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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조성호 월간조선 기자
사진 : 조선DB


김형오(金炯旿·73) 전 국회의장이 최근 국회도서관에 자신의 책 2074권과 기록물 5000여 점,

국회의장 재임 시절 세계 각국으로부터 받은 선물 178점을 기증했다. 정치인으로서 기록물을

도서관에 보내는 경우는 있었지만, 김형오 전 의장처럼 재임 시절 받은 선물까지 모두 기증한

사례는 드물다.

이를 기념해 국회도서관(관장 허용범)은 9월 17일까지 ‘김형오 전 국회의장 기증자료 특별전’을 개최했다. 이 전시에는 각국 정상과 국회의장 등 귀빈에게서 받은 선물 120여 점이 전시됐다.

주한 인도대사에게 받은 인도 코끼리 모형을 비롯해 터키 에르도안 총리에게 받은 금속보석함,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에게 받은 전통공예 다기(茶器) 세트 등이 눈길을 끌었다.

김 전 의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공인의 삶과 신분으로 받은 것은 국민의 것이기에 당연히 내놓아야 한다고 예전부터 죽 생각했다”고 말했다. 또한 기증한 도서는 국회도서관 내에 ‘김형오 개인문고’를 설치해 일반인들이 열람할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이며, 기타 의정기록물은 디지털화 작업을 거쳐 국회전자도서관을 통해 서비스할 예정이다.

 

 

[월간 조선 2019년 10월호] 기사원문 ☞ 바로가기 ☜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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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판, '물갈이' 하랬더니 물고기만 갈아"

"원로와 중진들, 정치발전 '불쏘시개' 돼야"

"젊은이들, 세상을 바꾸려면 지금이 기회"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들의 정치인생이 모두 비극으로 막을 내렸다. 이 모든 비극의 근본적인 뿌리는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다"고 지적했다. [사진=위키리크스한국]

 

 

"우리는 시스템도 미흡하고 민주주의 교육도 잘 안 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포퓰리스트 정권은 더욱 위험합니다."

 

"물갈이 대신 '판 갈이'를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말입니다. 구조를 바꾸려면 첫째가 개헌이고, 둘째가 정당법과 국회법, 정치자금법 같은 정치관계법을 바꾸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이 북····'오면초가(五面楚歌)'에 처해 있다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북한은 올해 들어 열 차례 신형 무기를 시험 발사했다. 그 어느 때보다 군사정보 공유가 중요한 시점에 우리 정부는 '국익을 위해' 일본과의 지소미아를 폐기하기로 했다.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 조치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다.

 

한일 갈등은 우리 대법원의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판결에 따른 단순한 과거사 갈등이 아니다. 경제와 외교·안보까지 걷잡을 수 없이 갈등이 확산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미일 삼각협력', 나아가 '한미 동맹'의 축까지 흔들고 있다.

 

<위키리크스한국>은 이러한 총체적 난국의 본질적 원인을 자유민주주의 발전에 따른 사회의 다양성을 외면하는 정치적 후진성과 운동권 출신 인사들의 집단 이기주의라고 진단했다.

 

지금 청와대와 여당을 장악한 운동권 출신 인사들은 과거사에 집착하며 그들이 정의(定義)하는 '더 큰 정의(正義)', 그리고 그들이 몸담은 조직의 이익을 위해 '사소한 정의'를 외면하며 자신들의 부정(不正)을 합리화하는 집단주의 성향을 보이고 있다.

 

1야당인 자유한국당 역시 존재 가치를 위협받고 있다. 지역감정과 종북론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고 시대가 요구하는 방향성과 투쟁력을 상실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난세에 영웅이 나타난다고 했으나 지식인과 정치 원로 등 사회 지도층은 현실을 외면하거나 현실감 없는 진단을 하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난달 자유한국당 국회의원 연찬회에서 쓴소리를 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당시 그는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 "정부와 여당, 특히 청와대의 독주독선을 막으려 몸을 던졌는가"라고 질책하며 "여당의 실정(失政)이 아니라면 한국당은 이미 존재하지 않는 당이었을지도 모른다. 안보는 625 이후 최고로 취약하고, 경제는 IMF 이후 최대 위기이며, 외교는 1965년 이후 최악의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당이 살고 자유민주주의가 살기 위해 몸을 던져야 한다""장엄하게 몸을 던져 죽으라"고 말했다.

 

<위키리크스한국>은 합리적인 보수의 상징이자 존경받는 정치 원로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최근 서울 강남의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김 전 의장은 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희생한 운동권의 정치 참여는 환영하면서도 '곁다리 운동권 출신'들의 정치 참여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봤다.

 

김 전 의장은 "운동권에 곁다리를 걸치며 어슬렁거렸던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높은 자리에 오르고 또 어떤 이는 국회의원 배지를 단다""이런 '곁다리 운동권 출신'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동료들에 대한 존중과 애국심 없이 과실을 따 먹기만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렸던 동료를 대신해 그 자리에 올랐으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해야 할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김 전 의장은 '곁다리 운동권' 출신이 장악한 진보정권의 정치적 조작(political manipulation)을 경계했다.

 

그는 "옛날에는 '깨끗하지만 경험이 없는 진보', '능력은 있지만 부패한 보수'라고 했는데 지금의 진보는 깨끗하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다""깨끗하지도 않고 능력은 없는데 정치적인 조작은 아주 뛰어나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가 경영'에 대한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보기 힘들다.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외부에 적을 만들어 내부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의장은 "편 가르기 하면서 진영논리만 주장하면 되니 참 편리하다. '진영'이라는 버스에 오르기만 하면 운전하는 수고 없이 목적지까지 갈 수 있다""요즘 진보와 보수로 편을 가르는 사람들은 진영논리에 의존하며 기득권에 안주하는 집단 이기주의의 화신"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김 전 의장은 세계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포퓰리즘이 우리나라에는 더욱 위협적이라고 우려했다. 유럽 국가나 미국과 달리 국가 시스템도 민주주의 교육도 미흡한 우리나라에서 그 해악이 더욱 크기 때문이다.

 

그는 "유럽과 미국 시민들은 오랫동안 민주주의 교육을 받아왔다. 민주주의를 해칠 정도로 포퓰리즘을 받아들이지 않는 국민 정서가 있다""의회 민주주의가 발달한 유럽 국가들은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 의회와 정부 간 견제와 균형이 잘 이뤄진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국민들은 정치적 조작에 감정 이입을 잘한다. 성격이 너무 급하고 너무 쉽게 열광한다. 누군가를 하루아침에 '영웅'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한다"면서 "국민들은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차분하게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의장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개헌'을 제시했다. 개헌은 그의 18대 국회의장 취임 일성이기도 했고, 그가 30여 년 정치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점으로 꼽는 부분이기도 하다.

 

김 전 의장은 총선을 약 7개월 앞둔 현재 '물갈이' 대신 '판 갈이'를 강조했다. 물갈이라는 말이 물이 아닌 사람을 바꾸는 것이 됐으니 '판 갈이'를 하자는 것이다. 그는 "다시 말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말"이라며 "구조를 바꾸려면 첫째가 개헌이고, 둘째가 정당법과 국회법, 정치자금법 같은 정치관계법을 바꾸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김 전 의장은 정치 원로들과 중진들이 정치발전을 위한 '불쏘시개'가 돼야 한다고 제언했다. 그는 "여야 어느 진영에 속하건, 나 같은 사람들, 다시 말하면 나라와 국민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이제 무엇을 더하고자 해서는 안 된다. 현직의, 이른바 정치권의 원로·중진들은 자기가 중심적 위치에 있어야 하고, 킹은 아니어도 킹메이커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잘 먹고 잘살고 잘 대접받았으니 이 나라 정치발전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겠다고 해야 한다""특히 편안한 지역구에서 쉽게 당선된 의원들은 더 그래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 전 의장은 젊은이들의 적극적인 역할도 당부했다. 그는 "정치를 꿈꾸는 젊은이들이 세상을 바꾸려면 지금이 기회다. 조금은 모자라고 조금은 서툴더라도 순수한 열정과 애국심으로 스스로를 무장해 달려나가야 한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위해 떨쳐 일어날 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말했다.

 

김 전 의장은 '사회 정풍운동 또는 정치개혁 운동에 앞장설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수없이 얘기했지만 듣지 않는 것 같다"1905년 을사늑약 체결 당시 백범 김구 선생의 일화로 대답을 갈음했다.

 

김 전 의장에 따르면 당시 민영환 공이 자결하고 이상설 참판이 자결을 시도했지만, 김구 선생을 비롯한 청년 지도자들은 죽기를 무릅쓰고 항의시위를 하다가 마침내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당시 민중의 의식과 수준으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다. 김구 선생은 이후 각지를 돌며 애국 계몽운동을 열심히 하고 민중을 가르치며 문맹 퇴치에 힘썼다.

 

김 전 의장은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죽음이 나라를 되찾는 데 효과가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는 것"이라며 "나라를 위해 교육이 그만큼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경남 고성 출신으로 경남고와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정치학 석사학위, 경남대학교 대학원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김 전 의장은 동아일보 기자로 재직하다 1978년 외교안보연구원에 들어가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14~18대 국회의원과 한나라당 원내대표를 지내고 18대 국회의장에 오른 뒤 정계를 은퇴했다. 2013년부터 올해까지 부산대 석좌교수를 역임했으며 2015년부터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을 맡고 있다.

 

김 전 의장은 "'곁다리 운동권 출신'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동료들에 대한 존중과 애국심 없이 과실을 따 먹기만 한다"며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렸던 동료를 대신해 그 자리에 올랐으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해야 할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사진=위키리크스한국]

 

다음은 김형오 전 의장과의 일문일답.

 

▶의장님의 정치인생에서 가장 보람된 점을 무엇으로 꼽으시겠습니까?

 

"'돈을 벌어오는 국회'를 만들었던 것이 기억에 남습니다. 20015월 미국 퀄컴으로부터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특허권 기술료로 2억 달러가 넘는 돈을 받아냈습니다. 당시 환율로 계산하면 3천억원 가까이 되는 엄청난 돈이었죠.

 

1995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퀄컴의 CDMA 원천기술을 세계 최초로 상용화했습니다. 원천기술 로열티는 퀄컴이, 상용화 로열티는 우리가 받는 것이지요. 그런데 퀄컴은 받을 것만 받고 우리에게는 단 한 푼도 내놓지 않았어요.

 

그래서 제가 1997년도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퀄컴 CEO에게 편지를 보내고 국회 대책반을 구성해 퀄컴 본사에 항의 방문했습니다. 미온적인 정부와 ETRI를 압박해 3년간 중재재판을 해서 결국 이겼습니다. 기술료 배분액 1255530달러를 즉시 받고, 이후 순차적으로 받은 것이 1억 달러를 훨씬 넘었으니 총 2억 달러가 넘는 돈을 받았죠.

 

당시 언론으로부터 '의정 활동으로 돈을 벌어 온 유일한 국회의원'이라는 찬사를 받았습니다."

 

▶국익에 엄청난 기여를 하셨는데 당시 정부의 반응은 어땠나요?

 

"이렇게 국익을 위해 돈을 벌어와 '돈을 벌어오는 국회'를 만들었지만 야당이라 그랬는지 훈장도 표창도 받지 못했습니다.

 

'공무수행 중에 한 일에 대해서는 보상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퀄컴으로부터 기술료 배분액을 받아낸 것은 통상적인 공무수행은 아닙니다.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던 문제를 찾아내 보좌관과 밤을 새우다시피 해 계약서를 꼼꼼히 검토하며 준비했으니까요.

 

수출을 5천만 달러 이상 하면 상(5천만 불 수출탑)도 주고 훈장(철탑산업훈장)을 줍니다. 하다못해 길거리에서 지갑을 주워 파출소에 신고하면 지갑 주인이 사례금으로 주운 돈의 10%를 주는 관례가 있어요.

 

국익을 위해 2억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왔는데 저는 단돈 10원도 받지 않았습니다. 그 돈은 모두 국고로 들어갔고 해당 공직자와 연구관계자들은 그 보상금으로 '잔치'를 벌였어요.

 

포상금을 받겠다는 생각은 아예 없었으니 서운하지 않지만 그때 제가 야당이라 그랬는지 훈장 하나 안 준 것은 조금 서운했어요.

 

국민들은 '국회' 하면 '싸움하는 국회'를 연상하지만, 국회가 국익을 위해 돈을 벌어오기도 했고, 그렇게 했음에도 돈 한 푼 받지 않았다는 걸 국민들에게 알려드리고 싶습니다. 얼마나 자랑스럽습니까?"

 

▶정치인생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개헌을 하지 못했던 것이 가장 큰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제 국회의장 취임 일성이 개헌이었습니다. 청와대에서 그리고 총리실에서 정권이 명멸하는 과정을 쭉 봤으니 권력이 냉혹하면서도 허무하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들의 정치인생이 모두 비극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이 모든 비극의 근본적인 뿌리는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에 있다는 것을 간파했어요. 우리 역사에서 다시는 불행한 대통령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는 뜻에서 취임 일성으로 개헌을 강조했어요. 개헌을 하지 않으면 나라가 잘될 수 없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대 대통령들은 대선에 출마할 때는 개헌을 하겠다고 해놓고 당선되면 마음을 바꿉니다. 그 결과 계속해서 불행한 대통령이 나왔죠. 그러나 개헌을 하지 않으면 불행해집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개헌을 하겠다고 해놓고서 하지 않고 있죠.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의장님께서는 그때 대선과 국회의원 선거가 겹치는 2012년이 개헌의 적기라고 강조하셨습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2032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 시기는 이미 지나가 버렸습니다. 2032년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현재 우리가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지금이라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 권한이 너무 강하니까 대통령들이 스스로 그 권한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하죠. 적기를 놓치기는 했지만, 개헌은 이제 시기가 아닌 의지의 문제가 됐습니다. 의지만 있으면 개헌을 할 수 있어요.

 

지금 여권에서는 '이상한 개헌'을 하려고 합니다. 매우 나쁜 생각이에요. 개헌의 핵심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줄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단은 그대로 두고 헌법에 명시된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서 '자유'를 뺀 '민주적 기본질서'로 수정하겠다, 토지 공개념을 강화하겠다고 합니다. 이상한 개헌을 하려고 하니 불안합니다."

 

▶일부 386 운동권 출신들의 정치 행위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기득권을 비판했던 운동권 인사들은 ‘강남좌파’ 혹은 ‘진보귀족’이라고 불리는 또 다른 기득권이 됐습니다.

 

"운동권의 정치 참여 그 자체는 좋습니다. 사회인들보다 더 열심히 노력하고 국가를 위해 희생한 운동권 인사들의 정치 참여라면 좋지요. 나라를 위해 치열하게 희생한 유명한 운동권 인사들도 분명 존재했습니다.

 

그런데 운동권에 곁다리를 걸치며 어슬렁거렸던 인물들이 하루아침에 높은 자리에 오르고 또 어떤 이는 국회의원 배지를 답니다. 열심히 공부해 공무원이 되고 또 10년 넘게 열심히 노력해서 올라갔더니 운동권 출신들이 갑자기 상전이 돼 나타나 '갑질'을 합니다.

 

이런 '곁다리 운동권 출신'들은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바친 동료들에 대한 존중과 애국심 없이 과실을 따 먹기만 합니다. 민주주의를 위해 피 흘렸던 동료를 대신해 그 자리에 올랐으면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위해 봉사하고 희생해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4.19혁명 기념일이나 5.18 민주화운동 추모일이 되면 '잊지 않겠다'고 아주 정중한 목소리로 말하고 나면 끝입니다. 치열한 삶을 살지 않은 사람이 국민의 행복과 안정을 위해 치열하게 노력하겠습니까?"

 

▶ 한국 진보진영의 현실을 진단해주셨으면 합니다.

 

"옛날에는 '깨끗하지만 경험이 없는 진보', '능력은 있지만 부패한 보수'라고 했는데 지금의 진보는 깨끗하지도 못하고 능력도 없습니다. 지금의 진보는 진보와 보수가 가진 나쁜 점()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진보 정권과 진보 정부가 아니라 오히려 '보수 꼴통'에 가깝죠. 깨끗하지도 않고 능력은 없는데 정치적인 조작(political manipulation)은 아주 뛰어납니다.

 

국민들이 이들의 정치적 조작에 감정 이입을 잘한다는 것도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성격이 너무 급해요. 너무 쉽게 열광합니다. 누군가를 하루아침에 '만고역적'으로 만들었다가, 또 하루아침에 '천하영웅'으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죠. 우리 국민들도 분위기에 휩쓸리지 말고 차분하게 판단해야 합니다.

 

물론 정치적 조작과 선동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2010년대에 들어 포퓰리스트 정권과 포퓰리즘이 세계적으로 횡행하고 있어요.

 

세계의 위기이자 지도자의 위기입니다.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중국의 시진핑 국가주석,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 등 각국에 이상한 지도자들이 들어섰습니다. 이 지도자들은 이웃 나라가 어떻게 되든, 세계가 어떻게 되든 관심이 없습니다. 좋게 말해서 '자국 중심주의'지 세계 공동체 의식 없이 필요에 따라 말을 바꾸고 때로는 선동을 일삼고 있습니다. 그래도 유럽과 미국이 우리나라보다는 낫습니다."

 

▶우리나라가 포퓰리스트들의 선동에 더 취약하다는 말씀으로 이해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첫째, 유럽과 미국 시민들은 오랫동안 민주주의 교육을 받아왔습니다. 민주주의를 해칠 정도로 포퓰리즘을 받아들이지 않는 국민 정서가 있습니다.

 

둘째, 역할 분담과 견제와 균형을 위한 시스템과 제도가 잘 갖춰져 있습니다. 의회 민주주의가 발달한 유럽 국가들은 의원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어 의회와 정부 간의 견제와 균형이 잘 이뤄집니다. 다시 말해, 유럽과 미국은 시스템도 갖춰져 있고 국민들도 깨어 있어요.

 

우리는 시스템도 미흡하고 민주주의 교육도 잘 안 돼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포퓰리스트 정권은 더욱 위험합니다.

 

현재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무책임한 선동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복지체계가 가장 잘 갖춰졌다고 하는 북유럽국가들은 세금을 많이 징수하기로도 유명합니다. 우리나라의 세율은 유럽보다 훨씬 낮습니다. 복지를 늘리려면 세금을 더 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정부는 대기업으로부터 세금을 더 많이 징수하면 된다는 식이에요. 우리나라에서 세계적인 대기업으로 꼽힐 만한 기업은 한두 군데뿐입니다. 기업을 무조건 옹호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인 경쟁력을 가져야 이 나라 산업이 튼튼해지고 과학기술 경쟁력도 올라가고, 국민들도 혜택을 받는 것 아니겠습니까."

 

▶한일 갈등이 더욱 커지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긴급 국무회의에서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정부의 대응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국가 시스템이 미흡합니다. '국가 경영'에 대한 책임감과 소명의식을 보기 힘들어요. 모든 게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니 외부에 적을 만들어 내부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려고 합니다.

 

'사법자제의 원칙'은 거의 모든 선진국에서 확립된 관행입니다. '사법자제의 원칙'에 따라 대외관계를 고려해 판단을 유보하든지 판단을 하더라도 외국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끔 해야 했습니다. 그게 바로 정부의 존재 이유인데 '토착왜구''친일파 후손'이니 선동하고 있습니다. 참 무책임하죠.

 

현 정부는 과거 대법원이 강제징용 판결과 관련해 외교부와 상의한 것을 '재판거래'로 규정하며 사법부 지도부를 교체했습니다. 그렇게 교체된 사법부가 어떤 판결을 내리겠습니까? 새 사법부는 '한일 청구권협정이 발효됐지만 피해자 개인의 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일본에 3억원을 배상하라고 했는데, 지금 돈이 문제가 아닙니다. 한일 관계가 극단으로 치닫고 있습니다. 이렇게 될 게 너무나도 뻔했는데 7~8개월간 손을 놓고 있다가 아베 총리가 반응하니까 '아베 몰아치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친일파니 토착왜구니 몰아붙이는 사람들이 바로 친일파이고 토착왜구입니다. 일본 입장, 특히 아베 지지율을 올려주고 있지 않습니까! 일제 상품 불매 운동을 한다면 삼성 텔레비전도, LG 냉장고도 사면 안 됩니다. 일본산 부품이 안 들어가 있는 국산 텔레비전이나 전자제품이 있습니까? 일본이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배제해 포토레지스트와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 수입이 까다로워졌습니다.

 

정부는 국내 대기업들이 소재부품 국산화와 자립화를 하지 않았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면서 소재·부품·장비 산업 육성을 위해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합니다. 국제분업과 비교우위, 세계 무역이 무엇인지 고등학교 1학년만 되도 다 아는 마당에 가당치도 않은 구상입니다. 여자 골프선수에게 '지금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여자 골프선수가 너무 많으니 여자 축구선수가 돼 여자 월드컵에 출전하라'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매우 중대합니다. 이런 산업을 제대로 육성하려면 규제를 풀고 공정거래가 이뤄질 수 있는 풍토를 조성해야 합니다. 정부가 할 일은 안 하고 딴 일만 하는 사이에 선진국은 멀리 달아나고, 중국 등이 바짝 따라오고 있지 않습니까.

 

모든 것이 상호 연결된 시대에서 국산 부품으로만 반도체를 만드는 게 가능한 일일까요? 골프채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헤드는 대만산, 샤프트는 한국산, 그립은 일본산이고 디자인은 미국에서 했지만 최종적으로 '메이드 인 저팬(made in Japan)'이 되기도 하고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made in U.S.A.)가 되기도 합니다. 정부가 세계 경제를 몰라도 너무 모릅니다."

 

김 전 의장은 고기만 바꾸는 '물갈이' 대신 '판 갈이'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구조를 바꾸려면 첫째가 개헌이고, 둘째가 정당법과 국회법, 정치자금법 같은 정치관계법을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사진=위키리크스한국]

 

▶내년 총선까지 약 7개월 앞둔 현재 자유한국당 지도부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일까요?

 

"무엇보다도 먼저 자신감을 회복해야 합니다. 지금 패배주의와 냉소주의가 만연하는 듯한 분위기입니다. 행동하지 않으려면 지금이라도 의원직을 내던져야 하고, 의원직을 지키려면 앞장서야 합니다. 방법론으로 날을 지새워도 안 됩니다. 전통적 방법은 전통적 방법대로, 새로운 방법은 새로운 방법대로 다 활용가치가 있습니다.

 

문제는 똘똘 뭉치지 못하고, 형식적인 보여주기식 투쟁을 한다는 것입니다. 지도부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모범을 보이고 그다음으로 소극적인 의원에 대해서는 단호함도 보여야 합니다. 지도부도 의원들도 어정쩡한 모습으로 있는데 지지율이 오르고 기대와 희망을 갖겠습니까.

 

자유한국당의 투쟁이 먹히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치열함이 부족해서입니다. 보수 정치인들은 치열하고 진지하게,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보여주기 용'이라는 의도가 읽히는 순간 국민들은 외면합니다."

 

▶보수의 가치도 개혁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기도 합니다. 한국 보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시대정신을 잘 아울러 미래로 나아가야 합니다. 보수의 가치는 수호해야 할 가치이고, 수호해야 할 가치를 위해 목숨을 던지는 것이 보수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제대로 된 진보도 제대로 된 보수도 없어요. '이른바 진보''이른바 보수'만 있을 뿐이죠. 우리나라 기득권층은 보수와 진보를 떠나 자기가 갖고 있는 권리 지분을 놓치지 않으려고 합니다.

 

보수 정권은 진보 정권에 의해 깨졌습니다. 진보는 '용어 제조사'가 돼 기득권을 지키려고 합니다. 용어를 만들어내는 데 일가견이 있어요. '정의', '공정', '적폐청산'을 외치며 재미를 보다가 이제 식상하니까 '개혁' 혹은 '혁신'으로 말을 분장합니다. 별로 설득력이 없습니다.

 

우리 정치의 병폐 중 하나가 바로 편을 가르는 것입니다. 보수가 보수다운 일은 못 하고 진보는 진보다운 일을 못 하고 있습니다. 진보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스스로를 진보라고 칭합니다.

 

우리는 편 가르기를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아직도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편 가르기를 한단 말입니까? 진보와 보수를 나누는 것은 아주 케케묵은 생각입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가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입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19세기, 20세기의 진영논리에 젖어 편 가르기를 하는 사람들은 양 진영의 극단주의자들입니다. 편 가르기하고 진영논리만 주장하면 되니 참 편리하죠. '진영'이라는 버스에 오르기만 하면 운전하는 수고 없이 끼리끼리 재잘거리다가 목적지까지 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진영 논리에 안주하고 있는 이 사람들이 기득권 세력들입니다. 요즘 진보와 보수로 편을 가르는 사람들은 진영논리에 의존하며 기득권에 안주하는 집단 이기주의의 화신이라고 봅니다."

 

▶ 진보 진영은 친일론을, 보수 진영은 지역감정과 종북론을 들고나와 선동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선동행위를 방지할 방안이 있을까요?

 

"선동행위를 방지할 방안을 마련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성을 바꾸는 일이 쉽지 않기 때문이지요. 우리 국민들은 즉각적, 감정적으로 반응하고 대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DNA를 어떻게 하루아침에 바꾸겠습니까.

 

정치인부터, 그리고 대통령부터 국민감정에만 호소하지 않도록 자제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통령부터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겠다며 국민감정에 호소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에게도, 정치인에게도 기대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 역할을 해야 할까요? 바로 언론입니다. 그런데 언론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대할 수 없습니다. 정부와 여당에 동조하는 '덩달이'로 비쳐져서야 되겠습니까? 어느 언론사에 속해 있든 기자로서의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져야 하는데 일부 언론은 정부 기관지, 일부 기자는 정부 대변인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 서서히 고쳐 나가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선동가 치고 제대로 된 정치를 하는 이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선동과 실정은 계속 되풀이되고 국민들은 속아요. 그래서 교육이 더욱더 중요합니다."

 

▶내년 총선까지 약 7개월 남았습니다. 의장님께서 지적하셨듯이 의정활동을 열심히 해도 실세에 눈도장을 찍지 못하면 공천을 받지 못합니다. '공천 제도 자체를 검증하려는 노력'을 각 당에 주문하셨습니다. 공천제도와 방식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요?

 

"선거철만 되면 공천 관련해서 나오는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물갈이'. 언론 속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하지만, 기자들은 '이번에는 물갈이를 몇 퍼센트 정도 할 계획이냐'고 질문하곤 합니다. 예를 들어 A당 위원장이 '우리는 25% 물갈이하겠다'고 말하면, B당 위원장은 '우리는 30% 물갈이하겠다', C당 위원장은 '우리는 35% 물갈이하겠다'고 말합니다.

 

그 말에 따라 공천심사가 이뤄지고 의원들은 내쳐집니다. 물갈이 비율을 맞추려고 그 기준을 들이대는데 인재가 하루아침에 나타나는 게 아닙니다.

 

물갈이를 20% 하든, 50% 하든 정치판은 안 바뀝니다. 예를 들어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면 사무관, 서기관, 부이사관, 이사관 등 경력을 쌓아 승진합니다. 공무원이 된 지 2년 된 사무관에게 갑자기 국장을 맡으라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요?

 

문제는 물갈이가 과도하다는 것입니다. 해마다 국회의원의 50%가 물갈이됩니다. 공천에서 20~30%, 선거에서 20~30%가 물갈이돼 국회의원 50%가 바뀌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말과 비슷하게 미국에서는 한 번 국회의원이 되면 90% 가까이가 재당선됩니다."

 

▶ 왜 '물갈이'가 제대로 되지 않을까요?

 

"우리는 물갈이하라고 했더니 물은 안 갈고 고기만 갈기 때문입니다. 썩은 물에 새 고기를 넣으면 새 고기도 오염되기 마련입니다. 썩은 물에 적응하는 물고기는 살고, 적응하지 못하는 고기는 죽습니다. 새 술은 새 포대에 담아야 합니다. 헌 포대에 새 술을 넣으면 되겠습니까.

 

물갈이 대신 '판 갈이'를 해야 합니다. '물갈이'라는 그 좋은 말이 물이 아닌 사람을 바꾸는 것이 됐으니 '판 갈이'를 하자고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구조를 바꿔야 합니다. 구조를 바꾸려면 첫째가 개헌이고, 둘째가 정당법과 국회법, 정치자금법 같은 정치관계법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년 총선까지 7개월 남았는데 구조를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제가 18대 국회의장을 했는데 당시 '18대 국회는 최악의 국회'라는 말이 있었어요. 그런데 이후 '19대 국회는 더 최악의 국회', '20대 국회는 그보다 더 최악'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어요. 해마다 물갈이를 하고 또 해도 최악의 국회라는 소리를 듣는 이유는 정치판을 바꾸지 않아서입니다. 물은 안 바꾸고 고기만 바꿨으니까요. 우리 정치계는 바로 이 본질적인 문제를 고쳐야 합니다."

 

▶'의정활동평가'를 공천에 반영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정활동을 어떻게 평가해야 할지 궁금합니다.

 

"국회의원의 주 무대는 국회입니다. 그런데 국회의원들이 국회에서 열심히 활동하는지 국민이 알 수 없습니다. 언론도 자극적인 것 위주로 보도하고 있죠. 제대로 활동한 의원은 한 번 더 국회에서 활동하도록 하고 제대로 하지 못한 의원은 더 활동하게 하면 안 됩니다. 각 정당은 활동 평가서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고 엄밀하게 만들어 공천에 반드시 반영해야 하는데 전혀 하지 않고 있습니다.

 

각 당에서 전문가에게 의뢰해서 의정활동 평가서를 만들고 다음 공천에 반영해야 엉터리 국회의원을 거를 수 있습니다. 싸움만 잘하고 고함만 잘 지르고 실세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공천에 오를 수 있습니다.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면 다음 공천에 탈락하는데 누가 열심히 하겠습니까."

 

▶국회 개혁방안에 대해 여쭙고자 합니다. 일각에서는 의원 수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비례대표 선출방식을 어떻게 바꿔야 할지도 여쭤보고 싶습니다.

 

"표피적인 문제를 들먹이며 의원 수를 늘리자고 하고 있는데, 실상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하려고 하다 보니 의원 수를 늘리려는 것입니다. 지역구 국회의원 수를 줄이고 대신 비례대표를 늘리자고 하면 제 목이 날아가는 국회의원들이 새로운 선거법에 찬성하겠습니까. 그래서 현행 의석을 최대로 지켜주려고 하는 것입니다. 국회가 국정이 아니라 개인적인 목적을 위한 곳으로 전락했습니다. 이렇게 수단이 목적을 압도하면 안 됩니다.

 

우리나라 국회의원 수는 미국에 비하면 많고, 유럽에 비하면 적습니다. 미국은 의원이 인구 70만 명꼴에 한 명이고, 의원 개개인에게 많은 활동비가 지급됩니다. 유럽은 의원 수가 우리의 2~3배 정도로 의원 수가 매우 많습니다. 명예직이라 보수가 아주 적은 대신 투잡, 쓰리잡이 가능하죠. 우리나라 국회의원들은 일이 많아 겸직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현실은 언급하지 않으면서 무조건 의원 수만 늘리자고 합니다. 의원 수가 200명이면 일을 못 하는데, 300명이면 잘하고 350명이면 더 잘하는 게 아닙니다. 의원 수를 늘릴지 현상 유지할지 잘 따져봐야 합니다."

 

▶비례대표 선출방식은 어떻게 바꿔야 할까요?

 

"연동형 비례대표제는 시한폭탄입니다. 시간이 촉박해서 공천 때까지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추진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현 정권은 꾸준히 그 길을 향해 가고 있어요.

 

그동안 제가 연동형 비례대표제에 대해 수없이 많이 얘기했지만 각 당이 잿밥에 눈이 어두워서 소홀히 듣고 있습니다.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비례대표가 더 많이 늘어나는 게 연동형 비례대표제'라고 말합니다.

 

비례대표가 지역구 의원보다 더 많으냐 적냐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과연 누가 비례대표가 돼야 하느냐, 그리고 어떻게 뽑느냐가 중요한 문제죠.

 

어느 당의 비례대표 의원이 15명 당선됐다고 해봅시다. 비례대표 후보 순번이 어떻게 결정됐는지 그 선출과정을 명확하게 밝혀야 합니다. , 누구는 1, 누구는 15번이 됐는데, 왜 누구는 16번이 돼서 의원이 되지 못했는지 이유가 있어야 합니다. 1번과 15번은 똑같은 국회의원이라는 점에서는 같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어떤 연유로 1번이고 15번인지 명확히 해야 합니다. 중립성, 객관성, 공정성, 투명성이 담보되지 않는 비례대표 선출방식은 곤란합니다.

 

지금까지 비례대표는 줄만 잘 서면, 동아줄만 잘 잡으면 됐습니다. 대통령한테 눈도장 찍으면, 당의 실세에게 잘 보이기만 하면 됐어요. 실세에게 돈 보따리를 싸서 주면 전국구 비례대표가 될 수 있었던 시절도 있었습니다.

 

왜 이 사람이 비례대표가 돼야 하는지 그 선정과정도 잘 따져보고, 객관적이고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비례대표 순번을 결정해야 합니다. 이러한 과정이 뒷받침돼야만 제대로 비례대표제를 할 수 있어요.

 

독일은 비례대표제가 잘 돼 있다고 합니다. 완벽한 제도는 있을 수 없지만, 현재 비례대표는 열심히 하는 소수를 제외하고는 당의 전위부대처럼 행동합니다. 당에서 하라면 앵무새처럼, 행동대장이 돼 나섭니다. 4년 후에 어느 지역구에 출마할까 생각만 합니다. 이런 비례대표는 제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비례대표를 한 번 하면 적어도 4년은 국회에 출입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야 본래 뽑은 목적인 직능대표성과 전문성을 살릴 수 있습니다. 지금은 그 목적이 사라지고 줄만 잘 서려고 합니다."

 

▶의장님께서 저서 '누구를 위한 나라인가'에서 '상시 국회제도'를 언급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 상시 국회제도가 자리 잡지 못한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18대 국회의장일 당시 '상시 국회제도'의 필요성을 주장했습니다. 청와대에서 대번에 비판이 날아왔어요. '지금도 국회에 발목 잡혀 장관이 일을 못 하고 있는데 장관을 24시간 국회에 잡아놓겠다는 거냐'고 비난했죠.

 

상시 국회제도의 개념을 이해하지 못한 겁니다. 상시 국회제도는 '캘린더 국회'입니다. 국회 캘린더를 보면 일정이 다 정해져 있는데, 국회 운영도 그렇게 정하자는 것입니다. 월요일과 화요일은 본회의, 수요일과 목요일은 상임위원회 회의, 금요일은 특별위원회 회의를 여는 것처럼 하는 것이 상시 국회입니다.

 

해마다 국회 사무관이 연중 국회 일정표를 만들지만 지켜지지 않습니다. 일정표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원내대표가 합의하면 회의가 열리고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회의가 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회의를 여느냐 마느냐로 원내대표끼리 치고받고 하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

 

국회를 학교에 비유해 보겠습니다. 학생이 학교에 안 가는 게 자랑거리인가요? 선생에게 질문하고 공부하는 것이 학생의 본분이지요. 그런데 학생이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등교'를 무기로 삼습니다.

 

상시 국회의 개념도 모르는 국회의원이 '국회 보이콧'을 투쟁의 무기로 삼습니다. 국회의원이 국회에 출근해서 정부에 따질 것은 따지고 파악할 것은 파악하는 게 의원의 본분입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의사당에서 밤을 지새우며 질의하고 문제를 제기한다면 국민이 두 발 뻗고 잘 수 있습니다."

 

김 전 의장이 1905년 을사늑약 체결 당시 김구 선생의 일화를 소개하며 정치 원로와 중진들에게는 '불쏘시개' 같은 역할을, 청년들에게는 적극적인 행동을 주문했다. [사진=위키리스한국]

 

▶방송과 인터넷, 사회관계망 등이 발전하면서 다양한 목소리가 표출되고, 그만큼 사회분열도 심각합니다. 분열을 멈추고 갈등을 넘어 화합을 이루려면 지도자의 역할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사회정풍운동 또는 정치개혁운동의 방향을 제시해 주셨으면 합니다. 특히 '합리적 보수'의 상징이신 의장님께서 앞장서실 의향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수없이 얘기했지만 듣지 않는 것 같습니다. 때가 되면 하겠지요. 억지로 해서도 안 됩니다. 김구 선생의 일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됐습니다. 민영환 공이 자결하고 이상설 참판이 자결을 시도했다가 발견돼 살아났죠. 그때 김구 선생은 죽기를 무릅쓰고 서울에서 제일 넓은 광장으로 나아가 '우리 대한이 일어나야 한다'고 외쳤어요. 일본 순사들과 육박전을 벌이고, 일본 순사들이 총질하면 기왓장을 던지며 항전했습니다. 1조가 일제에 잡혀가거나 죽으면 2조가, 2조가 잡혀가면 3조가 나서서 근 한 달간 싸움을 벌였어요.

 

그러던 김구 선생이 다 접고 고향으로 내려갔습니다. '당시 민중의 의식과 수준으로는 안 된다'는 판단에서였죠. 죽음은 두렵지 않지만 죽음이 나라를 되찾는 데 효과가 있는 방법이 아니었다는 겁니다.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가서 애국 계몽 운동을 열심히 하고 민중을 가르치며 문맹 퇴치에 힘썼습니다.

 

사람들은 위기에 처하면 남 탓하고 회피하고 눈치를 봅니다. 나라를 위해 교육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지금 나라가 어느 때보다도 어렵습니다. 나라가 위기라는 사실을 위정자들이 인정하지 않는 데서 문제는 더 심각합니다. 또 이를 보완하거나 대체할 세력이나 인물이 보이지 않는 것이 불안감으로 작용합니다. 바로 리더십의 위기입니다.

 

여야 어느 진영에 속하건, 나 같은 사람들, 다시 말하면 나라와 국민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은 사람들은 이제 무엇을 더하고자 해서는 안 됩니다. 현직의, 이른바 정치권의 원로중진들은 자기가 중심적 위치에 있어야 하고, 킹은 아니어도 킹메이커가 되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후배들이, 그야말로 새카만 후배들이 나보다 훨씬 낫다, 우리 시대는 이미 지나갔다, 맡겨 놓으면 더 잘할 것이라고 인정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잘 먹고 잘살고 잘 대접받았으니 이 나라 정치발전을 위한 불쏘시개가 되겠다고 해야 합니다. 특히 편안한 지역구에서 쉽게 당선된 의원들은 특히 더 그래야 합니다.

 

정치를 꿈꾸는 젊은이들이여, 세상을 바꾸려면 지금이 기회입니다. 조금은 모자라고 조금은 서툴더라도 순수한 열정과 애국심으로 스스로를 무장해 달려나가야 합니다.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을 위해 떨쳐 일어날 때가 바로 지금입니다."

 

[위키리크스한국=조문정 기자]

 

supermoon@wikileaks-kr.org

 

 

 

[2019-09-16 위키리크스]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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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환원 실천 김형오 前국회의장
책 2000권·기록물 5000점 등
재임시절 자료 국회도서관에 기증
외국정상에 받은 귀중품도 상당수
"국민들 위해 상시 전시됐으면"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5일 서울 여의도 국회도서관 중앙홀에서 열린 기증자료 특별전 개막식 직후 자신이 직접 쓴 '술탄과 황제'를 들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서동일기자

"국회의원 시절 미국의 수도 워싱턴 D.C를 방문했다가 탄식했던 적이 있다. 반만년의 역사를 가진 우리나라와 200년 역사를 가진 미국인데 오히려 미국이 더 유서깊게 느껴졌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왔나 생각했다. 바로 남기는 문화에 있었다."

 

영원한 의회주의자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최근 국회도서관에 자신의 책 2074권과 기록물 5000여점, 국회의장 재임 시절 세계 각국으로 받은 선물 178점을 기증했다. 정치인이 국회에 책과 자료를 기증한 사례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처음은 아니다. 고 이종찬 전 의원과 현경대 전 의원이 이미 자신의 의정활동 기록과 책을 국회에 기증했고, 지난 6월 고 김종필 전 국무총리의 비공개 의정활동 기록물과 책, 문서, 사진 수천점이 국회도서관에 기증돼 분류 작업이 진행중이다. 현직 국회의장인 문희상 국회의장은 지난해 6월부터 자신의 의정활동 자료를 매달 국회 도서관에 보내고 있다.

 

정치인으로서의 기록물을 도서관에 보내는 경우는 그간 있었지만 국회의장 재임시절 자신이 받은 선물까지 모두를 기증하는 사례는 드물다. 이를 기념해 국회도서관은 17일까지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기증한 자료와 도서, 선물 등을 전시하는 기증자료 특별전을 진행한다. 전시 개막일인 지난 5일 만난 김형오 전 의장은 "처음부터 저에게 준 선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며 "공인의 삶과 신분으로 받은 것은 국민의 것이기에 당연히 내놓아야 한다고 예전부터 쭉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회도서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1층 중앙홀의 한켠에서 진행중인 이번 전시에는 각국 정상과 국회의장 등 귀빈으로부터 받은 선물 120여점이 전시대 칸칸을 채웠다. 각국의 특색에 따라 선물도 제각각이다. 주한 인도대사로부터 받은 인도코끼리 모형을 비롯해 터키 에르도안 총리에게 받은 금속 보석함,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으로부터 받은 전통공예 다기세트 등 다채롭다.

 

김 전 국회의장은 "미국의 경우 국회의장에게 들어온 선물은 임기중 기록으로 남겼다가 임기를 마친 후 정부가 다 가져가는데 우리나라는 전 국회의장들이 의도적으로 내지 않았다기 보단 아직 그러한 시스템이 없었기에 이번을 계기로 정립되길 바랬다"고 밝혔다. 그는 "국회에 상시적으로 외국으로부터 받은 귀한 선물들이 전시된다면 국민들이 국회를 찾을 이유가 생긴다"며 "외국처럼 우리 국회도 볼거리가 많아지고 국민들이 국회를 더욱 친근하게 생각할 기회가 생기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장의 절반이 그가 내놓은 반짝이는 선물로 가득찼다면 다른 절반은 그의 저서와 그의 삶에서 감명받았던 책들로 채워졌다. 가장 핵심은 김 전 의장의 역저인 '술탄과 황제'였다. '술탄과 황제'는 김 전 의장이 정계를 은퇴한 후 처음으로 내놓은 책이다. 이 책은 비잔티움 제국과 오스만 제국이 치열한 전쟁을 벌였던 1453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인문학에 관심이 많았던 그가 당시 두 지도자의 리더십을 탐구하며 마치 종군기자가 된 것처럼 설정해 쓴 책으로 출간 직후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올랐다.

 

그는 "술탄과 황제는 의원직을 그만둔 후에 시작해서 의정활동과 큰 관계는 없지만 사실 구상은 국회의장실에서부터 시작됐다"며 "제가 학자였으면 오히려 쓰지 못했을 책"이라고 밝혔다. 요즘같은 시대에 대한민국에서 중앙아시아를 연구해서 돈을 벌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냐며 농담을 던진 그는 "요즘 시대에 재미가 없으면 책에 보배가 들어있어도 보지 않기에 이왕 책을 쓸거면 어떻게 재밌게 쓸까에 온 궁리를 했다"고 말했다. "4년을 꼬박들여 연구하다시피 쓴 책이다보니 이 책의 흔적이 내 몸에 남아있다"며 "집필 마지막 1년은 아마 하루에 4시간을 자는 게 많이 잤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그 시절 몸을 혹사시키는 바람에 요즘도 몸이 성하지 않다"고 밝혔다.

 

책을 쓰면서 그는 큰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다만 주위의 정치 선후배들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이 컸다. "두가지 생각이 있었다"며 운을 뗀 그는 "먼저 국회의장 지낸 사람이 이 따위 책을 썼냐는 소리 들으면 동료 선 후배 의원에게 화가 미칠 것 같아 없는 재주를 썼다"고 겸양을 비쳤다. 그는 "국회 오니 많은 국회의원들이 출중한 재주가 있었다"며 "국민들이 국회의원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길 바랬다.

 

유한한 정치 인생보다 더 긴 자기의 인생이 있음을 알고 가면 우리 정치가 투박해지지는 않지 않을까 생각했다. 위만 쳐다보는 정치보다 국민을 보는 정치를 하려면 국회의원들에게도 이후의 삶이 있다는 메시지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를 준비하며 생각보다 까다롭고 피곤한 일들이 많았지만 다시금 지난 날을 돌아보게 되었다는 그는 마지막으로 "공직자가 어떤 길을 가야 하는가 늘 생각했다"며 "제 작은 행동이 다른 누군가에게 느낌표를 하나 찍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전시를 열게 돼 기쁘다"고 밝혔다.

 

 

jhpark@fnnews.com 박지현 기자

 

 

[2019-09-10 파이낸셜 뉴스]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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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오(71) 전 국회의장은 14대부터 18대까지 내리 5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무계파·무계보 정치인으로 분류되면서도 동료들로부터 합리적 보수주의자로 평가받아 국회의장 자리까지 오른 흔치 않은(?) 이력의 소유자다. 2012년 18대 전반기 국회의장직을 끝으로 정계은퇴한 그는 이듬해인 2013년 부산대 석좌교수를 맡았다. 부산 영도출신으로 경남고를 졸업했지만, 이후 서울대에 진학하면서 언론인, 외무부 공무원, 청와대 비서관 등을 거쳐 국회의원이 되기까지 지역을 떠나 있었던 만큼, 은퇴후 귀향은 고향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그의 결단으로 평가된다. 후학양성과 왕성한 저작활동을 통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는 그는 지난 2015년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회장을 맡아 그의 사상을 전파하는데도 힘을 쏟는다. 무엇보다 지역언론사와 수시로 인터뷰를 갖거나 칼럼을 게재하면서 그의 식견을 지역민들과 공유하고 있다. (후략)

 

 

송충원 기자

 

 

[2019-08-26 대전일보] 기사원문 ☞ http://www.daejonilbo.com/news/newsitem.asp?pk_no=138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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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7 조선일보] "不和하면 망한다, 백범 선생 말씀 되새길 때"

 

김구 선생 70주기 추모식
김형오 前 의장 등 400명 참석

"불화(不和)하면 망한다는 말씀, 죽비처럼 어깨 내리칩니다."

백범 김구(1876~1949) 선생 서거 70주기인 26일 서울 용산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주최로 70주기 추모식이 열렸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인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추모사에서 백범의 저서 '나의 소원' 중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는 구절을 언급했다.

 

26일 오전 '백범 김구 선생 제70주기 추모식'에서 유가족들이 백범 선생의 영정 앞에 헌화하고 있다. / 김지호 기자


김 전 의장은 "떠나신 지 70년을 맞는 오늘 이 시점에도 우리 내부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며 "세계는 엄청난 속도로 달려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지난 시대의 원망과 회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화합과 협력은커녕 서로 갈려서 싸운다면 김구 선생을 비롯한 선열들을 무슨 낯으로 보겠느냐"고 했다.

문희상 국회의장은 추모사에서 "백범 선생께서는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를 통해 소망하는 나라는 군사 대국도 경제 대국도 아닌 문화 대국이라고 하셨다"며 "지금 대한민국은 군사 강국은 물론이며 영화와 대중음악 등 한류 문화가 전 세계를 휩쓰는 문화 대국이 되었다"고 했다. 문 의장은 "안타깝게도 우리에게는 국민 통합이라는 과제가 남아 있다. 민족 단결을 통한 조국의 통일이라는 과제가 남아있다"며 "한반도에 항구적인 평화를 정착시키고 민족이 하나가 되는 그날을 앞당겨야 하겠다"고 했다.

이날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는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와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출간한 책 '백범의 길, 임시정부 중국 노정을 밟다'를 김구 선생 영전에 헌정했다. 김 전 의장과 책의 필자인 심지연·김주용·이신철·은정태 교수가 직접 책을 영전에 올렸다. '백범의 길'은 한·중 역사학자와 전문가 11명이 임정의 항일 이동 경로를 답사하며 집필한 책이다.

추모식에선 인공지능을 이용해 '나의 소원'의 한 부분을 생전 김구 선생의 목소리로 재현한 메시지가 약 1분 동안 낭독됐다. 추모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이병구 국가보훈처 차장, 김원웅 광복회장, 민갑룡 경찰청장,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등 400여 명이 참석했다.

 

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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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27 문화일보] "불화하면 망한다는 白凡 말씀, 죽비처럼 어깨 내려쳐"

 


김구선생 70주기… 김형오 백범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


“내부갈등·대립 여전히 안끝나 
김원봉은 임시정부 해체 한몫 
6·25전쟁에 책임 있는 인물” 

정치권 인사 등 참여 추모식

“백범 선생님이 떠나신 지 70년을 맞는 오늘에도 우리 내부의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애국·애족·애민의 투철한 자세를 놓지 않고 갈등을 통합과 화합으로 치유하고 극복하려고 애쓴 백범 선생님의 큰 뜻을 기리고 이어나가야 합니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72·사진) 전 국회의장은 김구 선생 70주기인 26일 문화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선생은 36년 넘는 일제 치하에서도 오직 독립 하나만 바라보면서 한 길만 걸었던 분”이라며 “임시정부 해체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도 반대 측과 통합·화합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협회는 이날 오전 유족과 협회 관계자들, 문희상 국회의장과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를 포함한 정치권 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용산구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 추모식을 열었다. 

김 전 의장은 “애국·애족의 길만 걸어온 김구 선생의 정신을 오늘날 여야 정치권이 본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백범일지 ‘나의 소원’에 나오는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라는 어록을 인용하면서 “후손들에게 특별히 당부한 말씀이 죽비처럼 어깨를 내려친다. 선생이 떠난 지 70년을 맞은 오늘 시점에도 우리 내부의 갈등과 대립은 여전히 끝나지 않고 있다”고 현 세태를 개탄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를 계기로 불거진 ‘약산 김원봉 서훈 논란’에 대해 김 전 의장은 “김원봉이 독립운동을 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광복군을 창설하진 않았다”며 “대한민국을 사랑했던 인물로 볼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원봉은 사실상 임시정부 해체에 앞장섰을 뿐만 아니라 6·25전쟁이 발발한 것에 책임이 있는 인물”이라고 했다. 

협회는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를 맞아 대한민국 임시정부 시절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사업을 추진해 왔다. 이날 발간한 책 ‘백범의 길-중국 대륙을 걷다’는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충칭(重慶), 시안(西安)까지 선생이 27년 동안 머무른 곳을 한·중 전문가와 학자 11명이 함께 현장 답사한 결과물이다. 김 전 의장은 “상하이에서 충칭으로 탈출한 구간 등 이전에 밝혀진 적이 없는 새로운 내용도 다수 포함됐다”며 “서거 70주기인 만큼 특별히 인공지능을 이용해 약 1분 동안 ‘나의 소원’의 한 부분을 실제 생전 김구 선생의 목소리로 재현하는 작업도 진행했다”고 밝혔다.

김 전 의장은 지난 2015년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으로 취임했다. 김 전 의장은 “국회의원 시절부터 김구 선생에게 관심을 갖고 행사가 있을 때마다 참석했다”며 “이런 인연이 이어져 김구 선생의 아들인 김신 장군(전 공군참모총장)이 돌아가시기 전 내게 협회 사업을 맡아달라고 부탁해 지금까지 협회를 이끌고 있다”고 설명했다. 

나주예 기자 juye@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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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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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사랑했던 사람 아니야"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사진〉 전 국회의장은 20일 "김원봉은 애국자가 아니다"라며 "대한민국을 사랑했던 사람이 아니다"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현충일 추념사로 촉발된 김원봉에 대한 독립 유공자 서훈 움직임을 비판한 것이다.

 

김 전 의장은 김구 선생 서거 70주기(6월 26일) 기념 강연에서 "요즘 김원봉이 갑자기 뜨는데, 세 가지에 대해 (OX로) 질문을 드리겠다"며 "독립 운동가로서 김원봉은 광복군을 창설했다, 김원봉에겐 김구 선생(60만원)보다 많은 100만원짜리 수배 현상금이 걸렸다, 김원봉은 애국자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했다. 김 전 의장은 "김원봉은 애국자가 아니다. '대한민국을 사랑했던 사람인가' 묻는다면 예스라고 하지 않겠다"고 했다. 또 "일제가 김원봉에게 김구 선생보다 높은 현상금을 걸었다는 얘기가 도는데 도대체 어디서 나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사업회에서 사료를 전부 뒤져봤으나 근거가 전혀 없다"고 했다. 그는 "김원봉이 독립운동을 한 것은 맞지만 광복군을 창설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역사를 바로 알아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에 나온 김구 선생과 김원봉의 대화도 소개했다. 김원봉이 "제가 통일운동에 참가하는 주요 목적은 중국인들에게 공산당이라는 혐의를 벗고자 함입니다"라고 하자 김구 선생은 "나는 그런 목적이 다른 통일운동에는 참가하지 않겠소"라고 답했다는 것이다.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에서 김구 선생과 김원봉의 대화는 이렇게 딱 한 차례뿐이고, 김원봉이라는 이름은 딱 네 차례 언급된다"며 "김구 선생이 김원봉을 어떻게 판단했는지 알 수 있는 근거가 된다"고 했다.

 

김 전 의장은 본지 인터뷰에서 "낭만적으로 역사에 접근하고 역사를 편의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며 "학문적이고 책임 있는 입장에서 역사를 본다면 임정해체에 앞장섰고, 더구나 6.25전쟁 일으킨 데 큰 책임있는 사람을 애국자로 받들수 없는것"이라고 했다.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회는 오는 26일 백범김구기념관에서 백범 서거 70주년 추모식을 연다.

 

 

조선일보 이슬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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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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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재현 2019.07.26 08:3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개짖는 소리, 김원봉에대해 공부좀 해라

  2. 권성준 2019.08.28 03:5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단편적인 대화 몇 마디를 가지고 그를 논할 수 있는가? 그대가 그의 심중에 들어가 보았는가? 감투를 썼다고 해서, 박사가 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다 알 수 없는 법. 보다 겸허히 공부하기 바란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 일본 총리의 저서 『탈대일본주의』(중앙북스) 한국어판 출판기념회가 12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렸다. 왼쪽부터 정병국 바른미래당 의원,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형오 전 국회의장, 하토야마 전 일본 총리, 이홍구 전 국무총리,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노웅래 더불어민주당 의원, 박진 한미협회장,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 [김상선 기자]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의 저서 『탈대일본주의(脫大日本主義)』의 한국어판 출간(중앙북스)을 기념하는 행사가 12일 서울 남산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열렸다. 2015년 서대문형무소에서 무릎을 꿇고 사죄한 것으로 유명한 하토야마 전 총리는 2차 대전 패전 이후에도 일본이 계속해서 군사력을 확장하는 등 대일본주의를 지향해 온 데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저서에 담았다. 또 일본이 주변국과 협력하는 탈대일본주의를 통해 미들파워 국가로 자립해야 한다는 제언을 포함시켰다. 책은 2년 전 일본에서 먼저 출간됐다.

『탈대일본주의』 한국어판 출판회
홍석현 회장 “지역통합 구상 지지”

 

하토야마 전 총리는 이날 인사말에서 “이 책을 저술한 계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 출범 이후 그 전에 걸어왔던 길을 다시 걷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일본은 (주변국과) 대화와 협력을 통해 국제사회에 존엄성 있는 국가로 발돋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한·중·일이 한층 더 신뢰 관계를 강화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 일본은 과거 저지른 과오를 끝까지 사죄한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기념 행사를 주관한 노재헌 한중문화센터 원장은 “이번 출간이 한·일 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미래 지향적 관계 설립의 마중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은 출간사에서 “하토야마 전 총리는 끊임없이 세계의 역사를 호흡하면서 선구적 통찰력을 펼치는 보기 드문 정치인”이라며 “우애의 정신을 바탕으로 아세안 10개국과 한·중·일이 지역통합을 통해 다국간 안전보장의 틀을 만들자는 그의 동아시아공동체 구상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기념 행사엔 김형오 전 국회의장, 이홍구 전 국무총리, 김진현 세계평화포럼 이사장, 김성환 전 외교장관, 최상용 전 주일대사, 정병국·노웅래·김병욱·지상욱 의원, 박진 한미협회장, 이부영 동아시아평화회의 운영위원장, 장제국 동서대 총장, 김현철 서울대 일본연구소장 등이 참석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중앙일보 2019-06-13] 기사원문 ☞바로가기☜ 클릭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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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셔서 서울대 동창회보에 실린 칼럼을 올립니다. 임시정부, 임시의정원 100주년을 즈음하여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들 정리해 본 내용입니다. 동창회보라 따로 URL은 없습니다. 아래 원고 전문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죽어야 산다

 

 

김 형 오 전 국회의장

 

 

벼랑에선 손을 놓아라

스무 살 청년 김구는 국모(명성황후)가 무참히 살해당한 데 대한 울분으로 한 일본인을 처단한다. 이른바 치하포 국모보수(報讎)’ 사건이다. 그는 맨몸이었으나 상대는 칼을 품었고 안내인도 있었다. 흔들리는 마음을 진정한 것은 벼랑에 떨어져서는 나뭇가지 붙잡는 게 대수가 아니다, 그 잡은 가지마저 놓아버려야 진정 장부이다라는, 스승이 가르쳐 준 경구였다. (得樹攀枝無奇 懸崖撒⼿丈夫兒 ; 득수반지무족기 현애살수장부아)

김구는 백성 된 도리를 다하고 죽는 길을 택했으나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제국주의의 침략 만행에 경종을 울릴 수 있다면 죽음인들 마다하겠는가.

우리 애국자들은 그랬다. 백범일지와 이를 풀어쓰기한 졸저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에는 죽음으로 향하는 애국자들의 면면을 소개하고 있다. 나라가 어려울수록, 방향과 갈피를 잡지 못할수록 목숨을 던져 나라를 구하려 한 그분들 생각이 자꾸 난다.

 

애국자는 이렇게 죽는다

이 에미는 현세에서 너를 보기를 원하지 않는다. 일본에 항소 따위 하지 말고, 딴 마음 먹지 말고 죽어라.” 안중근 의사에게 수의(壽衣)를 지어 함께 보낸 조마리아 여사의 편지다. 자식에게 죽어라고 말하는 그 어머니의 가슴은 얼마나 쓰리고 통분이 가득했을까. 한국의 위대한 어머니는 이렇게 자식을 길렀고 애국자는 그렇게 태어나는 것이다.

제 나이 이제 서른한 살, 앞으로 30년을 더 산다 한들 과거 반생에서 맛본 방랑 생활에 견준다면 무슨 낙이 더 있겠습니까. 이제는 독립 사업에 몸을 바쳐 영원한 쾌락을 얻기 위해 이곳 상하이(上海)에 왔습니다.” 이봉창 의사는 김구가 미처 생각도 못했던 일본 천왕 살해 계획을 말하고 직접 폭탄을 던진다. 그리고 영원한 쾌락의 길로 나간다.

그 몇 달 후 죽을 자리를 찾기 위해 윤봉길 의사는 김구를 찾아온다. 그리고 김구 선생 앞에 자식에게 보내는 유서를 남긴다. “너희도 만약 피가 있고 뼈가 있다면 조선을 위한 용감한 투사가 되어라!” 25세에 삶을 마감하면서 강보에 싸인두 아들(네 살,두 살)에게도 죽을 길을 가라 한 아버지다. 이런 위인들을 회상하며 졸저를 쓸 때 가슴이 먹먹하고 눈물을 주체하기 힘들었다.

이들은 왜 이렇게 힘들게 죽으려 했나? 도대체 나라가 무엇인데 독립을 쟁취하려 목숨을 걸어야만 했나? 어느덧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 기념식이 요란하게 지나갔다. 그러나 가슴 속은 여전히 휑하다. 지금의 이 나라가 선열들이 목숨을 던지며 찾고자 했던 과연 그 나라인가?

이 나라를 위해, 아니 제대로 된 나라를 위해 나는,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권력의 눈치를 보고 떼법과 조직 논리에 매몰되어 부정에 눈 감고 불의를 정의라고 우기지는 않는가? 통일이라는 명분만 내세우며 압제와 가난, 질병과 고통에 시달리는 북녘 동포들은 계속 외면해도 되는 건가? 선열들이 독립을 외치며 갈구했던 자유와 민주, 평화와 평등이 가득한 나라인가 아닌가?

그 시대 그들의 뇌리 한가운데 박힌 것은 바로 죽음이었다. 김구의 표현을 빌리면 죽자꾸나 시대죽어가는 시대”, 오직 두 시대의 삶만이 전부였다. 죽음이란 자기희생이다. “내가 죽어 네가 산다면이름 없이 값없이 죽음으로 영원히 사는 길을 택한 것이다. 조국과 동포에 대한 무한 사랑과 신뢰가 깊었기에 죽음 건너편의 밝은 세상을 향했던 것이다.

 

정의로 포장된 증오와 분열의 정치

100년의 세월이 흘렀다. 비록 반쪽이지만 어엿한 나라도 있고 당당한 국민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지도자들이 요즘 하는 짓을 보면 증오와 분노에 사로잡힌 살벌 투쟁에 다름 아니다. 스스로가 독립투사라도 된 듯 착각하고, 상대는 제거돼야 할 일제 주구세력인 양 대한다. 자기희생은 어디로 가고 남의 희생과 복종만 강요한다. 애국·정의·평화가 거짓 선지자들의 입을 통해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 엄혹했던 시절에도 우리 국회의 전신인 임시의정원에서는 불꽃 튀는 논쟁을 했고, 임시정부는 정파를 초월해 구성·운영되었다. 해방된 조국의 제헌국회는 1년 중 320일 의사당의 불을 밝혔다. 휴일도 반납했다. 지방 출신들은 여관방에 묵으며 집단 출퇴근하면서 대의민주주의를 굳건히 키워나갔다. 요즘 국회와 정치는 어떤가. 제 나라 제 국민에 대해 의견이 다르고 원칙이 갈린다 하여 적대적으로 몰거나 제거 대상으로 삼는 태도는 참으로 불량하고 위험스럽다. 국민에게 사랑 대신 증오를, 포용 대신 분열을 획책하며 권력 장악과 유지에 골몰한다. 리더십은 실종되고 갈등은 증폭한다.

사회 각계각층의 지도부들도 갈릴 대로 갈리고 자기주장만 내세운다. 권력자에서부터 노동 계급까지 모두가 약자이거나 약자 편에서 싸운다는 사람들뿐이다. 막강 권력에 부()까지 장악한 자들이 시대의 양심인 양, 정의의 수호자인 척 뻔뻔하게 설치면서 명예와 신뢰가 추락하는 줄도 모른다. 진정한 약자들은 계속 이용만 당하니 더 움츠러들고 더 약해질 뿐이다. 안팎 숯검정들이 흠집 있는 사람을 찾으러 설쳐대니 인심은 말라가고 세상은 무기력에 빠져든다. 백범과 선열들이 꿈꾸던 문화가 강한 나라가 되려면 (문화)시민의식부터 먼저 갖추어야 한다. 갈가리 찢긴 민심, 극도의 이기주의와 실종된 공동체 의식으로는 나라를 지킬 수 없다. 아니 나라는 그럴 때 무너졌다. 우리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전 재산을 헌납하고, 온몸을 불사르며 처절한 삶을 살았던 독립투사 순국선열에 대해 참으로 민망하고 부끄럽다. 그분들이 하늘에서 오늘의 위정자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 같다. “네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그렇다, 남부터 죽이려 들지 말고 나부터 먼저 죽자. 권력과 돈과 명예, 이 모든 것을 벗어 던지고 죽을 각오로 임해야 한다. 내가 최선을 다한다 해도 그분들의 반의 반도 따라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진정 그래야만 이 나라 이 공동체가 (겨우) 다시 살아날 것이다.

 

 

 

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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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우리가 몰랐던 백범 김구

치하포 의거로 발현된 청년 김구의 피 끓는 애국심

 

 

227일 오전 8시 백범김구기념관에서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청년 김구에 대해 특강하고 있다. [박해윤 기자]



227일 오전 8시 서울 용산구 효창동에 위치한 백범김구기념관에서는 시민 250명이 대회의실을 가득 메운 가운데 특강이 진행됐다. 주제는 우리가 몰랐던 백범 김구, 그 두 번째 이야기로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강사로 나섰다.

 

100년 전 나라를 되찾고자 온 국민이 떨쳐 일어섰던 3·1운동이 일어났다. 1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이날 특강에서 김 전 의장은 평생을 나라의 자주독립을 위해 살아온 백범의 우국지사로서 면모를 생생하게 되짚어 설명했다. 지난해 6월 김 전 의장은 백범일지를 문답식으로 정리한 책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를 펴냈다. 특강과 책에 담긴 내용을 통해 3·1운동 이전까지 청년 김구의 뜨겁고도 치열했던 애국적 삶을 되돌아본다.

 

 

백범 인생의 터닝 포인트

 


18962월 제2차 청국 기행에 나선 김구는 평안도 안주에서 다시 발길을 돌린다. 을미사변에 분개해 1월부터 전국 곳곳에서 을미의병이 봉기한 데다 아관파천, 단발령 정지(2) 같은 소식을 듣고 국내에서 할 일을 찾아야 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김구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고 그를 일약 전국적인 유명 인사로 만든 치하포 의거는 이때 일어났다. 189639, 21세의 김구는 18958월 일어난 명성황후 시해사건(을미사변)의 원수를 갚고자 황해도 치하포에서 일본 육군 중위 스치다 조스케를 처단한다. 이른바 치하포 의거다. 김구는 나루터 여관 주인 이화보에게 왜놈의 시체는 바다에 던져 물고기 밥으로 주라고 이른 뒤 다음의 포고문을 써 벽에 붙였다.

 

국모(민비)를 시해한 원수를 갚기 위해(國母報讐) 이 왜놈을 죽였노라. 해주 백운방 텃골 김창수.’ 

 

그러고는 이화보에게 이렇게 명령한다.

 

네가 이 동네 동장이라 하니 안악군수에게 사건 전말을 알려라. 나는 집으로 돌아가 연락을 기다리겠다. 왜놈의 칼은 내가 가져간다.”

 

김 전 의장은 치하포 의거는 을미사변에 따른 순간적 의분으로 벌어진 돌발 행동이었지만 김구의 일생에서 훈장과도 같은 상징적 사건이 됐다고 평가했다. 실제 김구는 백범일지에도 어떤 장면보다 치하포 의거를 생생히 묘사하고 있다.

 

사람의 일은 모름지기 밝고 떳떳해야 하오. 세상을 속이고 구차히 사는 것은 사나이 대장부가 할 일이 못 됩니다.’

 

스치다를 죽인 김구는 본가로 가지 말고 다른 곳으로 피신하라는 동학당 동지에게 이렇게 말했다. 또한 그는 집으로 돌아가 그동안 있었던 일을 부모에게 낱낱이 전했고, 부모 역시 피신을 권하지만 듣지 않았다.

 

이 한 몸 희생해 만인에게 교훈을 줄 수 있다면 죽더라도 영광된 일입니다

 

치하포 의거는 피 끓는 애국 청년의 처절한 절규였다. 조선인이 살아 있음을 내외에 과시한 의거였다. 나라의 왕비(명성황후)를 무참히 시해한 일본인에게 복수하지 않으면 이는 국가적 수치이고 민족 자존심에 먹칠을 하는 일이었다. 유교의 윤리관, 동학혁명의 영향, 조선인으로 태어난 자의 의무와 사명감이 백범을 행동하게 했다.-‘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중에서치하포 의거 이후 김구는 해주 감옥에 갇혔다. 죄목은 세 가지. 첫째는 동학농민 봉기 때 동산평의 일본인 미곡 탈취 사건, 둘째는 장연에서의 산포수 거사 사건, 셋째는 치하포 사건이었다. 김구는 18967월 초 인천 감옥으로 이감됐다. 갑오개혁 이후 외국인 관련 사건을 다루는 특별 재판소가 인천에 생겼기 때문이다. 8월 마지막 날 인천 감옥에서 첫 신문이 있었다. 경무관 김윤정이 물었다.

 

치하포에서 39일 일본인을 살해했느냐.”

 

김구는 큰 소리로 말했다.

 

그날 내가 그곳에서 국모의 원수를 갚고자 왜구 한 명을 때려죽인 사실은 있소.”

 

법정 안에 무거운 침묵이 감돌자 옆 의자에 앉아 신문 과정을 지켜보던 일본 순사 와타나베가 통역에게 까닭을 물었다. 김구는 죽을힘을 다해 이렇게 외쳤다.

 

지금 이른바 만국공법이나 국제공법 어디에 국가 간 통상 화친조약을 맺어놓고 그 나라 임금을 시해하라는 조문이 있더냐. 이 개 같은 왜놈아, 너희는 어찌하여 우리 국모를 시해했느냐. 내가 죽으면 귀신이 되어, 또 살면 온몸으로 네 임금을 죽이고 왜놈을 씨도 안 남기고 모조리 죽여버려 우리나라의 치욕을 씻으리라.”

 

와타나베는 치쿠쇼, 치쿠쇼”(본뜻은 짐승이지만 주로 욕으로 쓰는 일본어) 하며 대청 뒤쪽으로 도망쳤다.

 

김구는 재판소 관리들에게 따지듯 물었다.

 

나는 시골의 일개 천민이지만 백성의 의리로 국가가 치욕스러운 일을 당한 것이 부끄러워 왜구 한 명을 죽였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 동포가 왜인들의 왕을 죽여 복수했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지금 당신들은 몽백(국상을 당해 소복을 입고 백립을 쓰는 것)을 하고 있는데, 춘추대의에서 나라님의 원수를 갚기 전까지는 몽백을 아니한다는 구절도 읽어보지 못했습니까. 한갓 헛된 부귀영화와 국록을 도적질하는 더러운 마음으로 어찌 임금을 섬긴단 말입니까.”

 

김구의 당찬 꾸짖음에 관리 수십 명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창수 말을 들으니 충의와 용기가 실로 놀라워 당혹스럽고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이날 이후 김구는 감옥에서 대장이 됐다. 수백 명의 관원이 만나는 사람마다 제물포가 개항하고 감리서가 문을 연 이래 처음 보는 희귀한 사건이라며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벌렸기 때문이다. 김구를 보려고 면회를 청하는 이들도 날이 갈수록 늘었다. 952차 신문일에는 경무청 주변이 인파로 뒤덮였다. 담장과 지붕 위까지, 경무청 뜰이 보이는 곳 어디든 구경꾼들이 발 디딜 틈 없이 올라가 있었다.

 

육신은 가두어도 정신은, 영혼은 가둘 수 없었다. 일제의 국권 침탈로 이미 속국이나 마찬가지가 된 나라에서 감옥은 백범에게 감옥 안의 감옥에 불과할 따름이었다. 아니, 오히려 김구는 감옥 안에서 나름대로 독립을 쟁취했다. 목숨에 연연하지 않았다. 죄수뿐 아니라 간수, 뭇 백성들에게까지 공감대를 넓혀갔다. 어느 순간 백범은 감옥 안에서 대장이 돼 있었고, 그의 명성은 감옥 담장을 훌쩍 뛰어넘어 바깥세상 멀리까지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육신보다 정신이 먼저 탈옥해 있었다. (중략) 국난에 임해 영웅이 등장하고 위기에 지도자가 나온다. 이 한 몸 나라 위해 던지기로 한 청년 지사 김창수(백범)(치하포 의거를 계기로) 어엿한 지도자로 영글어간다. - ‘백범 묻다, 김구 답하다중에서

 

 

사형 직전 일어난 두 번의 기적


  

백범김구선생기념사업협회장을 맡고 있는 김형오 전 국회의장. [박해윤 기자]


1896117일자 독립신문에는 중죄인 5명과 함께 살인강도 김창수(김구)를 교수형에 처한다는 기사가 실렸다. 신문이 배포된 뒤 김구가 갇혀 있는 감리서가 들썩였다. 죽기 전 그를 보려는 면회객 행렬이 옥문 밖까지 길게 이어졌던 것. 그러나 두 번의 행운이 겹치면서 김구에 대한 사형 집행은 이뤄지지 않았다. 첫 번째 행운은 고종이 사형을 중지하라는 어명을 내린 것이었다. 당시 사형은 임금의 재가를 받은 뒤 집행됐는데, 임금이 교수형 집행을 재가한 상태에서 뒤늦게 대궐 안에 있던 승지 가운데 하나가 명부에 적힌 김구의 죄명 국모보수를 우연히 보고 임금에게 안건을 다시 올렸고, “이 사안은 국제관계와도 맞닿아 있으니 일단 사형 집행을 중지시키라는 어명이 내려온 것이다. 두 번째 행운은 시간과 결부됐다. 사형 집행 중지 어명은 내려졌지만 인천 감리서까지 어명이 전달되기에 시간이 촉박했던 것. 그러나 천만다행히도 사형 집행을 사흘 앞두고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장거리 전화가 개설돼 임금의 지시가 감리사 이재정에게 극적으로 하달됐다. 김구는 만약 서울-인천의 전화 개통이 사흘만 지체됐어도 나는 스물한 살 나이로 형장의 이슬이 돼 사라지고 말았을 운명이었다백범일지에서 회고했다.

 

이와 관련해 학계 일각에서는 이견을 내놓고 있다. ‘고종이 직접 걸어온 구명 전화이야기는 서울과 인천 사이에 장거리 전화가 놓이기 전이므로 고종의 구명은 전화가 아닌 전보로 전달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죽음을 각오하고 결행한 치하포 의거를 계기로 청년 김구는 모진 고초를 겪으면서도 일평생을 나라를 되찾는 데 앞장서게 됐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백범 김구에 대한 이야기는 독립과 자유를 향한 그의 혁명가의 삶을 되짚어보는 두 번의 특강을 통해 소개될 예정이다.

 

 

남북관계 잘되려면 주변국 지지 필수적


우리가 몰랐던 백범 김구, 그 두 번째 이야기특강 이후 김형오 전 국회의장을 따로 만났다. 김 전 의장은 “100년 전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이 빼앗긴 나라를 되찾으려는 선조의 치열한 몸부림이었다면, 2019년을 사는 우리에게는 다시는 나라를 빼앗기지 않겠다는 각성의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 대한제국 망국의 교훈은 지도자와 국민이 국제정세에 어둡고 투철한 애국심으로 무장돼 있지 않으면 나라를 잃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지난 100년 역사를 교훈 삼아 앞으로 미래 100년을 준비하는 각성의 계기로 삼아야겠죠.”

 

대한민국 미래 100년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세계 정세 흐름을 분석하고, 우리를 지켜낼 힘을 키워야 합니다. 그래야 남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않습니다. 그러자면 내부적으로 화합하고 단결해야죠. 김구 선생은 세계 평화의 중심이 되는 나라를 만들자고 말씀하셨어요. 최근 남북을 포함한 동북아가 세계 평화의 중심축으로 작동할 기회를 잡고 있습니다.”

남북평화와 남북공존공영을 위한 방법론을 두고 우리 내부에서 이견이 있습니다.

 

우리 민족끼리가 틀렸다는 게 아닙니다. 남북이 손잡고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우리 민족이 자존감을 갖고 국제정세에 대응하는 것은 옳지만, 세계적 흐름 속에서 작동하도록 하려면 폭넓은 외교력을 발휘해야 합니다. 우리의 국제정세 기본 축은 한미관계입니다. 한미안보동맹이 흔들리면 나라의 중심축이 흐트러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일관계도 지금처럼 어긋나 있게 방치해선 안 됩니다. 남북평화와 남북공존공영을 위해서는 한 나라라도 더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도록 당겨 와야 합니다.”

 

한일 간에는 위안부 문제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는 인도주의 차원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이며, 한일 외교관계가 파탄 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됩니다. 국익을 위한 외교는 냉혹하면서도 고차원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한중관계도 기로에 서 있는 모습입니다.

 

미국이든, 중국이든 대한민국이 그들에게 어떤 존재로 인식되느냐가 중요합니다. 한국이 미국에게 중요한 존재인가, 중국에게 필요한 존재인가에 양국관계가 달려 있습니다. 국제관계는 투자 대비 효율이 떨어지면 언제든 포기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국이 북한 눈치를 보면서 한국을 우습게 여기도록 방치해선 안 됩니다. 중국이 남북한을 균형 있게 대하도록 하는 게 1단계이고, 남북이 뜻을 모아 평화와 통일로 나아가는 것이 중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득하는 게 2단계 목표입니다. 남북관계가 잘되려면 무엇보다 주변국의 지지가 필수입니다.”

 

 

  

주간동아 2019.03.01 1178(p24~27)



구자홍 기자 j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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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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