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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장실록(제도개선등)/김형오의 말말말

“제스처 정치, 쇼맨십 정치에 마침표를 찍자”

의원들의 오버액션과 카메라의 함수관계

“제스처 정치, 쇼맨십 정치에 마침표를 찍자”


김형오(국회의원, 18대 전반기 국회의장)



토요일 아침 신문들을 훑어보다가 민망해졌다. 한미 FTA 비준 동의안 상정을 극렬하게 비난하는 야당 의원들 사진 때문이다. 많은 신문들이 1면 혹은 정치면에 그 사진들을 큼지막하게 실어 놓고 있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진 속에 크게 부각된 의원이 정작 FTA 관련 상임위인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소속도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는 회의장에 나타나 고함을 지르고 삿대질을 하면서 훼방을 놓았다. 그리고 카메라는 그런 그의 모습을 클로즈업했다.

이런 풍경은 사실 전혀 낯설지 않다. 그 동안 질리도록 반복되어 우리 국민 모두에게 익숙해져 있다. 국회의장 재임 시절만 돌아보아도 수많은 장면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간다. 내가 20년 가까이 몸담고 지켜보았지만 때가 되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우리 국회의 부끄러운 자화상이다.

문제는 신문 지면이나 텔레비전 화면에 비친 그런 자신들 모습을 전혀 수치스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자랑스러워하고 그런 기회가 자주 오기를 바라고 있었던 사람처럼 행동한다.


출처: 한국일보



그럴 때마다 나는 “연예인과 정치인은 자신이 죽었다는 소식 말고는 모든 기사와 뉴스들을 반가워한다.”는 우스갯소리가 결코 과장으로 들리질 않는다. 실제로 언론사 카메라가 플래시를 터뜨리면 그때까지 가만있다가도 마치 감독의 “레디 액션!” 지시를 받은 배우처럼 갑자기 삿대질을 하고 멱살을 잡고 마이크를 빼앗고 고함을 치는 등 오버액션하는 정치인들 모습을 심심찮게 보아 왔기 때문이다.

이제는 바뀌어야 한다. 그런 오버액션과 쇼맨십을 소속 정당에 대한 충성도로 평가하고 공천에 반영하는 일은 앞으로 없어져야 한다. 지역구의 일부 충성스런 지지자와 당원들은 그런 행위를 두고 맹목적인 아부를 할지 모르지만 이는 한국 정치에 후진 기어를 넣는 일이다. 진지하게 고민하고 밤새워 토론하는 대신, 선명성을 내세우고 강경 투쟁을 소리 높여 외치는 이가 부각된다면 그것이 바른 정치인가. 국민이 왜 정치에 염증을 느끼고 있는지를 모른 채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 언어와 몸짓만 화려한 ‘제스처 정치’, ‘쇼맨십 정치’가 판을 치는 한 정치 발전은 요원하다.

안철수 교수와 박원순 변호사를 놓고 생각해 보면 답이 명백해진다. 삿대질하는 안철수, 멱살잡이하는 박원순이 상상이 되는가. 변화와 자성을 요구하는 민의를 가슴에 각인하고 진정으로 겸손해야 한다. 안 그러면 자멸이다.


국민들 눈에는 그런 몸짓이 자칫 ‘할리우드 액션’처럼 비쳐질 수도 있다. 망신을 사거나 조롱거리가 되기 십상이다. 축구 경기에서도 벌칙이 강화되어 할리우드 액션, 시뮬레이션 액션을 한 선수에게는 옐로 카드(경고)는 기본이고 심한 경우 레드 카드(퇴장)에 벌금까지 물리는 세상 아닌가.

언론에도 당부하고 싶다. 그런 정치인들은 투사가 아니다. 신념에 찬 용기 있는 정치인이 아니다. 본질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오버액션과 쇼맨십에 렌즈를 들이대거나 스포트라이트를 비추지 말기 바란다. 미국이나 유럽 선진 의회가 방송 장면과 보도 사진에 얼마나 많은 제약을 두는 줄 잘 알지 않는가. 이같이 볼썽사나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아 보도한다면 오히려 통렬하게 비판하고 질타하는 캡션이나 기사가 따라 붙어야 하는 게 아닐까. ♠