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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현판 글씨, 다시 생각하자


  편집 노트
  지난해 11월 9일 김형오 전 국회의장은 금이 간 광화문 현판 글씨를 한글로 바꾸어 달자는 글을 블로그에 올려 언론을 비롯한 관계 기관과 네티즌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새해 들어 문화재청이 현판 교체를 결정하고 한글 단체들이 현판 글씨를 한글로 교체하자는 주장을 펴는 것은 참으로 다행스런 일입니다. 김형오 전 의장은 이미 2005년 1월, 당시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광화문 현판 글씨를 논제로 서신 공방을 주고받은 적이 있습니다. 김 전 의장은 그 뒤로 한결같이 대한민국의 심장부인 경복궁에 자랑스럽고 과학적인 한글 문패를 달아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습니다. 이 참에 한글 단체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고 국민들의 관심을 환기시키려는 뜻에서 지난해 11월에 썼던 글을 다시 앞자리에 올립니다.

 복원한 지 석 달도 안 돼 금이 간 광화문 현판의 균열 원인 및 대책을 둘러싸고 논란이 일고 있다. 현판을 당장 교체하자는 주장과 보수하자는 의견이 맞서는가 하면, 경복궁 복원의 도편수(우두머리 목수)였던 신응수 대목장은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정부 결정과 관계없이 자기 돈을 들여 새 현판을 만들겠노라고 밝혔다.

균열이 생긴 광화문 현판의 모습


 나는 여기서 그런 논란에 동참하거나 내 의견을 보탤 생각은 없다. 다만 이를 계기로 광화문 현판 ‘글씨’ 문제도 차제에 재고되고 재론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펜을 들었다.

 사실 나는 이 문제를 두고 2005년, 유홍준 당시 문화재청장과 서신을 통해 상반된 의견을 주고받았었다. 대학 동기면서 벗이었던 유 청장과 내가 현판 글씨를 놓고 대립각을 세우며 벌인 논쟁은 찬반양론을 불러일으키며 언론과 인터넷을 달구었다. 그때는 광화문 복원 전에 기존 현판(1968년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부터 뜯어내고 새 현판(정조의 글씨 집자(集字) 안을 포함한 한문)으로 바꾸어 달겠다는 발상과 움직임이 의아스럽고 절박해 반기를 들었지만, 다행히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나 복원된 광화문에 걸린 현판 또한 나로서는 고개를 끄덕이기가 쉽지 않다. 우선 새 현판 글씨는 기존의 ‘광화문’이 아닌 ‘光化門’이다. 왜 한글이 아닌 한자 현판을 단 걸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

 나는 본질적으로 한자 현판 자체에 이의나 반대 의견을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한자 현판으로 복원해야 할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지녔는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더욱이 직전 광화문 현판이 박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휘호였다는 이유로 굳이 새 현판에 한자를 썼다면 그거야말로 역사의식이 모자란 탓이다. 그 시대에 한글 현판이라니, 얼마나 신선한 파격인가. 그것만으로도 나는 직전 현판의 역사적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십수 년 전, 당시 국립중앙박물관이었던 옛 중앙청을 허무는 문제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경복궁 복원을 위한 거라면 옮기는 방법이라도 있었으련만, 일제 강점기 조선총독부 건물이었기 때문에 부수어 버린다는 거였다. 나는 철거에 정면으로 반대하다가 정치적인 어려움도 겪었다. 그러나 지금도 그 소신은 변함이 없다. 건물은 사라져도 역사는 남는 법. 과거의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대서 일제 침략의 역사가 소멸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나는 역사를 권력으로 재단하려는 어떤 시도나 세력에도 단호히 반대한다. 때로는 숨기고 싶은 치부나 깊게 파인 상처까지도 보듬고 가는 것이 참된 역사이며 올바른 역사 인식이라 믿기 때문이다. 역사란 영욕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은 또한 미래를 비추어 주는 거울이기도 하다. 터키 이스탄불에 있는 ‘아야 소피아’는 기독교 성당에서 이슬람교 사원으로, 다시 박물관으로 변신을 거듭했지만 여전히 그 자리에 서서 화해와 공존의 역사를 증언해 주고 있지 않은가. 부끄러워할 역사는 있을지 몰라도 대체할 역사란 없다. 직전 현판은 그 자체가 역사이다. 40년 가까이 그 자리에서 서울의 문패 역할을 해오는 동안 별다른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은 이 나라 지성인들이 시대적 소명과 역사의식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현판을 교체해야 할 당위성이 없었던 까닭이다.

광화문 수문장 교대식의 모습


 그리고 또 하나,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현판을 내리려면 그보다 더 의미 있는 새 현판이 달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지금의 현판은 몇 백 년 세월이 깃든 유물도, 당대의 명필이나 역사적 인물이 쓴 것도 아니다. 1867년 광화문 중건 당시 공사 감독관이자 훈련대장이었던 임태영이 쓴 한자 글씨를 디지털 복원한 거라고 한다. 중건 이전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임태영이란 인물과 그의 서체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중건 당시 감독관에000 불과했던 무인이 쓴 현판을 원본도 아닌 디지털 작업을 통해서까지 복원해야 할 이유가 있었겠는가 싶다. 게다가 그는 그 시대의 명필·명사 반열에도 끼지 않은 사람 아니던가.

 그럴 바에는 우리 시대의 명필이나 의미 있는 인물이 쓴 한글 현판이 백 번 나을 것 같다. 훈민정음 집자가 불가능하다면 그 서체를 빌려 쓰는 것도 한 방법이리라.

 광화문 안쪽으로 들어가면 좌우로 두 개의 작은 문이 보인다. 왼쪽은 용성문(用成門), 오른쪽은 협생문(協生門)이다. 이 또한 전해지는 사료가 없어 ‘북궐도형’(경복궁과 그 후원을 배치도 형식으로 표현한 도면)과 발굴 조사를 통해 규모를 추정 복원했다. 이 두 문의 현판 역시 한자로 되어 있다. 한마디로 누가 어떻게 썼는지조차 모른다. 협생문의 현판은 중건 당시의 현판을 건탁(乾拓 : 밀랍 성분이 들어 있는 매끄러운 먹으로 문질러 모양을 떠내는 탁본 방법)해 복원했다. 용성문은 그나마 아무런 사료도 남아 있지 않아 서예가 김양동씨에게 의뢰해 임의로 쓴 한문 글씨다. 그래서 두 문의 필체가 서로 달라 어색하고 조화롭지 않아 보인다. 이거야말로 당연히 한글로 썼어야 한다.

용성문의 현판

협생문의 현판

 서울 세종로의 시작 지점에 위치한 광화문은 경복궁의 정문 차원을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상징 조형물이다. 문패 격인 현판을 한글로 하느냐 한자로 하느냐는 자존심과 정체성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경복궁은 또한 한글이 태어난 곳이다. 게다가 광화문 광장에는 세종대왕 동상과 한글 이야기관이 자리해 있다. 세종대왕 생가 터가 있던 곳이라서 거리 이름도 세종로이다. 광화문이란 이름 자체가 세종대왕의 작명이다. 그런 만큼 이왕이면 세종의 뜻을 헤아려 서울의 관문에 ‘門化光’이 아닌 ‘광화문’ 현판을 건다면 세종께서도 좋아하시지 않겠는가.

 이제라도 늦지 않다. 절호의 기회가 찾아왔다. 다시 생각하고 지혜를 모으자. 수백 년이 지나더라도 바꾸어 달지 않을 아름답고 의미 있고 자랑스러운 ‘광화문’ 현판을 만들고 내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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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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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딸랑딸랑딸랑대왕 2010.11.09 15: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무엇보다도 용성문과 협생문은 언밸런스입니다.
    좌우로 나란히 자리해 있을 현판 글씨가 저렇게 엇박자라면
    한자를 모르는 아이들이나 외국인들 눈에도
    미관상 거슬릴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현판 금 간 김에 세 문의 현판 모두
    한글로 갈이해 버렸으면 좋겠습니다.
    왜 아름다운 한글 놔두고 한자를 씁니까.
    세종대왕께서 분노해 벌떡 일어나실 일입니다.

  2. 징징징 2010.11.09 18:1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님.. 제발 복원이 뭔지를 좀 생각하고 말씀하세요.
    앞에 계시는 세종대왕을 위해서 한글로 복원한다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말은 하지 마세요
    문화재가 장난인가요?
    당신같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그냥 막 던지는 말은
    좀 삼가해주세요
    한때 님을 존경했던 저로서 실망이 큽니다.

  3. 한문 2010.11.09 18: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우짜든지,
    시방은 한문도 우리의 글이고, 역사이고, 문화 입니다.
    한글도 당연히 마찬 가지 입니다.

    왜,
    한문을 배척 하는지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한문은 수천년 우리 역사에서 빼 놓을수 없는 문화 유산이고,
    역사 기록물들 입니다.
    한자가 중국거라는 인식은 사라져야 합니다.
    한자가 중국에서 시작하여 우리것으로 정착되어
    이제는 완벽한 우리 문화 유산 입니다.
    중국거는 중국한자가 있고, 일본은 일본거 한자가
    있습니다. 우리것은 우리것 입니다.

    한글과 한자는 우리것 입니다.

  4. 훈민정음 2010.11.10 08:1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얼마 전 외삼촌이 외가 쪽 조상님들의 비석을 정비하며
    한자 표기를 모두 한글로 바꾸었습니다.
    비석 뒷면 후손들 이름도 모두 한글로 써 아이들도 좋아했습니다.
    요즘엔 집집마다 문패 이름도 한글로 씁니다.
    서울의 관문, 대한민국의 얼굴에 한자로 된 현판을,
    그것도 역사적, 유물적 가치를 찾기 힘든 한자 표기 현판을
    디지털로 복원해 걸어 놓는다는 것은 참으로 난센스입니다.
    G20 정상회의에 온 후진타오가 본다면 어깨를 으쓱하겠네요.
    나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한글 현판 쪽으로 강추!!!

  5. 한글사랑 2010.11.10 08:5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머니투데이에 실린 기사, 잘 읽었어요.
    정말로 이 참에 현판 새로 바꾸고
    한글 '광화문'을 새겨 넣었으면 좋겠어요.
    박 대통령 필체, 참 좋았는데...
    그럼 또 박근혜 반대파들이 와글와글하겠죠.

  6. 번쩍번쩍 2010.11.10 10:1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화문 현판, 빛 光자에 금이 간 걸 보니
    번쩍번쩍 벼락이 친 것 같습니다.
    세종대왕의 진노?
    사찰이나 다른 건 몰라도 세종 이후에 지은 고궁 현판만큼은
    새로 교체해야 할 일이 생겼을 경우
    모두 한글 현판으로 바꿔 달았으면 합니다.

  7. 월인천강지곡 2010.11.10 10:4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바꾸면
    천개의 달이 떠서 현판과
    광화문 일대를 밝게 비추리니.'.

  8. 찌아찌아족 2010.11.11 09:37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맞습니다.
    역사라는 것은 고칠 수 없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총독부청사를 완전히 없애 버린 것은...아쉬운 부분도 있습니다.
    위치를 옮긴다던가..하는 방법도 있었을텐데요.
    아프지만, 기억해야 할 것도 있을테니까요.

  9. 다수결 2010.11.11 09:49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찬반 투표까지는 아니더라도 여론 조사를 통해 결정하면 어떨까요?
    1=박정희 글씨
    2=디지털로 복원한 임태영 글씨
    3=훈민정음 서체
    4=우리 시대의 명필
    5=인기 스타나 명망 인사
    6=정조 글씨 집자

  10. 나라임자 2010.11.11 14:04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광화문 현판을 한글로 쓰자는 것은 한자를 배척해서도 아닙니다. 또 복원은 한자로 써야만 복원이 아닙니다. 그것도 디지털 복제한 것을 모사해서 만드는 것은 모조품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새로 짓는 광화문에 오늘날 글자인 우리 한글로 달자는 것입니다. 한글로 다는 것이 나라와 겨레에 더 이익이 크고 후손과 외국인에게도 떳떳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짓는 광화문에 한글이 태어난 경복궁과 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을 시켜서 광화문이란 이름도 지은 역사와 이야기를 담자는 것입니다. 하나만 알고 둘도 모르는 사람이 너무 많아 안타깝습니다. 지도자는 지난날과 오늘도 중요하지만 앞을 볼 줄 알아야 합니다. 김형오 전 의장님은 앞을 내다보는 지도자입니다. 모자라는 사람들의 헛소리에 흔들리지 마시기 바랍니다. 존경합니다. 고맙습니다.

  11. 도대체 2010.11.11 15:15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석 달이 아니라 두 달도 안 되어 저런 꼴이 되게 문화재를 만드는 사람들이 어디 있단 말입니까. 8월 15일에 달았고 11월 초에 일이 터졌으나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두 달 전부터 였을 겁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는 일입니다. 제대로 된 나라라면 저 일을 시킨 자나 감독자나 만든 자 모두 문책하고 처벌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12. 신의 계시 2010.11.11 15:58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두고 보오! 또 한자현판 달면 이번엔 벼락이 내리칠 거요!

  13. BlogIcon 허인욱 2010.11.11 23:02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광화문> 현판이 한글로 바뀌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라고 생각합니다.
    수고 많이 하십시요.

  14. 상식인 2010.11.12 02:2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김형오 전 의장님과 같은 정치인이 있다는 것은 다행이고 행복입니다. 제 나라의 말글을 지키고 살리려고 각 나라가 얼마나 애쓰는데 우리는 스스로 복을 떨고 있습니다. 나는 불탄 숭례문 현판을 한글로 달자는 말은 하지 않습니다.지난번 불이 났을 때 그 현판이 떨어져 박살이 났지만 그걸 복원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광화문은 옛 현판이 불탄 재도 없습니다. 흐릿한 사진을 보고 복사해서 크기도 어림잡아 만들고 글씨체도 본따서 그린 게 원형 복원이란 말입니까! 오늘날 대한민국 한글시대에 새로 지은 문패는 한글로 써서 새로 달아야 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이 상식이하의 사람들이 판치는 데 김형오 의장님과 같은 정치인이 있다는 것은 다행입니다. 고맙습니다.

  15. 책 로스트 이휘소(ㅜㅜ) 2010.11.17 13:16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휘소와 박정희 전 대통령의 관계(이휘소의 한국인 제자였던 강주상이 옳은 점이 있음,책 이휘소평전)

    소립자 물리학계 천재학자 이휘소(박정희 전 대통령이 친서(편지)를 이휘소에게 보냈고 1977년에 일본에서 어머니에게 친서를 주면서 잘 보관하라고 말했으나 분실했고 복사본은 이휘소가 갖고 있다고 어머니에게 말했음)

    1935년 서울에서 태어난 벤자민 리는 경기고 2학년 때 대입검정을 거쳐 서울대 화학공학과에 수석입학. 재학중 미국으로 건너가 1956년 마이애미대학 물리학과를 수석졸업, 1958년 피츠버그대학 석사,

    1960년 펜실베이니아대학 이학박사를 받고, 28세로 이 대학 정교수가 된다. 이후 뉴욕주립대학 교수를 거쳐 시카고대학 이론물리학교수 겸 페르미연구소 이론물리 연구부장 등을 맡는다.

    그는 특히 1960년대 SU(6) 군이론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1970년대 쿼크와 참 이론(참 쿼크가 이론적으로 존재하며 참(c) 쿼크의 질량을 계산)으로 명성을 높였으며, 게이지장 이론을 다루면서 이 분야에 독보적인 기여를 한다. 1972년 발표된 게이지장 이론은 그의 가장 훌륭한 공로로 1979년의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살람은 이를 거의 완벽한 이론이라고 극찬한다.

    1974년 9월(약 한 달동안) 이휘소는 미 국무부 요청으로 서울대에 AID교육차관 타당성조사차 20년 만에 귀국한다. 이때 박 대통령은 그를 청와대로 초청, 국가안보위협을 상기시키며 그의 귀국을 요청한다. 핵무기개발에 참여하고 싶지 않던 그는 대통령의 제의를 사양하지만, 강대국 사이에 끼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조국의 신세에 고민하게 된다. 박정희 대통령의 핵무기개발 집념 1977년 3월 이휘소는 다시 박 대통령으로부터 그의 귀국을 간청하는 편지를 받는다. 주한미군 1만7천여명이 철수를 시작했다는 급박한 마음이 담겨져 있었다.

    이휘소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일기에 담는다.
    “조국이 공산화되거나 전쟁소용돌이 속에 처할 위험에 놓여 있다고 가정할 때, 내가 조국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내가 할 수 있는 핵개발원리를 제공한다면, 나를 낳고 나를 길러준 조국현실을 내가 배반할 수는 없는 것 아닌가? 그것이 나를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인지도 모르지만. 죽는다! 내가 죽어 조국을 살릴 수 있다.…하늘이여! 무엇이 참다운 삶이고 내가 지금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가르쳐 주소서.”

    마침내 이휘소는 친분있는 외과의사를 찾아가 미사일·핵무기 제조원리를 따로 정리·축소해 만든 기밀문서를 내민다. 그의 다리 살 속에 소독된 종이가 넣어졌다. 5월 20일 이휘소는 세미나 참석차 도쿄를 방문, 그날밤 비밀리에 청와대에 도착해 대통령에게 이 문서를 전달한다.

    1977년 6월16일, 이휘소는 세미나 참석차 가족과 함께 자가용으로 집을 나섰다. 시내를 벗어나자 트럭 몇 대가 그의 차에 따라붙었다. 일리노이주에 가까운 케와네시 근처(고속도로)에 이르렀을 때, 맞은편에서 오던 대형 유조차가 갑자기 중앙선을 넘어 이휘소와 가족이 탄 차를 정면으로 들이받는다. 차 앞머리가 처참히 부서지고 가족 모두 정신을 잃는다. 가족들은 가벼운 부상을 입었으나 이휘소는 사망하고 만다.

    이휘소가 한국에게 미사일 및 핵 제조원리를 넘겨주고 의문의 죽음을 당한 전후, 미국의 원자력정책은 급전환한다. 카터 미국 대통령은 한국정부에 ‘인권탄압중지, 긴급조치 즉각해제, 독자적 핵개발추진 즉시중지’ 등을 압박한다. 이에 대해 박 대통령은 ‘자기들은 이미 다 만들어놓고 남의 나라에 만들지 못하게 하는 것이니, 패권주의에서나 가능한 발상이다’라고 반발한다. 이런 한미대립은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사일·핵개발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했다.

    1978년 8월 26일 한 군사기지에서 장거리미사일 발사실험이 완벽하게 성공하였다. 사정거리 150km, 유효사거리 350km로 북한 전역은 물론 소련과 중국의 일부까지 미치는 것이었다. 이로써 한국은 세계에서 일곱 번째 미사일 보유국이 되었다. 이제 한국에서 핵무기개발은 시간문제였다. 미국은 보다 강력한 압박을 가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목숨까지 내놓은 이휘소를 생각하면 박 대통령은 더더욱 멈출 수 없었다......

    박정희정부 핵무기개발 추진 결정적 자료 드러나(주간조선 2010년 1월18일(2089호)에서)
    2010년 1월 오원철 경제수석이 1972년 9월 8일 작성한 보고서중 일부가 국가기록원 정보공개를 통해 일반에 공개되었다. 2급비밀문서로 분류된 이 문서들에는 ‘핵무기의 종류 및 우리 개발방향’ ‘우라늄탄두와 플루토늄탄두에 대한 장단점 비교’ 등 개괄내용과 함께 ‘우리나라 기술수준에 맞춰 플루토늄탄을 개발한다’는 잠정결론이 담겨져 있다. 이 문서들은 박정희정부 당시 핵무기개발이 추진됐다는 결정적 근거자료이다.

    그러나 오원철 전 수석은 당시 연구진들이 작성한 핵무기 기술개발 관련 핵심내용이 담긴 보고서가 현재 국가기록원에도 남아있지 않아 실종상태라고 주장했다. 박정희 대통령 서거 이후 청와대의 대통령 개인금고에 보관중이던 핵무기 관련 보안문서 봉투가 외부로 유출됐다는 것이다. 담당자였던 오원철 전 수석은 이 문서를 봉인해 최규하 대통령에게 넘겼고, 이것은 나중에 전두환 신군부에 전달됐다는 것이다......

    소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몇 년전에 개정판을 내고 최근에 2010년판(개정판)을 냈는데 소설(작가의 말이 있음)이 맞죠. 참고로 1026이라는 책이 최근에 출판되었죠.
    이휘소 박사는 1978년에 귀국하려는 계획을 세웠다고 우리과학 100년이라는 책과 이휘소 상,중,하(2002년)등등에 나왔죠.(이휘소 하권에 이휘소의 어머니와 저자가 대화하면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편지 얘기) 1977년 6월당시의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등에 이휘소 박사의 사망 기사와 조선일보의 1977년 7월5일자에 후속기사(교통사고 경위가 명확하게 조사되지 않은 것에 대해서 국회에서 국회의원이 최형섭 과학기술처장관에게 질의했으나 모른다고 답변)가 나왔죠.

    고 최형섭 박사의 회고록에서도 최형섭 박사가 이휘소 박사로부터 우리나라로 귀국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습니다. 정리할 것(대학교수와 페르미연구소의 이론물리 연구부장을?)이 있어서 아직은 귀국할 때가 아니고 기다려 달라고 말했죠.

  16. BlogIcon 잔디 2010.11.22 19:33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이 시대 최고의 명필가가 '광화문'이라 쓴 현판을 내걸자는 김 전 의장님의 의견에 한 표. 광화문광장에 계신 세종대왕님 어깨 너머로 보이는 '門化光'을 내리고 '광화문' 현판을 새롭게 내걸자. 나라의 운이 크게 일어설 터이다.

  17. BlogIcon 한내 2011.01.13 03:0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한글현판을 달면 두고두고 후손과 미래에 자랑이 될 것입니다.,어쩌면 한글 그 중에서도 세종대왕과 관계 있는 '훈민정음'창제 당시의 서체를 예술가의 손으로 멋지게 집자해서 달면 많은 의미를 동시에 살릴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한글 최고의 명필은 세종대왕을 비롯한 '훈민정음 해례본'을 펴내신 조상들이 아니겠습니까?

  18. 지킴이 2011.02.11 08:30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어제 시민 공청회에서 참 바른 말씀, 옳은 말씀하셨습니다.
    한글 마루지에 한자 현판? 소가 웃을 일입니다.

  19. 지나가는 2014.04.17 03:51 신고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편협의 극치를 보는군. 오래된건 비정상적이고 새로운걸 받아서 신축하자? 1945년 이전에 이모씨 얘기와 맥을 같이하는 희한한 얘기로군. 뭐가 좋고 나쁜지를 판단하지 말고, 이런 일이 있다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하면 좋았을것을... 그저 자신의 편협한 사관에 머물러 한자와 한글을 구분짓고, 옛것과 새것의 구분이 없는... 답답한 글 잘 봤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