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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비잔틴제국 최후의 황제 목소리 되살려 패자의 역사를 복원하고 싶었습니다"

2012-11-23 [한국일보] 기사    바로가기 클릭

 

■ 역사소설 '술탄과 황제' 작가로 돌아온 김형오 前 국회의장

두달간 취재 5개월간 집필

"종군기자 된 듯 치열하게 써 술탄과 황제 꿈에 와달라 빌기도"

 

22일 만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정치인 프리미엄 없이 책으로만 평가받겠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배우한기자 bwh3140@hk.co.kr

1453년 5월 29일 비잔틴제국 최후의 날은 이스탄불을 둘러싸고 동서 문명이 한판 대결을 벌인 역사의 한복판이었다. 그리고 그곳에는 뱃길이 막히자 군사들에게 배를 짊어지게 하고 산을 넘어간 오스만 제국의 열혈 술탄 메흐메드 2세와 승산 없는 싸움이었지만 항복을 거부하고 제국과 함께 산화한 비잔틴 최후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11세의 막상막하의 리더십이 존재했다.

<술탄과 황제>는 중세와 근대의 기점이 된 이 역사적인 사건과, 이전의 54일을 사료를 통해 복원하고 이를 소설 형식으로 풀어낸 팩션이다. 저자는 5선 의원과 국회의장을 지낸 김형오(65). 그는 4ㆍ11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이후 터키로 건너가 두 달 가까이 전쟁 전문가들과 심층 인터뷰를 하며 자료를 보충했고, 꼬박 5개월 간 집필에 매달렸다. 22일 만난 김 전 의장은 "사건의 편린들을 가지고 쓰려니 괴로웠지만, 한편 끝까지 팩트에 충실하자고 종군기자가 된 듯 치열하게 썼다"고 말했다.

2009년 국회의장 시절 터키를 방문했을 때, 이스탄불 군사박물관에서 당시 사료를 발견하고 영감을 얻었다는 그는 책을 쓰려 틈틈이 메모도 하고 관련 책을 100여권이나 읽었다고 했다. 덕분에 다섯 번째 방문인 이번에는 47일간 체류하면서 초고를 완성할 수 있었다. 1장 마지막 총공세의 나흘을 영화처럼 재현했고, 2장 술탄과 황제의 일기를 교차하는 방식을 택해 긴박함을 더했다. 3장 2012년의 작가가 그 역사를 좇는 부분은 사족처럼 느껴지지만, 전반적으로 구성도 문장도 탄탄하다. 이어령 교수는 추천사에서 이름을 가리고 읽었다면 젊은 작가가 쓴 실험소설이라고 생각할 법하다고 평했다. 그의 자부심도 상당했다. "현실정치에 몸 담은 사람으로 아무래도 당대 최고 지도자들을 복원하는 작업의 이해도가 다른 사람들보다는 높지 않았을까요." 그래도 황제와 술탄의 심리를 복원하는 부분은 어려워 "제발 꿈에 와달라"고 절박하게 빌기까지 했다고 덧붙였다.

김 전 의장은 책에서 패자인 콘스탄티누스 11세의 역사를 복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가 비겁하게 도망치려 했다가 죽었다는 사료들이 많더군요. 제국이 계속 땅을 잃어가는 걸 보면서 망할 거라는 걸 콘스탄티누스 11세도 알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황제의 성품을 보면 도망은 말이 안되죠." 한국 입법부 수장이었던 그가 터키 역사를 집필하겠다고 나서니 쟁쟁한 터키의 역사학자들에게 자문을 구하는 작업이 수월했다. "상대하기 힘든 학자들도 있었는데 성의껏 답을 준 것은 국회의장 프리미엄을 톡톡히 본 거죠." 때문에 술탄과 일반 병사는 어떻게 음식이 달랐는지, 전쟁 중에 목욕이나 용변은 어떻게 해결했는지 하는 디테일을 책에 복원할 수 있었다. 이탈리아 모데나의 에스텐스 장서고에서 유일하게 남겨진 그 초상을 발견한 것도 큰 수확이었다.

"술탄 역시 유럽에서 볼 때 악마요 사탄이지만 오스만투르크를 중심으로 세계 평화를 만들겠다는 철학과 사상이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영웅을 통해 한편의 세계사, 인간이 어떻게 살아 가야 하는가를 모두 담으려 했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고, 어떤 모습으로 죽어야 하느냐 하는 메시지를 던지고 싶었습니다."

 

채지은기자 cje@hk.co.kr 입력시간 : 2012.11.23 21:1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