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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조추첨이 한국16강진출 결정짓나?

 [* 한국 월드컵 축구팀이 남아공월드컵에서 16강 이상의 성적을 내는 것이 가능할지에 대한 심층분석 리포트입니다. 지난 20년 동안의 월드컵 조추첨 결과와 성적의 상관관계를 직접 확인해보세요~~ ]  
 

한국시간으로 토요일 새벽 2시에 열린 2010 남아공 월드컵 조추첨에서

한국은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그리스와 함께 B조로 배정되었네요.

  

           ▲ 2010 남아공 월드컵 조추첨 (사진출처 = FIFA.COM)

 
월드컵 조추첨은 월드컵 각 팀 성적의 절반 가량을 좌우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 팀과 예선에서 맞붙느냐 16강, 8강, 4강, 결승 등에서
어느 팀끼리 맞붙을 확률이 높으냐에 따라 변수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조추첨 결과   -2009년 12월 5일 새벽2시(한국시간)

 

구분 해당국가
A조  남아프리카공화국, 멕시코, 우루과이, 프랑스 
B조  아르헨티나, 나이지리아, 대한민국, 그리스 
C조  잉글랜드, 미국, 알제리, 슬로베니아 
D조  독일, 호주, 세르비아, 가나 
E조  네덜란드, 덴마크, 일본, 카메룬 
F조   이탈리아, 파라과이, 뉴질랜드, 슬로바키아 
G조  브라질, 북한, 코트디부아르, 포르투갈 
H조  스페인, 스위스, 온두라스, 칠레 


역대 월드컵에서의 대한민국의 조추첨 결과와 대한민국의 성적을 되짚어보겠습니다.

1986년 ~ 1998년 월드컵까지 한 번 정리해봤습니다.


1986년 : 아르헨티나, 불가리아, 이탈리아


대한민국으로선 1986년 월드컵의 조추첨은
1996~2004년 월드컵 가운데 한국에겐 역대 최악의 조였습니다.

지난 대회 우승팀이었던 이탈리아와
이 대회에 우승한 아르헨티나가 함께 한 조를 이뤘기 때문입니다.

특히 1986년 월드컵은 마라도나로 시작해서 마라도나로 끝난
마라도나를 위한 월드컵이었기에 아르헨티나와 한 조였던 건 결과적으로 불운이었습니다.

그 첫 상대가 하필 우리 나라였다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었습니다.
그 정도의 대진운이면, 지금도 암담하긴 마찬가지입니다.

당시에는 24개국 출전 16강 체제여서 조 3위 중 와일드 카드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우승 후보급 팀이 쌍두마차로 한 조에 걸려버리면 승정 챙기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즉, 3위가 되어서 16강에 진출할 확률을 희박하게 만드는 조배정이었습니다.

흔히 월드컵에 자주 나가지 못하는 팀들은 경험 부족으로 인한 '울렁증'에 걸리곤 합니다.
즉, 상대방을 보며 지레 겁을 먹고 자기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거죠.
아르헨티나전이나 이탈리아전에서 그 부분이 아쉬웠습니다.

물론 세계의 벽이 높았기 때문에 16강 진출을 낙관할 수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당시 차범근, 허정무는 해외파였고
최순호, 김주성, 김종부, 박창선 등 좋은 선수들이 많았습니다.
83년 청소년축구 4강 신화를 이뤘기에 한 번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꿈을 품어봤던 것이죠.

그래도 아르헨티나전을 치르고 불가리아전을 수중전 속에 1:1로 비긴 것이나
이탈리아를 상대로 2:3으로 석패한 것은 아쉬움 속에서 얻은 큰 수확이었습니다.

특히 이탈리아전은 대놓고 편파판정이 보이기도 했었죠.

월드컵 무대에 인지도가 낮은 나라의 설움이랄까요?
흥행성에 있어서는 이탈리아가 더 컸으니 조직위에서도 밀어주고 싶었을 지도 모르죠.

한국 역사상 '최악의 조'인 것에 비해서는 희망이 보였던 월드컵이었습니다.

  

1990년 : 벨기에, 스페인, 우루과이


조추첨에서 당대 최강인 팀들은 피할 수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카레카의 브라질, 마라도나의 아르헨티나, 마테우스의 독일,
그리고 도나도니, 스킬라치(득점 2위)를 앞세운 개최국 이탈리아 같은 나라 말이죠.

한국을 제외한 나머지 팀들은 우승후보감이라고 하기엔 조금씩 모자란 느낌이었지만
강팀의 호적수가 될 수 있는 다크호스들이 포진되어 있었습니다.
 
86년 월드컵이 대진운 최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전했던 것에 반해
90년 월드컵은 대진운도 전 대회보다 나아진 것에 비해
오히려 1986년 이후 대한민국이 출전한 월드컵 중 최악이었습니다.
무승부조차 거두지 못하고 3경기에서 단 1골만 기록했을 뿐이니까요.

첫 경기의 상대는 벨기에였습니다.
지금은 벨기에가 유럽에서 그저 그런 팀 혹은 그 이하의 평가를 받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붉은 악마'로 불리던 팀으로 전형적인 '다크호스'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벨기에는 '엔조 시포'라는 걸출한 미드필더가 있었고
지난 86년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었죠.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 대회에서도 첫 경기부터 울렁증을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후반 시작하고 8분부터 골을 먹고 무너지기 시작해서 결국 0:2로 패했죠.
그러나 스코어만 0:2였을 뿐, 안타까운 경기였습니다.

두 번째 경기 스페인전도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0:1로 뒤진 상황에서 황보관의 대포알 같은 프리킥은 답답한 속을 뻥 뚫어줬습니다.
껑충 뛰며 두 팔 벌려 좋아하던 장면은 잊을 수가 없네요.

그러나 그런 기쁨도 오래 가지 못했죠.
스페인 미첼의 헤트트릭 원맨쇼에 농락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내가 왜 밤을 새어 가면서 이걸 보고 있나?' 싶을 정도로 참담했습니다.
그 헤트트릭은 대회 첫 번째였습니다.

우루과이전까지도 불운은 이어졌습니다.
0:0으로 마치는가 싶었으나 이미 후반 45분의 시계가 멈춰진 상황에서 심판은 파울을 불었고,우루과이의 프리킥에 이어진 폰세카의 골에 한국은 3연패의 수모를 안고 귀국해야 했죠.
그런데 그 통한의 골은 오프사이드로 밝혀져서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만들었습니다.

그래도 소득이 있다면, 황선홍, 홍명보라는 한국 축구의 미래를 얻었다는 것.

 

1994년 : 스페인, 볼리비아, 독일


숙원의 16강의 길이 열리는가 싶었으나 '한 끗'이 아쉬운 대회였습니다.
전년도 우승팀 독일, 예선전 우등생 스페인을 만난 것은 불운이었지만
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볼리비아가 한 조에 편성됐기 때문이죠.

첫 경기 울렁증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잘 마무리했습니다.

0:0으로 잘 풀어가던 중 스페인 수비수 나달이 전반 25분에 퇴장을 당했었습니다.
한국에겐 호재였죠.

그러나 그 유리함을 살리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후반 초반에 살리나스에게 한 골을 내주고 말았고
뒤이어 역습 때 고이고체아의 헤딩골 한 방에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90년 벨기에 경기와 다름없는 상황이 연출된 것이죠.

그러나 승리의 여신은 스페인이 웃는 걸 원하지 않았나 봅니다.
후반 40분경 홍명보가 찬 프리킥이 수비벽을 맞고 굴절되며 행운의 골로 이어졌죠.
5분쯤 뒤에 홍명보의 패스를 받은 서정원이 극적인 동점골을 넣었습니다.
당시 서정원의 상큼했던 짧은 머리가 떠오릅니다.

기적 같은 무승부를 이뤘지만 볼리비아전은 지독한 결정력 부족이 드러났습니다.
단 1점만 났어도 운명이 바뀌었던 건데 말이죠.
당시 1골만 넣었다면 한국이 16강에 진출할 수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 대회 준우승을 거둔 이탈리아는
조별 3위팀 와일드카드에서 막차로 올라갔기 때문이죠.

한국의 경우 볼리비아전을 1:0으로 이겼으면 다득점에서 앞서게 되었을 겁니다.
그랬다면 이탈리아가 준우승하는 일은 없었을 겁니다.

마지막 예선전은 미국에서도 더운 댈러스에서 펼쳐졌습니다.
평균연령이 높은 독일은 체력이 약점이었기 때문에 더위는 또 다른 적이었죠.
후반전에 대등할 수 있었던 것도 결국 체력 때문이었습니다.

황선홍, 홍명보의 통쾌한 슛이 터졌고
이후 한국의 공세는 독일을 허둥지둥하게 만들었지만
뒤집는데는 실패했습니다.

독일이 전 대회 우승팀인 걸 감안하면 정말 선전한 것이었죠.

독일 선수들도 후반전에는 뭔가 홀린 것 같았다는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납니다.

 

1998년 : 멕시코, 네덜란드, 벨기에


94년 예선 탈락의 아쉬움을 가볍게 지역예선을 통했지만
정작 프랑스에 가서는 힘을 쓰지 못했습니다.

백태클 규정 강화를 내세웠던 FIFA의 의지가 과하게 반영됐다고 할까요?
대한민국이 희생양 혹은 시범케이스가 된 느낌을 받았습니다.
축구 약소국팬들이 느끼는 모멸감이라고 할까요? 참 서럽더군요.

첫 경기 멕시코전이 기억에 남네요.
프리킥에 능한 '왼발의 달인' 하석주가 찬 공이 수비수에 굴절되며 골로 이어졌던 것

그러나 몇 분 지나지 않아 경미한 파울를 범한 하석주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퇴장 카드가 주어지며 불운은 시작됐습니다.

블랑코의 얄미운 개구리 점프하던 장면이나
하석주가 빠진 자리가 계속 뚫리며 에르난데스가 연속골을 먹은 장면이 떠오릅니다.
결국 1:3으로 졌죠.

퇴장당한 하석주는 이후 한일전 1:0 결승골의 주인공으로 거듭나기까지
마음 고생이 심했던 걸로 기억합니다.

차범근 감독의 전술적인 아쉬움에 대해 아직도 회자되고 있죠.
미드필더 숫자만 많이 뒀을 뿐, 허리 싸움에서 무너졌으니까요.

3-5-2니 3-6-1이니 미드필더 5~6명을 두는데도 너무 쉽게 공격에 밀려버렸죠.
기동성을 살려 측면공격을 늘리겠다고 했지만 소위 뻥축구를 극복하지 못했구요.

그게 결국 네덜란드전 대패로 이어진 겁니다.
참담했죠.

결국 0:5으로 우리에게 참패를 안겨준 네덜란드 감독이 2002년 우리 감독이 되었는 걸 보면 인연은 묘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경기 유상철의 천금과 같은 골은 처절할 정도였죠.

탈락이 확정된 상황에서 이 경기라도 건져야 한다는 절박함이 있었습니다.

이동국, 고종수 등이 2002년을 주도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월드컵에 뽑히지 못했습니다.
정작 2002년에는 안정환, 이천수, 박지성, 차두리 등의 선수가 더 각광을 받았습니다.



2002년 : 폴란드, 미국, 포르투칼

워낙 생생한 감동을 남긴 2002년 월드컵인데, 대진운이 좋았습니다.

포르투칼이 까다로웠을 뿐, 폴란드는 오랜 만에 월드컵에 진출한 상태였고,
미국 정도면 해 볼 만 한 상대였기 때문입니다. 

아직 몸이 덜 풀린 폴란드를 상대로 홈 경기의 이점을
십분 활용해 2:0으로 이겼습니다.

첫 골은 황선홍의 발리슛으로, 두번째 골은 유상철의 중거리슛으로
승리를 장식했던 기억이 납니다.

두번째 경기에서는 미국과 1:1로 비겼죠.
당시 안정환의 쇼트트랙 세레머니가 생각나네요.

세번째 경기는 당시 조에서 가장 강했던 포르투칼과 치렀습니다.
그 쟁쟁한 선수들을 상대로 박지성은 골키퍼의 가랑이 사이로 골을 터뜨렸었죠.

그 때 얻은 자신감이 4강으로 이어졌습니다.

2006년 : 토고, 프랑스, 스위스

처녀출전한 토고가 우리와 맞대결한 것은
월드컵 원정 첫 승을 거두는데 도움이 됐습니다.

비록 우리가 선제골은 내줬지만,
이천수의 프리킥과 안정환의 중거리슛으로 역전승을 일궈냈죠.

프랑스와 2번째 경기는 명승부였습니다.
앙리에게 선제골을 내줬지만, 후반전에 한국이 반격에 나서며 양상은 달라졌죠.
박지성의 천금 같은 동점골이 터졌던 것이죠.

이 대회 준우승팀 프랑스를 상대로 1:1 무승부를 펼친 건
지금 떠올려도 정말 장하다는 말 밖에는 다른 표현을 못하겠습니다.

아쉽게도 스위스전에 0:2로 패한 것은 아쉬웠습니다.
당시 스위스의 탄탄함에 우리 대표팀이 뜻하는 만큼 기량을 펼치지 못했습니다. 

 

2010년 : 그리스, 나이지리아, 아르헨티나

이번 조추첨을 바라보며 담담한 느낌이 듭니다.
각 팀의 면면을 봤을 때, 낙관도 비관도 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어짜피 1번 시드 받는 팀은 남아공을 제외하곤 우승후보급 팀입니다.
아르헨티나전은 가장 어려운 경기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나머지 3팀이 16강 진출을 두고 다투게 될 것입니다.

결국에는 나이지리아, 그리스의 전력이 어느 수준이냐, 
그리고 그에 맞게 우리가 이 2팀과 어떤 승부를 펼치느냐가
월드컵 원정 16강의 기대를 만족시킬 열쇠입니다.

첫 경기 그리스전이 중요하다는 평가가 많은데,
저는 나이지리아전이 더 중요하고 더 부담이 클 것으로 봅니다.

결국에는 조 2위를 다툴 3팀 중 가장 강하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아프리카 대륙에서 치러지는 첫 월드컵이라는 점도 걸립니다.

그러나 우리 태극전사를 믿어야죠.
그리고, 축구공은 둥글다는 말도 있잖아요~~

Posted by 칸타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