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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에이스 봉중근의 2군 강등이 결정되었습니다.


지난 4일의 투구는 봉중근답지 못했습니다



모 방송에 나온 박동희 기자의 말에 따르면, 지난 4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 직후, 박종훈 감독이 기자들 앞에서 이와 관련된 발표를 했다고 합니다. 이날 봉중근은 3이닝 3실점으로 부진한 것 뿐만 아니라 평소 때와는 달리 경기를 치르는 동안 불만이 가득 찬 모습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LG 박종훈 감독이 직접 마운드에 올라갔다 왔는데에도 불구하고 봉중근 투수가 계속해서 흔들리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결국 그는 강판을 당했는데, 이후에도 그는 덕아웃에서 여전히 분을 삭히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를 지켜본 박종훈 감독은 주저 않고 봉중근의 2군행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현재 LG 트윈스는 시즌 시작한 지 몇 경기 되지 않았는데 잇달아 악재가 겹치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봉중근의 2군행은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구나 봉중근은 최근 몇 년간 두산전에서 강한 모습을 보여줬는데, LG의 이번 주말 3연전 상대가 하필 두산입니다. 한 번 2군으로 내려간 선수는 최소한 10일을 거쳐야 1군에 올라올 수 있기 때문에 빨라도 다음 주 주중 삼성전이 되어서야 복귀할 겁니다.

문제는 현재 LG는 심수창, 곤잘레스를 제외하면 제대로 자리 잡은 선발투수가 없기 때문에 선발 로테이션을 짜는데에도 어려움이 있다는 점입니다.


봉중근의 2군행을 결정한 박종훈 감독



이런 상황에서 박종훈 감독이 에이스를 2군으로 내려야 할 만큼 극약처방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박종훈 감독은 '투수의 마인드 컨트롤'에 대해 여러 차례 강조한 바 있습니다. 시범경기 때 곤잘레스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아 화를 내자, 박감독은 곤잘레스를 불러서 "계속 이런 식이면 기회를 주지 않겠다"며 혼낸 적도 있었고, 이재영이 오키나와에서 한화와 연습경기를 가질 때 난조에 빠지자 이 과정에서 고집을 부린 것이 문제임을 인식한 박감독은 조기귀국의 벌을 내리기도 했었습니다.

봉중근의 2군행도 이와 같은 맥락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사실 LG는 지금 어려운 상황입니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인내와 화합이라는 것을 박감독은 강조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감독이 에이스를 2군으로 내리는 것은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감독은 서로 힘들어도 참고 이겨내지 않으면 LG가 다시 일어설 수 없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특히 LG의 중심에 서야 할 봉중근이 망가지는 모습을 박감독도 마냥 지켜볼 수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지난 시즌 말다툼을 벌였던 심수창(좌)과 조인성(우)



LG는 2002년 준우승 이후 7년 연속으로 가을 잔치에 나가지 못했습니다. 사실 LG팬들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박종훈 감독도 이를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LG가 재기하기 위해서는 뿌리 깊은 문제를 도려내고 아픔을 이겨내어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봉중근 2군행'이란 극약처방은 비단 봉중근 뿐만 아니라 동료선수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물론 봉중근도 사연이 있을 것입니다. 오죽하면 그의 별명이 '봉-크라이(cry)'이겠습니까? 그도 사실 최근 몇 년간 에이스로 뛰면서 마음 고생이 많았습니다. 죽기 살기로 던져도 불운한 경기가 많았기에 그도 어지간히 속이 탔을 겁니다. 웬만한 상위권팀에 있었다면 15승은 너끈히 했을 텐데 말이죠.

공교롭게도 봉중근이 선발투수로 등판하는 날이면 유독 LG는 타선도 안 터지고 동료투수들도 안 도와주더군요. 그가 한계투구수만큼 던진 뒤, 승리투수 요건을 채우고 내려가면 불펜투수들이 불을 지르고, 동료투수들이 미덥지 못해 자신이 끝까지 던지면 힘 없는 공으로 버티지 못하다가 석패 당하기 일쑤고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봉중근이 LG 야수진으로부터 공수의 넉넉한 지원을 받아본 일도 많지 않습니다.

뿐만 아
니라 작년 초에 WBC에서 대한민국 에이스 역할을 하면서 준우승의 영광을 안았음에도 불구하고, 소속팀으로 돌아와서는 체력적 부담과 잇단 불운으로 아무 것도 얻는 것이 없었으니 괴로움이 끊이질 않았을 것입니다. 후배 선수들이 우승하거나 각종 타이틀을 수상하며 주가를 올리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봉중근 입장에서는 팀 성적, 개인 성적에서 허탈감이 컸을 겁니다. 그래도 그는 지금까지 의연하게 야구를 해왔습니다.


LG는 봉중근의 2군행으로 박명환의 활약이 절실해졌습니다



사실 그의 몸 상태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오른쪽 허벅지 부상이 덜 나은데다 김용일 트레이너의 말에 따르면 피칭 훈련도 늦게 시작해서 페이스가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고 하더군요.

미칠 것 같은 그의 심정은 십분 이해가 가지만, 그가 에이스이고 팀의 기둥인 만큼 한 번은 더 참아야 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다른 LG 선수들도 자극을 받았으면 합니다. 봉중근의 2군행은 사실 봉중근 개인의 탓으로만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비 온 뒤에 땅은 더 굳어진다'는 말처럼 이번 일을 계기로 LG 트윈스가 거듭나기를 기대합니다. 더불어 LG선수들도 근심이 커진 팬들의 심정을 헤아려주기를 바랍니다.


(사진 : LG 트윈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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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www.skyblueparachutisme.fr 2015.04.10 15: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이들과 학부모가 함께 준비한 공연을 통해 활동비를 마련하여,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시설과 단체에 성금을 전달하고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2. BlogIcon najstariji beogradski portal 2016.02.09 2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금을 전달하고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3. BlogIcon apartmani zlatibor 2016.02.10 01: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습니다.



챔피언이 앉은 돈방석은 얼마짜리? (3)

이기면 롤렉스 시계를 준다?




지난 (1), (2) 편에 이어  
다음 알아볼 시대는 1990년대입니다.

1990년대를 양분했다고 할 수 있는 팀은 LG 트윈스입니다.
해태가 4차례 우승을 했고, LG는 한국시리즈 4차례 한국시리즈 진출해서 2번 우승했죠.
 
그 중 1994년 LG 트윈스입니다.

1994년 LG 트윈스는 역대 우승팀 가운데에서 손꼽힐 정도로 강했던 팀이고

신인 3인방 대박에 여러 가지 이슈를 몰고 다닌 팀이었죠.

 

더구나 LG는 선수 지원과 복지에 대해 가장 선진화된 구단으로 유명했기 때문에

타구단의 부러움을 샀었죠.

 

프로야구에서 현대식 전용연습장과 숙소를 구축한 최초의 구단이 LG 트윈스였습니다.

LG의 챔피언스파크-챔피언스클럽는 1993년에 모두 완성됐고,

1996년에 만들어진 삼성의 경산볼파크보다 3년이나 빨랐죠.

 

LG는 8억여원의 파격 보너스를 지급했었는데, 당시까지 사상 최고액이었다고 합니다.

 

그 내역을 살펴보겠습니다.

1994년 LG 트윈스의 한국시리즈 우승 보너스

▷ 한국시리즈 직전까지 4억2천8백만원

▷ 우승배당금 2억5천만원

▷ 우승기념 구단 추가보너스 1억5천만원

▶ 우승보너스 총액 8억2천8백만원


뿐만 아니라 이미 지급한 보너스들도 상당했는데요.

포스트시즌(한국시리즈 포함) 이전에 지급됐던 각종 보너스,
즉, 페넌트레이스 당시 지급했던 보너스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994년 LG 트윈스의 정규시즌 중 각종 보너스


▷ 월별 성적에 따른 메리트(4~9월) = 8천5백만원

▷ 2천만원 이하 저액연봉 선수를 위한 인센티브 = 5천7백만원

▷ 전반기 우승보너스 = 7천1백만원

▷ 정규시즌 1위 보너스 = 2억원

▶ 정규시즌 각종 보너스 총액 = 4억1천3백만원


여기에서 눈에 띄는 것 중 하나가 2천만원 이하 저액 연봉 선수들을 위한 인센티브입니다.
대체로 고액 연봉자들이 팀 기여도가 높지만 적은 연봉을 받고 뛰는 선수들에게도
동기부여를 하기 위한 당근책이었죠.


LG는 우승한 뒤, 보너스 잔치 외에도
야구 관계자, 그룹 관계자, 재계 인사 등을 동원해서 우승 기념 리셉션을 치렀다고 하네요.

여기에 드는 경비는 1억원 수준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당시에는 우승팀의 모기업들이 관련 상품에 대해 대폭 할인 행사도 했었죠.
즉, LG의 경우, 우승 기념으로 가전 할인 행사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4년전인 1990년에는 LG가 프로야구, 프로축구를 석권했었죠?
그 때도 각종 할인행사를 했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 94년 LG 트윈스의 우승 장면


다음은 2009년까지 해태의 마지막 우승이었던 1997년으로 가보겠습니다.

 

해태와 LG가 맞붙어 해태가 4승1패로 챔피언이 됐는데요.

그 시즌까지 포스트시즌 역대 최고 입장 수입(약 29억1천만원)을 기록했습니다.


그 덕택에 해태도 1997년 당시로서는 역대 최다 우승배당금 8억7천만원을 확보했죠.

종전까지 기록은 1995년 OB가 챙긴 7억6천7백만원이었습니다.

 

1996년 우승배당금 5억9천만원 중 경비를 제외한 5억1천만원 선수 몫으로 돌렸는데
1997년은 이보다 좀 더 많은 7억 안팎의 보너스가 풀렸다고 합니다.


 

1998년은 현대와 LG가 한국시리즈에서 격돌했는데요.

여기서도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하나 있었습니다.
 

1998년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현대와 LG가 뜻밖(?)의 장외혈전이 있었습니다.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LG 구본무회장이 그런 말을 했다죠?

 

"만일 우승컵을 되찾아온다면 수훈갑에게 가장 아끼는 시계를 벗어주겠다!!!"

 

문제의 그 시계는 '롤렉스' 시계로 시가로 8천만원 상당이었다고 합니다.

 

이런 소식을 들은 당시 현대 강명구 사장은 정몽헌 구단주에게 건의를 했고

급기야 우승에 결정적인 공헌을 한 투수, 타자 각각 1명에게 그랜저XG를 걸었다니

감독, 선수 뿐만 아니라 야구에 관계된 모든 이들이 한마음이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한국시리즈 MVP가 받을 경품은 EF소나타였거든요?
구단주가 내건 그랜저XG보다는 오히려 한 등급 아래의 차종이었다는 것.

이런 걸 보면 우승을 위한 경품 전쟁도 야구 경기 못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98한국시리즈의 결과는 다들 아시다시피 현대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죠.
현대 유니콘스는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우승배당금 6억원을 포함해
총 10억원의 우승보너스를 챙겨, 당시로선 "역시 현대!!!"라고 할 만큼 파격적이었습니다.

다음 시즌인 99년에 한화도 창단 첫 우승을 차지했는데
우승 보너스 규모가 현대와 비슷한 수준이었다고 하니 우승이 좋긴 좋나 봅니다.

이상 3편을 마칩니다.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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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hoebe 2009.10.31 11: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들 야구시킬걸 그랬네요.ㅎㅎㅎㅎ

  2. 순신이 2009.10.31 12:5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켜스케이팅 시키세요...야구는 한물 갔음..

  3. probe 2009.10.31 15: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피겨시킬 바엔 축구가 낫지.
    피겨는 김연아급 아니면 꽝.

  4. SCV 2009.10.31 15: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댓글 보니 푸훕~~~~~~~
    전성기 찬호팍 연봉이 웬만한 축구스타 연봉을 능가할걸여?
    김연아가 잘해서 국위선양은 인정.
    근디 돈을 생각하면 야구만한게 업음.
    차라리 골프면 모를가?

    • 소나무 2009.10.31 16: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모두 성공을 전제로 하신 거겠죠
      성공하지 못하고 주목받지 못하는 이들이 더욱 많을거 같군요

  5. 순신이 2009.10.31 17: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러네요..성공했을 때 얘기죠...어릴 때 유도하는 동네 형한테 '형은 왜 국가대표 아니냐'고 물어봤다가 맞아죽을 뻔했던 경험이 있죠..그 형 대답이 "넌 우리나라 전체에서 공부 제일 잘하냐?" 였거든ㅇㅅ..

  6. BlogIcon 아라누리 2009.10.31 20: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잘보고 갑니다. 그 당시에 그런 일들이 있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