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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헤드라인

암각화 보존, 카이네틱 댐 설치 합의를 반기며

 

암각화 보존, 카이네틱 댐 설치 합의를 반기며

 

6월 16일, 드디어 반구대 암각화 보존 문제와 관련하여 대립과 갈등을 빚고 있던 문화재청과 울산시가 이동식 구조물인 카이네틱 댐 설치에 합의했다. 이 소식을 누구보다도 반긴 사람은 그 동안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해 열정과 노력을 쏟아온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었다. 블로그에 올린 두 편의 글은 김 전 의장이 직접 쓴 소감문과 경상일보 특별 인터뷰 기사이다.



 

드디어, 마침내 합의안이 나왔다. 국보 제285호 반구대 암각화 보존을 위한 실마리를 찾았다. 이동식 투명 구조물 ‘카이네틱 댐(Kinetic Dam)’이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6월 16일, 정홍원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회의에서 변영섭 문화재청장, 박맹우 울산시장, 유진룡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등 관계 기관장들은 전격적으로 이동식 댐 설치 방안이 담긴 협약을 체결했다.

☞ 관련 기사 바로가기 [연합뉴스 2013-06-16]

환영한다. 늦었지만 참으로 다행스런 일이다. 암각화 보존을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온 지난 4년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스쳤다.

내 블로그(www,hyongo.com) 검색창에 ‘반구대 암각화’를 치면 20건의 글이 목록에 뜬다. 네이버 뉴스에서만도 100건이 넘는 ‘김형오와 암각화’ 관련 기사가 검색된다. 그만큼 암각화 보존 문제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여왔다.

국회의장 시절 두 차례의 현장 방문(2009년 10월 만수기, 2010년 3월 갈수기), 특단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 내 책(『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 70~81쪽)을 통한 호소, 동아일보·경상일보 등 칼럼 기고, 관훈클럽 초대석 발언, 울산시·분당포럼 등 강연을 통한 전파, 전화와 면담을 이용한 해당 부처 설득, 전문가 의견 청취 및 사진자료 수집, SNS(트위터) 메시지 등 나로서는 활용 가능한 모든 채널을 동원했다.

6월 초에는 정홍원 국무총리에게 암각화의 어제와 오늘이 담긴 몇 컷의 사진과 함께 해법을 제시한 편지를 써 보냈다. 5월 말 부산대 강연에선 이번에 해법으로 합의한 이동식 투명 댐 설치를 임시 조치 방안으로 내놓기도 했다. 그런 노력의 일단이 반영된 것 같아 가슴이 뿌듯하다.

동어 반복은 삼가겠다. 다만 반구대 암각화 훼손의 심각성과 보존의 절박성을 동시에 알 수 있는 사진 두 컷으로 이번의 응급조치가 얼마나 벼랑 끝 선택인가를 네티즌들과 공감해 보려 한다.

 

1. 작살은 어디로 사라졌는가?

이 사진은 등에 작살이 박힌 고래 그림이다. 오른쪽 발견 당시와 왼쪽 2010년 모습을 비교해 보라. 바위의 균열 부분이 아니라면 위치를 찾기조차 쉽지 않을 만큼 많이 마모된 모습이다.

이 그림이 발견되기 전까지 관련 국제 학계에서는 인간이 바다에서 고래 사냥을 시작한 시기를 기원후 10~12세기 정도로 보았다. 그러나 반구대 암각화에 새겨진 작살 맞은 고래 그림으로 인해 포경의 역사는 4천 년 전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다. 우리 선조는 도구(작살)를 이용해 고래잡이를 한 최초의 인간임도 입증하게 되었다.

그러나 지금, 훼손 상태를 보라. 또렷했던 작살은 그저 눈대중으로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다. 작살 박힌 고래도 흔적을 찾기 어렵다.

작살의 소멸은 비단 암각화의 일부가 사라지는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가 최초의 포경 민족이며, 도구를 이용한 포경의 기원이 언제인지, 그 증거 자체가 인멸되는 심각한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2. 어미 고래 등에 업힌 새끼 고래는?

이 사진은 새끼 업은 고래 그림이다. 이 그림 역시 오른쪽과 왼쪽 사진을 비교해 보면 30여년 사이 심각한 훼손이 진행됐음을 확연히 알 수 있다. 새끼도, 어미도 겨우 형체만 알아볼 수 있을 정도다.

300여 점의 암각화 가운데서 가장 휴머니즘적인 이 그림은 기법 또한 특이하다. 어미는 음각으로, 등에 업힌 새끼는 양각으로 튀어나오게 하여 정겨움과 더불어 입체감까지 살린 수작이다. 고래의 선(모양)은 현대 화가가 그린 것처럼 유연하며 생동적이다. 안타까운 것은 이뿐만이 아니다. 고래 그림 주변(특히 좌상단)의 거북이·사람 모양 그림들 역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만큼 변해 버렸다.

등에 업힌 새끼도, 업은 어미도 지워져 버린다면 그 고래의 존재 자체가 지워져 버린다. 선사 문화의 정답을 알려주는 타임캡슐이 영영 실종되고 마는 것이다. 암각화 보존이 화급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한 가지만 지적하겠다. 반구대 암각화가 세계적 수준의 문화유적임은 틀림없다. 그러나 지난 30년간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 훼손될 대로 훼손되었다. 4천 년 이상 본래 형태를 유지해온 암각화가 댐이 생긴 뒤로 물속에 잠겼다 나왔다를 반복하면서 이렇게 가슴 아픈 모습이 되어 버렸다.

나는 여기서 그 책임을 물으려는 것이 아니다. 지금 가장 화급한 것은 더 이상의 훼손을 방지하는 일이다.  본래 물 밖에 있었으니 하루 빨리 물 속에서 끄집어내야 한다. 그래서 임시 제방 격인 '카이네틱 댐' 방식을 도입키로 한 것 아닌가.

그런 만큼 다시 아집과 기득권에 매몰되어 애써 합의한 이 방식마저 난항에 부닥친다면 그땐 정말로 돌이킬 수 없는 역사적 죄인이 되고 말 것이다.

물론 암각화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는 일도 중요하다. 하지만 절대적인 명제는 아니다. 지금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암각화 보존이다. 세계문화유산 지정을 내세워 암각화 주변을 손도 못 대게 하는 것은 분초를 다투는 현 시점에서는 한가한 소리다. 이대로 훼손을 방치한 채 뒤늦게 세계문화유산 운운한다면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니겠는가.

반구대 암각화 살리기는 ‘문화 융성’의 시금석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기도 하다. 보존을 위한 첫 단추는 꿰어졌다. 일각에서 지적하듯이 카이네틱 댐이 물을 차단할 수는 있지만 영구적인 해결 방안으로는 미흡하다고 판단된다면 일단 이 구조물을 설치한 다음 다시 지속 가능한 보호 방안을 마련하면 된다. 이 문제의 해결책에 대한 합의가 국민 통합의 불쏘시개, 그 상징적인 역할까지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 김 형 오 ♠

 

[2013-06-19  경상일보]

▲ 김형오 전 국회의장이 18일 서울 마포구 자신의 연구소에서 30여년 전 암각화 사진과 자신이 국회의장 재임시 울산을 방문해 직접 촬영한 사진을 비교하면서 “이달초 정홍원 총리에게 이메일을 보내 암각화를 하루빨리 물에서 건져내지 못하면 큰 죄를 짓게 된다”고 강력 건의했다고 말했다.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18일 “울산시와 문화재청은 카이네틱댐(Kinetic Dam) 설치 ‘협약서(MOU)’대로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면서 “물속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는 ‘아이’부터 지체없이 건져올리는게 급선무”라고 강조했다.

국회의장 재임 이전부터 지난 10여년간 암각화를 ‘짝사랑’해온 김 전의장은 이날 서울 마포구 자신의 연구소에서 암각화 보존과 관련해 본보와의 인터뷰를 갖고 이같이 밝혔다. 김 전 의장은 지난 정부 김황식 총리를 만난데 이어 정홍원 총리에게 이메일을 보내 암각화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하루빨리 물에서 건져내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함으로써 ‘카이네틱댐’ 설치 협의서 체결에 크게 기여한 것으로 분석됐다.

그는 “국회의장 재임시절 암각화 현장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지난 30년 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물속에 잠겼다 나왔다를 반복하다 보니 풍화작용이 심각해지는 것이다. 더 이상 지체해서는 안되는 시급한 상황”이라며 일단 물속에서 건져내게 돼 다행이라고 말했다.

울산출신은 아니지만 암각화에 대한 김 전의장의 애정은 각별하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이나 우리나라의 문화재로 국한해 볼수 없다. 선사시대의 기록물로서 인류의 문화자산이므로 제대로 보존하지 못하면 큰 죄를 짓게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난 2010년 출간해 화제를 모은 바 있는 ‘김형오의 희망편지 아름다운 나라’에도 ‘물고문’이 계속되고 있는 반구대 암각화에 대해 적고 있다. “고맙습니다.죄송합니다. 꼭 해결하겠습니다”라는 소제목으로 암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소상하게 그렸다.

김 전의장은 “우리의 문화유산인 암각화가 심하게 물고문 당하고 있는데도, 울산시와 문화재청이 10년이상 논란만 계속해온 것은 어떤 형태로든 변명의 여지가 없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부와 지자체 등 4개기관장이 한데 모여 협의서를 체결한 것은 암각화를 더이상 물속에 놔둬선 절대 안된다는 절박한 상황을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울산시와 문화재청은 더이상 시간을 지연시키지 말고, (암각화를 건져올리는) 합의서를 이행하는게 최선”이라고 했다.

‘카이네틱댐’ 설치를 위한 MOU 체결이후에도 일부에서 논란이 계속되고 있는 것과 관련해서는 “정부와 지자체, 당 등 정책책임자들이 이같은 결정을 한 배경은 암각화를 조속히 건져올리는 게 급선무이라고 인식했기 때문이 아닌가. 문화재청은 물론 문화재위원들도 투철한 역사 의식과 국가관을 갖고 협의서 대로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박근혜 정부의 3대 국정기조의 하나로 추진중인 ‘문화융성’과 관련해 “박 대통령은 문화융성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고 정책의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면서 “반구대 암각화 보존도 문화융성의 일환으로 추진되는 것으로 안다. 반드시 해결할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국회의장 퇴임후 지난해 11월 ‘술탄과 황제’(21세기북스)를 펴내 큰 화제를 불러일으킨 데 이어 영어 및 터키어로 번역돼 미국과 영국, 터키 등에 출간될 예정인 김 전의장은 본보와 인터뷰를 한 이날도 자신의 연구소에서 번역 작업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글·사진=김두수기자 dus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