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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을 내린 <파스타>, 가시지 않는 여운

올해 초의 월화 밤을 지켜주었던 <파스타>. 이제 종영되어 더 이상 볼 수 없게 된 점이 참 아쉽습니다. 그래도 차를 마시고 나면 입가에 그 향이 머물듯이 <파스타>가 남긴 여운은 아직도 제 곁을 떠나지 않네요.

그 동안 파스타를 보면서 제 마음을 맴돌고 있는 향기를 담아봤습니다.





붕셰커플, 독특한 캐릭터에 훌륭한 연기가 버무려지다

그 동안 중후한 저음의 목소리에 젠틀한 이미지를 쌓아왔던 이선균은 버럭버럭 소리지르는 별난 쉐프 최현욱 역을 통해 연기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게다가 그는 초반부에는 여성 혐오증에 걸린 듯한 인상마저 풍기며 별난 이미지로 등장했지만, 정체된 캐릭터가 아닌 변화하는 인물을 잘 담아냈습니다.

<커피 프린스 1호점>, <달콤한 나의 도시>에서 보여준 '훈남'이나 <하얀거탑>에서의 '바른 남자'에 익숙해있는 시청자들에게는 신선함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사실 이선균의 연기가 이것이 전부인가 싶은 분들에게 권하는 영화가 있는데요. 바로 <손님은 왕이다>입니다. 작년 10월에 개봉한 <파주>의 '김중식'과는 판이하게 다른 '해결사 이장길'을 보는 순간 이선균이 달리 보이실 겁니다.

쉐프의 연인인 서유경 역을 맡은 공효진도 과연 연기인지 실제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로 자연스러우면서도 섬세한 연기를 펼쳤는데요. 과연 그녀보다 서유경을 잘 묘사할 수 있었을까 싶을 정도로 감칠 맛 나는 연기 솜씨를 뽐냈습니다. 특히 서유경이 최현욱의 말끝마다 "예. 쉪", "예. 솊"이라고 애교있게 대답하던 장면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어 무척 아쉽습니다. 저 머릿 속엔 아직도 그 말이 맴돌고 있습니다. 아~





3파 3색 파벌들, 그러나 결국에는 한 가족

- 유학파의 우월감에다 뺀질뺀질한 이미지가 풍기지만 세련된 외모에 충성심 하나는 끝내주는 이태리파
- 이태리파에 대한 컴플렉스를 갖고 있지만 부주방장 중심으로 항상 진지한 자세로 노력하는 국내파
- 뭔가 부실한 듯 엉뚱한 듯하지만 미워할 수 없는 여성파

이 세 파벌이 각기 다른 색깔로 시청자들을 즐겁게 해줬습니다. 특히 국내파와 이태리파의 갈등이 깊어질수록 극의 긴장감은 높아져 갔죠. 때로는 갈등이 극에 달하며 악화일로 치닫을 때도 있었지만 궁극적으로 선의의 경쟁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다.

여느 드라마 같았으면 음모와 암투가 번져가며 이전투구의 양상을 보일 수도 있었지만, 드라마 <파스타>는 마치 룰을 지키며 경쟁하는 스포츠와 같았습니다. 그것은 쉐프 최현욱이 '라스페라'에 대한 책임감과 후배를 아끼는 마음을 간직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그런 최현욱을 움직인 것은 서유경이었구요.

또한 <파스타>는 어느 조직이든 갈등을 겪을 수 있지만 그것을 봉합하고 치유하는 과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말해줬습니다.





우리를 빼놓고 파스타의 재미를 찾는가?

붕셰커플과 4각 구도를 이루는 김산(알렉스) 사장과 오세영(이하늬) 셰프도 파스타를 풍부하게 하는데 일조했습니다. 둘은 서로 예전 연인이었으면서도 서로 다른 사람을 짝사랑했습니다. 그러면서도 과감하게 자기 사랑을 쟁취하는데는 실패한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각자의 3각관계에서 자신이 짝사랑해온 대상이 더 좋아하는 대상을 연인으로 선택할 수 있게 스스로 자리를 내주었습니다.

파스타를 빛낸 조연들을 떠올려보겠습니다. 사장이자 창업주였다가 졸지에 홀의 막내가 된 귀여운(?) 악역 설준석(이성민)도 빼놓을 수 없을 겁니다. 그의 좌충우돌이 파스타를 코믹하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붕셰커플의 존재를 가장 먼저 목격한 주방보조 정은수(최재환) 역시 있는 둥 없는 둥 하면서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은 배역이었죠. 김산의 누나 김강(변정수)도 일시적이지만 필립과의 로맨스로 주목받은 캐릭터입니다. 서유경의 아버지(장용)는 드라마 막바지로 치닫으면서 붕셰커플의 관계를 더욱 공고히 하는 역할에 꼭 필요한 인물이었습니다. 





기존 드라마의 폐해가 보이지 않아서 좋았다

출생의 비밀, 불륜, 복수의 재생산, 과장된 신데렐라 스토리, 우연성의 남용, 재벌 2세의 허세

이런 것들은 여러 한국드라마에서 볼 수 있는 공통점이자 폐해로 지적되는 것들입니다. 어떤 극이든 소재에 제약을 두어서는 안 되겠지만, 위에 언급된 부분들은 그 동안 너무 자주 써먹어서 시청자들이 이제 좀 그만 봤으면 좋겠다 싶은 요소들입니다.

더욱이 성장형 드라마에는 이런 요소들이 삽입될 개연성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파스타>는 비교적 이런 부분에서 자유로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파스타>는 낭만적인 향이 듬뿍 풍기긴 했지만, 극으로서 즐기는데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습니다. <파스타>는 약간 싱거운 맛은 있지만 담백하게 즐길 수 있었던 드라마였습니다.





그래도 아쉬운 것이 있다면...

가장 아쉬운 점은 종영했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대로 끝나기엔 부족함도 있었던 드라마였습니다. 하지만 그 부족함에 대해선 이야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좋은 기억들만 남기고 싶은 마음 때문입니다.

너무나 많은 궁금증과 호기심을 남겨둔 채 막을 내려버렸으니까요.

마지막편 이후 받은 호기심만 해도 이만큼입니다.

- 국내파의 이태리 유학 과정이나 성과는 어떠할까? 혹은 돌아와서의 입지는 어떻게 될까?
- 국내에 남게 된 서유경은 주방에서 어떤 역할을 하게 될까? 혹은 어떻게 성장할까?
- 퇴출된 여성파 요리사 3인방은 쉐프 최현욱과 어떻게 지내게 될까?
- 쉐프 최현욱은 그냥 라스페라에만 남아있을 것인가? 최고에 걸맞는 새로운 도전 과제는 없는가?
- 또 다른 쉐프 오세영의 거취는 어떻게 될까? 이태리로 돌아간다면 유학 간 국내파들에 미칠 영향은?
- 서유경을 놓친 김산은 새로운 사랑을 이룰 수 있을까?
- 김산의 누나 김강과 이태리파 필립의 로맨스 진전 여부는?
- 4각 구도에서 약하게 남아있던 오세영과 김산은 이대로 둘 것인가?
- 가장 중요한 부분이겠죠? 븅셰커플의 사랑은 어떤 변화를 맞이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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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쓸 말이 많지만 여기에서 멈춰야 할 것 같습니다.

일말의 가능성이 있을 지 모르겠지만 파스타 후속편이 나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대로 끝나기엔 너무 아쉬운 드라마입니다.

지금이라도 공효진이 어딘가에서 "예. 솊"이라고 할 것 같은데 말이죠.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