다. 4년 연임대통령 개헌으로 한국에 종신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이 없다고 할 수 있을까요.

한국의 국가적 운명을 쥔 대통령선거입니다. 결국은 국민의 선택입니다. 나와 우리 가족, 우리가 몸담고 있는 공동체의 현재와 미래가 걸려있습니다. 투표하러 가기 전 사랑하는 아이들의 눈동자를 똑바로 쳐다보고 가십시오. 그리고 돌아와서도 자식을 얼싸안으며 너희들 미래를 위해 양심에 따라 투표했다고 당당히 말하십시오. 훗날 사랑하는 나의 손자 손녀들이 밝게 뛰노는 대한민국을 상상하며 투표하십시오. 나라의 운명은 당신의 손에 달려있습니다.

도쿄에서 김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