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2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미국 시카고대학 교수 개리 베커는 너무 지독할 정도로 경제적 요소로 인간의 모든 행위들을 설명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종종 비판받는 학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어쨌든 범죄에 대해 여전히 유효한 통찰력을 제시한 것이 사실이다.
얘기는 생각보다 간단하다. 범죄는 범죄를 저질러서 생길 수 있는 이득과 발각될 확률 그리고 처벌 사이의 비용 관계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고, 그래서 개별적 범죄에 대해서 형량을 어떻게 매길 것인가와 관련된 경제적 접근의 틀을 제시하였다. 너무 간단한 것이 아니냐고 하겠지만 개리 베커는 전형적인 보수주의 경제학자이고 경제학 환원주의에 가깝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이론은 처벌에 관한 하나의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사람이 범죄를 저지를 때 자신이 받게 될 처벌에 대해서 언제나 꼼꼼하게 따지지는 않는다. 사이코패스가 저지르는 범죄 유형을 무섭게 생각하는 이유는 이들은 이런 정도로 계산을 할 수 없거나 혹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형법은 생각보다 어렵다. 용어도 어렵고 그게 어느 정도 수준의 처벌인지 일반인들이 이해하기 힘들다. 물론 이런 걸 잘 꿰뚫고 있는 고학력 범죄자도 있지만 많은 범죄인들은 실제로 체포되고 형무소에 가면서 이런 것들을 배우게 되는 것 같다. 개리 베커의 주장은 범죄인들은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오히려 잘 생각하지 않는다는 반박에 직각적으로 부딪히게 된다. 그러나 그의 이론이 가지고 있는 진짜 함의는 발각 확률과 함께 처벌의 수위가 범죄 은폐에 대한 동기와 연결되어 있다는 다음 단계의 논리적 추론에서 생겨난다.
범죄 발각의 위험비용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은폐에 대한 경제적 동기가 더욱 높아진다. 사형이라는 방식에 대해서 점점 지지하지 않는 경향이 높아지는 것은 사형이 범죄율을 낮춘다는 증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사형에 해당하는 범죄가 될 가능성이 높아질수록 피해자를 살해할 경제적 동기도 높아진다. 당연한 것 아닌가? 발각될 위험이 높아지면 피해자나 목격자를 전부 살해할 경제적 이유도 같이 높아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경제학을 전혀 모르고 개리 베커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도 자신이 한 일이 사형에 해당되고, 그 사형이 협박이 아니라 실체라면 살인죄가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지게 된다.
범죄를 개인의 것으로 보는 시각과 함께 '사회의 것'으로 보는 또 하나의 시각이 있다.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영역을 범죄율과 함께 자꾸 구분하려고 한다. 하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더욱 범죄의 영역이 높아지게 되고 치안의 사각지대가 늘어나게 된다. '통합'과 '함께 잘 살기' 같은 것들이 넓게 본 시각에서는 범죄를 줄이는 방법으로 이해하게 되는 것이 그 때문이다. 이번의 부산 여중생 성폭행 살해범의 경우도 재개발 지역에서 치안 방치지역이 형성되면서 발생한 측면이 일부 있다.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들을 자꾸 안쪽으로 끌어들이려는 힘, 교도소 행정이 교육감화라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는 것 그리고 복지의 사각 지대를 줄여나가는 편이 도움이 된다는 것은 이런 실제적인 문제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나는 종신제를 반대하지 않는다. 정신적인 이유로 도저히 교화가 불가능한 경우 종신형을 내려도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형은 얘기가 다르다. 살릴 수 있었던 피해자와 목격자도 죽게 만드는 '살해의 고리'가 더욱 커지게 된다. 범죄에 대한 근원적 처방과 사회적 해법을 동시에 고민해야지, 처벌의 수위를 사형으로 높인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사형이 현실화할수록 흉악범이 늘어날 것이다. 이성을 찾고, 생각을 좀 해보자.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이 맞다.
가난한 사람들이 늘어나면 범죄가 늘고, 특히 상대적 박탈감이 늘면 범죄가 늘어나게 된다. 범죄에 대해서 좀 더 따스한 마음을 갖고, 특히 재개발 지역과 같이 가난한 사람들이 버티고 있는 지역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시선을 가지고 문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선진화, 어떤 선진화인가. 이런 시각에서 좀 생각해보자.
< 2.1 연구소 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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