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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헤드라인

이준석을 위로함

김형오(전 국회의장)



“리틀 우생순”. 자랑스러운 우리 젊은 핸드볼 선수들이 태극기 휘날리며 귀국하는 날 집권당 대표였던 이준석 기자회견이 열렸다. 한 쪽은 이 나라 미래 스포츠에 대한 밝은 희망의 빛을, 또 다른 쪽에선 집권당을 둘러싼 우리 정치의 격랑을 예고했다.

얼마나 분하고 억울한지 회견문을 읽는 도중 눈물을 훔치고 말을 잇지 못할 때도 있었다. 밤새 다듬고 고심한 원고지만 곳곳에서 거칠고 감정적인 표현을 숨기지 않았다.

이준석은 이 시대 젊음의 아이콘이다. 이 땅의 청년들에게 덧씌워지는 지위‧조직‧체계‧질서‧관습 등에 반기를 들고 거부하겠다는 사명이 그에게 주어진 듯하다. 자유‧정의‧인권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어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청년들의 고민과 좌절, 꿈과 희망을 대변한다. 그러나 기존 보수 정당을 반공 이데올로기나 배타적 민족주의, 또는 계획경제 전체주의, 아니면 일방주의적 성격으로 규정 짓는 것은 이분법적이며, 현실적으로도 올바르지 않다.

나는 이준석의 입장을 최대한 이해하려 한다. 지난 대선과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 전력질주한 사람에게 돌아온 대접은 ‘왕따’였고, 결과는 “당 대표 축출”이니 얼마나 화가 나고 서운했겠는가. 더구나 국민의힘이 자유‧창의‧개혁 노선을 가기보다 구태 답습이나 하니 지지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 아닌가.

공감되는 부분이다. 선거를 지휘하다 보면 열심히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보인다. 얄미운 것은 후자에 속하는 사람들이 당선자 주변에 얼찐거리면서 또 자리도 차지한다는 것이다. 선거를 치른 경험이 없는 당선자일수록 승인(勝因) 파악이 서툴 때를 종종 본다. 특히 당에 대한 감사보다는 서운함을 내비칠 때도 있다. 실체도 없는 사조직들이 선거는 자기들이 다 한양 떠들어대고 당의 노력을 폄훼하기도 한다. 이준석의 내심에는 이런 마음이 작용했으리라 짐작해본다.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이 세다. 이를 극복하지 않으면 즐기기는커녕 버텨내지를 못한다. 당의 최고직인 대표가 되면 자기 사람을 심고, 정책을 견인하고, 대중적 지지를 모색한다. 이준석도 그랬다. 그러나 실패했다. 그 실패 원인 중 몇가지를 이번 회견을 통해 몇 가지 짚어본다. 이준석의 당대표 등장을 누구보다 지지했던 사람이기에 그의 재기(再起)를 위해 애정과 냉정으로 살펴보려 한다.

먼저 전편에 흐르고 있는 기류는 ‘불만’이다. 당에 대한 불만이 이렇게 많은 당대표는 일찍이 없었고 앞으로도 드물 것이다. 당의 대표마저 당을 자기 뜻대로 움직여 나가지 못한다면 도대체 어찌 하란 말인가. 그는 당의 구조를 강경 완강한 이른바 ‘꼴통’ 보수에서 유연‧합리‧진보적인 보수로 탈바꿈하기 위해 치열하게 임했지만 여러 한계와 제약에 부닥친 모양이다. 나로서도 아쉬운 점이긴 하지만 그럼 “이준석표 개혁 아이콘은 뭔가?” 하면 이 역시도 쉽게 대답이 안 나온다. 부분적‧지엽적인 것은 제법 많다. 그러나 대세를 이끌 그 무엇, 그가 윤 정부에 대해 쓴소리한 것과 같은 “어젠다를 발굴하고 공론화하는 능력”을 못 보여준 것이 이준석 실패의 큰 이유가 아닌가 생각해 본다.

두 번째로는 ‘불신’이다. 태극기 보수 세력에 대한 불신이 내면 깊이 자리 잡았다. 시대를 이끌지 못하는 낡은 이론과 행태로는 더 이상 표를 확장 못한다는 논리다. 옳은 말이다. 명석하고 말잘하는 이준석이기에 구닥다리 행태를 못 참고 쏘아붙이고 ‘박멸’하려 한다는 인상을 준 것이 오히려 화근이었지 않나 싶다. 정치는 현실이다. 이들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며 소중한 한 표다. 선거는 표를 많이 얻는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지 똑똑한 사람 뽑는 것이 아니잖은가. 태극기든 꼴통이든 품어야 한다. 말이 아닌 가슴으로 말이다. 이들의 노선을 따르라는 게 아니다. 이들을 내 편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이준석보다 두 배 이상 인생과 경험을 한 사람들이 젊은 대표 말 몇 마디에 “옳다, 생각을 바꾸자!”고 하겠는가. 보수가 새로워지는 길은 두 가지다. 새로운 젊은 피를 수혈하고 생각도 고쳐먹어야 하지만 낡고 바랜 옷도 바꿔 입어야 한다. 기존 세력을 적대시해서는 안 된다. 당의 변화‧혁신을 바랐기에 이준석을 당대표로 지지한 나이든 당원도 많다는 사실을 상기해야 한다. 공자 말씀 꺼내기도 무색하지만, 믿어야 산다. 당과 당원에 대한 신뢰가 모든 행동의 기본이 돼야 한다.

세 번째로는 공인의식이다. 회견에서 선당후사(先黨後私)란 근거도 없는 전체주의적 사고라며 김정은의 선당정치(先黨政治)에 빗대어 맹공했는데, 이 말은 선공후사(先公後私)에서 나왔다. 고사에도 있고 내가 존경하는 백범 김구선생이나 인촌 김성수 같은 분들이 휘호로 남기기도 했다. 시대가 변했으니 자유 개인 권리가 존중되고 중시된다. 그러나 지도자라면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이 공인의식, 공인의 도리이다. 고대 그리스에 민주주의가 꽃피고 로마가 세계제국이 된  것도 시민의 공인의식과  공동체 수호 의지가 뒷받침 되었기 때문이다. 자유 민주 인권에 더하여 공화주의가 세계최강국이자 연방국인 미국을 이끄는 기준아닌가. 이준석은 일정 세력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 반열에 올라섰다. 여기에 멈추지 않으려면 공인의식 공적 책임, 그리고 공동체 의식을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공당의 책임자였던 사람이 거대 야당에게 지지율 낮은 자기 정권과 여당을 공격하기 좋은 소재를 결과적으로 제공한다면 억울하더라도 방향과 논리를 수정해야 한다. 무책임하다는 소리를 듣는다면 훌륭한 지도자도 성공한 인생도 될 수 없다.

이제 몇 가지 구체적인 언급을 해보자. 지난번에 이어 이번에도 ‘양두구육(羊頭狗肉)’ ‘삼성가노(三姓家奴)’란 말을 썼다. 그것도 더 끔찍하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 말 더는 쓰지 않기를 바란다. 밤잠을 설치며 분을 삭이지 못해 나온 말이겠지만 상대방 인격에 치명타를 가하면서 자신의 도덕적 수준까지 의심케 하는 발언이다. 듣기에 따라서는 이준석은 양(羊)이고 윤석열은 개고기라고 해석될 소지가 있다. 아무리 서운해도 지도자라면 일정 선 이상, 도를 넘어서면 안 된다. 삼성가노 역시 마찬가지다. 나관중의 소설 속에나 머물러 있어야지 실제로 면전에서 할 수 없는 지극히 모욕적인 말이다. 상대 당의 형편없는 인사라 할지라도 “성(姓)을 세 번씩이나 바꾼 종놈”이라 공격하면 가만있겠는가. 당사자뿐만 아니라 그 부친에 대한 경멸까지 포함될 수 있다. 이런 인신공격과 명예훼손을 당한 당사자들은 꿀 먹은 벙어리다. 모욕을 참으면 화병이 되거나 다른 곳으로 폭발할 수 있다. 발언 당사자인 이준석은 본의 아니었음을 정중히 사과하고 하루 빨리 수습해야 한다. 말과 글은 한 번 나가면 다시는 주워 담을 수 없다. ‘욱’하는 이런 성질이 그의 많은 장점을 덮는 치명적 단점으로 작용하고 있는 게 아닐까 걱정스럽다.

윤핵관은 이준석의 동네북이다. 핵관 문제를 최초로 공론화시켰고 또 수시로 두들겼던 이준석으로선 핵관들이 여전히 ‘설친다’는 게 마땅찮을 것이다. 윤핵관 문제는 이 정권과 당을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의 걱정거리 중 하나다. 이번에는 한 술 더 떠서 수도권이나 험지 출마를 요구했다. 양지에서 볕만 쬐지 말고 음지로 나와 고생 좀 해보면 정치 세계의 진면목을 알고 행동도 조신해질 거라는 취지다. 대체로 쉽게 당선된 사람은 정치를 쉽게 한다는 인상을 어렵게 선거를 치른 나 같은 사람은 수없이 받은 바 있다. 뜻은 충분히 알겠지만 이 역시 신중한 발언은 아니다. 더구나 “말뚝만 박으면 당선된다”는 지역은 거의 사라졌다. 대선‧총선‧지선 모두 똘똘 뭉쳐 싸워야 겨우 이길 수 있는 형국이 되었다. 자기 지역에서 열심히 표를 모으면서, 정국 운영에도 적극 참여해야 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숙명이다. 소수 여당으로선 의원 한 사람 한 사람이 소중한 자산이다. 잘 키우고 가꿔야 한다. 흠집 내기가 지나쳐 지역구 주민에게까지 영향을 끼치는 발언은 다음 선거에서 상대 당 경쟁자가 대환영할 일이다.

한 마디 한 마디 사무치는 발언이었지만 그러기에 더욱 지적할 일이 많다. 나이 들수록 말수를 아껴야 하기에 한 가지만 더 지적하고 말련다.

이른바 세대포위론과 서진정책이다. 이준석 선거의 핵심이랄 수 있다. 윤석열 후보가 이준석의 이 전략 때문에 이겼는지, 자칫 질 뻔했는지는 면밀한 분석이 필요하다. 선거가 끝나면 모든 게 끝이 아니라 다음을 위한 시작이어야 하는데 이 당은 선거 결과를 분석‧연구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두루뭉술한 보고서가 전부다. 세대포위론과 서진정책은 신중하고 주도면밀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진정성을 갖고 계속적이어야 하는 것이다. 자칫 해당 지역과 세대의 감정을 거스르면 역효과가 더 클 수 있다. 지난 5년 내내 갈라치기로 국민과 국론을 분열시킨 전 정권식으로 하면 승리는커녕 반발과 저항을 부를 것이다. 우리는 저들과 달리 대통령권 말고는 실제로 가진 게 없다는 점을 되새겨야 한다.

당대표로서의 권위도 인정 못 받고 홀대 받은 점을 생각하면 어찌 잠이 오겠는가. 젊고 원외면서 논리정연하게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려니 당 안팎 기성 정치권이 반발하는 것이다. 뚫고 나가려니 힘이 부친다. 더구나 새 대통령 취임으로 권력의 추가 옮겨졌다. 대통령제에서 집권당 대표는 위치가 애매하다. 이준석 입장에서는 준비 안 된 대통령이 당대표를 무시한다고 생각할 소지가 많다. 그러나 대통령 입장에서는 당대표가 적극 협조해주지 않는다고 볼 소지도 많다. 다투게 된다면 결과는 뻔하다. 대통령은 지도력에 타격을 받고, 이준석은 정치적으로 영원한 이단아가 될 것이다. 대의와 공적 책임감이 뒷받침되지 않는 강경투쟁은 자해행위(自害行爲)로 취급되지 않겠는가. YS나 DJ가 민주주의를 위해 권력의 탄압에 굴하지 않고 싸운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함께하고 같이 가겠다는 각오가 되어 있는가. 자기를 낮추면서 진정으로 다가가 먼저 손 내밀지 않는데 누가 동지가 되겠는가.

끝으로 지나간 추억 한 마디. 천막당사 시절, 2004년 총선 때다. 탄핵 역풍으로 당시 박근혜는 졸지에 당대표가 되어 선거를 이끌었다. 전국 지원 유세가 대표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었다. “매를 더 때려 주십시오, 종아리를 걷겠습니다” 하면서 전국 유세를 다녔다. 자기 탓이 아니지만 매를 맞겠다고 자처했다. 어떤 날은 하루 5개 시도, 20여 곳에서 유세를 하는 강행군을 했다. 점심‧저녁도 거르거나 차안에서 간편식으로 때웠다. 당시 나는 사무총장으로 선거 기간 하루도 빠지지 않고 서울-부산 비행기를 타며 여의도 천막당사에 출근했다. 서울-부산만 두 번 왕복한 날도 있었다. 사실상 내 선거를 포기했다. 박근혜 대표의 헌신적 노력으로 50석 안팎을 예상했던 선거가 121석 당선이라는 기적을 낳았다. 나도 구사일생 살아났다. 박근혜는 이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자랑하지도 않았다. 헌신적 리더십이 국민에게 알게모르게 각인되고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다. 대표는 남보다 두 배 세 배, 정신적 육체적으로 힘든 자리다. 이준석이라고 예외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