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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속으로/보도자료

"한국정치, 흑백에서 컬러로 발전해야" (김형오 의장 퇴임 기자간담회)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언론인 여러분,


저는 이제 국회의장에서 물러나 평의원으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동안 보내주신 국민여러분의 따뜻한 격려와 성원, 그리고 깊은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아울러 열악한 취재환경에서도 최선을 다해주신 언론인

여러분에게도 고마움을 표합니다.


언론인 여러분께서 직접 목도했듯이 지난 2년은 역대 국회 중에서 가장

어려운 시기였습니다. 정권교체와 의회 세력의 교체가 동시에 이루어져 여야간 대치가 어느 때보다 험하고 첨예했습니다.


저는 입법부 수장으로서 그동안 18대 국회가 보여준 대치와 파행, 점거와 농성 등에 대해 이유가 어떻든 정치권의 자성을 촉구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먼저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2008년에 원구성, 추경안 상정문제, 연말 입법전쟁, 2009년 들어 미디어법, 노조법, 예산안 등 아홉 번의 위기와 고비를 넘기며 최악의 상황을 막고 정국의 중심을 잡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때로는 숱한 공격과 압박, 일방적 모욕과 왜곡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으려고

애쓰며 오직 나라와 국민을 위해 옳다고 생각하는 것만을 처리하려고 했습니다.


국회의 자존과 위상을 세우려 외로운 투쟁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언젠가 국민과 역사의 평가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저는 힘의 정치와 버티기 정치, 다수결 원칙과 소수자 보호, 효율과 형평의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맞출 것인지 부단히 고민하면서 결단을 내려왔습니다.


강퍅한 대결과 대치 상황에서도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며 중재의 끈을 놓지 않았습니다.


저는 3권 분립의 헌법 정신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역사부끄럼 없는 결정을 내리기 위해 노력했다고 자부하지만 훗날 어떠한 평가라도 달게 받겠습니다.




저는 2년전 취임하면서 밝힌 3대 목표, 정책국회, 상생국회, 소통국회를 만들기 위해 일로매진(一路邁進)했으나 많은 점에서 부족했습니다. 국민 여러분의 너른 이해를 구합니다.


그동안 고난도 많고 아쉬움도 남지만 후회는 없습니다. 어떤 경우에도

성급하게 서두르면 일이 성사되기 어렵다(欲速不達)는 옛말은 지금 시점에서 시사하는 바 적지 않을 것입니다.


앞으로 평의원이 된 만큼 어떻게 해야 우리 정치현실에서 ‘화해와 통합의 정치’를  구현할 수 있는지 동양과 서양의 사례와 역사를 통해 두루 공부해볼까 합니다.


햇빛을 영원히 가리는 구름이 없듯이 한국정치도 조만간 흑백정치에서

컬러정치로 발전,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상선약수(上善若水). 흐름을 거역하지도 않으면서 새로운 흐름을 만드는 것이 물입니다. 이때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흐르는 물처럼 부드럽고 낮은 자세일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저는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제가 해야 할 의무와 소명을 조금은 해냈다고 느끼며 이만 물러납니다.


감사합니다.



2010. 5. 27.


김 형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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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고 자료]


김형오 국회의장이 지난 2년간 걸어온 길


1. 의장선출

김형오 의장은 2008년 7월 10일 본회의에서 선출되었다. 촛불 정국 등 여야 대치로 인해 제18대 국회 출범 42일만에 이뤄졌다. 5선의 김형오 의장은 재석 의원 283명 중 찬성 92.9%의 지지율을 얻었다. 헌정 사상 두 번째로 많은 득표수, 14대 국회이후 최고의 득표율이었다.


2. 중재의 리더십

18대 국회는 10년 만에 정권과 의회권력이 동시에 교체된 환경 속에서 출범하면서 처음부터 격렬히 대립했다. 돌이켜보면 김 의장 재임중 자칫하면 국회가 파탄날 수도 있는 6번의 커다란 위기가 있었다. 하나하나가 대치와 충돌 속에 국가를 뒤흔들던 사안들이었다. 그 때마다 김 의장은 국회를 정상화시키기 위한 끈질긴 중재 노력으로 파국을 막아냈다.




첫 관문인 원구성부터 의장의 부단한 중재노력이 필요했다. 결국 18대 국회는 임기시작 89일만인 8월 26일에야 원구성을 마치고 정상궤도에 올랐다. 헌정 사상 가장 늦은 원구성이었다.

두 번째 과제는 세계금융위기를 맞아 긴급히 편성된 추경안 처리였다. 2008년 9월 12일 새벽에 예결특위를 통과한 안이 정족수 부족으로 밝혀졌으나 한나라당 지도부는 본회의 강행을 요구했다. 김형오 의장은 흠결있는 예산안을 여당 단독으로 그것도 심야에 처리할 수는 없다며 거부했다. 결국 추경안을 9월 18일 여야 합의로 처리했다.

세 번째 과제는 2009년 예산안 처리였다. 2008년 12월 예산안 법정처리시한을 넘겨놓고도 여야간 타협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김 의장이 민주당 정세균 대표와의 두차례 만남을 통해 예산안 처리에 대한 합의를 이끌어 냈다. 그로 인해 국회는 12월 12일에 예산 부수법안 14건을 본회의에서 처리하고 12월 13일에 예산안을 통과시켰다.

네 번째 위기는 2008년도 연말 입법전쟁이었다. 2008년도 12월 18일 외통위의 한미FTA 비준안 상임위 상정과정에서 사상 최악의 폭력이 발생하였다. 민주당이 의장실과 본회의장을 점거한 가운데 여당은 85개 법안을 모두 직권상정 해달라고 요구‧압박했으나 김 의장은 직권상정을 자제하고 대화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런 과정을 거쳐 협상과 중재가 몇 번이나 결렬된 끝에 여야는 마침내 민생법안 처리를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김형오 의장은 온갖 압박과 위협, 음해와 비난을 받았지만 용기있게 소신을 지켰다. 국회와 의회민주주의를 지켜내고 최악의 파국을 막기 위해서였다.

다섯 번째 위기는 미디어법 처리였다. 미디어법은 2008년 중반이후 제대로된 논의도 이뤄지지 않은 채 여야대치의 중심에 서 있었다. 수많은 절충과 협상이 수포로 돌아가자 김 의장은 결국 2009년 2월국회 마지막 날에 미디어법 심사기일 지정(직권상정 예고)을 통해 여야를 압박했고, ‘6월 국회 표결처리’라는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그러나 7월이 되어도 대치수위만 올라갈뿐 진척이 이뤄지지 않자 김 의장은 국민과의 약속, 의회민주주의의 원리를 지키기 위해 7월 22일 직권상정을 통한 표결처리를 단행했다.

여섯 번째는 2010년 예산안 처리였다. 4대강 사업 문제 때문에 민주당이 예결위를 점거한 가운데, 준예산 편성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었다. 김 의장은 예산안을 연내 처리 못하면 의장직을 사퇴하겠다는 배수진을 치고, 12월 29일부터 본회의 의장석 사수를 결행했다. 결국 김 의장의 결단으로 준예산 편성사태를 막아내고 새해부터 대혼란과 혼선이 예고된 노조법을 처리할 수 있었다.




3. 현안에 빠른 대처

김형오 의장은 국가적 위기 속에서는 여야가 힘을 합치도록 독려하고 이끌었다. 세계경제위기 속에 취임한 김 의장은 민생살리기와 경제위기 극복을 우선 과제로 삼고, ‘국회 경제위기 대응팀’을 출범시켰으며 2008년 추경안과 국가채무보증동의안 등을 최대한 신속하게 처리, 정부와 민간의 경제회복 노력에 강력한 힘을 실어 주었다.

금강산 관광객 피살사건,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황강댐 무단 방류 등 북한의 무분별한 위기 조성에 대해서도 김 의장은 북한 최태복 최고인민회의 의장에게 직접사과를 요구하는 서한을 보내는 등 신속하게 대처했다. 최근 천안함 폭침 사고 때는 국민적 의지의 결집, 국가 위기관리 시스템 재정비를 강조하며 국회차원의 대북규탄 결의안을 촉구했다.

일본의 독도관련 교과서 왜곡과 당국자 망언 등이 계속되자 김 의장은 현직 국회의장으로서는 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 독도 수호의지를 국내외에 천명했다. 또한 국회 독도 관련 자료실 설치, 세계에 흩어져 있는 독도자료 수집 등을 통해 국민의 관심을 환기시키고자 하기도 하였다.


4. 개헌과 국회제도개선론

21세기 선진국가의 기틀을 새롭게 마련하자는 개헌론은 김 의장의 취임 일성이었다. 헌법연구자문위원회를 초당적으로 구성, 1년여의 활동 끝에 방대한 연구보고서를 완성했고, 끊임없이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해왔다.

김 의장은 또한 일하는 국회, 폭력 없는 국회, 선진국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구시대적인 국회 운영방식을 과감히 개혁해야 한다고 보았다. 의장 직속으로 국회운영제도개선자문위원회를 구성, 심층적인 연구조사를 통해 충실하고 방대한 제도개선 대안을 마련했고 이를 해당상임위에 제출했다.



5. 국회소속 기관의 위상 증대

김 의장은 취임 후 매주 월요일 아침 국회 기관장 회의를 주재해 왔다. 과거에 없던 새로운 전통이 만들어졌고, 국회 사무처, 예산정책처, 입법조사처, 도서관 등 각 기관간의 소통, 효율적이고 유기적인 업무협조가 이루어지는 시스템이 구축됐다.

김 의장은 특히 국회소속 각 기관의 자율성과 독립성, 정치적 중립성을 철저히 보장하면서 위상을 크게 신장시켰다. 예산정책처는 우리나라 유수의 전문연구기관과 어깨를 견줄만큼 경제관련 기관과 학계에서 평가를 받고 있고, 입법조사처는 각 공공기관, 단체 및 언론에서 공신력 있게 인용되고 있다. 국회방송은 시청률이 케이블 공공채널중 1위이며 전체 채널 중에서는 40위권 밖에서 30위 수준으로 뛰어올랐다.


6. 열린 국회를 위한 노력

김 의장은 국회와 국민간의 소통의 문을 활짝 열고 그 자신 국민 속으로 들어갔다. 국회대변인실을 만들어 국회 공보기능을 강화하였으며, 국회방문자센타를 설치해 국민들이 원스톱으로 국회 구석구석을 돌아볼 수 있게 했다. 또 국회 도서관을 처음으로 야간에도 개장하고, 국회블로그로 또다른 소통의 창을 마련했다.   

김 의장은 국정감사 기간에 국회의장이 해외순방을 해온 관례를 깨고 우리땅 순례를 떠났다. 1, 2차 국토탐방을 합쳐 80여 곳을 방문하고 수천명을 만나 느끼고 들었던 것들을 두 권의 책으로 엮어냈다. (“길 위에서 띄운 희망편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이 아름다운 나라”)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