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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에 나온 루저 김연아가 의미하는 것

"외모도 출중하지 않고 옷걸이도..."


누구의 이야기일 것 같으세요? 
 
라디오에서 전해들은 이야기인데요. 광고계에서 외면 받을 당시에 모 의류업체에서 김연아를 평가한 내용이었다고 합니다.

'2005-2006 국제빙상경기연맹(ISU) 피겨 주니어 그랑프리 파이널' 우승 직전까지 김연아는 여러 기업으로부터 외면당했습니다. 우승 전까지 그런 말이 나왔으니 광고 모델로서나 스폰서 대상으로서는 당시 그녀는 분명 루저였습니다.

본시 기업이란 이윤과 고수익이 있다고 하면 물불을 안 가리기도 하는데, 그런 김연아를 외면해놓고 이제서야 억대의 비싼 몸값을 경쟁적으로 지불하는 모습이 흥미롭습니다.

많은 국민들도 예전에는 한국의 모 선수가 피겨에서 유망하다는 정도는 인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처럼 대한민국의 새벽을 좌우할 선수가 되리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죠. 실제로 이런 일은 월드컵, 올림픽 아니면 스포츠종목으로선 참 드문 경우였으니까요.

저는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김연아가 이 정도로 세계적인 선수가 아니었다면?'



스포츠스타의 가치와 위력

마이클 조던의 덩크슛 마크가 박힌 나이키 신발이 나오기 시작했을 때 그것을 갖는 것은 많은 10~20대들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그는 NBA라는 것을 상징하는 절대 지존의 선수였으니까요. 그런 흐름과 무관하지 않게 우리 농구도 인기를 끌었고 농구 드라마까지 나오며 문화와 상품 전반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대형 스포츠스타가 문화 전반에 미친 영향을 말해주는 사례죠. 최근까지 중국도 야오밍이란 NBA 농구 스타로 전역이 열풍에 휩싸였었죠.

지금 김연아도 피겨에서는 감히 왕좌를 넘보는 것이 실례가 되는 그런 선수가 됐습니다. 아니 이제는 단순히 '김연아가 우승하느냐?'보다 김연아가 '몇 점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우승하느냐?'가 관심사가 되어 가고 있죠. 그 뿐입니까? 김연아가 마시는 우유, 김연아가 입는 옷, 김연아가 하는 그 무엇은 우리의 생활의 전반에 침투해 있습니다. 그만큼 스포츠스타의 위력은 날로 커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 용병으로 뛰고 있는 8000명의 브라질 출신 선수들의 수입은 대략 18조원에 이른다고 합니다. 일부 귀화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결국 본국으로 들어온다면, 그 돈의 일부만 유입된다고 하더라도 엄청난 규모인 거죠. 박지성과 팀 동료였던 호나우도라는 선수는 한화 1,500억원대의 이적료를 기록했습니다. 1,500억원이면, 도대체 반도체와 자동차를 얼마나 팔아야 나오는 돈입니까?

꼭 바다 건너에 물건을 팔아야만 그게 경제적 이득만은 아니라는 겁니다.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나라가 인구밀도까지 높으면 사람과 문화에 투자하는 것도 고민해봐야 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의 현실

그런데 그런 이야기를 꺼내기에는 우리 사회를 되돌아봐야 할 것 같습니다. 스포츠스타를 성장시키는 몫을 개인과 그 가족에게 전가시키는데 비해 권력과 자본은 투자는 등한시하고 그 효과에만 눈이 멀어 있습니다. 아직 한국은 좋은 시스템과 지속적인 투자에서 꾸준한 인재가 나오게 아니죠. 김연아, 박태환과 같은 각 분야의 시대가 낳은 천재에만 의존하는 구조를 면치 못하고 있습니다. 특히 비인기종목, 무관심한 분야는 특히 그런 부분이 더욱 심합니다. 이제는 조금씩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요?

아마도 김연아가 안 나왔으면 피겨는 영원히 한국에서 동계올림픽 출전 티켓 확보하는데 전전하는 종목이었을 지도 모를 일이죠. 어느 분야건 사정이 있겠지만, 세계에 이름 떨치는 것에 비해 가장 외면 받는 분야가 바로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광고효과가 몇 천억이니 몇 조이니 하면서 과연 스포츠에 대한 투자는 얼마나 되고 있을까요? 국가와 기업이 얻은 이익만큼 스포츠에 환원되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어떤 분야보다 한국을 세계로 알리는데 공헌한 게 스포츠 아닙니까? 80년대 분단 상황에 처한 무명의 개발도상국을 세계 만방에 알린 것도 올림픽이지 않았나요? 월드컵, 아시안게임, WBC에 각 개별종목 대회들까지 태극전사의 피땀이 한국인에게 자신감과 감동을 선사한 것을 잊은 거 아니시죠?



열악한 스포츠 현실

현재 한국 스포츠는 열악한 환경에서 쥐어 짜듯이 결과를 내고 있습니다. 적어도 IMF 전까지는 일부 종목이나마 실업팀이라도 유지되는 경우라도 있었죠. 지금은 프로팀, 실업팀이 있는 스포츠종목들조차 고사되고 있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지난 WBC에서 한국야구는 세계 정상급 기량을 뽐내며 준우승을 차지했습니다. 최강 메이저리그 출신 선수들이 즐비한 팀들을 상대로도 정말 좋은 경기를 했습니다.

그렇지만 명색이 프로인데도 1940년대 지어져서 언제 무너질 지 모르는 야구장에서 경기를 해야 하는 걸요. 게다가 학생야구의 싹이 말라가서 야구부가 유지가 안 된다고 합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야구가 이러한데 다른 종목은 어떻겠습니까? 미래가 죽어가는 스포츠 환경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는 건 1회성 이벤트일 뿐입니다.

(그게 김연아라고 다르겠습니까? 희대의 천재가 이 땅에 나와준 것이 눈물나게 고마울 따름인 거죠. 김연아 이후, 즉, 포스트 김연아도 생각해보자구요.)

상황이 이런데도 어디서 구할 지 모르는 수천억의 돈으로 유지비 감당하기 어려운 돔구장을 짓는다는 허황된 이야기만 합니다. 더구나 2008년 기준으로 대구시는 2조8천억원의 부채를 갖고 있어서 광역시 가운데 부채비율이 최악 수준입니다. 광주도 마찬가지죠. 이런 얘기들이 스포츠팬들을 더 허탈하게 합니다.



이제는 모두가 나서야 할 때

제발 뜬 구름 잡는 소리 말고, 과연 은반 위의 '제 2의 김연아' 혹은 '다른 분야의 김연아'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 고민해야 됩니다. 열악한 체육환경 개선과 생활체육 활성화에 눈을 돌릴 때가 됐습니다. 마냥 소득 2만불 시대만 외칠 게 아니라 실질적인 스포츠 저변에 투자하는 것부터 그에 걸맞아야 합니다.

우리도, 언론도 김연아에게 감동받았다면, 이제는 뭔가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언론도 지속적이고 장기적으로 이야기를 꺼냈으면 합니다. 더 이상 스포츠 스타 개인과 가족의 피땀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가와 기업이 나서서 스포츠의 뿌리부터 키워보는 작업을 하면 안 될까요?

만일 우리 피겨계에 김연아가 안 나왔다면, 여전히 피겨 스케이터들은 루저 취급 받았을 지도 모릅니다. 루저가 다른 게 루저입니까? 무관심 속에 외면 받으면 그게 루저인 거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눈물 흘리며 연습하는 수많은 스포츠 선수들이 루저 취급 받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최소한 그들 하나 하나를 영웅처럼 모시지 못하더라도 최소한의 환경, 일말의 희망은 건내줘야 할 때가 온 것 같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김연아로 받은 기쁨을 되돌려주는 길이 아닐까요?




※ 사진 출처 : 네이버 꿈지기(narp)님 블로그, 매일유업 월페이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