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8-17 대구일보] 김형오 전 국회의장 “공화주의 통해 스스로 공동체 지켜야 해”

“이재명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은 도덕성 결여다. 보수는 윤리, 도덕적 삶을 통해 공동체에 대한 봉사와 섬김의 자세로 나아간다. 우리는 80년대 민주화 운동을 거치며 ‘민주’라는 것만 주장해 왔는데 이것은 유신독재로부터의 민주화다. 공화주의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고민과 공부가 결여돼 있다. 즉 공화주의를 독재와 비슷한 것으로 인식하는 것. ‘우리’라는 공동체를 지키자는 공화주의를 통해 주인의식을 가진 공동체로 성장해야 한다”
국민의힘이 제21대 대통령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서 ‘소수 야당’으로 전락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대대적인 내부 손질에 돌입해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서 ‘당 해체 수준’의 강도 높은 쇄신이 뒷받침돼야 깊은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고 조언한다.
일본에서 귀국 후 이삿짐 정리도 채 마치지 못한 김 전 의장을 대구일보가 지난 12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일본 게이오대 교수로 지내다 귀국한 걸로 안다. 일본에서는 어떻게 지냈나?
▲1년간 게이오대 방문교수로 있었다. 지난해 8월 하순에 가서 지난 달 말에 귀국했다. ‘가깝고도 먼나라’라고들 많이 표현하는데 느끼고 배운 것이 많다. 우리집은 좀 독특하다. 평생 민족운동하며 창씨개명을 거부한 할아버지, 만주에서 청년기를 보내신 부모님이 계시다. 나만 해방후 고국에서 처음으로 태어났다. 이러한 가풍에 우리 가족은 일본과 거리가 먼 생활을 했다. 그냉 일본 것이라면 멀리 했다. 가와바다 야스나리의 『설국』도, 우리나라를 휩쓸었던 소설 『대망』도 안보고 안읽었다. 여든을 앞둔 나이에 일본어 공부도 지난 5월에 히라카나 가타카나 시작했다. 다른 사람들은 도전에 박수를 보내기도 하지만 웃긴다고 한 사람도 있었다. 지리상 바로 가까이 있는 나라이자 역사, 문화적으로 가까운 나라인데 이리 모르고서야 되겠나. 더 늙기 전에 조금은 배우자 하는 마음이다. 아울러 일본을 알더리도 제대로 알아야 하고 알릴 것도 제대로 해야 한다. ‘친일파’ 프레임도 쇄국, 국수적 반일감정에서 벗어나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진실되게 보고 배우고 전할 사람이 나같은 사람이라 생각한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도쿄시내를 계속 걸어다녔다.
-국민의힘의 최근 행보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국민들은 국민의힘에 관심이 없다. 국민의힘 스스로 그렇게 만들었다. 자업자득으로 컨벤션효과도 못누리고 있는 것이다. 선거캠페인 통해 다시 일어서겠다는 계기로 삼아야하는데 치고받는 모습이 안타깝다. 이런 모습을 보이는게 불가하도록 사전에 비대위, 선관위, 후보들 간 조율이 돼야지 이같은 흠집내기, 상대를 프레임에 가둬놓고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전당대회 최고 뉴스로 나오고 있으니 정책, 비전 등 다른 좋은 얘기 백번해도 (언론에) 안 실린다. 이런 것이 정치적 지혜와 경륜이자 절제와 자제를 통한 응집력 확산인데 실패했다. 김문수, 조경태, 안철수, 장동혁 모두 다 당의 자산이고 아까운 인물들인데 또 흠집내기 소모전에 희생당하고 있다. 현재의 모습으로는 국민에게 희망주는 정당은 요원하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을 어떻게 해야 하나?
▲아직도 윤 전 대통령 문제로 시끄럽다는게 한심하다는 생각이다. 지금 구속 중이고 일신의 자유가 억압된 사람에게 당에서 받을 건가 말건가, 제명이냐 아니냐가 뭐 그리 중요하나. 그렇게 한가한가. 그러니 국민의힘이 외면 받는 것이다. 지금 해야할 일이 뭔지도 모르는 것 같다.
-보수정당이 제 역할을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
▲수십년 전에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이 야당 시절에 누군가 “웰빙 정당” 이라고 해서 말들이 많았다. 지금은 그때보다 더 심한것 같다. 아예 희망이 안 보인다. 일단 리더십의 부재다. 또 위기의식이 없다. 당이야 어떻게 되든 나만 살면된다는 극도의 이기주의가 보인다. ‘당과 나라의 미래를 위해 함께 죽겠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해 이 한 몸 먼저 던지겠다’는 각오와 결기는 안 느껴지고 그런 자세도 없다. 특히 보수의 가치를 추구하지도 않는다. 삼권을 움켜 쥔, 역대 가장 막강한 정권이 들어섰는데 싸울 생각일랑 아예 없는 듯 하다. 숫자 타령(국회 원내 의석수), 법 타령, 구조와 분위기 탓으로 돌리고 (국회의원들) 자기 지역구와 제 사람만 챙기면 되는줄 안다. 이러면 전패, 완패다. 이러면 공당인 국민의힘 모두가 배신자 된다. 무슨 뜻이냐면 지지자에 대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행복하게 잘 살아보겠다는 국민에 대한, 한국의 경이적 발전을 칭송해왔던 외국과 외국인에 대해, 무엇보다도 대한민국과 우리 후손에 대한 배신이다.
-보수가 분열한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앞에 이야기 한 그대로다. ‘몸 던져 불쏘시개 되겠다’는 사람이 없는데 무슨 일이 되겠나. 각자도생 분위기는 결국 망하는 집안 분위기인 것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민의힘 정당 해산까지 거론하는데?
▲참 서글프다. 이런 비민주적, 반민주적 언행을 듣고 분개하지 않는 국민의힘이 정당이냐? 반헌법적 사고를 가진데 대해 처절하게 투쟁하고 헌법정신을 유린하는 독재주의자, 독재정치에 강력히 대항해야 한다. 그렇게 하지 못하면 스스로 소멸한다.
-보수 정치의 위기라는 말이 많다. 위기에 빠진 보수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 어떤 방향이 필요하다고 보나?
▲위기다 보통 위기 아니다. 이런 나약하고 무기력한 자세라면 백약이 무효다. 상대가 강하다고 지레 겁먹고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모습을 보이니 지지율도 바닥일 수 밖에 없다. 결국 이재명·민주당 정부가 잘하지 못하는 것, 정권의 해결 노력에도 쉽게 풀리지 않는 어젠다와 현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특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미래성장동력 확보와 추진을 못하는 정권은 후진국으로 전락할 것이란 우려가 든다. 지금 시급한 문제가 한두가지가 아니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관세 문제에 있어 세계는 새로운 양상의 무역 전쟁에 돌입했다. 자유무역 시스템이 붕괴된 지금 미국과의 관계, 중국, 유럽, 중남미, 동남아, 중동과는 어떤 연대와 관계 설정을 통해 대응할 것이냐는 시장경제와 성장을 내세우는 국민의힘이 앞장서야 한다. 또 기후 온난화로 인한 새로운 기회는 우리에게 없나 살펴야 한다. 식량 문제, 탄소 배출, 환경 변화 등이 지구와 인류 생존의 화두인 가운데 포항, 부산, 울산 등을 통한 북극항로를 개발하면 세계의 무역 구조가 바뀐 가운데 역할이 있을 수 있다. 인공지능(AI) 산업도 뒤쳐져 있는데 기초과학 분야 및 전문인력의 양성에 엄청난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정된 재원이지만 집중투자 해야 하는데 현 정부는 AI 산업이 뒤쳐진 줄도 모르고 있다. 또 AI 산업에 많은 전력이 필요하니 원자력 에너지를 계속 늘려야 한다. 원자력 산업은 ‘금덩어리’다. 세상에 위험하지 않은 것은 없다. 물론 재생에너지도 필요하다. 다만 재생에너지는 한계가 있으니 보완적이란 생각으로 하면 된다. 특히 더욱 심각한 것은 우리나라가 소멸하고 있다. 즉 저출생·초고령화 문제 해결에 보수정당이 특화되어야 하고 앞장서서 해결해 나가야 한다. 일본에 있는 동안에도 귀국해서도 임산부를 보는 일이 정말 드물다.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가 그 전환점이 될 수 있을까?
▲실낱 같은 희망이라도 걸어봐야한다는 생각이다. 국민의힘이 이뻐서 그런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소생을 위해서다. 그러나 어정쩡한 타협주의로 가면 끝이다. 국민의힘 지지율이 바닥인 것은 말만하고 나면 일은 다한 줄 안다. 그러니 상대가 국민의힘 우습게 본다. 성명서, 플랜카드, 쇼 정치를 지겹게 생각한다.
-개헌의 당위성을 설파하며 개헌주장을 하는 걸로 안다. 국가 미래를 위한 개헌 방향은?
▲나 같은 개헌주의자 드물 것이다. 그러나 지금 어설픈 개헌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 개헌도 하려면 목숨 걸고 해야한다.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지키고 사회주의, 귀족 노조의 노동자 천국은 결사저지하겠다는 자세가 확립돼야 한다. 무엇보다도 이런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친다는 전제하에서 개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총통제 개헌되고 나라는 끝장 난다.
-보수 지지층에 당부의 말씀이 있다면?
▲보수의 가치란 무엇이냐. 첫째는 자유민주주의, 둘째는 시장경제, 셋째는 튼튼한 국방과 외교요 넷째는 도덕성이다. 그런데 보수의 가치를 되살리려는 기백, 의지와 투지가 보이지 않는다. 나는 대구, 경북 사람들 사랑하고 좋아한다. 그러나 현재 처한 상황에 여러모로 실망, 좌절 많이 했을 것이다. 목숨 걸고 지켜온 이 나라의 근본 가치가 흔들리는 판인데 보수에 대한 어떤 자긍심이 있겠나.
■ 김형오 전 국회의장 프로필
1947년 경남 고성 출생.
학력)
경남고등학교. 서울대 외교학과. 서울대 대학원 정치학 석사. 경남대 대학원 정치학 박사.
경력)
1986~1990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1990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
1992~2012 제14, 15, 16, 17, 18대 국회의원
2004~2005 한나라당 사무총장
2006~2007 한나라당 원내대표
2008~2010 제18대 국회 전반기 의장
2013~2019 부산대학교 사회과학연구원 석좌교수
2020 미래통합당 공천관리위원회 위원장
수상)
2010 그리스 의회 황금메달 훈장
2010 몽골 북극성 훈장
2013 국민훈장 무궁화장
이상훈 기자 hksa707@idaegu.com
[2025-08-17 대구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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