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혁도, 한동훈도 내려놓아야 한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
말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끝내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국민의힘 당원이 아니며, 당을 떠난 지 오래된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유민주주의를 지켜온 보수의 가치, 대한민국의 미래를 걱정하는 마음까지 떠난 것은 아닙니다. 그래서 이 글을 씁니다. 이 글이 공개되면 장동혁 대표 쪽에서도, 한동훈 전 대표 쪽에서도 나를 욕하겠지요. SNS를 달구고 있는 양 진영간의 서로를 죽일 듯한 표현에, 나에 대한 비난이 보태지겠지요. 그래도 감수하겠습니다. 침묵하는 것이 더 큰 죄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보수를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지금 국민의힘은 제대로 가고 있습니까. 거대 여당의 입법 독주를 막고, 삼권 분립과 국가 안보, 민생과 나라의 장래를 지키겠다는 야당의 결기와 실력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유감스럽게도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필리버스터를 해도 결과는 늘 비슷했습니다. 그런데도 야당은, 특히 지도부는 그것으로 할 일을 다한 것처럼 생각하니 답답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여당의 밀어붙이기를 막기에는 숫자가 부족하다는 핑계나 변명만으로는 국민을 설득할 수 없습니다. 야당은 본래 불리한 조건, 열악한 상황에서 싸우는 존재입니다. 문제는 의석수가 아니라 각오와 전략, 그리고 국민의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신뢰입니다.
그런 점에서 장동혁 대표는 책임을 면할 수 없고 피해서도 안 됩니다. 지난 지방선거 결과가 말해주지 않나요. 장 대표가 공들인 충청권은 광역단체장 선거에서 전패했고, 그가 지원한 지역은 일부를 빼고 줄줄이 무너졌습니다. 당 안팎에서 “장동혁이 간 곳은 떨어지고, 가지 않은 곳은 살았다”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이런 혹독한 평가 앞에서 선거를 지휘한 대표가 자리를 지키겠다는 것은 정치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후안무치하다는 얘기가 안 나왔으면 합니다. 대표직은 명예가 아니라 때로 멍에이며, 무엇보다 책임입니다. 자리를 지키는 것이 당을 지키는 일인가요. 천만에요, 때로는 물러나는 것이 더 큰 정치입니다. 장 대표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변명도 버티기도 아닙니다. 즉각 대표직을 내려놓고 당이 새로 설 공간을 열어주는 일입니다. “죽어야 산다”는 정치권의 오래된 진리를 체득해야 할 때입니다. 더 이상 스스로를 구차하고 초라하게 만들지 말기 바랍니다.
한동훈 전 대표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그는 방관자나 국외자가 아닙니다. 작금의 국민의힘 분란은 본질적으로 ‘장동혁 대 한동훈’의 싸움으로 비치고 있습니다. 한 전 대표 본인은 억울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치 지도자는 억울함보다 책임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더구나 지금은 윤리위를 앞세운 제명과 징계, 친한계와 반한계의 대결 구도가 당의 전면을 덮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정부·여당의 독단과 독주, 입법 유린, 삼권 분립 훼손, 국가 안보 불안, 특검 정국에 맞선 소속 의원들의 눈물겨운 저항마저 국민의 시야에서 가려지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두 사람이 함께 짊어져야 할 가장 무거운 책임입니다. 두 사람을 에워싸고 벌어지는 이전투구 양상을 두고, 이재명 대통령은 '야당 복'도 톡톡히 누린다는 말이 나온다고 생각하지 않는가요.
한동훈 전 대표가 지난 선거에서 자기 선거보다 전국 지원에 몸을 던졌다면 어땠을까요. 자신을 낮추고 죽이며 동료 후보들을 살리는 모습을 보였다면, 그를 싫어하던 사람들조차 다시 보았을 것입니다. 1년 10개월 후면 총선인데, 그것을 못 참았습니다. 당대표·비대위원장 시절 금배지 달고 했던가요. 자기를 쫓아낸 당이지만 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도와달라고 전국을 누비며 호소했더라면 그의 애당심과 희생정신은 깊이 각인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는 자기 정치의 욕심을 드러낸 사람으로 비쳤고, 당내 갈등의 한 축이 되고 말았습니다. 똑똑함만으로 큰 정치인이 되지는 않습니다. 국민은 능력보다 먼저 희생을 봅니다. 지도자는 자신을 내세우고 증명하려 할수록 작아지고, 자신을 낮추고 비울수록 더 커집니다. “잊히는 두려움” 때문이었나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독점욕 때문이었나요. 지금 이것이 한국을 움직이는 지도자란 사람들의 공통된 약점이기도 하지만 안타깝네요. 잠시를 참지 못하는 그 조급함 때문에 우리 정치의 품격이 떨어지고, 앞으로도 나아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 사람 모두 내려놓아야 합니다. 이미 늦었지만 완전히 망가지지는 않았습니다. 비우고 놓으면 기회는 다시 옵니다. 거두절미하고, 장동혁 대표는 즉각 사퇴해야 합니다. 한동훈 전 대표는 입당 여부와 별개로 다음 총선 전까지 당권 도전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합니다. 그래야 당이 삽니다. 그래야 보수가 삽니다. 그래야 민주주의도, 나라도 다시 숨쉴 수 있습니다. 그래야 두 사람도 다시 살 수 있습니다.
두 분 모두 큰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모습은 점점 그릇을 스스로 작게 만들고 있습니다. 깨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국민은 두 사람의 피 터지는 승부를 보려고 보수를 지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대한민국을 바로 세울 책임 있는 야당을 보고 싶은 것입니다. 과오도 있었지만 선배 정치인들이 이 땅의 민주주의와 국리민복을 위해 흘린 땀과 눈물을 생각한다면, 이제는 결단해야 합니다. 장동혁도, 한동훈도 내려놓으십시오. 그래야 모두가 다시 살 길이 열립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