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형오가 만난 세상/김형오 팀블로그 콘텐츠

'국회의장님은 석류를 좋아해~'

▲ 5월 비가림 시설 설치 전 석류나무 시집보내기

의장님 서재 창 앞에 석류나무가 한 그루 있다. 보기에도 우람하게 잘 자랐으나 여태껏 열매를 맺지 못했다고 한다. 의장님은 올해는 어떻게든 열매를 맺도록 해야 한다고 몇 번이나 독백 겸 당부하였다. 의장님 지시로 석류나무를 시집 보낸다고 나뭇가지 벌어진 곳에 큼지막한 돌멩이도 꽂았다.(*사진 동그라미 내 돌멩이) 

이것도 부족해서인지 의장님께선 석류 전문가들을 통해 원인을 알아보라 하셨다. 그중 전남 농업기술원 나양기 박사는 의장님과 장시간 직접 대화를 하며 여러 가지 자문을 해주셨다. 박사님은 오랫동안 석류를 연구, 재배하며 우리나라에서 석류에 대해서는 최고 전문가 중의 한 분이라 한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다고 한다. 나무 상태는 예상했던대로 아주 좋다고 하셨다. 개화기 때 비가 많이 오면 수정이 되지 않아 열매가 맺지 않는다고 한다.

석류는 원래 아주 건조하고 햇빛을 좋아하는데 우리나라는 석류 개화기 때 장마철과 겹쳐있는 시기라서 개화할 때 수정이 잘 안 되고 낙과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이란 같은 중동의 메마른 지역의 석류가 한국에 많이 들어오나 보다.

나박사님 등은 비를 막는 시설을 설치하고 인공수분을 해주는 것이 좋다고 한다.

의장님은 즉각 비가림 공사를 지시하셨다. 간단한 시설 공사였지만 준비하느라 시간이 며칠 걸렸다. 완성된 그날 저녁, 갑자기 폭우가 쏟아졌다. 정말 다행이다. 만약 하루라도 늦었더라면 막 피기 시작한 꽃들이 다 떨어졌을지도 모른다. 6월 9일이었다.

▲ 비가림 시설 설치 모습

▲ 비가림 시설 설치 후의 근경

▲ 갓 피어난 석류꽃 수술모양(좌), 수술 속의 암술머리(우)


개화가 시작되자 비료를 물에 녹여 잎에다 뿌렸다(葉面施肥). 물론 친환경 비료를 썼다. 잎이 활동을 잘해야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제 본격적인 열매 맺기에 들어갔다. 인공수분(人工授粉)이다. 벌과 나비가 해야 할 수정 도우미 역할을 사람이 인공으로 하는 것이다. 벌과 나비가 게을러졌나? 사실은 도시에서 벌과 나비가 요즘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공관 야생화가 엄청 화려하게 피어있음에도 벌과 나비는 많이 볼 수 없다. 또 바로 옆에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니 이곳까지 오기도 쉽지 않을 거다.

의장님은 하루에도 몇 번 씩 석류나무를 살펴 보셨다. 비바람 부는 날이면 늦은 밤이나 새벽녘에도 나와서 석류상태를 점검 하셨다. 퇴근 후 공관에 도착하시면 석류 상태부터 묻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었다. 이런 의장님께 꾸중 듣지 않으려고 공관팀은 있는 정성 없는 정성 쏟아 부었다.

▲ 인공수분 하는 모습

개화기간 동안 2~3일 간격으로 인공수분을 지속적으로 실시하였다. 인공수분 역시 나양기 박사님이 알려준 대로 하였다.

▲ 장주화(좌), 단주화(우)   

석류꽃에는 단주화와 장주화가 있다. 이 차이는 열매가 열릴 가능성이 높은 장주화, 그렇지 않은 단주화로 구분한다. 단주화는 인공수분을 하여도 자방이 없어 열매가 될 가능성이 희박하다.

얼른 봐도 엉덩이(?)가 큰 놈은 자방(子房)이 발달한 장주화이고 끝이 미끈하여 얄쌍하게 생긴 놈은 열매를 못 맺는 불임화이다.

▲ 봉지 씌우기 전 엄지손가락 크기

7월초 인공수분에 성공한 것인가, 장주화가 엄지손가락 정도의 크기로 자방이 형성 되었다. 의장님은 몇 번이나 그 모습에 아이처럼 즐거워 하셨다. 나박사님이 일러준 대로 반투명 봉지를 씌웠다. 빛도 막으면서, 병충해 보호하고, 착색 효과를 내도록 하기 위해서다.

▲ 7월말, 백색 반투명 봉지를 씌운 모습

▲ 봉지제거 전 반 봉지 상태

▲ 9월초 백색 반투명 봉지 제거한 모습

▲ 15개의 석류 중 제일 큰 열매가 휘지 않게 줄로 지탱한 모습 

이것도 의장님 지시로 가지가 많이 휘어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줄을 이었다.

봉지제거작업은 9월초부터 보름간 서서히 진행되었다. 햇볕을 덜 받는 쪽부터 했다. 갑자기 햇볕에 노출되면 상할 수도 있다고 한다. 봉지 하나 제거 할 때마다 의장님이 직접 참관(?)하셨다.

9월 하순 마지막 봉지를 제거했다. 모두 15개의 탐스러운 열매가 매달려 있다.

나박사님은 서울근교에서 이 정도 꽃이 달리고, 게다가 열매까지 많이 맺는 나무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칭찬해 주셨다. 의장님도 매우 흡족해 하시며 공관 방문객을 일부러 후원까지 데려와 석류나무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봉지를 막 벗겼을 때는 연두색이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열매가 붉어졌다.

▲ 10월에 수확한 15개의 석류

10월19일. 드디어 잘 익은 석류열매를 수확하여 예쁜 바구니에 담아 보았다. 사실 나는 계속 나무에 붙은 상태로 두고 싶었는데 의장님이 지금이 따기 좋은 시기라고 하여 아쉽지만 따냈다. 바라보고 있자니 바구니에 들어간 석류는 계속 더 붉어지고 더 탐스러워 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3개월간 많은 정성을 쏟아 만든 결실이라 굉장히 뿌듯했다. 내가 이 지경인데 의장님 심정은 어떠실까?

몇 개월간의 노력의 결실을 내년에도 볼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공관의 석류나무가 열매를 맺기까지 많은 자문을 해주신 나양기 박사님께도 감사드리며 마침표를 찍어본다.

* 추신 : 이 글을 마치는 순간까지 석류 열매는 붉은 광채를 띠면서 여전히 바구니에 담겨있다. “의장님, 석류 어떻게 하실 건가요? 잡수실 건가요? 누구 줄 건가요? 아니면.....?”

 

Posted by 해돋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