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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을 지키신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
2.12일 오늘 오후에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께서 청학시장을 다녀가셨습니다.
5선 국회의원에 당선 되시고, 청학시장에 오셔서, 꼭 "공약"을 지키겠다, 한번 믿어 보시라던 의장님!!

오늘 청학시장에 오셔서 "시설 현대화 사업"이 완성된 모습을 보시고, 흐뭇해 하시는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덕담"도 들려주셨는데,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면서 이삼일만 아프라는 말씀", "하루에 열번 웃고, 백자(百字)를 쓰고, 천자(千字)를 읽고, 만번을 건강을 위해 걸어야 한다"는 덕담은 "신묘년" 해의 정말 좋은 "덕담"이 될 것 같습니다.
상인들 한분 한분 손을 잡아 주시며 껴안아 주시는 모습에 우리 상인들은 "약속"을 지켜주신 전 국회의장님을 감히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바쁘신 국정에도 자주 청학시장에 오셔서 상인들의 사기를 북돋아주시고 힘을 실어 주시는 모습, 정말 고맙고 감사합니다.
엄마와 시장에 온 꼬마에게 사진도 찍어주시며 껴안아 주시는 모습도 보기 좋았습니다.

그렇게 서민적이고 털털하신 모습에 정말 우리 상인들은 힘이 솟는 것 같습니다.
추운 날씨에 같이 동행하신 윤호길 구 의장님도 정말 고맙습니다.
언제나 "전통 시장"을 잊지 않으신 모습!!!
우리 상인들도 열심히 살겠습니다.
앞으로 개혁된 모습도 보여 드리겠습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 정말 고맙습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2011. 2. 12.
                                                                     영도 청학시장 상인회 일동

                                                                                  (김화자 회장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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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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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장구경 2011/02/15 13:2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약이 空約이 아닌 公約임을 증명하셨군요.
    참 멋진 정치인입니다.
    청학전통시장의 훈훈한 정이 느껴지는 편지입니다.
    어느 길모퉁이에서 장터국밥이나
    칼국수 한 그릇 먹고 싶어지네요.

  2. 김화자 2011/02/16 0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 형 오 전 국회의장님 !!
    43년 만의 시설 현대화 사업이 탄생된
    청학 시장은 잔치집 분위기가 되었습니다.
    비가 와도 눈이와도 걱정이 없습니다.
    상인들도 고객들 께서도 깨끗해진 청학 시장이
    좋답니다. 요번에 부산에 눈이 많이 내렸는데
    시장을 이용 하시는 손님 여러분들 께서,
    이렇게 좋은줄 몰랐다며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을
    칭찬을 많이 했습니다. 화이팅!! 정말 감사 합니다.
    언제나 ,청학 시장에 관심을 가져 주셔서 고맙습니다.

  3. 영도사람 2011/03/11 14:1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콧구녕님. 같은 영도 사람으로서 귓구멍을 막아 버리고 싶을 만큼 부끄럽습니다. 그런 막말은 글의 내용조차 근거 없는 비방이라고 여기게 만듭니다. 영도 사람들 얼굴에 먹칠하지 맙시다. 그리고 그렇게 영도가 싫으면 떠나세요!!

  4. 김화자 2011/03/11 20: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학시장은 영도구청에서 인정시장으로
    허가를 받은 시장이고,전국 상인 연합회에
    가입 되어 있으며 세무서 에서 허가난 법인단체 입니다.
    시설 현대화 사업의 완공을 앞두고 있으며,
    회원님들의 감사의 편지를 모독 하는 말씀은 ,
    조금 유감 입니다.
    청학시장 회장.

  5. 김화자 2011/03/12 20: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청학시장은 높으신 공직자 여러분의
    합작품입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허남식 부산광역 시장님,
    어윤태 영도 구청장님,윤호길 구의장님,
    안성민 시의원님, 그리고 영도구청 경제 진흥과 여러분,
    모두 모두 수고하시고 노력 했습니다.
    특히 김형오 전 국회의장님의 공약 이었으니,
    아마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정말 소규모 시장이라 관심도 없었는데,
    여러 높으신 공직자 분들의 관심을 기울려,노력한
    합작품이라 생각 합니다.
    정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열심히 살겠습니다.

  6. 저리보고 2011/03/15 08: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골수분자 라는 말씀은 공산주의 자가 하는 말이 아닌가요?
    여기는 민주주의 입니다. 자유국가 이고요.
    감사의 편지를 그냥 보통사람 처럼,
    감상 할수 없는가요? 평범한 사람처럼 말이죠.
    인간성이 보입니다.

지난 2010년 12월 31일자 정경뉴스에 실린 김형오 전 국회의장 인터뷰 내용입니다.
(※ 저작권과 관련하여 뉴스기사를 링크합니다.)

바로가기 클릭 ☞
김형오 전 국회의장, “여·야 소통없이 선진정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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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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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편 걷고 싶은 길☞ 절영로 보도설치 공사 ]

지난 번 게시물에서는 김형오 전의장과 동행하면서 찍은 사진들로 포스팅을 하였는데 멋진 길을 소개하는데 있어 부족한 점이 있지 않나 싶은 마음에 두번째 글을 게시하게 되었습니다.

우선 이번에  보도설치가 완공된 절영로는 바로 여기입니다. ↓

절영로의 위성사진(다음지도)


위 사진에 빨간색으로 표시된 부분이 바로 절영로 보도설치공사를 한 구간입니다.
대략 영선동 동산아파트 앞에서 동삼동 부산남고에 이르는 2km 정도의 코스로
이번 포스트는 부산남고 방면에서 동산아파트 쪽으로 진행하면서 작성하였습니다.




절영로 보도설치공사 준공기념식수

85광장의 영도 절영로 보도 설치공사 준공기념 기념식수입니다.
김형오 의장과 어윤태 영도구청장, 윤호길 영도구의회의장이 새겨져 있습니다.



85광장과 해안산책로의 갈림길

85광장에서 절영로와 해안산책로로 이어지는 갈림길입니다. 
이번에는 절영로를 주제로 한 포스팅이라 아랫길인 해안산책로는 담지 않았습니다만, 해안산책로도 꼭 한번은 걸어보셔야 할 명품길입니다~~^^

 


85광장을 지나 약간 올라가면 나오는 75광장입니다.

75광장 표지석

 

75광장 설명

 75광장에 대한 설명입니다.
사진으로 보기에 글씨가 좀 작아 아래에 내용을 옮겼습니다.

75광장
75년도에 조성되었다 하여 75광장으로 불리며, 영도구민의 대표적인 휴식공간으로 절영로 남쪽 해안에 위치한다. 광장의 중앙에 위치하고 있는 팔각정에 오르면 시원한 바다와 해안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맑고 푸른 남해바다의 아름다움을 만낄할 수 있으며, 달빛에 어우러져 출렁이는 보름밤의 바다 야경은 보는 이로 하여금 자연의 신비로움에 빠지게 한다.

 

사자상과 사자정

75광장의 사자정과 사자상입니다.
사자상은 사자정의 양옆에 두 개가 있습니다만 사진에는 좌측상만 나왔네요~~^^;;

 

사자정의 풍광1

사자정의 풍광2

사자정의 풍광1은 오르자마자 보이는 정면의 풍경이고 2번 사진은 우측편의 사진입니다.
사진을 찍는 날은 태풍 "말로"가 오기 직전에 찍은 사진이라 흐린 풍경이 담겨 있지만 날씨가 아주 좋았다고 하더라도 그 아름다운 풍경을 카메라에 담아 여러분께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75광장에서 보는 바다

팔각정(사자정) 앞에서 바라본 모습입니다.

앞바다 멀리 맑은 날에는 쓰시마(대마도)가 성큼 나타납니다.
어릴적 김형오 의장의 집은 이곳에서 1km쯤 떨어져 있는데, 집 안에서 대마도를 밥 먹듯이(?) 보았다고 합니다.
대마도를 보며 꿈을 키웠나요?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75광장의 봉수대

75광장의 전경

 75광장은 이렇게 생겼습니다.



75광장의 영도찬가비

75광장의 영도찬가입니다.
지나다니면서도 유심히 본 적이 없어 이번 기회에 소개해 드립니다.
찬가라면 노래일텐데 음이 어떻게 되는지는 잘 모르겠네요~~^^;;

영도찬가

동트는 수평선 해오름 타고 / 새날의 새아참 밝아오도다
동삼패총 선사유적 점지 받은 터 / 슬기로운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

바다로 세계로 큰 꿈을 안고 / 부산항 불 밝힌다 우리의 영도

봉래산 우뚝솟은 우람한 기상 / 태평양 넓은 바다 뱃길 밝히니
출항선의 뱃고동도 우렁차도다 / 태종대라 명승지는 관광의 고장

바다로 세계로 큰 꿈을 안고 / 부산항 불 밝힌다 우리의 영도



 

75광장 버스 정류소

75광장은 부산시티투어 버스의 정류장이기도 합니다.

참고로 부산 씨티투어 버스의 이용방법은 아래의 주소에서 확인 가능합니다.
http://www.citytourbusan.com/citytour_2010/01.busancity/04.jsp
 


절영로 하늘전망대

하늘전망대의 전체사진입니다. 맑은 날 찍어둔 사진이 있어 올려봅니다.



아래가 훤히 보이는 전망대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하늘전망대는 바닥이 보이는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하늘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

하늘전망대에서 보이는 풍경입니다.
사진의 왼쪽은 태종대, 오른쪽은 송도와 남항대교가 있습니다.
너무나 탁트이고 넓은 풍경을 한 장의 사진에 담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이 사진은 네장을 이어붙인 사진입니다만, 실제로 보셔야 이해가 될 듯 합니다.^^;;) 



하늘전망대 망원경

하늘전망대 망원경에서 보이는 것은?

망원경을 통해 보이는 선박의 함수

하늘전망대의 망원경을 찍어봤습니다. 하늘전망대에는 두개의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습니다.
두번째 사진의 중간쯤에 보이는 배가 세번째 사진에서처럼 확대되어 보입니다.
세번째 확대된 사진을 찍기 위해서 망원경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초점을 잡기 위해 무지하게 애를 썼답니다...ㅎㅎ



 

밑에서 올려다 본 하늘전망대

전망대 아래로 내려와서 전망대를 찍어보았습니다. 
역시 하늘전망대란 이름은 다 이유가 있었더군요...ㅎㅎ
 

하늘전망대의 모습

하늘전망대의 전체적인 느낌은 이렇습니다. 
영도에서는 날씨가 좋을때 육안으로도 대마도가 보이는데 이 망원경을 사용하면 더욱 잘 보이겠다는 생각에 열심히 찾아봤지만 비가 오다말다 하는 상황이어서 확인은 어려웠습니다. 좋은 날씨에 오시는 분들은 한번 찾아보셔도 좋을 듯 합니다~~^^
(그런데 방향이 이쪽이 아니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이 포스팅을 하면서 스쳐지나갑니다...^^;;)




절영로의 음수대

하늘전망대를 조금 지나면 이런 모양의 음수대가 있습니다.
더운 여름철에 이 음수대는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반가웠습니다...ㅎㅎ
목이 마른 탓이었는지도 모르겠지만 물 맛이 예사롭지가 않았습니다~^^


 

절영로의 화장실

시원하게 물을 마시고 나니 옆 쪽에는 화장실이 있었습니다. 새로 지은 화장실이라 시설도 깨끗하고 잘 되어 있었습니다. 화장실 내부까지는 사진으로 찍지는 않았지만 천정 에어컨까지 있는 최신식 화장실입니다. 확인은 못해봤지만 온풍도 나올 듯 합니다.

 

그 때 그나무

이제 물도 마셨고 화장실도 다녀왔으니 걸음을 옮겨야 겠습니다.
화장실을 조금 지나면 딱 봐도 꽤 오래되었을법한 나무가 한그루 있습니다.
예전 공사하던 시기에 김형오 전의장이 이 나무를 자세히 보는 사진이 있어 이번에 새로 찍은 사진과 같이 올려봅니다.
여기는 함지골 청소년 수련원 쪽이네요~~^^




유료주차장 안내문

새로 찍은 나무 사진에 주차구획이 보여 얼른 주차요금이 얼마인지 확인해 보았습니다. 
시간제 요금으로 10분마다 100원, 1일주차에 2400원이네요...ㅎㅎ
평일 8시 이후 무료, 일요일 무료입니다~!
제가 갔을때에는 아직 주차요금을 받지 않고 있었습니다만, 지금 방문하시는 분들부터는 주차비를 내셔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절영로 주차 관련

절영로에 주차를 할 수 있는 곳은 하늘전망대 부근과 부산남고 앞 도로입니다. 하늘전망대 부근의 주차장은 위의 사진처럼 주차비를 내셔야 하며
부산남고 앞은 현재 주차요금을 받지 않고 있습니다.

 

 

절영로 체력단련시설 1

절영로 체력단련시설 2


조금 더 걷다보면 체력단련시설이 있는 곳이 나옵니다.
이곳이 하늘전망대와 더불어 가장 인기 있는 시설로 저녁이 되면 이 곳을 찾는 분들이 무척 많습니다. 



절영로 체력단련시설에서...

절영로는 김형오 의장의 아이디어로 시작됐다는 것은 전편에 이미 말씀을 드린 부분이라 이번 포스트에서는 언급하지 않았었는데 이 사진을 보니 꼭 추가해야 할 말이 생각나네요.
김형오 의장은 이 길을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데이트코스로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고, 기본 예산에서 추가비용까지 모두 전액 국비로써 이 길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다정한 연인의 사진을 보니 김형오 의장이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 최고의 데이트코스라는 말이 절로 떠오릅니다.

그런데 이쯤에서...
사진 속의 두 연인은 혹시 키스를 하고 있었을까요?   *^^*
풍경사진을 찍다 우연히 찍게된 사진이라 저도 잘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절영로에서 둘만의 즐거운 추억을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싶네요...ㅎㅎ


 
 

연인의 즐거운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얼른 발걸음을 옮겨 봅니다.
체력단련시설이 끝나는 곳에 위치한 버스정류장 느낌의 이곳은 표지가 없어 정확한 용도를 알 수 없었지만 언제 비가 쏟아져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이 날 날씨 중 갑자기 시작된 소나기를 피하는데 아주 유용한 장소였습니다.
거리상으로는 버스정류장이 있는 75 광장과 약 한 정거장 정도의 거리입니다.


다음은 시간을 좀 건너뛰어 절영로의 야경을 준비했습니다.

절영로의 야경1

절영로의 야경2

절영로의 야경3

절영로의 야경4

나즈막한 가로등(?)이 절영로 전체를 이어주고 있습니다.
연인 또는 가족과 손잡고 걸을 수 있는 데이트코스로
야경 역시도 분위기가 있는 절영로입니다.

 

다시 낮시간으로 돌아와서 소나기를 피했던, 버스정류장(?)으로 보이는 장소를 지나면 이제 본격적인 산책코스로 돌입합니다. 


해안산책로로 내려가는 계단

역시 아랫길인 해안산책로와 이어지는 계단이 있습니다.
절영로와 해양산책로, 위와 아래의 명품길!!
골라서 걸을 수 있는 재미가 있습니다~~^^

 

위 사진으론 굉장히 작은 쉼터처럼 사진이 나왔는데 실제로는 이렇게 많은 분들이 단체사진을 찍을 수 있는 정도의 공간입니다.
(아래 사진은 절영로 보도설치공사가 진행되는 기간에 찍은 사진으로 김형오 전의장, 어윤태 영도구청장을 비롯한 구청관계자와 공사관계자, 영도구의원들이 동행하였습니다.)

 

절영로의 전망(동삼동 방면)

절영로의 전망(남항동 방면)

절영로의 전망

절영로를 걸으면서 찍은 풍경입니다.  
맨 아래 사진은 절영로에서 보이는 멋진 풍경을 담아보고자 무리하게 파노라마 사진으로 만들어 보았습니다.


새로 조성된 명품길을 더욱 알리고자 작성한 두번째 포스팅임에도 아쉬운 마음이 많이 듭니다.  부족한 사진과 글로써 대략 이렇게 생겼다 하는 것은 보여드릴 수 있지만
이 길을 걸으면서 맡았던 솔내음과 바다의 냄새, 지저귀는 풀벌레 소리와 파도소리, 그리고 활짝 열려진 하늘과 바다의 멋진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요?

이제 무더웠던 여름도 끝나가고 조금씩 가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올 가을은 사랑하는 사람과 손을 맞잡고
대한민국 최고의 데이트코스 절영로를 걸어보는 것은 어떨까요?


POSTED BY 천상의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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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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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너서미 2010/09/13 15:0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영도의 본래 이름이 절영도라고 들었습니다.
    절영도는 원래 명마를 키우던 곳인데
    좋은 말들이 달리면 그림자조차 끊어버릴 정도 빨리 달렸다해서
    끊을 절, 그림자 영으로 해서 절영이란 이름이 붙은 걸로 압니다.
    그런데 포스팅한 걸 보니 여기 저기 절경이 눈에 띄는데,
    이만하면 영도를 '절경도'라고 바꿔 불러도 되지 않겠나 싶은데요?

    • 호야 2010/09/13 18:00  댓글주소  수정/삭제

      절영도 산책로를 보고 영도를 '절경도'라! 미적 감각과 조어력이 대단하군요. 절영 산책로 좋은이름 붙여주시고 많이 이용해주세요

    • 영도 인생47년 2010/09/15 10:43  댓글주소  수정/삭제

      사실 영도에 살면서도 구석구석 좋은 곳을 못 가보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다행이 이렇게 자세한 설명과 함께 좋은 사진이 있어 즐겁게 감상했습니다. 절영도의 역사 한 자락도 배울 수 있어 고맙습니다. 욕심을 부린다면 새로이 조성되는 곳과 함께 기존에 있던 명소들도 이 홈피를 통해 원스톱으로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사진과 함께 하는 이스탄티노플 역사 기행 4
                              - 전쟁의 한복판에서 전하는 종군 기자 리포트



   ‘술탄’이란 아이디를 쓰는 분이 나의 네이버 블로그에 두 개의 덧글을 남겨 놓았습니다. ‘이스탄티노플’ 이야기 1, 2편을 읽고 나서입니다. 몇 줄 발췌해 옮겨 보면….


  “지금까지 내가 아는 한 누구도 이처럼 이스탄불을 철저히 뒤지고 오스만 제국의 영광이자 비잔틴 제국의 오욕인 1453년 5월 29일의 역사를 깊은 영혼과 가슴으로 파고들었던 이는 흔치 않았다.

  이스탄티노플! 이런 이름은 이 도시에 빠져들어 작은 돌길을 거닐며 지난 세월의 바람 소리와 1550년 역사가 켜켜이 쌓인 성벽과 자유자재로 대화할 때 비로소 얻을 수 있는 이름이다. 바로 공존과 화해의 이름이다.

  이 도시의 오랜 돌과 바람과 역사는 그들의 아픔과 사연을 온몸으로 읽어내려 준비된 한 인간에게 드디어 비밀을 털어놓기 시작한 것 같다. 앞으로의 이야기가 너무 기대된다. 이스탄티노플!!! 앞으로 나도 이 도시를 그 분의 저작권 허락을 받아 이렇게 부르고 싶다.

  방안에 가만히 앉아서 1453년의 생생한 전투 장면을 마치 생중계하듯이 감상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그것도 너무 잘난체하는 전문가의 어려운 설명이 아니라, 제법 유명한 한 공직자의 해박한 지식과 철저한 고증으로 전해주는 묘미가 더하다.”

 

  아이디(술탄)를 클릭했더니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이희수 교수의 블로그로 연결되더군요. 대한민국 최고의 이슬람 전문가. 내가 터키로 떠나기 전 자문도 해주었던 이 교수로부터 그런 과분한 칭찬을 듣고 보니 힘이 불끈 나면서 어깨가 무거워졌습니다. 나로선 벅차기만 한 이 프로젝트에서 발을 빼기가 이제는 힘들어졌구나 싶어서입니다.

  정말입니다. 이희수 교수를 비롯한 많은 분들의 격려와 관심이 아니었더라면 퇴근을 새벽 한 시 이후로까지 미루어가며 사진을 고르고 캡션을 다는 작업을 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그리고 내가 이름 지은 도시 ‘이스탄티노플’은 무제한 사용을 허가합니다. 한 푼의 저작권료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많이만 사용해 주십시오. 간혹 저작권자를 언급해 준다면 더없는 영광으로 알겠습니다. 누구라도 ‘이스탄티노플’을 이름 부르는 순간 우리는 시장(市長)도 없는 그 도시의 명예시민이 되는 겁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백마를 탄 술탄 메메드 2세가 콘스탄티노플 3중 성벽을 가리키며 강력한 함락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창과 칼과 활과 도끼로 무장한 채 그 앞을 지키고 서 있는 여덟 명의 호위병들은 술탄의 최정예 부대인 예니체리 복장을 하고 있다. 파노라마 박물관 전면 벽화 제작에 참여한 화가들이 각자 자기 얼굴을 따서 그렸다고 한다.


  서두가 길었습니다. 오늘은 처음 소개하는 ‘사진 같은 그림’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 합니다. 뒤에 또 언급하겠지만 ‘이스탄티노플’에 새로 생긴 세계 최대의 ‘파노라마 극장’에 있는 어마어마한 그림의 중요 장면들을 한 컷씩 설명하면서 세계사를 바꾼 1453년 5월 29일, 그 치열했던 전쟁의 현장으로 안내하겠습니다.
  극장 안으로 들어가면 마치 내가 전사(戰士)가 되어 전장의 한복판에 뛰어든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오직 이기는 자만이 살아남고 죽여야만 존재할 수 있는, 전쟁의 그 무자비한 야성 본능이 실감나게 펼쳐져 있는 공간이기 때문입니다.

  글을 정리하다 보니 땀으로 목욕을 한 채 황성 옛터와 허물어진 성곽 사이를 걷고 또 걷던 나와 우리 일행들 모습이 그립게 떠오릅니다. 어쩌면 콘스탄티노플 공격을 위한 작전 지도를 만들려는 오스만의 병사들처럼 우리는 테오도시우스의 성벽과 그 주변을 샅샅이 탐사했습니다.


  이 글과 그림 그리고 사진들이 여러분을 550여 년 전 격전의 현장으로 데려가 주기를 바라면서 육지 성곽 편의 마감 인사를 갈음합니다. 다음 편은 골든 혼 성곽으로 이어집니다.


  전투가 가장 치열했던 곳은 크게 세 군데입니다. 블라케르나에 황궁의 끝 부분에서 카리시우스 문까지, 거기서 성 로마노스 군문까지, 또 거기서 레기움 문 근처까지가 집중 포화를 받았습니다. 리쿠스 강을 중심으로 1킬로미터에 이르는 메소테이키온 성벽 지역은 그 중에서도 핵심부였습니다. 공격과 수비 모두 이곳에 집중되었습니다. 방어군 입장에서 가장 취약점이 많았던 곳이기 때문입니다. 술탄(메메드 2세)은 이곳 성벽 400미터 앞에 본진을 쳤고, 전투시에는 성벽 코앞까지 가서 병사들을 독려했습니다. 비잔틴군으로 하여금 잠시의 쉴 틈도 주지 않고 인해전술로 밀어 부쳤습니다. 황제(콘스탄티누스 11세) 역시 이곳을 자기 무덤이라 생각하고 병사들과 한 몸이 되어 싸웠습니다. 파노라마 극장의 전투 장면들도 바로 여기를 중심 배경으로 그려진 것입니다.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스 화염의 위력인가. 보병과 기마병을 총동원해 온갖 무기를 앞세우고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진격하는 오스만 투르크군 병사들에게 비잔틴군이 불 폭탄 세례를 퍼붓고 있다. 오스만 병사들과 함께 그들이 타고 온 말들이 거대한 불길에 휩싸인 채 화형식(火刑式)을 당하고 있다.
창검을 들고 방패·갑옷·투구 등으로 무장한 기병들은 (유럽 및 아시아 지역에서 총동원되다시피 한) 오스만 정규군이다. 흰 두건을 쓴 정예 예니체리 부대들도 칼날을 번뜩이며 무서운 기세로 내닫고 있다. 오른쪽으로 복장과 무기가 각양각색인 비정규군 바시바조우크(Bashi-bazouks)의 모습도 보인다. 그 뒤로는 오스만 투르크군의 막사 수천 개가 비온 뒤 죽순 돋듯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막사와 투석기 너머로 아득히 보이는 것이 금각만(골든혼)이다.

* 그리스 화염 : 'Greek Fire'로 불리던 화염 방사기 방식의 불 폭탄. 콘스탄티노플 방어에 탁월한 진가를 발휘했다. 이 전쟁 800년 전부터 사용되어 육상·해상·지하 땅굴전 등에서 위력을 나타냈다. 발화재는 지하 석유류에서 채취해 썼지만 정확한 제원(諸元)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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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피아(彼我)조차 구별할 수 없는 아수라장 전쟁터. 공격에 나선 오스만 보병들의 등 뒤에서 대포는 무자비하게 작렬했다. 목숨은 도구에 불과할 뿐, 오로지 전진 또 전진이었다. 물러서거나 도망치려는 순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아군의 날카로운 칼날이었다. 무너지는 성벽더미와 함께 두 제국의 병사들이 서로 뒤섞여 성 아래로 아득하게 추락하고 있다. 나뭇잎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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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투는 이제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죽느냐 죽이느냐, 무너뜨리느냐 지켜내느냐. 해자(垓子/垓字)는 이미 메워지고 성벽은 허물어졌다. 오스만 투르크군과 비잔틴 제국의 병사들이 외성벽을 사이에 둔 채 사생결단의 전투를 벌이고 있다. 그림 왼쪽 끝 가운데 성벽에는 대포알이 박혀 있다. (아직도 성벽 어딘가에 대포알이 박혀 있다는 파노라마 박물관장의 말을 듣고  우리는 그 대포알을 찾아 얼마나 성곽을 헤매고 다녔던가?!) 주탑마저도 휑하게 구멍이 나 버렸다.
*공성탑(攻城塔)으로는 불길이 치솟고 하늘은 자욱한 포연(砲煙)으로 뒤덮였다. 정규군 뒤에서 출격 준비를 마친 최정예 예니체리군이 함락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세계사를 통틀어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제국의 수도로 군림했던 이 도시의 운명도 여기서 끝나고 마는 것인가.

 

* 공성탑 : 오스만 투르크 쪽에서 비잔틴 제국의 성 안으로 진격하기 위해 성벽 높이와 대등하게 만든 사다리 구조를 지닌 탑. 목재를 썼으므로 만들기 쉽고 옮기기 편했던 반면 튼튼하지 못하고 불에 잘 타는 약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수차례에 걸친 비자틴군의 기습으로 여러 대가 파괴되어 실제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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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달(5월 24일)이 뜬 뒤로 닷새가 지나 달이 **터키 국기 모양으로 기울어가던 5월 29일 새벽, 화염과 포연이 콘스탄티노플의 밤하늘을 수놓았다. 캄캄했던 밤하늘이 대포와 그리스 화염 불기둥으로 인해 대낮같이 밝아졌다. 그림 왼쪽 주탑 위는 거인 하산이 진두지휘하는 30명의 결사대가 콘스탄티노플 성에 올라가 최초로 오스만 투르크의 깃발을 꽂는 장면. 붉은색 오스만 깃발이 펄럭이는 가운데 쌍두 독수리가 그려진 비잔틴 국기는 성벽 아래로 떨어질 듯 매달려 있다. 콘스탄티노플을 주요 상업 기지로 삼고 있던 동맹국 베니스의 상징인 '성 마르코의 사자'도 이 순간 같은 운명을 맞고 있었으리라. 그러나 이 오스만 영웅은 비잔틴군의 강렬한 저항으로 온몸에 화살과 돌 세례를 받고 장렬하게 최후를 맞고 만다. 승리에는 영웅적 희생이 따르는 법. 성벽 함락의 결정적 분수령이 된 사건이다.

* 보름달 : "보름달이 떠 있는 한 성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구전이 당시 널리 전파돼 있었다. 이날(5월 24일)은 공교롭게도 월식까지 있었다.
** 터키 국기 : 터키 국기는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고 이는 오스만 투르크 군기에서 유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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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괴된 성벽 사이로 정규군을 앞세운 최정예 예니체리군이 깃발을 나부끼며 물밀듯이 성 안으로 쳐들어가고 있다. 함성과 말발굽 소리가 대포 소리와 뒤섞여 하늘을 찢어발길 것만 같다. 술탄(메메드 2세)은 첫 성곽 돌파자에게는 큰 포상을 내리고, 모든 병사들에게 3일간의 도성 약탈권을 보장했다. 그리하여 마침내 최후의 순간이 다가왔다. 오른쪽 중앙에 날개를 활짝 펼치고 있는 비잔틴의 상징인 독수리상도 곧 날개가 꺾인 채 추락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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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노라마 박물관에 그려진 *우르반의 대포와 대포알. 오스만 병사들이 발포 준비를 하고 있다. 거포는 포신 길이가 8미터 이상이었고 돌로 된 포탄은 600킬로그램을 넘는 무게였다. 헝가리인 대포 기술자 우르반을 고용한 술탄의 전략은 탁월했다. 헝가리는 당시 비잔틴 편이었고 우르반은 비잔틴 황제 밑에서 일했었다. 그러나 네 배의 급료와 충분한 대포 제작비를 지원하겠다는 술탄 쪽으로 기꺼이 몸을 팔았다. 우르반은 결국 전쟁터에서 죽고, 유럽의 강국 헝가리는 그 후 오스만에게 시달림을 당해야 했다. 역사는 아이러니인가, 냉혹한 것인가.

* 우르반의 대포 : 우르반의 거포(巨砲)는 한 번에 세 발에서 일곱 발까지밖에는 쏘지 못했다고 한다. 엄청난 양의 화약이 포신을 달구어 열도 식히고 대포를 정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완책으로 거포와 함께 작은 대포들이 동원되어 성벽 파괴의 결정타 역할을 했다.


 

파노라마 박물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맨 앞 페이지 왼쪽 아래에 박물관장과 함께 찍은 내 사진이 방문 소식과 함께 올라 있었다. 그날 나는 방명록에 이런 글귀를 남겼다.
“아시아와 유럽에 걸친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오스만 투르크와 술탄 메메드 2세의 용기와 지혜, 그리고 포용과 관용의 정신이 오늘도 위대한 터키 국민들에게 살아 있음을 느낍니다.”
파노라마 박물관은 지난해 1월 31일 문을 열었다. 세계에서 가장 큰 360도 반원형의 파노라마 극장이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 건물 내벽 전체가 하나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그림 크기로도 세계 최대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카메라로는 그 전경(全景)을 한 컷에 담을 수가 없다. 그래도 우리는 극장 측의 양해 아래 부분부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캡션 역시 마찬가지. 내가 읽고 겪고 보고 들은 지식은 물론 약간의 상상력까지 동원해 내 나름대로 정리해 본 것임을 밝혀 둔다.

▲ 군사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우르반의 대포와 대포알을 내 카메라에 담았다. 가장 큰 거포는 모두 소실되고 그보다 작은 대포들만 남았다. 그래도 이 대포는 무게가 자그마치 15톤(포신 길이 424센티미터, 구멍 지름 63센티미터)에 이른다. 내 몸 하나쯤은 거뜬히 통과할 수 있을 것 같은 크기이다. 대포알은 285킬로그램. 그러니 이보다 두 배 이상 더 크고 무거웠을 우르반의 거포는 어떠했을까. 이런 대·중·소 대포들로 49일 동안 쉬지 않고 포를 쏘아댔으니 제아무리 철옹성인들 온전할 수 있었으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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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사 박물관 대형 홀에서 감상한 오스만 군악대(메흐테르, Mehter)의 연주. 지축을 뒤흔드는 우렁찬 북과 피리 소리로 자국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우면서 비잔틴 병사들을 주눅 들게 한 심리전의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깃대를 들고 있는 두건 쓴 단원들은 예니체리 복장을 하고 있다.
오스만 군악대는 세계 전사(戰史) 상 최초로 등장한 군악대로서 현대 군악대의 효시이다. 서구 열강 군악대도 모두 여기에서 유래되었다. 나는 군사 박물관에서 그 웅장한 연주 소리를 들으면서 동시에 550여 년 전 아야 소피아를 비롯한 비잔틴 제국 크고 작은 교회들의 종소리를 들었다. 시공을 초월해 한 쪽 귀로는 오스만 군악대 연주를, 다른 한 쪽 귀로는 비잔틴 교회 종소리를 듣고 있었다. 오스만군이 대포를 쏘며 진격해 오면 콘스탄티노플 교회들의 종이란 종은 일제히 간절한 염원이 담긴 울음소리를 냈다. 그러나 당시 전황(戰況)을 기록한 그리스인들의 회고에 따르면, 그 종소리는 천지를 진동하는 오스만군의 대포 소리와 그보다 더 요란한 군악대 소리에 묻혀 버렸다고 한다. 성을 지키는 군사들은 물론 성 안의 시민들 또한 얼마나 위압감과 전율을 느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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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테오도시우스의 성벽 복원도를 참조해 다시 그린 그림. 황금문에서 제2군문(벨그라드카프) 사이의 3중 성벽을 입체적으로 재현했다. 1000년 넘게 아무도 뚫지 못했던 과학과 공학, 그리고 인간의 땀의 결정체이다. (아래의 성곽 사진들과 비교하면서 보기 바란다.)
그림에 표기된 수치에서 보듯이 스티븐 런치만과 시오노 나나미는 성곽 규모 면에서 약간의 차이를 보인다. 외성벽의 높이(런치만 7.5m, 나나미 10m), 내성벽의 높이(런치만 12m, 나나미 17m), 내성벽 주탑의 높이(런치만 18m, 나나미 20m 이상)에서도 두 사람은 조금 엇갈린다. 런치만은 학자고 나나미는 작가다. 내 눈대중으로는 내성벽 주탑은 20m 이상 되어 보였다. 탑과 성곽의 규모는 위치에 따라 조금씩 모양과 크기가 달랐다. 외성벽의 주탑과 내성벽의 주탑은 서로 엇갈리게 배치되어 있다.


▲ 3중 성벽의 위용이 한 눈에 느껴진다. 지역에 따라 약 45~90m 간격으로 주탑이 세워져 있었다. 황제는 외성을 전(前)방위로 해서 통로②에 전병력을 집중적으로 배치했다. *정규군만도 8만 명에 육박하는 오스만군에 맞서 정규군·비정규군·외인부대·시민군까지 모두 합해도 채 7000명이 안 되는 병력으로 대항하려면 선택과 집중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성 주탑을 배수진으로 성곽의 모든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열쇠를 황제에게 맡겼다. 들어온 이상은 못 나간다! 목숨을 담보로 내건 결사항전의 각오였다. 황제와 고위 관료, 주요 지휘관들은 말을 타고 통로를 누비고 다니며 전투를 지휘하고 병사들을 독려했다. 지형에 따라 폭의 차이는 있지만 통로②는 런치만이 말한 것처럼 내 눈에도 12~18m는 족히 되어 보였다.

* 정규군만도 8만 명 : 8만 명 설은 런치만의 주장에 따른 것이다. 이와는 달리 전쟁에 총동원된 투르크군의 병력을 20만 혹은 30만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투입된 병력 총규모를 16만 정도로 추정하는 이들이 많다.



▲ 성 로마노스 군문에서 성 로마노스 시민문(톱카프)으로 가는 도로변에 위치한 내성벽.
이 성이 어떻게 1500년 그 오랜 세월을 버텨 왔는가를 묵묵히 증언하고 있다. 성벽을 눈여겨 보라. 맨 밑에는 잔돌, 그 위엔 흙, 그 위엔 벽돌, 벽돌과 벽돌 사이엔 또 흙, 그런 식으로 축조되어 있다. 그 사이사이에 강력한 접착제가 사용되었음은 물론이다. 앞으로도 1500년은 너끈히 버텨낼 것 같지 않은가.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45~90m의 간격을 두고 주탑이 자리잡고 있다. 여기는 제2군문 입구이다. 이 늠름한 3중 성벽 구조의 위용을 보라. 감히 범접할 수 있겠는가. 오른쪽 내성의 주탑들은 파괴된 모습이지만 군문은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 블라케르나에 황궁(테플 사라이) 끝자락에서 본 성벽의 주탑 모습. 여기도 오스만군의 집중 공격이 퍼부어진 곳, 바꾸어 말하면 비잔틴군 방어의 최일선 중 하나였다. 부서진 주탑 너머로 골든혼 건너편 카슴파샤 지역과 멀리 갈라타 지역이 보인다.


▲ 방어용 주탑에 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아군끼리의 소통과 왕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물론 1453년 당시에는 이 사진에서 보이는 보호 철책은 설치돼 있지 않았다.


▲ 해자가 있던 자리. 지금은 메워져 밭으로 변해 있다. 해자는 육지 성벽 전체에 걸쳐 팠다. 수심이 깊은 곳은 20m에 이르렀지만, 어떤 곳(예 : 블라케르나에 지역)은 물은 흐르지 않고 구덩이만 파둔 곳도 있었다. 성으로 진격해야 하는 공격군 입장에서는 우선 해자 통과가 필수적이었다. 그래서 오스만군은 기를 쓰고 해자를 메운 반면, 비잔틴군은 다시 파내는 데 전력을 쏟았다. 채우고 비우기의 연속이었다. 오스만군은 참호를 만들고 도성 침투용 지하 터널(땅굴)을 뚫느라 파낸 흙을 온갖 잡동사니와 함께 해자를 메우는 데 활용하기도 했다. 그러면 비잔틴군은 밤중에 몰래 그 위치에 그리스 화염과 폭약을 설치해 폭파시켰다. 그러는 사이 두 제국의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무심히 밭을 갈고 있는 저 농부는 그런 해자의 아픈 역사와 기구한 사연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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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자가 있던 자리임을 짐작하게 해주는 지하수로(배수관). 성벽 복원도의 빨간 동그라미 친 부분을 참고할 것.


▲ 부서진 외성벽 주탑을 지나 내성벽 주탑 쪽으로 가고 있는 아베크족. 그들의 뒷이야기가 궁금해진다. 주탑 꼭대기에 올라 비잔틴군과 오스만군 간에 오가던 살육의 화살이 아니라 연인 앞에서 사랑의 활시위를 당기는 시늉을 해보이는 건 아닐까.


지도를 클릭하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지도로 보는 탐사 경로

4편은 테오도시우스 성벽의 종합편이므로 1, 2, 3편 탐사 경로를 망라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다만 군사 박물관(탁심 광장에서 북쪽으로 1km 거리)과 1453 파노라마 박물관(톱카프역 바로 뒷편)이 추가되었다.

*하늘색 사각형 부분1편, 분홍색 사각형삼각형 부분2편, 갈색 사각형 부분 3편의 탐사 경로이다.

※1453년 당시 지도에 비해 현재 크게 달라진 4가지 포인트

1. 붉은색 표시
1453년 당시 콘스탄티노플을 가로질러 흐르던 리쿠스 강은 지금은 복개되어 새 도로(아드난 멘데레스 불와르)가 나 있다.


2. 초록색 표시
성 로마노스 시민문(톱카프) 부근에서 시내로 새 길이 나 있다.
길 이름은 밀렛 자떼시(Millet Caddesi). ‘시민의 도로’란 뜻이다.


3. 파란색 표시
마르마라 해변을 옆에 끼고 기찻길이 펼쳐져 있다. 이 레일 위로 파리에서 이스탄불 사이를 오가는 오리엔탈 특급 열차가 달린다. 그 종착역 겸 시발역이 바로 시르케지 역이다.


4. 노란색 표시
마르마라해 바다 성벽은 매립으로 해안 성벽이 돼 버렸고, 또 일부는 철도와 자동차 도로 등이 생기면서 완전히 사라졌다. 노란색은 바다를 매립한 부분.


※ "이스탄티노플"에 대해 포스팅한 모든 내용은 지속적으로 수정/업데이트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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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애독자 2010/09/08 12:3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글을읽고사진들을보면서
    이스탄티노플
    그도시의매력에
    점점빠져들고있습니다

  2. 피플 2010/09/08 13:5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 우물에서의 은어낚시! 이스탄불이라는 우물에서 등비늘 반짝이는 은어들을 많이 낚으신 것 같군요. 물속을 헤엄치는 은어를 반짝이는 총알에 비유한 시인이 있었습니다. 그 시인의 시를 떠올려보면 , 이스탄불을 구석구석 탐사한 일행의 모습이 은어를 닮아있었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잘 보고 갑니다. 감사~~

  3. 두륜 2010/09/08 14:4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멋진 감상평을 남길만한 지식은 없지만 가슴으로 느낄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스탄티노플"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네요....
    다음에 꼭 그 발자취를 따라 걸을 수 있는 기회를 만들도록 해야 겠네요...
    "이스탄티노플"의 명예 시민으로서....^^

  4. BlogIcon 너서미 2010/09/08 15: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예전에 이스탄불에 갔을 적에
    다리 하나를 두고 유럽과 아시아로 갈라지던 모습이 떠오릅니다.
    유럽과 아시아를 잇는 것만큼이나 이 땅을 둔 각축전도 치열했더군요.
    이번 포스팅을 보니 보다 더 실감납니다.

  5. 오디세이 2010/09/09 09: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파노라마 극장 그림들과 그 전투 장면을 묘사하는
    필자의 글솜씨가 압권입니다.
    이스탄티노플, 감동의 도가니입니다.

  6. 이우종 2010/09/09 12: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불타는 탐구욕 과 활활 끓고있는 그 열정에 심심한 존경을 보냅니다. 감히 시늉이라도 해볼까 하고 용기를 내보겠습니다. 더욱 흥미진진한 얘기 기대해봅니다. 건강도 살펴가며 하시기 바랍니다.

    • 호야 2010/09/09 17:50  댓글주소  수정/삭제

      격려 감사합니다 이스탄티노플이란 내가 명명한 도시에 스스로 빠져서 공무 틈틈이 시간내어 전심전력하고 있소 대작 수작소리는 못듣겠지만 힘들여 쓰는 역작인것 만은 분명하오 아직도 쓰고 싶은 게 하 많이 남았으니 건강 챙겨가며 하겠습니다

  7. 중독 2010/09/30 18: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그랗게 생긴 대포알을 보니 대포알을 만드는 일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어쩜 저렇게 동그랗고 예쁘게 만들었죠?
    대포 한번 쏘고 다시 주워다 쏘지는 못했을텐데.
    전쟁동안 쉼없이 대포를 쏘았다니, 대포알 갖고 다니기도 엄청 힘들었겠어요.
    송편을 잘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고 하는데, 동그랗게 대포알을 만든 석공(?석공이 만들었겠죠?)의 딸도 예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ㅋㅋㅋㅋ 아들이 잘생겼으려나?

부산시 인터넷 신문 "부비 뉴스"에서 김형오 前의장을 인터뷰한 후, 그 후기를 기자 블로그에 올렸습니다. 함께 보시죠~

바로가기 클릭! ☞[기자 블로그] 김형오 의원 취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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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 前 국회의장이 8월 27일 오후 국회 방문자 센터를 찾았습니다.
무슨 일로 이곳을 찾은 걸까요?

김형오 의장 뒷편으로 초상화가 걸려있네요. ^_^


국회 방문자 센터에는 역대 국회의장들의 초상화가 걸려 있는데요,
지난 5월말 제18대 국회 전반기 국회의장직에서 퇴임한 김형오 前 의장의 초상화가
설치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 그림을 보러 온 겁니다.


"아! 저깄군요!"


역대 국회의장들의 초상화를 찬찬히 둘러봅니다.


짠~! 어때요? 닮았나요?


이 초상화는 중견 서양화가인 박천웅 화백의 작품입니다.

"여기에 과연 몇 대(代) 국회의장의 초상화까지 걸 수 있을까?"

김형오 의장의 혼잣말에 권오을 국회 사무총장은 뒷편의 넓은 벽을 가리키며
"아직 자리가 많이 남았습니다, 의장님~" ^^;;

"내가 저렇게 생겼나?"

초상화를 볼 때면 그림 속 자신의 모습이 좀 더 자연스러웠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습니다.
이른바 '얼짱 각도'로 '셀카'를 찍어, 마음에 들지 않는 사진은 지워 버리고 '잘 나온 사진'만 남겨둘 수 있는 디지털 시대에 살기 때문일까요?

하지만 초상화에는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이 담겨 있습니다.
국회의장 재임 기간 2년의 모습을 한 폭의 초상화에 담는 것은 어찌 보면 무리인 것도 같습니다.
하지만
이 초상화 한 장에, 제18대 전반기 국회에서 2년간 국회의장으로서 느낀 고뇌와 충정 그리고 전심전력을 담으려 애쓴 박천웅 화백의 마음이 붓끝에 묻어나온 것만 같습니다.
정면에서 볼 때와 왼쪽, 오른쪽에서 바라볼 때 표정이나 인상이 미묘하게 바뀌는 것도 이 그림의 매력입니다.

"나이 마흔이 넘은 사람은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링컨은 말했습니다.
국회 방문자 센터에 들르거든 꼭 역대 국회의장들의 초상화를 세심하게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 얼굴들에서 그 시대의 초상과 역사의 편린을 읽는 재미도 덤으로 느껴 보시기 바랍니다.
소년 소녀라면, 젊은이라면 김형오 국회의장으로부터 몇몇 자리 지난 벽면에 훗날 자신의 얼굴이 걸리게 하겠다는 야심찬 희망을 품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여성 국회의장의 초상화를 보는 것도 그리 먼 미래의 일은 아니겠지요.

"제18대 전반기 국회의장 김형오"의 모습을 그림에 정성스레 담아주신 박천웅 화백님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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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김화자 2010/08/28 21:2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초상화 보다 실물이 더욱 더 멋지신것 같습니다.

  2. 페이스북 2010/08/29 13:0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보는 각도에 따라 표정과 인상이 달라 보인다?
    갑자기 호기심이 발동합니다.
    국회 가면 꼭 보러 가야겠습니다.

  3. 너서미 2010/08/30 11: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와~ 국회방문자센터에 드디어 김형오 의장님 사진이 걸렸군요.
    축하합니다.

  4. 두륜 2010/08/30 12:1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국회의장으로서 보낸 2년의 시간....
    국회의원으로 돌아온 지금, 남은 2년의 시간...
    앞으로의 행보에 따라 방문자 센터에 걸린 초상화가
    국민들의 마음속에 더욱 멋진 모습으로 기억되리라 생각합니다.
    지난 시간의 수많은 학습의 결과물이 의장님의 미래에 소통과 화합의
    결정체로서 거듭 나기를 힘주어 기도 합니다.

  5. 셀리 2010/08/30 1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똑같아요..실물이랑..

  6. 유근준 2010/08/31 20:2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너무 멋진 우리의 친구 김형오, 탄탄한 실력의 중견화가 박천웅화백의 붓 속에 살아난 약간은 어색한 듯한 미소가 더욱 살갑습니다.


▲ 2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태블릿 부활과 콘텐츠 산업 빅뱅'을 주제로 개최한 제3회 조경인사이트포럼에 참석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진지한 표정으로 발표를 주시하고 있다. /박성우 기자


“태블릿PC 시대가 열리면 누구나 가방 속에 태블릿PC를 가지고 다니면서 언제 어디서나 신문과 책을 읽을 것이다.”(강효상·조선일보 부국장 겸 조선경제i 취재본부장)
“모바일 빅뱅은 정치·사회·문화 등 모든 것을 흡수하는 ‘블랙홀’인 동시에 새로운 질서와 가치를 만드는 ‘화이트홀’이다.”(김형오·前 국회의장)

조선미디어 그룹의 경제·투자 전문 매체 조선비즈닷컴(chosunbiz.com)이 2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태블릿 부활과 콘텐츠 산업 빅뱅’을 주제로 개최한 제3회 조경(朝經)인사이트포럼에서는 국내 출시를 앞두고 뜨거운 관심을 얻고 있는 태블릿PC에 대한 다양한 전망과 분석이 제기됐다...(기사 전문 보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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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7월 12일부터 16일까지 5회에 걸쳐 KBS 제1라디오(97.3Mhz)에서 방송된
"명사초대석 - 김형오 전 국회의장편" 다시듣기 서비스를 링크합니다.
※ KBS 라디오 다시듣기 서비스는 KBS 홈페이지 로그인이 필요합니다.

제 1회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네번의 직권상정>
 - 최악의 국회라 평가받는 18대 전반기 국회에 대한 소회는?
 - 역대 국회의장 중 최다의 직권상정, 의사봉을 들었던 당시 심정과 뒷이야기

제 2회 <18대 국회로 본 정치개혁>
 - 국회의 독립성과 정치개혁을 개혁을 위한 방안은?
 - 한나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원로로써의 제언

제 3회 <책을 좋아하던 소년, 정치에 뜻을 품다>
 - 활자를 좋아해 뭐든지 읽었던 소년 김형오, 신문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정치와 접함
 - 외교학과 졸업후 동아일보 기자와  외교안보연구원, 청와대, 총리실을 거처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추천을 받아 14대 국회에 입성

제 4회 <5선 정치인의 정치역정>
 - 한나라당 천막당사 시절 사무총장으로 박근혜 전 대표 보필
 - 17대 원내대표와 인수위 부위원장을 거치며 자칭타칭 현정부 창출의 일등공신 
 - "6.2 지방선거로 준엄한 민심을 되돌아보고 거듭나야 한나라당이 바로설수 있다"
    원로의 쓴 소리

제 5회 <62돌 제헌절 특집 - 전 국회의장이 본 '개헌'> 
 - 국회의장 임기중 가장 아쉬운 것은 '개헌'에 대한 불지피지 못한 것..
 - 18대에 꼭 분권형 대통령제를 도입해야한다고 주장..
 - 정보과학통 의원으로서 '트위터' 입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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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주 월요일(7월 19일),
   방송을 다시 들을 수 있는 음원화일을 올릴 예정입니다.

7월 5일, KBS 1라디오 "명사 초대석" 팀이 국회의원회관을 찾았습니다.
김형오 전국회의장을 명사초대석으로 초대한 것이었습니다.

방송 녹음을 준비하는 명사초대석팀


이 날 방송녹음을 위해 한혜련 PD님과 신은정 작가님, 황병택 감독님, 서현우 감독님, 유정아 아나운서님이 김형오 의원실을 찾아주셨습니다.

명사초대석의 유정아 아나운서와 마주앉은 김형오 의장


약 3시간에 걸쳐 진행된 녹음을 통해 지난 2년간의 국회의장으로서 느낀 점들 뿐만 아니라, 지극히 사적인 '인간 김형오'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할 수 있었습니다.


본격적인 방송에 앞서 장비를 점검하며 긴장을 풀고 있습니다.


녹음이라고 하면 그저 '녹음기'와 '마이크'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짧지 않은 시간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PD님, 작가님과 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며 커다랗고 무거운 녹음 장비를 들고 오신 방송팀을 뵙고 보니 우리가 하나의 방송을 듣기까지 정말 많은 이들의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처음엔 다소 긴장한 듯한 김형오 의장도..


진행도 빼놓을 수 없지요.
유정아 아나운서님 덕분에 긴장하지 않고 편안하게 녹음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편안한 진행에 이야기를 술술~ 풀어냈습니다.^_^


당혹스러운 질문에 당황하기도 했지만, '인간 김형오'를 보여드릴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당혹스러운 질문에 김형오 의장은 과연 어떻게 답했을지..
다음 주 월요일 자정부터 방송되는 KBS 제1라디오 "명사 초대석"을 들어보세요~^_^

"명사 초대석"
FM 97.3 KBS 제1라디오
7월 12일(월) ~ 7월 16일(금) 밤12시 5분 ~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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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호박넝쿨 2010/07/06 19:0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꼭 들어봐야겠어요..흐흐흐

  2. 쉘리 2010/07/11 16:1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내일 밤 12시 5분에 나오는 건가요??? 기대되네요...
    트위터 답장 좀 주세요ㅋㅋㅋㅋ

    • BlogIcon 맹태 2010/07/11 21:11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쉘리님!
      내일 밤 방송입니다. 오늘 밤이 아니고- 월요일에서 화요일로 넘어가는 밤이예요.

      트위터 내용 확인해볼께요~

  3. 별밤 2010/07/15 10:5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옛날 별밤 듣던 시간대네요.
    술 안 취해 귀가한 날,
    꼭 들어 보렵니다.

  4. 쉘리 2010/07/15 21:2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재미있네요..특히 어제는 진짜 재미잇던데..
    트위터에 어느 분 말씀과 제 예상대로 여성을 돌 같이 여기시는 것 같은 느낌이...
    오늘도 기대합니다..

    • BlogIcon 맹태 2010/07/16 10:22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녕하세요, 쉘리님~
      재미있게 들으셨다니 다행입니다.

      다음 주 초에는 블로그에도 올릴 계획이랍니다.^^

지난 26일 타계한 故채문식 국회의장(제11대)의 영결식이
29일 국회장으로 엄수되었습니다.


영결식장으로 故채문식 국회의장의 영정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나 예를 갖춰 영정을 맞이하였습니다.

영결식 시작에 앞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습니다.

고인의 영정 앞에 분향하는 김형오 의장

이 날 김형오 의장은 조사를 낭독하였습니다.
 
조사를 낭독하는 김형오 의장

 

들꽃 같은 삶을 사신 우치(又癡) 채문식 의장님,


의장님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파란과 곡절을

온몸으로 떠안으시고

격동과 격랑의 거센 소용돌이 속에서

건국과 국가발전에 큰 발자취를 남기신,

대한민국 국회의 큰 별이셨습니다.


합리적이고 온화한 의회주의자로

4선에 국회의장을 역임하실 정도로 관록과 인품을 갖춘

모두에게 존경받는 정치인이셨습니다.


국회의장을 끝마친 이후에도

내리 두 번 더 국회의원을 당선하신

6선의 정치 거목이셨습니다.


헌정사에도 굵직한 족적을 남기셨습니다.

납북국회회담 수석대표로

남북화합과 상생의 밑거름을 뿌려놓고,

국제의회연맹(IPU) 의장으로 의회외교의 초석을 다지셨습니다.


앞으로도 대한민국 정치발전을 위해, 국가미래를 위해

이 못난 후배정치인들을 이끌어주셔야 하는데

이리 가시다니 정말 안타까운 마음 가눌 길이 없습니다.


한 평생 염원하셨던 의회민주주의가 꽃피는 대한민국 국회,

온몸으로 열망하셨던 위대한 통일조국의 모습도 보지 못한 채,

부끄러운 후배들에게 꾸지람 대신

온화한 미소만 말없이 머금으신 채,

이제는 우리 곁을 떠나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길로 표연히 가버린

존경하는 채문식 의장님,


차라리 따끔한 질책이나 호통이라도 하셨더라면

우리들 마음은 이다지는 무겁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토록 사랑하셨던 우리 국회와 이 나라가

반드시 의장님 염원대로 새롭게 변하고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다짐을 또다시 하게하는

위대한 아침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유학에 조예가 깊으시고 덕망과 학식, 인덕을 겸비하신

선친의 모습을 빼닮으신 듯

항상 예의와 겸양을 갖추시고

곧고 바른 길을 걸으셨습니다.


서울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전도유망한 청년에서,

약관 23세의 나이에 고향 문경의 ‘명 군수’로,

언론사 논설위원과 대학교수로,

그리고 국회의원으로

학계·관계·정계·언론계를 두루 섭렵하신

명망 높은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5남2녀, 7남매의 책임감 있는 장남으로,

자상한 남편으로,

그리고 슬하에 3남1녀를 훌륭하게 길러내신

지엄하면서도 인자하신 아버지셨습니다.


가족의 행복과 화합을 무엇보다 우선시하는

다정다감한 신사이자

친척들의 어려움엔 앞장서 도와주시는

후덕한 사나이셨습니다.


언젠가 한 인터뷰에서

“내 인생을 이끌어온 것은 시류를 거스르고픈,

마음 한구석에 항상 잠재해있던 ‘반동기질’이었다”라는

말씀이 기억납니다.


주류나 핵심과는 먼, 시류적 대세를 따르지 않고

소수의 편에 설지라도

‘대쪽 선비’의 올곧음과 청렴함은 결코 잃지 않으셨습니다.


요즘 세태와는 달리 눈앞의 이익을 좇지도 않고

명리에 탐하지도 않으셨건만

세상은 빈 그릇으로 그냥 두지 않았고

의장님은 그 큰 그릇을 오롯이 채워내셨습니다.


그 족적은 후진들에게 오래오래 표상이 될 것입니다




청년군수, 야당 대변인, 국회부의장, 국회의장, 당대표 등

화려한 정치경력에도

화려함보다는 진솔함과 수수함을 좇으며

따스한 선정을 펼치신 진정한 목민자셨습니다.


무릇 사람들은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닫지 못하나

의장님은 호를 스스로 우치(又癡)라 해

‘어리석고 어리석음’을 자각하신, 누구보다 현명한 분이셨습니다.


“거창한 정치철학은 없지만, 신조라고 한다면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이다”라고 하신 겸손한 말씀,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를 좇아 행함에 있어

법도에 어긋남이 없다는 좌우명은

의장님의 일생을 고스란히 대변해주는 말입니다.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 없는

들꽃 같은 삶을 사셨던 채문식 의장님,


대한의 아들로 태어난 것이

언제나 자랑스럽게, 가슴을 뜨겁게 한다는 말씀,

저희들 가슴 깊이 기억할 것입니다.

 

나라의 미래와 민족의 앞날을 위해 품으셨던 큰 뜻,

반드시 명심하겠습니다.


겸손과 배려, 풍류와 여유를 실천하신 관인대도(寬仁大度)의 유덕,

소중히 받들고 이어받아

성숙한 정치문화가 확립될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하겠습니다.


의회민주주의자로서 열정을 불태우셨던

그 사랑하던 국회의사당을 뒤로한 채

말없이 떠나가시지만

남기신 유업은 천금만금 저희들 가슴을 억누릅니다.


반드시 대한민국 민주주의 발전과 정착을 위해

국회가 달라지고 정치가 새로워지는 모습을 보이겠습니다.


부디 이 세상의 크고 작은 시름 다 잊으시고

좋은 세상에서 편히 쉬시옵소서.


다만 한 가지 저희 후진들이 제 갈길 잘 가도록

후덕한 눈빛으로 인도해주시고

잘못 갈 때엔 호랑이 눈빛으로 엄히 꾸짖어 주십시오.


삼가 두 손 모아 명복을 빌며,

유가족 여러분께도 깊은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



2010. 6. 29.

전 국회의장 김 형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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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푸른눈물 2010/07/15 10: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