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김형오의 말말말

나로호가 우주로!!(2)


쓰는 김에 마저 써야겠네요.

99년 12월말 이렇게 예산을 통과 시켰습니다. 해가 바뀌고 21세기를 여는 신년계획으로 가득찬 어느 저녁 뉴스는 저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한국, 드디어 우주시대를 연다"라는 헤드라인뉴스였습니다. 김대중대통령의 특별지시로 우리나라의 우주개척이 시작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뉴스를 보던 저의 흥분을 미루어 짐작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뉴스가 끝나고 해설마저 끝나도 어느 누구에게서도 "이 예산을 마련한 사람은 김형오다"라는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다른방송사에서도 역시나 제 이름이 등장하지는 않았습니다. 방송뉴스니까 상세하게 다루기 힘들었겠지라며 애써 스스로를 위로한 뒤 아침 눈 뜨자마자 조간신문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정치인이 신문 방송에 이름 한 줄 나오는 것을 얼마나 좋아합니까?  더구나 좋은 일, 경사스러운 일인데 오죽했겠습니까?  그러나 눈이 아프도록 신문을 훑어봤지만 제 이름 석자는 그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았습니다.

우주시대(?) 개척의 정치적 결정은 김대중 대통령이 내렸더라도, 만약 제가 예산을 확보하지 않았다면 그 양상은 사뭇 달랐을 것입니다. 언론의 보도 태도 역시 큰 차이를 보였겠지요. 

당시 저는 매우 서글펐습니다. 나아가 과기부(과학기술부, 현재 교과부로 통합) 관리들에게는 배신감 마저 들더군요.  "야당인 내가 국익을 위해 한 일이 이렇게 무참하게 무시당하다니"라는 생각에서부터 " 내가 야당이라고 이렇게 푸대접하는거야?" 라는 섭섭함에 이르기까지 온갖 생각이 다 들더군요.
 
당장 과기부 관리들에게 저의 호통이 떨어졌습니다. 정말 서운했으니까요.  제 호통에 과기부 간부들이 차례로 제게 사과를 했습니다. 미래지향적 정책추진에 대한 반대급부가 고작 이런 것이로구나 라는 자괴감이 들 때마다 순간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러나 엎질러진 물을  주워담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지요. 더 이상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과기부 간부들에게 화가 덜 풀린 저는 그 해 국정감사 때 한국이 우주발사장을 건립하기에는 지리적,환경적으로 부적절하다는 문제점을 제기하는등 강력한 반대론을 펼쳤습니다.  저의 돌변한 태도에 당시 국감장의 과기부 간부들이 당황해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결국 저는 과기부 간부들의 또 한번의 사과와 진정성있는 추진을 약속받고 동의해주었습니다. 저는 당시 야당이었지만 국익을 위한 일에는 앞장섰다고 자부합니다. 야당생활 10년 동안 반대할 것은 분명히 반대했지만 도와줄 일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적극적으로 도왔습니다.

방폐장을 건설하면 핵물질에 오염된다며 시민단체가 주민들을 선동하고  여당정치인들마저 앞장서서 반대할 때, 야당인 저는 정부의 방폐장 건설을 적극 지지했습니다. 덕분에 제 홈페이지가  며칠간 다운되고 팩스와 전화등으로 격렬한 항의를 받느라 며칠간 전혀 일을 하지 못할 때도 있었습니다.

 DJ정부의 IMF극복에 있어 IT산업이 기여한 바는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 때 저는 해당상임위인 과기정(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위원장으로서 IMF극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돕고 어떤면에서는 정부보다 앞장서서 IT산업을 일으키도록 주도적 역할을 했다고 자부합니다. 그밖에도 할 말은  참 많습니다만 자랑이 지나치면 교만으로 비쳐질 것 같아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느닷없는 제 자랑같은 이야기를 꺼낸 이유는 오늘의 야당을 보면서 격세지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나로호가 우주로 가는 시대에 우리 정치의 비약을 생각해봅니다. 미래로 나아가야 하는 우리 정치가 과거로 흘러가서는 안됩니다.
 
"나로호여 힘차게 날아다오.  우주시대를 향한 국민의 염원을 안고!! "



*나로호 관련한 또다른 애기는 내 책 "길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367-375쪽을 참고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