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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도섬의 비밀/영도소식

[시사뉴스피플 5월호] 테라와다불교의 살아있는 역사를 간직한 태종사

    테라와다불교의 살아있는 역사를 간직한 태종사
                 도성스님, "내 마음은 내가 고치는 곳"

부산 여행에서 빠질 수 없는 태종대.
이곳을 오고가는 이들이라면 꼭 한 번 들리는 곳이 있으니 바로 한국 테라와다불교의 살아있는 역사를 간직한 태종사다. 이 사찰은 부산의 명소인 태종대 공원에 위치하며 삼국통일의 기를 이어 남북통일을 기원하는 도성스님이 지난 1976년에 세운 절이다. 최근에는 '가야산 인욕보살'이라 불리던 지월당 병안 대종사의 탄신 100주년 기념일을 맞아 스님의 정신과 유훈을 기리는 다례제를 거행하기도 했다. 노동진 기자 bbong7887@


스스로 마음을 찾는 수행이 필요
태종사는 전통사찰은 아니지만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과 팔리어로 조석예불을 봉행해 태국이나 스리랑카 스님들의 수행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곳이다. 또한 법당의 문턱을 낮춰 불자를 비롯한 일반인들도 오고가는 수행 정진 도량으로도 명성을 드높이고 있다. 이곳에 상주하는 도성스님은 한국 테라와다 불교계의 최고 어른이자 정신적지주로, 2003년에는 스리랑카 상가로부터 '삼붓다 사사나 조띠까 마하테라'라는 최고의 칭호를 받기도 했다. 도성스님은 "각박한 세상속에 살다보면 욕심이 일어나게 되고 그것을 통해 마음은 불안감에 휩싸인다. 즉 배고픔과 그리움 등 내가 생각하고 있는 방향으로 마음이 쏠리게 되고 행동으로 옮기게 되는데, 깨끗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다스려야 타성에 젖어들지 않고 올곧은 행을 실천할 수 있다"며 모든 사고가 무관심에 비롯돼야 함을 설명했다. 이는 도성스님이 수행하고 있는 '위빠사나 수행법'의 가르침으로 많은 고민들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 마음의 안정이 필요함을 시사하고 있다. 도성스님은 '누구든 실천할 수 있고, 결과도 곧 나타나는 것이 법'이라며, "이 수행법이 국내에 널리 보급되고 수행 도량도 늘어나 스스로 내 마음을 찾는 수행으로 행복한 삶을 추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중략>

전국 최고의 수국단지

오는 7월이면 태종사에는 전국적인 관광객들이 모여든다. 이유는 40여년 이상 된 각양각색의 수국들이 만개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수국단지가 있는 태종사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매년 7~8월이면 '수국축제'를 열어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마음의 넉넉함을 제공하고 있다. 이곳의 수국들은 도성스님이 직접 재배한 것으로 태종사 입구에서부터 곳곳마다 화려하게 피어진 수국들을 한 눈에 감상하며 아름다움에 흠뻑 취할 수 있다. 수국은 범의 귀과로 우리나라 전국의 관상용으로 널리 재식되며 한방약재 및 식용차로도 널리 사용되고 있는데, 불가에서는 수국을 감로비(단비)로 여겨 차를 끓여 먹거나 소아마비 등 불치병 퇴치를 위한 약초로 널리 쓰고 있다. 또한 이곳에는 전립선과 담석 치료에 좋다는 '금전초'를 비롯해 다양한 식물들이 산재해 있는 곳이다. 지난 1983년 전두환 대통령의 스리랑카 방문을 기념해 스리랑카 정부에서 보내온 보리수나무와 김형오 국회의장이 그리스 국립박물관장으로부터 기증받은 파르테논 신전 '올리브 나무'도 심어져 있기도 하다. <NP>

태종사 도성스님은...

도성스님은 1919년 평안남도 양덕군에서 태어나, 6.25 전쟁시 북한 인민군에 징집되어 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쟁포로가 됐다. 전쟁이 끝나고 전쟁포로 수용소에서 석방된 스님은 부산에 소재한 선암사로 가서 지월스님의 문하에서 출가하였다. 출가 후 스님은 다수의 승가과정과 여러 사찰의 선문과정을 거치며 56회의 안거를 통해 수행을 쌓았다. 테라와다불교의 전통에 관심을 가지고 위빠사나 수행을 하여 1972년에는 태국의 방콕에 소재한 왓벤자마보핏 사원에서 프라담마 딧띠소폰 스님을 계사로 비구계를 받고, 미얀마의 마하시 선원과 스리랑카의 비구 아이랜드에서 계속 수행했으며, 귀국 후에는 한국의 불교 수행자들에게 위빠사나 수행을 지도했다. 오랜 세월을 통해 불교계에서 봉직하는 동안 해인사 주지와 대흥사(대둔사) 주지를 지냈고, 조계종 전국 본사주지연합회 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또한 태국 마하 쭐라롱콘대한 한국분원의 학장을 지내는 등 국제적인 교학의 증진에도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