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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류시원은 장동건에 비해서 영화에서 두드러진 것도 아니었고
손지창, 김민종에 비해서도 가수로서도 인기곡을 남긴 것도 아니었으며
정우성에 비해 CF를 많이 찍은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한류스타로서 여전히 왕성하게 활동하며,
또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일본에 진출한 뒤 5년 동안 가수로서 전 공연 매진을 불러모았을 뿐만 아니라
그가 부른 18장의 앨범은 오리콘 차트 10위에 모두 진입했고
그 중 2005년에 낸 싱글 앨범은 1위에 올랐다고 합니다.

걷어붙인 소매, 백구두, 강풍에도 끄떡없다는 고정 머리가 인상적인 류시원.
그가 한류스타로 거듭날 수 있었던 비결은 무엇이엇을까요?

저는 그가  한국에서 다양한 연예활동을 한 것이
가장 큰 한류스타로서의 성공을 이끌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류시원이 데뷔 후 5년여간을 중심으로 어떤 활동을 했는지 알아보는 동시에
그의 한류 성공 비결을 찾아볼까 합니다.


▲ TV저널 (1994년 10월)


데뷔시절

미대생인 류시원은 초등학교-중학교 동창인 가수 김원준의 권유를 받았으나
처음에는 친구가 해 준 농담이라 생각하고 그냥 지나쳤다고 합니다.

김원준을 통해 알게 된 히트곡 제조기인 김형석씨가 드라마 '느낌'의 OST를 맡으면서
훗날 <가을동화>, <겨울연가>를 만들었던 윤석호 PD에게 류시원을 추천했다고 합니다.
더욱이 윤PD 역시 연기 경험 없는 신인을 원했던 터라 류시원에겐 좋은 기회가 됐죠.

그렇게 그는 1994년 드라마 <느낌>을 통해 데뷔했습니다.

연기 경험이 없는 신인급 연기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두 번째 드라마인 <창공>에서부터 주연급 배역을 맡게 된 것은
그의 타고난 끼를 증명하는 부분입니다.
물론 특유의 저음과 부드러운 인상도 여성에게 매력으로 작용했을 것입니다.

류시원은 이 드라마를 통해 승승장구해나갔지만
공교롭게도 '창공'에 함께 출연한 친구 김원준은

그 드라마 이후 5년간 나오지 못했습니다.


▲ TV가이드 (1999년 3월)


시대의 대표 미녀와 함께 연기하다

류시원이 많은 드라마를 찍으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그 시대의 대표 미녀들과 함께 연기했다는 것입니다.

무릎팍도사에서 그 미녀들의 명단을 정리한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김소연, 김하늘, 김혜수, 김희선, 명세빈, 박선영, 장나라, 전도연, 최지우, 하지원

특히, 김희선, 김혜수, 명세빈은 그의 단골 파트너였죠.
이 세 미녀들과 함께 한 대표작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 명세빈 : 순수, 웨딩, 종이학
- 김혜수 : 곰탕, 스타일
- 김희선 : 세상 끝까지, 프러포즈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과 호흡이 척척 맞는 연예인은 김희선이라고 밝혔습니다.
실제로 드라마 출연 뿐만 아니라 가요프로그램 MC로서도 함께 진행한 적 있었죠.

그가 출연한 드라마 중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았던 드라마는 <진실>이었습니다.
58%에 이르는 시청률을 기록했으니 대박이 터진 것이죠.

일각에서는 류시원에 대해 왕자 같은 이미지만 구축해 왔다는 비판을 합니다.
또, 일부 비판론자들은 '천의 얼굴'을 소화해야 하는 직업이 배우인데
류시원은 변신에 소홀한 것이 아니냐라는 의문을 던지기도 합니다.

그는 <무릎팍도사>를 통해 자신에 대한 비판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비판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는 배우로서 여러 차례의 변신을 통해 모두 성공할 수 있다면 이상적이겠지만
이것 저것 다 하면서 뚜렷한 특징이 없는 배우보다는
그래도 한 영역이라도 자기 색을 갖고 있는 연기자가 되는 것이 더 낫다고 강조했습니다.


▲ 맛대맛 홈페이지


다재다능한 왕자

류시원은 가수, 연기자, 진행자, 카레이서 등  이력이 다양합니다.

그는 김희선과 함께 음악프로그램 진행을 맡았을 뿐만 아니라
SBS 라디오 <기쁜 우리 젊은 날> DJ로도 활약한 바 있습니다.
어느 PD와의 친분으로 맡았던 SBS TV <호기심 천국> 역시 무난히 소화해냈습니다.
게다가 그는 대중음악계에서는 이미 8집을 낸 중견가수이기도 합니다.

요리와 맛에도 관심이 많은 그는
1999년 <류시원의 맛있는 유혹>이란 책을 내기도 했고
SBS의 <맛대맛>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류시원의 다재다능한 부분들은
류시원 특유의 왕자 이미지를 더욱 화려하게 포장해주는 것 같습니다.


▲ 스포츠조선 (2009년 7월 27일)


자동차, 스피드 그리고 승부욕

류시원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자동차와 스피드죠.
거기에 승부욕까지 포함됩니다.

그는 고교시절부터 모터스포츠에 관심을 가졌는데다,
군대시절에도 자동차잡지를 빼놓지 않고 읽었을 정도로
자동차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습니다.

그래서 류시원은 이세창과 더불어 자동차 관련 잡지에
단골 손님으로 자주 나온 대표적인 연예인이기도 했죠.

류시원의 스피드에 대한 욕심은 유별나다고 알려져 있는데요.


▲ 모터스포츠 (1997년 6월)

예전에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그의 특징에 관해

방청객들과 함께 ox퀴즈를 풀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류시원은 질투가 많은 남자? OX?"라는 질문을 던졌는데
그는 O라고 답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승부욕이 강하다는 걸 강조하기 위해
고속도로에서 겪었던 일을 언급했습니다. 

어느 날 류시원이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는데
누군가 자기 차를 추월하는 순간, 괜히 약이 올랐다고 합니다.

그는 약이 오른 걸 참지 못한 나머지, 그 차를 기어이 추월하고 나서야
자신의 차를 돌려서 목적지로 향했다고 합니다.

자동차, 스피드, 승부욕은
결국 그가 인기 연예인에서
카레이서로 거듭나는 원동력이 됐습니다.

카레이서로 데뷔해서도 12년 동안 4번의 챔피언 타이틀을 차지했을 만큼 
화려한 이력을 갖고 있는데,
이따금씩 고속도로에서 카레이서 동료들과 스피드를 즐긴다고 하더군요.

▲ 오렌지룩 (1996년 6월)


끝으로

1년 동안 출연을 고사해온 <무릎팍도사>에 나온 류시원은
그 동안 우리가 알지 못했던 일본 성공기를 털어놓았습니다.

가수로서 일본팬들을 사로잡은 것을 봐서나
일본에 진출한 한류 연예인 가운데 처음으로 자신을 위한 빌딩이 세워진 걸 봐서나
그는 분명히 성공한 한류스타입니다.

그 성공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류시원 특유의 귀공자 이미지에 다재다능한 모습이 잘 버무려졌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거기에 국내에서 다양한 연예활동을 펼친 경험과 함께
부드러운 외모와는 다른 남성미, 강한 승부욕까지 결합됐기 때문에
현재의 류시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국내 연예계에 각 분야를 놓고 보면 류시원은 탁월한 스페셜리스트는 아닙니다.
그런데 다양한 연예활동을 큰 숲으로 생각하여 살펴보면
류시원은 자기 색깔이 있는 연예인입니다.

그만큼 그에 대한 대중들의 호불호도 뚜렷한 것 같구요.

그는 다재다능한데다 부와 명예를 누렸으니 세상 모든 걸 다 가진 것 같아 보였지만
여태까지 연예계에 몸 담으면서 영화 1편 찍지 못했다는 사실은 새롭게 와닿았습니다.

그런 한 편으로 영화계에 진출하기 위해 그가 부딪혀야 할 벽도 있을 것입니다.
바로 캐릭터 변신에 대한 요구가 아닐까 싶은데요.
이 과제를 류시원이 어떻게 헤쳐나갈 것인지도 궁금합니다.
그는 신인의 자세로 영화계에 몸을 던지겠다고 했으니 앞으로가 주목됩니다.


▲ 레츠 (1998년 6월)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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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Phoebe 2009.12.24 14: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모두 모두 즐겁고 기쁜 크리스마스 되세요.^^

  2. BlogIcon 악랄가츠 2009.12.25 00: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저보다 11살 많은 류시원...
    진심 저보다 어려보여요 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ㅜ
    반칙케릭터예요! ㅜㅜ

 

위기의 한국 농업,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는 이 이야기에 반전이 생겼습니다.

위기의 한국 농업이 기회가 된 이야기.

일본의 파프리카 시장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농산무역의 파프리카 브랜드, ‘휘모리’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1997년 IMF 도산 위기에서 파프리카 수출로 일본을 정복하기까지.

김형오 국회의장의 ‘2009 우리땅 희망탐방’에서 만난 한국 농업의 희망 이야기가 지금부터 시작됩니다.



 

#남과 다른 것이 바로 경쟁력이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진행되는 김형오 국회의장의 ‘2009 우리땅 희망탐방’.

그 첫째 날인 6일, 농업의 희망을 찾기 위해 전라북도 김제시에 위치한 농업회사법인 농산무역(주)을 방문했습니다.




<1층에서 우리를 반기는 초록색 파프리카 인형.>


<1층을 지나 2층으로 올라가면 또 다시 노란색 파프리카가 우리를 반긴다.>

 회사를 들어서자마자 소파에 앉은 초록색 파프리카 인형이 가장 먼저 우리를 반겨 주고 있습니다. 2층을 올라가는 길목에는 노랑색 파프리카 인형이 우리를 환영해 주었습니다.

파프리카 회사에서 방문객들을 반기는 파프리카 인형들, 아주 사소한 것이지만 이러한 배려가 이 회사를 방문한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다시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요.



회사 공간들을 파프리카 색에 맞춰 구성한 인포메이션도 눈에 띄는 요소 중 하나입니다.

이외에도 농산무역(주)가 남다른 이유.

바로 바코드와 ERP 등을 농업 최초로 도입하는 등 농업의 정보화를 선도한 것입니다.


 
농산무역(주)의 박경원 부장은 “지난 2004년 ERP와 바코드 시스템을 농업 분야 최초로 도입했습니다. 농산무역(주)의 경우 영농법인과 시설농가 22개소가 함께 운영하기 때문에 이러한 시스템이 꼭 필요했습니다”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녀는 이어 “이 시스템을 통해 멀리 떨어져 있는 농가들의 생산량도 함께 관리할 수 있었고 이는 수확량 예측과 그에 맞춘 마케팅으로 이어지면서 선진국형 수출 농업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안산무역(주)는 회원농가에서 재배한 파프리카를 생산농가 재배이력관리와 상품품질관리를 통해 공동선별, 공동포장, 공동출하하는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농가에서 재배된 파프리카는 전자동 선별과정을 거쳐 크기별, 색깔별로 나눠지고 ‘휘모리’라는 하나의 브랜드로 출하됩니다. 

#품질은 기본, 안정성을 확보해라.

ERP와 바코드 등 농업에 정보화 시스템을 접목, 자동화를 이뤄낸 농산무역(주).

이것이 다가 아닙니다.
농산무역(주)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 바로 ‘안정성 확보’입니다.

박 부장은 “농업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경쟁력으로 예전에는 품질을 꼽았다면 이제는 안전성이 최우선이 됐습니다. 품질은 기본, 누가 먼저 안전한 상품을 생산하느냐가 시장을 장악할 수 있는 가장 큰 요인이 됐죠”라고 강조했습니다.

농산무역(주)의 파프리카 생산라인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손을 먼저 소독해야 합니다.


그게 다가 아니죠. 손을 소독한 후에는 온몸을 샤워하는 에어샤워실을 통과해야 합니다.  

농산무역(주)의 파프리카가 생산되는 유리온실, 이곳에 들어가기 위해서 꼭 밟아야 할 단계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유리온실에 들어가기 전 소독 발판은 필수입니다.
 

 

이와 함께 농산무역(주)는 해충을 잡는데 살충제를 사용하기보다 무당벌레 등 천적과 해충이 좋아하는 파장을 이용한 살충등 등 친환경 기술을 이용해 파프리카의 안정성을 더욱 높였습니다.


농산무역(주) 조기신 상무는 “이제는 농업도 국제 경쟁력을 갖추지 않으면 도태됩니다. 가까운 곳에 중국과 일본이라는 큰 시장이 있는 만큼 장기간의 투자로 경쟁력을 확보한다면 우리 농업에도 충분히 희망이 있습니다”라고 강조했습니다.

 

 농산무역(주)의 초기 멤버인 박부옥(42)씨도 “이곳에서 일한지 올해로 10년째에요. 세계에서 알아주는 농산물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일하고 있어요. 이곳에서 일하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희망입니다”라며 환하게 웃었습니다.

 

우리나라 파프리카의 1인자로 일본시장을 정복한 농산무역(주).

품질과 안정성이라는 남과 다른 경쟁력을 확보한 그곳에서 우리 농업의 희망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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