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오늘 반구대 암각화를 보존하기 위해 제안한 내용은 콜럼버스의 달걀 깨기와 같은 겁니다. 콜럼버스가 달걀을 깨서 세운 뒤에는 누구나 할 수 있는 방법이지만 처음 발상을 전환해 해결책을 찾는 건 쉽지 않습니다. 반구대 암각화 보존 대책은 누구나 알고 있는 방법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동안 정부나 지자체가 서로 자신들의 방법만 고집하느라 결국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10여년 세월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 암각화는 소리 없이 사라져 가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발상을 바꿔 보존대책을 지금 바로 시행해야 할 때입니다. 이렇게 기자회견을 하고 나서 또 글을 올리는 이유는 울산시의 제방 쌓기 방법은 문화재청이 주변 환경을 해친다며 반대하고 문화재청의 사연댐 수위 낮추기는 울산시가 사연댐 대신 쓸 물을 우선적으로 확보해야 된다며 반대하느라 정작 반구대 암각화를 방치한 결과가 너무나 참혹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울산 반구대 암각화를 처음 현장에서 보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수천 년을 버텨온 고래잡이 그림, 호랑이, 배 타는 사람 등 다양한 볼거리가 바위 면을 가득 메우고 있을 거라는 설렘으로 가까이 다가가 샅샅이 들여다봤습니다. 그러나 처음엔 아무리 들여다봐도 말라붙은 검은 물이끼와 누런 흙으로 덧칠된 바위표면에 간혹 긁힌 자국 정도만 보일뿐 호랑이나 고래 모습은 쉽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현장조사 중이던 연구자가 하나씩 짚어가며 가르쳐주는 걸 따라가며 겨우 흔적을 찾아낼 정도였습니다. 물 건너편에서 망원경으로 암각화를 보는 사람들은 사실 그런 흔적조차 찾기 어려웠습니다. 지나다 보니 열심히 망원경을 들여다보던 어린 아이가 안타까운지 같이 온 아빠에게 계속 고래가 어디 있는지 물었습니다. 아빠가 망원경을 이리저리 붙잡아 주며 흐릿한 흔적이라도 보여주려고 애썼지만 결국 포기하고 전시관으로 발걸음을 돌리더군요. 저도 전시관으로 뒤따라가며 발걸음이 정말 무거웠습니다. 지금은 그나마 물위에 드러나 있지만 곧 다시 물속에 잠길 걸 생각하니 우리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할 만한 귀중한 문화재를 가지고 있다고 자랑할 자격이 있는가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습니다.
오늘 제가 즉시 둑을 쌓아 반구대가 다시 물에 잠기지 않게 하고, 수위를 낮추는 방안도 함께 시행하자고 제안한 것은 어떤 방법이 더 좋으냐를 놓고 더 이상 다투지 말고 무조건 보존을 위한 행동에 나서자는 게 핵심입니다. 그동안 논의 되었던 여러 보존대책 중 어느 하나만이라도 시행했더라면 이정도로 훼손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더 이상 주장을 되풀이 하느라 시간을 낭비한다면 정부와 지자체 모두 귀중한 문화재 보호책임을 다하지 않고있다는 국민들의 질책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겁니다.
다시한번 말하지만 물길을 돌려 암각화를 보존하기위한 응급처방을 위해 쌓은 제방이 세계문화유산 등재에 문제가 된다면 다시 헐어내고 원상복구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문화재청의 방안대로 수위를 낮추는 것은 임시적인 방편일 뿐 영구적인 보존대책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림이 있는 바로 아래까지 물 높이를 낮춘다 해도 바위 아래편이 항상 물에 잠겨있기 때문에 물을 품은 바위가 부서져 내리는 것은 시간문제 일 뿐입니다. 문화재청은 암각화가 오래 보존 될 수 있도록 대책을 찾아야 합니다. 국민들이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잊지말고 더욱 더 열린 마음으로 보존대책을 모색해 줄 것을 촉구합니다.
posted by 호야 (국회의장 김형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