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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김문수를 좋아하는 이유

김형오


김문수만큼 진실되고 용기 있고 자기희생적인 정치인은 드물 것이다. 투철한 애국심이 그 바탕에 가득하다. 그의 삶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명암 그 자체였고, 그 과정에서 그는 결코 비겁하지 않았다. 당당했다. 그래서 나는 그를 좋아했고 높이 평가했다. 내가 못 가진 점까지 그는 가졌기에. 그런 김문수가 변하지 않았나 하는  얘기들이 나온다.

단일화 문제를 두고 '꼿꼿 김문수' 이미지가 변하고 있다. 후보 수락 연설문에서 "단일화를 곧바로 추진하겠다. 오늘 당장 한덕수를 만나겠다"는 발표가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런 말은 끝내 나오지 않고, 원칙적인-두루뭉실한 발언으로 끝났다.
지금 단일화한다면 김문수가 밀리는 게 사실이다. 힘들게 승리해 당 공식 후보가 됐지만 당장 불리한 여론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다. '컨벤션 효과'도 보면서 시간을 벌어야 하는데 '당장' 하라니 불쾌할 것이다. 불리한 여건을 만회하려면 선수를 치거나 시간을 끌어야 한다.

그런데 둘 다 성공 가능성은 낮다. 중도 포함 범보수 지지층의 단일화 압박이 그만큼 거세기 때문이다. 시간을 끈다고 여론이 호전될 리 없다. 유권자, 국민들은 꼿꼿 김문수가 당당하지 못하다고 평가할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설사 국힘 단일 후보가 된다 한들 그런 이미지 탈피가 쉽지 않아 막강 이재명을 이기기 힘들 것이다. 김문수 혼자의 패배가 아니다. 힘들게 지키고 살려온 이 나라와 미래세대 모두에게 씻을 수 없는 죄를 짓는 것이다.

한덕수 후보보다 먼저 제안하고 더 공격적으로 해야 국면의 주도권을 잡을 텐데 이마저도 놓쳤다. 이번 같은 단기전에서는 하루가 보통 정상적 선거 때의 일주-열흘과 맞먹는 귀중한 시간인데 김문수는 좋은 이미지를 스스로 퇴락시켰다. 안타깝다. 단일화 기구를 만들어 협의 추진하겠다고 했지만 좀 한가하게 들린다. 몇 가지 까다로운 조건을 제시하면 이게 발목 잡아 회의를 겉돌게 만든다.

정치는 큰 틀에서 가닥을 잡아야 승산이 있다. 지엽말단에 집착하면 대세를 쥘 수 없다. 김문수 스타일도 아니다. 김문수 스타일이라면 "언제까지(3일안에) 단일화하겠다. 그 안에 모든 실무 협상 마무리하라."라고 했어야 했다.

한 가지 쉬운 방법이 있다. 스스로 후보를 사퇴하는 길이다. 한과 김, 둘 중 어느 한 쪽이 먼저 일방적으로 사퇴하면 한 명만 남는다. 그런데 이걸 단일화라고 믿을 사람이 있겠나. 정리는 될지 몰라도 국민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사퇴 후보 쪽 표 역시 유감을 갖는 남은 후보 쪽으로 가기는 힘들다. 국힘 본선에 오른 네 명 중 두 명은 지지 태도가 유보고, 한 명은 조건을 걸고 있는 판이다. 이부터 먼저 해결해야 후보의 지지가 오른다. 지방 출장은 그 후다.

보수의 최대 약점은 분열이다. 위기 앞에서도 제 몫을 챙기려 하고 몸을 사리기 때문이다. 이 점을 사이비 민주 세력들이 놓칠 리 없다. 바로 지금이 자유민주주의 체제 존속을 둘러싼 최대의 위기다. 불과 몇 달 전까지 당장 대통령되겠다고 생각한 사람이 어디 있나. 다들 소명의식에서 부름받고 나온거다. 그러나 이런 식이라면 헌법과 자유, 안보와 경제를 크게 위협할 이재명 후보에게 대선을 헌납하는 결과가 뻔하다.

김문수가 왜 후보로 나왔는가. 초심으로 돌아가란 말밖에. 다시 한번 우국충정으로 심사숙고하길 바란다. 측근들의 충언이 때로는 간언이 되고 때로는 대사를 망친다. 이걸 구분 못해서 그르친 경우를 누누히 보면서도 인간은, 정치인은 실수를 반복한다. 김문수답게, 당당하고 깨끗하고 화끈하게 하면 구긴 스타일도 만회하고, 설사 이번이 안 되더라도 다음엔 보장된다.

지도자가 되는 길은 어렵고도 쉽다. 마음을 비우면 분명 보인다. 김문수는 잘 판단하고, 또 해낼 수 있다고 나는 끝까지 믿고 싶다.

민심은, 세상 인심은 의외로 단순하다. 잘 나갈 때 스스로를 낮추고 실패했을 때 당당해야 한다. 김문수는 그런 길을 걸어왔다. 시간이 없다. 다시 한 번 김문수의 그런 모습을 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