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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주는 페이스메이커였다’

국어사전을 뒤적였다. <페이스 메이커> 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중거리 이상의 달리기 경주나 자전거 경기 따위에서, 기준이 되는 속도를 만드는 선수!’


TV속에서 한 남자가 울고 있었다.

‘아름다운 사람’ 하나가 만감이 교차하는 표정으로 눈물을 흘리며, 터지는 카메라 플래시 앞에 외로이 서있었다.


그의 나이 마흔, 그의 이름 <이봉주>였다.



- 이봉주와의 우연한 만남 


내가 훈련중인 이봉주를 우연히 만난 곳은 서울 강동구 일자산(一字山)의 호젓한 산책로였다. 일자산은 평평한 산길이 정상까지 이어지는 곳이어서, 산악자전거(MTB) 동호인들이 밤낮으로 즐겨찾는 산.


온 산이 단풍으로 물든 가을이었다.


▲ 나무가 단풍들면, 울긋불긋 예쁘게 옷을 갈아입는다. 사람이 단풍들면 어떻게 변할까? 정말 아름답지 않을까? 


토요일 오전, 일자산 산책로를 걸어 오르던 나는 등 뒤에서 거센 바람소리가 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건장한 남자 3~4명이 바람처럼 내 곁을 스쳐지나갔다. 그들이 산 정상쪽으로 번개처럼 달려간 뒤, 10초 쯤 흘렀을까.....


진한 갈색 선글라스를 낀 한 남자가 앞서간 남자들을 따라잡으려는 듯 바람처럼 달려오고 있었다.


마라토너 <이봉주>였다.


그가 이봉주라는 걸 알아차리는 순간, 이봉주는 점점 나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와 나의 거리는 불과 10여 미터.

1~2초만 지체하면, 이봉주는 내 옆을 스쳐 일자산 정상쪽으로 사라질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아~~ 어떻게 하지???”  


짧지만 치열했던 고민 끝에, 난 그와 번갯불에 콩 구워먹듯 대화를 나눴다.


- 나 :  이봉주 선수, 파이팅!!

= 이봉주 : (모기같은 목소리로...) 네,,,감샤합니다아앙~~~


이봉주는 쏜살처럼 내 앞을 달려가면서도 내게 감사인사를 잊지 않았다. (친절한 봉주씨! )


내 앞에서 걷던 몇 사람이 나의 ‘파이팅’ 구호와 이봉주 선수의 대답을 듣고 너나 할 것 없이 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연호했다.


“ 이봉주!  이봉주!  이봉주! ..... ”


내가 그렇게 이봉주를 만난 게 5년 전의 일이다.



- 이봉주와 ‘자전거 도둑‘
  &  '페이스 메이커'


그 때 그와 만난 뒤,  서른 넷 나이로 우리 곁을 떠난 소설가 김소진의 소설집 <자전거 도둑>이 떠올랐다. 그 가운데 특히 감명깊었던 <마라토너>라는 단편소설의 내용이 새록새록 되살아났다.


한 노장 마라토너가 젊고 유망한 선수의 기록유지 보조요원, 즉 페이스메이커로 바람잡이 역할을 하는 모습을 잔잔하게 그려내는 내용이었다. 아마 일자산에서 이봉주 선수보다 10 여초 앞서 뛰어간 3~4명의 건장한 청년들이 바로 이봉주의 페이스메이커들이었을 것이다. (물론 아닐 수도 있다...)

 




- 이봉주는 대한민국의 페이스 메이커(Pace Maker)


이봉주의 은퇴 기자회견을 지켜보며, 난 이봉주가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페이스메이커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봉주가 먼저 치고 나가면, 우리 국민들은 그의 열정과 땀방울에 감동받아 그를 따라 달려갔던 것은 아닐까?


우리 국민은 10년 넘게 이봉주에게서 매우 많은 것을 받으며 살아왔다. 이봉주에게서 우리가 받은 소중한 선물은 대략 이런 것들이 아닐까...


-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마라토너로서 우리들에게 자부심을 심어줬다.

-41번 풀코스를 완주하는 끝없는 노력으로 국민들에게 오뚝이 정신을 보여주었다.

-결코 자만하지 않는 태도로 많은 이들을 감동시켰다.


이봉주의 반쯤 감긴 눈꺼풀과 턱수염은 그의 헤어밴드 중앙에 찍힌 태극마크 보다도 더 대한민국 전체를 즐겁게 했다. (안 그런가?? )


봉달이 이봉주 때문에 우리는 알게 모르게 즐겁고 행복하고 유쾌하지 않았을까?  우리 대한민국은 이봉주 때문에 상당 부분 페이스 조절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이만 하면, 그를 대한민국의  ‘페이스 메이커’였다고 불러도 되지 않을까?



- '행복하라, 봉달이~~ '


그랬다. 그가 은퇴를 했다. 봉달이가 마라톤을 그만 둔 것이다.


그의 눈물을 보며, 난 노래 하나가 떠올랐다.  허스키 창법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가수 서유석의 노래. 

난 노래를 잘 못하지만, 봉달이 이봉주를 떠올리며 정성껏 불러보려 한다. 그 동안 나를 기쁘게 하고 행복하게 했던 이봉주에게 힘 내라고, 잘 살라고, 앞으로도 내내 건강하라고 노래라도 하나 들려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내 노래를 듣고 이봉주가 조금이라도 기쁘고 행복해졌으면 좋겠다.


“ 오오오오오~~  아름다운 나의 사람아~


▶▶ 노래듣기 (다음 블로그) - 서유석 <아름다운 사람>
http://blog.daum.net/ubsum/202?srchid=BR1http%3A%2F%2Fblog.daum.net%2Fubsum%2F202
                                               


                          ▲  " 봉달이, 안녕~~~ 행복해~~ "          (사진 - 삼성전자 육상단)
                                                                                                     



                                                                                                                  - Posted by 백가이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