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부산에 일정이 있어 김포공항으로 향했습니다.
가는 길에 웬 영화 포스터 한 장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
"음~ 다음 주에 개봉하는구먼. 이준익 감독 작품이니 한 번 볼까나?"
김포공항에 도착한 저는 지체 없이 약속장소로 달려 갔습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저에게 한 마디씩 하더군요.
"덥지 않으세요? 왜 이렇게 옷을 두텁게 입고 왔어요? 이건 겨울 옷인데."
"아~ 부산에 바람이 많이 분다기에 이렇게 갖춰입고 왔습니다. ㅎㅎㅎ"
주변을 둘러보니 저만 옷을 두텁게 입고 온 것이었습니다.
부산으로 향하던 비행기에서 본 하늘은 온통 흰구름으로 뒤덮혀 있었습니다.
'이러니 하늘 아래의 모든 것이 어둡게 보일 수 밖에...'
김해공항에 도착한 우리들을 맞이한 것은 어두운 하늘과 세차게 부는 바람이었습니다.
김포공항에서 제 옷차림을 보며 덥지 않냐고 말했던 우리 일행 중 한 사람이
저에게 다시 한 마디를 건네더군요.
"정말 바람이 차네요. 다시 보니 두텁게 옷을 입은 것이 옳은 선택이었군요."
이후 우리가 정신없이 일정을 소화하고 있었던 중,
누군가의 뼈 있는 말 한 마디가 스쳐갔습니다.
"4월이면 봄이 한창이어야 하는데, 여전히 이 나라는 어둑하고 춥네"
이 말을 듣는 순간, 영도여고에서 김형오 국회의장이 강연하던 한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학창시절 고비였던 몇 달간 정말 열심히 공부했는데도 도통 성적이 오르지 않아 초조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로서는 최선을 다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이렇게 안 될까?'라는 생각이 들고 힘이 빠지더군요."
"절망적인 생각이 가득 찼을 무렵 마음을 고쳐 먹기로 했습니다. '딱 한 번만 더 해보자. 딱 한 번만 더~'라고 마음 먹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정말 한 번을 더 참고 노력했더니, 꿈쩍도 않던 문이 열리듯 목표하던 바가 이루어졌습니다."
"여러분들도 최선을 다하고 난 후, 당장에 기대에 못 미치는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포기하지 마시고 한 번만 더 참고 가보세요. 그러면 어두컴컴한 긴 터널 끝에 한 줄기 빛이 보이듯이 뜻하던 바가 차차 이뤄어질 겁니다."
강연을 마친 뒤 영도여고를 떠난 우리는 스피노자가 사과나무를 심고자 했던 그 마음처럼
평화, 화합 그리고 희망을 상징하는 올리브 나무를 태종사 한 켠에 심었습니다.
어려울수록 절망에 빠지기 쉽지만,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마음에서 식수를 했습니다.
(아테네가 그리스의 수도이기도 하지만, 지혜의 여신인 것도 다들 아시죠?)
우리 삶에도 도저히 떠나지 않을 것 같은 구름이 한 번씩 밀려오곤 합니다.
'이 위기를 어떻게 이겨낼까?'라며 두려움에 떨기도 하죠.
그럴수록 눈 앞에 보이는 구름보다
구름 뒤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태양을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요?
각자 힘든 시기를 인내하고 기다리다 보면
언젠가는 어두운 구름을 헤치고 나온 태양이 그 빛으로 온 세상을 적시듯
우리에게도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요?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아침에 본 영화 제목이 생각났습니다.
<구르믈 버서난 달처럼>
아니 <구르믈 버서난 태양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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