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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간에 개막전은 설레입니다. 여러 달 동안 경기를 볼 수 없었는데다 새로운 기대와 희망을 품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매 시즌 개막전 때마다 신들린 듯 팀을 이끌어주는 영웅들이 있었습니다. 그 선수들을 일일이 열거하기는 어렵습니다만, 개막전에 맹활약을 펼쳤던 인상적인 선수들을 모아봤습니다.




2000년 현대 퀸란 vs LG 테이텀

3루수 수비가 발군이었던 현대 용병 퀸란은 원래 방망이에서는 높은 평가를 받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타율이 높은 선수는 아니었죠. 그러나 한 방에 있어서는 시즌의 처음과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했습니다. 그는 개막전에서 1회 3점포, 2회 1점포, 2점포를 작렬하며 개막전 스타가무엇인지 그대로 보여줬죠. 또한 한국시리즈 MVP에 뽑히며 우승을 이끌었습니다. 더구나 현대-한화(대전)의 개막전은 양팀 스코어 17:10의 난타전이었는데 무려 14개의 홈런이 쏟아지며 역대 한 경기 최다홈런(종전 11개) 신기록을 세웠습니다.

시즌 중에 퇴출되었지만 테이텀 역시 퀸란 못지 않게 개막전에서 맹활약을 펼쳤습니다. 사직에서 펼쳐진 롯데와의 개막 1차전에서 선제결승홈런을 포함해 전타석 출루에 3타수 3안타 2홈런 4타점의 괴력을 선보였죠. 테이텀의 맹활약에 힘입어 엘지는 12:5로 낙승을 거뒀습니다.

개막 2차전에서 13k 완봉승을 거둔 김진웅과 최다안타 신기록을 수립한 장종훈도 잘했지만 인상적인 면에 있어서는 두 용병 선수를 빼놓을 수 없습니다.


2001년 삼성 마르티네스-이승엽 vs 두산 장원진-우즈

개막 1차전에서 이승엽과 마르티네스는 각각 2점홈런, 1점홈런을 터뜨리며 한화를 4:3으로 제압했는데, 이들 콤비의 진면목은 2차전서도 드러났습니다. 1회부터 만루홈런으로 시작한 마르티네스는 4회에도 3점홈런을 작렬하며 4타수 2안타 1홈런을 기록한 이승엽과 함께 12:3의 대승을 이끌었습니다. 이승엽-마르티네스 홈런 커플은 훗날 대기록 수립의 주인공으로 우뚝 서게 되었죠. 역대 최초로 4연속타자 홈런이라는 기록이 수립되었는데 그 주인공은 이승엽, 마르티네스, 마해영, 바에르가까지 4명이었습니다.

2번 장원진 - 3번 우즈도 대단했습니다. 해태와 잠실벌에서 펼쳐진 개막 1차전에서 우즈는 7회에 병살타를 기록하며 역전 기회를 날려버렸지만, 9회말에 끝내기 2점홈런을 작렬하여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어냈습니다. 다음 날에도 우즈는 5타수 3안타 2타점을 과시하며 역대 최고 용병이라는 찬사가 허명이 아님을 입증했습니다. 그 밑바탕에는 장원진의 활약이 있었죠. 1차전에서 2:3으로 뒤진 상황에서 7회에 동점 적시타를 날려 팀을 살려내며 5타수 2안타 2타점, 다음 경기에서도 5타수 4안타 3득점을 기록하여 테이블 세터로서 더 없는 플레이를 펼쳤습니다.






2002년 한화 송진우 vs 기아 키퍼

송진우와 키퍼는 2002년에 다승왕 경쟁을 펼쳤던 사이입니다. 이 두 선수는 개막 3연전에서 나란히 인상적인 투구로 팬들을 기쁘게 했죠.

특히 2000~2001년 모두 개막전을 두산에게 내줬던 기아(전 해태)는 2002년만큼은 단단히 각오를 하고 나왔습니다. 결국 두산과의 3연전을 모두 싹쓸이하며 지난 앙금을 씻어내는대 성공했죠. 그 중심에는 키퍼가 있었습니다. 야구에서는 다득점이 펼쳐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1:0의 투수전도 묘미가 있습니다. 개막 2차전에 선발투수였던 키퍼는 1회말에 정수근-장원진에게 연속타자 안타를 허용하며 위기를 맞았으나 이후 22타자 연속 범타를 이끌어내어 8이닝 3피안타 7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영원한 회장님 송진우는 키퍼보다 더 빛나는 투구를 펼쳤습니다. 8회말 2사 1루 상황에서 최기문에게 안타를 맞기 전까지 노히트 노런을 기록하며 롯데 타선을 봉쇄했습니다. 결국 2피안타 완봉승을 기록하여 프로통산 7번째 개막전 완봉승, 개인적으로는 통산 10번째 완봉승을 거두었습니다. 게다가 이날 승리로 당시 선동열이 세운 146에 단 1승차로 다가가게 되었습니다.


2003년 기아 리오스-키퍼 vs 삼성 이승엽-마해영

2002시즌에도 개막 3연전을 싹쓸이한 기아는 2003년에도 개막 2연전을 모두 거머쥐었습니다. 그 1등공신은 바로 용병투수들이었죠. 리오스가 개막전에서 7이닝 8피안타 1실점으로 2003시즌 마수걸이 승리를 올린 뒤, 키퍼는 2003년에 이어서 또 다시 개막 2차전에서 6 2/3이닝의 호투를 펼쳐 연승행진의 주역이 되었습니다. 역시 용병투수가 맹활약을 하면 그만큼 경기가 쉽게 풀리는가 봅니다.

기아가 용병투수의 합작이 돋보였다면, 삼성은 토종 강타자 듀오의 방망이가 빛났습니다. 이승엽과 마해영은 각각 개막 1,2차전에서 닮은 꼴 활약을 펼쳤습니다. 개막전 첫날 이승엽은 절친한 친구인 박명환을 상대로 1회, 3회에 각각 연타석 투런포를 앞세워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면 다음 날에는 마해영이 구자운을 상대로 2회, 4회에 연타석 홈런을 날리며 전 시즌 한국시리즈 MVP의 위용을 자랑했습니다. 특히 개막 2차전에서 마해영은 4타수 4안타 2홈런 4타점의 활약으로 통산 10번째 2000루타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습니다.






2004년 삼성 오리어리 vs 한화 송진우

기아-두산의 개막 1~2차전에 등판한 투수들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모두 기아를 거쳐 두산 유니폼을 입은 경험이 있다는 것이죠. 개막 1차전은 리오스-키퍼의 대결이었고, 2차전에는 두산에서 레스가 등판했습니다. 기아(해태)에서 두산으로 옮겨간 순서는 레스, 키퍼, 리오스가 되겠군요.

2004년 개막전에 빛난 선수는 송진우가 있습니다. 전년도 한국시리즈 MVP인 현대 정민태와 맞대결을 펼친 그는 7이닝 무실점의 역투를 펼치며 4:1로 이겼습니다. 2002년 개막전을 연상시킬 만큼 호투였습니다. 4회까지 노히트 노런이었는데다 7회말까지 단 2안타만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불혹에 가까운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역투를 펼쳤다는 점이 놀랍습니다. 그는 다음 시즌(2005년)에도 개막전 선발투수로 승리투수가 됐습니다.

또 다른 개막전의 영웅은 삼성의 용병 오리어리였습니다. 개막전에서 3회에 좌전안타를 날리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한데 이어 3:4로 뒤지던 7회에 동점홈런을 터뜨리며 제 몫을 해냈습니다. 다음 날 경기에서도 비록 팀은 패했지만 연타석 홈런을 포함해 3타점을 책임지며 개막 2연전에서만 3홈런을 폭발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활약은 오래 가지 못한 채, 결국 퇴출되고 말았죠.


2005년 삼성 심정수 vs SK 김재현

2004시즌을 마친 뒤 최고의 이슈는 삼성의 100억 FA선수 영입(심정수, 박진만)이었습니다. 2005년 개막전부터 심정수의 위력은 여지 없이 증명되었습니다. 이미 개막 1차전에서 3타수 3안타 1타점으로 방망이 솜씨를 가다듬었던 그는 개막 2차전 1회에도 그랜드슬램을 기록하며 거포의 위력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각인시켰습니다. 개막 2연전 동안 심정수가 기록한 8연타석 출루(5타수 5안타 5타점)는 신기록이었습니다.

심정수와 동갑내기이자 FA 자격으로 이적한 김재현은 새로운 팬들에게 맹타로서 첫 인사를 보냈습니다. 1차전에서 SK는 현대를 상대로 비록 5:5로 비겼지만 1홈런을 비롯해 6타수 2안타 3타점을 폭발한데다 2차전에서도 2:2로 동점이던 상황에서 승부의 균형을 깨는 우전적시타를 터뜨려 결승점을 만들어냈습니다. 개막 2연전에서 10타수 4안타 4타점을 작렬한 김재현은 이적 후에도 역시 '클러치히터', '캐넌히터'의 면모를 유감없이 드러냈습니다. 94년 우승을 경험했던 그는 각서파문 끝에 팀을 옮기고 2007년 한국시리즈 MVP에 오르기도 했죠.






2006년 SK 시오타니 vs 삼성 권오준-오승환

시범경기부터 이목을 끌었던 일본인 용병 시오타니는 불행히도 KIA전에서 장문석의 투구에 맞아 왼손 골절상을 입는 바람에 퇴출되고 말았죠. 그러나 개막전에서 보여준 그의 맹활약은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문학에서 펼쳐진 현대와의 개막전에서 4회말에 선제 2점홈런으로 결승타를 기록한 데 이어 다음 날 2차전에는 끝내기홈런을 포함해 무려 5타수 3안타 4타점을 쏟아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죠.

2006년은 KBO 역사상 최다홀드(32홀드), 최다세이브(47세이브) 신기록이 수립된 시즌입니다. 1차전에서 패한 삼성은 5:5로 팽팽했던 6회말에 선두타자 박한이의 결승홈런이 터지자 권오준-오승환이 마운드에 올라 롯데 타선을 제압하고 시즌 첫 승을 생겼습니다. 권오준-오승환의 철벽계투 콤비는 2006년 삼성의 아이콘이었을 뿐만 아니라 '삼성은 6회까지만 야구하면 된다'는 공식을 만든 장본인이었는데, 그 효시가 개막 2차전이었습니다.


2007년 롯데 손민한 vs KIA 장성호

2001이후로 당시까지 6년간 가을 잔치에 나가지 못한 설움을 극복하는데 있어서 선봉이 서겠다고 공언했던 손민한은 현대를 상대로 한 개막전부터 롯데의 상승세를 이끌었습니다. 8이닝 무실점의 빼어난 투구를 펼친 그는 팀의 주장이자 에이스로서의 자존심도 세웠습니다. 첫 단추를 잘 풀어낸 롯데는 장원준, 이상목이 잇달아 선발승을 챙기며 현대와의 개막 3연전을 싹쓸이하는 돌풍을 일으켰습니다.

롯데에 손민한이 있었다면, 기아에는 장성호가 있었습니다. 1차전에서 LG 박명환의 호투에 힘입어 1차전을 내준 기아는 장성호를 앞세워 2,3차전을 내리 이겼습니다. 2차전 1:0으로 앞선 3회에 2점홈런을 작렬하며 승기를 잡았고, 3차전에서도 2:1로 박빙이던 7회에 또 한 번 2점포를 가동하여 승리를 이끌었습니다.






2008년 롯데 이대호 vs 삼성 철벽계투

이대호의 방망이가 롯데의 개막 2연승을 이끌었습니다. 1차전에서 5타수 4안타 1타점을 기록하며 11:1의 대승의 견인차 역할을 했고, 2차전에서는 1회에 선제적시타를 날린 뒤 3회에 만루홈런을 터뜨리며 이틀 동안 무려 9타수 7안타 6타점의 맹타를 휘둘렀습니다. 2007년에도 3연승으로 개막전을 시작한 롯데는 2008년에도 2연승으로 쾌조의 출발을 보였는데, 투타에 손민한, 이대호라는 확실한 선수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습니다.

반면에 롯데와 함께 2연승의 주인공이 된 삼성은 철벽계투진의 활약이 컸습니다. 권혁, 안지만, 오승환이 이틀 연속 호투쇼를 펼쳤던 것이죠. 1차전에서는 3 1/3이닝 무실점, 2차전에서는 3이닝 무실점을 기록했습니다. 삼성의 지키는 야구는 선동열 감독이 삼성에 취임한 이후 마무리 오승환을 중심으로 권혁, 안지만, 정현욱, 권오준이 나누어맡아 이뤄온 팀 컬러입니다.


2009년 두산 김동주 vs 롯데 김주찬

기아와의 잠실 개막전을 싹쓸이한 두산의 1등 공신은 바로 김동주였습니다. 양 팀 에이스 김선우와 윤석민은 4회까지 1:1의 팽팽한 승부를 이어갔습니다. 먼저 무너진 쪽은 기아였습니다. 선발 윤석민이 5회에 2타자 연속 삼진을 잡아내며 이닝을 마무리하는가 싶었는데 이종욱, 오재원에게 연속안타, 고영민에게 4구를 허용했죠. 2사 만루에 등장한 김동주가 싹쓸이 2루타를 터뜨리며 승부를 뒤바꿔놨습니다. 이후 김현수, 왓슨의 적시타마저 연달아 터진 바람에 승부는 거기서 끝났죠. 2차전에서도 김동주는 2:1로 간신히 앞선 8회에 승부에 쐐기를 박는 1타점 2루타를 날리어 간판타자로서 자존심을 세웠습니다.

개막 2연전 1승 1패를 거둔 롯데의 김주찬은 승패에 관계없이 독야청청했습니다. 1차전에 1번타자로 출전한 그는 투수 앞 안타를 터뜨린 뒤 조성환의 적시타 때 홈을 밟아 선취점을 올렸고, 7회에는 역전 결승 2루타를 날리어 3:2로 짜릿한 승리의 영웅으로 우뚝 섰습니다. 다음 2차전에서 그의 소속팀 롯데는 1:10으로 대패를 당했지만 김주찬은 첫 타석 안타를 포함하여 4타수 2안타를 날리어 팀의 유일한 득점을 기록했습니다.






더 많은 개막전 야구 영웅들이 있었지만 모두 담아내지 못한 점은 아쉽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도 야구가 계속되는 이상 더 많은 개막전 영웅이 탄생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더욱 기대되는 2010년 프로야구. 과연 어느 팀이 마지막에 웃게 될까요?

 

(사진 : 스포츠서울)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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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펨께 2010.03.28 18: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좋은 정보 잘 보고 갑니다.
    야구를 구경한지도 한참이나 되였네요.

  2. BlogIcon 악랄가츠 2010.03.29 08:38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산전에 소녀시대가 시구하더니,
    엄청난 경기를 보여주며 이겨버렸네요! ㄷㄷㄷㄷㄷㄷㄷ
    소녀시대가 Oh를 부르며 응원하였으니...
    이길 수 밖에 없는 게임이었네요! ㅎㅎㅎㅎ


대한국인(大韓國人)  안중근!

의사 안중근의 유해는 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뒤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발견되지 않았다.

그를 그리워하며, 그의 흔적을 찾아나섰던 한국인 사업가 이진학씨는 마침내 2006년 안중근 의사가 이토히로부미를 저격했던 하얼빈에 그의 동상을 세우게 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중국 정부의 철수요청으로 11일만에 철거되고,

그리고 3년 뒤인 2009년 9월. 

국권이 회복되거든 고국으로 보내달라던 안중근 의사의 유언은 아직 지켜지지 못한채
그의 동상만이 덩그러니 인천항에 도착했다.

하지만 학술적 검증이 이루어지지 않아 공공전시에 부적합하다는 국가보훈처의 입장 때문에
국회 경내에 임시 설치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동상의 얼굴이 안중근 의사의 사진과 닮지 않았다는 이유?!)

그리고 50일 뒤, 고국에서마저 푸대접 받던 안중근 의사의 동상은 마침내 안식처를 찾아 부천으로 떠나갔다. 

그가 떠나던 날의 아쉬운 모습을 담아봤다.




- 50일간 국회 헌정 기념관 앞에 설치되어 있던 안중근 동상

- 동상 이전 작업을 위해 크기를 측정하고 있습니다.

- 동상을 옮기는 데 필요한 작업 도구들

- 누군가 동상을 닦고 있습니다. 떠나보내는 아쉬운 마음 때문일까요?
칫솔을 사용해 구석구석 닦고 계십니다.

- 동상을 실어 나를 차량 겉면에 이렇게 현수막도 설치합니다.

- 동상을 들어 올릴 크레인이 도착했습니다.

- 동상을 들어 올릴 준비를 마치고
- 동상이 들어 올려집니다.
- 바닥에 눕혀진 동상.
- 동상에도 잘 나타난 안중근 의사의 왼손 약지.

- 동상을 고정하고, 태극기로 덮습니다.

- 태극기 위에 부직포로 다시 한번 감싸고, 흐트러지지 않도록 랩으로 포장합니다.

- 동상을 고정할 부목을 설치합니다.

- 나무 상자 위에는 무궁화 무늬의 현수막을 덮습니다.

- 지게차로 동상이 들어 있는 상자를 이동 차량에 옮기고 있습니다.

- 국회 헌정기념관을 빠져나가는 차량의 뒷모습.

- 안중근 동상은 사라지고 울타리만 남았네요.

50일이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떠나간 빈자리가 참 아쉽습니다.


* 관련 포스팅
안중근 의사 - 동상은 한국에, 유해는 공사장에?
Posted by 비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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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BlogIcon 칸타타~ 2009.10.22 19:4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그저 안타깝다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네요.

  2. BlogIcon Mr.번뜩맨 2009.10.22 21: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흠....정말 안타깝네요.. 참 많이 반성해야할 것 같습니다.

    • BlogIcon 맹태 2009.10.23 07: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중근 의사님께 참 부끄럽고 창피한 후손이 된 것 같습니다. 어서 유해도 발굴하여 송환해야 할텐데요.

      혹시 유해 발굴 되더라도..사진의 골격과 맞지 않다고 하지는 않겠죠??

  3. 침팬지 2009.10.22 22:5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세상에 이런 일이....아까 보니 뉴스에서도 안중근 의사 이야기 나오던데...쩝

  4. 소나기 2009.10.23 09:23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민간에서 만들면 안되고, 공공기관에서 만들면 된다는 식의 <관존민비> 태도부터 뜯어고쳐야 할 듯...
    하는 일도 별로 없이 철밥통 끼고 앉아 논다는 말 듣지 않으려면 잘 하시오, 제발...국민들한테 사랑받는 국민의 진정한 도우미가 되시오...

    • BlogIcon 맹태 2009.10.23 11:0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민간에서 만들었지만, 처음에는 고건 전총리도 방문했고 반응이 좋았다는 뉴스기사도 있더라구요..

      '하는 일도 별로 없이 철밥통 끼고 앉아 논다'는 말씀은 조금 과하신것 같고, 국가보훈처에서도 무작정 반대한 것이 아니겠죠. 정말 그랬다면 그냥 효창공원에 설치했겠지만, 국가보훈처에서도 이 건에 대해서 열심히 업무를 진행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가 대다수가 이해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공무원=철밥통' 이라고 결론 내리시는 것은 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5. 촌철살인 2009.10.23 10:07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아마 보훈처도 안중근 의사의 업적을 폄하하거나
    소홀히 할려고 한 것은 아니었을 거라고는 생각하는데...

    온몸을 다바쳐 조국을 구한 그가
    100년만에 온 고국에서
    홀대 받는 느낌들어 ...
    왠지 씁쓸한 기분이 드네요...

    • BlogIcon 맹태 2009.10.23 10: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동상 이전 작업을 지켜보면서 - 동상의 이동을 위해 목 부위에 줄을 걸때나, 나무 상자에 집어 넣을때 기분이 좀 씁쓸하더라구요.

      이제 안중근 동상은 부천시에서 잘 관리해 줄 터이니, 이제 유해를 빨리 찾는 것이 시급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6. 대한제국 2009.10.23 14:45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공무원=철밥통 이라기보다는 공무원=기계 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겠지요, 공무원 10년이면 이미 창의적이고 주체적인 생각을 할수 없게 되어버리니까요

    • BlogIcon 맹태 2009.10.23 16: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안중근 의사의 동상에 대한 포스팅이었는데, 공무원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루스벨트는 "인생이 주는 최고의 상은 가치 있는 일에 열심히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어떤 자리에서 어떤 업무를 하던지 능동적으로 최선을 다 한다면 창의적일 수 있겠지요? ^^

      감사합니다~

  7. 촌철살인 2009.10.23 18:42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대한제국님... 공무원에 대한 안좋은 추억이 많은신가 보네요 ~...

    • BlogIcon 맹태 2009.10.23 19:2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공무원만의 이야기는 아니죠.
      누구라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회가 꿈을 대신하는 순간부터 우리는 늙기 시작한다"
      - 지미 카터

  8. BlogIcon 탐진강 2009.10.23 22:5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중근 의사와 같은 선열들이 존중받는 나라가 되어야 하는데요.
    이상하게 친일파들이 득세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9. 안중근의사동상이 왜 푸대접 받냐구요? 2009.10.24 03: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바로... 김혐오 같은 사람들 때문입니다!

    • BlogIcon 맹태 2009.10.24 11:0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김혐오는 누구신가요?
      제가 찾아가서 혼내주도록 하겠습니다.

      국회의장님 성함은 김'형'오입니다.
      오해 없으시길 바랍니다.

  10. 안중근의사동상이 왜 푸대접 받냐구요? 2 2009.10.24 16:20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안창호"씨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는데 뭐 그릴 놀랄 일이 아니겠지요.

    • BlogIcon 맹태 2009.10.24 21:5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직접적으로 그 둘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파악하기 어렵군요.

      좀 더 논리적인 접근이 필요하실것 같습니다.

  11. 지금도 왜종시대 2009.10.24 16:3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왜종 흉노가 자리잡고 있는 대한민국 현실입니다.
    빨리 왜놈 종자를 몰아내고 안중근 의사가 대접받는시대가 와야 합니다.

    • BlogIcon 맹태 2009.10.24 22:1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대한민국 헌법 13조,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제13조 ①모든 국민은 행위시의 법률에 의하여 범죄를 구성하지 아니하는 행위로 소추되지 아니하며, 동일한 범죄에 대하여 거듭 처벌받지 아니한다.

      ②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하여 참정권의 제한을 받거나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

      ③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

      특히 13조 3항 참고해주시기 바라며, 님께서 말씀하시는 부분이 어떠한 것에 대한 것인지는 충분히 이해하고 공감하지만 - "왜종/흉노 종자"라는 표현은 납득하기 어렵네요.

      어쨌거나 대한민국의 역사와 현실에 대해 고민하시는 부분에 있어 참 감사하고, 열심히 공부해서 내일은 더 나은 대한민국이 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12. BlogIcon 저녁노을 2009.10.26 16:49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존중해야 할 사람을 망각하며 사는 우리들인 듯...

    잘 보고 가요.

  13. BlogIcon mark 2009.10.26 19:4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동상이던 흉상이던 제작을 하려면 실물과 같이 똑 같이해야 할 것입니다.
    여기 동상의 모습은 얼핏 보아 우리가 그동안 교과서에서 사징에서 본 안중근 의사의 모습과 전혀 다르군요. 기왕 돈들여 만든 것 폐기하기 아깝지만 다시 제작해야 마땅하다고 봅니다.
    실물과 닮지 않은 것을 아무 의미가 없는 것 아닙니까?

    • BlogIcon 맹태 2009.10.26 22:0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음, 그런가요?
      실물과 닮지 않았다고해서 의미가 없다는 말씀은 공감하기 어렵네요. 세종대왕이나 이순신 장군은 확인할 길이 없어서 그렇다고는 하지만, 실물과 닮지 않았을것 같아요. 어느 인물이 얼만큼의 명성을 얻은 이후에는 아이콘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인물에서 느껴지는 추상적인 이미지를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상을 만드는 것이죠. 단지 구체적으로 '닮은' 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기념품 가게에서 레이저로 얼굴윤곽의 높낮이를 파악하여 만들어주는 크리스탈 레이저만큼 정확한 것이 없겠죠..?

      사진을 통해 안중근 의사의 생김새를 먼 역사 속의 인물들에 비해 비교적 자세히 알기 때문에 논란이 되는 것은 아닐까 생각도 들고요.

      mark님의 말씀에도 충분히 공감합니다. 故윤영하 소령의 흉상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었거든요. 하지만 저 안중근 의사 동상이 만들어지기 까지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 의미 없다'고 하기엔 조금 안타까운 마음이 드네요..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14. 김꼬르 2010.01.05 14:1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1월4일)아침 많은 눈 내렸읍니다.
    부천 안중근공원(구 중동공원)에도 눈이 많이 왔읍니다
    대한민국의 자랑, 안중근의사 동상 위에도 눈이 내렸읍니다

    우리 부천에서 조용히 잘 모시고 있읍니다.
    자주 오셔서, 방문하는 어린이들에게 나라사랑 이야기를 많이 해 주십시요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15. ㅋㅋㅋ 2011.06.07 09:26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인물의 생김새야 어쩔 수 없지만 동상이 너무 초라합니다.
    지나가면서 보면 자꾸 안스러워지는 마음이 들어요.
    역사의 큰 인물을 이렇게 변두리에 안치한 것도 그렇지만
    외형만이라도 좀 크고 화려하게 만들었으면 좋겠단 생각이듭니다.
    그저 마음만이라도 소중히 간직하면 되겠다는 흔한 생각도 들겠지만
    현실이란 벽은 그렇지 않기에 역사의식의 고취를 위해서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