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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5일 <유희열의 스케치북>에는 각양각색의 가수들이 출연하여 무대를 빛냈습니다.





▲ 모바일 차트 1위에 오른' 2AM',
유희열의 토이와 인연이 깊은 '김연우'



▲ 가녀린 목소리와 전자음악이 돋보이는 '캐스커', 新여성 발라드 시대를 개척하겠다는 'AB에비뉴'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출연한 연우와 2AM를 보며 추억에 잠겨봤더니 문득 1990년대 대중음악사가 떠오르더군요.

그들의 인맥을 쫓아 올라가볼까 합니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김연우라고 하면 떠올리는 그룹은 '토이'입니다.

그는 토이(유희열)의 객원가수로 참가해서 주옥같은 곡들을 팬들에게 선사했죠. 특히 <내가 너의 곁에 잠시 살았다는 걸>, <여전히 아름다운지>가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의 고음은 안정되어 있고 굳건한 느낌을 주어서 개인적으로 좋아합니다. 그래서 그는 애절한 노래에서 보다 극적인 효과를 높이는 것 같습니다.

공교롭게도 유희열과 김연우는 서로 다른 해의 유재하가요제에서 각각 대상, 금상을 차지했던 대중음악인들입니다. 그리고 유희열을 떠올리면 김장훈과 이승환이 생각납니다. 김장훈은 유희열을 본격적으로 대중음악계에 끌어들였고 유희열은 김장훈에게 히트곡 <난 남자다>라는 곡을 선사했죠.

또 유희열은 이승환의 <그대를 모릅니다>라는 노래의 작곡자입니다. 이승환은 유희열을 비롯한 여러 가수들에게서 곡을 받았는데, 오태호, 김광진, 김동률, 정석원, 김현철 등이 떠오르는군요. 이승환으로 연결되는 유희열과 김동률은 친분이 있어서 서로의 콘서트에 찾아가기도 한다지요.

김광진의  '더 클래식'의 <마법의 성>은 김장훈, 이승환, 이소라 등이 참여해서 불렀죠. 이소라는 본격적으로 알린 <그대 안의 블루>를 통해서는 김현철과의 교집합이 형성됩니다.




그리고 김연우(객원가수)-유희열(그룹) 객원가수체제의 선배격인 공일오비는 윤종신-정석원의 라인을 탄생시켰는데, 공일오비는 토이 이상으로 객원가수를 많이 쓰기도 했었죠. 윤종신의 가수 초기에는 정석원(공일오비), 후기로 갈수록 유희열의 곡을 많이 불렀습니다.

또 공일오비와 무한궤도의 인연 속에서 신해철이라는 인물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신해철은 초창기 김동률의 앨범 작업에도 많은 도움을 줬고, 초창기 공일오비 앨범에 객원가수로 나오기도 했었습니다.

여기서 과거 E.O.S의 김형중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의 앨범들 가운데에는 신해철이 프로듀싱한 적도 있고 윤상의 영향을 받은 적도 있습니다. 4집의 경우에는 유희열의 도움을 받았죠. 윤상과 신해철은 <노땐스>라는 테크노 앨범을 공동작업하기도 했습니다.




김동률과 이적은 <거위의 꿈>으로 유명한 '카니발'이라는 프로젝트 앨범을 낸 적이 있는데, 이적은 김진표와 한 그룹이었고, 김진표는 신해철이 빠진 넥스트 맴버와 결합하여 노바소닉을 결성했죠.

그런데 위에 열거한 사람들은 각기 교류하고 있었지만, 음악적인 스타일이나 취향은 전체적으로 한 덩어리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 가운데 '대영기획'이란 회사도 떠오르는군요. 위에 언급했던 가수들은 엘리트 느낌을 주는 발라드 주력의 가수들 혹은 자기 색이 분명한 라이브 무대의 실력파로 특징지어지는 편입니다.




이번에는 2AM을 통해 1990년대를 떠올려볼까요?

일단 2AM하면 JYP를 빼놓을 수 없겠죠. 원더걸스, 2AM, 2PM과 같은 인기그룹들은 박진영과 함께 하고 있는 가족들이죠.

그런데 JYP를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가수들이 있습니다. 바로 김건모, 클론, 박미경이죠. 박진영은 무명일 때 김건모의 백댄서로 활동을 했었죠. 박미경은 긴 무명생활 끝에 김창환 사단을 만나면서 <이유 같지 않은 이유>를 통해 본격적으로 자신을 드높이면서 <이브의 경고>를 통해 전성기를 누렸는데, 개인적으로는 박진영과 호흡이 잘 맞는다고 이야기한 적 있습니다.

클론 역시 김건모의 백댄서 출신이었죠. 그런데 박진영, 박미경과 클론의 강원래가 1992년쯤 아주 잠시 그룹을 조직해서 활동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던 사실 중 하나죠. 다만 그들은 성과가 좋지 않아 그룹 활동을 그만둬야 했습니다.




이 사람들을 모두 품었던 사람은 김창환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가수들 뿐만 아니라 신승훈, 엄정화, 노이즈, 홍경민도 김창환과 뗄레야 뗄 수 없는 가수들이죠. '김창환 사단'이란 말이 탄생한 것도 그가 발굴하거나 곡을 써준 가수들이 대거 히트를 치며 유명세를 탔기 때문입니다. 한 시대를 풍미했다는 말이 전혀 아깝지 않은 김창환 그리고 김창환 사단이죠.

대체로 전자 인맥들에 비해서 신승훈, 홍경민 정도를 제외하면 상대적으로 흑인음악풍의 가수들 혹은 댄스가수들이 보다 눈에 많이 띄는 것 같군요.

(김창환은 '산울림'의 김창완과 다른 사람이죠.)




제가 즉석에서 나눠본 이 두 인맥들의 공통점은 그 구성원들의 상당수가 싱어송라이터들이었다는 겁니다. 설령 곡을 많이 쓰지 않거나 노래만 부르는 가수일 지라도 각기 독특한 색깔을 가지고 있었죠. 이들이 폭넓고 복잡한 교분이 형성되었던 이유는 각자의 개인적 친분 이상의 음악적 역량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1990년대가 한국대중음악의 르네상스시대였던 이유도 이런 교류와 선의의 경쟁 덕택이라고 봅니다. 그리고 당시 가수들은 지금 가수들에 비해 보다 뚜렷한 개성을 살린 편이었습니다.

게다가 일정한 인기를 구축했던 가수들은 방송에 대한 의존도가 높지 않아도 음반판매를 통해 최소한의 수익을 창출할 수 있었죠. 팬들도 음반을 사는 것에 주저하지 않았구요. 저도 소장하고 있는 수백장의 음반은 소중한 보물들입니다.




요즈음 가요판에서 '댄스음악 + 아이돌 스타'로의 편중이 심화되면서 1990년대에 대한 향수가 느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당시에는 많은 싱어송라이터들이 대중음악을 주름잡았기 때문에 서로 곡을 주고 받고 프로듀싱도 같이 하는 등의 음악적 교류를 넓혀나갔던 것이죠. 그 속에서 발전이 있었구요.

현재 대부분 10대 후반 ~ 20대 초중반의 연령대의 가수들은 기획사가 짜놓은대로 활동하고 성장하다 보니 음악적(작사, 작곡, 편곡, 노래) 독창성이 떨어져 보입니다. 때로는 '댄서에 음악적인 부분을 이식한 것 아닌가?'라는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음악이 과거의 것에 비해 마냥 뒤쳐졌다고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앞으로 자기 색깔이 뚜렷한 뮤지션들이 인정받을 수 있는 기회가 보다 많이 제공되었으면 하는 거죠.




언젠가 대선배 가수인 최백호씨는 자신이 DJ로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를 통해 "요즈음 가수들은 좋은 시스템에서 배우고 있어서 가창력은 연습이 잘 되어 있지만, 가수로서 자기 호흡, 자기 색깔이 부족해서 안타깝다."라고 이야기한 적 있는데 저 역시 공감합니다.

"그 사람이 아니면 그 노래의 맛이 안 난다"라고 할 만한 가수들,
"정말 오랫 동안 사랑받을 노래다!"라고 느껴질 노래가 많지 않아 섭섭한 요즈음입니다.

(요즈음에도 좋은 노래들이 나오긴 하지만 쉽게 질린다고나 할까요?)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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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어릴때는 2010.02.06 16:0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작곡을 못 하면 가수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사람입니다. 작곡은 못해도 작사정도는 해야 가수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노래를 못해도 음반만 잘 내는군요.

  2. 우ㅡ왕;; 2010.03.18 09: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그 고생좀 했을듯

  3. BlogIcon 김민희 2011.11.27 18: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태크고생할껏같아요.

한국에서 류시원은 장동건에 비해서 영화에서 두드러진 것도 아니었고
손지창, 김민종에 비해서도 가수로서도 인기곡을 남긴 것도 아니었으며
정우성에 비해 CF를 많이 찍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류스타로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며,
또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에 진출한 뒤 5년 동안 가수로서 전 공연 매진을 불러모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부른 18장의 앨범은 오리콘 차트 10위에 모두 진입했고
그 중 2005년에 낸 싱글 앨범은 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걷어붙인 소매, 백구두, 강풍에도 끄떡없다는 고정 머리가 인상적인 류시원.
그가 한류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엇을까요?

저는 그가  한국에서 다양한 연예활동을 한 것이
가장 큰 한류스타로서의 성공을 이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류시원이 데뷔 후 5년여간을 중심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아보는 동시에
그의 한류 성공 비결을 찾아볼까 합니다.


▲ TV저널 (1994년 10월)


데뷔시절

미대생인 류시원은 초등학교-중학교 동창인 가수 김원준의 권유를 받았으나
처음에는 친구가 해 준 농담이라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고 합니다.

김원준을 통해 알게 된 히트곡 제조기인 김형석씨가 드라마 '느낌'의 OST를 맡으면서
훗날 <가을동화>, <겨울연가>를 만들었던 윤석호 PD에게 류시원을 추천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윤PD 역시 연기 경험 없는 신인을 원했던 터라 류시원에겐 좋은 기회가 됐죠.

그렇게 그는 1994년 드라마 <느낌>을 통해 데뷔했습니다.

연기 경험이 없는 신인급 연기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드라마인 <창공>에서부터 주연급 배역을 맡게 된 것은
그의 타고난 끼를 증명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특유의 저음과 부드러운 인상도 여성에게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류시원은 이 드라마를 통해 승승장구해나갔지만
공교롭게도 '창공'에 함께 출연한 친구 김원준은

그 드라마 이후 5년간 나오지 못했습니다.


▲ TV가이드 (1999년 3월)


시대의 대표 미녀와 함께 연기하다

류시원이 많은 드라마를 찍으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그 시대의 대표 미녀들과 함께 연기했다는 것입니다.

무릎팍도사에서 그 미녀들의 명단을 정리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김소연, 김하늘, 김혜수, 김희선, 명세빈, 박선영, 장나라, 전도연, 최지우, 하지원

특히, 김희선, 김혜수, 명세빈은 그의 단골 파트너였죠.
이 세 미녀들과 함께 한 대표작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명세빈 : 순수, 웨딩, 종이학
- 김혜수 : 곰탕, 스타일
- 김희선 : 세상 끝까지, 프러포즈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과 호흡이 척척 맞는 연예인은 김희선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드라마 출연 뿐만 아니라 가요프로그램 MC로서도 함께 진행한 적 있었죠.

그가 출연한 드라마 중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드라마는 <진실>이었습니다.
58%에 이르는 시청률을 기록했으니 대박이 터진 것이죠.

일각에서는 류시원에 대해 왕자 같은 이미지만 구축해 왔다는 비판을 합니다.
또, 일부 비판론자들은 '천의 얼굴'을 소화해야 하는 직업이 배우인데
류시원은 변신에 소홀한 것이 아니냐라는 의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는 <무릎팍도사>를 통해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비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배우로서 여러 차례의 변신을 통해 모두 성공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이것 저것 다 하면서 뚜렷한 특징이 없는 배우보다는
그래도 한 영역이라도 자기 색을 갖고 있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강조했습니다.


▲ 맛대맛 홈페이지


다재다능한 왕자

류시원은 가수, 연기자, 진행자, 카레이서 등  이력이 다양합니다.

그는 김희선과 함께 음악프로그램 진행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SBS 라디오 <기쁜 우리 젊은 날> DJ로도 활약한 바 있습니다.
어느 PD와의 친분으로 맡았던 SBS TV <호기심 천국> 역시 무난히 소화해냈습니다.
게다가 그는 대중음악계에서는 이미 8집을 낸 중견가수이기도 합니다.

요리와 맛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1999년 <류시원의 맛있는 유혹>이란 책을 내기도 했고
SBS의 <맛대맛>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류시원의 다재다능한 부분들은
류시원 특유의 왕자 이미지를 더욱 화려하게 포장해주는 것 같습니다.


▲ 스포츠조선 (2009년 7월 27일)


자동차, 스피드 그리고 승부욕

류시원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동차와 스피드죠.
거기에 승부욕까지 포함됩니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가졌는데다,
군대시절에도 자동차잡지를 빼놓지 않고 읽었을 정도로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습니다.

그래서 류시원은 이세창과 더불어 자동차 관련 잡지에
단골 손님으로 자주 나온 대표적인 연예인이기도 했죠.

류시원의 스피드에 대한 욕심은 유별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 모터스포츠 (1997년 6월)

예전에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의 특징에 관해

방청객들과 함께 ox퀴즈를 풀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류시원은 질투가 많은 남자? OX?"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그는 O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승부욕이 강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겪었던 일을 언급했습니다. 

어느 날 류시원이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자기 차를 추월하는 순간, 괜히 약이 올랐다고 합니다.

그는 약이 오른 걸 참지 못한 나머지, 그 차를 기어이 추월하고 나서야
자신의 차를 돌려서 목적지로 향했다고 합니다.

자동차, 스피드, 승부욕은
결국 그가 인기 연예인에서
카레이서로 거듭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카레이서로 데뷔해서도 12년 동안 4번의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을 만큼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이따금씩 고속도로에서 카레이서 동료들과 스피드를 즐긴다고 하더군요.

▲ 오렌지룩 (1996년 6월)


끝으로

1년 동안 출연을 고사해온 <무릎팍도사>에 나온 류시원은
그 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일본 성공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가수로서 일본팬들을 사로잡은 것을 봐서나
일본에 진출한 한류 연예인 가운데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빌딩이 세워진 걸 봐서나
그는 분명히 성공한 한류스타입니다.

그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류시원 특유의 귀공자 이미지에 다재다능한 모습이 잘 버무려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거기에 국내에서 다양한 연예활동을 펼친 경험과 함께
부드러운 외모와는 다른 남성미, 강한 승부욕까지 결합됐기 때문에
현재의 류시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연예계에 각 분야를 놓고 보면 류시원은 탁월한 스페셜리스트는 아닙니다.
그런데 다양한 연예활동을 큰 숲으로 생각하여 살펴보면
류시원은 자기 색깔이 있는 연예인입니다.

그만큼 그에 대한 대중들의 호불호도 뚜렷한 것 같구요.

그는 다재다능한데다 부와 명예를 누렸으니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아 보였지만
여태까지 연예계에 몸 담으면서 영화 1편 찍지 못했다는 사실은 새롭게 와닿았습니다.

그런 한 편으로 영화계에 진출하기 위해 그가 부딪혀야 할 벽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캐릭터 변신에 대한 요구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 과제를 류시원이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는 신인의 자세로 영화계에 몸을 던지겠다고 했으니 앞으로가 주목됩니다.


▲ 레츠 (1998년 6월)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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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hoebe 2009.12.24 14: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두 모두 즐겁고 기쁜 크리스마스 되세요.^^

  2. BlogIcon 악랄가츠 2009.12.25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보다 11살 많은 류시원...
    진심 저보다 어려보여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반칙케릭터예요! 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