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리따운 한 여자를 동시에 사랑하는 두 남자의 이야기는 인류 역사상 가장 흔하게 작품화된 플롯(plot) 일 것이다. 누구라도 한 번쯤은 경험하거나, 목격할 수 있는 ‘리얼 스토리’ 이기 때문이리라.
스페인의 거장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이 연출한 <브로큰 임브레이스> 역시 ‘한 여자 두 남자’ 플롯을 도입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 ‘마력’을 지닌 영화다.
질투심에 사로잡힌 남자가 여자를 자동차 사고로 죽게 만드는 장면 역시 어디선가 많이 봤던 장면이지만, 좀 특별하다면 그녀와 함께 타고 있던 남자가 장님이 되어 이 영화의 나레이터 겸 주인공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 장님의 동생이 나레이터가 되면 한국영화 <서편제>가 된다는 걸 잘 알 것이다)
▲ 수많은 명작에 출연해 세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페넬로페 크루즈. 근데 이 사진은 좀...
영화 속 주인공의 현실 속 이름은 그 이름도 유명한 ‘페넬로페 크루즈’!
영화는 스페인 대표 여배우 페넬로페 크루즈가 열연한 여주인공의 단조롭던 일상에서 출발해, 그녀의 아버지가 병으로 사경을 헤매는 상황을 거쳐, 재벌 노인과 젊은 영화감독 사이에서 고뇌하는 삼각관계로 빠르게 전개되어 나간다.
♣ 초간단 영화 줄거리 ♣
아버지의 병원비에 부담을 느끼던 여주인공(페넬로페 크루즈)은 자신이 다니던 회사 사장의 정부가 된다. 늙은 사장의 정부로 살아가던 그녀는 영화배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디션을 보게되고, 그곳에서 젊은 영화감독을 만나 사랑에 빠진다. 이를 알게 된 늙은 사장은 자신의 아들을 시켜 두 사람의 행동을 캠코더에 담으며 감시하지만, 둘의 사랑을 막지는 못한다. 결국, 늙은 사장은 사람을 시켜 두 사람이 탄 자동차를 들이받게 되고, 여자는 죽고 남자는 장님이 된다. 장님이 된 영화감독의 시선으로 1982년과 2008년 사이를 오가며 이 영화는 전개되어간다.
<브로큰 임브레이스>를 규정할 수 있는 몇 가지 특징을 중심으로 영화를 감상해보자.
▲ 이 화려하고도 절묘한 색의 조합을 보라. 영화는 줄곧 색상으로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 영화에 대한 느낌을 한마디로 표현하라면 ‘화려한 색(色)’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마치 몬드리안의 구성작품 속 파랑,노랑,빨강색을 영화 속에 옮겨놓은 듯한 강렬하고도 정제된 화면구성은 관객들의 눈동자를 시시각각 총천연색으로 물들인다.
스페인 마드리드라는 배경을 강조하고 싶은 감독의 의도가 너무도 강렬하게 느껴지는 색채의 향연은 현란함을 넘어 다소 부담스러울 정도.
2. 감독과 여배우의 자전적 스토리?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마치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배우 페넬로페 크루즈의 현실 속 관계를 암시하는 듯한 설정으로 끝까지 지속된다. (마치 알모도바르의 영상 자서전이 아닌가 하는 착각에 빠질 지경이다.)
영화에는 색감을 유난히 강조하는 감독(페드로 알모도바르) 이 등장하고, 그 감독에게 캐스팅된 여배우(페넬로페 크루즈)가 열연을 펼친다.
▲ 페넬로페 크루즈와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 영화제에서 부부 같은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자본가의 금력에 저항하기도 하고 적응하기도 하는 감독과 배우들의 현실을 드러내는 대사가 영화 곳곳에서 튀어나오지만, 결국 배우와 감독의 '예술'이 '자본'보다는 우선이며 우월하다는 결론으로 영화는 마무리된다. (창작자들이 흔히 겪는 고민이 아닌가?)
이 영화를 보는 내내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과 페넬로페 크루즈의 결혼 발표가 곧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영화관과 편집 스타일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감독은 영화 속에 또 다른 영화제작현장을 끼워넣음으로써 자신의 영화세계를 관객들에게 가감없이 보여준다.
▲ 아, 다시 한번 감탄하게 되는 색의 향연. 흙과 바다와 남녀가 입은 옷의 색상을 보라!
영화 속 한 남자는 감독으로 , 또 다른 남자는 영화에 돈을 대는 자본가로 등장하면서 한 배우지망생(페넬로페 크루즈)을 놓고 사랑 전쟁을 벌이는 설정이 등장하는 것이다.
또한 영화 제작 현장을 담아내는 또 하나의 시선을 자본가 아들의 캠코더로 등장시키면서 , 영화는 이중.삼중의 시선을 교차시키고 있다.
솔직히, <브로큰 임브레이스>의 스토리는 ‘그저 그렇다’ 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다. 흔하디 흔한 남녀간의 삼각관계 이야기일 뿐이다. 누군가는 1992년과 2008년을 오고가는 시공간의 교차가 독특했다고 말하지만, 이는 너무도 흔한 기법 아닌가?
이 영화에는 다이안 레인, 리처드 기어 주연의 불륜살인영화 <언페이스풀>의 애절함과 긴장감이 존재하지 않았다. 또한 윤대녕의 명작 단편소설 <신라의 푸른 길>에 등장하는 30대 남녀의 풋풋함과 절제도 찾기 힘들었다. 단지 처절하고도 이기적인 세 사람의 욕망만이 산재되어있을 뿐.
▲ '가난하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란 말은 '늙었다고 사랑을 모르겠는가'로 치환될 수 있다. 안 그런가??
물론,영화속 이 노인은 욕심이 지나쳐서 여자를 죽이는 백수(白首)광부로 그려지고 있지만...
거슬리는 것은, 영화속 늙은 자본가의 욕망을 과도하게 도착적이고 추하게 그려내고 있다는 점.
'늙은 욕망은 욕망이 아니다' 라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아 심한 거부감이 느껴졌다.
반면 감독 자신의 분신이랄 수 있는 영화 속 감독과 여배우의 관계를 미화시키는 설정이 자주 등장함으로써, 더욱 더 ‘늙음과 자본’에 대한 경멸을 영화속에 담아내는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의 편향된 시각이 감지되었다.
그러나, 어쨌든 잘 만든 한 편의 스페인 영화였다.
스페인의 열정과 강렬한 색감을 경험하고픈 사람들에게 이 영화를 권하고 싶다.
물론, 스페인을 직접 다녀오는게 제일 좋겠지만.................
▲ <브로큰 임브레이스>는 마치 미술관에 다녀온 듯한 느낌을 선물하는 영화다.
- posted by 백가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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