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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11-04 아시아경제] [時代를 묻다]한일관계의 새 길, 우리 정치가 밝힐 차례다

과거사 갈등에 발목 잡힌 한일 외교
국내 정치에 휘둘리며 신뢰 흔들려
日은 역사 직시하고 韓과 협력해야
韓도 피해의식 넘어 자신감 가질 때
고대사 공동연구로 이해의 폭 넓히고
국익·미래 위한 새로운 관계 열어야



얼마 전 고베에서 일본 지식인들 앞에 섰다. 이야기의 시작은 1965년 박정희 대통령의 국교 정상화와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이었다. 1965년 고3이던 나는 반대 시위에 나섰고, 1998년에는 야당 의원이었으나 '공동선언'을 반대하지 않았다. 두 지도자가 정치 생명을 걸고 결단을 내린 지 수십 년이 흐른 지금, 한일 관계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

나는 그 자리에서 한국과 일본이 각각 고쳐야 할 세 가지를 제안했다. 강연 뒤 한 시간이 넘도록 진지한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하지만 남의 나라 땅이었기에 차마 다 털어놓지 못한 이야기가 있다. 바로 우리 정치가 가진 부끄러운 민낯이다. 오늘은 한국의 독자들 앞에서 그 남은 고백까지 보태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지키려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대한민국의 존엄과 국익, 그리고 미래다. 달라진 것은 우리의 국력이며, 그에 따라 일본을 대하는 방식도 새로워져야 한다.

지리적 위치는 바꿀 수 없다. 한국과 일본은 좋든 싫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양국의 경제와 안보는 이미 생존과 번영의 수준에서 깊이 얽혀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수틀리면 과거사와 감정에 발목이 잡혀 대치와 경색을 되풀이한다. 이제 한일 관계는 일본의 변화만 기다리는 수동적 자세에서 벗어나야 한다. 외교가 감정적 선동의 도구로 전락할 때 국익은 실종되고, 우리의 미래는 상대의 손에 조종될 뿐이다. 이제 이 무책임한 악순환을 단호히 끊어내야 한다.

일본이 고쳐야 할 세 가지

첫째, 한국을 미국이라는 렌즈를 통해서만 바라보는 관성에서 벗어나야 한다. 20여년 전 일본 외무성 초청으로 방문했을 때 나는 한국이 마치 일본 TV 화면 구석의 '일기예보' 같은 존재라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의 시선이 태평양 건너 미국에 집중된 사이, 가장 가까운 이웃을 전략적 사각지대에 두었던 것이다. 지금도 그 시각은 여전한 것 같다. 아시아의 중요성을 알고 안정과 번영을 원한다면 시선을 아시아로 돌려야 한다. 또 진정한 동반자는 바로 곁에서 찾아야 한다. 그것이 지혜요 용기다.

둘째, 한국을 과거사 관리 대상이 아닌 미래를 함께 설계할 동반자로 대해야 한다. 정상 간의 우호적 몸짓을 넘어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제도로 협력을 뿌리내려야 한다. 북한의 핵 위협, 중국의 부상, 대만해협의 긴장 속에서 일본이 가장 긴밀히 협력해야 할 이웃은 한국이다. 미·일 안보만으로 이 거대한 위기를 모두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셋째, 역사 문제에 발목 잡히지 말아야 한다. 한국이 "이제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일본이 먼저 과거를 솔직히 성찰한다면, 이는 무엇보다 일본 자신을 위한 길이다.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과거의 잘못을 겸허히 돌아볼 때 비로소 아시아 각국의 진정한 신뢰와 존경을 얻게 될 것이다. 회피하거나 강변한다면 지도국가의 자격이 없다.

한국이 고쳐야 할 세 가지

일본에 요구한 만큼, 우리 자신에게도 아픈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첫째, 언제까지 과거사를 모든 외교의 출발점이자 전제조건으로 삼을 것인가. 피해자의 고통과 식민지 지배의 수모를 잊자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이 변하지 않아 우리도 변할 수 없다는 논리는 우리의 미래를 일본에 내맡기자는 것과 다름없다. 과거사는 원칙과 존엄의 영역이다. 이를 모든 외교 현안의 맨 앞에 세워 스스로 손발을 묶는 일은 멈춰야 한다. 나라를 위해 피 흘린 선열들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훨씬 당당해져야 한다. '억지 사과' 받으려 국력을 낭비할 필요가 없다.

둘째, 외교를 국내 정치의 인질로 삼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 우리는 일본을 믿을 수 없다고 하지만, 일본의 눈에 한국 역시 예측하기 어려운 상대다. 문재인 정부 시절만 보더라도 어렵게 합의한 위안부 합의와 화해치유재단이 해산되었고, 일본의 수출규제에 맞서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통보까지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죽창가' 같은 정서적 선동이 정치를 덮쳤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야당 대표 시절 후쿠시마 처리수를 '핵폐수'라 부르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집권 이후 '실용외교'로 방향을 틀고 양국 정상이 고향을 방문하거나 조세이 탄광 희생자 유해 확인 협력을 추진하는 등 진전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일본은 과거의 발언들을 기억하며 이러한 행보가 진심인지, 정치 지형에 따라 다시 뒤집힐지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 정치인의 선동적 언사로 무너진 국익과 신뢰를 다시 세우는 데는 그 몇 배의 노력이 든다.

셋째, 피해의식을 넘어 실력과 자신감으로 일본을 대해야 한다. 한국은 더 이상 1965년의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반도체, 조선, 방위산업, 문화산업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췄으며 1인당 국내총생산(GDP)에서도 일본과 어깨를 견주거나 앞서고 있다. 배울 것은 배우고, 경쟁할 것은 경쟁하며, 협력할 것은 당당히 협력하면 된다.

이미 젊은 세대는 이러한 자신감을 행동으로 보여주고 있다. 지난해 일본을 찾은 한국인은 900만명을 넘어섰고, 일본인 여행객 역시 한국을 가장 많이 찾는다. 이들은 역사를 몰라서 오가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갈등이 오늘의 만남과 미래를 지배하도록 방치하지 않을 뿐이다. 정치권이 과거의 감정으로 지지층을 결집하려 하는 동안, 젊은이들은 이미 국경을 넘나들며 미래를 열어가고 있다.

'한일 고대사 공동연구 기금'을 설립하자

한국은 북·중·러의 안보 위협에 직면해 있고, 미국은 국익 중심의 거래형 외교로 기울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과는 시비를 벌이며, 중국에는 아무 말 못하고, 북한에는 눈치만 본다면 한국은 어떻게 되겠는가. 미국이 이런 나라를 얼마나 믿을까. 사정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흔들리면 일본 역시 막대한 안보 비용을 홀로 감당해야 한다. 두 나라는 전략적 운명을 공유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부터 시작해야 하는가. 나는 '한일 고대사 공동연구 기금' 설립을 제안한다.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고대부터 바다를 통해 문물과 문화를 나누었다. 민감한 쟁점도 있다. 그럴수록 정치적 간섭에서 자유로운 학술 연구가 필요하다. 양국 연구 토대도 두터워질 것이다. 국가의 지리적 위치는 운명이지만, 국가의 미래까지 운명에 맡길 수는 없다. 우리가 먼저 바뀌자는 것은 일본에 양보하자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자는 주권국가의 당당한 선언이다.

어두운 밤 거친 바다를 건널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길잡이는 가장 가까운 등대다. 그 등대에 먼저 불을 밝히는 일은 우리의 몫이다. 이제 우리 정치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언제까지 일본을 비판하는 데 골몰하고, 일본을 넘어서는 미래를 설계하는 데는 눈을 감을 것인가?"

김형오 전 국회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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