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미디어 속으로/신문/방송기사

[2026-06-24 아시아경제 : 時代를 묻다] 세 개의 불꽃, 대한민국을 흔든다

- 꺼져가는 기억의 불꽃
6·25 교훈 잊은 안보 의식 '흔들'
참전용사 예우·전쟁 교훈 계승 시급

- 너무 뜨거워 두려워진 불꽃
뜨거운 5·18 논쟁, 성역화 경계해야
투명성 강화로 국민 신뢰 회복 필요

- 막 불붙은 분노의 불꽃
청년 분노 부른 선거관리 부실 논란
민주주의 경고음…개혁 동력으로 바꿔야




지금 이 나라에 세 개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다. 하나는 꺼져가는 기억의 불꽃, 또 하나는 너무 뜨거워서 두려워진 불꽃, 다른 하나는 이제 막 불붙기 시작한 청년들의 분노의 불꽃이다. 이 세 불꽃이 한꺼번에 이 나라의 민주주의와 자유를 흔들고 있다. 나는 그것이 두렵다. 그래서 고심 끝에 이 글을 쓴다. 꺼져가는 불은 살리고, 치솟는 불길은 삭이고, 일어나는 불길은 가다듬으려 한다.


◇전쟁을 잊은 나라는 다시 침략당한다= 1950년 6월25일 새벽, 38선을 넘어 쏟아진 포성으로 이 나라는 하루아침에 불바다가 됐다. 한국군은 훈련·장비·정보 모든 것이 부족했다. 그해 1월, 애치슨 미국 국무장관은 극동 방위선에서 한국과 대만을 제외한다고 선언했다. 그로부터 불과 다섯 달 뒤 김일성은 그 선언에 핏빛으로 답했다. 방심과 무지, 그리고 잘못된 신호가 재앙을 불렀다.

그러나 그 전쟁에서 이 나라는 살아남았다. 이유는 하나다. 자유를 위해 목숨을 던졌기 때문이다. 어린 학도병이 총을 들었고, 농부가 낫을 버리고 전선으로 향했다. 흥남 부두에는 철수하는 배에 타려고 파도를 뚫고 달려온 피란민들이 있었다. 그들이 지키고자 한 것은 땅이 아니라 자유였다. 그 투철한 애국심과 헌신이 이 나라를 살렸다.

수백만의 젊은 피가 흩뿌려진 이 산하에서 전쟁을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생존한 참전용사는 이제 2만명 안팎이다. 청춘을,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킨 이들을 국가는 제대로 예우하고 있는가. 기념일은 형식으로 전락했고, 추모사는 해마다 비슷한 문구를 되풀이한다. 심각한 것은 교육이다. 6·25가 남침인지 북침인지조차 헷갈리게 가르치는 교사가 있다는 말이 들린다. 침략한 자와 침략당한 자를 혼동시키는 교육 앞에서 다음 세대가 무엇을 배우겠는가. 한때 미국도 6·25를 '잊힌 전쟁(The Forgotten War)'이라 불렀다. 승전도, 패전도 아닌 어중간한 결말이 난 데다 월남전의 그늘에 가려 미국 사회에서 오래 묻혀 있었다. 지금 이 나라가 그 길을 걷고 있다. 일부 좌파 지식인들은 6·25의 기원을 흐리게 하는 주장을 거리낌없이 펼친다. 안보의식이 무뎌지고, 동맹을 소홀히 여기고, 군기가 느슨해지는 나라는 조용히, 그러나 예외 없이 위험에 빠진다. 역사는 경고한다. 방심한 나라는 반드시 대가를 치른다고.


◇5·18 정신은 살아야 한다. 그러나 성역은 민주주의가 아니다= 나는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역사적 정당성을 믿는다. 부마항쟁에 뒤이어 1980년 5월 광주에서 저항의 불길로 타올랐다. 군홧발에 짓밟히면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외쳤던 광주 시민들의 궐기는, 신군부 세력에 맞선 국민 저항권이 살아 있음을 세계만방에 증명했다. 4·19 민주 의거의 꺼지지 않는 불씨는 5·18로 지펴졌고 다시 1987년 6월 항쟁으로 이어졌다. 그 희생과 헌신을 기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다른 물음에도 답해야 한다. 5·18 정신을 진정으로 살리려면, 그 이름이 어떤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 성역이 돼서는 안 된다. 민주주의의 본질은 열린 논의와 상호 견제다. 어떤 역사적 사건도, 이념도, 집단도 비판 그 너머에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바로 5·18이 피로써 쟁취하려 했던 민주주의의 참뜻이 아닌가.

그런데 5·18 유공자 명단이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이유가 없지는 않다. 그러나 언제까지 베일에 감춰둘 수 없다. 유공자들이 당당하게 국민의 인정과 존경을 받으려면, 차라리 솔선해서 명단을 밝히도록 하자. 공개야말로 수십 년째 제기되는 의혹과 불신을 단번에 잠재우게 할 가장 강력한 무기며, 국민 화합의 징검돌이다. 더구나 헌법 전문에 명시하자면서 이름조차 밝히길 꺼린다면 뭔가 미심쩍다. 투명성 없는 특권은, 그것이 어떤 이름표를 달고 있든, 민주주의와 공존할 수 없다. 국가 유공자는 명예의 증표이자 국민의 자부심이다.

더불어 한 가지 불균형을 짚고자 한다. 참전용사는 월 49만원의 명예 수당을 받고, 유족 승계조차 안 된다. 인상된 금액이다. 반면 5·18 보상은 일시금 평균 4300만원(사망자와 행방불명자는 1억여원)에 교육·취업 등 각종 혜택이 더해진다. 어느 쪽 헌신이 더 크다는 비교가 아니다. 두 희생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다만 이 차이가 국민에게 납득 가능한 방식으로 설명되고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이런 불균형은 갈등의 씨앗이 돼 5·18 정신을 갉아먹는다.


◇청년의 분노는 정당하다. 그러나…= 지방선거가 치러진 지난 3일, 전국 91곳 투표소에서 투표용지가 바닥났다. 26개 투표소에서는 투표 자체가 멈췄다. G7 회의에 참석한 나라가 맞나 싶을 정도로 유치하고 미숙한 민주주의 운영 실태가 온 세계에 알려졌다. 원인은 분명하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이 낳은 무사안일, 나태, 무능과 개혁 의지의 상실이다. 투표 관리의 부실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해마다 지적됐지만, 세계 유수의 독립된 헌법기관임을 내세우며 개선 시늉만 해왔다. 데이터가 넘쳐나는 최첨단 시대에 참정권의 기초도 모른 채 투표소별 상황도 대비하지 않은 게으름과 무능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 정부는 스스로 '국민주권 정부'라 부른다. 그렇다면 국민주권의 핵심인 투표의 신뢰성이 흔들릴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 말로만 국민주권을 외칠 게 아니라, 투표함 하나하나가 국민의 신뢰를 담는 그릇임을 명심해야 한다. 그 신뢰가 무너지면 정부의 정당성 자체가 뿌리부터 흔들린다. 청년들이 거리로 나왔다. 이들의 분노는 정당하다. 공정하지 못하고 정의롭지 못하다고 판단하면 주저 없이 행동으로 반발하는 세대다. 이 나라 민주주의의 건강한 면역 반응이다. 도덕적 정당성 없이는 국민의 신뢰도, 지도자의 자격도 없다는 것을 이들은 본능적으로 안다. 투표용지 사태는 세월호 참사나 이태원 비극과는 차원이 다른 엄청난 국가 행정의 실패다. 자유민주주의 기반을 좀먹고 망가뜨리는 이런 행위는 근본적으로 뜯어고쳐야 한다. 선관위는 물론 모든 관련기관이 재정비되고 새로 태어나야 한다. 국민이 무섭다는 것을 이번에 제대로 보여줘야 한다. 다만 정치인들이 정당과 정파 그리고 개인의 유불리를 잣대로 획책하는 수법에 이용당하거나 휩쓸리지 말고, 분노의 발길은 제도 개혁과 참정권 보장으로 향해야 한다.


◇불편한 진실에서 도망치는 나라가 될 것인가?= 나는 오래 보아왔다. 이 나라가 잿더미에서 일어서는 것을 보았고, 독재에 신음하는 것을 보았으며, 민주화의 함성이 거리를 메우는 것도 보았다. 이 나라 국민은 그렇게 위기가 닥칠 때마다 반드시 일어섰다. 그래서 나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러나 안심하지도 않는다.

지금 이 나라에 세 개의 경고등이 동시에 켜졌다. 안보 망각, 역사의 성역화, 선거 신뢰의 붕괴. 이 세 가지는 따로따로 볼 문제가 아니다. 그 뿌리는 하나다. 불편한 진실 앞에 눈을 감는 집단적 태도다. 6·25의 교훈? 불편하니 잊는다. 5·18에 대한 당연한 물음? 불편하니 금기로 만든다. 선거관리의 실패? 불편하니 음모론으로 덮거나 일부 문책으로 끝낸다. 불편한 진실에서 도망치는 나라는 반드시 그 진실에 발목 잡힌다.

자유민주주의는 공짜가 아니다. 피와 땀과 눈물로 쟁취했고 또 지켜왔다. 지금 이 순간에도 그것을 지키는 비용은 계속 청구되고 있다. 6·25를 배워라. 피 흘린 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라. 그것이 오늘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가격이다. 5·18 정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그 이름이 특권의 방패가 되는 것을 막아라. 그것이 광주 영령들에 대한 진정한 예의다.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분노한다면, 그 분노를 사전투표제를 포함한 선거 제도와 관리의 전면적 쇄신으로 향하게 하라. 분노가 방향을 잃으면 교활한 자에게 역이용당한다.


◇그래도 나는 이 나라를 믿는다= 나는 이 나라가 위험하다고 했다. 그러나 망한다고는 하지 않겠다. 이유는 하나다. 아직 이 나라에는 옳고 그름을 분별하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거리에 나온 청년들의 눈빛이 그것을 말해준다. 불의 부정에 침묵하지 않는 그 기질이, 이 나라가 면면히 이어온 생명력이다.

잘못에 대한 분노는 당연하다. 그러나 분노만으로는 나라를 구할 수 없다. 역사의 교훈을 알고, 진실을 직시하고, 미래의 책임을 감당하려는 의지가 분노에 더해질 때, 비로소 나라는 바뀐다. 해마다 격감하는 6·25 참전용사들이 사라지기 전에, 이 나라는 기억을 국가적 책임으로 삼아야 한다. 5·18 정신이 성역의 갑옷 안에서 질식하기 전에, 투명한 햇빛 아래로 꺼내야 한다. 선거 관리의 실패가 국가 사회 전체의 신뢰 붕괴로 치닫기 전에, 뼈를 깎는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

4·19에서 시작된 민주주의의 함성은 부마사태, 5·18, 6·10 항쟁을 이어 이번 6·3 시민운동에서도 피어났다. 대한민국이 살아있음을 알리는 건강한 몸부림이기도 하다. 이것이 침략당해 없어질 뻔한 나라를 목숨 바쳐 지켜냈던 자유민주주의의 진실이다. 6·25전쟁 76주년을 맞는 대한민국, 아직 희망이 있다.
/ 김형오 전 국회의장



[2026-06-24 아시아경제]
  >>
바로가기 << 클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